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지음, 그래, 엄마야, (오월의 봄)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저 언니야. 너랑 같이 수업 할 학생 중 한명, 가서 인사해.”

 

2015년 4월 20일, 국가가 붙이는 이름은 ‘장애인의 날’, 장애 운동계에서 붙인 이름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바로 그날이었다. 야학에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낮 수업 교사로 처음 결합하는 날이 바로 이날이었기에 나는 거리 집회에서 학생을 처음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만났다고 할 수 없었다. 본래 친분이 있던 K 언니가 멀리 있던 학생 한분을 가리키며 알려주었지만 나는 다가가 인사한마디 건네지 못했었다. 멀리서 마주친 눈길에 불현 듯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들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고, 만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에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발달장애인이라는 낯선 존재들

 


발달장애인에 관해 ‘알 수 없다’는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2015년의 그날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온 나로서도 사실 여전히 발달장애인에 관한 무지의 벽에 종종 부딪히고 만다. 우리는 무지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알아보려고 노력하거나, 모르는 채로 살거나, 없는 셈 치거나. 이 방법들에 있어서도 또 다시 무수한 갈래의 방법과 그 방법을 택한 이유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가 발달장애인인 가족 안에서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2016년에 출간된 <그래, 엄마야>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한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혹은 서른 살 언저리인 내 또래의 이들에게 익숙한) 발달장애인 엄마는 배우 김미숙이 연기한 ‘초원’의 어머니일 것이다. 개봉 당시 5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말아톤>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주인공 ‘초원’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이야기이다. 조승우가 연기한 ‘초원’의 옆에서 그를 돌보고 다그치는 가족 내의 유일한 사람은 엄마였다. 결국 ‘백만불 짜리 다리’의 초원과 독한 엄마의 성장 스토리는 초원의 마라톤 완주로 인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 이 영화가 모든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을 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책에도 그러한 성장은 있지만, 실패와 후퇴, 도돌이표가 공존하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의 현실적인 이야기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발달장애는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포함한 장애 범주다. 신체나 운동기능 측면에서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의 경우 우리는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대체로 구별해낼 수 있는 반면 발당장애는 다르다. 발달장애는 그들과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난점이 발생한다.

 

“우리 아이들의 ‘이상한 점’이란 다름 아닌, 다른 문법을 갖고 태어났다는 점이거든요. 인간으로서, 생명으로서는 차별 없는 똑같은 존재이지만, 인간이 만들어가고 있는 사회의 문법은 무척 익히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발달장애인들입니다.”(18)

 

의사소통에 있어서 개별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발달장애인이라고 했을 때, 이들의 의사소통과 의사 결정뿐만 아니라 교육환경과 노동 등에 있어서도 개별적인 지원이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립에 관하여

 

한국에 등록된 발달장애인 숫자만 해도 약 2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양육 및 돌봄 책임이 어머니에게로 집중된다.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이나 직업훈련 센터가 미비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보조서비스조차 제대로 제공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삶을 둘러싼 힘겨움은 고스란히 가족,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혼자 갇혀 살았을 때가 있었어요. 멀쩡한 아이를…… 나한테는 ‘멀쩡한’아이잖아요. 물론 소통할 때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는 해도 그런 일은 비장애 아이들한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아이들도 자기가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할 거잖아요. 그런데 내 아이가 남들에게는 그냥 ‘아이’가 아니에요. 아이면서 아이 노릇을 못하는 거죠.”(186)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고립만이 전부는 아니다. 가족 내에서의 고립 또한 존재한다. 남편이 아이의 장애 정도나 상태에 무심한 경우도 있고, 시댁에서 아이의 장애를 감추도록 입단속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녀의 발달장애를 가장 ‘잘 아는’ 엄마의 역할은 풍선처럼 부풀려진다. 필요한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아이를 이동 지원하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알아보고, 그를 신청하는 서류작업을 하고, 자녀의 가까이에서 이런저런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모두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부풀려진 역할에도 엄마들의 노력은 폄하되고, 죄책감까지 뒤집어쓰게 된다.

