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어디까지 가봤니?

-박영은, [러시아 문화와 우주철학], 민속원 아르케부스 , 2015




김충한/수유너머N 회원 





1. 러시아 문화와 우주철학?

[러시아 문화와 우주철학]? 도서관에서 책을 구경하는데 신기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발동했고, 그 결과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됐다. [러시아 문화와 우주 철학] 대체 무슨 얘기일까?

 

 


러시아 문화는 말 그대로 러시아 문화일 테니, 우주 철학에 대해서 알아보자. 여기에서 말하는 우주 철학은 우주론과 같은 뜻으로 쓰이며 천문학, 혹은 천체물리학에서 다루는 우주의 범위를 넘어선다. 다시 말해서 자연과학으로서의 우주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포함한 자연 전체를 전일적 관점에서 서술하려 했던, 이론 체계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우주는 기로 이루어져 있다. 혹은 세계는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있다 식의 서술을 떠올리면 된다.

 

사실 웬만한 문화권 마다 이런 우주관이 하나씩 있지 않은가. 가까운 중국의 고대 우주관도 제대로 모르는 마당에 러시아산 우주론을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시기에 있다. 여기서 다뤄지는 우주론은 19c후반에서 20c초반에 구성된 이론들이다. 이 시기는 이미 뉴턴 역학과 다윈의 진화론, 기본적인 천문학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다. 따라서 이런 시대에 우주론을 구성한다는 것은 당연히 고대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적 성과를 담아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그래서인지 내가 이 책에서 받은 느낌은 고대의 신비로움에 근대 과학의 차가움이 섞여있는 독특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었는지 알아보자.

 



2. 니콜라이 표도로프: 자연을 개조하라! 진화를 넘어 재생으로

 

책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책의 제목에 가장 잘 부합하는 핵심적인 장은 2(‘자연 철학적 우주론을 대변했던 과학자들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3,4장은 러시아의 종교철학, 신지학에서 다룬 우주론들이라 조금 거리가 있고 5,6장은 저자가 현대 문화담론, 양자물리학(봄 역학)과 러시아 우주론을 연결시킨 것이기 때문에 논의는 2장으로 국한시킨다.


2장에서 소개하는 사상가는 크게 3명이다. 니콜라이 표도로프, 콘스탄찐 찌올콥스키, 블라디미르 베르나드스키. 먼저 니콜라이 표도로프는 19c 중반에 주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도서관, 박물관, 외무성 기록보관소에서 근무하며 거의 독학으로, 모든 분야의 학문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니콜라이 표도로프, 사진찍기를 싫어해서 이렇게 스케치로밖에 안 남아있다능..-



 ‘모스크바의 소크라테스라고도 불리며 자연과학부터 인문학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던 이 만물박사는 후대의 러시아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러시아 지성계의 대부라 불린다. 여기서 영향을 받은 대표적 인물들로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이들이 있다.


사후 출판된 [공동 일의 철학]에서 표도로프는 실증주의를 비판한다. 실증주의는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키고 인간을 그저 자연을 인식하는 존재에 머물게 한다.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해 실제적 행위를 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세계의 진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었고, 이제 인간은 이 의식을 통해 자연 진화를 조종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론적 관조적 이성과 대비되는 실천적 이성이다. 표도로프는 재생이라는 특이한 개념으로 이를 다루는데 재생은 진화와 비교해서 이해하면 쉽다. 진화가 인간에게 있어 본능적/수동적 과정이라면, 재생은 인간의 의지적인 변혁이다. 그것은 자연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자연 속에 인간의 의지와 이성을 주입하는 것이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자. 1891년 러시아에서 혹독한 가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미국에서는 폭발물을 이용해 인공강우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사건에 표도로프는 감명을 받는다. 이런 실천이야 말로 바로 온 인류가 함께 수행해야할 공동의 일이라고 그는 불렀다. 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석탄공들의 처지를 보고서는, 앞으로 인류는 태양과 대기의 흐름에서 에너지를 직접 추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막심 고리키는 이런 표도로프의 주장을 접하고선 표도로프의 자연관이 세계의 모든 에너지를 노동 대중의 이익을 위해 예속시킨다며 반겼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제애를 발휘하여 모든 민족이 노력을 결집해야 한다.


