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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 1 1  여 름 강 좌 안 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은 매 분기별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경험을 쌓아가고자 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그리고 삶으로부터 다시 공부를 길어내는 느리지만 부지런한 여정! 배움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개강일: 2011년 7월 4일 월요일

 

∙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218-23 이스턴빌 2층 수유너머N | 전화 (070)8263-0910 | http://www.nomadist.org

 

∙ 접수계좌: 우리은행 011-9571-1509 (휴대 전화번호와 동일) 예금주 명: 오하나

 

∙ 강좌문의: 오하나(011-9571-1509), 문화(010-6210-3021)

 

∙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위의 접수계좌에 입금하신 후, <강좌 신청 및 확인> 게시판에 강좌명과 입금자명을 남겨주세요. (게시판 바로가기 클릭!)

(수강생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꼭 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세요.)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진행하는 모든 강좌의 수강료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강좌신청> 게시판의 공지를 참조해주세요.

 

 

 

 

 

01 예술 강좌| 20세기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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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4일 (월)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외부’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다시 사유해 보려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꿈과 무의식’을 생각해 보는 것은 ‘깨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20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꿈꾸었던 혁명의 예술, 초현실주의를 만나본다.

 

 

1. 상징주의, 매혹적인 상상과 허구의 세계 _유정아

보이는 현실의 재현에 몰두했던 인상주의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상징주의자들. 그들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사상과 작품세계.

 

 

2. 다다이즘, 째깍거리는 정치적 폭탄 _유정아

무정부주의적이었던 다다이스트들의 등장과 활동, 부르주아 예술을 비판하고, 정치, 철학적 전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의 재기발랄한 반미학!

 

 

3. 초현실주의 선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_유정아

비이성적인 것을 사유할 또 다른 권리, 1924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의 태동과 무의식의 탐구!

 

 

4. 초현실주의 그룹과 “섹스 토킹” _박수진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랑과 섹스, 욕망과 쾌락과 도덕, 무의식과 충동.그 거칠고 흥미진진한 논쟁!

 

 

5. 벤야민과 초현실주의, 대중문화라는 꿈나라 _유정아

발터벤야민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상품물신의 세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매혹과 비판

 

 

6. 아우라의 흔적, 초현실주의 귀환과 현대미술 _박수진

초현실주의 전시를 통해 만나는 타자성과 재현의 문제, 20세기 후반의 전시와 비교하며 새롭게 조명하는 초현실주의의 영향과 흔적.

 


 

 

02 인류학 강좌|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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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6일 (수)

 

강좌회비 : 10만원 (6강)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학적 상상력이다. 자연과 문화, 환경과 인간,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이라는 이분항의 긴장을 가로지르자.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탐색하자! 우리는 인류학의 여섯 가지 모멘트를 통과하며 교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공리주의, 그 실용주의의 철벽을 내파할 것이다. 우리 안의 낯선 외부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1. 섹슈얼리티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 _홍서연

말리노프스키는 모권제 사회인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가족관계를 통해 원시사회의 섹슈얼리티를 기술한다. 문제는 성적 억압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모권제는 어떻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열시키는가?

 

 

2. 선물 : 마르셀 모스, <증여론> _오하나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사회이다. 그리고 아직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모스는 합리적 교환 대신 선물을 택한 공동체를 분석한다. 강의를 통해 우리의 삶의 비자본주의적 요소,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3. 신체와 언어 : 앙드레 르루아-구랑, <몸짓과 언어> _홍서연

태초에 몸짓이 있었다! 몸짓은 인류학에서 의례와 테크닉의 기본단위이다. 르루아-구랑의 선사시대 고고학을 통해 기술과 언어, 인지능력과 사회성의 상관적 발달 궤적을 추적해 보자.

 

 

4. 국가 :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_문화

클라스트르는 추장제 사회 속 전사들의 잇단 전쟁과 무모한 행동에 주목한다. 폭력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국가 없는 미개 사회가 떠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전쟁이 중심적인 권력의 출현을 막는 국가 방지 메커니즘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5. 주술 : 마르셀 모스,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 _홍서연

주술(magic) 최초의 사유 형태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인간행위를 사법적 행위, 기술적 행위, 종교적 의례로 나누는 모스에게 주술은 관례 이외의 것을 산출하는 창조적 힘을 지닌 것이었다. 주술사는 어떤 사람인가? 주술은 어떤 조건에서 효력을 갖는가

 

6. 야생성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_정정훈

새로운 사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의 방식과 삶의 방식이란 단지 하나의 삶의 체제에 불과하다. 레비스트로스의 저 유명한 책, <야생의 사고>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삶의 체제를 모색한다.

