[우리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두더지처럼 읽고, 종달새처럼 말하는

-[프루스트를 읽자]세미나

 

 

 

 

하얀/수유너머N회원

 

 

 

 

 

  marcel proust(1871-1921)

 

 발베크 해변에 도착한 마르셀은 낯선 호텔방에 누워 한없이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같이 여행을 온 할머니를 자꾸만 귀찮게 합니다. 할머니의 손, 목소리 같은 것들이 비로소 마르셀을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익숙한 것들의 소멸에 대한 불안이 지속적으로 마르셀의 주변을 감싸 돌며 흘러갑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소멸을 어떻게 기억으로 응전할 것인가를 예술로 포착해내려는 인간,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입니다. [프루스트를 읽자]세미나를 하지 않았더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세미나 회원들과 함께 꼼꼼하게 읽지 않았더라면 오해할 뻔 했습니다. 잠이 들기 전 어머니에게 입 맞추려던 마르셀, 할머니의 치마폭에 둘러싸인 마르셀을 오이디푸스화의 문제에 봉착한 편집증적 인간이라고 오해할 뻔 했습니다.

 

 [프루스트를 읽자]세미나는 41일에 시작해 71, 현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6권까지 읽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들뢰즈가 언급한 문학책을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자는 의도로 세미나를 열게 되었습니다. 들뢰즈 철학에서 문학은 큰 자리를 차지하는데-마르키 드 사드,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 사무엘 베케트, 미셸 투르니에, 루이스 캐럴 등-그의 철학책은 읽어도 그가 언급한 문학책은 제대로 읽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리고 혼자라면 읽기 불가능한 책들을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읽다보면 어느새 도달하게 되는 기쁨을 이번에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더불어 있었습니다. 저와 같이 읽다 포기한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이번엔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포기했던 지난 잃어버린 시간을 이번만은 기어코 되찾자(!)는 이 마음가짐으로.

 

                                                    

물 속에 퍼지는 일본 종이꽃은 마들렌일화만큼 자주 인용되는 장면이지요.

 마치 마르셀이 글쓰기를 통해 기억을 펼쳐내듯 책 전체를 담은 절묘한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마냥 우리의 의지만은 아닙니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는 회원은 마르셀의 살롱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에 해당하는 철학적 금언 혹은 꼰대 같은 말에 대해 투덜거리면서도 타소설과 프루스트의 차이를 보고 싶어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회원은 진리를 찾아가는 프루스트의 과정을 살피려 하고, 음악과 회화에 관심 있는 회원들은 대상을 바라보는 프루스트의 인상주의적 필치에 주목하려 하고, 문학에 관심 있는 회원들은 프루스트의 음악론-회화론과 연애까지도 묶어 문학론 혹은 예술론을 일관성 있게 끌어내고자 합니다. 이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만이 아닌 각기 다양한 읽기 방식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매개로한 우연한 읽기의 교차지점들이 펼쳐집니다. 물 속에 놓으면 조금씩 열리는 일본의 종이꽃처럼.

 

 1권을 읽으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받아 보았던 출판업자처럼 30페이지가 넘는 성인 남자의 잠과 잠-깨기의 문제를 읽는 일은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발베크에서 만난 알베르틴에 관한 묘사에서 점의 바뀐 위치, 두 번의 <페드르>를 보는 동안의 마르셀의 미적 판단의 차이, 그리고 마르셀의 실망들, 연극 배우 라 베르마에 대한 실망, 발베크 성당에 대한 실망, 엘스티르의 작업실에 대한 실망, 게르망트 공작 부인에 대한 실망... 이 실망들이 초반부에는 다만 어린 화자의 어리석음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실체 속에서 아름다움을, 진리를 단번에 발견하는 것이 더 성장한 의식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어린 화자에서 성인 화자의 이동이 아니라 대상과 주체가 만날 때 발생하는 실체와 관념의 문제에 관한 현상들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초반에 마르셀과 그의 지적·예술적 아버지인 스완은 기존에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관념 속에 실체를 속박합니다. 하지만 늘 실체가 방사하는 인상과 감각은 기존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버립니다. 진정한 예술가란 안과의사처럼 이미 있는 세계를 새롭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다른 미적 기준을 만들어내는 자로서 예술가. 자신은 글쓰는 재능이 없다고 포기했던 마르셀은 게르망트 쪽에서 이 지점에 도달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의 화가들,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겐 5권의 책이 남았고, 1권에서부터 나온 메제글리즈와 게르망트의 방향이 아름다움, , 기억을 되찾는 과정 속에서 어떤 두 방향인지 아직 확신하지 못합니다. 또한 무의식적 기억, 상기, 회상, 몽상, 인상 등이 어떻게 실체와 관념 사이에서 결합되고 있는 것인지, 꿈과 꿈-깨기가 기억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될는지, 19세기의 파리의 계급과 문화의 변화와 드레퓌스 사건 등은 왜 결합하는 것인가. 아직 선명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어렴풋한 안개 속에서 충분히 헤매보겠다는 마음, 이 어지럼증을 견뎌보겠다는 마음, 그것이 문학을 관념 속에 포획하지 않고 조우하는 길일 것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과 세계를 되찾는 준비자세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김창석 옮김, 국일미디어) 7권에 진입하며 이제야 이런 준비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읽는 것은 두더지처럼 이야기는 종달새처럼. 여러 종달새의 소리가 기이하고 아름답게 울리는 [프루스트를 읽자] 세미나에 놀러오실래요?



시간 : 화요일 오후 2시

문의 : 반장 하얀(lallorona@naver.com) 




신고
Posted by 노마디스트

블로그 이미지
노마디스트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07)
이슈&리뷰 (51)
빌린 책 (43)
개봉영화 파헤치기 (8)
풍문으로 들은 시 (13)
장애, 그리고... (4)
4040 (5)
칼 슈미트 입문 강의 (32)
아무도 번역 안 해줄 거잖아 (4)
시몽동X번역기계 (6)
과학 X 철학 토크박스 (2)
해석과 사건 (6)
화요토론회 (23)
기획 서평 (34)
과거글 (271)
Yesterday613
Today336
Total1,774,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