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수유너머N 최고의 미녀 강사 유정아와 박수진이 뜬다! 수유너머N의 숨겨진 보석으로 늘 쉬크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던 그녀들이 드디어 강좌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로 그 지성과 매력을 드러낸다. 수유너머에서 쉽게 접해보지 못한 예술과 미학에 대한 강의라 더욱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강사인 유정아, 박수진 선생님을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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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박수진 선생님 / 아래 : 유정아 선생님

 

Q. 선생님들께서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유. 제가 석사 첫 학기에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해서 발표한 적이 있었어요. ‘세상이 참 살기 힘든거구나.’ 그 때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죠.^^;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깨졌거든요. 완전히 소심해져서는 다시는 이런 주제 따위 누가 뒷돈 대준데도 공부하지 않으리라, 아니, 아예 여기서 공부를 포기해버릴까 수없이 고민했죠. 그런데 몇 년 후, 정신을 차려보니 박사논문 주제를 고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인생이란...C'est la vie...


 

암튼 그 때 미국의 대공황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했었는데,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믿는 사진들 이면에는 수많은 왜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이건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또 막상 파고 들어가면 쉽지 않은 얘기거든요. 그 때는 그 주제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건 예술의 근본적인 문제인 리얼리즘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구요.


 

시대를 통틀어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현실을 진실하게 보여주는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했겠죠. 우리가 볼 때는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표현주의나 입체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현실적인 것’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 거꾸로 ‘초현실 내지는 비현실’을 다루어 보려고 하는 겁니다.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초현실주의 운동’ 자체를 미술사적으로 규명한다기 보다는 이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현실과 이미지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싶어요. 너무 산만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중심점이 필요하죠.


 

박. 정신분석으로 논문을 썼는데, 그때는 초현실주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계적으로 정신분석과 초현실주의를 연관 짓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박사 졸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독립기획자로서 전시를 기획하면서 다시 만나는 초현실주의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우연과 무의식과 만나는 혁명과 사랑, 그리고 번뜩이는 예술적 아이디어와 실천력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 그리고 전시회에서 폭발하는 것 같아요.


 

 

Q. 박수진 선생님께서는 현직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1년 한국에서, 20세기 초 유럽의 꿈꾸는 집단이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을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박.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매력적이지요. 특히 21세기에 들어서서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는 모더니즘 미술 다시 보기를 하고 있지요. 현재 미술계에서 관심은 미술의 이즘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과 경향성입니다. 기존의 미술사가 형식주의 모더니스트의 관점에서 순수주의와 추상주의로 20세기 미술을 보지만 동시에 미술의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은 다다라든지 초현실주의와 같은 표현주의적 미술이었지요. 그러나 양식적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이들 표현주의 경향을 바라보고 미술사에서 평가절하되거나 배제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초현실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예술적 스타일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술 뿐 아니라 모든 관습적 견해에 대한 강한 불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초현실주의자를 사유한다는 것은 배제되었던 역사를 지금 우리 시대에 복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꿈꾸었던 욕망, 그들이 꿈을 기억하며 동시에 해석하는 방식, 그들이 무작위적인 병렬에서 생산하는 이미지들, 전통적 예술에 대한 저항, 변증법적 각성과 그 속에서 혁명적인 에너지를 읽어낸 정치적 태도들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도 여전히 요구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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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_겨울비   

 

 

Q. 강의 소개를 보니 ‘초현실주의’ ‘예술’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정치’ ‘혁명’ 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예술’ 과 정치’ 이 두 가지 사이의 관계가 이번 강의의 직접적인 화두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요.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듣고 싶습니다.

 

유. 어쩌면 결론은 이미 나와있는 것인데, 예술이 현실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하죠. 아. 쥐 포스터라면 혹시 가능할까요? ^^; 그러나 이건 예술이라기 보다는 저항운동의 한 수단일테죠. 그러나 그렇다고 예술이 현실은 나몰라라 혼자서만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쉽지 않은 얘기이니, 이제까지 수많은 논쟁이 있었겠지요. 눈 앞의 대상, 각박한 사회 현실과 노동자들을 그리면 사회참여적인 예술이고, 상상의 세계를 그리면 유미주의적인 예술이라 말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은 이제는 사라졌다고 해도, 사실 따지고 보면 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죠. 예술로부터 철학적 사유가 생겨난다는 들뢰즈의 말처럼 이 예술가들로부터 ‘정치적인 것’의 힘을 배태할 어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특히 연구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던 들뢰즈나 벤야민에게 도움을 받아보려고 합니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환상’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찍이 무너졌을거예요. 우리로 하여금 상품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모두 (거짓) 환상을 심어주잖아요. 저 아파트에 살면, 저 옷을 입으면, 저 커피를 마시면 공주가 될 것 같은. 그래서 오히려 현실 생활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 환상, 꿈의 (사회적) 이미지이죠. 이 얘기들은 20세기 중반에 전개된 팝아트에도 영향을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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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필드_정의의 여신 

 

 

Q. 부제가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 입니다. 여기에서 ‘꿈꾸고’와 ‘혁명하라’는 말은 앞서 드렸던 질문의 답변에서 어느 정도 해소 된 것 같습니다만, ‘사랑하고’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박. 정신분석의 시작을 알렸던 히스테리의 다른 이름은 ‘작은 사랑의 역사’라고 하죠. 초현실주의자들의 관심의 중심에는 초월적인 관심이 놓여있습니다. 그들은 언캐니한 것에의 매혹, 미친 사랑에 대한 숭배가 자리잡고 있지요. 그것들이 아마도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적 무기 창고를 채우고 있는 보충물 혹은 논쟁의 원천이지 않을까 합니다. 전복적 아름다움과 히스테리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을 혁명의 원천으로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Q.강의를 듣기 전에 미리 읽거나 보면 좋을 책이나 작품이 있다면요?

