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인문학 집중세미나란?

 

인문학의 불온성은 몇 마디 구호가 아니라 꾸준한 탐구와 현실 모색 속에 있습니다. 집중세미나는 그런 탐구와 모색을 실천하는 작은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집중 세미나 시간에는 강의와 연구 관련된 주제의 책들을 선정해서, 20주 동안 함께 부대끼며 읽고 질문하고 토론할 것입니다. 혼자라면 외롭고 힘든 공부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한다면 어려움도 기쁨과 보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트랙 I. 스피노자를 읽자!

튜터 박은선, 유영선

 

회차/ 일자

주제

교재 및 범위

1

9.10

양태의 존재론

『에티카』 1부. 정리1 ~ 정리14.

2

9.17

자유의지와 목적론

『에티카』 1부. 정리15~정리36. 부록.

3

9.24

평행론

『에티카』 2부. 정리1 ~ 정리13.

4

10.1

적합한 관념과 공통개념

『에티카』 2부. 정리13 ~ 정리49.

5

10.8

변용능력과 정서

『에티카』 3부

6

10.15

노예와 자유인

『에티카』 4부

7

10.22

영원성과 지복

『에티카』 5부

8

10.29

종교와 정치

『신학정치론』 (서문, 16~20장)

9

11.5

홉스 vs. 스피노자

『정치론』

10

11.12

불온한 인문학 워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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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II. 푸코와 신자유주의 통치체제!

튜터 김은영, 권은혜

 

