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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대의 정치선동



전 주 희 / 수유너머N



‘일코’라는 신조어가 있다. 어떤 연예인의 팬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척 하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이다. 연예인의 팬 뿐만 아니라 덕후들이 자신의 존재를 사회화시키고 싶지 않을 때 일코를 선택한다. 작년에는 심형탁이 무한도전에 나와 자신 도라에몽 덕후라는 것을 밝히기 전까지 그는 일코였다. 왜? 편하기 때문이다. 나이에 맞춰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애낳는 생애주기가 신념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그게 왜 좋아?’라는 성의없는 질문에 애써서 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요즘 한창인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일코가 득실거린다. 바로 운동권 덕후들이 마치 일반인 마냥 촛불을 들며, 파도타기도 하고 이승환, 전인권의 노래에 촛불물결도 만든다. 물론 좋다. ‘깃발 대오’들은 얼마나 거리에서 대중들을 기다려왔던가. 때문에 깃발을 휘날리며 대중들과는 이물감을 형성하면서까지 오랜만에 조우한 대중들의 반감을 살필요는 없다. 그나마 이번 촛불집회는 ‘민주묘총’ 등의 패러디 깃발들이 함께 하면서 깃발을 드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2008년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때는 깃발을 최대한 자제했다. 늘 갖춰입던 투쟁조끼도 벗고 ‘조용히’ 일반인 행세를 하며 촛불을 들었다. 2002년 미선-효순 사건 촛불집회 때는 ‘깃발’을 들고 나타난 노동자들에게 일반 촛불 시민들이 직접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촛불’과 ‘깃발’이 함께 뒤섞이는 데에는 갈등의 마주침들이 있었던 것이다. 


촛불과 깃발이 공존하는 시대에 ‘유인물’과 ‘촛불’은 함께 할 수 없는가?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단 8글자가 들어간 손피켓만으로 100만명이 넘게 참여하는 ‘민심’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지언정, 그러한 촛불들이 앞으로 보여주어야 할 “미래의 시대”를 선명하게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우리는 지금 역사의 영역으로부터 나와 현재의 영역,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미래의 영역을 지나가고 있다.”라고 현재를 규정한다. 

조선일보와 의회세력은 ‘질서 있는 퇴진’으로 결집하고 있고, 촛불정국을 정권 재창출을 위한 도구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87년 6월’이라는 역사를 반복하고자 하며, 현재의 힘을 이용해 역사를 소환한다. 대중들의 숫자만큼 요구와 욕망은 다양하기 때문에 최소한 합의되는 수준에서 ‘현실적인’ ‘실현가능한’ 판단을 하자는 것이야말로 파탄난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촛불은 통치질서의 한 부분이 되며, 정치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 ‘이게 나라냐’는 ‘공화국’이라는 정통성의 복구로 변질된다. 



지난 11얼 26일 민중총궐기 사진. 경찰들이 차벽에 플랭카드를 걸었다. "평화로운 집회, 성숙한 시민의식, 여러분이 지켜주세요" 출처. : 페이스북


때문에 ‘최소합의’가 진정 다양한 대중들의 실질적인 요구의 수렴점인지, 그리고 미래를 성급하게 나타내는 우리의 새로운 삶의 형식들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실질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레닌은 그것을 “도시들 간의 진정한 접촉”을 위한 정치신문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영역을 넓히고, 정기적, 공동적 작업의 기반 위에서 도시들 간의 진정한 접촉을 확립하는 것이다.”

-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페이스북으로 시시각각 사람들의 의견과 반응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종편이나 인터넷 뉴스 등에서 모든 정보들과 봉기의 이미지들이 종합되는 촛불시대에 ‘유인물’은 너무 낡았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실시간으로 집회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광장으로 나오지 않았는가? 여전히 깃발이 올려지며, 구호를 외치지 않는가? 


‘퇴진’의 한 목소리는 현재의 다양한 영역들과 부분적으로 당도한 미래의 영역들로 분기해 나가기 위한 교차로일 뿐이다. 의회세력들은 지금 그 교차로를 관통해 자기들의 정치적 계획을-질서있는 퇴진이라는 정치적 계획에 맞추어 선전하고 선동하며 조직하고 있다. 

반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퇴진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입장은 광장에서 아직 제대로 선동되고 있지 못하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쟁점들을 선명하게 드러날 때 촛불은 분열되는 ‘민심’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들을 지닌 정치적인 주체로서 피와 살을 갖추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이란 단 하나의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질서 있는 퇴진’은 혁명 속에 개입하는 반혁명의 실천이다. 레닌은 혁명을 “다소간 완전한 침묵의 시기와 급속히 교체되는 일련의 강력한 폭동들”이라고 정의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침묵의 시기에도 필요하고 강력한 폭동의 시기에도 필요한 본질적인 정치선동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삶의 모든 측면을 조명해주며, 가능한 한 광범위한 계층의 대중 사이에서 수행되는 정치선동의 작업”이어야 한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지만, 메이데이 집회 전에 개최되었던 청년학생 전야제와 노동자 대회 전야제 그리고 당일 대회들은 수십, 수백종의 유인물들이 넘쳐났다. 대회는 늘 무대위에서 문화공연과 투쟁발언들이 이뤄졌지만, 대회장 주변에는 밤새 인쇄기를 돌린 각종 투쟁 현안들, 노동운동 단체들이 내건 정치정세에 대한 입장들이 담긴 유인물들이 ‘거리의 연단’을 만들었다.

촛불집회에서 다양한 현실의 영역들과 미래의 영역들이 실질적인 접촉면을 만드는 것은 촛불의 숫자로만 우리의 ‘요구’가 표현되는 방식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앞에 가장 두려운 것은 분열이지만, 곧 다가올 다소 침묵의 시기를 건너게 해주는 것은 무수하게 난립하는 유인물, 그 하찮은 것이 가져오는 정치적인 입장일 것이다. 


