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0]


마녀들의 밤,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전주희 / 수유너머N 회원



지난 15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경희씨(51세)는 공항 앞마당에서 삭발식을 했다. 지속적인 성추행과 인권유린, 외주화, 낙하산, 최저임금, 노조탄압까지 뭐 하나 빼먹으면 안 될 것처럼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지내왔던 모든 오물들을 깨끗한 공항 앞마당에 쏟아냈다. 

일터에서 수시로 가슴을 만지는 것도 모자라 회식자리에서 대놓고 접대를 강요하고, 노래방에선 그놈의 혀가 쑥 들어오고,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주무르는 온갖 꼴보기싫은 짓거리들을 하는 자들이 청소노동자의 신발 색까지 수틀리면 꼴보기 싫다고 신고다니지도 못하게 했단다.

한국공항공사에서 정년퇴직한 관리자들이 낙하산타고 내려오는 황혼의 삶은 그렇게 밤의 시간을 즐겼다. 성추행이 문제가 되어 낙하산을 물리치면 또 다른 낙하산이 내려왔고, 그들의 밤시간은 지속되었다. 

낮의 시간, 김포공항의 어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하얀 공간에 청소노동자들은 '숨겨진 노동'이어야 했고, 귀빈이라도 방문할라치면 화분뒤에라도 숨어있어야 했다. 그들의 노동시간은 늘 밤의 시간이었고, 어둠의 힘으로 온갖 추행들이 여성노동자들의 육체를 훝고 또 훝었다. 









인생이 반백년을 향해 달려가니, 새소식을 들으면 옛날 사건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따라나온다. 여성노동자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똥물 뒤집어쓴 노동자, 생리휴가 간다고 했다가 팬티 검사 당한 노동자, 또 어떤 여성, 노동자들. 

 

1998년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들은 그해 밥주걱과 냄비를 뚜둥기며 파업을 했다. 2천명이 넘는 정리해고에 맞서 ‘차 만드는 남성’들과 함께 구조조정 반대를 외치며 싸웠고, 점거파업 기간내내 ‘투쟁의 꽃’이라 불리웠다. 하지만 파업의 끝에 정리해고는 그녀들의 몫이었고, 직영 정규직 노동자에서 하청노동자로 전락한 뒤에야 다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싸움은 패배했다. 파업 이후 더욱 살벌해진 자동차 현장의 노동강도는 ‘차 만드는 남성’들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 때 파업의 동지였던 그들은 더 이상 '투쟁의 꽃'을 기억하지 못했다. 더욱 빨라진 컨베이어벨트 때문에 배가 더 빨리 고파왔다. “씨발년들아 빨리 밥줘”하며 식판을 두드렸고,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두배로 강화되었다. 다시 ‘차 만드는 남성’과 ‘밥하는 여성’으로 그렇게 각각 살게 되었다는 옛날 이야기가 겹친다. 

겹친다는건 반복된다는 것이다. 나는 반복이 싫다. 지루하다. 


프랑스 역사가인 쥘 미슐레는 “익숙한 종소리가 지치지도 않고 울릴 때면 사람들은 하품을 터트린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그대로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일은 늘 되풀이 된다. “내일에 대한 확실한 권태 때문에 오늘 하품을 짓는다.” 

여자들은 이런 소식을 접하면 종종 자신의 온 생애 혹은 자신이 아는 여자들의 모든 삶이 우주처럼 한꺼번에 응축되어 폭발하곤 한다. 수 십개의 장면들이 동시에 떠오르면 피부에 난 솜털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이다. 그러다가 곧 권태에 빠지기도 한다. 씹던 껌을 뱉듯이 무성의하게 “개놈들이 그렇지”라고 내뱉고는 이내 하품을 한다. 하품끝에 눈물이 찔끔 나왔고,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IMF 직후 대대적인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고, 노동자들은 싸웠고, 또 많이들 졌다. 공장은 더 빨리 돌아갔고, 노동자들은 더 싸울 여력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 권태와 무기력의 한 가운데서 식당여성노동자들이 다시 텐트를 쳤다. 이번에는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다. 파업끝에 노조지도부는 정리해고를 받아들였고, 정리해고자 277명 중 144명의 식당여성노동자들이 포함되었다. 투쟁의 꽃을 희생양으로 내주었다며 노조 지도부에 대한 비난이 한동안 일었었다. 그 와중에 노조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서 “정리해고자는 133명 뿐”이라고 했다. 하청노동자는 더 이상 직영 정규직 노동조합원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님 하청이지만 다시 밥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쨋든 144명의 정리해고의 기억은 삭제되었고, 식당여성 노동자들은 화가났다. 




“우리는 사라진 것이죠. 그래서 열 받아서 투쟁을 조직했어요.”




노조지도부와 활동가, 남성 조합원들과의 갈등 속에서, 욕설 속에서, 비난 속에서, 때로는 사측 경비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면서, ‘집안에 가만히 있지 않으면 포르노배우를 만들어주겠다’는 뜬금없는 친필편지도 받아가면서 그렇게 18개월동안, 540일 밤의 시간을 만들었다. 낮에는 밥을 해야 할 시간과 밥을 퍼줘야 하는 시간의 단조로운 반복 속에 하품하며 ‘밥하는 여자’로 되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텐트로 모여 음모를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셨다. 

삭발을 했고, 노조사무실을 점거했고, 성적 모멸감을 주기 위해 보내지는 편지들은 대낮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나체시위! 그녀들은 나체시위의 은밀한 전통을 알고 있었을까?


