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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웹진강의

[이진경의 파격의 고전] 3장 나는 <홍길동전>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세 번째 부분

**본 코너는 이진경 선생님의 [파격의 고전] 원고 중 일부를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이진경의 "파격의 고전">






3장 나는 <홍길동전>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진경





얼마전 출간된 이진경 선생님의 [파격의 고전]입니다. 여러 서점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 번째 부분 보기)




3. 증상적 기호의 상징적 전쟁


홍길동이 왕과 관리를 상대로 벌이는 투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홍길동’이란 기표를 여럿으로 증식시켜 의미의 단일성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자리가 갖는 이 양가성과 그의 정체성이 갖는 모호성을,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혼란을 왕에게 되돌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임금의 명으로 홍길동을 잡으러 나선 포도대장 이흡은, ‘홍길동’이란 이름을 지우고 홍길동이란 인물의 정체성을 속이며 다가온 소년에게 속아 잡히게 됩니다. 이는 홍길동이란 이름의 인물이, 정체성의 확실함과 기의의 단일성을 가정하는 통상적인 권력으로는 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존재임을 뜻합니다. 이후 홍길동이 사용하는 전술은 여러 명의 홍길동을 만들어 팔도에서 동시에 ‘장난’을 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수의 기호들을 동시에 사용하여 ‘홍길동’이란 기표의 의미나 내용, 그것의 위치조차 결정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홍길동’이란 이름을, 체포할 수 없고, 장악할 수 없으며, 포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의미에서 ‘있을 수 없는 기호’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다의적이고 발산하는 기표의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선 그것을 다룰 수 없고 장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기표의 부동(浮動)을 정지시키고 위치를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왕과 신하가 찾아낸 것은 그의 부친과 형을 통해 ‘홍길동’을 유인하고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적절한,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홍길동은 ‘호부호형’에 대한 욕망을 통해 아버지라는 기표에, 가족 안에서의 ‘귀한 자리’에 이미 사로잡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의적인 기표에 단일한 의미를 부여해 하나로 고정할 수 있는 것은 홍길동의 주인기표인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형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의 이름으로 방을, 즉 길동을 부르는 기표들을 써붙여, 가문의 멸문을 협박하며 “스스로 형을 찾아와 사로잡히라”고 호소합니다(39). 그리고 예상대로 길동은 형이 있는 경상감영에 스스로 나타나 오라를 받습니다. 


그러나 홍길동이 그것으로 잡히고 끝난다면, 그의 욕망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 것입니다. 호부호형을 하지 못한 한으로 가출하여 ‘장난’을 벌였고 그 한을 상기시키며 형 앞에 나타난 그는, 이제 팔도에서 여덟 명의 홍길동 모두 동시에 잡혀 들어가게 하여 서로 자신이 진짜라며 다투게 합니다. 홍길동을 대신하는 이 여덟 개의 ‘초인(草人)’들, 그것은 홍길동이란 실제 인물을 대신하는 기호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8개 동시에 잡혀 들어와 서로가 진짜라고 주장하니, 누가 진짜 ‘홍길동’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8명의 홍길동, 그것은 유사한 기표의 증식을 통해 홍길동을 식별불가능한 기호로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었던 셈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 또한 주인기표를 다시 불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즉각 길동의 부친을 불러 “아들을 알아보는 데는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다 하니, 저 여덟 중에서 경의 아들을 찾아내라” 명합니다(41). 홍판서는 “네 지척에 임금님이 계시고 아래에 아비가 있는데도, 이렇게 천고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죽기를 아까워하지 말라”며 피를 통하고 쓰러집니다(41). 임금과 그 아래의 아버지, 길동의 두 주인기표들을 상기시키며 복중을 요구하는 셈이니, 길동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 길동은 모두 쓰러지는 부친을 보고 동시에 눈물을 흘립니다. 부친이 정신을 차린 후, 여덟 길동이 입을 모아 다시 호부호형 못한 한을 다시 말하고 사라져 ‘초인’ 8개만 남습니다. 짚단으로 만든 이 기호들은 단지 한 맺힌 말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호들이었던 것입니다.[각주:1]

 

그 다음 홍길동은 “홍길동은 아무리 해도 잡지 못할 것이나, 병조판서로 임명하면 잡힐 것”이라는 방을 사대문에 붙이고 다닙니다(43). 아버지라는 주인기표 뒤에 있는 실질적인 주인기표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도적을 잡으려다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판서에 제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왕은 다시 길동의 형을 다그쳐 잡아 올리라 명합니다. 길동은 다시 형에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주인기표인 아버지가 사실상 인질로 왕의 손 안에 있는 셈이니까요. 


