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반값 등록금 시위나 서울대 법인화 저지 점거사태 등을 보면 젊은 사람들의 정치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강좌에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이진경: 통상적으로 정치라고 얘기하면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안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하라고 명령할 뿐이죠. 정해진 코스대로,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쌓아서, 정해진 자리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에게 주어진 일반화된 요구입니다. 그러면서 대학 졸업장은 딱히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꼭 따야 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위해 어이 없이 비싼 등록금을 내야하는 것이죠. .

 

얼마 전에 칼럼에서 ‘비정규 학생’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요즘에는 비정규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을 피해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 학생이 생긴거죠. 그렇게 일함에도 등록금을 제대로 벌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 학생이 하나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졸업장을 따야하는 학생들을 불리한 위치로 몰아세우는 것이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한국 학벌중심 사회의 현실입니다.

정치란 그런 자리를 벗어나는 것, 그런 자리를 뒤집어 버리는 것, 이런 것이 정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경우에도 그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치안에 반하는 정치다’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말은 현재적인 의미가 크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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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을 넘어 무상교육의 그날까지.... 촛불아 꺼지지 말고 계속 타올라라!>

 

변성찬: 요즘 한국 대학생은 존재 자체가 소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그렇게 지위가 변화하는 것은 위기일텐데 그것을 기회로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정치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었던 대학생들에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그런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대학생들을 나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소수화시켜 준 MB 정부에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하하하!!)

 

 

Q. 바흐친은 요즘 한국의 대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최진석: 아까 얘기했던 웃음과 연결하여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은 일상의 문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바흐친이 전복적인 힘으로 얘기하는 것은 폐부를 찌르는 비웃음과 풍자적인 불온한 웃음이죠. 그런 것들은 최근 박정수씨의 쥐그림 사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쥐그림이 전혀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검찰은 기소 내용에서 그 그림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고, 미래를 빼앗았다고 강조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이런 방식의 웃음이야 바흐친이 말한 웃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서 검찰이 말한 아이들은 말그대로 퇴행한 MB의 아이들인거죠.

 

이렇게 정권이나 권위에 누구라도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태 자체는 자신들의 권위의 벽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협적인 도발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권위의 벽에 가까이 다가가 ‘이거 아무것도 아니네’ 하면서 그 벽을 건드리기도 하고, 그 벽에 오줌을 누기도 하는 방식, 직접적으로 권위를 망치로 부수는 방식이 아니라 권위 자체를 일그러뜨리는 것 냄새나게 만드는 방식이야 말로 권위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과 동시에 그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진경: 요즘엔 웃음에 대해서 좀 더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을 준비하면서 불온한 웃음, 사람 당황하게 만드는 이 웃음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편에 있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MB 정부가 유발하는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웃길 의도가 없지만 우리로 하여금 깔깔거리고 웃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의도 없는 개그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웃음은 왜 유발되는지, 그 의미는 뭔지, 굉장히 다른 종류의 이 웃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요즘 사회에서 웃음은 더 다양해지고 더 중요해진 것 같은데, 바흐친의 사상을 통해 웃음의 정치학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분석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푸하하하....-_-;; 그냥 웃기다.>

 

 최진석: 바흐친은 패러디적 웃음의 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죠. 예를 들어 건설부양에의 의한 정권를 비판하면서 누군가 거대한 삽의 모형을 만들어 던졌는데, 그것은 거대한 이미지를 통해 정권이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하지만 들어나서는 안 되는 이미지를 들어내며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패러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죠. 보이지 않았던 본질을 보이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던 권위를 추락시키는 방식들. 그것이 재미를 넘어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웃음은 굉장히 치명적인 웃음이 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MB 정권은 패러디 자체의 위험성의 낌새를 채로, 그 근원을 봉쇄해 버리려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그 안에서 우리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주고 있지요. 강좌에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이런 사람들은 이 강좌를 꼭 들어야한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변성찬: 등록금 투쟁하고 있는 대학생이 들으면 좋지 않을까요? ^^

이진경: 정치를 좀 더 큰 스케일로 그리고 통념을 깨는 방향으로 사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대학생 여러분, 힘내세요^^!!>

사진출처 http://cafe.naver.com/wabore

 

Q. 강의 전에 읽어야 할 책이 있나요?

이진경: 강좌에서 만나게 될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오면 좋겠지만 책을 안 읽는다고 강의를 못듣는 것은 아닙니다.^^

 

 

뜨거운 사유의 열기로 무더운 7월 금요일 밤을 더욱 화끈하게 만들어 줄 이진경, 최진석, 정정훈, 변성찬 강사의 열강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http://nomadist.org/xe/lecture/145640 강좌 안내는 요기 클릭!!!

