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동X번역기계]

코너소개:   질베르 시몽동에 관한 최신의 연구들을 번역합니다. 우선 Journal of Media and Communication vol. 6, "Simondon: Media and Technics" 에 있는 논문들이 주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 저널의 장점은 신진 학자들이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 발명의 개념등을  다양한 영역에서 작동시키는 논문들을 싣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요즘 핫한 이슈인 빅데이터에 대한 논문부터 시작합니다. 이 저널 외에도 시몽동 관련해서 흥미 있는 읽을 거리가 발견되면 계속 번역을 해볼 작정입니다. 첫번째 글은 Simon Mills(De Montfort University), Simondon and Big Data 입니다.

 

 

 

시몽동과 빅 데이터

Simon Mills(De Montfort University), Simondon and Big Data, Journal of Media and Communication vol. 6, "Simondon: Media and Technics"  

 

 

 

 

 번역:최유미/수유너머N 회원

 

 

 

 

 

이 글은 빅데이터가 사회를 이해하고 관리하기 위한 보편적 방법을 제공한다는 주장들의 몇 가지 한계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알렉스 펜트랜드 (Alex Pentland)의 작업에서 주장되는 것들이다. 우리는 질베르 시몽동의 작업에 비추어서 펜트랜드의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을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펜트랜드의 사회 이론이 근본적으로 사이버네틱스적이고, 그 이해의 도식은 시몽동의 비판을 받게 됨을 논증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 글은 사회물리학이 과잉 목적적 사회 구조의 개발에 이르게 되는 방식을 질문한다; 발명의 이론화, 목적론과 오픈 시스템들에 대한 목적론의 능력 결여, 그리고 그것이 개발한 사회 존재론을 의문시한다. 시몽동이 수정한 정보개념은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사이에 처해 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곧 인간사회(human society)를 갖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재발명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펜트랜드의 주장에 동의할지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에서 이 주장의 성질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펜트랜드의 작업이 또 다른 통제혁명의 국면으로 향하는 지점에서 비결정성(indeterminacy)을 이론화하는 방법과 하나의 양태로서 관개체성(transindividual)에 관한 고려를 어떻게 누락하는지에 관한 더욱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버트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정보사회의 등장은 인간사회와 사회행동의 모든 측면에서 정보처리,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제어를 노출시켰는데, 그것에 상응하는 공식적인 정보이론의 개발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적 구조와 과정에 관해, 급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비체계적인 지식을 환원시키려고 희망할 곳은 이들 기본적인 정보개념들이라고 나는 믿는다.”(Beniger, 1986, p. 436) 제임스 베니거(James Beniger)는 사회적 제어를 위한 정보역할의 개발에 대해 폭넓은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러한 결론과 더불어 그는 사회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사이버네틱한 이해를 갖는 사회학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 그가 비록 1차 사이버네틱스가 프로그래밍 보다는 오히려 제어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을 문제시 할지라도, 그의 견해에서 사이버네틱스의 3C (명령command, 제어control, 소통communication)가 사회적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유망한 접근법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오늘날, 최근의 빅 데이터의 발전과 함께 그러한 기획의 진전을 목격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작업 렌즈를 통해서 빅 데이터를 위한 사회학적인 주장들에 관해서 몇 가지 제한점들을 탐구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시몽동의 작업과의 계속되는 유관성을 입증하기를 바란다. 특히 우리는 사회물리학(Alex Pentland, 2014)에 관한 알렉스 펜트랜드의 작업에 초점을 맞출 것인데, 그것은 빅 데이터를 사회의 이해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현재까지 생산된 가장 철저하게 개발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목표는 빅 데이터를, 그리고 특히 사회물리학을 사이버네틱스의 계보 내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시몽동 작업의 두드러진 성취 중 하나는 그가 사이버네틱스의 주된 신조를 문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사이버네틱스가 광범위한 적용을 획득하기 이전에, 그리고 시몽동 자신이 사이버네틱스에 관한 작업을 전개하는 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팬트랜드 와 시몽동>

 

 