페미니즘 시국선언



이는 추상적인 정치적인 구호가 아니다. 그런면에서 이번 촛불집회에서 진행된 ‘페미니즘 시국선언’은 페미니스트들의 시국선언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실의 다양한, 하지만 분산되어 전개되었던 요구들이 광장에서 실질적인 접촉면들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운동으로 분기할 수 있는 조건은 광장의 한 가운데서, 봉기의 와중에 벌어진다. 

그래서 제안한다. 운동 덕후들은 더 이상 일코 하지말고 일코 해제하라! 지금의 정세에 개입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으로 수많은 거리의 연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폭력-비폭력의 프레임이 깨질 수 있는 대중적 토양이 형성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토록 거리에서 기다리던 대중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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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들의 밤,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전주희 / 수유너머N 회원



지난 15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경희씨(51세)는 공항 앞마당에서 삭발식을 했다. 지속적인 성추행과 인권유린, 외주화, 낙하산, 최저임금, 노조탄압까지 뭐 하나 빼먹으면 안 될 것처럼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지내왔던 모든 오물들을 깨끗한 공항 앞마당에 쏟아냈다. 

일터에서 수시로 가슴을 만지는 것도 모자라 회식자리에서 대놓고 접대를 강요하고, 노래방에선 그놈의 혀가 쑥 들어오고,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주무르는 온갖 꼴보기싫은 짓거리들을 하는 자들이 청소노동자의 신발 색까지 수틀리면 꼴보기 싫다고 신고다니지도 못하게 했단다.

한국공항공사에서 정년퇴직한 관리자들이 낙하산타고 내려오는 황혼의 삶은 그렇게 밤의 시간을 즐겼다. 성추행이 문제가 되어 낙하산을 물리치면 또 다른 낙하산이 내려왔고, 그들의 밤시간은 지속되었다. 

낮의 시간, 김포공항의 어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하얀 공간에 청소노동자들은 '숨겨진 노동'이어야 했고, 귀빈이라도 방문할라치면 화분뒤에라도 숨어있어야 했다. 그들의 노동시간은 늘 밤의 시간이었고, 어둠의 힘으로 온갖 추행들이 여성노동자들의 육체를 훝고 또 훝었다. 









인생이 반백년을 향해 달려가니, 새소식을 들으면 옛날 사건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따라나온다. 여성노동자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똥물 뒤집어쓴 노동자, 생리휴가 간다고 했다가 팬티 검사 당한 노동자, 또 어떤 여성, 노동자들. 

 

1998년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들은 그해 밥주걱과 냄비를 뚜둥기며 파업을 했다. 2천명이 넘는 정리해고에 맞서 ‘차 만드는 남성’들과 함께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싸웠고, 점거파업 기간내내 ‘투쟁의 꽃’이라 불리웠다. 하지만 파업의 끝에 정리해고는 그녀들의 몫이었고, 직영 정규직 노동자에서 하청노동자로 전락한 뒤에야 다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싸움은 패배했다. 파업 이후 더욱 살벌해진 자동차 현장의 노동강도는 ‘차 만드는 남성’들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 때 파업의 동지였던 그들은 더 이상 '투쟁의 꽃'을 기억하지 못했다. 더욱 빨라진 컨베이어벨트 때문에 배가 더 빨리 고파왔다. “씨발년들아 빨리 밥줘”하며 식판을 두드렸고,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두배로 강화되었다. 다시 ‘차 만드는 남성’과 ‘밥하는 여성’으로 그렇게 각각 살게 되었다는 옛날 이야기가 겹친다. 

겹친다는건 반복된다는 것이다. 나는 반복이 싫다. 지루하다. 


프랑스 역사가인 쥘 미슐레는 “익숙한 종소리가 지치지도 않고 울릴 때면 사람들은 하품을 터트린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그대로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일은 늘 되풀이 된다. “내일에 대한 확실한 권태 때문에 오늘 하품을 짓는다.” 

여자들은 이런 소식을 접하면 종종 자신의 온 생애 혹은 자신이 아는 여자들의 모든 삶이 우주처럼 한꺼번에 응축되어 폭발하곤 한다. 수 십개의 장면들이 동시에 떠오르면 피부에 난 솜털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이다. 그러다가 곧 권태에 빠지기도 한다. 씹던 껌을 뱉듯이 무성의하게 “개놈들이 그렇지”라고 내뱉고는 이내 하품을 한다. 하품끝에 눈물이 찔끔 나왔고,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IMF 직후 대대적인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고, 노동자들은 싸웠고, 또 많이들 졌다. 공장은 더 빨리 돌아갔고, 노동자들은 더 싸울 여력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 권태와 무기력의 한 가운데서 식당여성노동자들이 다시 텐트를 쳤다. 이번에는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다. 파업끝에 노조지도부는 정리해고를 받아들였고, 정리해고자 277명 중 144명의 식당여성노동자들이 포함되었다. 투쟁의 꽃을 희생양으로 내주었다며 노조 지도부에 대한 비난이 한동안 일었었다. 그 와중에 노조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서 “정리해고자는 133명 뿐”이라고 했다. 하청노동자는 더 이상 직영 정규직 노동조합원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님 하청이지만 다시 밥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쨋든 144명의 정리해고의 기억은 삭제되었고, 식당여성 노동자들은 화가났다. 




“우리는 사라진 것이죠. 그래서 열 받아서 투쟁을 조직했어요.”




