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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섬은 이어져야만 한다 - <섬과 섬을 잇다>, 2014년 5월

섬은 이어져야만 한다

- 섬섬 프로젝트팀, <섬과 섬을 잇다>(한겨례출판), 2014년 5월 26일 출간





노의현/ 수유너머N 회원





지난 여름, 연구실에서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인천에 있는 콜트 콜텍 농성장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콜트 콜텍은 7년 째 투쟁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이곳의 투쟁은 흔히 시위나 집회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형태와는 좀 달랐다. 홍대의 밴드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미술작가들이 농성장 안에 작업실을 꾸리고 그곳에서 전시를 여는 새로운 방식들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운동들이 재미있고 신기해서, 다른 투쟁 현장과는 다른 '문화/예술인과의 연대'가 콜트 콜텍 노동자들을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이는 '문화 예술 활동'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생각과 감각들을 바꿔놓았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여름, 미적지근했던 수박

 

우리가 찾았던 콜트 콜텍의 농성장은 무너진 콜트 공장을 마주한 길가에 세워진 천막이었다. 나는 장기 투쟁 농성장에는 처음 가보았던지라, 예상과는 다른 그 곳의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그것은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그 천막 안에서 아저씨들은 매끼 밥을 해먹고 자고 토끼도 키우고 피켓 같은 투쟁 도구도 만들고 기타 연습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아저씨들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살짝 미적지근한 수박 한통을 전부 썰어주시더니, 여기 있으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맛깔난 솜씨로 고기반찬의 밥상을 차려주시기도하고, 슈퍼가 멀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주시는가 하면, 농성장을 찾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온 김치전까지 부쳐주셨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일상적인' 농담과 이야기들을 웃으며 주고받았다.




 

무더웠던 그날의 콜트 콜텍 천막. 오른편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작고 나른한 토끼도 함께 살고 있다.




비장한 마음만을 가지고 빈손으로 덜렁덜렁 찾아갔던 나는, 얼떨결에 주는대로 다 받아먹으면서 어정쩡하게 앉아 있다가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아저씨들의 입에서 내가 기대했던 대답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들에게 전시와 공연을 통한 투쟁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에게 입소문도 나고, 투쟁현장 같은 데는 잘 오지 않는 젊은이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농성장에 미술가들이 입주해서 좋았던 이유는 같이 이야기하고 밥 먹을 사람들이 늘어나서였다. 혹시나 해서 그동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나 노래에 대해서 살짝 돌려서 질문 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저씨들이 좋아했던 건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졌고, 이슈가 되었던 것들이었다. 결국 내가 생각했던 문화 예술 투쟁이 아저씨들에게 미쳤던 영향 같은 건 없었다는 것을 결론으로, 나는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다.



8년의 하루들

 

그리고 며칠 전, 내 손에 한권의 책이 쥐어졌다. <섬과 섬을 잇다>. 이 책은 국내의 장기투쟁 현장 7곳(코오롱,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현대차 비정규직, 콜트 콜텍, 재능교육, 강정마을)의 사연과 상황들을 만화와 르포를 통해 소개한 책이다. 이 각각의 현장들이 고립되고 잊혀지지 않도록 '섬과 섬을 잇는' 작업으로서 기획된 책인데, 덕분에 평소 여기저기서 조금씩 주워듣던데 불과하던 그 이야기들의 속사정들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 읽다보니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서, 푹푹 한숨 쉬고 눈물도 나고, 혼잣말로 욕까지 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가 만화 속에 그려진 콜트 콜텍 아저씨들의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1년만이었다.


1년이 지났지만, 아저씨들은 여전히 그 자리, 그 천막에서 밥해먹고 시위하고 기타연습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저씨들이 겪은 8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비로소 와 닿았다. 2007년 4월 9일, 여느 때와 다름없던 출근길에 굳게 닫혀버린 공장 문을 맞닥뜨리고나서부터 시작된 이 싸움은, 그저 박영호라는 사장 한 사람의 욕심 때문이었다. 한국보다 임금이 싼 해외 공장으로 이전시키기 위해서, 건실히 돌아가던 대전과 인천의 콜트 콜텍 공장을 무작정 폐쇄해버린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해고되어버린 콜트 콜텍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며 버텼지만, 2013년, 결국 강제로 끌려나오고 공장은 철거된다. 하지만 아저씨들은 이 무너진 공장 맞은 편에 천막을 쳤고, 아직까지 그곳에서 싸우고 있다.




