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목소리 듣기




 

가게모토 츠요시

 



 


하라구치 다케시 <외침의 도시>(라쿠호쿠 출판, 2016)

(원서명原口剛びの都市洛北出版, 2016, 410(사진 다수), 2400)



1. '가마가사키'라는 공간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책 제목은 '외침'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확실한 외침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들리지는 않는다. 도시는 철저히 외치지 못하게 개조되었고, 과거 외침들은 마치 속삭임처럼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듣고야 비로소 외침은 외침으로서 들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일본 최대의 인력시장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 지역의 역사를 지리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부각시킨 것이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을 지탱한 것이 일용직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고령이 되어서 가마가사키는 현재 고령 남성들이 많은 동네가 되었다. 그러나 일용직 노동이 없어진 것이 아니며, 현재 노동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간다. 이는 매일 새롭게 공급되는 후쿠시마 원전 수습 '작업원'들의 존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 역시 예전의 일용직 노동자가 그랬듯이 '노동자'로 불리지 않았으며, '작업원'이라 불린다(201611월 단계 신문보도를 보면 최전선에서 외국인도 일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우리는 이제 물리적인 '인력시장'에 갈 필요가 없어진 시대에 있는 것이다. 현재 가마가가키는 비교적으로 싼 값의 숙소(원래 일용직 노동자가 살던 숙소)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들기도 한다. 행정적으로는 이미 '가마가사키'라는 용어는 쓰지 않게 되었는데, '가마가사키'라는 명칭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행정적인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이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공문서와 주민들이 다른 지명을 쓴다는 것인데, 이는 통치자와 통치받는 자들의 비대칭적 관계를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113). 비교적으로 오사카 도시부에 가깝다는 점과 오사카시의 노숙자 배제의 움직임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말한다면 일본 역사 속에서 최하층의 사람들이 살아온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물론 그곳으로 온 조선인들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이기에 몇 번이나 폭동이 일어났으며, 그 폭동을 통해 여러 권리를 획득하기도 해왔고, 동시에 폭동을 통한 인간관계 형성술을 만들어낸 지역이다.


필자인 하라구치 다케시는 이 가마가사키에서 현지조사를 하면서 2008년의 폭동에 조우하며, 그 현장에서 "과거에서의 목소리"(21)를 듣게 된다. "우리는 이미 가마가사키적 상황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가마가사키의 기억을 상실하는 것은 현재에 대한 시좌를 획득하기 위한 실마리를 놓쳐버리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가마가사키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재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30) 이것이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필자가 지리학자로서 완성시킨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 책은 역사나 지리를 바라볼 시점으로 항상 '현재'와의 관련을 맺으려 한다. 그만큼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이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넘어, 아예 과거의 기억을 없애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단순한 평면적인 지리학이 아니라 (폭동에서의 투석이 바로 그것이었듯이) 아스팔트를 떼어벗기고, 흉각에 의지하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역사기술과 함께 '지리'공간을 쓰겠다고 말한다. "공간을 '움직인다'"(32)라는 선언과 비슷한 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당해 가는 현재 지리파악에 대한 비판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한 최대한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가마가사키/오사카 항 이주노동자들의 흐름

 

필자는 우선 가마가사키로 들어가기 전에, 커다란 일용직 노동자의 인력시장이 오사카에 만들어져야 했던 이유인 오사카 항의 항만노동자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한다. 필자는 가마가사키의 외부에 있는 오사카 항을 통해 "항만지역에서 가마가사키에 걸쳐 연결된 도시 하층노동의 지리가 부각된다. 이러한 관계성에서 가마가사키라는 공간은 이해되어야 한다"(73)고 말한다. 이 공간을 유동하는 노동자들은 '근본적 법외성(法外性)'(76)에 노출되어 있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미국 점령기 GHQ의 행정에서는 함바(飯場)제도 등을 없애는 '민주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침이 내세워지기는 했는데, 한국전쟁 때문에 일본이 군사적 '특수(特需)''은혜'를 받아 다시 노동자 공급에 관련된 규제가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본에서의 함바제도가 존속하도록 만들었다는 지적은 한국이라는 맥락을 읽어내려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근대 함바제도를 지탱한 노동자들은 오키나와, 아이누, 조선 등 몸밖에 팔 수 있는 것이 없어진 유동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로 가마가사키의 노동자는 결코 '일본인'만이 아니며, 일본에서도 못사는 지역 출신의 사람이 많다. 이를 잘 보여준 다큐영화로 김임만 감독의 <가마가사키 권리 찾기>(2011)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가마가사키의 재일조선인 노동자가 등장한다. 어쨌든 가마가사키는 이민노동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것이다. 즉 정착하는 '노동자'와는 아예 다른 성격을 가지는 유동적인 '노동자'(어떤 의미로 그들은 '노동자'로 불리지도 않았으며, '노동자'들에게 차별을 받기도 했다)이었던 것이다(이 책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세계에서는 조선어에서 나온 용어가 있다는 것이 몇 번 제시되는데, 한국의 '노가다''함바'가 일본어에서 온 것처럼 하층노동자들의 용어는 자본가들보다 국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마가사키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국가와 자본의 모순을 온몸으로 짊어지는"(98) 존재인 것이다.