이전의 속임수가 있었으니, 이번엔 진짜를 식별하려 합니다. 주인기표인 아버지의 지적대로 왼쪽 다리에 붉은 혈점이 있음을 보고 진짜 길동임을 형은 확인합니다. 그 혈점으로 기호의 의미를 확인하고 고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으로 기호의 의미를 고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대궐 앞에 이르자 몸을 흔들어 쇠줄을 끊고 수레를 깨고 사라져버립니다. 이전에는 홍길동을 잡으니 어떤 놈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이번에는 기호의 의미를 하나로 고정하니, 그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셈입니다. 홍길동을 장악할 가능성을 얻으면 식별할 가능성을 제거해 버리고, 홍길동인지 식별할 가능성을 얻으려면 장악할 가능성을 제거해 버리는 ‘불확정성’의[각주:2] 기호학적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식별하여 체포할 가능성이 없음을 반복하여 입증함으로써 길동은 임금으로 하여금 체포를 포기하고, 결국 자신을 병조판서에 임명하게 만듭니다. 다의적으로 발산하는 기호와 통제할 수 없는 기호를 이용한 ‘상징적’ 투쟁을 통해 최고의 주인기표의 인정을 얻은 겁니다. 여기서 길동에게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병권을 장악하여 조선의 무력을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병조판서라는 상징적 지위, 그 명칭으로 표시되는 사회적 인정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병조판서에 임명되자마자 대궐을 떠나 사라집니다. 그런데 나중에 임금 앞에 나타나거나 다른 이들에게 이름을 말할 때 항상 ‘전임 병조판서 홍길동’임을 명시합니다. 그의 이름 앞에 달라붙는 ‘병조판서’라는 기호가 그가 진정 바라는 바였던 것입니다. 


이름을 둘러싼 갈등과 호칭을 둘러싼 상징적 전쟁, 이것이 <홍길동전>에서 길동이 벌이는 투쟁의 요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관리나 임금을 겨냥해서 벌이는 투쟁은 진정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전쟁이고, 기표를 획득하기 위한 게임이며 가짜 전쟁입니다. 기호학적 게임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듯합니다. 그는 의적을 자처하며 부자들이나 악질 관리들을 털고 괴롭히지만, 그것은 이름을 알리고 상징적 지위를 얻기 위한 투쟁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실제로 경판본 <홍길동전>에서 의적으로서 활동하는 장면은 매우 간단하고 소략하게 처리될 뿐입니다. 완판본에선 그 부분을 좀 늘리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속이고 잡히고 다시 속이는 일종의 ‘진실게임’이고,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속내를 고백(!)하며 임금 주변을 반복하여 오가는 ‘밀땅게임’입니다.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는 고백의 주체와 그걸 들어주는 주인기표 사이의 갈등이란 아무리 심각한 것이라도 결코 ‘전쟁’이 될 수 없습니다. 전쟁의 흉내를 내서 만든 스펙터클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일종의 ‘쇼’일 뿐입니다.[각주:3]