 

“여성이 육아를 담당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대개 그 책임을 엄마에게 돌린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아우르는 발달장애의 경우에는 양육자인 엄마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특히 강하다. …(중략)… 지적장애의 경우에도 엄마가 현명하게 육아를 하고 조기에 발견했다면 장애를 막지는 못해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신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더욱 자기 비난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렇게 여성에게 전가된 양육의 책임 앞에서 죄책감은 엄마들의 서사가 되었다.”(51-52)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방관과 가족의 무관심 그리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이용되는 엄마의 죄책감이 맞물려, 고립의 벽은 견고해진다.

 

 

“발달장애인을 둔 엄마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다고 해서 고립된 이들의 삶을 응원하고, 치유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알 수 없음’의 세계에 뚝 떨어져, 자녀와 서로 이해하고 소통했던 이들의 경험을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조차 대부분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낳고서야 이 ‘알 수 없음’의 세계에 뚝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야 그들은 발달 장애가 무엇인지, 자폐는 무엇인지 배워간다. 그리고 자녀와 소통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일상의 막막함을 헤쳐 나간다. 부모연대 활동도 하고, 학교도 찾아가고, 울부짖으며 머리를 밀기도 한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생생한 경험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발달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이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거기에서부터 발달장애에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지 그 사회적 조건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볼 수 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더 이상 고립되지 않게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장애인 시설의 거주인 중 70% 이상이 발달장애인이다. 먹고 자고 티비 보는 것으로 이루어진, 모든 욕망이 거세당하는 시설의 삶 속으로 발달장애인이 밀어 넣어진 것은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 맺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방증이 된다.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탈시설에 관한 지원과 제도의 미비함 또한 이와 맞물린다. 발달장애인에 관한 문제는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은 발달장애인을 그저 나와는 관계없는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의 책임으로 이들을 욱여넣음으로써만 지속될 수 있다. 그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들’에 대해 ‘알 수 없다’는 태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책을 시작점으로 삼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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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운동의 기록과 당사자성

- 제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토크쇼 “기록의 후예들” 발표 자료집

반다, “장애운동 기록과 영상 언어와 문자언어&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4월은 1981년에 지정된 ‘장애인의 날(20일)’이 있는 달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특별한 날을 지정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기뻐할 수가 없게 된다. 4월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국가와 지자체의 장애인 격려(?)행사는 장애인을 들러리로 세운 채 내빈용 행사가 되었고, 각종 매체들에서는 장애인의 고단한 삶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번 달만은 혹은 오늘 하루 만은 장애인의 삶을 돌아보기를 종용하고 이내 시선을 거둔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바로 이러한 장애에 대한 시선에 문제제기를 한다. 장애와 인권에 관한 영화들, 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영화들을 기획하고 관련 행사들을 꾸려 장애인의 삶과 문제에 대해 알리고, 차별적 시선에 대한 고발을 담은 영화제를 올해는 4월 20일부터 4일간 개최한 것이다. 그 부대행사로 마련된 “장애운동과 기록 토크쇼 : 기록의 후예들”이라는 토크쇼는 장애운동의 기록에 관한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이었다.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의 활동가 유해정의 사회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박종필 과 반다, 비마이너의 편집장인 하금철과 발행인인 김도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인 이정훈,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 홍은전이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장애는 어떻게 기록되는가?

 


작년에 야학에서 한 사업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말미에 보고서 작업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발달장애인분들과 주간 수업을 하면서 학생·교사를 인터뷰하고 기록하여 보고서에 실릴 자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몇 개월간 있었던 방대한 일들을 마지막으로 갈무리하면서 기록 한다는 일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억 속에 있는 사건들을 언어로 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정리되지 않았던 일들을 곱씹고 추스르게 하여 나름대로 그 사건에 대한 견해와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매듭짓기라는 차원에서 기록은 그 결과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있던 일들을 모아 의미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운동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반다는 특히 영상작업에서의 기록이 가지는 문제의식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지금도 많은 다큐가 그렇듯 장애인의 차별과 억압 현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영상을 본 관객은 ‘아니, 세상에 저런 일이’라든가, ‘저렇게 까지 차별을 하다니’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기록의 후예들 자료집, 12쪽)

 