항만 노동자들은 1962327일에 파업을 수행했다. 이 때 파업은 전 태평양적으로 벌어진 것이었다. 오키나와(당시 일본이 아니었다), 미국, 케네다, 하와이,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소련 등에서 동맹 파업이 수행되었으며, 일주일에 걸쳐 일본선적의 선박에 대한 일제의 작업을 중단되었다. 이는 일본에서의 항만노동법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174-7). 그런데 이 때 오사카 항 파업의 중심이 된 노동자는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라 정규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동시기에 일어나던 가마가사키의 폭동은 보이지 않았다(185). 그런데 이 항만노동자들은 가마가사키의 일용직 노동자를 조직하려 나서며 다양한 투쟁을 벌인다. 거기에서 획득하는 것은, 일용직노동자들에게 부여될 여름과 겨울의 일시적 수당인 '소면 값''떡 값'이다. 이들 노조활동가들은 계획된 의식적 운동을 지향했으나, 경찰의 눈에는 운동과 폭동을 구별할 수 없었다. 물론 정규직 노동을 바탕으로 하며, 의회투쟁 같은 것도 하던 항만노동자들의 운동은 정확히 운동이며, 폭동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방법은 폭동에서도 사용이 되었다. 이러한 연결이 만들어진 전제로 가마가사키와 오사카 항을 왔다갔다하던 일용직노동자의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60년대 말부터의 항구 컨테이너화는 그들의 일터를 잃게 만들었으며, 일용직노동자들은 건설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80년대부터의 오사카 항 재개발은 이러한 일용직 노동자들의 기억을 망각해 가는 과정이었으며, 기억은 정리된다(그 상징 가운데 하나가 오사카항 부근에 있는 '가이유칸海遊館'이라는 수족관이다). 그렇지 않은 시각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3. '사회문제'와 도시개조 폭동의 이면

 

가마가사키는 계속 '사회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이 '사회문제'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폭동이 있어야 했다. 필자인 하라구치는 폭동은 '사회문제'를 부상시켰지만 동시에 '사회문제에 대한 처치'로는 봉합될 수 없는 별개의 힘을 가졌으며,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가마가사키=슬럼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담론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이미지를 통해 그 지역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방법으로 '사회문제''사회병리'라는 개념이 동원되었다. 즉 이들 개념이 보여주듯이 오사카시는 가마가사키 문제를 '외과수술'(142)과 같은 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놀랍게도 1966년에는 이 지역을 담당하는 '니시나리 경찰서'(활동가가 만든 폭동 기록영화 등을 보면 니시나리 경찰서는 '국영 조폭 니시나리 경찰서'라는 매우 적합한 나레이션이 나온다)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147). 이렇게 가마가사키는 사회문제가 있는 지역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권력은 이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무엇인가가 만들어지는 것에 경계하며 봉쇄하려고 한 것이다(148). 이 과정에서 가마가사키에서 살던 가족형태의 거주자들이 주변부로 이사하게 되어, 지역에 아이가 없어지고 단신노동자들의 지역이 되었다(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의 걸작 <자린코 치에じゃりんこチエ>는 가마가사키에 아이들이 있던 무렵이 잘 그려져 있다. 유튜브에서도 몇 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생긴 것이 직업 소개소인 '아이린 종합센터'이다. '아이린'은 한자로 쓰면 愛隣(사랑의 이웃)이다. 행정이 가마가사키에 부여한 이름은 매우 끔찍한 것이며, 가마가사키를 어떻게 개조하려 바라보는지 잘 보이는 이름이다. 때는 마침 오사카 만국박람회로 인한 건설 붐이었다. 국가도 일용직노동자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그만큼 강제적인 공간개조를 해야 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 벌어진 투쟁은 격렬한 것이었다. 이를 필자는 앙리 루페블의 <도시로의 권리>에서 나오는 <도시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무리()가 무리를 불러올 중심성'이었다(165).