임금이 길동을 병조판서에 제수한다는 방을 붙이자, 길동은 “사모관대에 무소뿔로 장식한 띠를 두르고는 높은 수레를 타고 큰길로 버젓이 들어오면서...‘지금 홍판서가 임금께 인사하러 온다’”고 외칩니다. 병조판서를 받자마자 그만두고 사라졌다 돌아와 임금 앞에 나타난 길동이 하는 말은 그의 투쟁이 기호를 이용한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기호를 얻기 위한 상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무뢰배들과 함께 관아를 치고 조정을 시끄럽게 한 것은 신의 이름을 드러내어 전하께 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46)[각주:4] 홍길동이 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홍길동 자신의 입으로 이처럼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병조판서’란 직함을 한 번 얻자마자 그는 ‘홍길동 장난’은 물론 빈민을 구제하는 활빈당의 의적활동 중지하고 사라집니다. 새로운 체제나 가치를 추구했던 것도 아닐 뿐 아니라, 그나마 ‘활빈’이란 명목의 활동조차, 병조판서로 임명해주자 모두 중단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 홍길동의 활동에서 ‘혁명적’ 성격은커녕 ‘개혁적’ 성격도 사실 찾아보기 힘듭니다. 왕에게 자기 설움은 반복하여 말하지만 자신의 설움을 낳았던 서얼제도의 철폐를 요구하지도 않으며, 빈민들을 구제하는 어떤 조치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병조판서가 되어 민중을 괴롭히는 관리들을 징치한 것도 아닙니다. 병조판서라는 이름 하나 받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중단하는 것은, ‘활빈’이란 명목의 활동조차 실제론 개인적인 명예를 위한 게 아니었던가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 점에서 “길동의 활빈활동은 국가적 질서와의 정면대결”(박일용, 2003: 127)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혁명적이란 말은 물론 개혁적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봉건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사상적 한계”(이윤석, 1996)나 “충효의 윤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평가(안창수, 1986)가 실제 내용에 더 가깝다고 보입니다. 이런 한계를 두고, 대다수 민중들이 유교적 이념과 도덕관념에 침윤되어 있었기에, 왕을 제거하고 국가에 반하려 했다면 “길동을 민중적 영웅으로 생각하기는커녕 천하에 다시없는 역적이라며 철저하게 배척했을 것”이며 그간의 활동마저 “순전히 개인적 욕망과 반역을 위한 명분으로 매도되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순화된 내용을 당시 민중의 의식수준을 고려한 서사전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이상구, 2013: 320), 이런 것이라면 ‘서사전략’에 작품의 본질적인 내용이 잡아먹힌 것이 되고 맙니다. 개인적인 명예욕을 위해 ‘활빈’활동마저 쇼로 하는 인물을 ‘민중적인 영웅’이라고 한다면, 민중적 영웅이란 비판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 지지하고 찬사를 보낼 대상은 아니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엔 “반항과 순응의 연속을 통해 당대 사람들이 처해 있던 본질적 삶의 조건을 보여주고, 쉽게 현실 도피하는 대신 그 안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안창수, 1986)는 평가조차 너무 후한 평가입니다. 그 고뇌가 아버지와 임금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1. 이런 기호들에 대해 정신분석학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증상적 기호’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홍길동의 실재와 상징적 지위 간의 채워질 수 없는 간극, 그 간극이 상징계 안에 만드는 얼룩으로서의 길동의 상처,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만들어지는 증상적인 기호로서의 여러 홍길동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홍길동이란 인물은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을 갖고서 그 트라우마 주위에서 증상적 행위들을 반복하는 신경증적 주체가 됩니다. [본문으로]
  2. 위치를 고정하면 에너지 불확정도가 무한히 커지고, 에너지양을 확정하면 위치불확정도가 무한히 커지는 양자적 현상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명명한 바 있지요. [본문으로]
  3. 이에 대해 ‘속임수’와 ‘배신’이란 개념을 대비하여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기표적인 체제에서 벌어지는 기표적인 투쟁이란 사실상 기표들의 사용이나 해석을 둘러싼 투쟁인데, 이는 그 모든 기표를 중심기표인 왕으로 환원하는 속임수의 체제를 구성합니다. 반면 배신이란 얼굴을 돌리며 탈주선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기표적인 가치나 해석을 등지며 시작하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탈기표적 체제에 속합니다. 홍길동은 배신하는 자가 아니라 속이는 자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Deleuze/Guattari, 2000(1) 5장 및 이진경, 2002(1) 5장 참조. [본문으로]
  4. 이 대사는 완판본에서는 빠져 있지만, 동양문고본에는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홍길동전집』 완판본, 75~76; 동양문고본, 16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