표도로프가 '재생'이란 개념으로 전개한 사상은 그저 재생 에너지를 쓰자는 소박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태양계와 행성의 움직임까지 인간이 제어할 수 있게 되리라 예견(?)한다. 지금의 과학기술로도 엄두내지 못하는 이런 고에너지를 인간이 다룰 것이라 담대하게 말하는 이 사상가는, 인류는 진화하여 천사와 유사한 존재가 되고, 그 존재는 우주의 물질을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변환시킬 수 있게 되리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류는 우주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 [각주:1],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도 이제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언젠가 부활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다.(좀비?)


자연 속에 의지와 이성을 도입하여 인간 부활의 역사를 지향하는 것. 아버지와 선조들을 과거에 묻어두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물려받은 생명으로 아버지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 이것들을 그저 문학적 은유가 아닌 과학적 실증의 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이 표도로프의 독특한 지점이다.

 



3.콘스탄찐 찌올콥스키(1857~1935): “별은 뒀다 무엇에 쓰지요?”


 

표도로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찌올콥스키는 10세 때 성홍열로 청각장애인이 되고 이후 여러 도서관을 전전하며 독학을 했던 사람이다. 홀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한 이 사람은 1895년 우주 비행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하고, 1903년에는 액체 산소를 우주 여행용 로켓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기술했다. 그리고 언젠가 물리학은 공간을 단축하고 시간을 제로에 도달하게 될 방법을 찾을 것이며, 그리하여 인류의 미래는 우주에 있을 거라 예언했다. 또한 전 우주가 모두 하나의 원자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죽음은 결국 연속적인 무한성 속에 융합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찌올콥스키의 사상은 당시 문학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예브게니 엡투센코(1932~)는 실제 자기 소설에 찌올콥스키란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소설 [딸기밭]에서 엡투센코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 찌올콥스키를 등장시켜 그의 사상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잠시 인용해보면,


찌올콥스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약 사람들이 오늘날 적대적인 싸움에 쓰는 돈을 서로를 위하는 싸움에 쓴다면 질병뿐만 아니라 죽음 자체도 정복할 수 있을 겁니다. 죽음은 또한 질병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바이러스를 우리가 모를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먼 조상을 부활시킬 방법을 배우게 될지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소크라테스와 아침을 먹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점심식사를 하고, 푸쉬킨과 저녁밥을 먹고 싶지 않습니까?”

.... 세미라도프는 찌올콥스키에게 물었다.

대체 세상 사람들을 전부 어떻게 처치할 생각입니까? 지구는 비좁아지는데..비좁은 공간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지요.”

별은 뒀다 무엇에 쓰지요?”


 

유리 가가린(1934~1968)



별은 뒀다 무엇에 쓰는가? 바로 인간이 살 공간으로 쓰인다. 우주식민지를 개척하는 것을 미래의 상으로 제시했던 찌올콥스키의 사상은 이후 러시아 우주항공공학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의 로켓 개발을 주도했던 공학자 세르게이 코롤료프(1907~1966)는 찌올콥스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세르게이 코룔로프(1906~1966), 소련의 수석 로켓 기술자로 스푸트니크 계획과 보스토크 계획을 담당했었다.-




4. 블라지미르 베르나드스키(1863~1945): 생명권에서 정신권으로

베르나드스키는 모스크바 대학 교수이자 지질학, 생물학 분야를 연구했던 학자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다른 학문도 섭렵하여 후배 문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으로 미하일 프리슈빈(1878~1954), 안드레이 플라포노프(1899~1951)가 있다.



-블라지미르 베르나드스키(1863~1945)-



베르나드스키는 지질학적 개념을 이용해 인류 역사를 진화론적 도식으로 설명한다. 지구의 가장 안쪽부터 시작한다. 지핵, 암석권, 수권, 대기권 그리고 마지막에 생물들이 살고 있는 생명권이 존재한다. 이는 지구 안쪽을 출발점으로 한 공간적 서술이지만, 동시에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시간적 서술이기도 하다. 생명권에는 특별한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의식을 통해 새로운 지질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 변화로 정신권이라는 또 다른 단계가 탄생한다. 인간들의 문화 에너지혹은 생화학적 문화에너지정신권이라는 층을 형성한다. 이 정신권의 개념은 1921년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있었던 앙리 베르그송 세미나를 통해서 서유럽에도 소개되었다.


