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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7 <혜화,동>이 선택한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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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울고, 한 번은 웃고


<혜화,동>을 두 번 봤다. 첫 번째 볼 때에는 ‘동일시’가 잘 일어나 눈물도 찔끔 흘렀는데, 두 번째 볼 때에는 ‘반동일시’가 일어나면서 화가 났다. <혜화,동>을 다시 보기까지는 두 달 정도의 기간이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 혼자 멋대로 이 양가감정에 대한 원인을 파헤쳐가기 시작했다.

영화는 감독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영화를 만들 때에 감독은 소재에서부터 시나리오, 콘티, 카메라의 위치, 쇼트의 크기, 빛의 양, 사운드, 편집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순간을 ‘감독’으로서 선택하고 결단한다. 이러한 ‘감독의 선택’과 결단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무엇을’ 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에 대한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선택과 결단 중 비평가의 개입은 어디에서 이루어져야 할까.

영화를 다른 이론이나 담론에 기대어서가 아닌 영화 자체로서 사유하고자 할 때, 영화는 시각과 청각의 지각매체 혹은 이미지로 사유하는 매체라 여겨지고, 비평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 쇼트의 크기와 길이 및 몽타주와 같은 ‘어떻게’에 대한 선택과 결단에 개입한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서 사유하는 것, 이미지로서, 감각으로서 사유하는 것. 그것은 들뢰즈의 말처럼 현재와 같이 개념적 사유능력이 이미지적 사유능력보다 우수하게 평가받는 시대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 그 자체이기 이전에 이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삶’을 전제하고 있으며 많든 적든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있다. 즉,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시대와 공간, 삶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렇게 영화가 담고 있는 시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해 생각할 때, 비평은 감독의 ‘무엇을’에 대한 선택과 결단에 개입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혜화,동>이란 영화의 ‘무엇을’에 대해 개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혜화,동>의 ‘어떻게’에 대해 짚고 가자.

 

 

웰메이드, <혜화,동>


<혜화, 동>에 대한 몇몇 비평문에서 다루어진 주된 내용은 영화에서 많이 쓰인 클로즈업의 섬세한 포착과 과거와 현실을 별다른 장치 없이 과감하게 넘나드는 몽타주, 여주인공 혜화(유다인분)가 5년 동안 모아온 육화된 슬픔으로서의 손톱무덤 같은 알레고리 같은 것들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픔이라는 아픔은 다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척 애쓰며 억척스레 살아가는 혜화. 그녀의 삶은 사라진지 5년 만에 나타난 한수가 건네준, 죽은 줄 알았던 아이의 입양통지서를 받은 후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혜화의 내면을 표정연기를 통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표현해낸 배우 유다인의 클로즈업은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의 마음을 함께 흔들었다(처음 영화를 봤을 때의 상태).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헷갈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한 채 별다른 장치 없이 붙여 놓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몽타주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기억(과거)의 현재적 작동’을 잘 보여주었다. 실제로 감독이 15년 동안 모아왔다는 손톱을 소품으로 하여 연출된 5년 간 모아온 혜화의 손톱이 쏟아지는 씬은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혜화의 애환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이렇듯 <혜화,동>은 ‘어떻게’의 관점에서 볼 때, 감각적이고 뛰어난 형식과 장치들을 통해 관객을 매료시키는 웰메이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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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에서의 ‘무엇을’에 대한 이의제기 (스포일러가득)


<혜화,동>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무엇을’은 여자주인공 혜화다. 23살 혜화는 작은 동물병원에서 애견미용사를 하고 있다. 100만원 안팎일 그녀의 월급으로 어떻게 감당하는지 그녀의 집에는 열 마리가 훌쩍 넘는 유기견들이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상처는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 같아 보이는 혜화의 엄마는 혜화의 친엄마가 아니다. 혜화는 엄마 나이가 50이 넘었을 때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아온 자식이다. 고등학교 때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혜화는 학교를 그만두고 네일아트를 배우며 뱃속의 아이를 기다린다. 출산이 다가오고 혜화와 노모는 한수의 엄마를 만나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는 것에 반대하고 한수 마저 그녀를 떠난다. 혜화는 외롭게 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이 일들을 가슴에 묻고 살기를 어언 5년. 유기견 구조작업을 하고 있던 혜화 앞에 유기견과 함께 구조해줘야 할 것 같이 다리를 절룩이는 한수가 나타난다. 마치 5년 전 과거에 살고 있는 듯 한 한수는 ‘우리 아이 살아 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아이 핑계를 대며 끈질기게 혜화 곁을 맴돈다. 한수가 내놓은 입양통지서에 흔들리기 시작하는 혜화. 그런 그녀에게 아이를 유괴해서 데리고 온 한수. 출산 당시 입양합의서를 썼으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것이 사실이었고, 이 사실을 알았지만 한수는 ‘혜화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조카를 아이처럼 가장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유괴해온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려 준 다음 혜화의 행동이었다. 혜화는 한수가 져야 할 유괴에 관한 법적 처벌을 본인이 감당하기로 마음먹고 한수를 집밖으로 내쫓는다. 혜화는 경찰과 함께 도착한 한수의 엄마와 누나에게 실상을 전해 듣는다.