노조지도부와 활동가, 남성 조합원들과의 갈등 속에서, 욕설 속에서, 비난 속에서, 때로는 사측 경비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면서, ‘집안에 가만히 있지 않으면 포르노배우를 만들어주겠다’는 뜬금없는 친필편지도 받아가면서 그렇게 18개월동안, 540일 밤의 시간을 만들었다. 낮에는 밥을 해야 할 시간과 밥을 퍼줘야 하는 시간의 단조로운 반복 속에 하품하며 ‘밥하는 여자’로 되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텐트로 모여 음모를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셨다. 

삭발을 했고, 노조사무실을 점거했고, 성적 모멸감을 주기 위해 보내지는 편지들은 대낮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나체시위! 그녀들은 나체시위의 은밀한 전통을 알고 있었을까?


1976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자본측이 사주한 남성 행동대들이 가하는 신체적이고 성적인 폭력에 맞서 시작된 빛나는 전통!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나체시위는 인천의 ** 공장에서 파업을 깨려고 용역깡패들이 정문을 때려부수자 남성노동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는데, 여성들이 웃통을, 브래지어를 홀라당 벗고 정문의 댓돌에 머리를 쾅쾅박아, 머리에서 난 피를 가슴골에, 축 늘어진 가슴통에 벌건 칠을 해대는 통에 주변의 모든 남성들이 2차로 혼이 빠져 달아났다는 무용담이다. 

밀양할머니들의 나체시위는 또 어떤가! 가슴은 더 쪼글쪼글해지고 배꼽아래까지 닿을 정도였지만 노년의 품격과 여유로 조용히 벗으시고 까만 전투복에, 투구에, 방패에,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에 겹겹이 껴입은 전경들 앞에 고즈넉하게 연좌하는 기품은 나체시위의 한 경지를 이룬다. 


하품은 쏙 들어가고 머리위로 꽃죽이 터지는 것 같다. 축제다. 마녀들은 축제를 좋아한다. 마치 중세의 마녀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어느새 여자에서 마녀가 되어 위풍당당하게 판을 벌인다. 신체에 대한 수치심과 금기의 결박에서 풀려난 여자들은 한껏 과감해졌다. 

미슐레의 <마녀>에는 마녀들이 벌인 축제이야기가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바sabbat’라고 불리웠던 축제가 있었는데, 밤의 시간에 마녀가 벌이는 악마 숭배의식이었다. 마녀는 ‘마녀풀’로 의료행위를 하고 기독교적인 윤리를 거부하며 '사바'를 열어 인간 이하의 인간들과 우정을 나누며 여왕으로 군림했다. 당시의 농노들은 마녀와 마찬가지로 인간 이하의 인간들이었고, 밤의 시간으로 쫓겨났지만 그들은 밤이야말로 축제에 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사바는 당시 창궐하던 농노들의 봉기의 진앙지가 되곤 했다. 농노들과 마녀들은 “서로 피를 나누어 마시며 혈맹을 과시”하며 봉기를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당시 사바에서 불리웠던 ‘민중의 노래’는 밤에 부르는 노래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사람이네!


대의를 품고 있고!


참을 만큼 참았고!!


미슐레, <마녀>, 149쪽. 

 


당시 교황과 국왕은 그들이 떠받치는 하나님과 민중들이 애지중지하는 신들을 공존하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민중들의 신들을 죽이고 마녀들을 화형으로 불태우고 농노들을 잔인하게 사냥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춤은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끔찍한 더위 속에 지치도록 온종일 일하고 나서, 앙티유의 흑인 노예들은 25킬로미터 가량을 춤추러 걸어갔다.”(149)



‘사바’라는 중세유럽의 난리굿은 16세기 마녀들의 화형식이 온 유럽을 휩쓸기 전까지 민중들의 밤을 열었다. 마녀들은 추잡하고 더러운 존재들을 불러들였고, 그들과 함께 낮에는 맺지 못한 관계를 만들었고, 민중들만의 ‘다시 만난 세계’를 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밤은 그토록 짧았고, 다시 지루한 일을 해야하는 낮은 길었고 하품이 나왔다.

중세시대 내내 마녀들이 불에 태워진 이유는 그들이 민중들과 우애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가장 매혹적이며 불온한 민중이었던 마녀들을 화형대에 올린 것은 스펙타클했다. 당시 민중들은 더 이상 마녀들의 밤에 함께 하지 않았고, 나아가 그녀들을 교회에 고발하고, 그녀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시기에 마녀들의 화형식이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을 주목한다. 남성과 여성사이의 분할은 노동과 자본사이의 분할과 함께 교차되어 노동내부의 분할과 위계를 도입해 사바와 같은 민중들의 밤을 봉쇄했다. 

다시금 사바와 같은 난리굿이 벌어지는 밤의 시간을 맞이할 수는 없을까? 남자 낙하산들이 거리낌 없이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밤 말고, 혀가 쑥 들어와도 침을 넘기며 숨죽여야 하는 그런 밤 말고. 

마녀들은 죽음도 광장에서 맞이했다. 늘 민중들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들은 죽음조차 공포와 매혹에 휩싸여 맞이했다. 마녀들의 화형식을 지켜본 이들 중 누군가는 그들이 함께 불렀던 밤의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지 않았을까? 역사가는 거기까지 기록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랬을 것이라고 무장적 장담해본다. 



우리도 그들처럼 사람이네!


대의를 품고 있고!


참을 만큼 참았고!!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경희씨는 “인간대접을 받고 싶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들은 해고된 자신들이 더 이상 셈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사라진 자신들을 보고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여자들은 13세기에도, 21세기에도 위풍당당하게 광장에 나선다. 다시 민중들간의 우애를 만들자고 앞선다. 그래서 그녀들의 ‘다시 만난 세계’에는 그녀들만 있지 않다. 외주화로 인한 하청노동자, 장시간노동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인격적인 모멸감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불러들인다. 심지어 자신들을 삭제하고 싶어 했던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도 부른다. '함께 살자'고. 




cf. 그러고보니 궁금하다. 이대생들은 그들이 노래한 ‘다시 만난 세계’에 과연 누구를 초대했을까? 누구를 초대하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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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0 07:53 4040

[4040] 사드와 꼬부기



사드와 꼬부기 





전주희 / 수유너머N 회




“누나, 포켓몬 알아?” 

