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적 대중지성 ‘불온한 인문학’ 2기를 모집합니다!

 

* 주요 프로그램

 

I. 스피노자 - 폭탄을 장전한 사유의 철학자 스피노자와 만나기

 

강의 주제

강의 내용

교재

1

9. 22

회차/일자강의 소개 및 오리엔테이션

2

9. 29

신에 대하여

양태의 존재론

『에티카』1부

3

10.6

자유의지와 목적론

4

10.13

정신과 신체

평행론

『에티카』2부

5

10.20

적합한 관념과 공통개념

6

10.27

정서와 예속

변용능력과 정서

『에티카』3부

7

11. 3

노예와 자유인

『에티카』4부

8

11. 10

인간의 자유

영원성과 지복

『에티카』5부

9

11. 17

정치에 대하여

종교와 정치

『신학정치론』

10

11. 24

홉스 vs. 스피노자

『정치론』

 

 

II. 푸코 -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의 불온한 탐험가 되기

 

 II-1 푸코 읽기

회차/일자

강의 주제

강의 내용

비고

1

12.1

담론과 권력

타자의 사유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2

12.8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으로

3

12.15

권력의 미시정치학

지식-권력-신체

『감시와 처벌』

4

12.22

권력의 미시물리학과 훈육권력

5

12.29

생명권력

『성의역사1』

 

 II-2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의 경제와 정치

회차/일자

강의제목

내용

기본참고자료

6

1. 5

1강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태 변동의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출현과 그 기본 축적메커니즘을 살펴본다

데이비드 하비,

『신자유주의』/

제라르 뒤메닐 외,

『자본의 반격』

7

1. 12

2강 통치성으로서 신자유주의(1)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성립과정과 그 사회적 효과들 주체화의 맥락에서 규명한다.

미쉘 푸코,

『안전, 영토, 인구』

8

1. 19

3강 통치성으로서 신자유주의(2)

9

2. 2

4강 배제사회와 공안체제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검토하고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의 정치적 특성을 분석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경향신문특별취재팀,

『한국의 워킹푸어』

10

2. 9

5강 반신자유주의의 정치학의

몇 가지 길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운동과 정치적 활동을 사유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들을 살펴본다

에티엔 발리바르,

『대중들의 공포』/

자끄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이진경, 『코뮨주의』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트랙 I. 스피노자를 읽자!

회차/ 일자

주제

교재 및 범위

1

9.10

양태의 존재론

『에티카』 1부. 정리1 ~ 정리14.

2

9.17

자유의지와 목적론

『에티카』 1부. 정리15~정리36. 부록.

3

9.24

평행론

『에티카』 2부. 정리1 ~ 정리13.

4

10.1

적합한 관념과 공통개념

『에티카』 2부. 정리13 ~ 정리49.

5

10.8

변용능력과 정서

『에티카』 3부

6

10.15

노예와 자유인

『에티카』 4부

7

10.22

영원성과 지복

『에티카』 5부

8

10.29

종교와 정치

『신학정치론』 (서문, 16~20장)

9

11.5

홉스 vs. 스피노자

『정치론』

10

11.12

불온한 인문학 워크샵

 

트랙 II. 푸코와 신자유주의 통치체제!

회차/ 일자

주제

교재 및 범위

1

12.3

권력의 계보학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17-84

2

12.10

역사와 근원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85-168

3

12.17

민족 그리고 전쟁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169-220

4

12.24

육체의 인간에서 종의 인간으로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221-305

5

1.7

자유주의의 차이와 반복 : 통치론

『통치성과 자유』 68-127

6

1.14

삶과 포개진 죽음 : 권력론

『통치성과 자유』 130-184

7

1.28

적대의 전위 : 법·규범론

『통치성과 자유』 186-233

8

2.4

‘시큐리티’의 강화 : 현대도시격리론

『통치성과 자유』 238-281

9

2.11

공포와 비밀의 정치학

『통치성과 자유』 284-324

10

2. 18

에세이 발표

 

o 강 사 : 손기태, 정정훈, 정행복

o 세미나 튜터 : 박은선, 유영선, 김은영, 권은혜

 

1. “불온한 인문학”은 2011.9. 22.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폭탄을 장전한 사유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저서를 중심으로 한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푸코와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의 경제-정치학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 8. 8. 월요일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신한은행 434-04-354206 (예금주 : 김은영)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http://nomadist.org/xe/bulin)에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김은영 010-8334-4389, 권은혜 010-4515-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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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강좌(7/6-8/10)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강사 인터뷰!

 

 

 

"상상력 없이 우린 변화할 수 없어요!"  

-홍서연 강사와의 인터뷰-

 

 


 

홍서연 소개 - 수유너머N 연구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인류학을 공부했음.  

 

 

 

질문 : 안녕하세요^^ 저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왜 이 공부에 끌리는지 잘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인류학은 확실히 인문학 독자들에게도 조금 낯설기도 하구요.

인류학에 대한 전반적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왜 인류학을 공부해야하는지도 알려주세요!

 

 

   malinowski_wideweb__430x250.jpg    클라스트르_과야키 인디언.jpg

 

 

 

홍서연 : 확실히 인류학은 우리나라에서 철학이나 다른 분야보다 훨씬 안 읽히죠! 인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레비-스트로스나 모스의 이름이 낯설지 않겠지만 그들의 책을 꼼꼼히 읽어본 독자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고요. 외국 인류학자들이 낸 이론서와 수많은 민족지 작업들은 별로 번역되어 있지 않고, 과거에 번역된 것들도 절판되어 잊힌 상태예요. 국내 인류학자들의 작업은 소수의 전공자들만 읽고요.                        

 

인류학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실증적인 학문이라는 점이에요. 인류학자들은 '현지조사'라는 방법으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기록하고 연구합니다.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사람들의 행위와 말, 의례, 생산기술 또는 생활기술, 문물, 친족관계,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드러나는 한 사회의 지식, 정치, 상징적인 것들, 사회관계와 사회조직, 제도, 그리고 또… 한 사회의 특이성, 사람들이 한 마디로 '문화'라고 지칭하는 것이죠.

다양한 것들의 세세한 면모를 읽는 데서 아무런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겠죠.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건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질문 :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것이 인문학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부족 때문이라...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홍서연 : 스스로 사유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기보다, 보증된 이론 또는 이론가에게 기대기 위해 공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학문은 보증을 해 주는 안전장치가 아니거든요. 특히 인문학은요. 가령 철학은 언제나, 익숙한 방식으로 굳어져버린 믿음들을 전복하여 이미 있었던 개념들을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어요. 우리가 푸코, 들뢰즈, 랑시에르에게 열광한다면 그것 또한 그들에게 안주하기 위해서는 아니거든요. 그들의 권위에 의존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이율배반적이고요.

다시 인류학으로 돌아와서, 인류학은 현장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현실의 무한한 개별성으로부터 시작하는 셈이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언어로써 다루기 힘든 부분, 개념과 언어의 틀 밖으로 세어나가 버리는 부분, 거기 뿌리박고서 하는 작업입니다. 흔히 감각을 통한 사유는 편견에 지배되기가 쉬운데, 인류학의 사유는 오히려 자문화중심주의적인 편견을 깨뜨리는 사유입니다. 거기에 긴장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개별성 속에서 어떻게 편견에 치우치지 않을 것이며, 개념화 작업 속에 어떻게 특수성을 담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과 접촉해서 낯설고 불편한 생활양식 속으로 들어가서, 종종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과 함께 얽히면서 강도 높은 감정적 투입 속에 자기 몸을 던져 넣어야 하지요. 인류학자들의 민족지 작업들은 그걸 견뎌낸 다음에만 탄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은 그 익숙함 때문에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착각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죠. 우리가 경험과 교육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은 현실의 아주 작은 조각들일 뿐이에요. 인류학은 우리가 '모른다'는 걸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알 때에만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가 있어요.

 

 

mauss.jpg malinowski.jpg        Clastres1.jpg

                모스                           말리노프스키                             클라스트르        

 

질문 : 강좌 제목은 그런 인류학의 성격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왜 "근대의 외부들"이고 왜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인가요?

 

 

 

홍서연 : 필연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물질적 조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면 거기서 필요한 건 상상력이에요. 상상력은 우리가 지각하는 하나의 사물, 하나의 사건, 하나의 현상을 통해 무한한 확장을 이루는 능력이에요. 경계들을 넘어서 체감하는 능력이고, 한계들을 넘어서 인식하는 능력이죠.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변화를 가져옵니다. 다시 말해 상상력 없이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어요. 강좌 기간 동안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얘기를 하고 사유를 할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 변화된 상태로 나아갈 거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세계를 발명할 겁니다.

이번에 다룰 여섯 권의 책은 모두 '원시사회'라고 불리는, 근대사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 물론 인류학이 언제나 그런 사회를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건 우리에게 가장 이질적인 문화를 통해 우리 자신을 사유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책들에서 우리는 이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몹시 친숙한 것들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근대 이후의 사회는 '근대적인 것'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한 착각인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결국은 나 자신에게서 나의 외부라고 생각했던 것, 다시 말해 타자를 발견할 거예요. 우리 사회 안에서 우리 사회의 바깥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거고요. 좀 전에도 '솔직함'을 말했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기만에 맞설 수가 없어요.

 

 

 

질문 : 강의 주제로 되어 있는 책들의 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Leroi-Gourhan.jpg   .레비스트로스.jpg

             르루아-구랑                              레비-스트로스

 

 

 

홍서연 :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Malinowski, 1884-1942)는 영국 사회인류학의 창시자이고 현지조사 방법론을 정립한 사람이에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증여론>의 모스(Marcel Mauss, 1872-1950)는 증여관계뿐만 아니라 주술, 의례, 기술(테크닉)에 대해 중요한 작업들을 남겼죠.

르루아-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은 선사시대 도구와 종교를 연구한 프랑스의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에요. <인간과 물질>, <환경과 기술> 등의 책을 통해서 인지와 생태학에 대한 이후의 사유들에 대해 큰 영향을 끼쳤는데, 국내에는 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아요.

프랑스의 정치인류학자인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1934–1977)는 남아메리카 부족사회들에 대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상당히 이론적인 논의를 전개하는데,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와 <폭력의 고고학> 두 논문집이 번역되어 있어요. (과야키족에 대한 민족지가 번역되지 않은 건 좀 아쉬워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의 책은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강의 주제인 <야생의 사고>는 그 중에서도 가장 구조주의적인 냄새가 옅은 책이지요.

