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과학인 건 무엇 때문인가?





김충한(수유너머N회원)




 

원래는 간단히 책 서평을 쓸 생각이었다. 평소 관심 있던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Ian hacking)이 작년 수학철학에 관한 책을 냈다 길래,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혼자 읽고 끝내는 것보다 글로 정리하는 게, 쓰는 이나 읽는 이나 생산적인 것 같아서 서평을 쓰기로 했다. 허나, 주로 인문/사회 과학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수학철학이 뭔지, 더 나아가 과학 철학이 뭔지 개괄이 필요하다는 편집자의 주문에 이렇게 과학 철학에 대한 개괄적 글을 시작한다. 아무리 개괄이라도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식으로 설을 풀 수도 없고 그만한 능력도 안 되어, 새로 관련한 책을 찾아봤다. 주로 참고한 책은 Gary Gutting, [Continental Philosophy of Science]이다. 과학 철학에 대한 입장 차이에 의한 구분을 거팅의 책을 참고해서 요약했다.







1.과학철학이란 것이 왜 있는가?: 17c 과학혁명과 칸트.


왜 철학에 과학철학이란 것이 생겨났을까?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을 들어, 처음부터 철학은 자연에 대한 앎(자연학)과 그 너머에 대한 앎(형이상학) 모두 포괄하는 학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헌데 여기서 말하는 과학 철학은 데모크리토스, 루크레티우스 같은 자연 철학의 뜻이 아니다. 이른바 지금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들(물리학,화학,생물학)이 참인 근거는 무엇인지, 과학이라는 것을 특징짓는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는 근대과학의 등장과 동시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17c. 과학혁명의 시기라 불리는 이때에 유럽에서는 갈릴레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케플러, 뉴턴 같은 이들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과학 발전(?)(혹은 단절)을 만들어 냈다. 지동설, 관성의 법칙, 직교 좌표계, 미적분, 타원 궤도, 만유 인력의 법칙,,, 지금도 고등학교 물리의 1단원을 구성하는 이 모든 것들이 17세기에 들어 폭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눈부신 과학에 비해 철학은 어떤가? 과학의 객관성에 비해서 철학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이 아닌가? 칸트는 수학, 물리학이 객관적인 이유를 분석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철학을 하려고 했다.


[ 순수 수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순수 자연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학문들은 실제로 주어져 있으므로, 이 학문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이제 묻는 것은 적절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가능해야 함은 현실적으로 있음에 의해 입증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에 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의 이제까지의 형편없는 진행과정이, 그리고 그것의 본질적인 목적에 관련해 볼 때, 이제까지 설파된 어떤 형이상학에 대해서도, 하나의 형이상학이 진정으로 있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순수이성비판,p.230


수학,자연과학이 참인 이유를 칸트는, 순수이성을 이용한 선험적 종합 인식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선험적 종합 인식이란 무시무시한 말은 쉽게 말해서 이런 거다. 경험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확실성을 가지면서(선험) +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과 같은 무언가 새로운 인식(종합)을 주는 것을 뜻한다. 그런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나? 경험해보지 않고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 뭔가 새로운 걸 알 수가 있다고? 칸트에 따르면 그렇단다. 바로 수학과 물리학이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단다. 그렇다면 철학도 과학처럼 선험적 종합 인식으로 구성한다면 하나의 철학,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이 세워질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수학, 과학을 토대로 자신의 철학을 건축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수학, 과학적 인식에 대한 분석이 선행할 것이고 여기에서 과학철학의 시초를 찾을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은 물론 수학, 물리학을 해명하고 정초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가능 근거를 분석해서 이를 토대로 그것들을 넘어서는 초월적 영역에 철학을 세우려는 것이 목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철학의 시작을 수학, 과학적 인식의 분석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그것들이 가장 확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때 그 지반이 무너져 내리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 칸트에게는 당시 잘 나가던 수학, 물리학만큼 확실해 보이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칸트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하는 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다 이유가 있다. 칸트의 과학에 대한 태도가 이후의 과학 철학의 상이한 흐름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잘 기억해주자.

 


2. 구분해 봅시다- by 개리 거팅


자 이제 어려운 칸트 얘기는 그만하고 과학 철학에 대한 입장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큰 도식을 잡고 보는 것이 처음 접했을 때의 공부할 부담을 덜어주니 거칠지만 이용해보겠다. 같은 부류로 엮이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매우 상이한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친분류라는 걸 염두해 두고 보자.

 

a. 과학만이 오류없는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철학은 그에 대한 논리적 설명일 뿐: 논리실증주의, 경험주의, 반성적.

{논리실증주의자들, 푸앵카레, 에른스트 마흐}.