 

 

 

 

 

03 철학강좌 | 히치하이커의 정치학 - 현대정치철학의 지형과 지표들을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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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8일 (금)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촛불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고취됐다. 하지만 이 관심이 복지국가론으로 축소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국가의 운영방식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법. 이 강좌를 통해 우리는 현대정치철학의 이론적 공간을 탐사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자 한자. 국가권력의 지반을 넘어서는 철학자들의 기발한 해방의 사유에 탑승하기.

 

1. 한나 아렌트 : 오이코스와 폴리스 _이진경

폴리스로부터 오이코스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빈민을 몰아내려는 정치적 사유에 히치하이킹! 오이코스를 통해,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통해 폴리스를 전복하는 정치를 사유한다.

 

 

2. 자크 랑시에르 : 평등의 정치학 _이진경

치안과 정치의 대비 속에서 자격 없는 자의 정치학을 제안하고,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만드는 감성의 정치. 랑시에르의 사유에 히치하이킹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평등성의 정치학까지 밀고 가본다.

 

 

3. 미하일 바흐친 — 유혈 낭자한, 도래할 사건으로서의 혁명 _최진석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 눈에 ‘성숙한 민주주의’는 폭력을 독점 행사하는 자들의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미하일 바흐친을 통해 혁명과 정치, 폭력의 난맥상을 돌파한다. 혁명은 정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4. 자크 데리다 — (불)가능성의 윤리와 정치 _최진석

정치의 윤리, 혹은 윤리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정치의 잠재성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데서 비롯된다. 데리다의 <법의 힘>을 통해 불가능에 도달하는 행위, 그 속에서 실현되는 정치를 발견한다.

 

 

5. 에티엔 발리바르 : 이데올로기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_정정훈

스마트폰과 SNS로 표상되는 첨단의 세계 한 복판에서 오히려 배제된 자들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종, 종교의 이름으로 무의미한 폭력을 휘두르고... 우리는 정치의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의 복원을 고민하는 발리바르의 정치 철학을 따라간다.

 

 

6. 질 들뢰즈 : "소수정치, 또는 정치의 소수화" _변성찬

들뢰즈의 ‘소수성’ 개념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정치학’을 재구성해보는 것, 이것이 이번 강의의 목표다. 들뢰즈가 구분한 ‘고전적 정치영화’과 ‘현대적 정치영화’의 차이를 중심으로, 그 함의를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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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처럼 좋은 철학이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삶을 긍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일 것이다. 삶이 ‘편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편한 삶, 좀 더 잘 벌고 좀 더 잘 쓰는 삶으로 대체되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강해지고,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은 절실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집, 많은 돈이 그것을 가려간다. 이제라도 다시 눈을 돌려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황금빛 장막을 걷어치우고, 거기 가려진 삶을,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야 한다. 철학을, 좋은 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이 ‘큰 배움’의 장이 아니라 직업학교가 되고, 돈의 장막을 몸에 덮어씌우게 된 지금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강의는 ‘큰 배움’을 꿈꾸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되었다. 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근대적 삶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사유할 수 있는 촉발을 제공하고자 한다. 어떤 철학적 사유의 결론을 배우긴 쉽지만, 그런 사유의 방법을 배우는 건,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연속강의를 통해 함께 사유하는 철학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강좌는 크게 2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이진경이 주도하는 강의는 길을 가기위한 지도를 제공합니다. 또 하나는 세미나인데, 이는 스스로 지도를 읽고 찾아가는 훈련의 장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강의와 세미나를 모두 참여하셔야 합니다.
(문의: 유심 ㅇ11-9571-15ㅇ9)