 

 

 

질문 : 강의 프로그램으로 선택한 책들의 선정 이유를 알려주세요^^

 

 

 

홍서연 : 사유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들을 선택했습니다. 첫 강의에서는 말리노프스키와 함께 영국 사회인류학을 소개하면서 인류학이 흘러온 역사를 짚어볼 겁니다. 사회인류학은 인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했거든요.

 

또한 경계를 넘나들기에 좋은 저자들을 선택했습니다. 인류학적 사유 자체가 경계를 넘어 체감하는 사유이지만, 선택한 책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말리노프스키의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가지고 실험을 합니다. 모스의 <증여론>은 데리다, 부르디외 등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고요. (길게 말하면 잔소리일 터!) 르루아-구랑의 <몸짓과 언어>는 아마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결점을 보여주기도 하고, 책의 주제 자체가 경계를 넘어 흘러요. 최근에 프랑스에서는 미학에서도 참조되고 있고요.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국가, 권력, 사회에 대한 철학적 문제제기들의 연장선상 안에서 읽힐 수 있죠. 들뢰즈, 가따리의 <천 개의 고원> 12장은 클라스트르의 '전쟁기계'에 대한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모스의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논문인데, 주술(magic)에 대한 민족지 자료들을 가지고 이론적 작업을 합니다.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 The Witches>를 읽어보셨어요? 마녀는 눈동자 색이 수시로 바뀌고, 발가락이 없고, 침이 파란색이고… ^^ 이 논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열거가 등장해요. (어쩜 로알드 달은 이 논문을 읽고 영감을 얻었는지도?) 하지만 로알드 달이 아이들로 하여금 마녀에게 잡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녀의 특징들을 열거한다면(^^), 모스는 인간이 사유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주술사의 특징들을 정리하죠.

 

마지막으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지식'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유할 때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한 것처럼 역사성을 고려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 시대, 지역, 사회의 특수성과 구체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분야와 관계 없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에요.

 

저자들은 공부한 여정에서도 경계를 넘어 흘러다녔어요. 레비-스트로스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클라스트르도 인류학을 하기 전에 철학을 했죠. 모스는 사회학자이기도 했고, 르루아-구랑은 고고학자였고, 말리노프스키는 인류학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한 다음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어요.

  

 

질문 : 강좌를 듣기 전에 미리 준비할 것이 있나요?

 

 

홍서연 : 책을 읽고 오면 가장 좋겠지요(번역본이 있는 경우). 하지만 시간에 쫓긴다면 꼭 읽고 오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감각에 곧바로 와 닿는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거예요. 그러니 잘 뚫린 귀를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들은 것들을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결합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주세요. 강좌가 끝날 때쯤엔 더 접속률이 좋아진 뇌신경과 더 좋아진 시력과 더 예민해진 내 몸의 안테나를 확인하는 것이 이 강좌의 목적이에요.

 

 

 

     감사합니다. 7월 6일 첫 강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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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 1 1  여 름 강 좌 안 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은 매 분기별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경험을 쌓아가고자 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그리고 삶으로부터 다시 공부를 길어내는 느리지만 부지런한 여정! 배움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개강일: 2011년 7월 4일 월요일

 

∙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218-23 이스턴빌 2층 수유너머N | 전화 (070)8263-0910 | http://www.nomadist.org

 

∙ 접수계좌: 우리은행 011-9571-1509 (휴대 전화번호와 동일) 예금주 명: 오하나

 

∙ 강좌문의: 오하나(011-9571-1509), 문화(010-6210-3021)

 

∙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위의 접수계좌에 입금하신 후, <강좌 신청 및 확인> 게시판에 강좌명과 입금자명을 남겨주세요. (게시판 바로가기 클릭!)

(수강생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꼭 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세요.)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진행하는 모든 강좌의 수강료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강좌신청> 게시판의 공지를 참조해주세요.

 

 

 

 

 

01 예술 강좌| 20세기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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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4일 (월)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외부’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다시 사유해 보려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꿈과 무의식’을 생각해 보는 것은 ‘깨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20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꿈꾸었던 혁명의 예술, 초현실주의를 만나본다.

 

 

1. 상징주의, 매혹적인 상상과 허구의 세계 _유정아

보이는 현실의 재현에 몰두했던 인상주의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상징주의자들. 그들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사상과 작품세계.

 

 

2. 다다이즘, 째깍거리는 정치적 폭탄 _유정아

무정부주의적이었던 다다이스트들의 등장과 활동, 부르주아 예술을 비판하고, 정치, 철학적 전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의 재기발랄한 반미학!

 

 

3. 초현실주의 선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_유정아

비이성적인 것을 사유할 또 다른 권리, 1924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의 태동과 무의식의 탐구!

 

 

4. 초현실주의 그룹과 “섹스 토킹” _박수진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랑과 섹스, 욕망과 쾌락과 도덕, 무의식과 충동.그 거칠고 흥미진진한 논쟁!

 

 

5. 벤야민과 초현실주의, 대중문화라는 꿈나라 _유정아

발터벤야민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상품물신의 세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매혹과 비판

 

 

6. 아우라의 흔적, 초현실주의 귀환과 현대미술 _박수진

초현실주의 전시를 통해 만나는 타자성과 재현의 문제, 20세기 후반의 전시와 비교하며 새롭게 조명하는 초현실주의의 영향과 흔적.

 


 

 

02 인류학 강좌|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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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6일 (수)

 

강좌회비 : 10만원 (6강)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학적 상상력이다. 자연과 문화, 환경과 인간,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이라는 이분항의 긴장을 가로지르자.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탐색하자! 우리는 인류학의 여섯 가지 모멘트를 통과하며 교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공리주의, 그 실용주의의 철벽을 내파할 것이다. 우리 안의 낯선 외부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1. 섹슈얼리티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 _홍서연

말리노프스키는 모권제 사회인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가족관계를 통해 원시사회의 섹슈얼리티를 기술한다. 문제는 성적 억압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모권제는 어떻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열시키는가?

 

 

2. 선물 : 마르셀 모스, <증여론> _오하나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사회이다. 그리고 아직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모스는 합리적 교환 대신 선물을 택한 공동체를 분석한다. 강의를 통해 우리의 삶의 비자본주의적 요소,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3. 신체와 언어 : 앙드레 르루아-구랑, <몸짓과 언어> _홍서연

태초에 몸짓이 있었다! 몸짓은 인류학에서 의례와 테크닉의 기본단위이다. 르루아-구랑의 선사시대 고고학을 통해 기술과 언어, 인지능력과 사회성의 상관적 발달 궤적을 추적해 보자.

 

 

4. 국가 :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_문화

클라스트르는 추장제 사회 속 전사들의 잇단 전쟁과 무모한 행동에 주목한다. 폭력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국가 없는 미개 사회가 떠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전쟁이 중심적인 권력의 출현을 막는 국가 방지 메커니즘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5. 주술 : 마르셀 모스,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 _홍서연

주술(magic) 최초의 사유 형태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인간행위를 사법적 행위, 기술적 행위, 종교적 의례로 나누는 모스에게 주술은 관례 이외의 것을 산출하는 창조적 힘을 지닌 것이었다. 주술사는 어떤 사람인가? 주술은 어떤 조건에서 효력을 갖는가

 

6. 야생성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_정정훈

새로운 사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의 방식과 삶의 방식이란 단지 하나의 삶의 체제에 불과하다. 레비스트로스의 저 유명한 책, <야생의 사고>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삶의 체제를 모색한다.

 

 

 

 

 

03 철학강좌 | 히치하이커의 정치학 - 현대정치철학의 지형과 지표들을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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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8일 (금)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촛불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고취됐다. 하지만 이 관심이 복지국가론으로 축소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국가의 운영방식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법. 이 강좌를 통해 우리는 현대정치철학의 이론적 공간을 탐사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자 한자. 국가권력의 지반을 넘어서는 철학자들의 기발한 해방의 사유에 탑승하기.

 

1. 한나 아렌트 : 오이코스와 폴리스 _이진경

폴리스로부터 오이코스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빈민을 몰아내려는 정치적 사유에 히치하이킹! 오이코스를 통해,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통해 폴리스를 전복하는 정치를 사유한다.

 

 

2. 자크 랑시에르 : 평등의 정치학 _이진경

치안과 정치의 대비 속에서 자격 없는 자의 정치학을 제안하고,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만드는 감성의 정치. 랑시에르의 사유에 히치하이킹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평등성의 정치학까지 밀고 가본다.

 

 

3. 미하일 바흐친 — 유혈 낭자한, 도래할 사건으로서의 혁명 _최진석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 눈에 ‘성숙한 민주주의’는 폭력을 독점 행사하는 자들의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미하일 바흐친을 통해 혁명과 정치, 폭력의 난맥상을 돌파한다. 혁명은 정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4. 자크 데리다 — (불)가능성의 윤리와 정치 _최진석

정치의 윤리, 혹은 윤리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정치의 잠재성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데서 비롯된다. 데리다의 <법의 힘>을 통해 불가능에 도달하는 행위, 그 속에서 실현되는 정치를 발견한다.

 

 

5. 에티엔 발리바르 : 이데올로기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_정정훈

스마트폰과 SNS로 표상되는 첨단의 세계 한 복판에서 오히려 배제된 자들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종, 종교의 이름으로 무의미한 폭력을 휘두르고... 우리는 정치의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의 복원을 고민하는 발리바르의 정치 철학을 따라간다.

