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최근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홈페이지를 보면 불온함이 주요 화두입니다. 이번 강좌의 제목도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이고, 3월부터 시작된 <불온한 인문학>도 그렇습니다. 단행본 <불온한 인문학> 총서도 기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유너머N에서 거듭 언급하고 있는 불온함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불온성이 없는 인문학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문제의식에서 연구실 회원들이 모여 몇 가지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불온한 인문학>은 책 <자본론>과 <안티-오이디푸스>를 통해 가정과 국가, 자본 등 이른바 ‘안정성’의 토대와 대결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6개월간의 세미나와 강의를 통해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해 사유하는 장을 만들고자 모였습니다. <불온한 인문학>이 불온성을 통해 인문학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라면, 이번 봄강좌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불온성을 사유하고, 이를 통해 불온성을 바탕으로 존재론을 사유하려는 시도입니다. 강좌이다보니 7주간 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강의하는 형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유너머N에서 공동으로 기획한 프로그램들이니 이 둘은 연결되는 점이 있겠지요.


Q. 안녕학세요. 이번 강좌의 반장을 맡게 된 호연입니다. 저는 이제 대학교 2학년이고, 공대생이라 ‘불온성’, ‘존재론’ 등의 용어가 낯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맥락에서 이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리 수강을 준비 중인 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불온함이라 할 때 우린 통상 반정부적인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불온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어떤 제도를 요구하는 투쟁 같은 것은 많은 경우 요구하는 것이나 이유, 사고방식이나 투쟁방식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어서,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불온하다고 할 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온함이란, 통념이나 분명한 구별들이 깨질 때 발생하는 불안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하다고 믿던 것들을 와해시키고 그 경계를 횡단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지요. 특히 이번 강의는 존재 자체로부터 불온성을 함축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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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이란, 가령 휴머니즘을 비판했던 후기의 하이데거의 경우를 보아도 존재의 의미에 대해 관심과 이해를 가지는 인간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차라리 인간에 대해서조차 인간 아닌 것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인간 아닌 것’을 하나로 묶어 다룬다면, 인간중심적 접근과 대칭적인 것이 되고 말 겁니다. 그게 아니라 나름대로 각각 특이성을 갖는 존재자들을 통해 존재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 특이한 존재자가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님을 드러냄으로써 그런 존재의 특이적 요소를 우리를 포함하는 존재 자체의 요소로 사유하려는 겁니다.





여기서 제가 선택한 특이적 존재자들은 우리가 익숙해있는 것들을 횡단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는 존재 자체를 익숙한 내부성이 아니라 낯선 외부성을 향해 열어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로써 존재 자체를 불온한 것으로 사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존재론이란, 저에게 단지 철학적이기만 한 것도, 단지 사변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적이기 이전에 정치적이고, 사변적이기 이전에 현실적입니다. 가령 장애인을 통해 사유되는 존재란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 운동이나 그와 관련된 정치와 처음부터 결부가 되어있지요. 또한 역으로 이런 존재론을 통해 그런 운동이나 정치의 문제를 존재론적 차원으로까지 소급해서 근본적으로 다뤄볼 수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 먼저 1강에서는 불온함이란 무언지, 우린 언제 불온함을 느끼는지, 그런 질문에서 강의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후 불온이라는 개념에 대해 새끼 치며 설명하기보다는, 불온함을 야기하는 존재, 불온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겁니다.



Q. 각 주의 제목들이 특이합니다. 저마다 이색적인 주제의 강의가 배치돼 있는데요, 장애인, 프레카리아트, 사이보그, 박테리아, 패티시즘. 모두 얼핏보면 특이하고 수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게다가 몇 가지 빼고는 한 번도 연결지어 본 적 없는 주제들입니다. 사회적 소수자라고 묶기에는 인간 아닌 것(박테리아)이 끼어 있고, 정치적 연대를 위해 모이기에는 민망한 특이성(패티시즘)이 끼어있습니다. 사실 그 점 때문에 강의가 매혹적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주제들을 선택하고 연결하게 되셨는지요.





A.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일종의 ‘중간적인’ 존재자들이라는 겁니다. 기존 존재자들 사이의 구획에 따라 명료하고 뚜렷하게 구별된 것들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구별을 깨거나 와해시키거나 중간에 끼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에요. 저는 이것이 불온함을 사유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두 불온한 자들이지요.