연구실 20대 후배가 ‘포켓몬고’를 물어본다. 모르면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걸 확인하고 놀리기 위해서. 나이가 먹을수록 알아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당근 알지”라고 퉁치며 넘어가려는데, 또 물어본다. “그래서 포켓몬이 뭔데?” 그거. 꼬마들이 목숨걸고 딱지 모으던 만화 캐릭터 아니냔 말이다. 우하하~ 모를줄 알았다며, 옛날사람이라고 한참을 놀린다. 

무튼 속초까지 가서 잡아온 포켓몬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이제 이것들을 키운단다. 


“그니까, 그게 다마구치잖아.” 아이들은 뒤집어졌고, 난 흥칫뽕이다. 





‘포켓몬 고’는 게이머가 현실 세계를 직접 돌아다니며 게임에 등장하는 작은 몬스터를 잡고, 이를 키우는 방식의 증강현실 게임이다. 지난 7월 6일 호주와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미국 등지에서 출시됐다. 무려 35개국에서 ‘포켓몬 고(Pokemon GO)’ 광풍이 불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피카츄가 나타난 것이다! 아직도 가끔 꿈에서 꼬마자동차 붕붕이를 타고 붕붕거리는 꿈을 꾸는 나인데, 붕붕이를 타고 요술공주 밍키와 모래요정 바람돌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하면 너무 신나서 방방 뛸 것 같다. 그러니 열일 제치고 속초를 가는 것 쯤이야.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은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가 덧입혀지는 것을 말한다. 현실의 이미지와 가상의 이미지가 결합해 새로운 현실을 낳는다. 이 기술로 인해 인간과 기계의 공존은 더욱 밀도가 높아질 것이라고들 한다. 증강현실의 리얼리티는 이미지의 물질성을 생각하게 해준다. 보통 현실의 대상이 있고 이를 모사한 것이 이미지인데, 증강현실에서 이미지는 서로의 물질성을 보장한다. 실제 현실은 피카츄라는 이미지의 물질성을 보장하고, 피카츄라는 가상의 캐릭터는 속초 앞바다의 물질성을 전제한다. 피카츄가 없는 속초는 바다가 있는 도시일 뿐이고, 속초가 아니라면 피카츄는 게임속의 캐릭터에 불과하다. 각각의 이미지는 새로운 리얼리티의 조건이 된다. 그럼으로써 현실은 이미지세계에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증강된다. 


반면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구현한다. 현실 정보를 차단한 채 오로지 가상 정보(소리∙형태 등)만 보여준다. 우리는 가상현실이라는 이미지들의 체계를 통해 현실을 지우고 가상에 몰입하게 된다. 


포켓몬고는 무엇보다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게임이다. 포켓몬을 찾아나서고, 잡아야하고, 정성으로 키워야한다. 돈으로 손쉽게 살 수 있는 게임아이템과는 다르다. 감정이란 신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이라면 사람들은 가상현실을 통해 느끼는 감정보다 증강현실에 더욱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한 전세계의 포덕들과 지구적 사이즈의 공감 역시 이들을 더욱 신나게 한다. 속초는 대한민국 강원도 도시가 아니라 포켓몬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속초가 이렇게 신났을 때 경북 성주는 ‘사드’의 고장이 되어 날벼락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7월 8일 "사드는 국민 생존권 문제"라고 선언했다. 6일 포켓몬 출시 이틀만의 시련이다. 행복은 짧고 불행은 구체적이다. 사드가 뭔지는 몰라도 사드레이더 근방 100미터는 전자파로 인해 화상과 내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말이 화상이지, 전자파로 화상을 입는 정도면 ‘방사능 수준의 위험’이다. 2012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이 불타죽을 수 있는 수준의 전자파다. 상주 군민들은 빨간띠를 머리에 둘렀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주민들의 차를 들이받고 튀어 뺑소니범이 되었다. 





사드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안전하게 생존할 권리’를 주장하고,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군 관료들은 “북한의 핵무장과 핵미사일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한미양국의 결정사항”이라고 통보했다. 북의 핵미사일이야 10년 전에도 있었는데 왜 이제와서 저러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이 보통 열받은게 아닌게 아니라서 동북아 신냉전의 방아쇠를 당겼다(심지어 소심쟁이인 우리가!)는 우려가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의 철회는 쉽지 않아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오직 안보의 프레임으로 사드 배치를 주장한다. 시민들의 안전하게 생존한 권리와 국가의 안보가 충돌하고 있지만 국가의 ‘안전’프레임 안에 시민들의 안전한 생존은 배제된다. 그들은 현실 정보를 차단한 채 오로지 북핵-자위권-안전-사드로 이어지는 가상 정보만 반복한다. ‘가상현실’은 이렇듯 현실적인 것 가운데에 현실을 가리며 작동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기술 이전에 기술이 품을 수 있는 상상력의 문제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상상력이 탐욕과 편파적인 감성을 넘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원리이자 힘이라고 보았다. 상상력이란 ‘불을 뿜는 용’이나 ‘날개달린 말’처럼 경험된 현실과 지각된 감각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본디 인간이란 이기적인것 이상으로 편파적이다. 지금은 일반인 나씨가 된 나향욱 교육부 관료가 자기 자식은 스크린도어로 사망한 청년과 다르다고 한 것은 인간의 편파적인 감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편파성은 ‘사회’라는 새로운 현실을 구성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혹자는 나씨의 공감력의 부재를 이야기하지만 공감이란 무한하게 확장되지 않고 늘 자기 주변에 국한되는 편파성을 띈다. 나씨는 공감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 ‘미개한 자연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제한적인 감정을 나와 관련없는 타인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력은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을 나의 생생한 현실로 만들어 준다.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속초 모래사장을 뒹구는 포켓몬을 찾아 여행을 나서고 꼬마자동차 붕붕이를 애틋해하는 것은 상상력에 따라 확장된 감성의 힘이다. 상상력이 중요한 것은 현실의 너머, '아직은' 비현실적을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것이 편파적인 감성을 사회적 감성으로 확장한다. 사회라는 새로운 리얼리티는 인간들의 증강된 힘이다. 