 

 

6. 질 들뢰즈 : "소수정치, 또는 정치의 소수화" _변성찬

들뢰즈의 ‘소수성’ 개념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정치학’을 재구성해보는 것, 이것이 이번 강의의 목표다. 들뢰즈가 구분한 ‘고전적 정치영화’과 ‘현대적 정치영화’의 차이를 중심으로, 그 함의를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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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내가 민주주의를 다시 사유하려 하는 것은 그러니까 독재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이 책에서 쓰려고 했던 민주주의는 단순히 독재 너머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너머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불화 관계에 있는 민주주의다. 나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자임하는 정부 아래서도, 거기에 맞서, 때로는 그것에 무관하게, 민주주의를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난 그들에게서 ‘데모스의 힘’을 보았다. 즉 나는 그들에게서 ‘민주주의’를 보았다.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이런 질문에 앞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질문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6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에 걸쳐 저자 고병권과 함께 근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읽습니다. 저자와 함께 꼼꼼하게 책을 읽어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통치, 아니면 국민주권을 의미하는 말일까.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도달할 목표인가 질문해 봅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종합토론으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대답을 찾아봅니다. 저자와 함께 민주주의를 사고하고 싶은 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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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통치인가
2강.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의미하는가
3강. 민주주의는 도달할 목표인가
4강. 종합토론


* 일시: 2011년 6월 7일 ~ 6월 10일 저녁 7시(4일 연속 강좌)
* 장소: 수유너머 R
* 강사: 고병권
* 강좌회비: 7만원 / 정원: 20명 / 접수계좌: 우리 1002-237-564564(김현식)
* 강좌문의: 김현식 (공일공-7355-0570 / zziraci@gmail.com)
* 접수방법: 접수계좌에 입금하신 후 게시판(클릭)에 댓글로 이름, 연락처, 입금자명을 남겨 주십시오. (연희동 수유너머N이 아닙니다. 수유너머R 게시판에서 확인하시고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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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두 번째 트랙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다. 연구실에 자주 접속한 친구들이라면 들뢰즈·가타리 이름은 번쯤 들어봤을터인데... 그의 다른 저작 중에서도 『안티 오이디푸스』를 선택한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지난 트랙 1에서 맑스의 『자본』을 읽고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는데는 뭔가!?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맑스의 『자본』을 읽고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들뢰즈·가타리를 만나면 조금은 해소가 되지 않을까? 혹은 어떻게 증폭이 될까? 여기저기서 트랙 2 강의에 대한 질문들이 들린다.

 

그동안 좀처럼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학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강의 준비(?)와 집필 활동(?)에 여념이 없었다는 최진석 선생님을 만나 궁금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 이들테면 “왜 하필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입니까? 절판되서 책 찾기도 힘든데용?” 같은 기초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왜 지금 우리는 들뢰즈·가타리의『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어야 할까?

 

 

인터뷰어 / 화 (불온한 인문학 튜터)

인터뷰이 / 최진석 (불온한 인문학 강사)

 

 

 

: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는 선택한 이유는 뭔가? 들뢰즈의 다른 책들도 많은데~ 그 중에서 『안티 오이디푸스』를 고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진석 : 들뢰즈·가타리가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란 제목으로 책을 두 권을 냈다. 첫 번째가 『안티 오이디푸스』 (L'Anti-oedipe : capitalisme et schizophr nie)고 두 번째가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 nie 2)이다. 들뢰즈는 워낙 전방위적인 철학자이기 때문에 책 마다 특별한 제목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란 시리즈로 나온 것은 사회철학에 해당하는 책이다.

내가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다. 『안티 오이디푸스』가 들뢰즈의 사회철학책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내가 기대하던 사회철학과 이미지가 다르더라.

 

 

화 : 그 때가 대략 몇 년 전?

 

진석 : 90대 중반에 처음 읽으니까... (자세한 건 묻지 말라... ㅠ)

어쨌든 그 당시 사회철학 하면 마르크스나 헤겔을 생각하거나 좀 세련된 사람이라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 들을 이야기 했다. 그런 책들의 특징은 굉장히 논리정연하고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피아를 분명히 구분한다. 그런데 『안티 오이디푸스』는 사회철학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상당히 깨더라.

 

 

 <그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오???

 

 

 

: 뭐가 그렇게 깼나...?

  

진석 : 무엇보다도 전혀 이해할 수 없더라. (웃음) 재밌는 것은 『안티 오이디푸스』 첫 문단에서 ' <그것>은 어디서나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멈춤 없이, 때로는 중단되면서. <그것>은 숨쉬고, <그것>은 뜨거워지고, <그것>은 먹는다. <그것>은 똥을 누고 성교를 한다. 그것이라고 불러버린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어디서나 그것들은 기계들인데, 결코 은유적으로가 아니다.' 라고 한다. 여기서 <그것>은 어떤 대명사가 아니라 사실은 이제 사회전체 혹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감싸고 존재하도록 만들면서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힘 즉 생성력에 대한 이야기 이다.

 

 

: 그래도 『안티 오이디푸스』읽으려고 시도 했다가~ 문단 보고 뭔말이야? 하고 덮었단 친구들도 많더라. 도대체 그 <그것>이 뭔지 도통 감이 안온다~

 

진석 : 프로이트로 따지면 리비도(Libido) 같은 것이다. 사실은 그런 힘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힘의 장 힘의 무대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하는 가가 바로 사회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티 오이디푸스』는 사회철학적이고 역사철학적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사실 이런 걸 안 건 굉장히 나중의 일이다^^)

 

 

: 들뢰즈·가타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이 있을 것 같다.  다른 사회철학과는 어떻게 다르던가?

  

진석 : 사회철학이나 역사철학이란 관점에서 이 책을 볼 때 들뢰즈와 가타리가 전제하는 것이 있는데 삶이나 사회의 역사에서는 항상 중심화하는 힘이 있고 그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힘이 같이 있다는 거다. 전자를 구심력 후자를 원심력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 힘의 상호관계가 특정한 사회형태를 결정짓기도 하고 사회가 다른 사회로 변화하게 하는데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확장적인 측면을 가지면서 모든 것을 중심적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이때 이 자본주의를 중심화하는 힘, 사회의 모든 방면으로 확장하는 힘이라는 것이 자본의 힘이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봉건사회다. 봉건사회에서는 신분이라는 규칙이 절대적이었다. 가령 양반과 상민은 결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분리돼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도 있다. 돈 많은 상민이 양반 신분을 산다. 그리고 그는 양반 행세를 한다고 큰 갓도 써 보고 기와집도 올린다. 그렇게 해 봤는데 양반들이 인정을 안하고... ‘저 놈은 원래 상민 출신이다.’ 결국 별로 재미를 못 봤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신분이라는 규칙(코드)다. 이 신분이라는 규칙(코드)은 봉건사회에선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지 않느냐. 과거로 가면 갈수록 신분을 규정하는 벽이라는 것은 더 두텁고 강했다. 한 사회가 통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와서는 완전히 변한다. 잘 알다시피 ‘돈’이면 안되는 게 없지 않느냐. 내가 물건을 파는데 ‘양반한테만 팔고, 상민한텐 안판다?’ 아니지 않느냐. 돈은 이전의 신분 관계를 해체 시키는 힘이다. 또한 과거에 있었던 유기적인 공동체 역시 다 파괴한다. 씨족 공동체, 지역 공동체가 화폐가 도입되면서 무의미하게 됐다.

 

화폐라는 것이 교환형태가 되면서 돈에 의해 모든 것이 평등하게 환원되어 버리는 이런 상황이 자본주의 체제의 보편성이다. 돈이라는 규칙. 신분이 아니라 돈이라는 규칙이 자본주의 사회를 재패했다. 이것을 들뢰즈·가타리는 초코드화 라고 했다. 자본주의는 굉장히 모순적인 양면성을 갖는다. 자본은 모든 것을 평등하고 공평하게 만들어주지만. 자본이 없다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화폐 없이는 그 무엇도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

 

겉보기에는 자본주의는 평등하고 이상사회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돈이라는 규칙.. 그 누구도 화폐를 통하지 않고선 세상에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돈을 벌지 않을 수 없고.. 돈을 벌어야 하는 규칙에 종속되지 않고선 살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화폐에 대한 중심화이다. (이 내용에 대해선 “불온한 인문학” 트랙 1『자본』 강의에서 열심히 배웠지요? ^^)

 

 

 

 

 

목요일엔 『안티 오이디푸스』를 토요일엔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 “불온한 인문학”은 목요일 강의와 함께, 토요일엔 함께 책을 읽는 집중 세미나를 하고 있다.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는 목요일 강의를 통해서 만난다면 토요일 세미나에서는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읽는다. 권의 책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도 궁금하다.

 

진석 : 빌헬름 라이히는 20세기 초에 독특한 정신분석 학자였다. 그는 대단히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당시에 사회 하층부를 형성하고 있었던 노동자 계급이 분명히 계급의 해방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 지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 한국 정치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왜 계급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진석 : 그렇다. 빌헬름 라이히도 아는 것과 실천이 확연히 분리되는 현상 목격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노동자들도 돈의 규칙을 따르는 한에서 그들이 품고 있었던 계급 해방의 욕망이라는 것은 사실 자본가들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식에 있어서는 자본가들에게 반대했지만 그들의 욕망에 있어서는 자본가들에게 타협하거나 종속돼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이히가 던진 질문이 “왜 대중은 혁명적이지 않는 가” 다.

 

들뢰즈·가타리는 질문을 이어받아서 이렇게 대답한다. “문제는 대중이 혁명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욕망이 혁명적인가 아닌가” 다. 혁명의 열쇠 혹은 해방에 대한 잠재력은 어느 누구에게 어떤 계급에게 본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법칙이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빠져나가지 않는 힘 종속되지 않겠다는 욕망 자체에 있는 것이다.

 

말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을 사회적으로 건전하다든지 바람직하다는 기준과 분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학교 가고 좋은 회사 입사하고 잘 먹고 잘 살라.’ 는 사회의 요구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 죄의식을 갖게 한다든가 혹은 잘못된 삶을 살지 않나. 하는 불안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 욕망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 그 불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욕망이 혁명적일 수 있을까?’ 를 궁금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처럼 사는 걸 욕망하는 게 그렇게 나빠요?’ 하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더라.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욕망을 줄여라. 이런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진석 : 보통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을 보자. 이것들은 사실 대부분이 타자의 욕망이고.. 사회가 나에게 명령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타자의 욕망이 다 나쁘냐’ 그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우리의 활동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어느 누구의 활동도 동일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놓여 있는 맥락 상황은 서로 다르다. 거기에서 욕망의 선이 나에게 주어질 선을 따를 때와 아닐 , 각각의 경우가 다르다. 원칙에 따라 다른 것이다.

 

문제는 동일하게 ‘이것은 좋은 것이다.’ 하고 다른 욕망의 가능성을 꺾어버릴 때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타성적인 존재니까 ‘정말 그래’ 하고 쉽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번 강의를 듣다보면 타성적인 우리의 존재에서 ‘야성“을 끌어 낼 수도 있을까?

