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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웹진강의

[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첫 번째 부분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비밀결사의 힘이라는 것에 관한 공상은 18세기 말에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통속소설의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계몽단이나 프리메이슨의 비밀 음모에 대한 신앙은 버크나 하라 같은 비낭만주의적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는 거기서 자신의 음모적이고 아이러니한 실재에 대한 충동, 즉 인간을 지배하는 은밀하고 무책임하며 분방한 힘에 대한 감흥을 위한 테마를 보고 있다. 그래서 티크의 최초의 소설(roman)에서는 탁월한 인물들이 주역을 맡고, 다른 자들을 그들의 의지와 기획의 무의식적인 앞잡이[부하]로 삼고 있다. 이런 인물은 ‘모든 배후에 있는 위대한 도구들’로 실험하고, 극을 그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 18세기 말뿐 아니라 그 후에도, 비밀결사의 힘에 관한 공상(fantasies)은 단순히 싸구려 스릴러물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예수회, 일루미나티[광명단], 프리메이슨이 만든 비밀스러운 음모에 대한 신앙은 이 세기의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버크와 하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표명됐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들이 인간의 역사를 보이지 않게 또 최고의 악의를 갖고 통제할 수 있게 는 해주는 ‘무대 뒤에서’ 실행되는 비밀스러운 힘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 이와 같은 ‘비밀’의 건축에 있어서, 인간에 의한 역사적 사건들의 의식적 지배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신앙은 막대한 사회적 힘에 대한 악령적-공상적 두려움과 결합되며, 섭리에 대한 세속화된 신앙과 빈번하게 결합된다. 여기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아이러니하고 모사를 꾸미고 현실을 갈망하는 테마를 봤다. 비밀을 매우 즐겨하며, 무책임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경솔한 힘을 발휘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티크의 초기 소설에는 다른 자들을 자신들의 의지와 음모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만드는 탁월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의 배경 속에서 거대한 엔지니어”로서 실험을 하며, 게임의 가닥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있다(p.79).]

『정치적 낭만주의』




슈미트와 수사학 


1강에서는 도입으로서 칼 슈미트가 어떤 사상가이고 어떤 식으로 평가받았는가라는 얘기와, 『정치적 낭만주의』의 전반부, 즉 낭만주의를 소개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 텍스트는 낭만주의론이기 때문에 법학자나 정치철학자보다 문학연구자의 주목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제 자신도 석사 시절에 낭만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슈미트와 문학의 관계에 관해 조금만 보충하겠습니다. 슈미트는 헌법학자이며, 법철학적·법제사적으로 법이나 정치의 본질을 독특한(unique) 형태로 논한 인물입니다. 그의 문체는 우리가 법학논문이라고 들으면 떠올리게 되는, 잘 모르는 추상적인 말을 늘어놓은,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느낌이 아닙니다. 상식을 뒤흔드는, 이상한 수사학이 효과를 발휘하는 문체를 구사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극단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도 그렇지만, 법학의 틀 안에 들지 않는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슈미트는 젊은 시절 법학자로서 배우면서도, 문예평론과 풍자문 같은 것을 썼습니다. 표현주의 계열의 시인인 도이블러(Theodor Däubler, 1876-1934)의 시집 『북극광(Nordlicht)』(1910)에 관해 자세하게 논평한 「테오도르 도이블러의 『북극광』에 관하여(Theodor Däublers ‘Nordlicht’: Drei Studien über die Elemente, den Geist und die Aktualität des Werkes)」(1916)나, 동시대 지식인의 생태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브리분켄(Die Buribunken)』(1917-18)이 알려져 있습니다. 전후에도 햄릿론인 『햄릿 혹은 헤쿠바(Hamlet oder Hekuba. Der Einbruch der Zeit in das Spiel)』(1956) 등을 썼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문예비평과 정치철학의 중간적 저작으로, 초기 낭만파의 비평이론에 관해 꽤 깊이 파고들어 논평하고 있기에 슈미트의 문학가적 측면이 강하게 드러납니다만, 다음 번 강의 이후에 읽는 『정치신학』이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등에서도 수사학이 상당히 효력을 발휘하는 문장으로 쓰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슈미트는 자신이 말하려 하는 책의 본질을 직관에 호소하며, 유무를 말하게 하지 않고 납득하게 만드는 강렬한 말로 표현하며, 이를 개념적으로 엄밀화해 가는 것이 훌륭합니다. 수사와 논리의 조합이 절묘하다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슈미트의 논문 대부분이 법학 자체라기보다는 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또는 법의 근저에 있는 신화적·신학적 차원을 문제 삼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논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사는 최대한 쓰지 않고, ‘법규범’ 상호의 논리적인 관계만으로 논의를 체계적으로 전개하려는 법실증주의의 입장인 한스 켈젠과는 대조적인 느낌이 듭니다. 두 사람은 쾰른 대학에서 한때 동료였기도 했고, 바이마르 시기 독일 법철학의 양대 거두로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켈젠의 ‘순수법학’은 도덕이나 정치, 종교, 예술 등에서 분리된 순수한 ‘법’의 논리를 추구합니다. 다만 켈젠도 법학 이외의 영역, 예를 들면, 신화나 종교 등에 대해 글도 썼으며, 그런 방면에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슈미트 이상으로 문학적 수사를 구사하고 있으며,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トンデル感じさえします. 그것을 법학의 틀 속에 들여오지 않는 것이 켈젠입니다. 



