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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5 <경계도시2>, 다큐멘터리를 넘어선 다큐멘터리 (1)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 대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영화장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 현실을 담기 위해서는 현실을 선택하고 자르고 붙이는 허구적인 해석을 해야만 하고, 이 역할은 감독이 한다.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극영화보다 감독의 자리가 더 중요한 장르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뚜렷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무어감독은 <식코>에서 수익을 위해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제도의 폐해를 그 특유의 직설화법과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낱낱이 파헤친다. 마이클무어감독은 영화 속에 직접 등장하여 본인이 의도한 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간다. 한편 10만 관객을 동원해냈던 <워낭소리>에서 논란을 빚었던 ‘누렁이 눈물 씬’은 극영화 못지않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정말 극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편집된 것이고, 이는 이충렬감독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다큐멘터리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연출 없는 기록’ 이라는 사실과 다르게 감독과 연출이 다큐멘터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경계도시2> 역시 그러한데, 놀라운 점은 앞서 말한 영화들과 다른, 심지어 본인의 앞선 영화와도 구분되는 <경계도시2>에서 홍형숙감독의 태도와 위치다. <경계도시2>에서 그녀는 충실한 기록자, 관찰자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계몽자도 아니다. 송두율교수 입국 후 터져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녀를 그 두 자리 중 어딘가에 위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감독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불신 사이를 오가던 그 무렵” 즉, ‘송두율이 김철수냐 아니냐, 거짓말 했냐 안 했냐’는 흑백논리에 말려들고 있던 그녀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동시대 진보진영의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한국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표면상으로는 감독의 자리에 있지만 감독이 가지는 확신과 주도권을 내려놓고 자신이 느끼는 흔들림과 균열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경계도시> vs <경계도시2>


경계도시.jpg 경계도시2.jpg

 

<경계도시2>에서 홍형숙감독은 카메라를 든 그의 앞에서 펼쳐지는 현실 앞에서 카메라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 ‘통제 불가능성’은 6년이라는 후반작업이 있었음에도 고스란히 완성된 영화에 담겨 관객에게 전해진다. 후반작업 동안 감독에게 부여되는 절대적인 편집권을 생각해보면, <경계도시2>는 촬영하는 1년 3개월 동안 감독 본인이 느꼈던 모든 혼란과 모순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담겠다는 홍형숙 감독의 결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경계도시2>가 만들어지기 7년 전 완성된 <경계도시>는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한 축에는 홍형숙 감독이 송두율교수를 만난 2000년 6월 14일부터 33년만의 입국이 무산 결정된 2000년 7월 4일까지의 일련의 사건들과 이에 대한 송두율교수의 입장과 철학이 있다. 다른 한 축에는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송두율교수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행위에 대해, 영화를 폐기처분하고 제작진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국정원의 압력이 있다. 촬영을 끝내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뒤 강석필PD는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홍형숙감독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누군가에 대해 말하는)일상적 행위조차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분명하고 확신에 찬 단호한 문장으로 결론을 짓는다.

한편 <경계도시2>가 막 30분을 넘길 즈음 홍형숙감독은 송두율교수가 김일성 사망 당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초청된 사실을 그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언론들의 보도에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충격에 휩싸인 한국사회와 함께 그녀 또한 송교수에 대해 할 말을 잃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곧이어 2002년 어느 대학에서 <경계도시>상영 이후 ‘송교수가 김철수인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한국에 들어 왔을 때, 한국이 그를 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다’라고 말했던 본인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그녀 안의 레드컴플렉스와 필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한다.

송두율교수는 뒷날 귀국 후 한 달 만에 구속되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 틈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는 송두율교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구속 후, 잠잠해진 언론과 한국사회가 망각의 시간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 되어서야 홍형숙감독을 비롯한 진보진영 또한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생겼을 것이다. 이는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인 1시간 24분이 되어서야 등장하는 이야기다.

<경계도시2>에서 홍형숙감독은 분명하고 확신하는 입장을 갖고 마무리 지은 <경계도시>와 다르게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10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송두율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성찰적 질문으로 마무리 짓는다.


 

<경계도시2>가 만들어낸 것


<경계도시2>를 통해 홍형숙 감독은 기존의 다큐멘터리들과는 확연히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이는 허구적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선전적 다큐멘터리도 아닌, 연출 없는 기록을 표방한 순진한 다큐멘터리도 아닌 어떤 것이다. 이에 변성찬평론가는 ‘철학보다 먼저 움직이는 예술’이라는 말로, 김영진평론가는 ‘주관적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내적 파열을 겪으며 도달한 경지’라는 말로 표현했다.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담은 400여개의 테입과 그 시간이 주는 압박과 함께 그보다 훨씬 컸을 한국 사회와 진보진영 그리고 감독 본인 안에 있는 ‘실재’와의 대면에서 느꼈을 공포와 당혹을 상상해보면 6년이라는 후반작업의 시간은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결론을 내겠다는 감독으로서의 권위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한 상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탈당했고, 그녀 스스로도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현실을 앞에 두고 그 갈등과 분열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견뎌낸, 다큐멘터리 ‘감독’이면서 솔직한 ‘동시대인’이고자 했던 그녀의 선택과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글 / 권은혜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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