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장애인야학에서 신임교사로 활동하기로 한 필자는 <장애, 그리고...>를 통해 장애의 지금을 지도로 그리며 장애의 다음을 상상해 보려 한다. 이 코너를 통해 장애에 관한 책을 넓게 읽고 글로 옮기며, 앎과 활동 그리고 삶이 함께 가기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노들장애인야학의 20년, 그리고...

홍은전, 『노란들판의 꿈』(봄날의 책,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개정판 )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나는 올해 초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신임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2년 총파업 집회에서 노들을 처음 만난 후 작은 인연들이 무수히, 꽤나 긴 시간동안 이어져 왔고, 그 결과로서 또는 하나의 새로운 시작점으로서 여기에 서 있게 된 것이다. 노들야학에서 신임교사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정규수업에 참관도 하고 수업 보조도 하고 각종 투쟁 현장에도 결합한다. 이러한 과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노들야학에 대하여 선행학습을 하기로 한다. 그 교재는 노들야학의 20주년을 기념해 교사 홍은전이 쓴 책『노란들판의 꿈』[각주:1]이다. 홍은전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노들 생활 10년 소감을 간추린다.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이 깜빡거리는 형광등을 갈고 사라진 걸레를 찾아 돌아다니듯 사소할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웃을 일이 더 많았으니 충분히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구판『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17)

 

어떠한 사소함이 모여 20년이라는 시간을 쌓아낸 것일까? 왜 그는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곱씹는 것일까? 책 제목을 보면 수업을 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지의 접속사가 붙어있다. 결국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떤 의지가 필요한 일일까? 이 글은 질문들을 나름대로 갈무리하고 선행학습의 결과 보고를 위해서 쓰려 한다.

 



매일 오후 5시, 노들의 정규수업

 


노들야학은 일단 정말 학교다. 애초에 야학이 만들어지던 1993년, 장애인 작업장이었던 정립전자의 노동자들 중 ‘못배운 한’을 풀어보고자 하는 이들을 모아 공부도 하고 장애 대중의 기반을 조직하기 위해 야학을 구성했다고 한다. 70~80년대 학교는 장애인을 학생으로 잘 받아주지 않았다. 친구나 동생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부러워만했던 것. 노들야학은 이러한 배움의 기갈을 축이기 위해 검정고시를 대비한 과목들을 공부했고,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는 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고 한다. 이때의 야학은 밤 야(夜)자를 썼다.

 

“‘노들야학 학생모집’이라는 광고가 내 눈에는 유난히 커 보였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기쁜 마음으로 중학교 검정고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였고 일요일 외에는 노는 시간을 없앴다. 그래도 어떤 날은 한두 장 보다가 엉망이 되어 기숙사로 돌아가 자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책을 펴자마자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45)

 

지금도 야학의 정규수업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저녁에 이루어진다. 정규 과목으로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세부 주제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과학, 역사 등이 꾸려져 있다. 목요일에는 미술, 음악, 방송 등 특활반을 정해 한 학기를 활동한다. 야학의 학생들은 기초문해반인 청솔1반부터 고등과정인 한소리반에 이르기까지 분반이 되어 각 반의 커뮤니티를 꾸리고, 담임도 있다. 근 2년 전부터는 급식도 시작 되었다. 정규수업은 노들이 학교로서 가지는 정체성을 단단히 해 주는 역할과 일상을 꾸리고 점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2015 노란 들판의 꿈, 니(you), 나(me), 노(노란들판)"

미술반 학생들의 전시


국어 2반 수업시간

출처 : 모두 노들야학 홈페이지 사진갤러리(http://nodl.or.kr)



다만 수업은 그 틀을 넘쳐흐르거나 미처 채우지 못한 채 와해되기도 하는 일 또한 왕왕 벌어지곤 한다. 어떤 때의 학생들은 종종 ‘이제 그만 끝내자~’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기도 하고, 저녁식사 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졸음에 빠져들기도 한다. 교재가 따로 없이 진행하는 반의 교사는 ‘오늘은 뭘 하냐?’며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학생 개개인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었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손으로 쓰기가 안 되었고, 어떤 이는 소리 내어 읽기가 안 되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집에 가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숙제도 하기 어려웠다. 야학에서 가장 의욕 넘치는 교사들이 달라붙었는데도 1년이 지나도록 ‘가’에서 ‘하’까지를 도달하지 못했다. 몇 년을 씨름해야 겨우 유치원생 수준의 교육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속도가 더딘 것은 당연했다. ……(중략)…… 30년에 걸쳤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니 극심한 성장통이 따랐고 교실은 짜증, 히스테리, 눈물바람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231-232)

 

사실 그렇지 않을까. 어떤 학교든 학생들은 원래 다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각기 다른 그들을 놓고 통일된 방식으로 배우게 하는 것은 원래부터 틀린 일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어떤 학생이 ‘ㄱ, ㄴ’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학생 전체의 삶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이치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공부하기 위해, 어떤 공부가 필요한 것인지 살피고, 충분히 기다리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노들의 공부 방식인 것이다. 검정고시를 공부하기 위해 따로 낮에 시간을 더 들여 개인교습을 받기도 하고, 덧셈·뺄셈 보다는 시계 보는 법을 먼저 익히기도 한다. 한글을 먼저 배우기보다 위기 시에 필요한 구급약의 이름을 외는 것, 노래 한곡을 통으로 배우기보다는 한 시간에 한 구절씩을 정확히 알도록 써보고 읽어보고 노래하는 법. 학생들의 다름에 맞게 다르게 공부하는 법이다. 큰 틀은 있되, 그 안을 채우는 것은 각자에 맞는 방식으로. 이것이 노들의 정규수업이다.