먼저, 사회의 도메인과 관련해서 빅 데이터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몇 가지 주장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킷친(Kitchin) (Kitchin, 2013)에 따르면, 빅 데이터의 새로운 점은 사용 가능한 막대한 데이터의 양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원천들 (다양성)으로부터의 수집과 분배가 거의 실시간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기기들의 광범위한 사용 때문이다. 전체적인 목표는 표적 모집단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모델링과 예측에 대한 빅 데이터의 능력에 관한 초기의 주장들은 비지니스, 마케팅, 과학 그리고 경제학과 관련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점차 헬스케어, 운송, 하우징과 같은 타 분야에서의 솔루션 제공,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광범위한 사회학적 방법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과대 선전되고 있다. 그러한 야심은 또한 사물 인터넷, 웹스퀘어드(Web²) 와 퍼스웨이시브 기술과 같은 현상의 전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빅 데이터가 적용되어 온 많은 응용 분야들은 비교적 닫힌 시스템들을 포함하는데, 거기서는 특정 문제들을 조사하기 위해서 데이터가 수집된다. 예를 들면 교통 흐름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미리 프로그램된 상태로 실시간 데이터를 이끌기 위해서, 모델들과 관련된 알고리즘으로 실시간 데이터가 분석된다.

 

 

 

 

이 접근법에 있어서의 중요한 이슈는 개입된 시스템들의 인과적 작동에 관한 이해를 얻는 것이다. 문서에 의해 입증된 대로 정량적 데이터(quantitative data)의 사용은, 귀납의 문제에 의해서, 상관관계를 이끌어 내는 능력에 이르게 되지만, 반드시 인과성이 있다는 것을 이끌어내지는 않는다.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2008, no page)의 악명 높은 주장 하나는, 빅데이터는 정량적 분석에서 순전히 규모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속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와 응용 수학이 모든 다른 도구를 대체하는 세계이다. 언어학에서 사회학까지, 인간행위에 관한 모든 이론을 쫓아내라. 분류학, 존재론 그리고 심리학을 잊어라우리는 세상에서 지금껏 본 가장 큰 컴퓨팅 클러스터들 속으로 숫자들을 던져 넣고 그리고 통계알고리즘들로 하여금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패턴들을 찾아내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빅 데이터에 관한 강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모든 종류의 시스템들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데이터 그 자체에 대해서 작업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며, 해석에 관한 지저분한 고투들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킷친(Kitchin, 2013, p.130)은 이것을 경험론의 재출현으로 보는데, 그 속에서 모델은 먼저 수집하고 나중에 질문 한다.”(Croll as quoted in Kitchin 2013)

 

비교적 닫혀있고 제한적인 시스템들이나 네트워크들 (예를 들면, 전기 그리드, 교통 통제, 구매 행위들)을 조절하기 위해서 빅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에 제기된 몇 가지의 주장들에 대해서 긍정적일 적절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전체로서의 사회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더 야심 찬 주장들에 대단한 주의를 기울여서 다루었었는가? 예를 들면, 우리는 빅 데이터의 지도적 옹호자인 알렉스 펜트랜드(Alex Pentland)를 얼마나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인가?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말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와 칼 막스(Karl Marx)는 틀렸거나, 적어도 단지 반쪽짜리 해답을 가졌다. 왜냐고? 그들은 시장과 계급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그것들은 총계들이다. 그것들은 평균들이다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충분히 볼 능력을 가진 인간의 역사에서 최초의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가졌던 시스템들보다 질적으로 더 잘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들을 실제적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괄목할만한 변화다. 그것은 쓰기가 개발되었을 때 혹은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혹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났던 상전이와 아마도 같은 것이다. ( Pentland, 2012)

 

 

<팬트랜드의 책, 사회물리학>

 

 

 

 