‘예외상태’ 〈Ausnahmezustand〉


『정치신학』의 서두에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자극적인 문장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서두에 갖고 오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오늘날의 일본에서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감이 오지 않지만, [슈미트가] 이 문장을 쓴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예외상태’의 원어는 〈Ausnahmezustand〉로, 헌법이나 정치체제와 관련된 맥락에서는 ‘비상사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통상적인 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계엄령 등에 의해 치안유지를 꾀하려 하는 그 ‘비상사태’입니다.


제1차 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에서는 제정(帝政)이 붕괴하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간주된 바이마르 공화제가 발족했습니다만, 거액의 배상 책임을 짊어졌고, 극우와 극좌에 의한 체제 전복 시도가 번번이 있었으며, 많은 정당이 난립했고 정권이 자주 교체됐습니다. 국가가 여전히 매우 불안정했으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줄곧 ‘예외상황’이었습니다. 혹은 ‘예외상태’와 ‘보통상태’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에는 헌법=국가체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즉 ‘비상사태’에 처했을 때 헌법의 일부 규정을 중지하고, 특별한 명령을 냄으로써 혼란을 수습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주어졌습니다. 슈미트는 대통령이 대권을 발동할 수 있는 ‘비상사태’를 둘러싼 현실적인(actual) 문제를 국가의 존립이 걸린 ‘예외상태’, 다시 말하면 ‘법’의 ‘예외상태’, ‘인간존재’에게 있어서의 예외상태처럼 더 추상적·철학적인 차원의 문제로 파고들어 가는 형태로 논의를 전개한 것인데요, 그것을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셈입니다. 단순히 대통령이 비상사태 대권으로 혼란을 수습한다는 얘기에서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죠.


현실적인(actual) 헌법 해석의 문제를 논하면서 어느 샌가 법률적 개념의 근저에 있는 신학 혹은 신화적인 심층으로 논의 수준을 깊이 있게 해 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독자를 끌고 갔던 《깊은 차원》에 비춰서 당초의 문제를 재고하라고 촉구합니다. 법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나 문학가의 방식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  


그러면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특징을 슈미트 자신의 관점에서 매우 정확하고(pinpoint) 아이러니하게 묘사한 다음, 이것과 그가 인정하는 본래의 ‘보수주의’, 특히 가톨릭 보수주의와의 차이를 밝히고, 상대적으로 후자를 높이 평가하려는 노림수를 지닌 저작입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의 대표로 드 메스트르와 보날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혁명 시대의 정치사상가로, 가톨릭의 교의와 결부된 국가관·민족관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도 신학자도 아니고, 중세의 신학을 그대로 부활시키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국가나 민족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한다는 것이 반드시 가톨릭 교리에서 나오는 얘기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가톨릭이 길러낸 계층구조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을 이론화한 인물들로, 슈미트는 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드 메스트르는 일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 근대의 정치사상사에서는 꽤 중요 인물로 취급되고 있으며, 보수주의 계열의 사상사에서는 대개 이름이 나옵니다. 「두 개의 자유」론으로 유명한 이사야 벌린(1909-97)도 드 메스트르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도노소 코르테스



