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피겨를 하는 원동력이었던 개인적인 욕망, 그 자리에 슬그머니 국가의 욕망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열심히 하다 보니, 즐기다 보니 어느 순간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게 된 것인데, 하다 보니 곁가지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것이 곧 각 본인들이 속한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일조하게 된다. 그렇게 주객이 전도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욕망보다 국가적인 욕망이 더 커지면서 피겨를 하는 것이 선수가 원했던 것에서 어느새 국가가 원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국가가 원하기 때문에 1위를 해야 하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상태에서도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기에, 내가 아닌 온 국민이 염원하는 일이기에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써 세계 선수권 대회는 ‘의무적인’ 선택이 된다. 내가 원했던 일은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로, 설렜던 긴장은 1등에 대한 부담으로 변질된다. 이쯤 되면 국가는 법, 군대, 경찰을 동원한 강제적 폭력과 방법론만 다를 뿐, 선수 개인에게 암묵적이고 보이지 않는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김연아가 잘하는, 김연아의 몸짓을 잘 드러내주는 곡과 의상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이상봉이 한국 산수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한국적인 의상을 입고, 한국 대표 민요인 ‘아리랑’을 편곡한 한국의 가락인 ‘오마주 투 코리아’에 맞춰 연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김연아는 김연아가 아닌 대한민국의 김연아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사실 그 옷과 곡은 전혀 한국적이지도 않았다.
이 같이 선수 개인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은 다른 국민들에게도 김연아를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 1위를 해냈다는 희열을 선사하고, ‘애국심’이라는 심적 동기를 유발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귀속시키는 지배력으로 확장된다. 국적과 관계없이 한 개인이 보이는 진정성과 그 유려한 연기 하나하나에 감응했던 사람들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김연아의 성적, 실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을 열심히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으로 바친 ‘오마주 투 코리아’를 보면서 김연아의 그 마음을 느끼고, 그녀의 메시지를 읽으려 했던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보다는 ‘오마주 투 코리아’를 연기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선수 김연아가 한국 피겨를 다시 세계 1위로 올려줄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명실상부하게 피겨계의 전설이 된 그녀가 2위 밖에 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으며, 그 사실이 왜 그녀의 예능 활동에 대한 비난의 근거가 되는 것인가?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의 위치가 아닌 단지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의 위치였다면, 그녀가 ‘오마주 투 코리아’로 우승하는 데 관심 갖기보다는 여태까지 자신을 응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으로써 ‘오마주 투 코리아’를 연기했다는 그 자체에 충분히 감동받을만한 일이 아닐까 한다. 국가라는 개념으로 관객의 대상을 ‘한국’이라는 공동체로 제한하기 시작한 순간, ‘오마주 투 코리아’가 나왔다. 세계 선수권 대회를 다른 국가 사람들과 소통하기 장으로 만나기보다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나누고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에 감동을 시켜야만 하는, 다시 말해 ‘한국’을 위한 무대로 만들었다.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은 비단 한국인만이 아니다. 국적과 관계없이 그녀의 연기에 감동받은 다양한 팬들이 있을 텐데,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노래 제목을 듣는 순간, 만약 내가 한국국적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섭섭했을 것 같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오마주 투 코리아’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영토, 사람, 그리고 지배력을 요소로 하는 국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놓치게 되는지 이번 ‘오마주 투 코리아’를 통해 다시 한 번 ‘국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 / 김현경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이진경의 철학교실" 수강 학인)
이 글은 "이진경의 철학교실" 2기 일요일 세미나에서
"내가 경험한 국가"란 주제로 현경님이 써오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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