이러한 언설로 보아, 펜트랜드가 노리는 것은 사회적 추상에 관한 전통적인 이론의 토대를 약화시키고 그 자신의 작동적인 추상을 전개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과학적 자격이 사회 물리학의 이름으로 지지되는, 전적으로 정량적이고 경험론자적 기초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사회물리학이 계급에 기초를 둔 이론들을 기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지 환원주의자의 이론이 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펜트랜드는 분명하다. 몇몇 근래의 경제학 이론들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집합적 행동들이 어떤 창발적 평형에 이르는 합리적 행위자들로서의 개인들 말이다. 펜트랜드(2014, p. 4)사회적 효과가 존재함을 주장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에서 행해지는 설명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정보와 사고의 흐름을 통해서 그것이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사회물리학은, 한편으로는 정보와 사고의 흐름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행위와의 사이에 신뢰 가능하고, 수학적인 연관들을 서술하는 정량적인 사회 과학이다. 사회물리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회적 학습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사고가 어떻게 흐르는지와 이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우리 기업들, 도시들, 그리고 사회들의 규범과 생산성 그리고 창의적 산출물을 형성하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사회물리학은 인간의 욕망과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관한 그들의 결정이 종종 사회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서 지배 받는다라는 점을 입증한다. 그래서 그것은 개인들이 그들의 목적과 행위를 합리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합리적 경제행위자 접근법과는 구별된다. (Pentland, 2014, p. 59). 그 자체로서 사회물리학은 초점을 행위자로서의 개인으로부터 개인들이 살고 있는 정보와 사고의 흐름으로 이동시킨다: “사고의 흐름이 공동체와 문화의 진짜 이야기이다. 그 나머지는 단지 외관이며 환상일 뿐이다” (Pentland, 2014, p. 44).

 

펜트랜드(Pentland, 2014, p. 20)의 사고에 관한 정의는 도구적 행위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고 정보는 사고에 통합될 수 있는 관찰이다. 펜트랜드가 비록 개인적 목적과 동기를 고려하지만, 개인적인 것들은 사회 네트워크 전반에 걸친 전체적인 사고의 흐름 속으로 포함된다.

 

사회물리학의 약속은 이러한 정보와 사고의 흐름에 의해 생기는 패턴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들이 단지 평균하여 사회를 이해하는 고전적 방식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Pentland, 2014, p. 10) 더욱 미세한 마이크로 패턴의 수준에서 사회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펜트랜드는 더 나아가서 정량적이고 정성적인 전통적 사회학적 방법론들은 미래 행위의 예측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상태에 접근하기에는 수집하는 데이터의 양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빅데이터의 약속?

 

 

 

 

이것이 빅 데이터가 전경화 되는 지점이다. 그것은 사회물리학으로 하여금 정확히 사회 네트워크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어떻게 사고들이 행위와 행동으로 바뀌는지를 볼 수 있도록하는 엄청난 양의 디지털 부스러기들을 수집하고, 저장하고 분석하기 하기 위해 동시대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기획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단지 사회의 운영을 찾아내어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위너(Weiner)와 비어(Beer)에 의해 개발된 것과 같은 사회학적인-사이버네틱스의 전통 속에서, 명령과 통제를 위한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펜트랜드(Pentland, 2014, p. 171)의 텍스트 자체는 사회물리학을 도시에 적용하는 것에 관해서 토의를 할 때와 같은 리얼리티 마이닝reality mining”의 긍정적 잠재력에 관한 주장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우리는 개척과 개입을 향상시키기 위해 환경을 가공하기를 원한다; 혹은 사회 네트워크들은 유용한 사회 규범의 개발과 시행을 위해 더 효과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경제시스템, 정부시스템, 그리고 업무시스템을 재발명하기 위해서 이 교훈들을 적용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Pentland, 2014, p. 208).

 

펜트랜드(Pentland, 2014, p. 180)에 관한 한, 이 프로젝트가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만족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주된 이슈는 프라이버시이다. 혹은 그의 작업을 떠받치는 암묵적인 자유주의적 정치를 다소 넌지시 비치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우리가 서비스의 대가로 회사나 정부에게 제공하는 개인데이터를 귀중한 개인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것의 소유권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하에서 나는 질베르 시몽동의 작업을 통해 빅 데이터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학적 주장들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사회물리학은 현대의 기술적 발전을 반영하기 위해서 업데이트된 사이버네틱한 세계 상황으로부터 나타났다는 것이 나의 논지이다. 시몽동의 작업은 그자체로 특별히 유관하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기술과 사회의 본성 둘 다에 관한 어떤 독창적인 관점을 개발함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사이버네틱스의 관점들을 프랑스 인식론의 전통과 결합함에 있어서의 그것의 독특한 위치에 기인한다. 빅 데이터에 관해서 그리고 사회물리학에 관해서 고안된 주장들은 이러한 같은 도메인들을 횡단하고, 그 자체로 그것들 사이의 대화는 적절해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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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이웃집에 탈주병이 있던 시대>

