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적 투명성과 비밀의 해석학

- 한병철, 투명사회 (김태환, 문학과지성사)-

 

 

 

 

지영 / 수유너머N 회원

 

 

 

 

1. ‘자발성에 대한 경고

 

  단문으로 표현되는 한병철의 사유들에는 촌철살인의 힘이 담겨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고 그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세계의 비밀을 품고 있는 언어들이 그의 책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대표작인 피로사회와 올해 출간된 투명사회』에서는 한병철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발성에 대한 우려가 드러난다. 그는 피로사회에서 자발적 소진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했고, 투명사회에서는 자발적 공개가 지닌 위험성을 논의한다. 자발성 때문에 사람들은 피로해지고, 투명해진다. 피로야 그렇다 치더라도 투명성은 왜 위험한가? 투명사회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2. '고백'을 넘어 폭로

 

자신을 고백하는 것이 의미를 지니던 시절이 있었다. 루소는 1769년에 완성된 고백록에서 진리와 고백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기획은 마음의 가차 없는 공개임을 밝혔고, 그 후 그의 사상은 수정 같은 마음이라는 은유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루소를 계기로 시작된 자기 고백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발적 폭로라는 점점 폭력적인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자기 폭로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성과 부정성이 제거되는 방식으로 사회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병철은 이런 사회를 투명사회’라고 부른다.

 

 

 

3. ‘동일한 것의 지옥'

 

투명사회는 다름과 낯섦의 부정성, 타자의 저항을 제거하는 투명성이 모든 사회적 과정을 장악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하는 투명사회는 획일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안에서 사물과 시간과 행위는 매끈하게 다듬어지고 평탄해져서 동일한 것의 지옥인 투명사회를 지지한다.

 

 

4. ‘싫어요가 없는 사회

 

페이스북에는 좋아요만 있고, ‘싫어요는 없다.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그 이유를 긍정성만이 강요되는 투명사회의 속성과 더불어 분석한다. 부정성을 제거하고 긍정성만을 옹호하는 구조 속에서 일반화된 판정 형식은 좋아요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페이스북은 부정성을 양산하는 싫어요의 속성 때문에 이것의 도입을 반대한다. 더 빠르게 후속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좋아요만 있으면 된다. 이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시화되고, 더 이상 굴곡진 구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5. ‘공론장이 사라진 시대

 

이제 가장 사적인 영역인 집은 온갖 케이블이 구멍을 뚫고 들어와 틈새마다 커뮤티케이션의 바람이 들이치는 폐허가 되었고, 이익을 최대화하는 디지털 투명성은 완전한 조명을 사용하며 최대한의 착취를 약속한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와 개인화된 검색엔진을 통해 절대적인 인접공간을 만들고, 디지털 이웃사촌의 공간 안에서 참여자에게 마음에 드는 세계의 단면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정보들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공론장, 공적 영역, 비판적 의식은 해체되고, 세계는 전적으로 사적인 장소로 변질된다. ‘공론의 자리를 개인의 공개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6. 디지털 파놉티콘

 

이러한 상황을 대변하는 투명사회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양식으로서 비원근법적 파놉티콘이 작동된다. 벤담의 파놉티콘은 감시를 기반으로 한 규율사회의 현상이었지만, 디지털 파놉티콘은 주민들이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더 문제적이다. 주민들은 스스로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기여한다. 이들은 오늘날의 새로운 수감자, 디지털 파놉티콘의 호모 사케르이다. 이들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자발적으로 노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불신과 의심이 증가하는 사회, 그래서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가 투명사회인 것이다.

 

 

 

 

 

  7. ‘거리의 파토스비밀의 해석학

 

그렇다면 방사선처럼 모든 것을 꿰뚫는 투명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병철은 인간의 영혼에 필요한 것은 투명성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자기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이고, 우리에게는 투명성의 파토스에 맞서는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생략과 망각의 부정성이 필요하다. 심오한 정신은 가면의 보호 속에서 생산되고, 완전히 다른 것, 새로운 것은 가면 뒤에서 번성한다. 투명성의 전면적인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의 상징술이자 깊이를 창출하는 비밀의 해석학이 요구되는 것이다.

 

 

8. 그 후에 남은 문제

 

방사선적 투명성과 그에 대항하는 비밀의 해석학에 대한 한병철의 논의는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며 자가 증식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발적 폭로가 이루어지는 이 환경이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부정적이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가 투명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위장과 가면, 그리고 비밀의 역학은 이 폭로의 구조 속에서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이미지로 가시화된 존재 자체가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위악과 위선 사이의 어디쯤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플랫홈으로 설정한 것은 아닌가. 이 투명하고 매끄러운 표면에서 신나게 미끄러지며 유희를 즐기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부정성 속에도 긍정성은 담겨 있고, 포획하려는 힘만큼 탈주하려는 힘도 함께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 의문은 한동안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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