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으로 시작된 노래

 

  50대의 영국군 장교와 18세 자메이카 소녀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홀어머니와 함께 자메이카 킹스턴의 빈민가, 트렌치 타운에서 자라났다. 폭력과 살인이 빈번하던 빈민가에서 아이는 살인 사건을 목격하기도, 얼굴에 칼을 맞기도 한다. 학교보다는 축구가, 공부보다는 음악이 좋았던 아이는 결국 열네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용접 공장에 취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용접 공장 앞마당에서 운명처럼 훗날 스승이 될 ‘조 힉스(Joe Higgs)’를 만난다.

 

 ‘조 힉스’는 ‘힉스 앤 윌슨’이라는 듀오의 일원으로, 천편일률적인 사랑 노래가 자메이카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그 시절, 간자(대마초)와 라스타파리즘으로 대표되는 흑인 해방 운동을 통해, 빈민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던 극단적인 소외감을 위로하던 가수다. ‘앨튼 엘리스’나 ‘라셀러스 퍼킨스’ 같은 당시 트렌치 타운 출신의 유명 뮤지션들 역시 종종 이 공장 앞마당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뮤지션으로 성공했음에도 트렌치타운을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이 동네 출신 ‘영웅’ 대접을 받고자했음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수업료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노래와 목소리를 ‘게토’의 아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공장 앞마당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노래를 배워나갔다. ‘힉스’는 근처에서 열리곤 하던 자신의 공연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키를 잡는 법부터 기타 코드, 반주법, 작곡법등을 차곡차곡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빈민가의 스승 ’힉스’에게서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한 음정과 화음, 나아가 사상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훗날 자메이카, 나아가 전 세계적인 ‘전설’의 뮤지션으로 성장한다. 그렇다. 이 것은 "내 노래는 울음으로 시작되었죠"라 말한 ‘밥 말리’와 ‘웨일러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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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밥 말리와 그의 스승 조 힉스)

(아래 :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레게, 그 울음의 파장

 

 밥 말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레게’다. 레게는 밥 말리의 어린 시절, 자메이카를 휩쓸었던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킹스턴의 뮤지션들에게서 창조된 ‘스카’에서 연유된 장르다. 4박자를 기준으로 첫번째와 세번째 비트에 강세를 찍는 서양의 일반적인 대중음악과는 다르게, 스카나 레게는 두번째와 네번째 비트에 힘을 싣는 홉 댄스를 기반으로 한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레게의 ‘엇박’ 느낌은 이러한 비트에서 파생된 특징이다. 여기에 엉덩이를 들썩이게하는 특유의 셔플 리듬을 유지했는데, 유럽과 미국에 처음 이 장르가 소개되었을 때만해도 ‘도대체 어떻게 춤을 추라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들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이 생소한 장르의 음악과 그 히어로, 밥 말리라는 이름이 서구 음반 시장에 소개된 것은 다름아닌 에릭클랩튼의 <I Shot the Sheriff>때문이다. 미국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의 원작자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밥 말리는, 75년 트렌치 타운을 노래한 <No Woman No Cry>가 영국 차트에 오르면서 국제적인 뮤지션의 반열에 오른다. 당시 밥 말리는 종종 서구세계에서 ‘위험한 아티스트’라 소개되곤 했는데, 그 스스로 ‘나와 내 음악의 존재 자체가 바로 반역적인 성격을 띈다’라며 불온함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는 밥 말리가 그의 스승 ’힉스’처럼, 누구보다도 음악의 ‘운동적 가치’를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는 밥 말리가 최후까지 지니고자 했던 그의 확고한 음악관이였다.