[토요일] 강의: 노마디즘 1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예언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그게 사실일 것임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들뢰즈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잠시 시작되는 듯하다 중단되고 만 것은 무엇보다 그의 책이 갖는 난해함 탓일 겁니다. 사유의 깊이를 잴 수 없게 하는 난해함. 이번 강의는 들뢰즈 사상의 개요에서 시작하여 <노마디즘 1>을 함께 읽으며 그의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면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유목민의 전차를 모는 사유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개강: 5월 7일


[일요일] 세미나: 인디언의 사상

“유목민은 역사를 쓰지 않는다.”(들뢰즈/가타리) 또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과 사상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화나 제의 등이 그것이었다. 백인들과의 적대적 만남, 혹은 인류학자들과의 우호적 만남을 통해 그것들은 부분적이나마 문자로 기록되었다. 인디언은 이런 유목적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이번 세미나는 인디언 추장의 말이나 인류학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사유와 만나고자 하며, 그것을 통해 근대와 다른 종류의 삶에 접근하고자 한다.

개강: 5월 8일


[등록 방법] 

1. 강좌신청 게시판에 신청글을 남깁니다.    (http://nomadist.org/xe/apply)

2.  길잡이에게 확인 문자를 한 통 보냅니다. (ㅇ11-9571-15ㅇ9)

3. 송금을 합니다. (우리은행    588-000927- 02-101,  예금주 명: 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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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좌팀에서 알려드립니다!!!

이진경 선생님의 강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을 신청하신 분들!

강의 듣기 전에 읽으면 좋을 텍스트를 이진경 선생님을 졸라 받았답니다.

예습을 하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

혹시...이 강의 뭐야? 도대체 뭘 공부하는 것이여? 하고 궁금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서요~~ 호호..

자.. 소개 나갑니다!!

보기만 해도... 막 배가 부르지 않습니까? 하하하.

물론... 이 책들을 모두 읽어 오라는 건 아니고요.

여건이 되시는 분들만 읽으세요.

우리에겐 앞으로도 새털 같이 많은 날들이 있을 것이며...

강의를 들은 후에.. 이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공부 방법이 되오니.. 너무 부담은 갖지 마세요^^

 

 (강좌 관련 문의 및 신청은 요기를 클릭하세요! http://nomadist.org/xe/apply)

 

강의를 듣는데 필요한 텍스트를 미리, 혹은 같이 읽고 싶다면서 소개해 달라는 분들이 있어서,

간단하게 관련 독서자료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0. 먼저 강의의 바탕이 되는 ‘존재론’에 대해서, 다시 말해 ‘존재’ 개념의 이해방식이나 존재자의 이해방식에 대해서는

 

이진경, <코뮨주의: 공동성과 평등성의 존재론>(그린비), 1장과 2장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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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온성이란 무엇인가?

 

이 강의에서는 ‘볼온성’에 대해 개념적으로 정의하고자 할 겁니다. 여기서 불온성은 무엇보다 먼저 ‘불온하다’는 감정 내지 기분과 결부된 것임을 안다면, 불온성을 기분 내지 감정의 차원에서, 혹은 그런 기분이나 감정을 야기하는 촉발/변용의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야기하는 어떤 ‘불안’과 결부된 것이지만, 동시에 그런 불안을 야기하는 불온한 ‘웃음’과 결부된 것입니다. 그것은 안정된 예측이나 판단을 와해시키며 오는 어떤 ‘횡단’이나 변용과 결부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지성의 작용과 관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저로선 무엇보다 흥미로운 주제인데, 불행히도 이에 대해서 정리된 텍스트는 없습니다. 다만 관련된 텍스트를 들자면, 맥락이나 의미는 다르지만, 먼저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까치)의 40절이 유용합니다(그러나 쉽진 않습니다^^;;). 좀 더 거슬러 가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 2장도, 역시 맥락이나 의미는 다르지만 참고가 될 듯합니다.


 

좀더 의미상 가까운 것은 오히려 정신분석학으로 보이는데, 프로이트의 초기 글 중 ‘불안신경증’에 대한 글과 후기의 불안 개념을 정리한 글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이상 <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 열린책들)이 유용합니다(뒤의 글은 좀 장황하고 기니,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으세요).

