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금요일.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집회가 청계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집회신고를 거부하여 처음부터 불법집회로 만들어 놓고는, 불법집회 저지를 명분으로 장소를 미리 경찰이 점거했지만,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맴돌던 분노는 거대 대중이 되어 둘러싼 경찰의 벽을 흘러넘쳤고, 거꾸로 집회장소를 점거한 경찰대열이 포위되는 양상으로 바뀌어버렸다. 덕분에 불법집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경찰은 그 집회대중을 경찰벽으로 이리저리 막았지만, 흘러넘치는 대중은 그 벽을 넘어 거리로 다시 흘러넘쳤고, 금지된 ‘행진’, 혹은 ‘질주’를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시간, 150일 이상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와 한진중공업을 경찰의 호위 아래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가 덮쳤다고 한다. 다행히 다음날 용역업체가 점거한 현장을 ‘희망의 버스’를 타고 내려간 700명가량의 ‘외부세력’들이 밀고 들어가 다시 탈환했다. 그러나 멀리 서울 근방에서 내려간 그 버스는 다음날 되돌아와야 했기에, 희망은 잠시, 다시 권력에 포위되고 말 것이다.

점거와 탈환, 포위와 이탈이 겹치며 반복되는 이 교착 속에서, 우리는 정리해고를 눈앞에 둔 노동자와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겪는 대학생들이 뒤섞이는 기이한 혼성의 지대를 발견한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려고 뭐 하러 가는 건지도 모르는 채 나섰다가 한진중공업에 용역으로 투입되었다는 부산 모 대학교 대학생이었다. 아마도 해고와 대결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는 대학생 자식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정리해고와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분들일 것이다. 개인적인 관계는 없다고 해도, 아마도 그런 노동자의 아들일 수 있을, 등록금의 일부라도 벌기 위해 알바를 해야 하는 대학생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압하는 용역으로 고용되어 그 자리에 투입된 것이다.

노동자와 대학생이 만나는 방식은 70년대 이래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다.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다면’이라는 전태일의 가슴 아픈 유언에 휘말려 노동자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들과 만나는 방식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80년대에는 조직된 학생운동과 아직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의 형태로 만나는 방식이 있었다. 이후 대학생과 노동자가 만나는 지대는 크게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말~90년대 전반, 노동자들은 전노협이라는 강력하고 전투적인 조직으로 발전한 반면, 대학생들의 주류는 노동운동에서 멀어져 통일운동 등의 다른 운동으로 옮겨갔다. 9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이라는 ‘안정적인’ 조직으로 성장한 반면, 학생운동은 쇠락을 거듭하여 학생회조차 장악하지 못하게 되면서 운동의 장에서 만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학생들은 이제 단지 취업에 목을 건 취업준비생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97년 이후 비정규직의 확대와 대학등록금의 증가는 노동자와 학생을 불편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하는 것 같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취업과 실업의 중간 상태에서 떠돌고 있었다면, 대학생들은 턱없이 오른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은 물론 학기 중에도 알바를 해야 하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학기에 500만원을 전후하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대학생들은 이제 수업시간을 피해가며 알바를 하는 게 아니라, 알바 시간을 피해가며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학생이기 이전에 알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임을 뜻한다.

전체 시간의 일부만을 노동할 수 있는 노동자가 비정규 노동자라면, 알바에 일정한 시간을 할당하고 그것을 피해가며 수업을 듣는 대학생, 즉 학교에 다니지만 전체 시간의 일부만을 수업을 듣고 공부할 수 있는 대학생은 ‘비정규 대학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고액등록금에 목을 잡힌 채, 알바 없이는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된 대학생, 그들은 대학생이지만 비정규 대학생이고, 노동자이지만 비정규노동자인 것이다. 대학생과 노동자가 비정규성이라는 하나의 공통성을 갖고 하나의 신체에 동시에 거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니, 이중의 비정규성이 그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난 2008년 촛불시위 때에도 조직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에 대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던 것은, 물론 시간적인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단지 우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내고 비정규직으로 몰아세우는 과정과 미친 등록금으로 대학생들을 비정규 대학생으로, 비정규 노동자로 몰아세우는 과정이 하나의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비정규 노동자로 내모는 기업에 대한 저항과, 대학생을 학교 밖으로, 비정규 대학생으로 내모는 대학에 대한 저항이 사실은 하나의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와 대학생의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가 출현하리라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이 상상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대학생이 합류하면서 만드는 새로운 종류의 연대의 방식에 대한 상상이.


