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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이슈_이진경 칼럼] 비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대학생 6월 10일, 금요일.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집회가 청계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집회신고를 거부하여 처음부터 불법집회로 만들어 놓고는, 불법집회 저지를 명분으로 장소를 미리 경찰이 점거했지만,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맴돌던 분노는 거대 대중이 되어 둘러싼 경찰의 벽을 흘러넘쳤고, 거꾸로 집회장소를 점거한 경찰대열이 포위되는 양상으로 바뀌어버렸다. 덕분에 불법집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경찰은 그 집회대중을 경찰벽으로 이리저리 막았지만, 흘러넘치는 대중은 그 벽을 넘어 거리로 다시 흘러넘쳤고, 금지된 ‘행진’, 혹은 ‘질주’를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시간, 150일 이상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와 한진중공업을 경찰의 호위 아래 회사가 고용한 용역.. 더보기
[이슈_이진경 칼럼] 재난, 혹은 물질성의 저항 종종 우리는 뜻하지 않은 존재자가 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예전에 그것은 네스호의 괴물이나 UFO, 혹은 영매의 몸에 갑자기 내려 앉은 귀신처럼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던 것들,혹은 과학의 시선 바깥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것이 별로 남아나지 않게 된 지금, 그런 ‘신비한’ 사실 자체도 별로 남아 있지 않거니와, 어쩌다 귀에 들어온다 해도, 일축의 감탄사와 함께 쉽게 묻혀버리고 만다. 그래도 종종 당혹을 야기하는 뜻밖의 존재자들이 있다. 전에 태평양의 어딘가에 있는,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가 떠돌다 모여 만들어졌다는 거대한 쓰레기의 섬 얘기를 인터넷서 보았을 때 그랬다. 이때의 놀라움과 당혹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던 것이었다는 점에서 전과 달.. 더보기
[이슈_이진경 칼럼] 경쟁의 생물학, 경쟁의 교육학 원래 후진국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어디서나 ‘세계 최고’나 ‘아시아 최고’ 같은 순위에 집착하는 것이다. ‘아시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던 남산타워(지금은 아니겠지만)를 비롯해 이런 순위 자랑성 발언이 유난히도 많았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은 자랑할 게 없어선지, 그런 거 자랑하는 게 남들보다 잘난 게 없음의 징표임을 알아서인지 많이 뜸해졌다. 약간은 후진성에서 벗어난 것일까?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에서 최고의 순위를 얻은 게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은 시민들의 행복도나 복지예산비율 등이 OECD 국가 최저라는 것 등이 그것인데, 자살율도 그렇다. 2003년 이후 헝가리와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OECD 최고의 자살율을 감춘 국가가 되었다. 자살은 이제 양적으로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최고 .. 더보기
[이슈_이진경 칼럼] 종말 이전의 종말, 혹은 종말론적 세계 “하늘에서 갑자기 수백마리의 새떼들이 죽어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땅에선 천만에 가까운 동물들이 죽어, 그 핏물이 대지에 흘러넘치도다. 거대한 지진이 전에 없이 반복되고, 그로 인해 육지가 이동하며 지구의 지축이 흔들려 밤낮의 행로가 틀어지도다. 근대과학의 정수가 집약되었다는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되고 폭발하여 방사능이 물과 음식은 물론 전세계의 대기로 퍼져가 죽음의 재가 되어 인간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그 미래마저 잡아삼키리라.” 정말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것이 인간이 자행한 업보가 죽음의 인과로 되돌아오는 종말을 뜻한다면, 두 번째 것은 자연이 자신의 신체와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정화’의 종말을, 세 번째 것은 과학이 만든 합목적적 세계가 그 근저에서 붕괴하는 종말을 뜻하는 것이.. 더보기
[이슈_이진경 칼럼] ‘강남좌파’를 위하여 ‘강남좌파’, 아마 지금 한국의 보수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인 듯하다. 며칠전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서울대 조국 교수를 명시적으로 거명하면서 ‘강남좌파’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분당 우파여, 강남좌파에 속지 말고, 자신이 속한 계급을 지지하라!”는 것이 그 글의 결론이었다. 다른 한편 지난달 초순 ‘B급 좌파’를 자처하는 한 논객이 조국 교수의 을 비판하면서, “먹고살 걱정 없는 중산층 엘리트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을 위한 변화라고 과장하여 주장”한다며 비판한 바 있었다. 당신은 중산층 엘리트고, 당신이 주장하는 건 ‘민주집권플랜’이지 ‘진보집권플랜’이 아니라고, ‘진보’는 우리 땅이니 저기 당신들 땅(강남!)으로 가라고 비판한 것이니, 단어는 직접 사용하지 않.. 더보기
[이진경 서평] 벽암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벽암록은 설두 중현 스님이 선사들의 화두 100개를 골라 송(頌)을 붙인 것(『설두 송고』)에다, 원오 극근 스님이 수시와 착어, 평창을 달아 만들어진 책이다. 수시는 각 ‘장’의 요지를 간결하게 요약해서 보여주는 부분이고, 착어는 화두나 송의 구절마다 논평을 한 것이며, 평창은 화두와 송에 대한 설명이다. 통상 벽암록에 대한 해설을 자처하는 책들은 거기서 다루는 화두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건 『벽암록』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긴 하지만, 원오 스님이 쓴 수시나 착어, 평창을 보지 않고선 『벽암록』이란 책을 보았다고 하긴 어렵다. 내가 『벽암록』에 대해 가진 인상은 여러 가지지만 모두 극단적이다. 그 책은 “송대 최고의 문학작품”이라고들 하는 평처럼,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아름다운 책이었다. 또한 .. 더보기
[이슈_이진경 칼럼]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 1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맞아’라는 감탄보다 강했던 것은 가슴이 뜨끔한 느낌이었다. 특히 이 말은 우파가 부패로 망한다는 것보다는 좌파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겨냥하고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맞다. 좌파는 끝없는 분열로 인해 망했다. 이론적 관점이나 노선의 차이가 조직적 분열로 이어지고, 전술이나 정책의 차이가 조직내 분열로 이어졌고, 그 결과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힘은 약화되고, 애초에 상대하던 ‘적’ 이상으로 대립하게 된 과거의 동지들과의 대결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그랬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랬다. 이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얼마 전 했던 한 인터뷰 때문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