사실 이것만이 아니라 많은 책들이 관련되어 있지만, 모두 나열하는 건 무의미하겠지요. 일단 이 정도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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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애인: 우주적 선물의 존재론

 

여기서는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라고 주장할 터인데, 이 경우 장애인이란 우주 전체로 확장가능한 타자들에 기대어 존재한다는 점에서 ‘선물’과 관련된 존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무엇으로 인해 쉽게 잊혀지는지, 그리고 모두가 장애인임에도 특정한 사람들만 장애인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을 말할 겁니다. 관련 텍스트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진경, <코뮨주의>(그린비)의 1장 3절과 7장 3절

   조지프 샤피로, <동정은 싫다>(한국DPI출판부) 1장

   박경석/고병권,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부커진 <알>, 1호(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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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테리아: 우리는 모두 박테리아다!

 

여기서는 공생진화와 공생체로서의 생명에 대한 생명과학이나 생태학의 연구를 시발점으로 하여, 개체화를 통해 구성되는 개체의 개념, 그리고 거기서 개체의 경계, 즉 ‘나’의 내부와 외부를 구획하고 유지하는 면역이란 메커니즘에 대해 다룰 겁니다.


 

 관련 텍스트는 마굴리스/ 세이건,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의 4장, 5장 웨이크퍼드,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해나무)

 타다 토미오, <면역의 의미론>(한울), 2장, 5장, 6장(안타깝지만, 읽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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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레카리아트: 불안정한 자에서 불온한 자로

 

여기서는 노동자계급의 일부인 동시에 ‘정상적인’ 노동자계급이 아닌 계급, 하나의 계급인 동시에 하나의 계급이기를 중단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질 겁니다.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계급’으로 ‘완성’되는 것을, 하나의 전체로 ‘완성’되는 것을 저지하는 성분. 이는 계급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이 새로이 개시되어야 하는 지점일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논문들은 많지만, 이런 관점에서 참고할 텍스트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다음의 텍스트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조원광, [유연화체제의 프롤레타리아트, 비정규직], 부커진 <알>, 3호(그린비)

   프레카리아트는 단지 비정규직만을 지칭하지 않는데, 특히 이주노동자 또한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원광, [이주 노동자와 이동], 부커진 <알> 1호

 

 

 

5. 사이보그: 태초에 사이보그가 있었느니라!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합체를 통해 정의되는 새로운 구성적 존재자입니다. SF적 형상을 통해 가시화되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기계와 유기체가 합체된 사건은 인간이 도구를 들고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시작되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사이보그는 어쩌면 엥겔스 식으로 말해 원숭이가 인간으로 전화되는 지점에서 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 아닌 것에 의해 그 본질을 획득하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뜻하는 현존재(Dasein)을 통해 존재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 반대로 인간 아닌 것을 통해 인간의 존재에 접근해야 함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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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해서 유용한 텍스트는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동문선)

 그렇지만 근본에서 거슬러 올라가 사고하기 위해선 오히려 다음의 텍스트가 중요합니다.

  엥겔스, [원숭이의 인간화에서 노동이 한 역할],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5권(박종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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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온코마우스: 시뮬라크르의 윤리학

 

온코마우스는 유전공학적 변형에 의해 탄생한 존재자입니다. 하나의 생산물로서, 상품으로서 존재하게 되었고,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시뮬라크르였던 존재자지요. 암에 ‘걸리기 위해’ 존재하게 된 존재자. 처음부터 하나의 수단으로서 존재하게 된 이 존재자는 목적과 수단 이후에 시작된 존재를 통해 그 이전의 존재를 사고하게 합니다. 존재를 사유하기 위해 목적/수단의 관념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포스트모던한 존재자인 온코마우스는, 시뮬라크르가 원본을 초과하고, 원본과 무관하게 존재하게 된 시대에 시뮬라크르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게 합니다. 그것이 존재론적 문제로서 제기되자마자 그것은 윤리학적 문제고 정치적인 문제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온코마우스에 대한 글은

해러웨이, [여성인간 앙코마우스를 만나다], <겸손한 목격자@제2의 천년...>(갈무리)

가 유명하지만, 또한 유용하지만, 온코마우스에 대한 얘기는 그다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온코마우스가 아니라 복제인간을 통해 유사한 문제를 제기한 리들리 스콧의 유명한 영화를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리들리 스콧, <블레이트 러너>


7. 페티시스트, 사물들과 만나는 존재론적 평면

 