 

 길지 않은 생 동안, 권력의 위선과 거짓, 오만함을 비판하는 투사적인 면때문에 밥 말리는 여러차례 총격을 당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두려워하기는 커녕, 영향력있는 뮤지션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자신의 고향인 자메이카 그리고 트렌치타운으로 돌아와 음악, 나아가 운동과 실천에 몸 담고자 했다. 록이 저항의 의미를 서서히 잃어가던 1970년대,  레게가 새로운 대안의 음악으로 떠오른 이유는 그의 이러한 면모때문이다. 존 레논, 레드제플린, 클래쉬같은 당시 쟁쟁했던 서구의 록 밴드들이 너도나도 레게에서 적지 않은 영감을 받았던 까닭 역시 다름아닌 밥 말리의 ’울음으로 시작된 노래’가 보여준 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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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노래 

 

 빈민가, 그 설움 속에서 탄생한 음악은 비단 밥 말리만의 것이 아니다. 1975년, 들리는 소리라고는 총소리뿐이던 카라카스에서 역시, 전과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칼 대신 악기를 손에 든 채로, 어느 빈민가 허름한 차고에 모여들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엘 시스테마’의 탄생이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도 마약과 싸움질, 폭력과 살인 말고 다른 ‘아름다움’을 볼 권리가 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이제는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퍼져나가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유명한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3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엘 시스테마’의 혜택을 받았고, 현재도 25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음악을 배우는 중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차세대 최고의 지휘자로 지목하여 화제가 된 바 있는 81년생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17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 된 '에딕슨 루이즈' 등 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음악가들이 ‘엘 시스테마’를 통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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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말리나 엘 시스테마의 사례처럼, 음악은 때로 이러한 ’구원’의 힘을 보여줄 때가 있다. 여기에서 ‘구원’의 의미는 단순히 음악을 배워 직업을 얻고, 돈을 많이 버는 유명인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는 가난과 폭력에 시달려야만 하는 현실이 기다릴지라도, 적어도 그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데, 그 ’구원’의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배운 음악을 주변의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의 삶까지 바꾸고 있다는데서 음악이 선사하는 ‘운동’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울음’으로 시작된 노래가 하나 둘 모여 ‘웃음’의 변주를 이끌어낼 때, 우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구원의 노래를 듣게 된다. 고통을 잊게 하고 위로하는 걸 넘어, 숨어있는 진실을 암시하고 그와 관련된 요구를 행동과 운동으로 이끌어내고 있기에 이들의 음악은 그 존재 만으로도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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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 조차 사치인 나라에서..

 

 밥 말리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30년째 되는 2011년, 종로 한복판에는 재밌게도 ’카라카스 유쓰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이들의 노래들이 선사하는 ‘구원’의 힘을 상상하며 거리를 걷다가, 야속하게도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고 있는 한 무리를 마주쳤다. 여당 차기 대권주자로의 야욕을 위해, 생산과 성장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무상급식, 무상복지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서울시장에게, 이들의 노래는 과연 어떠한 의미로 들릴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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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비록 킹스턴의 트렌치타운이나 카라카스의 빈민가보다 더 ‘풍족’하게 살고있는 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풍요’롭지는 못함이 분명하다. 영어 공부가 마음 편히 밥 한끼 나누는 일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 빈민층을 위한 예술 교육이나 공연이 대기업이나 국가의 ‘시혜’로만 베풀어지는 곳, 예술가가 되기 위한 전문 교육을 받으려면 ’재능’보다 ‘돈’이 먼저 필요한 곳. 이 곳에서 역시 ’울음’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웃음’으로 끝날 구원의 노래는 너무나도 요원해보인다.

 

 누군가는 밥 말리나 엘시스테마의 이야기에서 그저 ‘꿈높현시(꿈은 높고 현실은 시궁창)’만을 절감할 지 모르겠다. 혹은 이런 것들이  '우린 불쌍한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쏟고 있어요'라고 하는 체제 유지용 광고판에 불과하다며 쓴 웃음만 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고있는 무리들 뒷 켠에서 꾸역꾸역 ‘구원’의 노래를 되읊어야 하지 않을까? 머나먼 이야기들이 '기적'이 아닌, '있을 수 있는 일'이 될 그날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 구원의 노래가 구원을 거부하는 다섯살 훈이 마저 구원할 수 있도록 목청 높여 노래해야하지 않을까?