따라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상상력 이전에 상상력을 지배하는 감성의 문제다. 감성은 현실의 관계 속에서 어떤 현실을 구현할 것인지의 문제에 깊숙히 개입한다. 리얼리티의 배제인가, 새로운 리얼리티의 구축인가 여부는 감성의 방향에 달려있다. 


일반인 나씨와 박근혜 정부는 사드의 안보논리, "국가안전=시민안전=사드"라는 공감을 얻지 못해 안보의 가상현실안으로 퇴행했다. 반면 포켓몬들은 국경과 인종을 넘어, 인간과 기계와 공존하는 모든 곳에 살 수 있다. 몬스터들은 모든 환경들과 결합해 공존의 지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곳, 전자파가 살을 녹이는 성주에 포켓몬들은 서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 곳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주에는 포켓몬 중 최강 귀요미 꼬부기의 해사한 미소도 없다. 

다마구치와 딱지만 아는 나는 또 다른 증강현실을 상상해본다. 성주를 안보의 가상현실로 만들지 말기를. 꼬부기를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이 성주의 전자파 담장을 무너뜨릴 수 있기를. 성주시민들이 꼬부기와 그의 지구적 친구들과 함께 공존하는 날이 오기를. 






애가 꼬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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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0]



'안전사회'의 완성


전주희 /수유너머N 회원



공분의 장소


하나.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 ‘수은중독 15살 공원 숨져’라는 짤막한 기사가 신문 한귀퉁이에 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사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 여름을 났을 것이다. 서울의 온도계를 만드는 공장 '협성기계'에 취직한 15살의 문송면 군은  1988년 7월2일, 수은과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했다. 충청도 가난한 농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자력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한지 두달 만의 일이다. 


다시 하나. 2014년 대우조선에 입사한 19세 청년이 입사 2주만에 산재로 사망했다. 이 청년은 자신이 작업해야할 대형 플랜트에 대한 구조나 작업에 대해 안전교육을 미처 받지 못했다. 회사가 작업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사전 교육없이 무리하게 현장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 청년을 포함해 그해가 지나기 전에 3명의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목도한다. 앞선 15세 ‘공돌이’의 죽음이나 19세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의 죽음들은 공장 안의 죽음, 사회 바깥의 죽음이었다. 언제나 위험한 일은 존재하며, 누군가는 위험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회적 묵계가 짙게 깔려있기에, 이 죽음들은 작업장의 담벼락을 쉽게 넘어서지 못했다. 


스크린도어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어떻게 다른가? 무엇보다 사회가 그 청년노동자의 죽음에 깊이 공감한다. 구의역에 앞서 강남역에서 촉발된 '나는 오늘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공분이 있다. 그리고 구의역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낯모르는 젊은 시민들이 ‘나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사건의 자리에 기꺼이 자신을 포개어 놓았다. 공분들의 내선순환.

 

문송면 군의 죽음이나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도 물론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난한 나이 어린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었고, 저멀리 바닷가에서 풍문으로 들리는 위험한 작업장의  사고였다. 나의 삶과 타자의 죽음에 대한 거리를 좁히지 않고서도 분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령 불의에 대한 분노, 인류애에 대한 정신으로 말이다. 반면 강남역과 구의역을 잇는 ‘공분’은 수천장의 포스트잇으로 출현했다. 이 사회에서 추모와 애도를 넘어 공분의 장소가 형성된 것이다. 검은 리본과 국화꽃을 넘어서는 포스트잇은 각자 자신의 삶을 또 다른 삶이 갑작스레 중단된 장소인 스크린도어에 덧붙였다. 





우리사회의 안전의 ‘현재’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부터 나온 듯 하다. 하나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그리고 메르스와 세월호 '이후' 위험의 사회화. 이 두가지 서로다른 요소는 결합되어 또 다시 두가지 방향으로 분기한다. 


첫번째 방향은 신자유주의 안전권력이 추구하는 것이다. 

 '정비 노동자가 정규직이 아니어서 업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2인 1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당시의 언론보도는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전형적인 태도다.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수원에서 조선족 중국인 남성 오원춘이 한국인 여성을 토막살해한 사건이 일자, 정부와 언론은 이주노동자들 일반에 대해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며 사회에 공포와 외국인 혐오를 유포했다.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에 112신고를 했고, 이에 대해 늑장대응이라는 비난이 거세어졌지만 결국 '안전한 밤거리'를 만들기 위해 조선족을 몰아내야한다는 여론으로 수렴되었다. 여론을 등에 엎은 공권력은 위험한 요소들-조선족 노동자-에 대한 치안의 강화를 해법을 들고 시민지킴이를 자처하며 귀환했다. 