부제가 이렇긴 하지만, 페티시스트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임을 미리 분명히 해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미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된 지금, 이성애주의를 넘어 사랑을 사유하는 것은 하나의 문턱을 넘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왜 사랑을 섹슈얼한 이분법 주변에서만 사유해야 할까요? 아니 굳이 인간 간의 사랑으로 제한해야 할까? 인간과 동물의 간극을 넘어선 사랑, 나아가 인간과 사물의 간극을 넘어선 사랑으로까지 밀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서 출현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존재론적 평면상에 있다는 것과 더불어, 사랑이라는 것은 ‘연대의 쾌감’을 제공하는 모든 것임을, 그것이 모든 연대를 만드는 추동력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섹슈얼한 사랑에 대한 비판은

 버틀러의 유명한 책 [젠더 트러블](문학동네)을 참고하시면 좋고

 동물행동학적 관점에서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의 사랑들에 대해 다룬 책인

 러프가든, <진화의 무지개>(뿌리와이파리)이 재미있습니다.

 

 페티시즘에 대해서는

 맑스의 <자본> 1권에서 [페티시즘]에 관한 유명한 장을, 그리고

 

 프로이트의 유명한 글 [페티시즘(절편음란증)], <성욕에 관한 에세이>(열린책들)을,

 그리고 여성의 페티시즘을 다룬 중요한 책

 클레랑보, [여성의 에로틱한 열정과 페티시즘](숲)을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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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Mauss, « Essai sur le don. Forme et raison de l'échange dans les sociétés archaïques », in L'Année sociologique, 1923-1924 (repris in M. Mauss, 1950, Sociologie et anthropologie, Paris, P.U.F.)

마르셀 모스, 2002, <증여론>, 이상률 , 한길사.

마르셀 모스, 2008, <증여론>, 류정아 , 지만지고전천줄.




 

"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조상님들(그분들은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여러분은 그분들의 화신입니다) 축복은 정령들의 축복과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축제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의 생명은 약하기 때문에 너는 용감한 사람들의 충고에 의해서만 튼튼해질 있다.' 여러분은 저에게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생명이 것입니다." (어느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접대 인사말. <증여론>, 한길사판(이하 동일) 260.)

 

마르셀 모스가 "인류진화의 과정 내내 변하지 않는다" 말한 "이처럼 훌륭한 지혜" 나는 친구 덕에 알았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나를 찾아온 시인 친구의 소원을 풀기 위해 보들레르를 "보러"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던 . 여행자를 동반한 평범한 묘지 방문이 갑자기 묘지 주인들과의 만남이라는 생생한 색채를 띠며 환해진 . 보들레르, 이옥, 세르주 갱스부르…… 그러니까, 친구를 모방하여 보들레르에게 '한글로' 편지를 묘석에 놓자마자, 그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일이 그들의 시를 읽고 그들이 일에 대해 듣고 그들의 노래를 음미하는 일과 똑같이 생각되어버린 . 그들의 묘를 방문하는 일이 그들을 만나는 일이라면 내게 책을 읽는 것은 또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텍스트를 읽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묻힌 땅을 방문하는 것이 그러하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구나 그가 내가 음식을 먹고 내게 충고를 주기 위해 초대에 응해준 사람이라면!

 

함께 있음으로 사람들이 내게 주는 , 선물, 음식, 접대, , , 노래로, 그들의 일부는 나에게 와서 생명이 된다. 인디언 추장이 인용한 조상의 말처럼 나의 생명은 약해서, 용감한 사람들의 생명을 받지 않으면 나는 결코 용기있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의무적으로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틀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같은 ).

 

<증여론>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사회학적으로 혹은 정치경제학적으로, 아니면 모두 다로 읽을 있겠지만, 모든 종류의 독해방식들의 세분된 이름 아래 말하기 전에, 나는 <증여론> 대한 나의 독해를 비분절적으로, 비개념적으로, ,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

 

"누구나 친구에 대해서는

친구로 있지 않으면 되며,

선물에 대해서는

선물로 답례하지 않으면 된다.