 

 

글/ 김은영(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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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란 일종의 거대한 ’아이러니’와의 조우가 아닐까 싶다. 여행자는 늘 자신의 일상이 아닌 바깥을, 존재해왔던 그대로 보고자 꿈꾸며 떠나기 마련이지만, 여행지가 일상인 현지인들은, 다름아닌 바로 그 여행자들때문에 닥쳐오는 변화들에 온 몸을 부딪쳐야만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수줍은 신비’를 지닌 타자일 수 밖에 없는 이 양자는, 그래서 늘 서로에게, 어느 쪽으로든 변용의 계기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이 변용의 과정에서 ‘자신을 무너트리지 않은 채 꾸역꾸역 버티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밝은 빛에 눈이 노출된 후 눈이 멀게 되는 자’도 있다.

 

 박세열, 손문상의 <뜨거운 여행>은 이 중에서도 후자들의 경험담이라 할 만하다.  1951년의 체게바라가 산 파블로 나환자 촌에서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한 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윤리학적 접근으로서 혁명을 꿈꾸게 되었다면, 2008년 이들은 남미라는 절대적인 외부를 맞닥뜨림으로써,무려 체게바라를 ‘분실’하기에까지 이른다. ‘아예 겪지 말았어야 했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가짜 비둘기 똥 사건이나, 공포로 채색된 카라카스에서의 일화, 말그대로 아마존을 부유하며 건너야했던 경험들로 이루어진 저자들의 여행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리기 위한 여행’이다. 전자를 레비나스의 ‘변증법적 과정에 충실’한 여행법이라 한다면, 후자는 블랑쇼의 ‘변증법이 깨져버리는 불안한’여행인 것이다. 저자들은 체게바라의 일정을 따라 여행했지만, 그들이 찾은 ‘바깥’은, 체게바라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무엇’이었다.


 실눈이 떠진 것은, 여행에서 보낸 시간만큼 길어진 수염을 붙이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였다. 엄청난 촛불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2008년 1월 20일, 눈 내리는 풍경을 뚫고 출발했던 여행의 결말 아닌 결말은 거기 있었다. 20세기의 '혁명'과 21세기의 '혁명'의 차이는 촛불의 물결이 출렁이는 정도의, 그 '더딤'에 있지 않을까. 요컨대 내 여행의 종착지는 쿠바가 아니라 광화문이었고, 분실한 체 게바라를 그곳에서 다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에서 마주한 쿠바, 뜨거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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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쇼는 ’낮의 광기(La folie du Jour)’라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밝은 빛에 노출되어 시력을 잃은 후, 예전처럼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맹인이 된 것도 아닌.. 다시말해,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불가능한’ 주인공을 묘사한 바 있다. 주인공이 경험한 밝은 빛은 이를테면 삶에 대한 거대한 기쁨같은 종류의 것들.. 즉 기존에 눈이 완전히 보일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눈을 멀게 만듬으로서 비로소 보이게 하는 존재다. 광기와 같이 강렬했던 빛이 이전에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비로소 보이던 것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블랑쇼에게 타자(혹은 외부)란 이렇듯,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드는 그 무엇’이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기존에 안다고 혹은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즉 ‘바깥으로 내치는 힘’이다. 강한 빛에 눈이 멀게 되는 상황을 블랑쇼는 일종의 ‘죽음’이라 보았고, 이러한 ‘비인칭적 죽음’이란 기존에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것이나 이러저러하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자신의 외부에 서는 일이라 보았던 것 같다. 나의 표상이나 관념 바깥에서 다가오는 낯설고 이질적인 대상들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대상의 진지함 곁에 설 수 있으며, 온전한 그들의 ‘시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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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서걱서걱 잘라 먹으면서 섣부른 결론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말은 금세 흩어지는 것. 잡아 두지 않으려 했다. 공중에서 풀풀 날려 어디에선가 시가 되었으면 바랐다. 여행이란 잃어버린 것을 찾는 과정이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원래 시인이었고 선생이었고 혁명가였고 신이었는데, 다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에필로그, 뜨거운 여행)


