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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철학.사회

[이슈] 불편하다, 7080 코드 - 세시봉 콘서트에 대한 단상

불편하다, 7080코드

 

‘세시봉’ 지난 설 연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이다. 이와 함께 지식인에는 ‘세시봉특집 보고 감동 먹은 1인입니다. 세시봉 특집에서 나온 노래 가사 좀 알려주세요~’ 등등 세시봉 관련 질문들이 올라왔다. 가히 전 국민적인 열풍.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1960·70년대 포크 음악 역사를 공부하고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인터넷 포털이 시끄럽다면 전국민의 교육 매체인 방송이 뭔가 한 건 크게 터뜨린 것이다.


 이번 대박 강의는 바로 M사의 놀러와 였다. 세시봉 특집 콘서트를 1, 2부로 나눠서 편성한 것인데 40년 전 불렀던 그 시절 그 노래를 그때 그 친구들과 우정의 하모니로 선보였다. (물론 나는 본방 사수는 안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운로드해서 봤다.) 그 덕분에 진보와 보수,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이들까지 모두 리모콘 싸움 없이 무난하게 시청했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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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률조사기관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세시봉 콘서트' 2탄은 동시간대 방송인 KBS '승승장구' 8.0% 와 SBS '강심장'9.9%를 훨씬 앞서는 16.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최강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

 

 

제작진 역시 기쁠테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시청률까지 잡았다고 하니. 방송국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그 기분 알 것 같다. 사실 그냥 분위기만 좋으면 말짱 꽝이다. 시청률이 좋아야 진짜 좋은 것이지! 여기 저기서 재밌다고 댓글이 달리고 블로그에 캡쳐 화면이 떠도 시청률에 반영이 안되면 아무 소용 없는 게 방송이다. 방송에 있어선 아직도 시청률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현재의 시청률 조사 시스템은 너무나 비합리적이며 알 수 없는 방식이다. 알만한 분은 알겠지만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어쨌든 토끼해 벽두부터 놀러와는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다. 재미, 감동, 시청률!


세시봉 콘서트 이후 기사들을 보면 모두들 ‘40년 전에 활동했던 이들의 노래가 아직도 인기가 있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고, 이렇게 큰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몰랐을까. 이것은 정말 기이한 현상일까. 아니다. 세시봉 콘서트 대박은 지금 현재 우리 방송가나 대중문화 전반에 있는 복고, 향수, 서정성, 등등 주요 키워드가 집약된 결과다.


이미 이런 현상은 라디오에서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주 청취층이 중년층 이상이고, 또 일대일 교감을 강조하는 매체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루 종일 어제도 들었고 내일도 어딘가에서 들을 것만 같은 그런 무난하면서도 서정적인 7080음악만 고집하는 프로그램이 단연 인기다. 아무리 디제이 목소리가 좋아도 기발한 코너가 있어도 글을 잘 써도 소용없다. 7080의 향수를 자극해야만 한다. 공연이나 영화 시장 역시 그러하다. 과거 인기 있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각색하고 그 당시 하이틴 스타를 등장시키면 웬만한 청춘 영화 보다는 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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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명동엔 세시봉 외에도 다양한 음악다방이 많았다.

명동의 <마이하우스> <쉘부르> <로즈가든>, 소공동의 <라스베가스> 등은 문화의 용광로라 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제법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7080세대가 높아진 경제력으로 문화 소비의 주 대상이 됐기 때문에, 또 워낙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위로 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7080문화가 인기라고들 한다. 이런 전문가들의 분석에는 사실 몇 가지 무리가 있다. 7080이라는 세대론 자체가 원래는 서울에서 이 시대에 대학을 나온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이 보다 더 윗 세대까지 이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세대론이 늘 그렇듯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틀이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들어진 틀대로 욕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대충 요약하자면 그 시절 고생 고생 하다가 살아남은 전설! 이 레전드는 세시봉 친구들만이 아니다. 그 시절부터 지금 까지 죽거나 망하거나 하지 않고 살아남은 세대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었는가. 70년대는 우리 현대사 중 가장 엄혹했던 시절 중 하나다.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지곡이 양산됐고, 대학생들은 대학생들대로 데모하느라 힘들고, 대학에 진학은 꿈도 못 꿔보고 통기타 문화·히피 문화 뭐 이런 낭만도 모르고 그저 일만했던 우리 부모들까지 각각에겐 그들 나름의 못 이룬 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시절이 하나의 소비재로 잘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7080 문화 앞에서 우리는 같은 추억을 공유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그 시절 서울에 살았건 지방에서 공장에 다녔건 말이다. 도식적인 나눔이긴 하지만 이것은 지금 현재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 지를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차이인데도 말이다. 차이는 모두 무너졌다. 이 7080문화 앞에서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한 전설의 세대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그래도 지금은 그때 보다 더 낫지 않느냐라는 논리로 나아간다. 아! 누군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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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모여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화목한 모습. 당신의 가족은 어떤가. 이런 모습이 가능한가.

혹시 이렇게 화목한 모습이 아니라 부끄러운가. 부끄러워 말라. 알고보면 이런 화목한 모습 별로 없다.

그리고 겉보기만 화목할 뿐 각자 방에 가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를일이다.)

 

따뜻한 안방에서 70년대의 낭만을 추억하고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한 가족. 부모세대 혹은 삼촌, 고모들은 ‘역시 노래는 송창식이지. 요즘 애들 노래는 죄다 이상해.. 봐라 니 좋아하는 그 놈들은 라이브도 못하잖냐’ 그리고 아버지는 그 시절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해 자식을 키우느라 못다 이룬 꿈을 이야기 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아버지의 잔소리는 싫지만 환갑 넘은 할아버지들이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게 멋있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어쨌든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고생한 건 사실이니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지. 결심했던 이 가족의 설날 풍경은 따뜻했을 것이다.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세시봉이라는 달콤한 당의정이 입혀진 알약을 삼켰다. 그리고 오늘도 평온했으며 심지어 잘 몰랐던 아버지의 아름다웠던 청춘 시절까지도 나누었다는 착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우리가 이렇게 텔레비전을 통해서 부모세대와 소통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부모 세대 뿐만 아니라 어쩌면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저 멀리에 있는 그들과 함께. 잘 들여다 봐라. 그들과 나는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 자꾸 재미와 감동 앞에 우리는 하나라고 말하는 그들. 시청률까지 잡았으므로 옳은 명제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을 의심해봐라. 지금 이 현실을 견디는데는 추억이나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당의정이 입혀진 알약이든 뭐든 먹어야만 한다고? 그래 정 그렇다면 먹어라. 하지만 깨고 나서의 그 절망은... 나도 모른다.

 

글 / 화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