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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다섯 번째: 비교와 경쟁에 대하여

세상에는 훌륭한 말과 글이 아주 많습니다. 풍성하게 운영되는 여러 다른 웹진과 블로그의 글들에서부터, 아카데믹한 격식이 오히려 그 가치를 가리고 있는 학술논문에까지, 수없이 많은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글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부쩍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강연과 발표에서도 보석 같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에서는 도처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말과 글을 모아, 추천의 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권하려고 합니다. 

-코너 소개-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다섯 번째

:비교와 경쟁에 대하여

 




만세 / 수유너머N 회원



 

 

  오늘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글에서는 비교와 경쟁의 여러 효과를 살펴볼 수 있는 책 하나와 논문 하나를 추천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때로 이것은 굉장한 성과를 낳습니다.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의 탄생이 휴대폰 제조사들의 비교와 경쟁 덕택인 것처럼 말입니다. 고전주의 경제학에 따르면, 비교와 경쟁은 이런 혁신뿐만이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정보의 확산을 보장하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비교와 경쟁이 늘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경쟁의 종말(로버트 프랭크 저)에서는 경쟁이 독이 되는 대표적인 상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위 지위재를 둘러싼 경쟁이 그것입니다. 지위재란, 그것의 효용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따른 상대적 지위에서 오는 재화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가지는 군사력의 효용은 절대적 양보다 적대적 국가에 대한 상대적 우위에서 옵니다. 이 경우 군사력은 지위재입니다. 이런 재화는 필연적으로 활발한 비교와 경쟁을 불러옵니다. 상대적 우위를 위한 군비경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각 국가가 군사력에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한다고 해서, 더 많은 효용이 창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측이 동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한다면, 군사력의 상대적 지위는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20의 비용을 들여 10의 비용을 들인 상대국가를 압도하든, 200의 비용을 들여 100의 비용을 들인 상대국가를 압도하든, 거기서 창출되는 국가안보라는 효용은 동일합니다. 덕분에 각 국가는 다른 곳에(ex. 복지, 기간 시설 정비 등) 썼으면 유용하게 쓰일 자원을 군비 경쟁에 쏟아 넣고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효용 밖에 창출하지 못한 셈입니다.


  군사력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대형 아파트나 고급 차량은 대표적인 지위재입니다. 이들의 효용은 직접적인 용도보다, 남들보다 크고 좋다를 표현하는데 있습니다. 집에 축구장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면, 5초안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일시적으로 남들보다 더 넓고 큰 재화를 보유한다고, 상대적 우위를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뒤진 경쟁자가 최소한 나만큼 넓고 큰 집과 차를 사려고 기를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도 상대적 우위를 누리고 싶을 테니까요. 그 결과 45평이 50평을 부르고, 50평은 60평을 부릅니다. 하지만 45평에 사는 내 친구보다 더 넓은 50평에 살던 때나, 나중에 50평에 살게 된 내 친구보다 더 넓은 60평으로 이사한 지금이나, 돈은 엄청 많이 들어갔지만 만족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곳에는 돈을 쓰지 못해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로버트 프랭크는 상대적 우위를 위한 비교와 경쟁이 오히려 자원의 배분을 왜곡하고 전체적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것이 생각보다 일반적인 현상임을 알려줍니다.



출처: http://car.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1/2010070101940.html

교통체증이 일상화 된 대도시에서, 이런 차의 '특별한 기능'이 발휘될 일은 아무래도 많지 않습니다.

이런 차는 주인의 우월한 지위를 어필하고 드러내는 기호로서의 역할이 더 큰 듯합니다. 



  물론 모든 비교가 위와 같은 무한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나보다 위를 보고 비교할 수도 있지만,(상향 비교) 나와 비슷한 사람과 나를 비교할 수도 있고,(유사비교) 나보다 못한 사람과 나를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하향 비교) 심리학자, 특히 사회심리학자들은 이처럼 비교의 시선을 보다 세분화하는 한편, 그것이 경제적 차원 말고도 인간의 심리나 주관적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이런 현상에 문화적 차이는 없는지 고민해왔습니다. 장은영의 사회비교와 주관안녕: 문화 비교 연구는 이런 심리학의 여러 성과를 잘 요약하고, 한국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한 논문이라 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 분들은 읽기가 조금 까다롭습니다만, 논증 부분을 뛰어넘고 결론 중심으로 읽더라도 논지 파악은 어렵지 않습니다(해당 논문은 [한국심리학회지: 사회와 성격]이라는 학술지 23권 2호에 실려있습니다. 도서관에서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논문은 여러 가지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모든 유형의 비교 활동에 대한 동기가 더 높다는 점입니다. 대학생이 다른 연령대나 직업군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 더 많이 비교하려고 하는 성향을 가진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 학생들은 자기향상동기에 의한 상향비교와 그것의 충족이 주관적 안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반면, 미국 학생들은 자기평가동기에 의한 유사비교와 그것의 충족이 주관적 안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말해, 한국 학생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여 자극을 얻고 그에 따라 자신이 향상되었을 때 행복해지고, 미국 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정확히 파악했을 때 행복해진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저자가 제시한 모형에서도 사회비교가 주관적 안녕 정서를 설명하는 정도는 한국의 경우 10%, 미국의 경우 6% 정도에 국한됩니다. 하지만 이는 적어도 한국 사람들이 미국사람들보다 비교에 더 익숙하며, 그 중에서도 상향비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비교에 따른 경쟁은 분명 여러 훌륭한 성과를 낳았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 정도의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버텨온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교와 경쟁이 모든 상황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로버트 프랭크가 지적한 것처럼 비교와 경쟁이 독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완전 경쟁 시장이라는 신념에 따라 비교와 경쟁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기보다는, 비교와 경쟁이 필요한 영역과 그것과 다른 논리가 필요한 영역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 연구결과는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줄로만 알았던 미국 사회보다 사회 비교에 대한 동기와 성향이 더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사회에 있는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비교와 경쟁의 명암을 좀 더 섬세한 시선으로 살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프랭크의 책과 장은영의 논문은 여기에 좋은 참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