<섬과 섬을 잇다>, "들리지 않는 연주" 中

손수 점심을 만들어주셨던 농성장의 '쉐프' 임재춘 아저씨 인터뷰




8년이라는 시간동안, 매일 매일의 일상 자체가 싸움이 되버린 이들에게, 그 '일상'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날 아저씨가 "사람들이 같이 웃을 때가 가장 좋다"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을, 난 당연한 얘기로 흘려들었었다. 하지만 이런 긴 투쟁에서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상을 함께한다는 것은, 결국 함께 그 무게를 버텨내는 일이다. 그리고 예술 활동을 통한 투쟁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면, 그것은 투쟁을 유지하는 동력 그 자체로 변환 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작년 여름, 내가 그 농성장에서 들었던 대답은 이렇게 1년이 지난 후에야 내 귀에 들리게 되었다.



자기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위하여


"사실 우리도 해고되고 나서야 이 사회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게 됐죠.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문제가 생기니까 자기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투쟁을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이해돼요.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이런 일에 관심 갖기가 어렵겠죠. …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기도 전에 체념을 하고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거 같아요. 그게 편하니까... 결국 본인들한테 비슷한 일들이 생겨야 그때서야 진실을 바라보고 외치겠죠. 제가 그랬으니까요."

<섬과 섬을 잇다>, "들리지 않는 연주" 中


책을 읽다보면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과 밀양의 할매들, 그리고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현장에 있는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있다. 내가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고. 이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고. 이 이야기에 '거봐, 저들도 결국 자기 일, 자기 문제기 때문에 싸우는 거고, 싸울 수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를 깨닫고 난 후 저들이 보여주었던 행동들에 대해서도 과연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싸우다 죽겠다는 여든이 넘은 할매들, 싸움에서 이겨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내더라도 이미 정년퇴직할 나이가 지나 공장에 돌아갈 수 없는 아저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치열하고도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과연 자기만의 문제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콜트 콜텍 아저씨들에게서 들었던 가장 기가막혔던 것 중 하나는, 2007년에 공장을 폐쇄하기 전, 해외 노동자들을 데려와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에게 직접 교육하게 시켰다는 이야기였다.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은 당시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에, 자부심을 느끼며 성심성의껏 그들에게 모든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저씨들은 이처럼 부당한 대우는 받는 이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며, 최소한 자기처럼 '모르고 당하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쉽사리 합의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했다. 이들이 외치고 있는 것은, 이들이 필사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은, 결코 자기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다.


   


섬과 섬을 이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현장에서 싸우고 이들과 함께해야 이유는, 이들이 그저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이웃이니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섬인 이상 우리도 섬이다. 물론 나에게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마 이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섬인 이유는 우리도 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함께하자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의 섬과 그들의 섬이 이어진다면, 그래서 각각의 섬들이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된다면, 나에게 '그' 순간이 닥쳐오더라도 외딴 섬인 채로 세상과 마주하진 않을 것이다.


투쟁하는 이들에게 사람들의 무관심과 오해들이 가슴 아픈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싸움을 외딴 섬에 가두고 고립시켜서, 결국 싸워나갈 힘마저 빼앗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밀양에서는 2,200명의 경찰이 농성장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 할매들이 다치고 연행되고 있다. 어디에선가는 어김없이 '지역 이기주의'를 버리라거나, 보상금을 얼마나 더 받으려고 하냐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다시 한번 이 싸움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연대와 관심,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가 없다면, 할매들이 버텨온 9년간의 필사적인 싸움은 외딴 섬에 갖혀 잊혀져버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