 

진석 : 하하~기대하시랏~

 

 

 

: 안티 오이디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혁명, 욕망~ 그리고 야성? 이런 단어가 나오니 흥미가 돋긴하는데~ 문제는 너무 어려워보인다! 『안티 오이디푸스』와 친해질 있는 좋은 방법 없나?

 

진석 : 『안티 오이디푸스』는 읽어 보는 것이 좋은데 쉽지 않다. 현재 나와 있는 판본은 절판인데다가 최선의 번역본도 아닐 뿐 더러 원래 내용 자체도 쉬운 내용이 아니다. 일단 빌헬름 라이히의『파시즘의 대중심리』를 토요일 집중세미나에서 읽으면서 강의 예습을 하시고, 목요일 강의를 듣고,『안티 오이디푸스』를 직접 읽으면서 복습을 하면 어떨까. 중간 중간 읽어야할 프로이트 논문도 몇 편 있다. 그것도 조만간 공지할 예정이다. 이렇게 읽는다면 아마도~! 그 어렵다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출구를 찾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 혹시 출구만 있고 나가는 문은 없는 거 아닌가?

 

진석 : 하하^^ 그건 책임 못지겠다~~

 

 

 

10주동안 강의를 맡아줄 최진석 선생님~ 기대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마디로 한다면?

 

진석 :『안티 오이디푸스』는 욕망의 해방에 관한 책이다. 욕망의 해방은 결코 범죄도 아니고 살아있는 존재에겐 필연적인 충동이다. '욕망해도 좋다.' 라는 것이 이 책의 중심테마다.

 

 

 

 

 

빽빽한 메모로 가득한 최진석 선생님의 『안티 오이디푸스』. 그가 풀어낼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5월 21 개강-10주 과정]

Ⅰ 트랙 2 강의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Ⅱ 트랙 2 세미나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대중의 흐름과 욕망의 정치학-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황선길 옮김, 그린비

고병권, 『추방과 탈주』, 그린비

 

트랙 2 강의 안내는 요기!

http://nomadist.org/xe/bulin/12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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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의 "불온한 인문학"은
“현대 자본주의 비판과 불온한 사유를 위하여” 라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며 시작된 대중의 공동 학습의 장이다.

함께 하는 친구들도 다양하다. 20대 부터 시작해서~ 30대, 40대... 끝은 어디일지 정확하게 몰라요 무한대~^^
매일 매일 출근 도장 찍는 성실한(물론 겉으로만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는!) 직장인도 있고
과감하게 학교도 직장도 싫다~ 수상한 일을 작당 모의하는 이도 있고
새내기 직장생활 하랴 공부하랴 매번 강의 시간 빠듯하게 뛰어오는 이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가슴 깊은 곳에 "불온성" 이 만큼은 가지고 있다는 것!

목요일 개강 이래로 매주 목요일은 "자본" 강의를 듣고 토요일에는 관련 책을 함께 읽으며
집중 세미나를 하고 있는 불온한 인문학 수강생들...
20주간의 과정 중 맑스의 "자본"을 읽는 첫 번째 트랙이 끝나는 즈음...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화창한 5월의 토요일...
가족, 직장, 친구... 여기 저기 부르는 곳도 많고..
설령 아무도 안 불러도
봄바람 부는데로 방황하고도 싶었지만...

그들에겐... 맑스의 "자본"을 공부하는 것이.. 혹은... 지금 내 삶에 대한 "고민"을 풀어갈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데...

불온한 인문학을 함께 하는 친구들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도 고민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더냐.. 한번 들어나 보자^^

 

인터뷰어 : 튜터 해피, 화

인터뷰이 : 석관, 승원, 봄, 근배,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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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님은 어때요? 원래 작년 가을에 했던 맑스 콜레기움으로 연구실에는 처음 접속했는데요?
그때 보다 훨씬 밝아지신 듯??

 

 

석관 : 그땐 정말 연구실이 낯설고 어색했어요~ 다들 아는 사이 같은데, 나만 모르는 사이 같고.. 그래서 사실 많이 노력했고요~ 그래도 불온한 인문학 친구들은 거의 다가 연구실에 처음 온 분들이라 덜 어색하더라고요. 아예 처음 부터 시작이니까.
처음엔 공지 뜨자 마자 너무 반가워서 얼른 신청할려고 했어요. 그런데 자기 소개 같은 거 쓰라 그래서..
이거 어쩌나.. 못쓰겠는데.. 하고 며칠 고민하다가 짧게 올렸답니다. 하하.

 

근배 : 저도 공지 뜨고 나서 바로 올리려고 했는데... 자기 소개 때문에 안 올렸어요. 그런데 석관님이 엄청 짧게 신청글 쓴 거 보고 그냥 올렸어요. '아 이렇게 해도 되나?' 하고 말이예요..

 

화: 정말 나쁜 본보기를 보이셨군요. ㅜ 괜찮아요. 그래도 신청했으니 뭐 용서~ ㅎ ㅎ

 

 

석관님은 콜레기움 끝날 때도 에세이도 쓰셨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맑스를 읽으면서 어때요? 벌써 한 육개월 읽으신거 같은데요?


 

석관 : 원래 제가 고민하는 것은... 존재와 의식, 혁명과 정치..! 이런 거예요.
그런데 이게 워낙 폭이 넓고 깊기 때문에...쉽게 이야기 하기가 어렵고요..
맑스를 읽으면서 자본이 가지고 있는 모순.. 나 역시도 자연을 착취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미숙: 저는 백수로 지냈던 시간이 좀 길기도 길었고.. 저희 아부지는 평소에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마라" 이런 말씀 자주 하셨거든요..
저도 사실 이 말이 싫긴 했지만 '돈을 버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몽사 쌤이 강의 중에
"왜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하느냐"고 이야기를 들었을때...'아 그렇구나. 나는 왜 그 생각 못했지.' 하고 생각했어요.
자본을 배우다 보니 이전에는 내가 왜 힘든 줄 몰랐는데..
아 이래서 힘들었구나.. 뭐 이런 걸 알게 됐어요. 내 고민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안거죠.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안에 있는 모순들을 알게 되면서 일을 하는게 더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일을 하면서 자본론을 배우고 동시에 한다는게 힘든 것같다.'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하고 싶은 게 있긴 해요.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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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 : 아직 구체적인 건 모르겠고.. 그냥 순수 미술이요.. 사실 직장 생활 하면서 생긴 꿈인데요. 아무래도 직장생활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지 않으니까 뭔가 다른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림에 대한 꿈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석관 : 저는 이런 게 자본주의 안에서 생기는 분열 같아요. 미숙님도 그렇고..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열증을 안겪을 수가 없어요..  '내가 하는일이 이런 일이었어?' 하는 배신감있잖아요. 내 행복이 아니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실...
사실 저요. 예전엔 아침마다 회사에서 하는 체조를 당연히 했는데요. 요즘은 마음이 달라졌어요. 자꾸 하기 싫고 대충하게 되요. (좌중 웃음^^)
이 분열을 극복하거나, 정리하거나.. 종합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러고 싶은데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건이 닿는 한 계속 가봐야겠지요?

 

정답을 다 알고 계시네요?!



해피 : 사실 이런 고민이 직장을 그만 둔다고 바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임금 노동자, 비임금 노동자 모두 자본주의 안에서 고민을 안고 사는 거지요..

 

화 : 모든 사람들이 분열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봄 : 각자의 삶에서 만나는 맑스를 다 안고 사는것 아닐까요?

 

 

승원님은 어때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와 연구실에서 공부할 때의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승원 :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다른다 이런 것 보다는.. 연구실에 오면 다른 공간에 비해 획일적이지 않은데서 오는 생기가 느껴져서 좋아요. 
대학원은 사실 사람도 적고.. 토론을 해도 몇 몇만 하고 뭘 해도 참여한단 느낌이 안들거든요. 그에 비하면 연구실은 모두들 참여한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그런데 사실 지난 학기엔 계획했던 것 보다 자본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다음 학기엔 열심히 할래요~ ㅎ


미숙: 저는 이제껏.. 내가 왜 힘든지 모른채 살아 왔는데... 대부분 그게 사는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왜 힘들까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으니까...
수업을 들으면 힘든 이유가 정리가 되요..
요즘 저는 과도기를 겪는 기분~~~ 공부를 더 하면 아마도 힘이 생기겠지요?

 

근배님은 어때요? 근배님의 고민은 다른 분들 보다 철학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던데요?



근배 : 저는 다른 분들하고 좀 다른데요.. 사실...불온한 인문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하는게 꼭 그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들어요.
항상 이야기하지만 뭐가 맞는건지 모르겠어요.. 뭐랄까.. 저는 좀 더 확실한 데이터를 가지고 근거를 찾아가는 작업에 더 끌리는데요.
자본에선 그걸 찾지 못해서...

 

 

불온한 인문학 처음 신청할 때 근배님이 풀고 싶은 질문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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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배 : 왜 사는가? 왜 살아야되나...현재 내가 어떤 형태로 어떤 곳에서 존재하고 있는가...여러가지의 질문들을 풀고 싶었어요. 다른 곳에선 이런 고민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접해볼 수 없었고 그래서 오게 된 거죠..
지금 우리 삶의 강제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강제하는 외부의 힘은 살아가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완벽하게 강제하는 힘이 없는 게 가능할까.
이런 저런 의문들이 생기고 배우면 배울 수록 의문만 많아져요.


해피: 자본이 모든것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세미나를 통해서 풀어내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제하는 힘이 있다면 무엇일까..'하는 건데요.. 강제하는 힘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화 : 맑스가 정확하게 어떤 상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할 일은 강제하는 힘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을 창조를 하라고 이야기 하는것 같아요. 전 그래서 매력적인데요.


석관:  자본론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본론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읽으면서 제가 가졌던 맑스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었어요. 지금까지 맑스가 읽히는 것은 자본의 본질을 밝혔기 때문이 아니예요? 그래서 유용한 것 같은데. 그런데 가끔 근본주의자들은 저 보고 뭐 자본을 아직도 읽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실망했죠. (격한 말씀은 %^&^**$##$# 삐리리 처리 하였습니다^^)

  

봄님은 평소에 들뢰즈와 맑스라는.. 인생의 숙제를 이 커리큘럼에서 발견하고 기뻤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어때요?