강남역 여성살해에 대해서도 대응은 동일했다. 위험은 예외적이고 일탈적이어야만 한다. 치안에 대한 정당성의 회로는 위험사회가 아니라 안전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강남역 사건을 두고 경찰이 정신질환자의 일탈적 행위라고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안전사회에 대한 신화에 기반한다. '우리 사회는 안전하다.' 왜?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설립되었다는 근대적 정당성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존립한 이상 국민은 안전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위험은 예외적이고 일탈적으로 간주된다. 국가는 이러한 예외적 위험에 대해 예방하거나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예방과 처벌은 치안의 강화로 귀결된다. 


위험이 예외적이고 일탈적일수록 위험은 반사회적 개인의 일탈로 지목된다. 시스템은 안전하기 때문에 위험은 시스템의 바깥에서 발생한다. 그 개인은 주로 이주노동자이거나 일거리가 마땅치 않은 불안정 노동자 이거나 정신질환자이다. 이들은 사회에 불만을 품기에 '충분히' 불안정하다. 시민안전의 바깥에 노동의 일부, 하찮은 노동, 불안정한 노동이 분리된다. 그리고 이는 최하층계급(underclass)이라는 잠재적 불안요소이자 잉여의 삶들이 된다.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라 안전의 외주화다. 


그런데 메르스와 세월호 이후 '안전한 한국사회'에 균열이 발생했다. 신자유주의적 안전권력이 배제해 왔던 위험이 사회안으로 역류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류의 방향이다. 


메르스 확산의 진앙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에서 한 청원경찰이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 청원경찰은 근무 당시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개인의 안전 불감증에 대해 여론의 지탄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삼성서울병원에는 30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구급차 운전노동자, 청원경찰, 간병노동자, 청소노동자 등 병원의 모든 곳에 존재했다. 이들 모두를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일부 노동자들의 안전 불감증으로 몰아갈 수는 없었다.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메르스는 그 구조하에서 전파되었다. 다시, 정확히 말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안전사회의 유지를 위해 안전이 외주화된 결과다. 


근대사회이래 안전은 국가 설립을 정당화시켜주는 보증물이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안전의 일부를 시장을 통해 외주화했다. '의료시장화'라는 외주화된 안전은 메르스를 만나 삼성서울병원이라는 위험의 진앙지를 탄생하게 했다. 안전이 외주화되면서 안전은 위험의 요소들로 역전된다. 안전업무가 3000명이라는 거대한 잠재적 위험으로 고일 때까지 의료의 민영화는 안전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선전되었다. '효율성은 안전을 보장한다.' 

메르스로 인해 이 외주화된 안전이 사실 위험의 진앙지였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불안정 노동이 일반적인 노동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효율성이 아니라 위험이 사회'안으로' 역류했다. 위험이 사회화된 것이다. 안전의 외주화와 위험의 사회화. 


여기에 세월호 유족들의 목소리가 역류의 방향을 틀었다. 

<푸코 이후>에 실린 세리자와 가즈야의 글, '생존에서 생명으로, 사회를 관리하는 두 개의 장치'에서는 일본사회에서 규율권력이 안전권력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를 피해자 유족의 등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범죄의 가해자를 일종의 사회적 피해자로 교정받아야할 주체로 인식된 것에서 유족들의 적극적인 피해의 목소리는 사회가 범죄자에게 가졌던 온정적인 태도를 변화시켰다. 사회는 극적으로 "피해자화" 되었으며 가해자의 교정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처벌주의가 강화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과 공포는 치안에 대한 의구심과 비판이 아니라 더욱 강한 치안을 요구하고, 이는 사회내에 잠재해 있는 위험요소의 적출을 요구한다. '수상한 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명확한 정의 따위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모든 자들이 수상한 자가 될 가능성에 놓여있으며 안전사회의 내부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안전사회의 신화를 되불러오며 더욱 강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사회의 내부에서 수상한 자를 찾지 않고 곧바로 국가의 역할을 의문에 부친다. 구조과정에서 국가의 무능이 드러났기 때문에 필연적인 경로이기도 했지만 유족들의 의문은 사회'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 의문이란 국가가 그동안 추구했던 안전에 대한 의문이었다. '배가 뒤집어졌는데 왜 국가를 걸고 넘어지느냐'는 일부 비난은 기실 어불성설 비난만은 아닌것이다. 

유족들의 '진상규명'을 둘러싼 행위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것은 '위험이란 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어떻게 피할 것인가'와 같은 위험의 회피 전략 혹은 리스크의 관리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위험은 시한폭탄이 아니다. 누군가의 품에서 반드시 터질 수 밖에 없는 돌려막기 게임의 클라이막스가 아니다. 오늘날 위험은 안전이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순간, - 자본의 이윤 때문이든, 효율성의 차원이든 - 안전은 위험으로 역전된다. 그러니까 '진상규명'이라는 유족들의 행위는 안전권력이 추구하는 안전사회의 신화를 의문에 부친다. 


안전사회의 완성


구의역 스크린도어 노동자의 유족은 비정규직이어서 업무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메피아의 책임전가에 이의를 제기했다. '진상규명'은 안전의 외주화가 그 원인임을 지목했다. 더이상 안전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사회를 잠식하는 대신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해가고 있다. '공분'의 힘은 피해자화된 사회를 넘어 '생존자-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국가의 안전이 아니라 삶들의 생존이다. 구체적 삶들의 안전한 생존을 다루지 않은 추상화된 안전사회는 치안적 질서가 작동하기 위한 신화에 불과하다. 


몇 년전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에게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대뜸 ‘그럼 위험한 일은 누가하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보다 훨씬 더 몇 년전으로 거슬로 올라가면 그 위험한 업무는 정규직들이 하던 일이었고, 그들은 그 위험을 위험으로 놔두지 않고 안전한 업무가 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고안했을 것이다. 