 블랑쇼에게 대낮의 광기와 같은 빛이 있었다면, 저자들에게는 그들을 부득불 남미로 향하게끔 한 체게바라가 있었다. 하지만, 체게바라는 이들에게 그 어떠한 이정표를 제시했다기보다는 눈을 멀게 만들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한다. ‘잃어버린 시를 영글게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이’던 로르카마냥, <뜨거운 여행>의 저자들은 기존의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고자하는 노력’을 있는 힘껏 선보인다. “존재의 비결정성, 그 힘에 몸을 맡기고, 존재의 순수한 격렬함에 몸을 내맡기는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하는 것이 시詩”라 했던 블랑쇼는, <뜨거운 여행>과 이렇게 ’시적으로’ 조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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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지 더 덧붙이면..  <뜨거운 여행>은 그저 일정과 루트를 소개하는 여행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남미 혹은 체게바라표(?) 여행법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긴, 세상 어느 여행기가 개별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되풀이시켜줄 수 있겠는가. 대신 <뜨거운 여행>에는, 끊임없는 닥쳐오는 우연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만의 경험과, 다분히 맛깔스러운 현지에 대한 소위 ’배경지식’들이 가득할 뿐이다. 때문에 ‘남미를 여행할 계획이 전혀 없는’ 나같은 사람까지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흥미롭게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 가장 먼저 든 질문은, 남미처럼 먼 곳이 아니라 이를테면, 사소한 동네 산책 중에라도 저자들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는 노력’을 시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세상이란 그리고 내 바깥이란 그 이후, 어떤 의미를 지니게될까? 였다. 지구 반대편, 남미라는 절대적인 ‘외부적 공간’에서 강제되는 변용을 겪어야만 했던 저자들의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읽는 이에게 또다른 공간에서 자신만의 외부와 변용을 탐구하게 하는 힘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글/ 김은영(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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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TV 앞에 온가족이 모여 앉아 '닥본사'하곤 했던 <브이>나 <맥가이버>등의 외화시리즈를 미드열풍의 1세대, <X-file>류의 미드를 2세대급으로 본다해도, 드라마 <섹스앤더시티(SATC)>는 분명 미드의 역사상(?) 애매한 위치에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로스트>와 <프리즌브레이크>등의 미드가 탄생되며 지금과 같은 대규모의 미드팬이 양산되기 이전인 98년부터 ,SATC는 야금야금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이후 때마침 한국에 불어닥친 '된장녀' 열풍은 "나 SATC 팬이야"를 커밍아웃하게하는데 큰 장애가 되기도 했지만, 2011년인 지금까지도 주말 아침이면 여러 케이블 방송에서 마치 장수 고정프로그램인양 지난 에피소드들이 되풀이되어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자면, SATC의 보이지 않는 열풍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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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문화의 확산에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영향이 컸다. 주인공들이 수다를 떨며 브런치를 먹는 모습은 하나의 로망이 되어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중반 서울 이태원에서 시작된 브런치 카페 붐은 불과 몇년 사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브런치 애호가들을 양산하고 있다.

(늦은 아침 '브런치' 외식 새 유행/ 매일신문 2010.10.2)