웃음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답하고,

거짓말에 대해서는

속임수로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북유럽 고대시 에다 가운데 하나인 하바말 42. 45)

 

준다는 것에는 긴장이 있다.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주는 이의 일부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이질적인 것이 나의 일부분이 되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는 일과 받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물건을 받음으로써 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자의 수중에 들어간다. 다시 말해 그의 영향 속에 놓이게 된다. 나에게 타인의 이질적인 부분을 소화하지 못할 그것은 나에게 독이 된다. 어떤 것은 다만 나의 깜냥이 못미쳐 소화할 없는 것이지만, 어떤 것은 애초부터 나와 맞지 않는 , 소화해서는 되는 것일 있고, 어떤 것은 너무 많이 쌓였을 때에만 독이 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해가 모르는 것들을 관계 속에서 흐르게 하지 않고 쌓아두기만을 원하는 자는 자신이 특별해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라고 상상하는 오만한 자이거나 순진한 ,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알지 못한 좋은 것만을 한없이 축적하기를 원하는 착각에 빠진 , 탐욕스러운 자이다. 받기만을 원하는 ,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으려는 자는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의심스러운 , 속이려 하는 , 쩨쩨한 자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쩨쩨한 자들이여, 갖은 애를 쓰는 쩨쩨한 자들이여, ……패배한 쩨쩨한 자들이여, ……카누를 주겠다고 약속한 쩨쩨한 자들이여, ……주어진 재물을 받는 쩨쩨한 자들이여, ……재물을 구하는 쩨쩨한 자들이여, ……재물을 위해서만 일하는 쩨쩨한 자들이여, 배반자들이여" (쩨쩨한 추장들에 대한 콰키우틀족의 점잖은 저주. 144)

 

재물만을 구하는 자는 사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사물은 결코 인간과 동떨어진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물들은 인간에게 속함으로써, 주고 받는 대상이 됨으로써 인간들 간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오며, 그것을 소유한, 그것을 구하고 선택한, 그것을 생산한 사람의 일부분이 된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그것을 경제관계와 법적 관계만으로 설명할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지칭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증여론> 등장하는 수많은 원시부족들의 말들과 고대 텍스트의 인용문들은 바로 , 근대인이 지칭할 말을 갖지 못해 잊어버리고 , 사물에 들어 있는 사람의 일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근대 경제학이 하듯이 교환관계와 소유권만으로 설명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관계들에는 사람의 속에서 발현되는 모든 활동들, 정서적인 투여, 창조성, 경험에 체화된 지식, 미적 감수성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인간관계에만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확장이며, 사람의 일부분을 이루는 사물들 속에도 들어 있다. 근대인들이 지칭할 말을 갖지 못한 그것을 마오리족은 물건의 (), '하우' 부른다.

 

" '하우' 부는 바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 그가 나에게 주는 '타옹가' 내가 당신한테서 받았으며 내가 그에게 넘겨준 '타옹가' (하우)입니다. 나는 (당신한테서 ) '타옹가' 때문에 내가 받은 '타옹가' 당신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됩니다. 나로서는  '타옹가' '탐나는 '(rawe)이든 '불쾌한 '(kino)이든 간에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옳지'(tika)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타옹가의 '하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두번째의 '타옹가' 갖는다면, 나는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는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이 '하우', '개인 소유물의 '하우', 타옹가의 '하우', 숲의 '하우'입니다." (마오리족 정보제공자 타마티 라나이피리의 말. 66-67)

 

물건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법적 관계는 영들 사이의 유대관계다. 마르셀 모스는 책에서 이러한 사회관계를 '전체적인 급부체계'(système de prestation totale) 부른다. 전체적인 급부체계는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는 그의 본성 실체의 일부인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 체계이다.(71)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물건을 간직하는 것은 위험하며 죽음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의미로나 육체적, 정신적인 의미로나 사람에게서 나온 , 영적 실체, 음식물, 동산이나 부동산의 재산, 여자 또는 자손, 의식 또는 성찬식 등이 수증자에게 주술적, 종교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한다."(같은 ) 이러한 체계를 이루는 계약의 계기들은 재화와 , 동산과 부동산과 같이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뿐 아니라 예의, 향연, 의식, 군사적 봉사, 여자, 어린이, , 축제, 시장 등이며, 모스는 이러한 계기들을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북서부 아메리카, 그리고 주요한 고대 법전들을 통해 연구한다.