봄: 사실 전요.. 제가 쓴 석사 논문을 다시 쓰고 싶었고.. 거기에 딱 맞는 커리큘럼이기도 했고.. 제 인생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클리어하게 확 풀고 싶었어요! (이기적인 생각이지요?^^) 하지만 사실이 그래요. 좀 더 단순화 시키려고 시작했던게 불인강이었는데..점점 지나면서 생각이 많이 복잡해지고 있어요. 저는 구조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었어요. 자본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모든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자꾸 그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또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하고 질문을 해보면...또 자본이라는 구조안에서 사고되기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은건가 싶기도 하고, 여튼 좀 많이 복잡해진게 사실이예요.

 

봄님이 꿈꾸는 세상은? 가끔 농담처럼 하는 노후 계획도 재밌는데요?



봄: (아~ 그건 나중에^^ 오늘은 좀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면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하면 제가 꿈꾸는 사회는 막연하게 비국가사회예요. 비국가라는 것이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가  지금 우리에게 느껴지는 부정적인 권력의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은 어떤 구심체로서의 비국가의 모습이지요. 그런데요 토요일마다 집중세미나를 하면서 그 상이 구체화되기보다는 좀 더 복잡해지고,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요.

그리고 처음에 열심히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했는데...커리큘럼을 다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걸 느껴요. 다른 분들은 되게 열심히 하는데..나만 덜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자극도 많이 받게 되요..
저요~ 들뢰즈는 열심히 할래요..^^ 앙띠 오이디푸스는 좀 더 열심히 읽고 생각을 넓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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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터 해피, 화 도 트랙 2에선 더 열심히 공부할랍니다^^ 아우 벌써 부터 기대 만빵!
이날 함께 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도 남은 10주 안에 꼭 들으러 갈테니.. 기다리세요^^
불온한 친구들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 후기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예정입니다. 기대하세요.

 

 


트랙 2에선 들뢰즈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들립니다!
불온한 인문학 트랙 2 개강 커밍쑨~~ 공지는 요기! 클릭!!!   http://nomadist.org/xe/12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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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처럼 좋은 철학이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삶을 긍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일 것이다. 삶이 ‘편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편한 삶, 좀 더 잘 벌고 좀 더 잘 쓰는 삶으로 대체되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강해지고,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은 절실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집, 많은 돈이 그것을 가려간다. 이제라도 다시 눈을 돌려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황금빛 장막을 걷어치우고, 거기 가려진 삶을,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야 한다. 철학을, 좋은 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이 ‘큰 배움’의 장이 아니라 직업학교가 되고, 돈의 장막을 몸에 덮어씌우게 된 지금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강의는 ‘큰 배움’을 꿈꾸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되었다. 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근대적 삶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사유할 수 있는 촉발을 제공하고자 한다. 어떤 철학적 사유의 결론을 배우긴 쉽지만, 그런 사유의 방법을 배우는 건,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연속강의를 통해 함께 사유하는 철학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강좌는 크게 2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이진경이 주도하는 강의는 길을 가기위한 지도를 제공합니다. 또 하나는 세미나인데, 이는 스스로 지도를 읽고 찾아가는 훈련의 장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강의와 세미나를 모두 참여하셔야 합니다.
(문의: 유심 ㅇ11-9571-15ㅇ9)


[토요일] 강의: 노마디즘 1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예언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그게 사실일 것임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들뢰즈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잠시 시작되는 듯하다 중단되고 만 것은 무엇보다 그의 책이 갖는 난해함 탓일 겁니다. 사유의 깊이를 잴 수 없게 하는 난해함. 이번 강의는 들뢰즈 사상의 개요에서 시작하여 <노마디즘 1>을 함께 읽으며 그의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면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유목민의 전차를 모는 사유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개강: 5월 7일


[일요일] 세미나: 인디언의 사상

“유목민은 역사를 쓰지 않는다.”(들뢰즈/가타리) 또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과 사상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화나 제의 등이 그것이었다. 백인들과의 적대적 만남, 혹은 인류학자들과의 우호적 만남을 통해 그것들은 부분적이나마 문자로 기록되었다. 인디언은 이런 유목적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이번 세미나는 인디언 추장의 말이나 인류학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사유와 만나고자 하며, 그것을 통해 근대와 다른 종류의 삶에 접근하고자 한다.

개강: 5월 8일


[등록 방법] 

1. 강좌신청 게시판에 신청글을 남깁니다.    (http://nomadist.org/xe/apply)

2.  길잡이에게 확인 문자를 한 통 보냅니다. (ㅇ11-9571-15ㅇ9)

3. 송금을 합니다. (우리은행    588-000927- 02-101,  예금주 명: 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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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홈페이지를 보면 불온함이 주요 화두입니다. 이번 강좌의 제목도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이고, 3월부터 시작된 <불온한 인문학>도 그렇습니다. 단행본 <불온한 인문학> 총서도 기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유너머N에서 거듭 언급하고 있는 불온함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불온성이 없는 인문학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문제의식에서 연구실 회원들이 모여 몇 가지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불온한 인문학>은 책 <자본론>과 <안티-오이디푸스>를 통해 가정과 국가, 자본 등 이른바 ‘안정성’의 토대와 대결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6개월간의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해 사유하는 장을 만들고자 모였습니다. <불온한 인문학>이 불온성을 통해 인문학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라면, 이번 봄강좌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불온성을 사유하고, 이를 통해 불온성을 바탕으로 존재론을 사유하려는 시도입니다. 강좌이다보니 7주간 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강의하는 형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유너머N에서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그램들이니 이 둘은 연결되는 점이 있겠지요.


Q. 안녕학세요. 이번 강좌의 반장을 맡게 된 호연입니다. 저는 이제 대학교 2학년이고, 공대생이라 ‘불온성’, ‘존재론’ 등의 용어가 낯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맥락에서 이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리 수강을 준비 중인 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불온함이라 할 때 우린 통상 반정부적인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불온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어떤 제도를 요구하는 투쟁 같은 것은 많은 경우 요구하는 것이나 이유, 사고방식이나 투쟁방식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어서,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불온하다고 할 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온함이란, 통념이나 분명한 구별들이 깨질 때 발생하는 불안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하다고 믿던 것들을 와해시키고 그 경계를 횡단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지요. 특히 이번 강의는 존재 자체로부터 불온성을 함축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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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이란, 가령 휴머니즘을 비판했던 후기의 하이데거의 경우를 보아도 존재의 의미에 대해 관심과 이해를 가지는 인간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차라리 인간에 대해서조차 인간 아닌 것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인간 아닌 것’을 하나로 묶어 다룬다면, 인간중심적 접근과 대칭적인 것이 되고 말 겁니다. 그게 아니라 나름대로 각각 특이성을 갖는 존재자들을 통해 존재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 특이한 존재자가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님을 드러냄으로써 그런 존재의 특이적 요소를 우리를 포함하는 존재 자체의 요소로 사유하려는 겁니다.





여기서 제가 선택한 특이적 존재자들은 우리가 익숙해있는 것들을 횡단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는 존재 자체를 익숙한 내부성이 아니라 낯선 외부성을 향해 열어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로써 존재 자체를 불온한 것으로 사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존재론이란, 저에게 단지 철학적이기만 한 것도, 단지 사변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적이기 이전에 정치적이고, 사변적이기 이전에 현실적입니다. 가령 장애인을 통해 사유되는 존재란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 운동이나 그와 관련된 정치와 처음부터 결부가 되어있지요. 또한 역으로 이런 존재론을 통해 그런 운동이나 정치의 문제를 존재론적 차원으로까지 소급해서 근본적으로 다뤄볼 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 먼저 1강에서는 불온함이란 무언지, 우린 언제 불온함을 느끼는지, 그런 질문에서 강의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후 불온이라는 개념에 대해 새끼 치며 설명하기보다는, 불온함을 야기하는 존재, 불온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겁니다.



Q. 각 주의 제목들이 특이합니다. 저마다 이색적인 주제의 강의가 배치돼 있는데요, 장애인, 프레카리아트, 사이보그, 박테리아, 패티시즘. 모두 얼핏보면 특이하고 수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게다가 몇 가지 빼고는 한 번도 연결지어 본 적 없는 주제들입니다. 사회적 소수자라고 묶기에는 인간 아닌 것(박테리아)이 끼어 있고, 정치적 연대를 위해 모이기에는 민망한 특이성(패티시즘)이 끼어있습니다. 사실 그 점 때문에 강의가 매혹적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주제들을 선택하고 연결하게 되셨는지요.





A.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일종의 ‘중간적인’ 존재자들이라는 겁니다. 기존 존재자들 사이의 구획에 따라 명료하고 뚜렷하게 구별된 것들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구별을 깨거나 와해시키거나 중간에 끼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에요. 저는 이것이 불온함을 사유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불온한 자들이지요.


Q. 불온한 자들이 위와 같은 특이성을 가진 이들이라고 하지만, 운동이나 정치에서 누구보다 그들이 주체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당사자주의’ 가 떠오르는데요.


A. 전 당사자주의가 잘못된 운동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특이성은 이와 다른 것입니다. 이 특이한 존재자들이 하나같이 나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에서 나에 해당되는 것, 바로 나의 문제, 우리 모두의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모든 특이성이 그들만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특이성, 존재의 특이성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겁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에 대한 ‘각론’이 아니라 존재론의 일부로서 다루어질 수 있는 거지요. 이는 제가 ‘존재론적 평면화’라고 명명하는 사고방법을 통해서 밀고 나갈 겁니다. 우리 모두 장애인이고, 우리 모두가 프레카리아트
,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패티시스트가 돼야 한다고도 말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당사자라는 말을 쓴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당사자라고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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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를 수강하는 데 도움이 될 책 기사는 요기   !  http://nomadist.org/xe/Nzine/104506

(강좌 관련 문의 및 신청은 요기를 클릭하세요!     http://nomadist.org/xe/apply)


며칠 후 두번째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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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봄, 콜레기움 들뢰즈의 『시네마』드디어~!

4월9일 토요일에 시작 됩니다.