전세계적인 SATC 열풍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역시 SATC는 많은 사회적 현상의 배후로 지목된 바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비교적 올드한(?) 미드임에도 다시금 돌아보아야하는 이유입니다. 소위 사치재 소비의 메카로 일컫어지는 강남 특정 지역들에서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우후죽순으로 브런치 카페들이 생기게 된 현상, 말레이시아 무명 디자이너 브랜드였던 ‘지미추’나 ‘마놀로블라닉’ 같이 생소한 브랜드들이 대대적으로 압구정 모 백화점의 컬렉션 매장에 입점하게 된 사연 등의 뒷 이야기에는 모두 드라마 <섹스앤더시티>가 있었습니다. <시즌3>에서 샬롯이 트레이와의 결혼식 때 입은 웨딩드레스의 브랜드 ‘베라왕’은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단독매장까지 생겨 결혼을 앞둔 여성들의 선호상품 1위로 꼽히고 있고, 주인공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뉴욕 투어 버스는 여행사의 효자 상품이 된 지 오래입니다. 미국에서는 주인공 캐리 언니가 신고나온 '지미추' 구두를 신기위해 발을 작게 성형하는 수술 붐이 일고 있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 나돌 정도 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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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C의 주인공들, 즉 뉴욕의 전문직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닮고자하는 사회적 현상은 비단 위에 언급한 소비재뿐만 아니라, 일부 젊은 여성 계층의 생활 패턴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늦은 아침, 동성의 친구들과 간단한 식사를 겸해 이루어지는 공연 관람 혹은 요가 클래스 수강이 더 이상 유한마담들의 전유물이 아닌 젊은 계층의 보편 문화처럼 당연시되는 것을 보면, 일부 계층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실연을 당한 동성의 친구를 위해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거나, 결혼 혹은 출산을 앞둔 친구를 위해 ‘샤워(미국식 파티 문화의 일종)를 했다’라는 인증샷들이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블로그들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딱히 필요하지 않아도 명품 가방이나 구두를 구입하는 행위가 자신을 향한 위로나 투자가 될 수 있다고 자기개발서들은 앞다투어 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소비에 대한 ‘안목’ 내지는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타인만이 진정한 친구라 여겨지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급속히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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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은 성적 욕망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명품과 패션에 대한 소비 욕망, 자기과시적 속물적 욕망도 드러낸다. 한마디로 ‘욕망하는 여자들’이다. 그간 욕망을 분출하기보다 억압받아온 여성 관객들은, 이처럼 더 이상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주체인 주인공들에게 열광했다. 그 욕망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 욕망을 숨기지 말고 당당하라. 이것이 ‘SATC’의 메시지다. 물론 그들의 욕망이 결국은 소비로 귀착된다는 점에서 ‘SATC’는 소비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욕망하는 여자들의 '멘토' / 중앙일보 2010.6.10)

 

물론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는 뉴욕에 거주하는 4명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랑과 성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섹스'는 그저 다양하고 광범위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것이 아닌 '도시에서의 섹스'로 한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도시'란 소비재가 넘치는 도시, 그 속에서 자신을 수많은 익명의 타인들과 구별지어 도드라지게 해야만 비로소 살아 숨쉴 수 있는 '소비 도시'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드라마가  구두 수집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정한 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이유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번 강의에서는 늘 갖고 싶은게 너무 많아 괴로운 우리 삶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필요를 양산해온 것인지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소비행태들이 결국은 동일한 하나의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를 넘어 진짜로 다양한 욕망들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 예정입니다. 몸과 마음이 곤죽이 되도록 일을 해도 월급봉투를 받는 족족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고, 사도사도 항상 부족하기만 한 우리의 도시에서의 삶.. 그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고통받지 않으려면 과연 어떠한 욕망이 필요한 것일까요?

 

글/ 김은영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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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투쟁

 

 이달 초, 이삿짐을 꾸리다가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편지함 박스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연례행사마냥 연말이면 늘 주고 받던 크리스마스 카드부터 학창시절 간간히 도시락 가방 한쪽에 들어있던 엄마의 편지까지... 짐을 꾸리다말고 한참을 주저앉아 옛 추억에 사로잡혔다. 그 속에는 A4사이즈의 초라한 '찌라시'가 몇 개 섞여 있었다. 한일 월드컵 열풍이 한창이던 2002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대기업 직영 모 식당에서 일을 하던 우리 엄마는 그때즈음 회사에서 이상한(?) 통보를 받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회사에 있던 어머니 연배의 노동자들 모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다른 업체에 소속되게 되었다는 일종의 '아웃소싱' 형식의 해고장이였던 셈이다.  똑같은 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게될 것이란 사측의 변명에도,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던 엄마는 그 길로 서초동의 고용안정센터를 찾으셨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 회사측 조치에는 그 어떤 법적 하자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왔다고 한다. 사측 노조이던 한국노총에 문의를 해도 답변은 같을 뿐이었다. 하루종일 이리저리 시내를 헤매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은 당시 영등포에 있던 민주노총 사무실이었을게다. 얼마지나지 않아, 엄마에게도 그동안 TV 뉴스에서나 간혹 볼 수 있던 '투쟁'이란 것이 시작되었다.