 

전체적인 급부의 전형적인 형태를 모스는 미국 북서부 컬럼비아 유역의 아메리카 인디언인 치누크족의 명칭을 이용해 '포틀라치'(potlach) 부른다. 포틀라치는 원래 '식사를 제공하다' 또는 '소비하다' 뜻하는 치누크어로,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의 부유한 부족들은 겨울마다 끊임없는 축제 속에서 투기적으로 다투듯이 재화를 낭비한다. 이들은 "협력자인 동시에 경쟁자인 추장을 압도하기 위해 축적된 부를 전혀 아낌없이 파괴해버리는 일조차 불사한다."(56) 폴리네시아의 사모아 섬에서는 결혼, 출생, 할례, 질병, 소녀의 성년식, 장례식, 상거래 등에 뒤따르는 계약상의 증여체계가 널리 퍼져 있다. 여기서 포틀라치의 가지 요소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부가 주는 명예, 위세, 마나(mana, 비인격적인 초자연력) 요소와, 답례하지 않으면 이러한 마나, 권위, 불가사의한 , 부의 원천 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답례를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의무의 요소"이다.(61)

 

한편 모스는 멜라네시아 부족간 부족 교역체계인 쿨라(kula) 일종의 거대한 포틀라치의 예로 제시한다. ''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쿨라는 바다원정, 귀중품, 일용품, 음식물, 축제, 의식적 성적인 봉사, 남녀 모두가 하나의 원의 주변을 따라 시간적, 공간적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교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쿨라 교역의 주역인 추장들은 외견상으로는 전혀 사심 없이 겸손하게 귀족적인 태도로, 집요한 흥정이 행해지는 상품의 단순한 교역인 김왈리(gimwali)에서와는 달리 아량을 가지고 교역을 한다.

 

교환-증여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일종의 화폐라 있는 바이구아(vaygu'a), 세공된 조개껍질 팔찌인 음왈리(mwali) 자개에 가공한 목걸이인 술라바(soulava) 가지다. 음왈리의 교역은 언제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술라바의 교역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정한 방향을 따라 행해진다. 부의 상징물인 팔찌와 목걸이의 순환에는 가지 규칙이 있다. 그것들을 너무 오랫동안  간직해서는 안되며, 넘겨 주는 느리고 인색해서도 안된다. 정해진 방향의 특정한 상대방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소유권은 특수한 성질을 것으로, 바이구아는 점유물, 담보물, 차용물이면서 위탁된 물건이다. 그것들은 다음 쿨라를 통해 '멀리 떨어진 상대방'(murimuri)에게 양도한다는 조건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화적, 종교적, 주술적이기도 한데, 그것은 바이구아를 소유할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가 생기며, 마음이 가라앉" 때문이다.(106쪽) 바이구아뿐 아니라 모든 재화들은 감정으로 충만되어 있으며, 물건들 자신도 계약에 참가한다고 여겨진다. 계약 자체가 물건들의 성질의 영향을 받는다. 다음과 같은 주문은 바로 물건들의 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쿨라(교역) 것이다. 나는 나의 쿨라(상대방) 녹일 것이다. 나는 나의 쿨라를 훔칠 것이다. 나는 나의 쿨라를 약탈할 것이다. 나는 나의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쿨라를 것이다 …… 나의 명성은 천둥과도 같고 나의 발걸음은 지진과도 같다." (키리위나 지방의 주문. 109)

 

교역되고 매매되고 교환되는 사물들에는 언제나 정서적인 투여가 녹아들어 있다.

 

"너는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너는 사랑의 선물은 주지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지도 않았다.

만일 내가 좀더 빨리 위험을 알았더라면,

너는 이미 목숨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에다에 나오는 영웅 흐라이드마르가 로키의 저주에 반응한 구절. 245)

 

이렇게 선물의 증여와 수증에는 선물을 주는 감정이 문제되며증여되는 사물(여기서는 토지) 증여-수증 관계 속에서 말을 한다.

 

"(수증자에게) 나를 받으세요

(증여자에게) 나를 주세요

나를 주면 당신은 나를 다시 얻게 것입니다" (<마하바라타>에서 카샤파 왕에게 주어진 라마의 토지가 하는 말. 225)

 

사물들은 시장가치뿐만 아니라 감정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은 서로 어울려 놀며, 놀고 있다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로 와서 만난다.