콜레기움 반장 꾸냥과 주몽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의 들뢰즈~ 변성찬 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사진. 인터뷰 / 꾸냥, 주몽 

                                                                                           

 

꾸냥, 주몽(이하 꾸,주) : 콜레기움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 지 궁금합니다! 강사가 강의를 주도하나요? 아니면? 연구실에서 하는 세미나처럼 진행되나요?

변성찬 선생님(이하 변쌤) : 콜레기움의 기본형식이 세미나에 가까운 거지만 이번 시네마는 강의가 중심이라고 일단 생각하면 된다. 짧은 시간에 분량도 좀 많고, 압축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를 중심으로 할 생각이다. 강의가 한 발 앞서 나가고, 가령 2회차 때 읽고 발제할 부분을 1회 차 때 미리 강의를 하고, 텍스트 읽고 강의를 하는 것이 일종의 안내의 개념이 되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텍스트를 발제하는 게 복습이 되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꾸,주 :『시네마』읽을 때 베르그송과 퍼스를 같이 읽는 게 특이한 것 같아요. 어떻게 연결시켜서 읽는 건가요?

변쌤 :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그게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시네마』는 영화와 베르그송의 지속 또는 이미지의 철학, 퍼스의 기호론, 이 세 가지가 종합되어 있는 책이다. 『시네마』를 펼쳐보면 알지만, 1, 2권 각각 두 번에 걸쳐서 챕터 제목이 아예 베르그송에 대한 주석으로 되어 있다. 그 주석달기의 방식이 친절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들뢰즈에게는 일종의 재창조를 의미하기 때문에 차라리 주석을 달고 있는 특히, 베르그송 같은 경우는 개념이나 문제의식을 차라리 소화를 하고 나서 들어가는 게 부담은 되지만, 오히려 더 지름길이다. 안내문에 나간 것처럼 꼭 필요한 부분들을 선택해서 먼저 읽고 들어가려고 한다. 한마디로, 그거 안보고 어떻게 해볼까 하고 하면 더 고생한다.


 

꾸,주 : 들뢰즈의 저작들, 특히 『시네마』, 어렵고 난해하기로 유명한데요, 선생님이 들뢰즈의 저작들을 공부하게 된 계기와 들뢰즈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이유는 뭔가요?

변쌤 : 나한테는 『시네마』를 읽어야 될 필요성과 들뢰즈를 읽어야 할 필요성이 동시적인 것이었는데, 우연적인 거고, 더 솔직히 말하면 반강제적이었던 거고, 심지어는 매체에다가 글로 쓰기도 했지만, 출판사에서 리라이팅이라는 기획이 나왔고 필자를 구하던 중 연구실에서 영화와 관련된 책 중 “뭐하나 해라!”는 이진경`고미숙의 요구가 있었고, 그 당시만 해도 시간-이미지가 번역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었는데, 그래서 하기 힘들다 그랬더니, 옆에서 '영어 강사'니까 원서 보고 쓰라고 부추겼다. 그런데, 그렇게『시네마』를 보면서 오히려 내 공부의 중심이 바뀌어 버렸다. 공부를 하다 보니 영화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들뢰즈에 더 매력을 느끼고 가까워지는, 그래서 그게 무려 8년 세월인데... 아, 이런 건 쓰지마!!! (일동 웃음 ㅋㅋ)


 

변쌤 : 들뢰즈 공부를 왜 계속하냐 그러면, 진짜 알고 싶어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연철학적인 예술철학적인 측면, 직접적으로 『시네마』와 관련해서 들뢰즈가 갖고 있던 비평개념자체가 마음에 들고 내 스타일에 맞았다. 뭐냐하면, 어떤 작품을 비평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척도를 가지고 등급을 매긴다거나 이런 게 아니다. (많이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말이다.) 비평은 창조라는 게 핵심개념인데, 어떤 예술적 작품으로부터 촉발 받은 것을 토대로 자기 사유를 하고, 창조를 하는 것, 뭔가 거기에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 자체를 어떤 의미에서는 변용시키는 과정일 수도 있고, 들뢰즈에게 있어 창작과 비평은 그렇게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지 않다. 철학하는 것 자체도 늘 개념의 창안이라고 하지만, 그런 그 비평개념, 이런 것이 개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비평적인 태도와 잘 맞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시네마』와 들뢰즈의 시각을 통해서, 모든 사유나 철학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거지만,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측면에서는 진정으로 뭔가 새롭게 창작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새로운 비젼 같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영화를 중심으로 예술작품을 수용하거나 비평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 작품에서 기존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중심적인 담론 틀에서는 비가시적인 거였거나 보이지 않았던 의미, 이런 것들을 다시 부여하는 것인데, 들뢰즈를 공부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철학적 예술비평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의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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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주 : 들뢰즈가 한 때 알콜중독자였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이라면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들뢰즈를 본받아 우리 콜레기움도 술자리를 많이 가지나요?(^^)

변쌤 : 글을 쓸 때 음주상태로 썼다는 것은 정설화 되어 있다. 들뢰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삶’이다. 술 마셨을 때 진정한 삶이 해방된다는 식. 예를 들면 실제로 68즈음해서 앙리 미쇼 같은 경우 스스로 마약실험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니체가 광기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니체로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철학이 시작됐다라고 할 때는, 그 이전에는 명석 판명한 사유 지성의 작동을 위협하거나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층위, 그런데 진정한 사유를 강제하는 힘은 거기에 있는 거고 그것의 힘을 죽이면 새로운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출발점이다. 들뢰즈가 강한 니체주의라고 할 때는 그런 맥락을 받아들이는 거고, 말 그대로 실험을 하는 건데, 미쇼 같은 경우 마약하고 그 상태에서 글을 쓰고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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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뢰즈 vs 변성찬

(*이번 봄! 이 두 분과 함께 하지 않으시렵니까. 호호호)

 

들뢰즈의 문학 예술적 취향을 보면, 그런 것들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사유의 가능성이나 모델이나 돌파구나 이런 걸 찾아야 하는 게 새로운 철학의 임무라고, 바깥의 사유라고 하는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삶은 나의 삶이 아니라, 통상적 의미의 ‘나’라고 하는 인격성 외부에 있는 것들을 가리키는 거고, 그러니까 내안에 있는 외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나’라고 하는 데카르트 칸트적인 어떤 ‘코기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외부인 그리고 그것의 폭력을 통해서만 새롭게 사유를 한다라는 것, 짐작컨대, 음주하고 술을 먹은 상태에서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과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예를 들어『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가 그런 말을 한다. 데카르트의 명석판명을 꼬집어서 오히려 삶의 층위에서는 애매판명하고 애매할수록 판명하다. 그리고 그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어떻게 조합되고 배치 되는냐에 따라서 새로운 것이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이 된다는 것은 내가 의지해서 된다 보다는 삶의 층위에서 일어나는 재배치의 결과이다. 언제나 결과인 것이고, 근데 그 오히려 코기토라는 층위도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의식의 층위에서는 그것들이 행하는 새로운 것의 출현을 반동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로, 그것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명확히 들뢰즈에게는 도덕인 것이다. 삶을 억압하는 도덕이라고 할 때, 니체식으로 말하면 반동적으로 새로운 것의 출현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거다.


일단 중요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파괴인 것이고 파괴를 통해서 들어나는 잠재성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삶의 해방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일단 해방이고, 실험이고, 실험한다는 것은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고, 예를 들면 그런 식의 입장이니까, 들뢰즈의 철학이 일정하게 예술철학적 지향을 갖는 측면도 그런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반도덕적이면서 윤리적인... 그런 의미에서 술자리도 많이 가질 것이다.(^^)


 

  자세한 커리큘럼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http://nomadist.org/xe/collegium/8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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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비판과 불온한 사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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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스트 수유너머N이 대중의 공동 학습의 장, “불온한 인문학”을 시작합니다.


한때 운위되던 인문학 위기담론이 무색하게 오늘날 인문학은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인문학 지원을 위하여 대학에 연간 수백억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또한 도서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문화센터, 그리고 심지어는 기업이 개최하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에 수많은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의 부흥을 넘어서 인문학의 유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인문학 유행 현상은 인문학이 처한 심각한 위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CEO 인문학’과 ‘백화점 인문학’이 보여주는 바는 이제 인문학이 자본의 이윤창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며, 연간 394억원의 국가예산이 지급되는 ‘인문한국’ 정책은 국가정책에 인문학이 더욱 깊이 종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줍니다. 지식정보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증식을 위한 새로운 수단이자 국가경쟁력 강화의 도구로서 인문학은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이 부활은 인문학의 시대를 도래시켰습니다. 아주 세련되고 교양 있지만 자본과 국가의 권력에 의해 극도로 순치된 안온한 인문학의 시대를 우리는 지금 목도 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지배적 통념을 논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비판의 급진성,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상의 전복성, 세상의 지배적 삶의 방식을 뒤엎는 사유의 불온성을 거세당한 채 인문학은 기름진 교양주의의 지적 장식물로 퇴락하거나, 협애한 전문가주의의 실적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문학의 시대는 인문학의 몰락과 함께 도래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앎이 여전히 유의미한 것이려면, 이런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인문학의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인문학에 반대하고 그것과 대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정상화'하는 지식으로서의 인문학과 대결하는 것. '위기'란 이름으로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를 차라리 더 멀리 밀고 가 폭발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때 비로소 '인문학'이라 불리는 지식은 지배적 가치와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의 길을 촉발하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나 국가 발전전략의 수단으로서 인문학, 삶의 현장과 유리된 맹목적 전문지식으로서 인문학, 자기만족적 교양주의 인문학을 거부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불온성과 전복성의 날이 예리하게 서있는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온한 인문학’ 1기를 시작합니다. ‘불온한 인문학’ 1기를 통하여 우리 시대의 지배적 가치와 통념에 맞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기획하며, 지성의 공동성, 공동의 지성을 함께 만들어 갈 동료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욕망이요 힘이며, 불온성으로부터 인문학을 다시 사유하려는 의지입니다. 이 과정을 함께할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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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프로그램

 

I. 맑스의『자본』 입문 ― 다시, 반(反) 자본주의의 깃발을 들자!

 

 

II.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o 강          사 : 정정훈 · 최진석

o 세미나 튜터 : 정행복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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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온한 인문학”은 2011.3.3.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욕망 이론과 대중 정치를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1.20.목요일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우리은행 1002-043-230955 (예금주 : 문화)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http://nomadist.org/xe/bulin)에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정행복 010-9404-8403, 문화 010-62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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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순치된 인문학…거세된 ‘불온함’을 부르다
인문학 부흥 기여 연구공동체
교양주의 경향의 현주소 비판

