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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0 <곰에서 왕으로> 인디언의 삶을 통해 본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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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굴다리 밑의 눈이 녹았다. 얼었던 지면이 물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며칠 전 시원하게 쏟아 붓던 빗줄기도 모두 어디론가 스며들어 길을 적셨다. 한겨울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지난 겨울, 자전거라도 탈라치면 날리는 바람에 얼굴은 깨질 듯했고, 입김은 목도리에 성에를 남기곤 했다. 그때 땅은 얼어붙어 무엇 하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개의 오줌도,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 아스팔트의 잿빛 물도, 지면은 천천히 빨아들인다. 나는 문득 사랑을 떠올렸다.


2.

 성년이 되기 위해 사냥 훈련을 나간 인디언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 그는 어떤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는데, 이 여성은 염소 가죽을 둘러쓰자 염소가 되었다(!) 남자도 염소 가죽을 뒤집어써보니 그도 염소가 되었다. 여성과 결혼한 그는 모든 염소와 가족이 됐다. 꿈에서 깬 남자는 동료들과 염소 사냥을 하러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였을 암염소, 새끼 염소를 제한 숫염소를 필요한 만큼만 잡았다. 죽인 숫염소에 대해서도 이들은 다양한 절차와 의식을 거행, 마지막으로 내장과 뼈를 흐르는 물에 가라앉혔다. 그 넋이 다시 자연 속에 편안히 돌아가기를 바라면서. “동물에 대한 이런 세심한 배려는 특히 동물을 죽이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습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동물과 인간은 완전히 대등한 존재가 되어, 인간끼리의 결투에서와 똑같은 ‘아름다운 행동’이 요구되었던 겁니다.” *1)


3.

 책 <<곰에서 왕으로>>는 신화적 사고에 깃든 인간과 자연간의 대칭적 관계를 보여준다. 종교학자이자 철학자인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아메리카 서해안부 인디언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 이전의 공동체적 사고가 어떤 원칙으로 구성되었는지 이야기 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 인간은 곰, 야생염소, 연어, 범고래 등과 자신을 자연 안에서 대칭적인 관계로 파악했다. 이들은 다른 종을 동일화의 논리로 포섭하지 않고, 적대의 논리로 배척하지 않았다. 신화 속에서 그들은 다만 서로가 증여의 관계를 통해 종을 오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칭성의 사고는 국가의 출현과 함께 무너진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이 공생하던 자리에는, 인간을 더 ‘고귀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국가가 들어선다. 사랑, 문화, 대칭성 대신 적대, 야만, 비대칭성이 들어선 것이다. 저자는 대칭성에 기반을 둔 신화적 사고를 통해 현재의 삶을 분석할 수 있는 ‘머나먼 시선’(레비 스트로스)를 다시 끌어들이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대칭성의 사회 원리를 자꾸만 사랑의 원리로 포개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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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이라 할 때, 우리는 쉽게 개인과 개인의 만남,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이성간의 만남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이 관계가 연대의 쾌감을 맛보는 극히 제한된 형식이라 생각한다. 이성간의 사랑마저 아우르는 연대의 쾌감이란 뭘까? 그것은 ‘나’라는 닫힌 존재가 타자와 접속하려는 추동력의 다른 말이다. 사랑은 무엇보다 무장해제하려는 마음이다. 동일시와 연민, 이 두 가지 모두이면서 둘 모두 부정하는 낯선 힘. 나 아닌 자와 내가 연결돼 있다는 근본 없는 믿음과 자신감. 그래서 기꺼이 공명하고 변화를 감수하려는 태도. 이러한 힘이 연인 사이에서 발현될 때 서로의 손길을 허용하고, 타액의 긍정하며, 온몸을 울려 평소와는 다른 호흡과 신체를 작동시킨다. 타자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과 연속성에 대한 욕망은 우연을 받아들이고, 개인을 넘어서려는 체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신화 속에서 인간은 곰이 되고, 야생염소가 되고, 연어가 되었으며 그들 역시 인간의 몸이 되어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신체를, 온갖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감히 도전한다. 타자를 향해 열린 신체, 타자와 깊이 감응할 수 있는 신체, 그로 인해 내가 변하며, 변화된 신체를 기꺼이 준비하는 것. 그것은 대칭적 사고 속에서 가능했다.


5.

 나는 사랑이 대칭적 사고에서 나아가 연대를 향한 삶의 추동력이라 생각한다. 개인에서 벗어나 관계를 증식하려는 욕망으로 사랑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항상 공동체를 향한 추동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철학이 바탕에 깔린 인디언의 삶을 나는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삶의 기술, 기예로 읽는다. 그리고 그러한 추동이 어디에서 오는가가 굳이 궁금하다면 다음 뒤라스의 소설이 이를 잘 보여줄 것이다.
 

당신은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불시에 솟아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여자는 당신에게 대답한다: 우주의 운행질서가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 여자는 말한다: 예컨대 실수에서. 그 여자는 말한다: 결코 의지로부터는 아니죠. 당신은 묻는다: 사랑의 감정이 다른 곳으로부터 솟아날 수 있소? 당신은 말해달라고 애원한다. 그 여자는 말한다: 모든 것에서, 밤새의 비행에서, 잠에서, 잠자면서 꾸는 꿈에서, 다가오는 죽음에서, 단어에서, 범죄에서, 그냥 저절로, 왠지 모르게 갑자기 *2)


6.

 나는 오늘도 나의 말과 나의 경험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다. 다른 무엇과 접속하려는 사랑의 실천. 그것은 항상 나 아닌 자를 필요로 하며, 우연이 수반할 고통마저 긍정한다. 그것은 “잠에서, 잠자면서 꾸는 꿈에서, 다가오는 죽음에서, 단어에서, 범죄에서, 그냥 저절로, 왠지 모르게 갑자기” 언제나 찾아온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를 긍정하는 일 뿐이다.

 굴다리 밑의 눈이 녹았다. 겨우내 물이 없어 얼음을 핥으며, 목이 말라 죽던 고양이는 더는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위클리 수유너머> 3월 8일자에 <굴다리 밑의 눈이 녹았다>라는 제목으로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1) 나카자와 신이치, <<곰에서 왕으로>>, 김옥희 역, 동아시아, 116쪽.

*2) 마르그리트 뒤라스, <죽음에 이르는 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65쪽.




글 / 유심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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