글 / 이진경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이 글은 <위클리 수유너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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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요를 좋아한다.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를 들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쥐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괴롭다.

-1796년 펜실베니아 주지사에게 인디언 추장이 한 말

 

 

대학을 다니며 삶에서 잊어선 안 될,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 생겼다. 그건 사랑도 아니요 우정도 아니요 진리를 향한 지적 욕구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원금 상환일과 통장의 잔고였다. 대학 재학 시절,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을 착취할 수 없게 되자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에 ‘손을 댔다’. 그땐 대출이자만 냈기에 생활은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하지만 졸업 후 원금도 상환하는 지금, ‘그 날’이 오면 탈수기를 강으로 놓고 돌리기라도 한 듯 통장에선 돈이 탈탈 빠져나간다. 그렇게 다달이 나는 가슴 한 구석이 텅 비는 경험을 해야 한다. 채무자의 삶은 언제나 비굴한 법, 빚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증발되었으면, 새하얗게 잊혀졌으면 싶다. 저 학자금 대출액 말이다.

 
 

1. 가난을 부르는 빚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 했던가? 그러나 지난날을 돌아보면 수중에 돈이 없다는 건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빚지는 건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요즘 빚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싶다. 오히려 빚이 많을수록 은행에선 우량 고객으로 대접하는 시대 아닌가? 어쩌다 홈쇼핑에 낚여 넋을 놓고 화면을 바라보면 12개월 할부로 얻지 못할 건 세상에 없을 것만 같다. 빚 권하는 사회. 특히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등록금을 감당해야하는 학생과 그 부모들은 모두 이 빚쟁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이 빚은 누구도 대신 갚아줄 수 없다는 것을. 어떤 생산수단도 갖지 않은 이가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을 터. 그러니 우리 빚쟁이는 언제나 누군가로부터 착취 받아야만 범죄자가 되지 않고 살 수 있다. 빚, 그 중에서도 화폐로만 상환 가능한 빚은 오직 삶의 목적을 화폐에 두게 한다.
 

‘빚’이란 결국 아직 생겨나지 않은 노동자들의 착취를 위한 수속이다. 많은 학생은 졸업 시 졸업증서와 맞바꾸게 될 장학금[학자대출금] 반환 계약서를 쓰면서 연대보증인인 부모와 형제들의 이름을 확인한다. 임노동의 치욕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는 것이다. (나카타 노리히토-블랙리스트 zine 1호 중)


백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졸업 후 당장 갚을 길이 트이는 것도 아니다. 2010년 20대 취업자 수는 1981년 4분기 이후 최저였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급증해 2010년 5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대 대졸 실업자가 20만 4000명을 기록했다. (<한국의 워킹푸어>, 책보세, 142쪽) 그렇게 우리는 일상적으로 빚을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 하루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불어나는 이자 때문에 우린 평생 빚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 맑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기원, 이른바 본원적 축적의 역사를 밝힌다. 목가주의적 경제학자는 자본주의의 형성 모델을 개미와 베짱이의 예로 설명하겠지만, 맑스가 보기에 자본주의적 시장은 국가와 자본의 물리적, 금융적 폭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개미가 그러모은 것은 판돈이었고, 그것은 늘 누군가로부터 강탈해온 것이라고 봐야 옳다. 강고한 소유권을 중심으로 국가 권력은 저임금의 임노동자와 수많은 부랑인ㆍ아사자를 양산했다. 국가 관료들에 의해 날치기로 임금인하법, 단결금지법, 빈민법, 공유지 인클로저 법이 통과되었고, 보호무역과 국채 전가, 중과세 등은 국민들에게 수많은 빚을 안겼다. 국가 폭력과 함께 인민들은 빚쟁이가 되었고, 이 빚을 갚기 위해 노동자가 안되고는 생존이 불가했다. 이 구조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상시적 약탈의 조건 속에서 자본주의 역시 유지된다고 해야 할 판이다. 국가가 나서서 정규직의 고용을 ‘유연화’해 ‘비-정규직’의 비중을 높이고, ‘간접 고용’을 양산해 노동자들을 일상적인 반고용 반실업 상태에 빠뜨린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국민에게 일상적인 빚과 불안을 전가한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간접고용 법안의 확대 적용 실시,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운용 시도 등은 공적 재산인 세금의 증권화를 부른다. 오늘날 본원적 축적은 더 크고 일반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시애틀추장의 연설 중)