Q. 불온한 자들이 위와 같은 특이성을 가진 이들이라고 하지만, 운동이나 정치에서 누구보다 그들이 주체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당사자주의’ 가 떠오르는데요.


A. 전 당사자주의가 잘못된 운동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특이성은 이와 다른 것입니다. 이 특이한 존재자들이 하나같이 나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에서 나에 해당되는 것, 바로 나의 문제, 우리 모두의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모든 특이성이 그들만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특이성, 존재의 특이성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겁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들에 대한 ‘각론’이 아니라 존재론의 일부로서 다루어질 수 있는 거지요. 이는 제가 ‘존재론적 평면화’라고 명명하는 사고방법을 통해서 밀고 나갈 겁니다. 우리 모두 장애인이고, 우리 모두가 프레카리아트
,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패티시스트가 돼야 한다고도 말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당사자라는 말을 쓴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당사자라고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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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를 수강하는 데 도움이 될 책 기사는 요기   !  http://nomadist.org/xe/Nzine/104506

(강좌 관련 문의 및 신청은 요기를 클릭하세요!     http://nomadist.org/xe/apply)


며칠 후 두번째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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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2011. 2. 24-25. 수유너머N 국제워크샵 <대중의 주체화와 문화정치학>은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과 사카이 다케시 선생님을 비롯해서 오사카 대학에서 공부하는 분들과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특히 25일의 프로그램에서는 수유너머N과 오사카 분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활동을 벌이면서 같은 것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흘려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말들이어서, 그날의 토론을 매우 거칠게나마 옮겨봅니다. 오후와 저녁 내내 통역을 담당한 하지메상과 오하나양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 중 제 기록에서 틀린 부분과 빠진 부분들에 대해 더 정확하고 자세한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 분의 보충을 기다립니다.

기록 / 홍서연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 indooa at gmail.com / twitter@seedveil)

 

워크샵 프로그램으로 바로가기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의 저서 <전장의 기억>과 <폭력의 예감>에 대한 논평에 앞서

 

도미야마 : 올바르지 못한 설명을 하는 사람들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회의하면서 올바름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다. '올바른 설명'이 오키나와에 계속 따라붙었다. 오키나와를 말할 때 올바르게 논의하는 것과는 다른 대상 접근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휘말려들일 수 있는 힘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올바른 설명이 올바른 연대로 이어진다는 말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 말은 내게, '나는 그런 연대에 휘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말처럼 보였다. 연대, 지원을 말하면서 휘말려들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서, 감히 휘말려들 수 있게 하는 말이 있는 곳에 운동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특히 폭력에 대한 분석에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신체성의 증거들이 있다. 나는 휘말림을 축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러한 휘말림을 확보하고 싶다. 휘말리지 않았으나 꼭 휘말릴 것 같은 사유들이 있다. 이러한 사유는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사유다. 이것이 바로 "예감"이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남의 일이 아닌 것에 대한 것이다.

타자와 내가 포개지는 신체감각으로서의 예감을 사유하고 싶었다.

휘말려들인다는 것은 곁에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 혼재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정치가 있다.

이러한 신체성 속에 가능성이 숨겨져 있고, 현행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초점과 확장주의(expansionism)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대상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을 휘말려들게 하는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 정치는 혹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다초점 확장주의'는 독일에서 있었던 사회주의 환자 동맹[사회주의독일학생동맹(SDS)의 ‘하이델베르크 환자 공동체’(SPK). 68이후 나타난 소수자 운동을 말씀하시는 듯]이 가지고 있었던 입장이다. 확장주의란 연구에서 복수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올바름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상황적이고 복수적인 복수성으로 향한다. '분야'와 관계해서 복수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서 단서를 확보하는 행위 속에서 나오는 복수성을 말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연구를 생각하고 싶다.

그런 행위의 방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과연 강령 같은 것과 무관하게 그러한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속에 오키나와를 위치짓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재구성하려고 생각 중이다. 그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정행복, 최진석의 토론문을 읽은 후 도미야마 선생님의 토론

 

도미야마 : … "전장의 기억은 정치다!"라고 표현한 정행복의 말은 매우 적절하다.