 

그럼, 7월 8일 첫강의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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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6월 10일, 금요일.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집회가 청계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집회신고를 거부하여 처음부터 불법집회로 만들어 놓고는, 불법집회 저지를 명분으로 장소를 미리 경찰이 점거했지만,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맴돌던 분노는 거대 대중이 되어 둘러싼 경찰의 벽을 흘러넘쳤고, 거꾸로 집회장소를 점거한 경찰대열이 포위되는 양상으로 바뀌어버렸다. 덕분에 불법집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 경찰은 그 집회대중을 경찰벽으로 이리저리 막았지만, 흘러넘치는 대중은 그 벽을 넘어 거리로 다시 흘러넘쳤고, 금지된 ‘행진’, 혹은 ‘질주’를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시간, 150일 이상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와 한진중공업을 경찰의 호위 아래 회사가 고용한 용역업체가 덮쳤다고 한다. 다행히 다음날 용역업체가 점거한 현장을 ‘희망의 버스’를 타고 내려간 700명가량의 ‘외부세력’들이 밀고 들어가 다시 탈환했다. 그러나 멀리 서울 근방에서 내려간 그 버스는 다음날 되돌아와야 했기에, 희망은 잠시, 다시 권력에 포위되고 말 것이다.

점거와 탈환, 포위와 이탈이 겹치며 반복되는 이 교착 속에서, 우리는 정리해고를 눈앞에 둔 노동자와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겪는 대학생들이 뒤섞이는 기이한 혼성의 지대를 발견한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려고 뭐 하러 가는 건지도 모르는 채 나섰다가 한진중공업에 용역으로 투입되었다는 부산 모 대학교 대학생이었다. 아마도 해고와 대결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는 대학생 자식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정리해고와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분들일 것이다. 개인적인 관계는 없다고 해도, 아마도 그런 노동자의 아들일 수 있을, 등록금의 일부라도 벌기 위해 알바를 해야 하는 대학생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압하는 용역으로 고용되어 그 자리에 투입된 것이다.

노동자와 대학생이 만나는 방식은 70년대 이래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다.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다면’이라는 전태일의 가슴 아픈 유언에 휘말려 노동자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들과 만나는 방식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80년대에는 조직된 학생운동과 아직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의 형태로 만나는 방식이 있었다. 이후 대학생과 노동자가 만나는 지대는 크게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말~90년대 전반, 노동자들은 전노협이라는 강력하고 전투적인 조직으로 발전한 반면, 대학생들의 주류는 노동운동에서 멀어져 통일운동 등의 다른 운동으로 옮겨갔다. 90년대 후반 이후,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이라는 ‘안정적인’ 조직으로 성장한 반면, 학생운동은 쇠락을 거듭하여 학생회조차 장악하지 못하게 되면서 운동의 장에서 만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학생들은 이제 단지 취업에 목을 건 취업준비생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97년 이후 비정규직의 확대와 대학등록금의 증가는 노동자와 학생을 불편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하는 것 같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취업과 실업의 중간 상태에서 떠돌고 있었다면, 대학생들은 턱없이 오른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학은 물론 학기 중에도 알바를 해야 하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학기에 500만원을 전후하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대학생들은 이제 수업시간을 피해가며 알바를 하는 게 아니라, 알바 시간을 피해가며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학생이기 이전에 알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임을 뜻한다.

전체 시간의 일부만을 노동할 수 있는 노동자가 비정규 노동자라면, 알바에 일정한 시간을 할당하고 그것을 피해가며 수업을 듣는 대학생, 즉 학교에 다니지만 전체 시간의 일부만을 수업을 듣고 공부할 수 있는 대학생은 ‘비정규 대학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고액등록금에 목을 잡힌 채, 알바 없이는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된 대학생, 그들은 대학생이지만 비정규 대학생이고, 노동자이지만 비정규노동자인 것이다. 대학생과 노동자가 비정규성이라는 하나의 공통성을 갖고 하나의 신체에 동시에 거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아니, 이중의 비정규성이 그들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난 2008년 촛불시위 때에도 조직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에 대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던 것은, 물론 시간적인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단지 우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내고 비정규직으로 몰아세우는 과정과 미친 등록금으로 대학생들을 비정규 대학생으로, 비정규 노동자로 몰아세우는 과정이 하나의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비정규 노동자로 내모는 기업에 대한 저항과, 대학생을 학교 밖으로, 비정규 대학생으로 내모는 대학에 대한 저항이 사실은 하나의 동일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와 대학생의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가 출현하리라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이 상상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대학생이 합류하면서 만드는 새로운 종류의 연대의 방식에 대한 상상이.


글 / 이진경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이 글은 <위클리 수유너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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