회차/ 일자

주제

교재 및 범위

1

12.3

권력의 계보학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17-84

2

12.10

역사와 근원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85-168

3

12.17

민족 그리고 전쟁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169-220

4

12.24

육체의 인간에서 종의 인간으로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221-305

5

1.7

자유주의의 차이와 반복 : 통치론

『통치성과 자유』 68-127

6

1.14

삶과 포개진 죽음 : 권력론

『통치성과 자유』 130-184

7

1.28

적대의 전위 : 법·규범론

『통치성과 자유』 186-233

8

2.4

‘시큐리티’의 강화 : 현대도시격리론

『통치성과 자유』 238-281

9

2.11

공포와 비밀의 정치학

『통치성과 자유』 284-324

10

2. 18

에세이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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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 까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제가 여기서 라캉에 대해 말해도 될까요? 저 같은 사람도 ‘자격’이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라캉의 주저인 『에크리』는 여전히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난해한 도식과 말로 뒤덮인 그 책은 벌써 꽤 오랫동안 ‘근간’이라는 말에 묶인 상태이지요. 저는 『에크리』를 전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외국어에 완전히 까막눈인데다 사전을 뒤집으며 책을 읽을 만큼 바지런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나마 각종 라캉 개론서를 통해 『에크리』의 악명을 곁눈으로 겨우 확인한 정도라고 할까요. 불어의 기초는커녕 영문 독해력도 갖추지 못한 제가 언감생심 라캉을 넘보는 건 우스운 일일 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제 라캉 독해는 ‘문자 그대로의 라캉’에 도달하기는커녕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겠지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직도 라캉을 잘 모릅니다. 정신분석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심리학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 방면에 내세울 것도 없네요. 라캉의 유일무이한 번역서인 『세미나11』을 탐독하고 있다지만 정말 딱 거기서 벽에 막히는 정도입니다. 애매한 말로 단언하는 라캉의 발화는 인정사정 보지 않으니까요. 제 『세미나11』을 펼쳐보면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노랗고 빨갛게 줄 쳐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모르는 것 투성이란 말이겠지요. 저는 (라캉의 녹음된 음성을 들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라캉의 걸걸한 목소리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라캉의 흔적을 쫓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의지하기엔 그마저도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지만 말이죠. 억독도 이런 억독이 없을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당신이 말하는 라캉의 권위가 고작 그것에 의거한 것이냐고, 그건 결국 라캉에 대한 맹신이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 있겠지요.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저는 정말 ‘고작 그것’에 의거해서 라캉에 대해 말하려는 참이니까요. 멀리서 부르는 라캉의 선의를 믿지 않고는 저의 무능력한 라캉 논의는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라캉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일반적인 조건으로 따진다면 아무래도 저는 실격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네요.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논의에 있어 자격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자신이 이해한 바를 이야기해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변에 충분히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마주쳤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를 옹호하며 그런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므로 저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라캉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옹호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어쨌든 저는 라캉과 관련된 몇몇 개론서를 읽었고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는 이유를 거기에 덧붙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인정을 통해 제가 말했던 ‘자격’의 문제가 충족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런 식의 인정은 자격의 문제를 잠시 보류하는 것일 뿐일 겁니다. ‘보류’가 자격에 관한한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운전면허를 갱신하듯 자격 문제에 있어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자격은 언제나 타자에 의해 부여(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임시적이며 항상 타자를 향해 되물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자격은 개인이 무언가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갖추어짐의 위치에서 탄생하는 ‘주체’의 문제인 것입니다. 자격과 관련해서 통용되는 조건들이 무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격의 주체는 개인이 갖춰야할 조건을 기준으로 결정되기에 앞서 항상 타자의 지점, 즉 타자의 욕망과 관련된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격은 누군가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통속적인 격언은 그런 의미에서 자격이 타자의 욕망과 관련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라 읽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라캉을 읽고 라캉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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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이미 라캉의 선의를 믿으면서 논의를 진전시켜보리라 공언한 바 있습니다. 자칫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실제로 종교적으로 보이는 이 선언은 사실 자격의 문제에 관한한 아주 중요한 지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격의 문제가 (타자의) 욕망의 문제로 이어지는 이상 라캉에 관한 자격은 라캉의 욕망을 가로지를 필요가 있지요. 분석가의 자격을 결정하는 교육 분석이 그러하듯이, 라캉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라캉의 욕망과 대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캉은 과연 무엇을 욕망할까요? (이 질문에 도달한 사람은 이미 라캉의 욕망에 직면한 셈이겠지만) 그것은 바로 분석(가)의 욕망이며 정신분석을 계시한 프로이트의 욕망입니다. 라캉은 라캉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은 프로이트주의자임을 공언한 바 있지요. 그는 프로이트의 선의를 믿고 정신분석을 계시한 프로이트의 자격을 긍정함으로서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성공적으로 이행해냈습니다. 프로이트의 욕망 앞에서 라캉은 프로이트의 토대가 됨으로써 프로이트를 논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에 대한 검증한 셈입니다. 이는 영구적인 자격이 아닐 겁니다. 욕망 앞에서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묻는 한에서 생겨나는 임시적인 자격입니다. 그야말로 ‘자격의 주체’가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임시적이라는 사실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격 문제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었지요. 정신분석에 관한 박사 학위가 프로이트를 논하는 라캉의 자격은 확증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언뜻 충분해 보이는 자격은 국제정신분석협회가 (라캉의 진술대로라면) 라캉을 ‘파문’함으로써 무효인 것으로 밝혀졌지요. 라캉의 자격은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세미나를 통해) 행위로서 반복하였을 때에만 확인됩니다.


세미나는 정신분석의 실천 자체의 일부를 이루며, 그 실천 내부에 있으면서 그 실천을 이루는 한 요소, 즉 정신분석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미나11』, 13쪽


  라캉의 세미나가 라캉이 기존에 하던 것을 재개하는 것일 뿐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완전히 새로운 단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실천으로서 자신의 자격을 되물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세미나는 프로이트의 욕망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난처한 토대를 드러냅니다. 라캉은 말합니다. 진리는 프로이트가 가진 무언가다. 계시자로서 프로이트는 확실성의 토대가 되는 불가능한 원인에 다름 아닙니다. (프로이트가 분석에서 매번 발견하는 무의식의 원장면이 바로 그 불가능한 원인이지요.) 라캉은 바로 그 지점에 자신의 자격을 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진리란 곧 진리를 뒤쫓는 무엇입니다. 또한 진리는 바로 악타이온을 뒤쫓던 개들처럼 여러분이 제 뒤를 쫓아 달려가는 곳이지요. 아르테미스 여신의 은신처를 찾게 되면 저는 아마도 사슴으로 변할 테고 여러분은 저를 잡아먹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습니다.

위의 책 ,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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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젠 결론을 지을 시간이네요. 죄송하게도 쓸데없이 길기만한 자격에 관한 논의였습니다.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라캉의 행위를 반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저의 자격을 긍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불가능한 길이기 때문이지요. 라캉의 욕망에 제가 주체로서 응답하는 이상, 저는 저의 끝없는 무지에도 불구하고 저는 라캉에 대해 말할 자격을 갖춘 주체로서 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제가 아니겠지요. 무의식이 거기에 있으므로 거기에 가야한다는 프로이트의 선언을 따라 누군가는 파편과 같은 저의 자격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라캉의 선의를 믿고 논의를 진전시키기엔 라캉의 목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로렐라이의 노랫소리를 닮았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이지요. 파도와 바위 앞에 자살적으로 맞서는 행위, 그래서 논의의 진전은 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해야할 것 같습니다. 분석이란 무엇인지, 선의란 무엇인지, 뭐든 만나야 할 것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억압된 것이 회귀하듯이 말입니다. 이상 열혈 라캉주의자 박모군이었습니다.