생물권과 정신권을 이어주는 교량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기술권이다. 과학/기술할 때 기술말이다. 베르나드스키에 영향을 받은 안드레이 플라포노프는 자신의 소설에 기술권의 개념을 차용한다


-안드레이 플라포노프(1899~1951), 개인적으로는 플라포노프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많은 경우 물질의 변용을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천재 기술자로 묘사된다. 플라포노프에게 기계는 인간이 세계를 변형시키는 도구임과 동시에 인간의 감정처럼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소설 [프로]에서는 여주인공 프로샤의 남편을 기술자로 설정하는데, 이 남자는 전압의 크기를 자신의 욕망처럼 느끼고, 기계 내부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기계의 고통과 저항을 감지하는 인물이다. [광폭한 광휘의 세상에서]에서 화자는 열차를 바라보며 과거 푸슈킨의 시에서 느꼈던 감동과 환희를 느끼곤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관사 말쩨프는 방전으로 인해 실명을 했음에도, 기관차의 감촉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플라포노프가 마냥 기술을 예찬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술이  원래 목적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때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는 것도 동시에 견지한다.

 



5. 근대적인 너무나 근대적인

물론 앞에서 소개한 사상가들의 주장이 모두 지금의 과학에 수용될 수 있다는 건 아닐 게다. 가령 현 인류가 보다 더 진화하여 나중에는 우주의 물질을 자유로이 변형할 수 있는 천사와 같은 상태에 도달하리라는 표도로프의 생각을 진지하게 검토할 과학자는 내가 알기론 없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인문학적 개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런 점에서 이들 사상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어 그것으로부터 세계상을 제시하는 이들의 작업이 오늘날 유행하는 통합, 통섭, 융합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러시아 우주론자들은 이른바 통섭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각주:2]. 트랜스휴머니즘이란 개념이 서유럽에서는 20c중반 산발적으로 제기되어오다 20c후반이 돼서야 인정된 것보다 훨씬 이전에, 러시아에서는 19c 중반에 시작되어 발전되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트랜스휴머니즘의 원조들로부터 많은 인문학적 개념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각주:3]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해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일단 첫째로, 저자가 기대고 있는 윌슨, 최재천의 통섭이란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다. ’통섭이란 개념이 다양한 학문들을 오직 과학이라는 하나의 원리로의 환원이라는, 인문학자들의 비판이 지금은 꽤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저자의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 우주론자들은 통섭의 원조다, 그래서 주목해야 한다' 식의 단순한 주장을 넘어서, 통섭 개념은 무엇인지, 그것과 러시아 우주철학자들의 논의가 정말 일치하는지, 다르다면 어떤 면에서 다른지 섬세한 분석이 있었으면 했다.


두 번째도 비슷한데 트랜스휴머니즘 자체의 문제다. 러시아 사상가들이 트랜스휴머니즘의 원조라고 하더라도, 트랜스휴머니즘의 전제들이 내가 보기엔 17,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령 콩도르세(1743~1794)에게[각주:4] 진보란 인간 지성의 무한한 자기 완성능력에 다름 아니었고 이 역시도 역사를 단계별로 구분한다. 당연히 역사는 발전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데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미분화된 것에서 좀 더 분화된 것으로 진보한다. 그리고 사회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질적이고 분화된 것들을 하나의 단일한 전체로, 유기적으로 통합해나간다. 또한 계몽주의자들에게 공유되는 전제는 과학, 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을 통해 자연이나 세계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는 위에서 등장한 러시아 우주철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이다.


   선형적인 시간 개념, 인간 중심적인 전제, 부분을 통합하고 동질화하는 방식으로 확장(‘우주는 하나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되는 전체론적 관점. 이 모두가 계몽주의자들에게, 백과사전학파에게 이미 제시된 것들이다. 러시아 우주철학자들에게 독특한 점이 있다면, 이들은 이것을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전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전개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기이한 느낌을 받는다면 근대를 넘어선 지점 때문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너무나근대적인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 박영은, [러시아 문화와 우주 철학] , p.42 [본문으로]
  2. 박영은(2015), p.269 [본문으로]
  3. 박영은(2015), p.244 [본문으로]
  4.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5장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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