3월부터 20주간 강의와 세미나
이론가들 책 내고 연대활동도
한겨레 bullet03.gif 최원형 기자기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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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수유너머 엔’에서 ‘불온한 인문학’을 기획하고 있는 수유너머 엔 연구원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최진석, 문화, 정정훈, 정행복 연구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수유너머’ 새 프로젝트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인문학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주무대는 대학 밖이다. 고전을 통해 얻는 지식과 교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가면서, 도서관이나 문화센터, 기업, 각종 기관에서 여는 대중강좌들을 중심으로 인문학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인문학까지, 그 대상과 성격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지점은, ‘쓸모 없는 학문’ 취급을 받았던 인문학이 이젠 ‘유용한 학문’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 활동을 시작한 ‘연구공간 수유+너머’(이하 수유너머)는 그동안 제도 밖 연구공동체 실험과 대중강연 등으로 이런 인문학 부흥에 거름 구실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 수유 너머에서 ‘불온한 인문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우리 시대의 인문학과 정면으로 대결하겠다고 나섰다. 인문학 붐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이, 도대체 왜 지금 인문학에 ‘불온성’을 찾아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수유너머 엔(N)’(nomadist.org)에서 오는 3월부터 시작할 ‘불온한 인문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4명의 수유너머 엔 연구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자본과 국가의 권력에 의해 순치된 인문학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며 “지금은 인문학이 가진 위협적이고 전복적인 성격, 곧 불온함을 벼리는 것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려 드는 불온성이 거세된 인문학이, 구체적인 삶과의 접점을 잃고 ‘문화적 교양주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청소 노동자들이 하루 300원의 식대를 받고 화장실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현실을 스스로의 삶 속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지식과 교양의 습득에만 머무르는 인문학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연구원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인문학의 경향을 ‘학진(학술진흥재단, 현 한국연구재단) 인문학’과 ‘대중 인문학’으로 나눠 비판했다. 국가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학진 인문학은 “협애한 전문가주의의 실적물”에, 지식과 교양의 쉬운 전달을 우선으로 삼는 대중 인문학은 “기름진 교양주의의 지적 장식물”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진석 연구원은 그동안 다녔던 외부 대중강연에서 ‘민감한 주제라 곤란하다’는 주최 쪽의 요구로 주제를 바꾸거나 내용을 수정했던 경험을 들며, “이미 인문학이 사회의 지배적 통념을 따라가고만 있기 때문에 이 흐름 자체를 반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정훈 연구원은 “인문학 유행에 주도적 구실을 했던 수유너머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때문에 교양과 지식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대중과 함께 불온함을 모색할 새로운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월에 시작해 20주 동안 진행되는 불온한 인문학 1기 프로젝트는, 강의와 집중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마르크스의 <자본>과 들뢰즈·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주요 텍스트로 삼은 강의와, 각각의 강의에 대응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욕망이론·대중정치를 다루는 집중 세미나다. 곧 자본주의와 가족주의·국가주의가 불온한 인문학의 두 가지 큰 주제다. 정정훈 연구원은 “이 두 가지는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지배적인 삶의 방식”이라며 “어떤 모습이 될지는 미리 예측할 순 없지만, 국가와 자본이 쥐여주는 스스로의 일상과 관습에 균열을 내는 것이 불온한 인문학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3월12일 ‘인문학 신드롬과 불온한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이 자리에서 프로젝트의 취지를 담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인문학의 현주소를 짚는 발표와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불온한 인문학 총서’를 기획하고 있다. 최진석 연구원 등이 쓰는 <불온한 인문학>을 비롯해 수유너머 엔에서 활동하는 핵심 이론가인 이진경 박사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등 10여권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불온한 인문학을 제시하고 펼칠 수 있는 수유너머의 강점은, 독립적인 공간과 그곳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밀착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는 데 있다고 한다. 문화 연구원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연대를 통해 내가 수동적으로 따라가던 일상을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차원에서 조금씩 변화시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행복 연구원은 “불온한 인문학에는 강의나 세미나뿐 아니라,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과의 연대, 강제 철거 위협에 놓인 두리반과의 연대 등 연구실 밖에서 펼칠 활동들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수유너머’는 발전적 분화 중

여러 코뮨 네트워크로 확산

이전까지 하나의 연구공간이었던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지금은 ‘코뮤넷 수유너머’라는 이름으로, 여러 코뮨(코뮌·공동체)들의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다.

 

 

현재 이 네트워크에 속해 활동하고 있는 수유너머 공동체는 서울 용산동에서 자리를 잡아 온 ‘수유너머 남산’, 수유너머 남산과 같은 건물에 있는 ‘수유너머 아르(R)’, 서울 연희동에 있는 ‘수유너머 엔(N)’, 서울 상도동에 있는 ‘수유너머 길’, 강원 춘천시에 있는 ‘수유너머 강원’ 등 다섯 곳이다. 2009년 6월부터 수유너머 남산으로부터 차례대로 분화가 이뤄졌다. 수유너머 쪽은 “세상의 여러 코뮨들과 접속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코뮨들의 네트워크가 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분화는 지역적인 확산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마다 조금씩 다른 성격의 반영이기도 하다. 수유너머를 대표하는 3명의 학자의 주력 분야와도 연관된다. 고미숙 박사가 있는 수유너머 남산에서는 고전 읽기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진경 박사가 있는 수유너머 엔은 사회과학 공부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고병권 박사가 있는 수유너머 아르는 강좌·세미나 활동뿐 아니라 <아르(R)>라는 이름의 매체도 발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활동은 지난해 1월 창간해 최근 돌을 맞은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suyunomo.net)의 발행이다. 코뮤넷 수유너머 사람들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과 사유, 관심사 등을 일주일에 한번씩 시의적절하게 웹진에 실어 전파하고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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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인문학 1기, ‘연대의 쾌감’을 위하여

-불온함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친구를 기다립니다.

 

지난 기사 보기 클릭!

[불온 통신 1] 내 친구, 불온한 인문학 강사팀을 소개합니다.’ http://nomadist.org/xe/79462

 

[불온 통신 2] 불온한 인문학이 선택한 두 권의 뜨거운 책 -맑스의 『자본』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http://nomadist.org/xe/Nzine/82100

 

 인문학 강의 하면 강사는 강의하고 수강생은 그냥 듣는 수동적인 강의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불온한 인문학은 강의를 듣는데서 끝나지 않고

집중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자기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

‘집중 세미나’ 라는 과정을 꼭 함께 해야 한단다.

 

집중 세미나는 무엇이며 어떤 텍스트를 읽는지,

그리고 불온한 인문학 강사팀이 이번 과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그들이 꿈꾸는 ‘연대의 쾌감’에 대해 들어봤다.

 

 

이기자: 집중 세미나도 한다고? 세미나 제목이 ‘반자본주의와 욕망의 정치학’이다. 세미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해피 : 먼저 읽을 『자본주의 역사 강의』다. 이 책은 맑스의 틀에서 해석하지 못한 부분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왜 맑스의 자본론을 읽다보면 현재 경제상황과는 너무 다르지 않느냐. 그러다 보면 흥미를 잃거나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 강의를 들으면서 세미나 시간엔 직접 이 책을 읽는다면 현재의 문제에 대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훈 : 당대의 맑스가 썼던 책이 자본주의 문제를 완전히 전능하게 풀어 낸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선 자본주의를 폭 넓게 이해하기 위해선 맑스가 풀지 못한 것을 봐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 강의』는 초기 자본주의 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 모습까지 자본주의 500년 역사의 변화 양상을 두루 볼 수 있는 책이다. 세계체계 분석(World System Theory)의 두 대가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오반니 아리기’의 세계체계 분석 뿐 아니라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페르낭 브로델’ 과 ‘칼 폴라니’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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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지금 해피쌤과 함께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내 주변엔 세계 경제에 대한 걱정·근심으로 밤잠 못 이루는 분들이 많다. 주변 직장 동료를 봐도 세계 경제에 대해 어쩌면 그렇게 박식하신지.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재밌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젠 중국. 세계 헤게모니가 어쩌고 저쩌고. 식민지 전쟁부터 대공항, 무역전쟁 등등 자본주의 역사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리고 결론이 너무 웃긴다. ‘그래서 중국 펀드를 사야한다’로 귀결되더라. (*물론...한참 중국·인도 펀드 유행일 때 가입했다가 반토막 났을 때 이 놈의 경제가 왜 이러냐고 한탄하느라 눈 밑이 까맣더라.) 우리야 뭐 그런 펀드는 안 사겠지만 어쨌든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거시적 관점은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 무엇보다 재밌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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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 두 번째로 집중 세미나 시간에 읽을 책은 풀빛에서 나온 『자본의 정치적 해석』이다. 이 책은 자본의 1편 1장을 서술한 것이다. 어떻게 자본론 안에 프롤레타리와 부르주아의 계급적 문제가 관통하는 지 좋은 통찰을 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논쟁적인 저작이기도 하다.

 

 

 

독일 시민은 속지 않았다...... 대중은 왜 자기 억압을 욕망하는가?

 

이기자 : 두 번째 학기에 집중 세미나에서 읽을 책은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 대중심리』, 고병권의 『추방과 탈주』라고?

 

진석 : 들뢰즈가 라이히의 책을 인용하면서 던지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왜 대중은 자기 억압을 욕망하는 가.’ 라이히가 이런 문제의식을 던졌을 때 그 문제의식의 이면엔 ‘도대체 왜 임박해 있다고 믿었던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혁명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지도적인 이론가들 혁명주의자들이 주안점을 두고 생각한 것은 대중이 어떻게 혁명을 의식할 것인가이다.

 

루카치는 1927년『역사와 계급의식』이란 책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의 계급적 입장이라는 것을 말하는 순간 혁명은 폭발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대신 아직 프롤레타리아트가 문제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것)이고, 부를 타도하는 게 뭔지를 알면 혁명이 자연히 올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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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히는 여기에 문제의식이 있다. (모두들 알다시피 혁명은 오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해도 혁명이 오지 않는 문제. 아는 것과 욕망의 문제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대중에 대한 의문들을 생각한 것이다. 가령 2차 세계 대전 끝나고 나치즘 독일에 대해서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때를 보자.