 


첫 번째 입장은 과학을 가장 확실한 인식의 장이라고 믿는다. 철학이 할 일은, 조금 산만하게 진행된 과학 이론들을 보기 좋게+ 공부하기 좋게+ 깔끔하게+ 논리적으로다가 정리해주는 일이다. 과학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말( 가령 세계는 음양으로 이루어졌다.. ) 이런 건 헛소리다.(마흐) 우리가 오류에 빠지는 건 늘 과학처럼 실험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말을 하며 논리가 뒤죽박죽된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 좀 하고 살자. 20c 빈 학파로 유명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카르납,슐리크)

 

b. 과학은 역시 오류없는 인식을 준다. 따라서 철학은 그것을 토대 삼아야 한다: 비판적, 칸트주의.

{칸트, 브롱슈뷕(Brunschvicg), 바슐라르, 카시러, 포퍼}



두 번째 입장도 과학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철학을 그것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외려 과학이 말할 수 없는 영역까지 넘어서는 영역에 그것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a와 다르다. 앞서 본 칸트가 대표적이다. 칸트의 철학은 뉴턴 물리학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뉴턴 물리학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진다. 감성의 직관 형식으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칸트의 초월적 감성학은 선험적 종합 인식으로 더 할 나위 없이 확실하다고 칸트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으로 합쳐지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칸트의 철학 역시 보편적인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칸트의 철학일 뿐임이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c. 과학보다 철학이 더 근본적이다: 존재론적 혹은 형이상학적

{베르그송, 후설, 하이데거}.

c입장이 a, b입장과 가장 갈린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은 확실한 것 그래서 거기에 토대를 세우거나 그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철학과 달리 이 입장은 과학보다 오히려 철학이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앎을 준다고 믿는다. 대표적으로 베르그송, 후설, 하이데거를 들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하이데거를 인용해보면,


[오늘날의 과학의 근본개념들은 해당 과학이 다루는 존재자의 존재에 관한 본래적인 존재론적 개념들을 결코 포함하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본래적인 존재론적 개념들이 단지 오늘날의 과학의 근본개념들의 적절한 확장을 통해서만은 획득될 수도 없다. 오히려 모든 과학적 근본개념을 정의하기에 앞서 근원적인 존재론적 개념들이 획득되어야 하는데,,,] [근거의 본질에 관하여, 이정표2 p.43]


과학은 전자, 질량, 충돌, 자기현상 등을 다루지만 이런 것들(존재자)보다도 먼저 무언가가 있다라는 것(존재이해)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더 근본적인 앎인데 이런 앎을 과학은 물을 수도 묻지도 않는다. 논리학도 마찬가지다. 과학 그만 하고 철학하자.


 


c 입장이 a,b와 얼마나 다른지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철학에 대해 가지는 특권적 위치를 부등호로 나타내면 a>b>c 이 될 것이다. ab은 그럭저럭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과학적 인식의 참됨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c는 좀처럼 교집합을 구성하기가, 특히 a 입장과는 겹치는 영역이 거의 없다. 알다시피 a를 대표하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은 2차 세계 대전 시기 미국으로 망명하고 미국 주류 철학의 흐름을 형성한다. 과학에 대한 서로 다른 극단적 입장 차이+물리적 거리까지 겹쳐지면서 각기 서로의 이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상태가 된다.그래서 요즘엔 영미철학/대륙철학이라 구분을 한다.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냐면 참고로 영미철학자들 중 대다수는 도미니크 르쿠르의 책이 번역되기 전까지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Bachelard)의 발음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설마 바..바첼라드? 이 두 진영사이의 극단적 입장 차이는 90년대 소칼 논쟁이란 식으로 불거지기도 했었다. 뉴욕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앨런 소칼은 [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위하여] 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제목으로 소셜 텍스트(Social Text) 라는 유명한 인문학 잡지에 논문을 보낸다. 그런데 이 논문은 소칼이 일부러 말도 안 되는 과학 지식과 화려한 개념어로 점철한 가짜 논문이었다. 재밌게도 이 논문이 소셜 텍스트지에 실리게 되었고 소칼이 후에 이거 가짜 논문이라고 밝히자 큰 논쟁이 일었던 사건이다. 이후 소칼은 [지적 사기]라는 책을 써서 들뢰즈, 브루노 라뚜로, 데리다 등의 프랑스 사상가들을 지적 사기꾼이라고 칭하며 한 바탕 소동이 일었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고) 영미학자들과 대륙 특히 프랑스 학자들간의 지적 반목을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몇 년 전는 촘스키가 인터뷰를 하며 데리다, 라캉, 지젝을 일컫기를 여러 음절을 조합한 화려한 개념어를 써서 마치 무슨 이론이 있는 척 행세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특히 지젝에 대해선 그가 얘기하는 것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당신이 언급한 저작 중에서 경험적으로(empirically) 검증 가능한 명제를 끌어낼 수 있는 게 있는지 한번 찾아보라라는 말을 했단다.이에 대해서 지젝은 촘스키는 언제나 경험적일 것을 강조하지만, 그 사람만큼 경험적으로 틀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며 받아쳤다고 한다.ㅋㅋ 이 둘 사이의 골이 지금도 여전히 깊다는 걸을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영미철학/대륙철학을 구분한다면 logocentric(영미), nonlogocentric(대륙)이라 할 수 있겠다.