 

"개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논다. 네가 개라는 말을 언급하면,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는 바와 같이 귀중품들도 놀러 온다. 우리가 팔찌를 주면 목걸이가 오며, 그리고 그것들은 (킁킁거리며 냄새맡으면서 오는 개들처럼) 서로 만난다." (트로브리안드-멜라네시아 지역. 111)

 

물건들이 감정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증여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또한 자신들이 하나의 장소이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떠다닌다' 여겨지고, 그들의 카누는 '바다에 떠돌며', 그들이 가지고 오는 토템 기둥은 표류하고 있다. 그것들을 멈추게 하는 것이 포틀라치와 초대이다. [……] 콰키우틀족 추장의 매우 통속적인 칭호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 '사람들이 오는 장소'이다." (틀링깃족. 156)

 

이러한 체계에서는 물건과 사람이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닌 존재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물건은 사람의 일부이자 사람의 감정이 투여된 ,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장소이며, 사람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물건과 사람들이 표류를 멈추고 노저어 모이는 장소이다. 사물은 인격과 효험을 가지며, 또한 인격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씨족의 영속적인 물건이다. 따라서 물건과 가치, 계약, 사람은 혼합된 것이고, 여기에서 나와 타자는 완전히 구분되는 존재로 표상되지 않는다.

 

"당신을 자인 나는 나를 주는 자이다." (= "당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이다. 이제 나는 당신의 본질이 되며, 당신을 주면, 나는 자신을 준다." (<마하바라타>에서. 231)

 

<증여론>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중첩되어 있다. 수많은 각주가 달려 있으며 어떤 각주는 페이지에 걸친다. 깔끔한 체계를 선호하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러한 체제는 때때로 짜증나지 않는가? 나는 <증여론> 독자들이 각주들을 어떻게 읽는지, 대충 건너뛰는지 아닌지, 각주가 나올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완전히 구체적인 것들, 물질적인 것들을 기록하고 사유하는 것이 민족지학이다. 데이터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레비스트로스는 <신화학> 4부작 통해 수많은 신화들을 가장 작은 단위인 신화소들로 쪼개고 모조리 기호화한 다음 이들의 구조를 비교함으로써 구체적인 사례들 속에서 드러나는 구조를 읽으려고 했다. <증여론> 많은 독자들이 분명 지리멸렬하게 느낄 수많은 곁사례들을 각주 속에 집어 넣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각주들을 열광적으로 탐독했다. 그리고 미분절적인 글에서 고의로 앞과 뒤를, 각주와 본문을 뒤섞었으나, 단지 울림이 있는 인용문들만을 뽑으려고 했다.

 

민족지학의 사후작업으로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 이론화는 언제나 가능할 것이지만, 민족지학 텍스트 자체가 갖는 가치는 바로 날것의 목소리들 속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물의 순환을 설명하기 위해 '선물의 '이라는 신비한 개념에 의지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보았듯이 모스의 실패인가. 살린즈의 해석처럼 하우는 가치재에서 나오는 이윤일 뿐인가. 부르디외가 보았듯이 증여는 선물교환의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속이는 개인적, 집단적 자기기만 사이에서 유희하는가. 데리다가 보았듯이 선물은 선물이 되기를 그칠 때에야 비로소 선물로 인정받는다는 이율배반을 전제하는가. 여기에 또한, 상상적인 것으로서의 신성한 사물이 제도와 상징으로 물질화된다고 고들리에의 입장을 덧붙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들을 던지기 이전에, 나는 위바네고 부족 씨족의 추장들이 다른 씨족의 추장들에게 하는 인사말을 모방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사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어찌 달리 말할 있겠습니까? 저는 가치 없는 천한 사람인데도 여러분께서 저를 기억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정령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오시다가, 저와 함께 자리하러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접시는 가득 것입니다. 정령들을 대신해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260) 이것은 의례의 말이지만 나는 비서구인들이 진정을 다해 의례를 행하듯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근대인에게는 의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을 할 것이다. 개념들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시달리고 있는 내겐, 단지 우리가 습관과 편견을 뒤집지 않기 때문에만 우리에게 공명하지 않는 언어들이, 아직까지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빈곤한 언어가 지금 오래된 말하기 방식을 모방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글/ 홍서연(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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