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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두 번째: 사실 너머의 사실들

세상에는 훌륭한 말과 글이 아주 많습니다. 풍성하게 운영되는 여러 다른 웹진과 블로그의 글들에서부터, 아카데믹한 격식이 오히려 그 가치를 가리고 있는 학술논문에까지, 수없이 많은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글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부쩍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강연과 발표에서도 보석 같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에서는 도처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말과 글을 모아, 추천의 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권하려고 합니다. 

-코너 소개-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두 번째





꽁꽁이/수유너머N회원






  이번 주에도 역시 수유너머N은 말(강연) 하나와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TED TALKS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튜어트 파이어슈타인(Stuart Firestein)의 ‘무지에 대한 추구’라는 제목의 강연입니다. 연사인 스튜어트 파이어슈타인은 언뜻 그 자신의 분야인 세포분자신경공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필드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무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무지'를 얻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논증과 실험으로 얻어진 '사실'들을 공부하는데 어떻게 무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스튜어트는 말합니다. '저질의 무지'와 '양질의 무지'가 존재한다. '양질의 무지'는 우리가 정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잘 아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사실'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선생은 언제나 학생에게 묻습니다. "네가 이걸 알아?" 물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그것은 더 나은 무지로 넘어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공부란 사실의 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뺀 나머지 '무지'를 지향하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설정'의 시작입니다. 생각해보니 위키피디아와 구글의 시대에 '사실'들의 합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많이 아는 것으로 남앞에 으스대지 못한다는 거죠. 자 이제 사실을 넘어서 무지로 나아가 봅시다.




 두 번째는 이봉범의 논문 「해방공간의 문화사」(『상허학회』, 2009)입니다.  이 논문은 매우 특이한 도입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론이 흡사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불러내면서 해방 후 서울의 풍경을 매우 소설적인 수법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문은 처음입니다. 왜 이봉범은 해방후 서울의 공간에 대해 따로 압축적 논평을 시도하지 않고 소설적인 방법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을까요?

  건강검진을 두고 7백 명의 기생들이 벌인 검진반대의 시위라든가, 가옥 명도와 관련해 한 기혼녀의 권리를 제소한 사건,  1948년 중학입학시험에서 이조말기로부터 지금까지의 나라를 위해 몸을 희생한 의열사 다성 명을 써라’라는 문제에 김구, 이승만, 김규식, 박헌영, 김일성을 적은 학생들이 많았다는 사실, 공장가동은 일제시기보다 1/3로 줄어들고, 각종 보급제의 부족과 세금징수에 따른 불만이 커졌다는 사실, 정치의 검열이 아니라 단지 종이가 없어 시행된 46년 간행물 금지,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벌어진 사이비 유사종교가 범람 등 혼란하기 짝이 없는 해방공간의 문화사는 단 하나의 명제로 압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이봉범은 해방공간에 대해 특정의 명제를 부여하지 말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층위에서 발휘된 언술들을 있는 그대로 늘어놓음으로써 무정형의 파노라마야말로 해방공간의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간 우리가 귀 기울였던 언술들의 주체는 대개가 엘리트 남성들이었으며, 이들은 각자의 열망으로 현실의 조각을 재편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들은 과열되고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나 사상만큼이나 르포르타쥬, 일상의 풍속사에 대한 탐구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0년대에 ‘양복’을 입는다는 것이 제국주의자와 매국노의 상징이었던 반면, 45년 이후 남한에서는 “빈민과 유흥업소 여성,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계층을 상징하게 되었다”는 진술은 해방공간이 단순히 시장의 혼란-역동성 뿐 아니라 정치의 혼란-역동성을 가진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문화연구란 담론의 장에서 공모해 벌어진 규정적 진술을 받아들이거나 계급투쟁의 분석용어로 사건을 단순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시대의 대기를 읽어내는 데 집중하는 일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봉범의 연구는 바로 그 시대의 대기에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명료한 명제가 아니라 다소 산만하지만 애정어린, 풍경에 대한 묘사가 시도된 것이겠지요. 이것이 진짜 '리얼'입니다.

      • 이 논문은 <상허학보>라는 학회지의 
      • 2009년 
      • 13권 53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