 

 

3.분화: 영미/ 대륙


과학철학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입장차이가 오늘날 철학의 지형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했다. 좀 더 소개하고 싶은 건 그 이후의 진행상황이다. 영미로 이어진 논리실증주의는 이후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이란 더 커다란 학파로 흡수되고 과학철학도 역시 분석철학의 한 파트로서 자리매김한 듯 하다. 그래서 언어 논리의 힘을 빌어 과학적 인식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식의 과학철학을 하고 있는 듯 하다.(물론 언어 논리를 중점에 두지 않는 다른 식의 과학철학을 하는 흐름도 있다. 가령 토마스 쿤, 이언 해킹)

 

한편, 프랑스에서는 전혀 다른 전개 과정이 있다. 아무래도 이 글을 읽을 분들은(나를 포함해) 대부분 이쪽에 관심이 있을 테니 이는 다음에 기회를 봐서 좀 더 살펴보려고 한다. 프랑스의 흐름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영미철학에서는 과학철학이 수많은 철학 분과중 하나인데에 반해, 프랑스에서의 과학철학(여기에서는 인식론이라고 부르는데)은 어떤 한 분파가 아닌 프랑스 철학 전반에 걸쳐 영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대표적 과학철학자인 조르주 깡길렘의 박사논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서문에 미셸 푸코는 깡길렘의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서 그 이후에 생겨난 알튀세르 학파나 라깡의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조금 과장(?)섞인 말을 할 정도니 말이다.

 


4. 이언 해킹(Ian Hacking)은 누구?


다시 돌아가 앞으로 서평을  책의 저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보자. 이언 해킹은 캐나다 출생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그리고 캠브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는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연구로 받았다. 앞서 우리의 논의에 따르면 a에서 이어져온 분석철학 전통에서 공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어 논리를 중심으로 연구해오기 보다는 나름 개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연구를 한 사람인데, 특히 과학철학에서는 토마스 쿤(1세대) 이후 제2세대 과학철학의 흐름을 만든 중심적 인물이다. 토마스 쿤이 패러다임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들었던 근거들은 주로 이론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해킹은 이와 달리 실험 물리학 혹은 응용 물리학(특히 고체물리학)에 관련한 이론을 전개하며 실험과학에 관한 과학 철학내의 흐름을 촉발시켰다. 이런 입장의 차이로 인해 토마스 쿤 부류와 다른 제2세대 과학철학자라고 부른다.


(Ian hacking, 1936~)



영미권에서 이미 성공할 대로 성공한 이 철학자는 스탠포드에서 재직할 당시 푸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푸코에 관해 두툼한 책을 쓰기까지 했는데, 어느날 이 두툼한 책의 원고더미를 휴지통에 버리는 것을 학생들이 보고 놀라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푸코를 연구하지 말고 행하라: Don’t study Foucault, Do Foucault” 라고 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일화가 있다.


이후 정말 ‘Do Foucault’를 해냈는지, 2000년 프랑스 지성의 최고의 자리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과학사,과학철학 교수로 초빙이 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미철학과 대륙철학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촘스키처럼 지적 허세부리는 녀석들이라고 무시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캠브리지라는 영미 전통 철학의 한복판에서 공부한 철학자가, 프랑스의 일반 대학 교수도 아니고 콜레주 드 프랑스에 임명된다는 건 꽤나 센세이셔널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영미철학/ 대륙철학 양 진영에서 모두 인정받은(그것도 각각에서 최고 수준으로) 이 사람의 저서가 당연히 읽어보고 싶지 않으신가?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표상하기 개입하기], [우연을 길들이다], [푸코 효과](공저)가 있고 

번역되지 않은 것들로는 The Logic of Statistical Inference (1965) The Emergence of Probability (1975) Why Does Language Matter to Philosophy? (1975) Scientific Revolutions (1990) Rewriting the Soul: Multiple Personality and the Sciences of Memory (1995) Mad Travellers: Reflections on the Reality of Transient Mental Illness (1998) 

The Social Construction of What? (1999)An Introduction to Probability and Inductive Logic (2001)

Historical Ontology (2002)Why Is There Philosophy of Mathematics at All? (2014)

 

이중 서평을 쓸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Why Is There Philosophy of Mathematics at All?(2014)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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