다큐멘터리감독 반다는 장애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차별받는 장애현실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 있는 사회에서 차별은 눈에 띄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필름들은 자연히 차별의 현실을 극대화해 잘 묘사하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다는 장애인으로 정체화 되는 개인들이 다시금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고된 장애인의 이미지”에 가두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당사자의 주체성과 역동성, 개인으로서의 특이성들이 사회적 문제라는 큰 틀로 치환되면서 지워져버릴 우려의 목소리인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당사자성을 드러내려는 노력들이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장애인을 차별 현실의 피해자 이미지로 강하게 고정하게 되는 효과라든가, 늘 투쟁만 하며 사는 장애인과 집이나 시설에서 무력하게 사는 장애인 둘 중에 하나의 이미지로 양분시켜 버리는 효과 같은 것.”(12)

 


기록의 당사자성 문제, 당사자는 누구인가?


 

반다는 그러한 차원에서 당사자가 만드는 영상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실제로 반다 감독은 영상 제작 경험이 없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장애인미디어교육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당시 수료작들은 당사자의 입장과 감수성을 전달할만한 수작이 종종 발견되는 장이 되었다고 한다.

 

“주된 내용은 기존 미디어가 그리는 장애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당사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영상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권 감수성을 새롭게 확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는 ‘권력(내 말을 들어!)’을 가지고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한다.”(12)

 

토크쇼 중간에 위 인용문에도 실려 있는 것처럼 영상 매체라는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소수자의 목소리와 현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영상은 당사자에게 권력을 쥐어준다는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영상을 관람하는 자의 시간을 점유하면서 동시에 당사자의 시각을 내면화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의 영상은 장애인권 감수성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통로가 된다.

 

그런데 당사자성이 실제로 당사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이야기 된다면 이는 오히려 감수성 확장의 계기를 좁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참여자 개인별 발표 시간이 짧고, 원고의 양도 많지 않기 때문에 더 논의되지 않은 지점이기에 조심스럽지만, 당사자성이 어떻게 이해되느냐에 따라서 반다의 논의는 많은 가능성들을 지워버릴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진보평론』 67호에 실린 가케모토 츠요시의 논의를 덧붙임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사건의 당사자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다루는 그의 글에서 조금은 확장된 당사자성을 표명한다.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를 한없이 좁혀 들어가면, 실제로 위안부라는 발상을 하고 실현했던 일본군과 당시의 국가, 위안부로 끌려간 당시 여성들과 그를 중간에서 연계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당사자를 좁히는 순간 사과와 문제 해결은 상당히 제한된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가케모토 츠요시는 위안부문제에 다가서는 좁은 의미에서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로 “빠질 수 없다는 별개의 당사자성”(진보평론, 132쪽)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운동과 접속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별개의 당사자성은 각자 이 운동에 왜 접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아내면서 가지게 되는 정체성이다. 이러한 이유는 자신이 각자 처한 조건이나 견해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며, 그러한 다양성을 기반으로 운동이 꾸려질 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 해결 방안이 다층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를 장애 운동 기록의 당사자성과 연결시켜본다면 우리는 운동으로서의 기록이 우리의 어떤 당사자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당일 토크쇼에 참석했던 자들 모두 별개의 당사자성을 담보하고 있는 한에서의 작업들을 꾸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할 지점은 장애 당사자의 삶을 상상하는 힘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어떤 상상력이 무리하게 누군가의 삶을 다 안다는 태도로 치환되지 않도록 점검하는 세심한 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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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노동의 불편한 동거

-김도현,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시민인가”, <창작과 비평>, 171호, 2016년 봄호-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지난 해, 우리는 지탄받아 마땅한 두 장소를 방문했었다. 서울대학교병원 그리고 삼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이 두 곳에 면담서를 들고 찾아갔었다. 장애인의무고용률(이하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대병원은 공공기관 의무고용률 3%를 지키지 않아 2014년 20억에 가까운 고용부담금을 냈고, 삼성은 장애인 고용률이 재작년 기준 1.89%로 민간기업 의무고용률인 2.7%에 미치지 못한 데다가 가장 의무고용률을 안 지킨 민간기업 1위를 차지하기까지했다.[각주:1]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면담 요청서를 내밀었지만, 서울대병원 원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고, 삼성은 인사과장 대신 경호실 사람들을 잔뜩 내보내 문과 귀를 틀어막았다. 삼성의 2014년 고용부담금은 185억, 듣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에 ‘저걸 내느니 사람을 쓰는 게 덜 아깝지.’하는 순진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다가 ‘유연성’이라는 단어가 퍼뜩 떠오르면서 잡생각들을 압도했다. ‘효율’! 못지않게 압도적인 단어다. 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자신들은 법적 의무를 다 했다는 것.' 그건 사실이었다.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으니 그에 합당한 부담금(사실은 부담금이라는 말도 기만적이다.)을 낸 것이다. 이들의 이런 태도 뒤에 무슨 뜻이 숨어있는지 우리는 안다. 사회적 책임을 직접 지기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태, 이러한 태도들의 기저에 유연성과 효율성의 파도가 너울거리고 있다.