슈미트가 자주 이름을 들먹이는 가톨릭 보수주의의 사상가로는 다른 한 명, 다음 번 강의 이후에도 나오는, 19세기의 스페인 정치이론가이자 외교관인 도노소 코르테스(Juan Donoso Cortes, 1809-93)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2월 혁명 시기의 스페인에서 반혁명의 사상을 전개한 인물입니다. 슈미트가 이 세 명에게서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코가 케이타 씨(古賀敬太, 1952~)가 저서 『칼 슈미트와 가톨리시즘 : 정치적 종말론의 비극(カール・シュミットとカトリシズム──政治的終末論の悲劇)』(1999)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서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나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버크는 전통을 비합리적인 것이라며 파괴하고 영(zero)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영국국교회와 국가의 결부가 영국의 ‘국가=헌법체제constitution’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다른 개신교와 달리, 영국국교회는 신앙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에 가톨릭에서 이탈한 것이라서, 교리와 의례에 그다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게다가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기에 국가와의 융합도가 가톨릭보다 높습니다.


낭만주의자 중에는 과거에 대한 동경 때문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복고주의적 정치를 지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라면, 그들은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무한한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민족’이나 ‘역사’를 말했을 뿐이며, 가톨릭 보수주의자처럼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를 튼실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자는 자신들이 ‘실재’하는 ‘민족’이나 ‘역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 한정성 위에 자신들의 삶이 성립된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안정된 ‘질서’ 지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그런 ‘한정’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미화한 ‘민족’과 ‘역사’의 《이미지》와 무한하게 계속 놀려고 합니다. 그 《이미지》는 ‘실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기에, 계속 변용되며 안정되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그런 불성실한 불안정성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낭만파의 사고 


여기서 슈미트가 집요하리만치 계속 비난하고 있는 낭만파의 사고방식에 관해 조금만 긍정적인(positive) 관점에서 소개하겠습니다.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계열의 독일사상에서 낭만파를 재평가하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은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의 ‘비평’ 개념을 ‘무한한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재파악한 벤야민의 논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발터 벤야민,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3 ; Walter Benjamin, Der Begriff der Kunstkritik in der Deutschen Romantik, 1920]입니다. 벤야민이 이를 박사논문으로 쓴 것은 『정치적 낭만주의』가 간행된 것과 같은 해인 1919년입니다. 제 석사논문을 책으로 낸 『근대의 갈등(モデルネの葛藤)』에서도 벤야민의 이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은 합리적인 주체로서 실재하는 것이라고 상정되는 [데카르트-칸트-피히테]적인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데카르트(1596-1650)는 방법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내’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생각했습니다. 반면, 슈레겔 등은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생각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합니다.


“생각하고 있는 나”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다”에서 “내가 존재한다”를 도출시킨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낭만파에 강한 영향을 미친 피히테는 이것을 “나의 존재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나 자신에 의해 단적으로 정립(setzen)되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판단의 최종 근거는 나 자신이며, 이것 이상으로 소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낭만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관해 계속 생각하려 합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나’는…? 이렇게 계속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고 무한히 계속됩니다.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한다”는 반성의 구조가 무한하게 반복되는 셈입니다. 이 연쇄가 어디까지나 계속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의 진정한 근거가 결국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의 존재’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라는 무한한 연쇄의 단축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 - 칸트 - 피히테]적 자아

합리적인 입체로서의 실재한다고 상정

‘자아’의 개념을 유동화시키고 《나》를 무한의 오토포이에시스의 연쇄 속에서 재발견하는 것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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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낭만파의 ‘비평’ 이론

방법론적 회의 끝에,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내가 존재한다”를 전제로 하여 ‘나’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관해 계속 사고했다. 