글 / 박모군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라캉 강독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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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하면 강사는 강의하고 수강생은 그냥 듣는 수동적인 강의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불온한 인문학은 강의를 듣는데서 끝나지 않고

집중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자기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

‘집중 세미나’ 라는 과정을 꼭 함께 해야 한단다.

 

집중 세미나는 무엇이며 어떤 텍스트를 읽는지,

그리고 불온한 인문학 강사팀이 이번 과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그들이 꿈꾸는 ‘연대의 쾌감’에 대해 들어봤다.

 

 

이기자: 집중 세미나도 한다고? 세미나 제목이 ‘반자본주의와 욕망의 정치학’이다. 세미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해피 : 먼저 읽을 『자본주의 역사 강의』다. 이 책은 맑스의 틀에서 해석하지 못한 부분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왜 맑스의 자본론을 읽다보면 현재 경제상황과는 너무 다르지 않느냐. 그러다 보면 흥미를 잃거나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 강의를 들으면서 세미나 시간엔 직접 이 책을 읽는다면 현재의 문제에 대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훈 : 당대의 맑스가 썼던 책이 자본주의 문제를 완전히 전능하게 풀어 낸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선 자본주의를 폭 넓게 이해하기 위해선 맑스가 풀지 못한 것을 봐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 강의』는 초기 자본주의 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 모습까지 자본주의 500년 역사의 변화 양상을 두루 볼 수 있는 책이다. 세계체계 분석(World System Theory)의 두 대가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오반니 아리기’의 세계체계 분석 뿐 아니라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페르낭 브로델’ 과 ‘칼 폴라니’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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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지금 해피쌤과 함께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내 주변엔 세계 경제에 대한 걱정·근심으로 밤잠 못 이루는 분들이 많다. 주변 직장 동료를 봐도 세계 경제에라이히 대해 어쩌면 그렇게 박식하신지. 그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재밌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젠 중국. 세계 헤게모니가 어쩌고 저쩌고. 식민지 전쟁부터 대공항, 무역전쟁 등등 자본주의 역사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리고 결론이 너무 웃긴다. ‘그래서 중국 펀드를 사야한다’로 귀결되더라. (*물론...한참 중국·인도 펀드 유행일 때 가입했다가 반토막 났을 때 이 놈의 경제가 왜 이러냐고 한탄하느라 눈 밑이 까맣더라.) 우리야 뭐 그런 펀드는 안 사겠지만 어쨌든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거시적 관점은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 무엇보다 재밌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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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 두 번째로 집중 세미나 시간에 읽을 책은 풀빛에서 나온 『자본의 정치적 해석』이다. 이 책은 자본의 1편 1장을 서술한 것이다. 어떻게 자본론 안에 프롤레타리와 부르주아의 계급적 문제가 관통하는 지 좋은 통찰을 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논쟁적인 저작이기도 하다.

 

 

 

독일 시민은 속지 않았다...... 대중은 왜 자기 억압을 욕망하는가?

 

이기자 : 두 번째 학기에 집중 세미나에서 읽을 책은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 대중심리』, 고병권의 『추방과 탈주』라고?

 

진석 : 들뢰즈가 라이히의 책을 인용하면서 던지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왜 대중은 자기 억압을 욕망하는 가.’ 라이히가 이런 문제의식을 던졌을 때 그 문제의식의 이면엔 ‘도대체 왜 임박해 있다고 믿었던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혁명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지도적인 이론가들 혁명주의자들이 주안점을 두고 생각한 것은 대중이 어떻게 혁명을 의식할 것인가이다.

 

루카치는 1923년『역사와 계급의식』이란 책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기의 계급적 입장이라는 것을 말하는 순간 혁명은 폭발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대신 아직 프롤레타리아트가 문제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것)이고, 부를 타도하는 게 뭔지를 알면 혁명이 자연히 올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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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히는 여기에 문제의식이 있다. (모두들 알다시피 혁명은 오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해도 혁명이 오지 않는 문제. 아는 것과 욕망의 문제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대중에 대한 의문들을 생각한 것이다. 가령 2차 세계 대전 끝나고 나치즘 독일에 대해서 비판적인 질문을 던질 때를 보자.