비(非)시민으로서의 장애인


이 두 곳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재계 서열 30대 기업의 평균 의무고용률은 1.93%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2015년 낸 부담금만 해도 천억이 넘는다. 이제 확실히 알겠다. 그들은 장애인을 고용할 생각이 별로 없다. 물론 30대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들이 기업활동의 선두에서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국면을 형성하는 주체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의무고용률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장애인 노동의 척박한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사진출처 : 비마이너



김도현은 장애와 노동을 붙이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에 대해 ‘장애’개념의 형성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할 수 있는 사람과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의 구분.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장애의 개념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시민으로서 존재하는 세계, 즉 문명화된(civilized)세계에서 장애인이란 정확히 시민권(citizenship)―시민의 자격 내지 신분―으로부터 배제된 자들”(426)로 인격(personhood)의 존재 여부를 통해 형성된 범주인 것이다. 이들은 온전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이하의 존재, 즉 “을 이하의 인간”으로 필자는 이름 붙인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인간의 자격’으로부터 분리하는 기준은 바로 노동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며, 인간은 ‘이성(理性)’적인 동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 그리하여 일정한 연령이 되어서도 노동을 하지 않는 자는, 그리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자는 인간/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 현대 사회는 시민권 자체가 노동하는 자를 근간으로 구축되어 왔을 뿐 아니라, 사회계약론적 전통에서 이성적 사고능력을 지니지 못한 자들은 ‘계약-권리-정의’의 주체에서 원천적으로 삭제되어 왔다.”(427)


이러한 구분은 자본주의 형성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위 본원적 축적 이후시기에 대거 양산된 부랑자들 속에서 임노동의 관계 안으로 사람들을 포획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이 불가능한 사람과 노동이 가능하면서 태만한 사람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전자의 사람들을 일컫는 ‘장애인(disabled people)’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 필자는 이 장애라는 범주 형성의 과정이 당시 ‘노동’의 개념이 정치·경제적으로 새롭게 구성되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노동에 대해 물음표를 붙인다. 노동을 재구성함으로써 장애인을 시민화 하는 일이 필요하며, 이는 노동이 생산하는 가치 또한 재구성될 때에야 가능하다고 말이다. 어떤 가치인가? 또 어떤 노동인가?



노동연계복지의 좌파적 전유


2007년 같은 저자의 책,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각주:2]의 2부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을 다룬다. 여기서 ‘고용할당제도’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검토한 김도현은 미래를 위한 어떤 단절의 지점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해당 챕터를 마무리 짓는다. ‘고용할당제도’는 정부 차원의 재원이 마련되지 않고 기업의 차원에서 부담하도록 되어 있어 지속성이 담보되기 어려우며, 실제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을 경우 부담하게 되는 부담금이 장애인 한명을 고용하는 것 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에 제재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어떤가? 2015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의 고용에 관한 적극적인 규제나 시정명령을 구사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고용에 있어서 대놓고 ‘장애인은 제외’라고 공고를 내는 기업은 드물다. ‘대졸자’, 면접, 공인영어시험성적 등 공정해 보이는 장치와 갖은 분할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저들’이 걸러지도록 덫을 놓을 뿐이다.






