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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4 브로콜리 너마저,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노래들 (10)

브로콜리 너마저 -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노래들

                  브로콜리 너마저 멤버들. 출처: 브로콜리 너마저 홈페이지(http://www.broccoliyoutoo.com/) ⓒ 락큐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희한한 이름의 밴드를 알게 되었을 때, 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던 중얼거리는 듯한 창법도, 록 밴드 치고는 너무나 순해 보이는 멤버들의 외모도 별로였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가사였다.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웃기지만, 너무 심하게 공감이 되어서 거리를 두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심하다 못해 자잘해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나 슬퍼도 이웃에 방해가 될까봐 헤드폰을 쓰고 혼자 춤을 추는 모습에서(1집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눈치로 점철된 내 인생이 떠올랐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한 마디 말 못하고 붉어지는 모습에서(1집 - [두근두근]) 횡설수설하며 커피만 축내던 소심한 첫사랑이 떠올랐다. 무쟈게 공감이 되긴 했지만, 어디 가서 공감되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사랑은 좀 더 용감하고 열정적이기를 바랬고, 눈치 보다는 소신과 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싶었다. 그들의 ‘보편적인 노래’(브로콜리 너마저 1집의 이름이자, 타이틀곡의 제목)에 공감하기보다, 보편적이지 않은 특별한 감정과 인생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오디오의 전원을 꺼버리며 생각했다. ‘흥....사소한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라니...이름은 희한하지만 노래는 전형적이군...난 이런 소심한 사람 대신 멋있는 사람이 될거야!!’




하지만 멋있는 사람이 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여러 가지가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대체 뭐가 ‘멋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그런 애매한 기준에 맞춰 끊임없이 나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스스로 만들어 낸, 모호하기 그지없는 ‘자신 있고 특별한 인간’상과 소심한 나를 비교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사소한 감정보다 더 크고 그럴 듯한 삶을 꿈꿨는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자 조급해졌다. 밑도 끝도 없이 삶이 불만으로 가득 찼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불만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소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불만이었고, 그걸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내가 불만이었다. 어느새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다. 자신 있는 사람이 되는 대신 까칠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세수를 하며 쳐다본 거울 속에는, 막 사회에 나와 자신만만해 하던 젊은이 대신, 온종일 투덜대느라 지쳐버린 투덜이 스머프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불만과 피로에 쩔어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귀에 꽃은 친구의 엠피쓰리플레이어에서 브로콜리 너마저 2집 첫 번째 곡인 [열두시 반]이 흘러나왔다. 마침 집에 돌아가는 12시 무렵, 지친 나를 위로하는 듯한 노랫말과 조곤조곤한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눈이 뻑뻑해졌다.


열두시 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눅눅한 버스를 타고
자꾸만 졸려 하다 보면 어느새 낯선 곳의 정류장

이젠 돌아갈 버스도 없는 열두시 반의 거리를 걷는 지친 나의 어깨

누구도 위로 할 수 없는 피곤에 빠진 우리들을
누구도 위로 할 수 없는 기분에 빠진 우리들을

누구도 누구도



그 후 한참동안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들을 많이 오해했음을 알게 되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다루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소소한 일상을 막연히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꾸로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일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떨어져서 보면 일상은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나 잔인한 일로 가득하다. 좋고 좋은 관계라는 외피 아래 덕담을 주고받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다. 타인의 문제를 대하면 주로 눈을 돌린다.(2집 - [마음의 문제]) 이런 잔인함을 알고 있지만 이를 바로잡기엔 우린 너무 나약하다.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나쁜 말들을 뱉어낸다.(1집 - [안녕]) 그리고 세상은 이런 상처는 아랑곳없이 끊임없이 달리기만을 요구한다.(2집 -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이 미친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이들의 노래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거꾸로 그것들이 쉽게 놓치고 마는 지점을 세심하게 포착하기 때문이었다. 보통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말로 아름답게 치장하려 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사람들의 어둠과 잔인함을, 이를 안다 해도 어찌하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함을, 느리지만 단호하게 알려준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이들의 노래를 멀리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꿈이 높았던 만큼, 나약함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실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랑과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상처를 주고 있음을, 알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멋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지금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 싶었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사소하다’고 치부되는 여러 문제들, 예를 들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어떤 사람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와 같은 일들을 간과하는데서 생긴다고 지적했다. 사소하다고 여겨진 문제들은 사실 사소하지 않다. 생각보다 어렵고, 중요하다. 무조건 감싸 주는 게 우정이 아니라면,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지 알기 쉽지 않다. 돈이 인생의 절대 목표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하기 어렵다.

니체가 말하는 ‘강함’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발견하는 세심함이며, 그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용기이고, 이를 통해 자신이 욕망하는 삶을 조금씩 꾸려나가는 당당함이다. ‘내가 원하는’ 혹은 ‘멋있는’ 삶은 이런 과정을 통해 천천히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자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나약한 자들을 이런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 어렵고 지난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의 평화니 진보니 하는 크고 그럴 듯한 문제를 다루겠다고 덤볐던 것도, 실체 없는 ‘멋있음’을 쫓았던 것도, 친구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는 것조차 버거웠던 내 나약함을 감추고 잊기 위함이었다.

부끄러웠다. 소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는 않은 문제를 고민하는 브로콜리의 노래가, 내 어리석음을 조용히 비추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로콜리는 어리석음을 드러내지만, 비웃지는 않는다. 걱정해하고 불안해하는 친구에게 너도 사실 멋진 날개가 있다고 위로하고(2집 - [변두리 소년, 변두리 소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길 거라 다독인다.(2집 - [다섯 시 반]) 첫 맛은 씁쓸하지만 조금씩 따뜻하게 차오르는, 한 바탕 감기를 앓고 마시는 생강차처럼, 그들의 노래는 날카롭고 또 따뜻했다. 어느새 팬이 되어 찾아보게 된 인터뷰에서, 베이스를 치는 덕원이 특유의 느린 말투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갈수록 시국이랄까 환경이 힘든데...그럴 때일수록 서로를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덕원의 말처럼, 힘든 시국이다. 어디를 향해서든 일단은 달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거라고 윽박지르는 닦달이 24시간 돌비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그 닦달에 못 이겨 방향을 잃은 채 마냥 달리다간, 혹은 거꾸로 무조건 개겨보겠다고 온 세상을 미워하다간, 어느새 지쳐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브로콜리의 노래처럼 찬찬하지만 세심한 시선으로 우리의 생을 살피는 것이 아닐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세상의 정답지로 서로를 오답체크하기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 나와 친구들의 삶을 배려하고 돌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라며 말을 건네는 그들에게, 소소하지만 사소하지는 않은, 날카롭지만 차갑지는 않은 노래를 들려준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글 / 만세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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