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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문학.예술

사랑은 텃밭에서

지난 4월부터 서오릉 근처에 있는 <은평시민넷>http://cafe.naver.com/epcimin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을 밭을 분양받아서, <서부비정규직센터>http://cafe.naver.com/voice2008 회원들과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언젠가의 귀촌을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합니다.

매년 집 화분에 오이, 고추, 상추, 부추, 토마토 등등을 심어서 길러 먹었던 터라 텃밭도 비슷하려니 했습니다. 몇 천 평되는 밭도 아니고 여럿이서 같이 하는데 텃밭 정도야.

밭 일구고, 씨 뿌리고, 물주고, 수확하면 끝 아닌가?

그런데 과정은 간단한데 그 안에 들이부을 노동력이 얼마나 많은지.....

손바닥만한(10평) 밭인데 밭일 한 번 다녀오면 삭신이 쑤셔서 몸이 상당히 피곤합니다.



텃밭이 아직 베이비일 때;;;;

 


집에서도 전철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넘게 걸리고, 연구실에서도 버스를 한 번 갈아타서 30분 넘게 가야하기 때문에 가기 전에는 '귀찮고 힘든데 오늘은 밭에 가지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매주 가요. 텃밭 옆에서 붙어살고 싶을 정도로 밭일은 경이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하하.

텃밭에 씨 뿌리던 날이 기억납니다. 과연 얘네들이 무사히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싶었지요. 씨를 어떻게 뿌려야 하는 지도 몰라서 한 움큼 씩 줄을 맞춰서 뿌리기도 했고, 함께 밭을 일구는 어린이는 자유롭게 흩뿌리기도 했고요.

맹맹한 땅에서 초록의 작은 생명들이 쏙쏙쏙 나올 때 어찌나 사랑스럽고 신비하던지. 비록 걔네들이 우리가 뿌린 씨앗에서 나온 건지. 잡초인지. 모르긴 했지만. 하지만 다들 잡초면 어떠냐. 땅에서 뭔가 솟아났는데! 이런 심정이었어요.

그 후에도 초보도시농부들은 잡초와 씨 뿌린 애들을 구별하지 못해서 한동안 함께 키웠습니다. 잡초를 뽑을 때에도 잔인한 것 같아서 손이 떨리고. 새싹을 솎아줄 때에는 밭에서도 1등만 살아남는 것 같아서 새싹한테 미안하고.

하지만 뒤돌아서면 맛있게 냠냠냠.

 

텃밭 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튼튼해지고 감각 또한 꽤 변했습니다.

지렁이는 해치지 않아요 처음에는 밭이 많이 낯설어서 여기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텃밭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멀뚱하니 있기 도하고, 쪼그려 앉아서 호미질 하다가 지렁이가 나오면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너무 놀랬었어요. 요즘은 잡초와 그렇지 않은 풀도 제법 구별하고, 상추도 잘 따고(그냥 손으로 뜯으면 되는 게 아니고, 줄기 끝까지 깨끗하게 따주어야 다른 것들이 웃자라지 않는답니다), 지렁이가 나와도 흠칫 할 뿐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는 아닙니다.

손톱에 때는 좀 껴도 괜찮아요 처음에는 햇볕에 탈까봐 썬크림도 챙겨 바르고, 장갑도 꼭 끼고, 긴 소매 옷에, 뒷 목까지 가려지는 밭일 전용 꽃무늬 모자도 챙겨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갑니다.
맨손으로 만지는 흙은 보슬보슬하니 참 따뜻합니다. 온몸으로 온기가 전해져요. 다음 날이 지나도 손톱에 흙 때가 끼기는 하지만 건강해보여서 좋아요.

내 신체의 확장 처음에 밭은 저에겐 너무나 낯선 것이었는데 요즘은 밭과 많이 친밀해졌음을 느낍니다. 조용한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엄청난 집중력으로 명상 할 때에만 경험하던 삼매에 빠지는 일이 밭에서는 상당히 빈번합니다. 내 신체가 없어지고 밭에 녹아드는 기분. 나는 밭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밭 보다 작은 존재가 되기도 하고, 밭이 되기도 합니다. 아! 오묘해!!


이유있는 자신감 급 상승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길러 먹는 것 보다는 마트에서 구입해 먹는 것이 쉽고 시간도 적게 드는 것은 확실합니다. 돈으로 지불해서 해결하던 것을 내 손으로 직접했을 때에 드는 그 쾌감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잠재되어 있던 나의 또 다른 능력을 발견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한 순간의 짜릿한 기분으로만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몸에 새겨져서 나를 계속 움직이게끔 합니다.


손바닥만한 땅만 있으면 굶어죽지 않고, 우울해지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 곳에 있던지!! 
제 삶을 직접 꾸릴 수 있는 기술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고, 
서로의 삶의 방식을 긍정해주고 함께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