늘 존재하는 위험이 안전사회의 바깥으로 내몰아지는 것이 아니라, 안전이 외부화될 때 위험은 발생한다. 위험의 외주화가 아니라 안전의 외주화인 것이다. 안전이 외주화될 때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생존은 배제된다. 오늘날 ‘안전사회’라는 신화는 사회가 약자의 생존에 대한 배려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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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0 : 나이 사십에 제대로 혹하고 싶은 가십거리]


90년대 학교를 다닐때 80년대 운동권 선배들의 준열한 눈빛 앞에 나는 근본없는 X세대였다. 졸업과 함께 IMF 사회에 진입해 나름 힘겹게 한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20대들의 헬조선 앞에서는 그저 좋은시절 막차 탄 막내 꼰대일 뿐이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명예퇴직 1순위가 된 40대. 이럴거면 좀 일찍 내보내든가. 치킨집을 하기에도 젊고, 재입사를 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 사십이 되고 보니 알겠다. 구려 가럼 볼 것도 많고, 욕할 것도 많은 사십년 묵은 세상. 꽃병을 들기엔 한창 겁먹을 나이지만 꽃다운 욕은 찰지게 하고 싶은 사십. 인생 이모작이라는데 지난 사십년은 망했으니, 앞으로 사십년은 제대로 말아먹겠다. 



“문제는 노동이야” 

- 경제민주화와 최저임금 




전주희/수유너머N 회원




여소야대 총선이후, 첫 번째 선물이 도착하다. 


‘새누리당 참패’로 귀결된 총선 직후 야권에서는 총선내내 제기해 온 ‘경제민주화’의 각론이 아니라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불쑥 꺼내들었다. 정확히 야권이 아니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그랬다. 그는 총선내내 "문제는 경제"라며 박근혜 정부의 '배신의 경제'를 이번 총선에서 심판해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랬던 그가 선거 후 엉뚱하게 구조조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중심으로 제기된 ‘선제적 구조조정’은 본격적 구조조정에 앞서 실업대책 등 사회안전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며 IMF 위기 이후 진행되어왔던 구조조정과는 다른 구조조정을 제시하는 듯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은수미 전 의원은 ‘어제는 경제민주화, 오늘은 구조조정’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총선 시기의 ‘배신의 경제’ 심판론과 총선 후의 구조조정의 중심에는 더불어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있다. 그에게 구조조정과 경제민주화는 총선 민심에 대한 배신일까, 아니면 김종인표 경제의 동전의 양면일까. 


다시 총선 전으로 돌아가보자. 지난 4월 6일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2017년 최저임금 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매년 이뤄진 ‘노동계’ 만의 최저임금 투쟁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이슈가 되면서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총선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세부안은 다르지만 모든 정당들이 9천원~1만원 가량의 인상안을 제시했고, 정의당과 더민주당 등은 노동계와 함께 기존에 주장해왔던 최저임금 1만원안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반전은 새누리당이었다. 애초에 공약에 없던 최저임금안 이었다. 4월 3일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의 입은 9000원 최저임금 인상안을 탄생시켰다. 물론 애초에 공약에 없었고, 이 마저서도 나중에 번복, 수정되었지만 최저임금 문제가 총선 기간안에 이슈가 되었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파견법 등의 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그에 대한 대책으로 파견법이 포함된 ‘노동개혁 4법’의 국회 처리를 또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최저임금과 ‘노동개혁 4법’, 더불어민주당의 구조조정과 박근혜 대통령의 구조조정이 총선 이후 국민들에게 각기 다른 포장을 하고 국민들 앞에 도착했다. 어느 선물 포장지를 풀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가장 허망한 것은 어느 포장지를 풀어도 모두 같은 내용물이 나오게 되는 경우이다. 


선거는 끝났다. 공약으로서 경제민주화도 끝났다. 그러므로 경제민주화는 노동과 자본, 보수와 진보의 각축장 속에서 어떤 내용으로든 채워져야하는 ‘의미화’의 과정이 남아있다. 



지금 어떤 경제민주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행 헌법 119조 2항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말을 넣었다고 해서 ‘경제민주화의 아버지’로 대접받는 인물이다. 법제정 이전에 법을 가능케 했던 것은 87년 민주항쟁이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의 바람은 경제 영역에서도 시장 혹은 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의 요구로 나아갔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경제민주화는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반면 민족경제론의 입장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국가권력의 민중화였고, 정경유책과 매판적 독접자본의 거부는 사회주의를 전망한 것이었다. 법제정 이전에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의미화가 서로 각축을 벌였다. 어느 세력의 경제민주화가 최종적으로 법의 지위까지 올랐는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대중적인 의미화의 과정 자체가 헌법 119조 2항을 구성한 것이다. 



87년 6월 민주화투쟁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87년 이후 민주화 10년은 IMF 협약으로 매듭지어졌고, 그 뒤 10년은 사회양극화로 귀결되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민중들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불안정노동자가 되었거나, 대출을 끼고서라도 집을 사야 안심이 되는 불안정소유자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법 제정 이후, 경제민주화는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공약과 약속, 계획과 실행에서 빠진적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벌개혁이 중심이 되었던 경제민주화의 방향은 자본에 대한 규제와 노동의 권리 실현이라기 보다는 시장의 효율성 제고에 있었다. 시장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독점과 규제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제한되었고, 시장의 효율성을 가로막는 노동이 유연화되었고 강경한 노동조합이 후진적이라는 이름으로 철퇴되었다. 

자본에 대한 규제의 효과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신한국',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몫을 체계적인 강탈을 세련되게 추진하기 위한 매너좋은 신사의 얼굴로 등장했다. 시장의 분배를 국가가 개입해 재분배의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기초적인 의미지만 국가 개입으로 인한 재분배는 역설적이게도 시장이라는 객관적인 이름 뒤에 숨은 자본에게 추가적인 몫을 재할당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배신의 경제에 대한 심판은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87년 당시 경제민주화의 요구를 가장 약한 수준으로 관철시킨 김종인에게도 해당된다. 따라서 김종인 대표가 2012년 출판한 제목이기도 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는 다시 물어져야 한다. 지금 어떠한 경제민주화인가. 


