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힘, 실재를 향한 열정

(바디우, 세기, 이학사)

이진경/수유너머N 회원

 

 

 

복제가 원본을 초과하고, 원본 없는 복제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시대, 진리나 주제을 말하는 게 촌스러운게 되어 버린 포스트모던 시대에, 바디우는 기꺼이 진리와 주체를 말한다. 헤겔은 한 시대의 대세가 된 것을 시대정신이라 명명하며 개인을 넘어선 정신의 힘을 말한 바 있지만, 바디우는 그에 거스르는 반시대성’(니체)의 편에 서 있는 셈이다. 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인 사건진리가 바로 그렇다.


그가 말하는 사건이란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있어도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솟구쳐 오르는 것, 혹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갑자기 도래하는 것, 그게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이다. 가령 80광주사태같은 것이 그렇다. 바디우에겐 아마 685월혁명이 그랬을 것이다. 물론 기존의 상황이나 지식에선 설 자리가 없는 것이기에, 그 사건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것의 도래를 볼 줄 아는 이에게만 그것은 사건으로 온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별 거 아닌 거’, 아무것도 아닌 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사건이라 함은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이 결코 같을 수 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틀이나 지식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모호하기 마련이다. 사회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기존의 통념이나 지식으로 그 사건을 해석하게 되는데, 그 때 그 사건에 고유한, 전에 없던 특이성은 보이지 않게 된다. 따라서 그런 해석에만 맡겨두면, 그 사건은 전에 없던 면모를 잃고 기존의 어떤 것에 맞춰지게 된다. 내란음모 사건이 되거나, 간첩의 선동에 놀아난 폭동, 혹은 늘상 있던 데모 같은 게 되고 만다.



그걸 사건으로 체험했다면, 이런 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건의 특이성을 지우려는 시도, 통념적인 해석과 대결하며, 그 사건이 갖는 의미를 탐색하고 그 의미를 보이게 하기 위해 지배적인 해석과 싸우게 된다. 때론 거리에서, 때론 조직에서, 때론 분석적인 글로, 때론 항의의 함성으로. 이처럼 기존의 지식이나 관념 안에 자리를 갖지 않기에, 그런 지식이나 관념에 간극을 만들고 그것과 대결하며 그것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그런 활동의 충실성을 바디우는 진리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처럼 충실성을 갖고 사건의 진리를 만들어가는 이를 ‘주체라고 말한다.


이런 사건과 유사하게, 기존의 체계 안에 자리가 없지만, 그렇기에 기존의 체계에 균열과 간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것을 정신분석학(라캉)에선 실재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통상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현실을 고려하거나 알라고 말할 때에도, 현실이란 알 수 없는게 아니라 알 수 있는데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그래서 좀만 신경 쓰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현실은 대개 지배적인 가치의 체계나 질서를 뜻한다. 가령 현실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은 현실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나 지위, 남들 흔히 하는 그런 삶의 방식을 환기시키는 말이다. 실재란 이런 가치나 의미를 갖지 않는 것, 현실의 질서 바깥에 있는 것, 그래서 저기 있어도 보지 못하거나 억지로라도 피해가려는 그런 것이다. 얼룩이나 상처 같은 것, 끔찍한 폭력이나 처참한 고통 같은 것이다.



*이 글은 중앙일보 2014.1.25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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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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