 

그때 ‘어리석게도 독일 시민은 속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많은 역사 문화적인 연구가 보여주는 것을 보면 아니다. 사실 독일 시민은 다 알았다는 거다. (파시즘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배반하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일까. 단일화된 영토를 지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안티 오이디푸스’와 연결 해 보면 국가와 민족과 가족의 이름으로 동일화 되는 무의식 욕망의 기재가 몇 개의 단선적인 구조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어떤 욕망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기성의 안온한 씹고 버무려진 우리에게 소화하기 좋게 쉬운 것을 따라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걸 욕망한다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타자의 욕망으로 가는 거다. 나의 욕망을 알고 자 함이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는 거다. 만약 내가 ‘나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면 어떻게 변할까. 가족이 원해서 국가가 원해서 타자가 말하니까... 하고 과연 순순히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자고 한 것이다.

 

고병권의『추방과 탈주』는 그런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 21세기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풀어낸 책이기 때문에 사실 이론적인 뭘 찾기 보다는 체험으로서 되돌아 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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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나 행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연대하는 힘, ‘연대의 쾌감’을 위하여

 

이기자 : 강의를 준비하면서 기대가 많이 될 것 같다. 어떤 이들이 이번 강의를 찾았으면 좋겠는지...

 

해피 : 우리도 현재의 문제를 돌파할 뾰족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서로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훈 : 우리가 불온함을 알려주마. 이런 건 아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도 말했지만 우리의 불온하지 않음을 반성하는데서 시작하고 싶다. 대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넘을 수 있을 지 열린 마음으로 보자는 거다.

 

진석 :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일테니 서로의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나누는 자리도 자주 마련했으면 한다.

 

정훈 : 자본이나 국가가 무서워하는 건 폭력이나 행패가 아니다. 우리가 연대하는 힘이다. 사실 이 연대하는 힘이 가치 있다고 믿는 데 연대를 당위로 하기 보다는 연대가 주는 쾌감을 느꼈으면 한다. 지난 여름 국제 워크샵 할 때 읽었던 다니가와 간의 글에 연대의 쾌감이란 내용이 나온다. 우리도 엠티도 가고 불온함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이기자: 불온하다고 했을 때 많이 심각해 보였는데 그런건 아닌 듯?

 

화 : 그렇다. 불온함이 인상 쓰자는 게 아니다. 요즘은 트위터 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거나, 조금은 다르더라도 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이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 테면 ‘내가 반대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에서 반대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알티(*RT: 트위터에서 상대의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쓰는 방법)가 되는데, 왜 세상은 안 바뀔까. 왜 이런 목소리는 전달이 안될까.’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알티(RT)도 좋지만 서로 구체적인 문제를 공유하고 공부를 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보자.

 

 

 

지금 당신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문제로 머리가 아프진 않는지.

혹은 나날이 바보같은 짓을 해대는 어떤 분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진 않는가.

 

이들이 말하는 연대의 쾌감이란 무엇일까.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떤 날의 그 짜릿함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해 뭔지 도통 감이 오지도 않는가.

 

궁금하다면 액션 나우!

불온한 인문학 1기에 함께 하자. 

 

 

글/이기자

 

 

 

 

<안내>

* 불온한 인문학 1기 주요 프로그램

I. 맑스의『자본』 입문 ― 다시, 반(反) 자본주의의 깃발을 들자!

II.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o 강 사 : 정정훈 · 최진석

o 세미나 튜터 : 정행복 · 문화

 

1. “불온한 인문학”은 2011.3.3.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욕망 이론과 대중 정치를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1.20.목요일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우리은행 1002-043-230955 (예금주 : 문화)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 http://nomadist.org/xe/bulin )에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정행복 010-9404-8403, 문화 010-62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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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불온한 인문학이 선택한 두 권의 뜨거운 책

 

-맑스의 『자본』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

 

예고 해 드린 대로 [불온 통신 1호]

'내 친구, 불온한 인문학 강사팀을 소개합니다.’에 이은

두 번째 인터뷰기사입니다^^

지난 기사는 요기! 클릭! http://nomadist.org/xe/79462

 

 

이번 기사는 불온한 인문학 1기 강의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불온한 인문학 강의는 1트랙은 맑스의 자본,

2트랙은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 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세미나 소개도 조만간 업뎃할 예정입니다.

 

 

이기자 : 20주 동안 진행 되는 커리에 맑스의 『자본』이 있던데. 자본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솔직히 언뜻 생각하기엔 ‘불온함’과 ‘자본’의 만남 이럴 줄 알았단 생각도 드는데?

 

정훈: 그런 반응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자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자본을 그저 좋은 책으로 고전으로 읽는 건 아니다.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 자본을 쉽게 풀어 쓴 책을 읽거나 자본을 그저 고전으로 읽는 움직임들이 느껴져서다. 그런 모습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런 움직임은 『자본』이 이 사회에 아무런 위해요소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지. 이건 문제다.

 

진석 : 러시아에서는 자본론 번역이 처음 됐을 때 검열자가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냥 허가를 내줬다고 한다. 뭐 설마 이렇게 어려운 걸 얼마나 이해하겠나. 이런 생각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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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떡볶이를 파는 이 시대에 자본을 읽는다는 것.

 

정훈 : 어렵지만 유명하니까 읽고 그게 꼭 나쁘진 않지만 역으로 드는 생각이 자본주의가 계속 지속되고 있는데 요즘은 대기업이 떡볶이 까지 판다는데 이런 시대에 자본을 읽는 것이 하나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간혹 지금 권력이 작동되는 방식과 동떨어져서 ‘헤겔, 리카르도 등등을 나는 다 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정도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전문가주의적으로 읽는 경우. 혹은 말랑말랑하게 소화가 다 된 상태로 강사가 알려주는 데로 받아들이는 것.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문제다. 이게 다 맑스의 『자본』을 무기력한 낡은 유산으로 읽어서다. 내가 보기엔 그럼 맑스도 싫어할 것 같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전화로 해고를 통지하고, 청소 노동자에게 식비 300원을 주는 이런 세상에서 자본을 읽는 행위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해피 : 맑스의 자본은 누구랑 어떤 입장에서 읽는 것도 매우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지난 가을 연구실에서 맑스 콜레기움하면서 느꼈다. 맑스의 자본을 정치·철학과 같이 읽으니까 자본이라는 책이 주는 폭발력이 더 강렬했다.

 

(*콜레기움 : 정정훈 선생과 함께 ‘맑스와 정치, 혹은 혁명과 코뮨의 정치철학에 관하여’ 라는 주제로 2010년 10월 부터 12주 동안 맑스의 저작을 함께 읽었던 프로그램이다. http://nomadist.org/xe/collegium/28937)

 

이기자 : 이번 불온한 인문학 강의에서 읽는 자본 역시 각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읽는다면 더 재밌어 질 것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좌중 동의^^) 그런데 설마 자본 5권을 다 읽어야 하나?

 

정훈 : 모든 사람들이 자본을 안 읽어도 된다. 오히려 자본을 읽기 위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강의를 충분히 듣고 스스로 읽을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자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듣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본을 읽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좋겠지. 필요하면 별도의 세미나를 꾸려서 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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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 두 번째 트랙은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다. 어떤 책인가.

 

진석 : 『안티 오이디푸스』는 현대의 고전이다. 그런데도 자본이랑 비슷한 운명을 밟는 것이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자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수학 나올까 걱정 돼서 못 읽고. 안티 오이디푸스는 읽어 보려고 해도 아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도 있더라.

 

원제목은 ‘안티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L'Anti-oedipe :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이다. 이때 스키조프레니(schizophrénie) 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정신 분열증이 아니다. 이건 분열증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보통 사람들은 아 자본주의 때문에 정신 분열증 생긴 갑다.. 이렇게 이해도 하더라. 그런데 아니다. 자본주의와 분열증은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때 지나가던 한 세미나 회원 ‘아~ 나도 자본주의 때문에 정신분열증 생긴단 소린 줄 알았어~헤헤’ (웃을 때가 아니지요. 공부하세요^^)

 

진석 : 스키조프레니(schizophrénie) 는 임상적인 의미의 정신 분열증이 아니라 분열증, 분열자가 되자는 말이다. 들뢰즈의 개념어에 익숙한 사람은 알겠지만 다양체를 지향한다든가 다양체를 만드는 것, 특수한 회로를 벗어나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관과 태도 지배적인 시선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분열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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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맞선다는 것? 분열증자가 되자.

 

진석 : 흔히 정신병이 있으면 이야기하기 힘들다 생각 하는데, 논리가 서로 대립되고, 합쳐 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이해하는 포인트라 생각한다. 내 의식 감정에서는 불편하지만 일상생활은 자본주의가 지시하는 그대로 따라 산다. 그래서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주의에 맞선다는 것. 가장 강력한 힘은 아예 다른 언어 논리로 맞장을 뜨는 것이다.

사실 실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양상은 달라지겠지만. 믿고 따르고 의식하던 일상의 규율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논리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상이한 논리 언어가 스쳐 갈 때 지속적으로 잡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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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자본과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 두 권 모두 만만치 않은 책이다.

꼭 한 번 독파해야겠다는 의무감에 사놓고 길을 잃었던 이라면 이번 기회에 '불온한 인문학'을 접속해보면 어떨까.

 

다행히 이번 '불온한 인문학' 강의에서는 이 두 권의 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강사와 튜터가 도와준다고 한다.

 

설령 이 두 권의 책 모두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문제적인 두 권의 책을 좋은 친구들과 함께 첫 만남을 하는 것도 큰 행운 아닐까.

 

 

글/이기자

 

 

 

 

 

<안내>

* 불온한 인문학 1기 주요 프로그램

 

I. 맑스의『자본』 입문 ― 다시, 반(反) 자본주의의 깃발을 들자!

II.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o 강 사 : 정정훈 · 최진석

o 세미나 튜터 : 정행복 · 문화

 

1. “불온한 인문학”은 2011.3.3.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욕망 이론과 대중 정치를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1.20.목요일 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우리은행 1002-043-230955 (예금주 : 문화)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 http://nomadist.org/xe/bulin )에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정행복 010-9404-8403, 문화 010-62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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