となりに脱走兵がいた - ジャテックある市民運動記録를 통해 보는 어떤 반전 운동

 

가게모토 츠요

 





[아무도 번역 안 해줄 거잖아!]_연재를 시작하며.-한국에서 소개되지 못할 것 같은 일본의 운동에 관한 책들을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일본 책들이 번역된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책이 별로 번역되지 않는다. 한국에 관련된 역사책이나 사회학 책은 번역되지만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철학책 등은 아예 번역되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서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일본 책이 소개되어왔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일본어 책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일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현대사상이나 애니메이션, 문학 등은 일본어를 몰라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되지 못할 것 같은 매우 중요한 일본 책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 시장논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인 말인데 그런 책이야 말로 중요하다. 잘 팔리지 않은 책은 발행부수가 적은 만큼 독자에 대한 필자의 책임이 커진다. 잘 팔리는 글쓴이는 누군지 모르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만 단 한 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애 편지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글쓴이의 힘이 보다 많이 담겨져 있을까? 거칠게 말하면 발행부수가 적을수록 그 책은 연애편지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필자의 책임감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핵심을 잡을 수 있다. 일본에서도 잘 팔리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책들을 소개해 보고 싶다는 것이 내 마음이다. 잘 팔리는 책이 가질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을 통해서.

 

1. <이웃집에 탈주병이 있던 시대>

이번 글에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다음과 같다.

 

세키야 시게루, 사카모토 요시에 편, <이웃집의 탈주병이 있던 시대 쟈텍, 어떤 시민운동의 기록>, 사상의 과학사, 1998. (644) (となりに脱走兵がいた時代 - ジャテックある市民運動記録) 

 

 

이 책은 쟈텍(JATEC)이라는 운동의 기록이다. 쟈택이란 Japan Technical Committee의 약칭이다. 무엇을 했던 운동인가? 바로 베트남 전쟁에서 탈주한 미군 병사를 보호하며 제3국에 탈주시킨 운동이다. 쟈텍에 의해 제3국으로 탈출한 어떤 병사의 수기는 일본을 떠나는 순간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결정된 출발의 날, 나는 공항의 모든 곳을 어떤 문제도 없이 통과했습니다. 불안을 안고 출발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드디어 내 비행기 넘버가 불렸습니다. 밖으로 나와 비행기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기내에 들어가기 전에 계단을 올라가 멈추었습니다. 뒤돌아보아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사히 기내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려고 온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쩐지 거기 있는 사람 모두가 나의 안전한 여행을 빌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마지막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위한 미리 알려진 지시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기장을 불러달라고 말하며, 정치 망명을 요구하며, 기내에서 나가기를 거부한다는 것. 비행기 내는 기술적으로는 프랑스 영토로 인정되어 기장에게는 마음만 있으면 망명을 허락할 권장이 있다고 합니다. 엔진이 파워를 내며, 비행기는 이륙의 장소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며 지상에서 올라가면서 나의 마음도 비행기와 같이 뛰어 올라갔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떠난 것입니다."(370)

 

미군은 베트남 전쟁 때 일본의 기지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병사들은 다양한 이유로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으나 비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자텍은 어떤 이유든 탈주의 의사가 있는 병사를 보호했다. 물론 부대복귀를 시켜서 부대 내부에서 반전운동을 하는 것을 권장할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탈주와 망명의 의사를 표시하면 실제로 탈주를 시키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런데 병사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매우 문제를 일으킨 병사들도 있었다. 이 운동은 전쟁터에서 베트남인을 직접 죽이고 온 병사들을 바로 자기 집에서 비밀로 보호하면서 같이 지내던 일반 사람의 존재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러한 기록집이기 때문에 탈주한 병사에 배신당하고 화를 낸 기억이나, 돈 문제로 탈주 병사로 싸운 이야기 등도 나온다. 어쨌든 어제까지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해온 병사들과 함께 지낸다는 실천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실제로 했다는 일은 놀라운 것이다. "탈주병들은 일본 가정의 냉장고의 내부를 알게 된 최초의 외국인"(492)인 셈이다.