 

 

2. 풍요를 부르는 빚

 

 

빚이라고 해서 꼭 화폐로만 갚을 수 있는 빚,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빚만 있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갚고 싶은 빚’이란 게 있으며, 그것은 살면서 더 많이 찾아내고 평생 내 방식대로 갚아나가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이 빚은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양시킨다. 빚에도 좋은 빚과 나쁜 빚이 있는 것이다. 최근 인디언의 삶과 사상에 대한 공부를 통해 들게 된 생각이다. 인디언들에 대한 수많은 인류학적 보고서가 있지만 나에게 책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인디언 추장과 샤먼의 직접적인 육성이 담긴 선언문집이라는 점에서 뜻 깊다. 인디언들은 만물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에게 서구의 이방인, ‘얼굴 흰 자들’은 너무도 낯선 자들일 수밖에 없었다. 땅이나 물건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친구인 동물을 인간만을 위한 가축으로 사육하고 함부로 죽이는 일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자신들을 있게 한 어머니 자연에 대한 얼굴 흰 자들의 파괴행위는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은 자연에 대해 언제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대지는 생명을 사랑하고, 우리에게 자신이 가진 선물을 나눠 준다.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는 이 대지 위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잘 보살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내 앞에 아름다움, 내 뒤에 아름다움> 델라웨어 족 상처입은 가슴의 선언)

 

당신이 대지로부터 무엇을 취할 때마다, 그것이 음식이든 공기든 옷이든, 당신은 그 답례로 무엇이든 대지에게 주게 된다. 명상은 바로 그런 것이다. 당신의 작고 낡은 자아를 위해 개인적인 어떤 것을 얻는 것이 명상이 아니다. 명상은 일종의 눈뜸이고, 되돌려주는 것이다.( <겨울 눈으로부터 여름 꽃에게로> 체로키 족 구르는 천둥의 선언)

 

이들의 철학에 따르면 나를 존재하게 만든 가장 가까운 원인은 생물학적 부모만이 아니다. 입을 것, 먹을 것, 숨 쉬는 공기도 동등하게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래서 인디언은 하나하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자연에게 진 빚을 갚는 삶을 살았다/살아야 했다. 또한 인디언의 삶은 유약하지도, 고립적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더 나은 정치체에 대한 상을 언제나 고민했고 억압적인 권력의 출현을 언제나 예민하게 감지했다.


나는 스스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부와 법, 그리고 소위 체제라는 것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에 온 그만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만의 모습, 그만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자신만의 방식과 길을 갖고 있다. 따라서 누구도 그 길을 방해해선 안 된다. (위와 같은 선언)

 

그들의 부채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부채감은 만물이 이어져 있다는 일상의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인디언에게 ‘나’란 대지 위의 모카신과 다를 게 없는, 무엇과 견주어도 우월하지 않은 존재였다. 이들의 철학은 단순하고 시적이기에 많은 이들을 매혹시킨다. 또한 이들의 구체적 삶의 면면을 보며 우린 다른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난 무엇보다 가난을 부르는 빚을 단호히 거부하고, 풍요를 부르는 빚을 섬세하게 찾아낼 시야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자본주의 외부를 사유하는 든든한 무기로도 손색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현재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다. 하나는 배고픔과 죽음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저 얼굴 흰 사람들의 삶으로 사는 길이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저들이 도저히 갈 수 없는 ‘행복한 사냥터’가 있다. (오글라라 라코타 족 여러 마리 말의 선언)




글 / 유심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이 글은 위클리 수유너머 85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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