            

“‘실제로 사고하고 있는 나’에 관해 사고하고 있는 나”라는 형태로 생겨나는 ‘반성’의 문제를 골똘히 사고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상대화


더구나 나 자신 속에서만 자기반성이 무한하게 연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나의 ‘바깥’에까지 반성의 연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에 관해 ‘언어’에 의해 생각할 때, 언어를 통해서, 외부에서 다양한 관념이 《나》의 안으로 유입됩니다. 다른 《나》들이 사고한 것, 시적으로 창작·상상한 것이 언어를 매개로 ‘나’ 속에 수시로 들어오고, ‘나’라는 장 속에서 오토포이에시스(자기산출)를 계속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종횡으로 연결된 반성의 연쇄를 통해, “우리의 세계”가 ― 항상 생성변화하면서 ― 구성됩니다. 그리고 ‘세계’ 속에 《있는(有る)》 다양한 《사물[物]》은 반성 운동 속에서의 ‘나’의 관점의 변화에 의해 다양하고 상이한 양상을 띱니다. 예술적 오브제가 보는 각도나 상황에 따라, 보는 주체의 관심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주듯이, 예술가는 그런 모든 것을 끌어넣으면서 오토포이에시스를 계속하는 ‘초월론적 포에지(Transzendentalpoesie)’의 운동에, 눈에 띄는 형태로 공헌한 인물입니다만, 우리들 개개인도 얼마간의 형태로 그것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비평Kritik’이란 당사자,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저자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 아래에서 진행되는 그런 반성의 연쇄를 여실히 드러내고, 다시금 창작으로 나설 자극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발상은 포스트 문제계의 현대사상에서 에크리튀르(=쓰인 것 + 쓰는 행위), 혹은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를 둘러싼 문제로서 논해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수준의 ‘텍스트’ ― 어딘가에 적힌 문장뿐 아니라 예술작품, 건물, 상징적 기호 등, 의미의 체계를 이루는 것 일반이 포함됩니다 ― 를 매개로, 불특정 다수의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각종 텍스트화된 담론의 다발로서 《주체》로서의 ‘나’가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이미 텍스트화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대상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대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확대된 의미의 ‘텍스트’는 사람들이 쓰는 행위(에크리튀르)에 의해 점점 증식되고, 또 그것에 뒤따라 새로운 의미의 연관을 산출하기 때문에, 텍스트 속에서 일어나는[벌어지는]  우리의 《주체성》도 계속 변용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에크리튀르의 무한한 놀이에 의해 우롱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체》를 텍스트의 연쇄=에크리튀르의 작용으로 보는 발상은 독일 낭만파와 포스트모던 사상에 공통적입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정면》비판 


『정치적 낭만주의』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슈미트는 슐레겔과 노발리스가 이런 발상을 하고 있음을 어떤 의미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다음에 그것을 ‘정치’에 응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러니’의 문제입니다. 아이러니는 ‘나’ 자신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재파악하고, ‘나’ 자신이나 주위의 타자, 여러 대상들에 관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을 발견하고, 《주체》와 《객체》 둘 다를 변용시키는 행위입니다. 아이러니는 모든 개념을 메타적 관점에서 상대화합니다. ‘민족’과 ‘역사’조차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A씨가 “민족의 본질은 ○○○이다”라고 파악했다고 합시다. 반면 B씨가 “A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A씨가 ▽▽▽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에서 입장이 다른 것으로 바뀌면 민족에 관해, 예를 들어 □□□라는 다른 시각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A씨와 B씨가 동일 인물인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C씨가 “B씨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라는 식으로 계속하려고 하면, ‘민족’의 《본질》은 무한한 반성의 연쇄 속에서 점점 변모합니다.


안정된 질서를 찾아내고 유지하고 싶은 사람이 보면, 이런 느낌으로 메타 사고를 계속하고, ‘실재’에 다다르지 않는 사고는 쓸모없으며 불성실합니다. 낭만파 입장에서 보면, 성실하게, 하나의 관점을 고집한 나머지, 사물의 다른 측면에 눈을 닫아버리는 《성실한 사상가》들보다는 반성=비평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점점 아이러니컬하게 변화시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불성실한》 자기네가 결과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는 성실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면, 곧바로 《성실한 사람들》은 더욱 더 화를 내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얘기네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비판이 진보적 합리주의자, 보수주의자, 맑스주의자 등에게서 낭만파에 대해 던져졌습니다. 이런 뜻에서 ‘성실/불성실’ 얘기만 나오면, 우와 좌의 공동투쟁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은 구도인지도 모릅니다. 슈미트는 그런 낭만주의에 대한 《성실한》 비판을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철저히 행하는 것입니다. 