1976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자본측이 사주한 남성 행동대들이 가하는 신체적이고 성적인 폭력에 맞서 시작된 빛나는 전통!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나체시위는 인천의 ** 공장에서 파업을 깨려고 용역깡패들이 정문을 때려부수자 남성노동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는데, 여성들이 웃통을, 브래지어를 홀라당 벗고 정문의 댓돌에 머리를 쾅쾅박아, 머리에서 난 피를 가슴골에, 축 늘어진 가슴통에 벌건 칠을 해대는 통에 주변의 모든 남성들이 2차로 혼이 빠져 달아났다는 무용담이다. 

밀양할머니들의 나체시위는 또 어떤가! 가슴은 더 쪼글쪼글해지고 배꼽아래까지 닿을 정도였지만 노년의 품격과 여유로 조용히 벗으시고 까만 전투복에, 투구에, 방패에, 무릎과 팔꿈치 보호대에 겹겹이 껴입은 전경들 앞에 고즈넉하게 연좌하는 기품은 나체시위의 한 경지를 이룬다. 


하품은 쏙 들어가고 머리위로 꽃죽이 터지는 것 같다. 축제다. 마녀들은 축제를 좋아한다. 마치 중세의 마녀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어느새 여자에서 마녀가 되어 위풍당당하게 판을 벌인다. 신체에 대한 수치심과 금기의 결박에서 풀려난 여자들은 한껏 과감해졌다. 

미슐레의 <마녀>에는 마녀들이 벌인 축제이야기가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바sabbat’라고 불리웠던 축제가 있었는데, 밤의 시간에 마녀가 벌이는 악마 숭배의식이었다. 마녀는 ‘마녀풀’로 의료행위를 하고 기독교적인 윤리를 거부하며 '사바'를 열어 인간 이하의 인간들과 우정을 나누며 여왕으로 군림했다. 당시의 농노들은 마녀와 마찬가지로 인간 이하의 인간들이었고, 밤의 시간으로 쫓겨났지만 그들은 밤이야말로 축제에 적합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사바는 당시 창궐하던 농노들의 봉기의 진앙지가 되곤 했다. 농노들과 마녀들은 “서로 피를 나누어 마시며 혈맹을 과시”하며 봉기를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당시 사바에서 불리웠던 ‘민중의 노래’는 밤에 부르는 노래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사람이네!


대의를 품고 있고!


참을 만큼 참았고!!


미슐레, <마녀>, 149쪽. 

 


당시 교황과 국왕은 그들이 떠받치는 하나님과 민중들이 애지중지하는 신들을 공존하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민중들의 신들을 죽이고 마녀들을 화형으로 불태우고 농노들을 잔인하게 사냥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춤은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끔찍한 더위 속에 지치도록 온종일 일하고 나서, 앙티유의 흑인 노예들은 25킬로미터 가량을 춤추러 걸어갔다.”(149)



‘사바’라는 중세유럽의 난리굿은 16세기 마녀들의 화형식이 온 유럽을 휩쓸기 전까지 민중들의 밤을 열었다. 마녀들은 추잡하고 더러운 존재들을 불러들였고, 그들과 함께 낮에는 맺지 못한 관계를 만들었고, 민중들만의 ‘다시 만난 세계’를 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밤은 그토록 짧았고, 다시 지루한 일을 해야하는 낮은 길었고 하품이 나왔다.

중세시대 내내 마녀들이 불에 태워진 이유는 그들이 민중들과 우애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가장 매혹적이며 불온한 민중이었던 마녀들을 화형대에 올린 것은 스펙타클했다. 당시 민중들은 더 이상 마녀들의 밤에 함께 하지 않았고, 나아가 그녀들을 교회에 고발하고, 그녀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시기에 마녀들의 화형식이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을 주목한다. 남성과 여성사이의 분할은 노동과 자본사이의 분할과 함께 교차되어 노동내부의 분할과 위계를 도입해 사바와 같은 민중들의 밤을 봉쇄했다. 

다시금 사바와 같은 난리굿이 벌어지는 밤의 시간을 맞이할 수는 없을까? 남자 낙하산들이 거리낌 없이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밤 말고, 혀가 쑥 들어와도 침을 넘기며 숨죽여야 하는 그런 밤 말고. 

마녀들은 죽음도 광장에서 맞이했다. 늘 민중들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들은 죽음조차 공포와 매혹에 휩싸여 맞이했다. 마녀들의 화형식을 지켜본 이들 중 누군가는 그들이 함께 불렀던 밤의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지 않았을까? 역사가는 거기까지 기록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랬을 것이라고 무장적 장담해본다. 



우리도 그들처럼 사람이네!


대의를 품고 있고!


참을 만큼 참았고!!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경희씨는 “인간대접을 받고 싶다”고 했다.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들은 해고된 자신들이 더 이상 셈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사라진 자신들을 보고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여자들은 13세기에도, 21세기에도 위풍당당하게 광장에 나선다. 다시 민중들간의 우애를 만들자고 앞선다. 그래서 그녀들의 ‘다시 만난 세계’에는 그녀들만 있지 않다. 외주화로 인한 하청노동자, 장시간노동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인격적인 모멸감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불러들인다. 심지어 자신들을 삭제하고 싶어 했던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도 부른다. '함께 살자'고. 




cf. 그러고보니 궁금하다. 이대생들은 그들이 노래한 ‘다시 만난 세계’에 과연 누구를 초대했을까? 누구를 초대하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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