 

 

이것은 왜 수업이 아니란 말인가, 노들의 비정규 수업

 


그동안 노들은 행동 반경을 넓혀왔고 그에 따라 ‘비정규수업’도 늘어났다. 애초에 장애 대중을 결집하려던 의도로 만들어진 야학은 그 설립 취지를 잊지 않고 움직여 왔던 셈이다. 책에서 최초에 노들에 뼈를 묻겠다는 자로 등장하는 백발교장 박경석 선생님은 언제나 ‘비정규수업’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한다. 이 비정규수업이란 바로 투쟁이다. “야학은 장애인의 학력을 높여서 차별을 가리는 데에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저항의 가치를 실천하는 공간”(78)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 해방의 참 세상”,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너와 나의 해방이라는 큰 목표 하에, 이동권 투쟁과 자립생활운동, 활동보조서비스투쟁,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등 세세한 목표와 방식으로 운동이 일어났다. 차별받는 당사자들의 입에서 투쟁의 구호들이 흘러 나왔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재기 넘치고 발랄하게 그리고 숨 쉬듯이 매일매일.

 




“2001년 이후 시간은 참으로 역동적으로 흘렀다.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장애인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외침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2003년에는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부모들의 폭발적인 투쟁이 시작되었고, 2004년에는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점거 농성이 231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2006년에는 수용시설이었던 성람재단의 비리를 해결하라고 종로구청 앞에서 153일 동안 농성을 하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하라고 농성에 농성을 거듭하였고, 무시로 집회를 하고, 도로를 막고, 단상을 점거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고, 문화제를 열었다.”

(131)

 

이처럼 노들의 비정규 수업은 정규 수업과는 등을 맞댄 한 쌍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투쟁이 매일매일인 것은, 실제로 이들의 삶 자체가 크고 작은 문턱들에 턱턱 걸리는 삶이었음을 방증할 따름이다. 이것은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일상을 얻어내겠다는 투쟁이다.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로 얻어낸 무수한 결과들, 저상 버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활동보조시간 증대, 교육 공간 확보 등은 다른 싸움이 시작될 수 있는 힘, 싸움을 지속하고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으며, 당사자의 운동을 통해 권리를 획득해 냈다는 자부심을 주는 생생한 배움의 장이 되었다. 이 어찌 수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랴. 노들야학의 밤 야(夜)자가 들 야(野)자로 바뀌면서 야학의 의미는 들판처럼 넓어지고 깊어졌다.


“그 경험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의 문제로 집회를 하게 되었고 사람들과 함께 싸우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참지 않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도 바뀌고 있었다.”

(74)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한때 교육이 먼저냐 운동이 먼저냐를 두고 많은 신경전이 오갔다고 한다. 홍은전은 교육파 대 운동파의 진영싸움을 ‘흔들리며 피는 꽃’에 비유하며, 그 두 파가 파벌 싸움에 지쳐 나가떨어진 것이 아니라 갈등과 충돌을 마주해 성실히 다루었다고 기록한다.

 

“어떤 교육파 교사는 어떤 운동파 학생과 함께 살며 그의 자립생활을 지원했고, 어떤 운동파 교사는 연극 수업에 들어가 ‘데모’라면 기겁을 하는 학생의 삶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 운동파가 교육파에게, 교육파가 운동파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교육이 절대 눈감지 말아야 할 것과 운동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

(101)

 

저자의 말처럼 교육과 운동,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삶과도 밀착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들의 정규수업과 비정규 수업은 함께 20년을 훌쩍 넘어서 이어져 왔다. 바로 이것이 ‘노들야학을 한다’는 가장 기본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과 투쟁이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삶과 교육, 그리고 운동이라는 구태의연해 보이는 이 삼합(?)을 지금껏 생동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노들야학 아닐까.



제23회 세계 장애인의 날

출처 : 노들야학 홈페이지 사진갤러리(http://nodl.or.kr)

 

이제 초반에 던졌던 질문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분명 글을 시작하며, 20년간 노들에 쌓여온 사소함이나 행복감,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하게 되는 이유들에 대해 궁금해 했다. 질문들은 수습되지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답할 수 있었던 질문은 ‘노들야학을 한다’는 것의 표면적 의미인 교육 그리고 운동에 관한 것뿐이었다.

 

아마 노들야학을 하는 일의 사이사이에 사소함들은 누군가가 혼자서 무너지지 않게 단단한 지반이 되어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고비들을 넘고, 새로운 싸움의 전선을 앞으로 밀고 나가며 느꼈을 것이 “홍은전들”의 행복감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를 놓치고 글에 녹여내지 못함은, 아직 사소함을 눈치 챌 만큼의 섬세한 눈이 길러지지 못한 까닭은 아니었을까. 내가 노들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바라보는 섬세한 태도일 것이다. 그럴 때에야 나는 장애의 고통과 현실을 볼 수 있고, 나 자신 또한 그에 연루되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때 나는 “장애 해방 참 세상”의 진짜 뜻을 몸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1. 『노란들판의 꿈』은 2014년 노들야학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의 2016년도 개정판이다.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노마디스트
이전버튼 1 2 3 4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노마디스트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07)
이슈&리뷰 (51)
빌린 책 (43)
개봉영화 파헤치기 (8)
풍문으로 들은 시 (13)
장애, 그리고... (4)
4040 (5)
칼 슈미트 입문 강의 (32)
아무도 번역 안 해줄 거잖아 (4)
시몽동X번역기계 (6)
과학 X 철학 토크박스 (2)
해석과 사건 (6)
화요토론회 (23)
기획 서평 (34)
과거글 (271)
Yesterday287
Today151
Total1,779,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