다시, 한수와 재회했던 유기견을 찾던 폐가의 마당. 혜화는 여느 때처럼 유기견을 구한다. 이번에는 새끼들까지 데리고 간다. ‘아이’라는 핑계를 상실해 혜화를 붙잡을 도리가 없어진 한수를 뒤로한 채 차를 몰던 혜화는 백미러로 한수를 본다. 그리고 이내 후진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아픔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도 알며, 너무나 착하기까지 한 혜화는 그렇게 또 한 번 한수를 구한다. 막장드라마 못지않은 설정들을 가진 혜화의 삶. 이런 혜화의 삶을 통해, 한수를 통해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무엇을’은 과연 무엇일까.

감독의 말을 빌리면 ‘여리여리하고 약해보이지만 강하고 씩씩한 여자, 혜화’를 그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리여리하지만 강하고 씩씩한 여자, 혜화’라는 캐릭터 속에 들어 있는 메시지는 ‘약하지만 강인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자에 대한 판타지’, 다른 말로 ‘모성애적 강인함과 희생에 대한 판타지’로 보인다. 감독은 한수가 계속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나 캐나다에 가자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든 혜화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한수의 노력이고, 마지막에 혜화가 후진하는 것은 ‘아이’라는 매개 없이 둘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어머니가 아니고서야 한수가 가지고 있는 저런 극도의 찌질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가 어디 있을까. 영화에서 혜화는 한수 엄마가 해야 할 몫을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다. 남편 될 남자는 도망가 버리고 애는 태어나자마자 죽고, 돈은 없는데 유기견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열 마리 씩 데리고 사는 혜화에게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찌질함을 ‘아픔, 건강하지 못함’이라고 포장한 남자를 다시 만나게 하는 건가. 차가 후진해서 혜화와 한수가 다시 만나서 새로 무엇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혜화,동>의 ‘선택과 결단’, 위험 혹은 판타지


혜화가 처한 비정규직 중졸 여성이라는 사회적 상황. 내겐 이것이 훨씬 더 절박한 문제로 보인다. 감독은 어떠한 사회적 상황에 처해있는 ‘혜화’보다는 한수의 입장에서 한수가 보고 싶은 ‘혜화’를 선택한 것 같다. 세상이 주는 아픔을 알고 있음에도 밝으려 애쓰며 누구보다 강한 여자 혜화. 이러한 선택이 나쁘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약하지만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자’라는 판타지가 위험한 것은 그러한 판타지가 혜화가 처한 상황을 개인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어찌할 수 없는 비련의 운명인양 보이게 한다는 점에 있다. 2011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20대 중졸 비정규직 여성을 다루는 영화에서 그녀가 처한 사회적 상황들은 한수의 집착적 사랑과 그것을 받아주는 혜화의 모성적 사랑 속에 모두 녹아 사라져버린다. 중졸 비정규직 여성이라는 혜화의 사회적 계급과 미혼모가 될 뻔 한 상황은 혜화의 ‘착하고 강한여자 혜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는 감독 본인이 언급한 바 있듯이 TV막장 드라마에서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

 

 

소재가 막장만 아니었다면


막장드라마가 가진 클리셰를 거의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2시간 채 못 되는 러닝타임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그랬는지, 수수께끼들의 실타래들이 풀리는 순간은 정말 흥미롭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고 흡입력이 있었다. 또한 개장수와 혜화가 같은 개를 두고 찾아다니는 장면 같은 몇몇 씬들에서는 범죄나 스릴러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주었다. GV에서 감독은 ‘다음번엔 강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혜화,동>에서 갈고 닦은 사건전개방식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범죄 추리 스릴러 영화를 만드셨으면 좋겠다.


글 / 권은혜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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