책의 말미에서 신자유주의적 노동연계복지workfare를 비판하던 김도현은 이 논문에서 해당 개념의 좌파적 전유를 시도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형태는 바로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이다. 기존의 노동연계복지가 가지는 한계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지 못할 수준의 대가와 국가가 제시하는 활동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생긴다. ‘공공시민노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으로서 노동할 권리와 의무에 기반 하여 공적인 개입을 끌어내야 한다. 그 원칙은 급여의 수준을 전체 상용노동자의 평균임금 50% 선(2014년 기준 약 165만원)에서 정하고, 어떠한 활동을 정할 것인지는 시민사회와 개인으로부터 신청 받고,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일자리를 심의하도록 함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대안은 기존의 노동 혹은 일자리가 규정되는 방식 자체를 의문에 붙이며, 노동이 생산해내는 가치 개념 또한 새롭게 정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시민권을 새로운 지평에서 재구성해낼 수 있는 시도라고 저자는 기대한다.





시종일관 저자는 노동이라는 개념, 가치라는 개념이 역사적 형성물임을 강조한다. 아마포가 화폐로 전화하는 눈부신 마법의 순간이 우리를 자본주의적 교환이 지배하는 삶으로 인도하였듯, 그 반대의 전화 또한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임금이 동일하게 고정되고, 새로운 가치들이 마구 펼쳐지는 사태 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운동이 구성되어야 하나? 한편 수급권을 가지고 있는 한 장애인이 활동가 자리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일해서 버는 만큼 수급비가 깎이는 정확한 계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노동자 혹은 수급자의 자리 중 선택하는 일로 볼 수 있는가? 노동의지를 잘라내는 장치들이 현재적 노동이라는 개념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애인과 노동권에 관해 고려해야 하는 지점은 생각보다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다른 노동을 통해 다른 가치를 생산하는 일,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노동 하는 일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삶에 관한 것일 거다. 그러한 대안은 있을까? 그러한 대안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더이상 노동이라고 칭할 필요가 남아 있는 것일까?



  1. “재계 1위 삼성, “일하고 싶다” 장애인 외침 외면”, 2015-07-09, 비마이너.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8554&thread=04r07 [본문으로]
  2.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메이데이, 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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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장애인야학에서 신임교사로 활동하기로 한 필자는 <장애, 그리고...>를 통해 장애의 지금을 지도로 그리며 장애의 다음을 상상해 보려 한다. 이 코너를 통해 장애에 관한 책을 넓게 읽고 글로 옮기며, 앎과 활동 그리고 삶이 함께 가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노들장애인야학의 20년, 그리고...

홍은전, 『노란들판의 꿈』(봄날의 책,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개정판 )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나는 올해 초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신임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2년 총파업 집회에서 노들을 처음 만난 후 작은 인연들이 무수히, 꽤나 긴 시간동안 이어져 왔고, 그 결과로서 또는 하나의 새로운 시작점으로서 여기에 서 있게 된 것이다. 노들야학에서 신임교사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정규수업에 참관도 하고 수업 보조도 하고 각종 투쟁 현장에도 결합한다. 이러한 과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노들야학에 대하여 선행학습을 하기로 한다. 그 교재는 노들야학의 20주년을 기념해 교사 홍은전이 쓴 책『노란들판의 꿈』[각주:1]이다. 홍은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노들 생활 10년 소감을 간추린다.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이 깜빡거리는 형광등을 갈고 사라진 걸레를 찾아 돌아다니듯 사소할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웃을 일이 더 많았으니 충분히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구판『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17)

 

어떠한 사소함이 모여 20년이라는 시간을 쌓아낸 것일까? 왜 그는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곱씹는 것일까? 책 제목을 보면 수업을 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지의 접속사가 붙어있다. 결국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떤 의지가 필요한 일일까? 이 글은 질문들을 나름대로 갈무리하고 선행학습의 결과 보고를 위해서 쓰려 한다.

 



매일 오후 5시, 노들의 정규수업

 


노들야학은 일단 정말 학교다. 애초에 야학이 만들어지던 1993년, 장애인 작업장이었던 정립전자의 노동자들 중 ‘못배운 한’을 풀어보고자 하는 이들을 모아 공부도 하고 장애 대중의 기반을 조직하기 위해 야학을 구성했다고 한다. 70~80년대 학교는 장애인을 학생으로 잘 받아주지 않았다. 친구나 동생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부러워만했던 것. 노들야학은 이러한 배움의 기갈을 축이기 위해 검정고시를 대비한 과목들을 공부했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는 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고 한다. 이때의 야학은 밤 야(夜)자를 썼다.

