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03 바깥의 목소리를 듣다. -황정은 소설을 읽고 메모 하나.

어느 밤에 나는 먹으려고 평소보다 멀리 나갔다. 계란 껍질과 말라 비틀어진 사과 심을 발견해 먹고 달을 바라보며 그늘 속으로 걸었다. 목이 말랐다. 길 가장자리에 고인 물 냄새를 맡았다. 그때 뒤쪽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순식간에 몸이 들려 자루에 담겼다. 빗물에 젖은 털 냄새가 나는 차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다. 나처럼 방심한 틈에 잡혀온 짐승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귀 모양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 녀석부터 늙은 녀석까지 이 몸 십여 개체가 넘는 동족들과 같이 각종의 분비물로 덮인 철창에 갇혔다. 미지근하게 끓는 듯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안색 나쁜 인간 두 명이 침침한 불빛 아래서 우리를 들여다보았다.

...

꼼짝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이 몸을 약품으로 처리했다. 배가 위쪽을 향하도록 몸을 뒤집어두고 거친 솜씨로 배를 갈랐다. 가르자마자 가른 곳을 먹고 빳빳한 실로 봉한 뒤 공식적으로 네 놈은 이제 불임인 거다, 하며 귀 끝을 가위로 잘라냈다.

마비되어서 눈도 감지 못했다.

찢어질 듯 바싹 눈이 마른 채로 당했다.

그 뒤로 자루에 담겼다가 다시 차에 실려 엉뚱한 곳에 버려졌다.

(황정은, 「猫氏生」, 『2011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과 지성사, p.283~284.)

 

 

 

이 이야기는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남은 ‘몸’이라는 고양이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 고양이의 배를 가르고 귀 끝에 자국을 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지도 않은 정관수술을 한 표시를 낸 것이다. 배를 가르고 얼기설기 꿰맨 후 아무데나 버려진 고양이. 이 고양이는 흘러 흘러 도시 변두리 장막 안에 들어왔다. 장막 안에는 아직 사람의 냄새가 남아 있지만 살고 있는 이는 없다. 가끔 장막 안쪽을 향해 못 쓰는 물건들을 던져두고 달아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꼭 못쓰는 것 죽은 것만 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서 효용이 다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두 버려진다. ‘형태가 있어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먹던 것 입던 것 사용하던 것 때로는 산 것 죽은 것’ 까지도 쌓여가는 장막 안.

 

 

 

누가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이렇게 폐허로 만들었을까.

 

 

 

 

혹시 이 폐허는 우리의 ‘거친 말’(블랑쇼)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일상적인 언어는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그것은 사물들 고유의 특이성을 담지 못하고 때문에 늘 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런 것들.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간이었지만 누군가는 이것을 ‘슬럼’이라고 간단하게 정의내릴 때 이보다 더한 폭력이 어디 있을까.

 

 

 

 

나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과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 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걸까요.

슬럼, 하고.

슬럼.

슬럼.

이상하죠.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고, 라고 말해 두고서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황정은, 『百의 그림자』, 민음사, p.114~115.)

 

 

 

 

물론 ‘슬럼’이라는 단어가 이 소설에서 배치되는 양식은 우리에게 다른 감응을 불러일으킨다. ‘슬럼’ ‘슬럼’ ‘슬럼’ 하고 세 번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이 때의 슬럼은 더 이상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이 아니다. 어찌 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 일상적인 말의 폭력에 길들여졌던 우리를 책 바깥으로 이끈다. 이때의 바깥은 일정한 척도로 계량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 고유의 특이성이 인정되는 공간이다. 이것은 어떤 위계나 중심이 없고 항상 미결정적인 상태이다.

 

 

 

작품은 ‘인간에게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것에, 이름 할 수 없는 것에, 비인간적인 것에, 진리도 정의도 권한도 없는 것에 목소리를 준다.’(블랑쇼) 이제 고양이 ‘몸’의 갈라진 배는 속수무책으로 악화된다. 제대로 꿰매지 않은 틈 사이로 피가 새고 고름이 고인다. 염증이 번져 시력마저 잃고... 일생이 곧 끝나기를 기다린다. 고양이 ‘몸’은 운다. 아파서 울고 외로워서 운다. 바깥에서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울음이 들린다.




글 / 화(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

신고
Posted by 노마디스트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노마디스트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07)
이슈&리뷰 (51)
빌린 책 (43)
개봉영화 파헤치기 (8)
풍문으로 들은 시 (13)
장애, 그리고... (4)
4040 (5)
칼 슈미트 입문 강의 (32)
아무도 번역 안 해줄 거잖아 (4)
시몽동X번역기계 (6)
과학 X 철학 토크박스 (2)
해석과 사건 (6)
화요토론회 (23)
기획 서평 (34)
과거글 (271)
Yesterday528
Today187
Total1,762,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