 

 편지함에서 발견한 그 '찌라시'란 다름아닌 그때 있었던 엄마의 투쟁의 흔적인 셈이다. 아버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엄마와 동료들의 목소리를 인쇄물로 만들었고, 회사 입구의 대리석 바닥에 앉아 엄마는 동료들과 구호를 외쳤다. 당시 투쟁에의 경험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냐는 내 질문에 의외로 엄마는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더라'로 대답하셨다. 평소에 친아들, 딸처럼 따르던 회사 직원들조차 당신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슬며시 돌리고 귀를 닫아버리는 모습을 경험했던 일은 회사의 해고 통보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경험이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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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아폴리스의 창녀에게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

 

이봐요 찰리, 나 임신했어요.

지금은 9번가 유클리드 변두리 지저분한 서점 윗층에서 살아요.

마약도 끊었고 위스키도 안마셔요.

우리 그이는 트럼본도 불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예요

 

그이는 날 사랑한대요

비록 자기 아이는 아니지만 친자식처럼 키우겠대요

그이 어머니가 준 반지도 내게 줬고요

매주 토요일 밤이면 날 데리고 춤추러 가요

 

찰리, 주유소를 지날 때면 늘 당신 생각이나요

당신이 머리에 바르곤 하던 그 머릿기름때문이겠죠

난 아직도 리틀 안소니& 더 임페리얼스 레코드를 가지고 있는데

누가 내 레코드 플레이어를 훔쳐갔지 뭐예요.

당신은 아직도 그 음악 좋아할까요?

 

이봐요 찰리, 마리오가 잡혀갔을 때는 거의 미칠뻔했어요

그래서 고향사람들과 함께 살아볼까 하고 오마하로 돌아갔었죠

근데 내가 알던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감옥에 갔더군요

그래서 다시 미네아폴리스로 돌아온 거예요

 

찰리, 사고 이후 난 처음으로 행복한 기분이예요

약사느라 써버린 그 돈들, 다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지금즘 중고차 매장을 하나 사서 한대도 팔지 않고

매일매일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차들을 몰고 다녔을텐데..

 

찰리, 세상에나.. 진실은 말이죠..

사실은 나 남편따윈 없어요. 트럼본을 불리도 없고요

사실 나 변호사 살 돈이 필요하거든요.

잘하면 이번에는 가석방될 수 있을 지 몰라요

이번 발렌타인데이에는 제발 와주세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톰 웨이츠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부모는 스코틀랜드-아이리시 계와 노르웨이 이주민 출신이었고, 둘 다 교사이긴 했으나, 톰 웨이츠가 어린 시절 이혼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샌디에이고 쪽으로 이사를 했고, 간간히 찾아오던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 여행을 자주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차에 실려 이리저리 떠도는 와중에, 톰은 자동차 라디오에서 나오는 멕시코 민요들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 기억이 그에게는 꽤나 강렬했던 모양이다. 톰 웨이츠는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 장면을 빼놓지 않는다. 가난했던 그는 옆집의 피아노와 기타를 빌려가며 악기를 독학으로 배웠고, 고등학교 때는 밴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첫 직장은 피자 가게였다. 톰 웨이츠의 '하층민'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는 늘 '다른 것'을 원했던 아티스트였다. 블루스 향이 진하게 나는 음악을 만들면서도, "청년 시절 블루스는 사실 내 취향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톰 웨이츠는 당시 '올드'한 것들인 빙 크로스비, 스티븐 포스터, 조지 거쉰등의 음악에 심취했다. 그러다 우연히 프랭크 자파의 매니저였던 허브 코헨의 눈에 들어 [The Early Years]와 [The Early Years, Vol. 2.]라는 타이틀의 앨범으로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이어진 [The Heart of Saturday Night](1974),  [Nighthawks at the Diner](1975), [Blue Valentine](1978) 등의 앨범들은 비록 대중적 관심을 사지는 못했으나, 평단의 찬사와 컬트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81년 결혼을 하게되기 전까지, 자동차를 타고 온갖 싸구려 여관을 돌아다니며 술에 취한 채로 음악적 영감을 얻고자 했다. 늘 '바닥'을 살았고, 그 '바닥'을 노래하고 싶어했던, 그는 일종의 '다운 생활자'였던 셈이다. 톰 웨이츠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찾아 헤맸고 그것을 노래하고자 했다.  