그런 의미에서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와 구조조정은 선거 이전과 이후의 말바꿈의 처세가 아니다. 그에게는 87년 이후 일관된 하나의 이념에 대한 두 표현이다. 

지난 4월 25일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김종인 대표는 그동안 지녀온 경제민주화 이념과 현실의 구조조정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피력했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룰을 만들자는 게 핵심”이라며 “재벌개혁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나는 한번도 재벌개혁을 입에 올린 적이 업다”고 선을 그었다. 

그에게 경제민주화는 성장을 위한 시장의 효율성 제고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원리를 보다 더 보완하고 공정하게 경쟁시키자는 것이다.”

국가는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인해 시장의 질서를 침해해서는 안되고, 시장의 룰이 잘 지켜지도록 관리하는 ‘정원사’의 역할을 가질 뿐이라는 주장은 정확하게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김종인 대표가 젊은시절 독일로 건너가 배워온 것은 신자유주의의 조상격인 독일 질서자유주의의 이념이었다.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어려운 중소기업 보호라는 온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이다. 시장의 경쟁의 룰을 다시 짜는 것, 곧 구조조정의 다름 아니다. 

197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노.사.정을 중심으로한 사회적 공동결정의 제도화였고, 이를 위해 친노동조합 노선이 전제된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의 반노동조합적 정서는 87년 이래 일관된다. 그의 경제민주화론에 소득분배와 노동자의 몫이 고려되지 않는 이유다. 원하청 구조가 개선되고 중소기업을 보호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권리와 몫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알바 노동자들에게 행해지는 갑질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으로 내려갈수록 심각하다. 자영업자들의 삶이 나아진다면 좋은 사장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낭만어린 착각은 반시대적이기까지 하다. 


노동 문제가 배제된 경제민주화는 더욱 강한 시장화, 자본화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지난 20년의 경험이다. 하지만 노동 배제는 김종인대표의 무능력이 아니라 노동 혐오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론이다. 그가 주장하는 양극화 해소는 “빈곤층에게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발동해 집단행동에 나서면 제어하기 힘들어지기 때문”[각주:1]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경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기 보다는 대중에 대한 지배층의 공포와 배제에 기반한다. 



“문제는 노동이야” :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정한 룰’의 의미


시장의 공정한 룰을 다시 구성하기 위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87년 이래 체계적으로 배제된 노동의 몫이다. 임금의 경제적인 몫 뿐만 아니라 노동의 정치적인 몫을 둘러싼 싸움, 그것은 권리를 둘러싼 정치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싸움은 이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다. 9천원이냐 1만원이냐 흥정의 문제가 아니고, 2020년까지냐 2019년까지냐 조정할 문제가 아니다. 김종인 대표를 비롯해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는 구조조정이 또 다시 노동자들의 정치적 배제와 경제적 희생으로 점철되는 것인지, 아니면 공정한 룰을 재구성하기 위해 노동의 권리가 이제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전면에 등장할 것인지는 지금,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에 상응하는 법으로 미국에는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 Act, 'FLSA')이 있다. 미국 사회는 ‘공정함’(fairness)이 어떤 의미인지 오랜 시간 사회적 논쟁을 벌여왔으며, 그 의미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공정함의 의미가 생활임금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자본과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교섭력의 대등성으로 정의되기도 하였다. 그중 “공정성은 공정경쟁”이라는 의미가 있다. 노동과 자본간의 공정한 계약이 이뤄지려면 자본간의 공정한 경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즉 자본간의 경쟁 격화와 불공정한 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장시간 저임금으로 귀결될 뿐만 아니라 이를 강제하는 대자본의 횡포는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해 경제성장에 해악을 끼친다는 논리다.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유지의 비용은 자본이 사회적으로 전가시킨 것-노동손실의 사회화!-이므로 이에 대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한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김종인 대표와 더민주당, 국민의 당은 구조조정의 선결 전제로 실업수당 등의 사회안전망의 보완을 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자본의 손실을 국민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복지정책의 전면적인 확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던진 주사위의 어떤 면이 나와도 이길 수밖에 없는 자본불패의  불공정 게임이다. 때문에 공정한 시장의 룰을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구조조정에서 자본의 경영과 주주들의 부당한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수하고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이 먼저 전제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정치적 목소리를 배제한다는 것은 정치적 표절이다. 노동자들이 줄곧 제기해왔던 것은 주주들과 재벌들의 배당잔치에 가려진 기업의 위기였기 때문이다. 기업의 위기를 땜빵하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2차, 3차, 4차 하청 노동자들의 사다리는 점점더 촘촘해졌다. 이미 울산 거제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은 촘촘해진 사다리를 슬림하게 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노동의 제거는 노동의 몫과 목소리를 제거하는 이중의 배제로 나타났다.


그 동안의 구조조정을 구조조정 하겠다는 김종인표 구조조정에 여전히 노동의 자리는 없다. 배신의 경제는 다시 각색되어 재상연할 준비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동의 권리로 재구성되는 경제민주화는 총선 이후 지금의 문제다.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고용보장을 둘러싼 노동의 정치는 구조조정 시기에-경제가 어려우니까!-공세적으로 제기해야한다. 더민주와 국민의 당이 박근혜 정부에 대놓고 공세적 구조조정을 선포했듯이. 







* 이글은 오마이뉴스 5월 17일자 원고 편집 전 원본입니다. 



  1. ㅍㅍㅅㅅ, 4월 5일자,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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