 

4. 유동적 하층노동자들의 폭동

 

인력시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의 폭동은 무질서적이면서도 일정한 리듬을 갖춘, 만 단위의 신체의 집단적 유동이었다(208). 폭동은 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가마가사키의 폭동은 1961년에 1, 62년에 2, 66년에 4, 67년에 1, 70년에 1, 71년에 3, 72년에 7, 73년에 2, 90년에 1, 92년에 1, 2008년에 1번 일어났다(221). 최초의 폭동은 차별 대응을 하는 경찰에 대한 항의 행동이 실마리가 되어 시작했다. 왜 그러한 집단적인 연결이 가능했냐면, 가마가사키의 노동자들에게는 '에고이즘''공생'의 마음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모든 권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에고이즘이며, 자신과 관련된 타인과의 강렬한 공생이라는 의미이다. 일용직노동자들은 서로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다는 것도, 관계성 만들기의 규범인 것이다(226-7). 그런데 그들은 가마가사키라는 '지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동네 전체가 부엌이자 사랑방이자 사교하는 우물가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에고이스트이면서 집단적인 노동자가   있는 폭동의 심성인 것이다(228).


이 점에 관해서 항만노동자의 노조는 폭동을 억지하는 역할로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의회투쟁을 통해(노조에서 의원을 선출하고 있었다) 행정에게 문제를 알리고 행정을 통해 폭동의 원인을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노조의 시선은 여러 권리를 획득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의의를 가지지만 이와 다른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노조와 <폭력 수배사 추방 가마가사키 공투회의(가마 공투)>의 노선대립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대립의 원인은 월등투쟁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노조는 그것은 행정에게 시켜야 할 것이라 소극적이었는데, 가마 공투는 그렇지 않았다. 가마 공투는 '노조는 폭동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반란을 권력으로까지 올릴 수 없다'고 비판을 한 것이다. 이때 가마 공투는 '노무자'라는 용어를 다시 획득한다. '노동자'라는 용어는 노조 때문에 더럽혔다고 말하면서 차별용어인 '노무자'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가마 공투 활동가들도 참여한 <노무자 도세(労務者渡世)>라는 잡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노동자라는 말과 노무자라는 말을 따로 쓰는 세상일반의 차별감정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차별받는 자의 반항, 반란의 자유는 확보한다, 라는 것이다."<노무자 도세>, 1975. (242쪽에서 재인용)

 

여기에서 그들이 잡아낸 '노무자'라는 말은 '피식민적 상황'이 함의되어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일반과 노무자의 적대성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이로써 그들은 노무자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도쿄나 오사카의 인력시장을 자유롭게 드나든 활동가였으며, 그리고 오키나와 미군 기지 앞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워 분신자살한 후나모토 슈지(船本洲治)가 노무자를 "유동적 하층 노동자"라고 규정했다. 이 용어는 인력시장을 단순이 하나의 지역으로써 이해하는 것을 거절했다. 다양한 여러 인력시장과 연결된 노무자들의 흐름(폭동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중심이 된 폭동은 파괴가 아니라 다채로운 실천을 가능케 할 정치적 공간을 만든 창조적인 것이였다. 우익에 의해 살해된 인력시장 활동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야마오카 교이치(山岡強一)의 다큐영화<야마 당하면 복수하라>(1985)는 일본 곳곳의 장면이 나온다. 그 중 하나인 규슈의 탄광은 일본의 에너지 정책 전환 때문에 이동하는 노동자를 많이 산출했다. 그러한 노동자들은 도시의 공장으로 정착하지 않았으며, 인력시장에 모였다. 인력시장에 모인 노동자들은 '유동적 하층 노동자'이었다.


그들은 행정의 눈에는 노동자성을 상실한 자들이며, 시민사회의 '병리'로 보일 것이지만 그들의 '일탈'은 자율적인 '일탈'인 것이다(370). 그 흐름을 2000년대 이후의 노숙자배제 반대운동으로 연결시킨 것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부기. 이 글을 쓰는 중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아사히 신문>에 실렸다. '누구도 번역해주지 않을 책'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글의 대상이 천하의 부르주아 신문<아사히 신문>에 실리다니, 약간 이 연재 글의 성질을 애매하게 만든 것이기도 하고 아뿔싸,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의 서평자는 이 책의 현대성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아마 책을 진지하게 보지 않는 채 쓴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할 의미는 나름 있을 것이다. 매우 현대적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실제로 번역될 가능성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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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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