 

“‘노들야학 학생모집’이라는 광고가 내 눈에는 유난히 커 보였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기쁜 마음으로 중학교 검정고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였고 일요일 외에는 노는 시간을 없앴다. 그래도 어떤 날은 한두 장 보다가 엉망이 되어 기숙사로 돌아가 자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책을 펴자마자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45)

 

지금도 야학의 정규수업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저녁에 이루어진다. 정규 과목으로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세부 주제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과학, 역사 등이 꾸려져 있다. 목요일에는 미술, 음악, 방송 등 특활반을 정해 한 학기를 활동한다. 야학의 학생들은 기초문해반인 청솔1반부터 고등과정인 한소리반에 이르기까지 분반이 되어 각 반의 커뮤니티를 꾸리고, 담임도 있다. 근 2년 전부터는 급식도 시작 되었다. 정규수업은 노들이 학교로서 가지는 정체성을 단단히 해 주는 역할과 일상을 꾸리고 점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2015 노란 들판의 꿈, 니(you), 나(me), 노(노란들판)"

미술반 학생들의 전시


국어 2반 수업시간

출처 : 모두 노들야학 홈페이지 사진갤러리(http://nodl.or.kr)



다만 수업은 그 틀을 넘쳐흐르거나 미처 채우지 못한 채 와해되기도 하는 일 또한 왕왕 벌어지곤 한다. 어떤 때의 학생들은 종종 ‘이제 그만 끝내자~’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기도 하고, 저녁식사 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졸음에 빠져들기도 한다. 교재가 따로 없이 진행하는 반의 교사는 ‘오늘은 뭘 하냐?’며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학생 개개인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었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손으로 쓰기가 안 되었고, 어떤 이는 소리 내어 읽기가 안 되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집에 가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숙제도 하기 어려웠다. 야학에서 가장 의욕 넘치는 교사들이 달라붙었는데도 1년이 지나도록 ‘가’에서 ‘하’까지를 도달하지 못했다. 몇 년을 씨름해야 겨우 유치원생 수준의 교육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속도가 더딘 것은 당연했다. ……(중략)…… 30년에 걸쳤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니 극심한 성장통이 따랐고 교실은 짜증, 히스테리, 눈물바람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231-232)

 

사실 그렇지 않을까. 어떤 학교든 학생들은 원래 다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각기 다른 그들을 놓고 통일된 방식으로 배우게 하는 것은 원래부터 틀린 일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어떤 학생이 ‘ㄱ, ㄴ’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학생 전체의 삶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이치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공부하기 위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 것인지 살피고, 충분히 기다리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노들의 공부 방식인 것이다. 검정고시를 공부하기 위해 따로 낮에 시간을 더 들여 개인교습을 받기도 하고, 덧셈·뺄셈 보다는 시계 보는 법을 먼저 익히기도 한다. 한글을 먼저 배우기보다 위기 시에 필요한 구급약의 이름을 외는 것, 노래 한곡을 통으로 배우기보다는 한 시간에 한 구절씩을 정확히 알도록 써보고 읽어보고 노래하는 법. 학생들의 다름에 맞게 다르게 공부하는 법이다. 큰 틀은 있되, 그 안을 채우는 것은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이것이 노들의 정규수업이다.

 

 

이것은 왜 수업이 아니란 말인가, 노들의 비정규 수업

 


그동안 노들은 행동 반경을 넓혀왔고 그에 따라 ‘비정규수업’도 늘어났다. 애초에 장애 대중을 결집하려던 의도로 만들어진 야학은 그 설립 취지를 잊지 않고 움직여 왔던 셈이다. 책에서 최초에 노들에 뼈를 묻겠다는 자로 등장하는 백발교장 박경석 선생님은 언제나 ‘비정규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한다. 이 비정규수업이란 바로 투쟁이다. “야학은 장애인의 학력을 높여서 차별을 가리는 데에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저항의 가치를 실천하는 공간”(78)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 해방의 참 세상”,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너와 나의 해방이라는 큰 목표 하에, 이동권 투쟁과 자립생활운동, 활동보조서비스투쟁,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등 세세한 목표와 방식으로 운동이 일어났다. 차별받는 당사자들의 입에서 투쟁의 구호들이 흘러 나왔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재기 넘치고 발랄하게 그리고 숨 쉬듯이 매일매일.