… 방어태세를 설명하는 것과 연관된다.

폭력의 예감. 무장해제를 안정화시키는 얘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행복의 요청(일상을 지배하는 무신경한 내셔널리즘에 전율을 일으키는 '발견되어야 할 폭력의 예감'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이야기를 들려달라는)에 대해 응답하겠다. 오키나와에서의 정신의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기존의 논의들과는 다른 논의를 원했다. 전쟁을 둘러싼 트라우마들을, 질병의 이름(병명)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행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가능성들을 찾는 것, 이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69-70년대에 오키나와에서 활동했던 집단들을 볼 때, 70년대에 오면서 정신의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왔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 병, 거기에 있는 권력을 어떻게 비판하는가가 그 집단들의 문제의식이었다. …

오키나와의 경제는 식민지 경제 속에서가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 속에서 붕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standing policy, 개발, 부흥 등이 오키나와에서는 20년대부터 있었는데, 그러면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유랑하게 되었다.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방식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떤 점으로 오키나와를 연관시켜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큰 문제이다. 외부로 나간 사람들을 포함시켜 생각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 제도,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진석이 논평의 말미에서 말한 것처럼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으로 가면 안 되지 않을까? 그것을 비판하고 싶다. 주디스 버틀러의 멜랑콜리를 둘러싼 논의가 있다. [Judith Butler, The Psychic Life of Power: Theories of Subjection. University Press of Stanford, 1997.] 상처를 계속 끌어안고 가는 것, 그 지점에 멜랑콜리가 있다. 정신분석이 갖는 한계가 거기에 있다. 개인이 설정되어 있고, 개인과 개인이 맺어져 연대가 된다고 전제되어 있다. 여기서 다시, 오키나와의 정신의료가 문제된다. 펠릭스 가타리가 제기한, 언표행위의 집단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객석 질문과 토론

 

유선 : 올바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올바르지 못한 것을 물리치고 자신의 올바르지 못한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적어 놓지 않은 탓에 기억에 의존하여 매우 거칠게 재구성했다. 죄송 ;ㅁ;]

 

도미야마 : 내가 말한 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휘말려들어가는 것이 문제된다.

최진석이 말한 영속성에 대한 것과 연결된다. 집단과 집단 간의 싸움을 빼놓고 네트워크 간의 것으로만 얘기하면 얘기가 아주 부족하다.

 

서연 : 선생님께서는 <폭력의 예감>에서, 관찰대상뿐만 아니라 연구자(관찰자) 또한 브리콜뢰르, 공작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연구자도 관찰자와 마찬가지로, 이미 세워진 목적 하에서의 전체적인 조망을 가질 수 없고 언제나 만들고 있는 와중에 있다. 이런 과정 중에 있는 연구자가 관찰대상이 되는 현지인의 언어를 접할 때, 그들의 고유어, 예를 들어 '마나'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레비스트로스가 했듯이 '제로치'와 같은 말로 번역하거나 '무의식'으로 환언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단지 관찰자에게 외국어인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해결책은 아닐 텐데, 어떻게 새로운 말을 창조할 수 있는가?

 

도미야마 : 새로운 이야기는 번역이 정확하게 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마나는 달아나고픔, 두려운 감정과 같은 신체감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내 안에 생겨나는 감각들에서부터 말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사회성, 사회적 프로세스가 나오는 것이다.

기술되지 못한 것, 잘 모른 채로 만든 것. … 실제대로 기록하는 것, 여기에서 시작된다. 마나와 말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점을 볼 수 있다.

 

사카이 : 마나는 상품, 상품어(상품에 결부된 말들)이기도 하다. 상품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것. 마나는 어디에나 있다.

 

 



 

타카하시 아츠토시의 발표 <수유너머에게: 카페 커먼즈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에 대한 토론

 

[앞부분을 듣지 못했음]

 

타카하시 : (히키코모리에 대해). 부끄러움이라는 신체감각이 있는데, 히키코모리들은 부끄러움이라는 신체감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접촉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끄럽다는, 이러한 신체감각 말이다.

 

꾸냥 : 히키코모리와 오타쿠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타카하시 : 히키코모리에게 오타쿠는 멋진 존재다. 자기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는 이인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키코모리는 혼자다.

