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영역의 책들을 간략하고 발랄하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독서는 익숙한 만큼이나 무료해진 일상에서 탈출하는, 아마도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애서가로 유명한 친구의 책장이나 도서관에서 낯선 책을 빌릴 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까지 빌립니다. 가끔은 그 빌린 책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기도 합니다. 평소 같으면 돌아보지 않았을 책인데 우연히 뽑아들어 읽고는 혼자 찌릿했던 감동을 나누기 위해,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N개의 시선과 N개의 문제를 탐험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빌린 책’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겠습니다.                                            

                                                                                                                                           -코너 소개-


                                                                                                                      



            가난에 대한 두꺼운 기록 

                            - 조은『사당동 더하기25(또하나의 문화, 2013)





정우준/수유너머N 회원





때론 빌려 읽어야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일 년에 네 번, 시험 때만 정독하는 학교 교재! 책만 사는 바보인 나조차도 가성비 떨어지는 그 책들은 결코 사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기간에만 빌려볼 뿐. 『사당동 더하기 25』와의 첫 만남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사당동 더하기 25』는 더하기 25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인 조은 교수가 25년의 세월동안 한 가족을 관찰한 빈곤 재생산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이다.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인류학자인 동료 연구자와 함께 재개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이때 결정된 연구 지역이 당시 재개발이 임박했던 사당동이다. 2년 반의 연구 후 결과 보고서가 작성된다. 그 보고서는『도시빈민의 삶과 공간』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개발 지역에 관한 저자의 연구가 종결된다. 하지만 저자는 연구 대상 중 한 가족이었던 금선 할머니네(이하 할머니네)를 20여 년간 더 관찰한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때론 그들의 일기와 구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만남은 22년이 지난 후 <사당동 더하기 22>라는 다큐멘터리와 25년이 지난 후 이 책의 출판으로 완결된다. 미국의 슬럼가나 멕시코의 빈민촌 상황을 곧 가난이라 생각했던 얼치기 사회학자였던 저자가 무려 25년간 그들을 관찰한 까닭은 무엇이었으며? 얻은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읽는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이 윤리적인 태도와 무관하지 않음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저자는 묻고 있었다. 재개발 지역 주민 중 유일하게 임대 아파트를 구한 할머니네가 과연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반박하고 싶었다. 빈곤 연구의 대가 오스카 루이스를. 루이스는 자신의 저서『산체스네 아이들』을 통해 가난이란 빈곤한 자들의 나태, 미래에 대한 무계획, 알코올 중독과 같은 빈곤한 자들 특유의 문화로 인해 발생하며, 이를 통해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루이스가 멕시코 빈민 가구를 4대에 걸쳐 관찰함으로써 얻은 결과인 것이다. 저자가 반박하려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빈곤 문화에 대한 루이스의 관찰과 주장이었다. 하지만 저자 역시 관찰 내내 빈곤 문화를 여실히 느낀다. 할머니 손녀의 무절제한 낭비, 어떤 일도 두 달 이상 지속하지 못하는 증손녀의 모습은 루이스의 주장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네 가족에게 빈곤 문화는 빈곤을 만든 원인이 아니었다. 할머니네를 비롯한 재개발 지역 1세대 사람들은 루이스가 말한 어떤 문화적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2,3세대에서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 까닭은 아무리 일해도 맨 몸일 수밖에 없게 하는 그들의 처지에서 비롯된다. 그 처지란 바로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하게끔 만드는 사회 구조의 탓이다. 맨 몸인 상태에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철거촌의 낡은 판잣집을 대체하는 좋은 집이 아니라, 빈곤 문화라 불리는 특징들뿐이었다. 저자의 25년의 관찰은 결국 빈곤 문화를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파악하게끔 만들어주었던 긴긴 여정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가난을 읽을 것인가?>

 

  저자는 책의 절반을 관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채운다. 그 대답 중 하나가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이다. 두꺼운 기술을 통한 현실 읽기란 객관적 현실의 전달이란 명목 하에 정해진 해석의 틀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에서 벗어나 다중적이고 다성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 두꺼운 기술이다. 빈곤 문화를 빈곤의 원인으로 쉽사리 떠올리곤 한다. 저자의 한 조교의 말처럼 그들의 경험 속에는 지독한 가난의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가난의 표면을 읽은 얇은 관찰이다. 나태와 무계획, 알코올 중독이란 표면 밑에 있는 두꺼운 가난의 조건들을 탐색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난에 대한 두꺼운 읽기이다.


  깊숙이 박혀 있는 ‘빈곤의 원인으로서의 빈곤 문화’라는 생각은 손쉽게 지워지지 않는다.『사당동 더하기 25』가 빌린 책인 까닭은 단순히 그 책의 주인이 학교 도서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귻은 ‘결과로서의 빈곤 문화’가 아직은 우리들의 편견 속에서 우리의 것이 아닌 탓이 아닐까?

 

“‘가난함’의 경험은 그 가난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양식인 것이다.”(사당동 더하기25. 310)

 


 





Posted by 노마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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