 

그때 ‘어리석게도 독일 시민은 속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많은 역사 문화적인 연구가 보여주는 것을 보면 아니다. 사실 독일 시민은 다 알았다는 거다. (파시즘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배반하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일까. 단일화된 영토를 지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안티 오이디푸스’와 연결 해 보면 국가와 민족과 가족의 이름으로 동일화 되는 무의식 욕망의 기재가 몇 개의 단선적인 구조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어떤 욕망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기성의 안온한 씹고 버무려진 우리에게 소화하기 좋게 쉬운 것을 따라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걸 욕망한다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타자의 욕망으로 가는 거다. 나의 욕망을 알고 자 함이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는 거다. 만약 내가 ‘나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면 어떻게 변할까. 가족이 원해서 국가가 원해서 타자가 말하니까... 하고 과연 순순히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자고 한 것이다.

 

고병권의『추방과 탈주』는 그런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 21세기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풀어낸 책이기 때문에 사실 이론적인 뭘 찾기 보다는 체험으로서 되돌아 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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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나 행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연대하는 힘, ‘연대의 쾌감’을 위하여

 

이기자 : 강의를 준비하면서 기대가 많이 될 것 같다. 어떤 이들이 이번 강의를 찾았으면 좋겠는지...

 

해피 : 우리도 현재의 문제를 돌파할 뾰족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서로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훈 : 우리가 불온함을 알려주마. 이런 건 아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도 말했지만 우리의 불온하지 않음을 반성하는데서 시작하고 싶다. 대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넘을 수 있을 지 열린 마음으로 보자는 거다.

 

진석 :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일테니 서로의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나누는 자리도 자주 마련했으면 한다.

 

정훈 : 자본이나 국가가 무서워하는 건 폭력이나 행패가 아니다. 우리가 연대하는 힘이다. 사실 이 연대하는 힘이 가치 있다고 믿는 데 연대를 당위로 하기 보다는 연대가 주는 쾌감을 느꼈으면 한다. 지난 여름 국제 워크샵 할 때 읽었던 다니가와 간의 글에 연대의 쾌감이란 내용이 나온다. 우리도 엠티도 가고 불온함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좋겠다.

 

이기자: 불온하다고 했을 때 많이 심각해 보였는데 그런건 아닌 듯?

 

화 : 그렇다. 불온함이 인상 쓰자는 게 아니다. 요즘은 트위터 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거나, 조금은 다르더라도 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이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 테면 ‘내가 반대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에서 반대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알티(*RT: 트위터에서 상대의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쓰는 방법)가 되는데, 왜 세상은 안 바뀔까. 왜 이런 목소리는 전달이 안될까.’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알티(RT)도 좋지만 서로 구체적인 문제를 공유하고 공부를 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보자.

 

 

 

지금 당신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문제로 머리가 아프진 않는지.

혹은 나날이 바보같은 짓을 해대는 어떤 분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진 않는가.

 

이들이 말하는 연대의 쾌감이란 무엇일까.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떤 날의 그 짜릿함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해 뭔지 도통 감이 오지도 않는가.

 

궁금하다면 액션 나우!

불온한 인문학 1기에 함께 하자. 

 

 

글/이기자

 

 

 

 

<안내>

* 불온한 인문학 1기 주요 프로그램

I. 맑스의『자본』 입문 ― 다시, 반(反) 자본주의의 깃발을 들자!

II.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o 강 사 : 정정훈 · 최진석

o 세미나 튜터 : 정행복 · 문화

 

1. “불온한 인문학”은 2011.3.3.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욕망 이론과 대중 정치를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1.20.목요일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우리은행 1002-043-230955 (예금주 : 문화)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 http://nomadist.org/xe/bulin )에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정행복 010-9404-8403, 문화 010-62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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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로  인문학 텍스트를 읽고 싶지만 불어에 익숙하지 않아 아쉬움만 쌓여간다고요 읽기는 문법을 완전정복한 다음으로 미루고만 있다고요프랑스 저자들의 글은 어렵다고요말하기듣기는 회화를 통해 익히는 것이, 텍스트 읽기는 그와 전혀 다른 세계라고요?

……  (=,.=)

읽고 싶은 프랑스어 텍스트를 읽을 날이 요원하여 자포자기에 빠지신 분들을 위해 초중급 불어강독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말하기듣기 감각 없는 문법은 죽은 지식입니다프랑스 인문학 텍스트의 저자들은 결코 죽은 언어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그들의 글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불어의 특성이 생생한 말하기 감각과 결합되어 있지요.

 

문법을 따로 완전히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책을 읽을  있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훨씬 성큼성큼 나아갈  있어요부족하면 부족한대로, être 동사 변화까지 함께 체크하면서 텍스트를 읽고자 합니다.  