 

이 책이 98년에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쟈텍의 운동에 관여한 사람들은 긴 시간이 흘러서야 자기 운동 경험을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98년의 시점에도 아직 밝힐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면서 추후 봉인을 풀기로 한다고 한다.(495).


2. 법의 문제

 

베트남 전쟁 시기 일본에는 일본군 병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그들의 상식에서 보면 탈주는 매우 큰 죄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일 안보조약에 인한 미군의 지위협정에서 미군 병사는 입국에 관해서 일본법의 적응 대상 외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이 탈주 운동을 지원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다. 그리고 탈주병사들에게 전쟁에 되도록 참여하지 않기 위한 권리를 알리는 상담활동도 쟈텍이 수행한 중요한 운동 중 하나였다. 쟈텍이 병사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알림으로, 그들이 제대를 신고하거나 부대 내부에서의 합법적 대항운동을 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미군 내의 법을 배우면서 일본군의 군율과 매우 다른 부분이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법과 관련해서 말하면 일본정부는 절대로 그들의 망명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일본의 평화헌법을 알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살겠다는 의사를 제시한 경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백인, 흑인 병사와 함께 한국계 미국인 역시 탈주했다는 것은 지적해두어야 한다. 어떤 이는 한국전쟁 고아로 양자를 가서 미국에서 잘았다. 그는 전쟁에 나가며 일본에서 탈주했다. 그는 일본공산당, 조선총련, 쿠바대사관을 거쳐 쟈텍에 접속했다. 그는 무사히 유럽으로 출국했다. 탈주병 가운데에서는 한국군 병사도 있었다. 그는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갔는데, 그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다 마코토(小田実)라는 작가이자 당시 쟈텍의 활동에 관여하던 사람이 76년에 김일성을 만났을 때 김일성은 그 인물을 모른다고 했으며, 나중에 그런 사실은 없다는 답이 왔다고 한다.

 

어쨌든 이 운동은 소련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의 대사관도 관여하기는 했는데, 결국 그런 국가들은 쟈텍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쟈텍은 정말 시민운동으로 이루어진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간첩과 조직의 문제

 

이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간첩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지만 미군은 쟈텍에 대해서 대응했다. 쟈텍은 제1차와 제2차로 나누어진다. 그 이유는 간첩 때문에 한 번 조직을 청산했기 때문이다. 쟈텍은 간첩을 그대로 받아 들었다. 쟈텍은 간첩 찾기를 하는 일이 스스로의 운동을 부수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간첩 찾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첩이 들어오면 그냥 조직자체를 무너져 버리자는 쟈텍의 생각은 비밀조직으로서의 전위주의와 아예 정반대에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던 까닭은 운동 내부에서의 간첩 찾기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힘든 역사적 운동 경험에서 배운 운동으로 쟈텍의 간첩 대응법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파괴될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운동, 이 조직론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를 줄 것이다. 당시 제1차 자텍에서 운동하던 구리하라 유키오(栗原幸夫)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글의 맺음말로 이 인용문을 대신하겠다.

 

"스파이 존슨에 대해서는 그 때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생각납니다. 다른 곳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가 스파이였다는 것을 확신했었습니다. 그것을 츠르미 슌스케(鶴見俊輔)씨에게 말했을 때, 츠르미씨는 찌그러진 얼굴로 "동료 사이에서 그런 의심이 생기는 것은 운동이 무너질 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때의 그의 찌그러진 얼굴을 이 30년 동안 자주 생각나면서 왜 그랬을까? 하고 계속 생각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략) 최근 저는 겨우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츠르미씨는 옳았다는 것입니다. 1차 자텍은 스파이 존슨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령 우리가 스파이의 침입에 대해서 방어태세를 취하고 모든 탈주병과 협력자에 대해서 의혹의 눈을 가졌으면 탈주병 원조 운동은 붕괴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리고 지금 이렇게 운동 경험자가 가볍게 그 무렵의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상황도 없었을 것입니다. 파괴될 것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비밀이 없는 열린 운동을 소중하게 싶다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조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우리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즉 일종의 전위주의입니다(예전의 저에게는 다분히 그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아니라 누구든지 교체할 수 있는 운동이야말로 필요합니다. 실제로 쟈텍은 그러한 운동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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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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