(야오이 연구를 하고 있는 아지마상에게 요청).

 

아지마 : 오타쿠는 동료가 있고 사교적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원하는 것을 사고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사카이 다케시 선생님의 발표문 <지금 여기로부터의 사회개혁론>에 관련된 토론

 

[앞부분을 적지 못했음].

 

사카이 : 도미야마 선생님이 올바름으로써 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은 마이너리티의 입장에 있는 말이다. 마이너리티가 마이너리티인 것은 자기책임을 지겠다는 데에 있다.

공산주의 이념은 상품의 폐지, 화폐의 폐지를 말한다. 상품, 화폐가 무의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권력이나 법으로 금지해 봤자이다. … 그러므로 본능적 공동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써 우회하자는 것이다.

 

이진경 : 선생님은 대화관계, 대면관계에서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설명하셨다. 그것들은 2자관계인데, 3인칭이 되면, 즉 3인 이상의 여럿이 모여 사람 수가 많아지면 2자관계는 무효화되는 것은 아닌가? 집단성은 (2자관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집단성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사카이 : 그것은 내가 생협운동의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조합원은 듣는 입장을 취하고, 상대편은 말하게 만든다. 나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발표에서, 여기에는 국가론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본론>의 아날로지를 빌리자면, 간단한(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전체적(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 화폐형태가 있다. 처음부터 권력이 거기 개입하고 있다. … 

공동성이란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이것은 보여지는 쪽, 수동적인 입장에 있는 쪽이 어떤 식의 이니시어티브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수동적인 입장은 소수자이고, 그들은 다수자의 … (?)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도미야마 선생의 연구에서도, 오키나와 사람들의 복잡한 구조에 대해 말했다. 수동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 앞에서 그들이 이니시어티브를 갖게끔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도미야마 : 상품을 팔게 하는 동력이 무의식이라 하셨고 그것을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신 데에 동의한다. … 그런데 그걸 그대로 남겨 두면 그것은 국가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다. … 무의식을 그대로 남겨 두면 국가를 만들어 버릴 수 있는데, 그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제도라 할 수 있다. … 우리가 무의식적 흐름에서 벗어나고 바꾸려 할 때 우리가 똑같은 것-국가-이 되어 버리지 않으려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가치형태론에서 … 될 수 있다고 하지만… )

 

사카이 : 도미야마 선생이 말한, '강령을 만들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공통적인 토대를 만드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 결국, 우회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관점이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폐기시키는가. 말로는 쉽다. 그러나… 고용되어 노동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1997년 쯤에 지역통화제의 예. … 이것은 시장을 대체하는 강제라 생각한다. 시장에서는 지불하고 결재하는 기능을 은행이 한다. 지역통화는 각각의 회원이 계좌를 만들어, 마이너스가 되어도 괜찮다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플러스가 되어도 이자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은행에서 이자가 생기는 형태는 장사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이것 없이 장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1997년 단계에서는 사회혁명을 위해서는 한 장의 그림을 들고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들을 그걸 보고 '안되겠지?'라고 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림을 보다가 어쩌다가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애국투쟁, 엘리트가 되어 (사람들을) 지도하면 엎어진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그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체제 하에서 관료제가… 아랍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의 권력이 무너져도 다른 권력이 장애물로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고정된다.

 

와타나베 : 도미야마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하겠다. 사카이 선생님과 도미야마 선생님 사이에서도 당파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지역통화 등에 대해서도 둘의 말하기 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데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이다.

 

타카하시 : (그분들이 당파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럼 나는 정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다르겠다. 구체적, 추상적으로… 지역의 차이, … 등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친구'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었다. 친구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관계다. 차이를 언제나 전제하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사카이 : 옛날의 나 같았으면 정치적 의사통일을 주장하며 싸웠을 지도 모른다. 유일성과 공통성을 어떻게 함께 (기능하게) 할 수 있나 생각하고 있다. 유일성을 갖고 있는 개개인이 공동관계를 만든다. 이런 것을 조합운동에서 볼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사업을 운영한다고 할 때 개개인이 뭘 생각하는가는 한계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나의 입장은, 사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에 있는 입장이다. 그것은 코뮨 같은 공동체에서, 외부의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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