 책을   읽기보다는 흥미롭고 쉬우면서도 중요한다양한 글을 선별해 읽음으로써 프랑스어 인문학 텍스트의 맛을 감식할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문법뿐만 아니라 단어개념표현들의 일상적인문학적 용법 익히기소리내어 읽기를 통한 발음 교정과 불어 텍스트의 리듬 익히기이런 방식으로 불어 인문학 텍스트에 접근해 보고 싶은 분들은 주저없이 오세요! (^.*)   

 

  

대상 : 

불어에 익숙하진 않지만 프랑스어로  인문학 텍스트를 읽고자 절실히 욕망하는 모든 초급 환영!

(Q : 아베쎄도 보르는 생초짜도 가능한가요?

A : 초보라도 발음규칙과 일반적인 어문규칙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합니다. 

     수업, 어학코스, 독학을 통해 한 번이라도 프랑스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다면 

     세미나 시작 전까지 공부해 오시면 됩니다.)


날짜, 시간 : 

2011 3, 4 매주 목요일 저녁 7:00-9:00

 

장소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세미나룸

(서대문구 연희동. 찾아오시는 법)

 

강사 : 

홍서연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인류학 박사파리 4대학 철학 박사과정 수료)

조성천 (파리 4대학 문학 석사파리 3대학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 <니체와 악순환역자)

 

참가비 : 

2개월 9 10만원

(입금계좌 : 국민은행 050-21-0499-216 예금주 홍서연분납환불 불가합니다.)

 

신청방법 : 

수유너머N 세미나 게시판에 올린 공지에 댓글 달아주시고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댓글에 이메일/전번 꼭 남겨 주시고입금시 문자 주세요.

 

연락처 : 

홍서연 indooa at gmail.com / 트위터 @seedveil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livres.jpg

 

프로그램

세미나는 완독에 목표를 두지 않고 다양한 텍스트를 맛보는  중점을 두며분량은 세미나 팀의 역량에 따라 조정합니다원문이 프랑스어인 글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아감벤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불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포함하며인터뷰강연문철학사회학문학을 두루 넘나듭니다마음을 끄는 매력적인 글을 발견했다면  나아가는  각자의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는 언제나 도움을 요청할  있습니다.

(텍스트는 필요한 부분만 복사해서 이용할 예정입니다.)

 

1 (3 3) :

Giorgio Agamben, Amitié (우정, 2007).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인용해 우정을 정의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감각지각의식과 관련된 어휘들과 만난다.

 

2 (3 10) :

Marc AugéLes formes de l'oubli (망각의 형태들, 1998). 기억추억망각무관심용서원한… 프랑스 인류학자의 글을 통해현대 철학의 중요한 테마이기도  기억에 대해 반추한다.

 

3 (3 17) :

Michel Foucault, "Qu'est-ce qu'un auteur?" (저자란 무엇인가?, 1969). 세탁물 메모에도 저자를 말할 수 있을까?! 롤랑 바르트의 "La mort de l'auteur"(저자의 죽음, 1968) 함께저자의 지위에 대해 묻는 유명한 하지만 실은 강연문으로서 구어체가 섞인 흥미롭고 알기 쉬우며 유머러스한 .

 

4 (3 24) :

Pierre Bourdieu (dir), La misère du monde (세계의 비참, 1993). 사회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빈민층의 생생한 언어를 접한다.

 

5 (3 31) :

Henri Bergson, Le rire (웃음, 1940). 웃음에 대한 탁월한 분석일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테마로 들어가는 창문이기도  텍스트.

 

6 (4 7) :

Roland Barthes, Le plaisir du texte (텍스트의 즐거움, 1973). 텍스트의 즐거움을 알기 위해선 '바벨의 언어', 텍스트의 다수성을 예찬하는 <텍스트의 즐거움>!

구약성서 창세기 10-11 + Umberto Eco, "Eloge de la pluralité" (다수성 예찬) (Philosophie magazine, 2009. 8-9, hors-série). 바벨탑의 출전과 그에 대한 독해를 함께 읽는다.

 

7 (4 14) :

Jacques Rancière, Le spectateur émancipé (해방된 관객, 2008). 5 "L'image pensive"(사색적 이미지)  부분을 통해 이미지와 사유의 관계를 사유함과 동시에'사유' 표현들을 접한다.

 

8 (4 21) :

Deleuze Spinoza 강의 (1978. 1. 24.). 들뢰즈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분명하고 똑똑한 구어체로 철학을!

 

9 (4 28) :

Maurice Blanchot, La communauté inavouable (밝힐  없는 공동체, 1983). '공동체' 중심으로 개념적 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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