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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야만인의 윤리 -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읽기

요즘 왠지 세상이 신산하다. 사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쇠고기, 용산, 천안함, 4대강, 한진 중공업대충 생각나는 대로만 나열해 보아도 세상이 왜 이토록 맵짠지 대번에 드러난다. 뭔가 제대로 된 것 하나 없는 것 같고, 정의는커녕 상식조차 지켜지고는 있는 겐지, 최소한의 공통감각도 잃어버릴 지경이다. 분하다, 씁쓸하다, 무기력하다,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때마다 왠지 죄스럽다. 씩씩하게 살다가도 이런 감정들이 별안간 환기될 때는 정말이지 곱송거려지게 마련이다.

험한 세상 다리가 되는 것도 좋고, 하루하루 열심히 버티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싸움은 길고도 길 것이며 쉽지도 않을 것이다. 지루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제대로 위로받고 즐거워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은 생존을 마주하고 있는 척박한 곳이 아니라 바로 이런 위안과 즐거움의 공간에서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한달 남짓 남은 방학동안 괜찮은 소설 한 편 읽으며 활기를 충전하는 것도 권해봄직 하다. 지금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Wating for the Barbarians(1980)를 추천해본다. 이 소설을 읽고 왠지 울컥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면, 그건 닳고 닳은 당신이지만 괜찮아라는 위로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당신이 정의로운 한에서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는 제국의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을 다스리는 치안판사이다. ‘가 바라는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는 낯익고 평화로운 곳에서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는 것이다. 큰 해를 미치지 않는 야만인들과도 그럭저럭 지내고, 제국의 요구에도 그럭저럭 복무하면서 말이다. 제국의 정책이 호수물의 염도를 높이고, 사막화를 가속화시킬지라도, ‘는 살짝 분노하거나 기껏해야 안타까워할 뿐 그러한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에게 중요한 것은 큰일에 휩쓸리지 않고, “상식적으로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제국의 정보부에서 파견된 죨 대령이 야만인 부자(父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야만인 남자를 잔인하게 죽인 장면을 목격한 후 는 더 이상 이전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의 삶에 최초로 새겨진 이 충격적인 경험을 풀어나가는 쿳시의 솜씨는 이 소설을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 주제로 한정해서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가 이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독특하다. ‘는 죨 대령에 의해 자행된 잔인한 행위에 성급하게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는 죨 대령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그의 행위와 자신의 행위가 다르다는 점 역시 정확하게 구분한다.

감정이입을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태도는 이 소설 전반의 주제이다. ‘는 감정이입을 거부함으로서 죨 대령으로 대표되는 제국의 질서와의 동일시를 거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구해주었던 눈먼 야만인 소녀와의 동일시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는 제국의 군인들에 의한 고문으로 불구가 되면서 스스로를 짐승/야만인으로 만든다. 이로써 는 주민들과의 동일시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는 세계에 내재해 있는 화해불가능한 적대를 자신의 몸에 새긴다.

이러한 극단화된 적대의 체현은 절대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죄악을 의 것으로 바꾸어 내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이다. ‘내 안의 야만성을 발견하는 식의 자기반성은 기만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들의 범죄와, 그것에 따르는 죄의식까지 나의 것으로 바꾸어낸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죄의식은 죄를 저지른 자들의 것이어야 한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들의 논리, 저 냉혹한 주인냉소의 논리를 보충하는 위선적인 아름다운 영혼에 불과할 따름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야만인들과의 싸움에서 패퇴하는 죨 대령과 가 대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불구가 되어 짐승처럼 변해버린 는 끝내 죨 대령과 악수하지 않는다. ‘는 외양상으로는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비참해진 죨 대령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는 이렇게 그들과 죄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대신 고문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겨진 야만인 소년과 눈먼 소녀와 황폐해진 호수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새 의 행동의 원칙은 상식에서 책임으로 변한다. 이러한 의 행보는 죄의식 없는 책임감의 가능성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러운 죄의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혹독한 겨울을 버텨낼 준비를 하면서 야만인을 기다리는 의 선택이 윤리적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글 / 식식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횡단정신분석 세미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