슈미트는 아담 뮐러의 ‘정치적 낭만주의’도, 슐레겔의 아이러니의 응용편일 뿐이라고 봅니다. 일반적 이미지로서는, 뮐러는 메테르니히 아래서 정치적으로 활약하고, 국가유기체설을 내놓고, 애덤 스미스적인 자유주의 경제를 공동체적·전통적 관계성에 의해 보정하는 독자적인 국민경제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비평가·문헌학자일 뿐인 슐레겔과는 다르다고 생각되기 십상입니다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할 겁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게, ‘정치적 낭만주의’를 가톨릭 보수주의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이상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슈미트 자신의 사상적 결단이 겹쳐져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슈미트가 이렇게나 낭만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슈미트 자신 속에 낭만주의적인 체질, 사물을 메타적 관점에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현실로부터 추상화된 관념에서부터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아이러니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슈미트 자신 속에 있는 낭만주의적인 부분을 떼어내, 실재하는 질서를 지향하는 보수주의를 철저히 하기 위한 선언문으로 『정치적 낭만주의』를 쓴 것은 아닐까요? 



포스트모던 보수주의 


최근에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만, 90년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포스트모던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사상 경향이 조금이나마 주목을 받았습니다. 본인이 그렇다고 인정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만, 프랑스의 파시즘 문학 연구에서 문예비평으로 들어간 후쿠다 가즈야 씨(福田和也, 1960~)가 그 대표로 여겼습니다. 포스트모던 보수의 사상이라는 것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으로 굳게 믿을 수 있는 게 없지만, 일단 사회를 통합하고 안정시키도록 기능하는 상징이 있는 쪽이 편리하다. 그 ‘상징’의 진정한 유래라든가 배후에 있는 전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천황제나 신도를 그다지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만, 옛 것이 상징으로서 기능하기 쉬우니까 옛 것, 혹은 옛날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용해서 하면 좋다. 자신은 별로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지만, 집착하고 있는 척 하는 편이 진심으로 집착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과 말을 통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뭔가에 헌신하는 것도, 아무것에도 헌신하지 않는 것도, 모두 결국에는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같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헌신하는 척하고, 임시의 ‘상징’ 아래서 안정해도 좋지 않은가…. 이런 느낌의 사고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칸트학파의 철학자 루돌프 파이힝거(Rudolf Vaihinger, 1852-1933)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인 듯이 Als-Ob”의 철학입니다. 


물론 그런 비뚤어진, 무늬(pose)만 보수주의와 진정한 보수주의를 정말로 구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드 메스트르와 보날은 프랑스혁명에 의해 기존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을 일단 경험하고, 그 과정을 견디면서 실재하는 것으로서 ‘민족’과 ‘역사’에 의거하려 든 것인데요, 이것들이 그들이 바라는 바를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때까지 가톨릭의 정통파 신학에는 없었던 개념을 가톨릭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니까, 꽤 수상쩍습니다. 그들도 가톨릭교회의 이미지를 자기네 사상에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접한 보수의 대표적인 전형으로서의 정치적 낭만주의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가톨릭 보수주의를 구출해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좌파 혹은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과 ‘역사’의 초월적 실재성을 실체적으로 믿는 것도, 놀이에 이용하는 것도, 근대화에 저항하려는 반동적 사고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아니냐고 보이지만, 슈미트는 정말로 질서를 회복하려면 불순한 요소를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기에 설령 ‘적’의 입장에 있을 법한 맑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정치’의 본질 ― 다음 번 강의와 그 다음 번 강의에서 읽는 『정치신학』에서는 그가 ‘정치’와 ‘신학’의 구조적 유사성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에 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면, 즉 ‘정치’를 지배하는 신학적 논리야말로 자신들이 분쇄해야 할 최종 표적(target)이라고 짐작했다면, 그것은 제대로 평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프루동(1809-65), 바쿠닌(1814-76), 소렐을 뜻밖일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등장을 사상사적으로 중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