 




“2001년 이후 시간은 참으로 역동적으로 흘렀다.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장애인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외침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2003년에는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부모들의 폭발적인 투쟁이 시작되었고, 2004년에는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점거 농성이 231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2006년에는 수용시설이었던 성람재단의 비리를 해결하라고 종로구청 앞에서 153일 동안 농성을 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하라고 농성에 농성을 거듭하였고, 무시로 집회를 하고, 도로를 막고, 단상을 점거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고, 문화제를 열었다.”

(131)

 

이처럼 노들의 비정규 수업은 정규 수업과는 등을 맞댄 한 쌍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투쟁이 매일매일인 것은, 실제로 이들의 삶 자체가 크고 작은 문턱들에 턱턱 걸리는 삶이었음을 방증할 따름이다. 이것은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일상을 얻어내겠다는 투쟁이다.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로 얻어낸 무수한 결과들, 저상 버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활동보조시간 증대, 교육 공간 확보 등은 다른 싸움이 시작될 수 있는 힘, 싸움을 지속하고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으며, 당사자의 운동을 통해 권리를 획득해 냈다는 자부심을 주는 생생한 배움의 장이 되었다. 이 어찌 수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랴. 노들야학의 밤 야(夜)자가 들 야(野)자로 바뀌면서 야학의 의미는 들판처럼 넓어지고 깊어졌다.


“그 경험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의 문제로 집회를 하게 되었고 사람들과 함께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참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도 바뀌고 있었다.”

(74)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한때 교육이 먼저냐 운동이 먼저냐를 두고 많은 신경전이 오갔다고 한다. 홍은전은 교육파 대 운동파의 진영싸움을 ‘흔들리며 피는 꽃’에 비유하며, 그 두 파가 파벌 싸움에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 아니라 갈등과 충돌을 마주해 성실히 다루었다고 기록한다.

 

“어떤 교육파 교사는 어떤 운동파 학생과 함께 살며 그의 자립생활을 지원했고, 어떤 운동파 교사는 연극 수업에 들어가 ‘데모’라면 기겁을 하는 학생의 삶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 운동파가 교육파에게, 교육파가 운동파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교육이 절대 눈감지 말아야 할 것과 운동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

(101)

 

저자의 말처럼 교육과 운동,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삶과도 밀착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들의 정규수업과 비정규 수업은 함께 20년을 훌쩍 넘어서 이어져 왔다. 바로 이것이 ‘노들야학을 한다’는 가장 기본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과 투쟁이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삶과 교육, 그리고 운동이라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이 삼합(?)을 지금껏 생동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노들야학 아닐까.



제23회 세계 장애인의 날

출처 : 노들야학 홈페이지 사진갤러리(http://nodl.or.kr)

 

이제 초반에 던졌던 질문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분명 글을 시작하며, 20년간 노들에 쌓여온 사소함이나 행복감,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하게 되는 이유들에 대해 궁금해 했다. 질문들은 수습되지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답할 수 있었던 질문은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의 표면적 의미인 교육 그리고 운동에 관한 것뿐이었다.

 

아마 노들야학을 하는 일의 사이사이에 사소함들은 누군가가 혼자서 무너지지 않게 단단한 지반이 되어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고비들을 넘고, 새로운 싸움의 전선을 앞으로 밀고 나가며 느꼈을 것이 “홍은전들”의 행복감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를 놓치고 글에 녹여내지 못함은, 아직 사소함을 눈치 챌 만큼의 섬세한 눈이 길러지지 못한 까닭은 아니었을까. 내가 노들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바라보는 섬세한 태도일 것이다. 그럴 때에야 나는 장애의 고통과 현실을 볼 수 있고, 나 자신 또한 그에 연루되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때 나는 “장애 해방 참 세상”의 진짜 뜻을 몸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1. 『노란들판의 꿈』은 2014년 노들야학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의 2016년도 개정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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