 

 니코틴과 알콜에 제대로 숙성된 듯한 거친 목소리의 독백.. 톰 웨이츠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특유의 부랑자같은 목소리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회 저소득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 아티스트이다. 이는 그가 70년대 후반부터 영화에 급속히 관심을 가지며 온갖 영화에 B급 배우 혹은 조연 배우로 출연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출현은 그와 절친한 사이로 지냈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과 청년시절, 거리를 헤메며 쌓았던 톰 웨이츠의 '이야기'들은 그의 노래 속에서 그리고 영화 안에서 하나의 생명처럼 살아 숨쉰다. 단 한장의 골드레코드도 없을만큼 대중적으로는 인기가 없는 아티스트였음에도, 톰 웨이츠 특유의 카리스마가 음악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어있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톰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 즉 그가 찾아헤맸던 그 '서사'들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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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에 출연한 이기팝과 톰 웨이츠)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올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하는 톰 웨이츠의  '미네아폴리스의 창녀에게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란 곡은, 78년 [Blue Valentine]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서, 이제껏 현존하는 캐롤들 중 가장 서글픈 곡이라 할만하다.  미국 백화점 시장의 연매출 40%가 소비된다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그리고 이어지는 발렌타인 시즌,  이 들뜨고 활기찬 축제의 시기에 톰 웨이츠는 그 누구도 귀기울지 않던 쓸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평소 잭 크로악(Jack Kerouac)과 찰스 버코우스키(Charles Bukowski) 등의 비트(Beat) 운동 작가들의 작품에 특히 애정이 남달랐던 그의 문학적 소양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비트 문학은 주로 '정키'라 불리우던 사회 부적응자, 방랑자, 아나키스트, 전위 예술가,  냉소와 허무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태어난 문학장르인데, 고답적인 엘리트주의에만 빠져 있던 기존 문학의 스타일과 한계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문학의 형태를 갈구하던 흐름을 지칭한다. 그의 또다른 곡 '토요일 밤의 마음(The heart of Saturday night)'에서는 당시 비트닉(Beatnik)이라 불리우던 '방랑자'적 서사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톰 웨이츠의 쓸쓸한 이야기들이 단순히 하층민의 한탄과 같은 개인 서사가 아닌 정치적으로 평가되어야하는 이유는, 그가 이 같은 비트 운동의 한가운데 서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있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인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그 어떤 거대한 구호보다 정치적 힘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은 타성에 젖어있던 많은 이들에게 그간 미처 보지 못하던 사회의 이면들을 깨닫게해주고 비로소 움직일 수 있게하는 동인이 되기 때문이리라. 톰 웨이츠는 그가 부데꼈던 삶들의 '이야기'들을 노래로 부르고자 했고, 그렇게 '진정성'을 성취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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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투쟁'하는 이들에게

 

  광주시청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이 경찰의 강제 진입에 맞서 옷을 벗은 채로 '건드리기만 해봐'라며 눈물을 흘리던광경을 몇년 전 목도한 이래, 그 안타까움에 홍대 투쟁 관련 기사를 애써 피하게 되다는 누군가의 고백을 며칠 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새벽 시간 출근해 화장실 한켠의 청소자재 도구함에서 차가운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워야만 하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미네아폴리스 창녀의 편지마냥 가볍게 듣고 넘길 수 있는 종류의 그것이 아니다. 그 서글픔이 단순히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독백이 아닌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기에, 그에게는 투쟁 소식을 접하는 일이 그리도 힘든 일일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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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시간에도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 속에서 사그러져간 목숨들을 위해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린 기업과 싸우고 있는 이들, 며칠 앓고나면 나을 수 있는 병임에도 상품가치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생매장 당하고 있는 수십만의 생명들과 그들을 향한 눈물, 그리고 따뜻한 밥 한끼라는 소박한 권리를 위해 차가운 바닥에서 투쟁하고 있는 누군가의 어머니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톰 웨이츠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세상의 모든 투쟁하는 이들에게 그 어느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려는 진심일지 모른다. 기록적인 한파가 계속되는 이 추운 겨울날, 우리에게도 '미네소타 창녀의 카드'가 배달되었다. 자 , 진심으로 봉투를 열어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글/ 김은영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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