 

유. 일단은 편안하게 오셔도 될 것 같아요. 머, 어려운 철학 강의가 아니니까요. 아마 여러분들 책장을 둘러보면 미술에 관련된 책이 한 권쯤은 있을 겁니다. 제가 매번 놀라는 것은 미술관에 가거나 예술에 관련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거예요. 모두들 마음 속에 모두 ‘예술’에 대한 욕망들을 꿍쳐 놓고 있는거죠.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 강의 시간 만큼은 그 꿍쳐 놓은 마음들을 좀 풀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제 말보다 여러 작품과 이미지들이 많은 즐거움과 지적 자극이 되어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지가 여러분들의 눈과 몸에 가서 닿는 것만으로도 (들뢰즈적 의미의) ‘폭력적인 기호’가 되어줄꺼라고 믿어요. 저는 그 이미지들의 기호를 해독해보기 위한 약간의 팁을 제공할 뿐이죠.


 

(<다다와 초현실주의>라는 책이 한길아트에서 나왔고, 오생근 선생님의 <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이라는 책도 있어요. 또한 ‘길’ 출판사에서 나온 발터벤야민 선집 5권에 <초현실주의>라는 제목의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강좌는 오는 7월 4일 월요일을 시작으로 6주간 매주 월요일 7시 30분에 시작된다. 올 여름, 초현실주의와 미녀 선생님들로 더운 열기를 확~~ 날려버릴 사람들은 주저 말고 수유너머N 여름강좌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강좌신청 게시판)를 클릭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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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 1 1  여 름 강 좌 안 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은 매 분기별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경험을 쌓아가고자 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그리고 삶으로부터 다시 공부를 길어내는 느리지만 부지런한 여정! 배움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개강일: 2011년 7월 4일 월요일

 

∙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218-23 이스턴빌 2층 수유너머N | 전화 (070)8263-0910 | http://www.nomadist.org

 

∙ 접수계좌: 우리은행 011-9571-1509 (휴대 전화번호와 동일) 예금주 명: 오하나

 

∙ 강좌문의: 오하나(011-9571-1509), 문화(010-6210-3021)

 

∙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위의 접수계좌에 입금하신 후, <강좌 신청 및 확인> 게시판에 강좌명과 입금자명을 남겨주세요. (게시판 바로가기 클릭!)

(수강생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꼭 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세요.)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진행하는 모든 강좌의 수강료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강좌신청> 게시판의 공지를 참조해주세요.

 

 

 

 

 

01 예술 강좌| 20세기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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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4일 (월)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외부’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다시 사유해 보려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꿈과 무의식’을 생각해 보는 것은 ‘깨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20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꿈꾸었던 혁명의 예술, 초현실주의를 만나본다.

 

 

1. 상징주의, 매혹적인 상상과 허구의 세계 _유정아

보이는 현실의 재현에 몰두했던 인상주의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상징주의자들. 그들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사상과 작품세계.

 

 

2. 다다이즘, 째깍거리는 정치적 폭탄 _유정아

무정부주의적이었던 다다이스트들의 등장과 활동, 부르주아 예술을 비판하고, 정치, 철학적 전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의 재기발랄한 반미학!

 

 

3. 초현실주의 선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_유정아

비이성적인 것을 사유할 또 다른 권리, 1924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의 태동과 무의식의 탐구!

 

 

4. 초현실주의 그룹과 “섹스 토킹” _박수진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랑과 섹스, 욕망과 쾌락과 도덕, 무의식과 충동.그 거칠고 흥미진진한 논쟁!

 

 

5. 벤야민과 초현실주의, 대중문화라는 꿈나라 _유정아

발터벤야민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상품물신의 세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매혹과 비판

 

 

6. 아우라의 흔적, 초현실주의 귀환과 현대미술 _박수진

초현실주의 전시를 통해 만나는 타자성과 재현의 문제, 20세기 후반의 전시와 비교하며 새롭게 조명하는 초현실주의의 영향과 흔적.

 


 

 

02 인류학 강좌|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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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6일 (수)

 

강좌회비 : 10만원 (6강)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학적 상상력이다. 자연과 문화, 환경과 인간,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이라는 이분항의 긴장을 가로지르자.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탐색하자! 우리는 인류학의 여섯 가지 모멘트를 통과하며 교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공리주의, 그 실용주의의 철벽을 내파할 것이다. 우리 안의 낯선 외부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1. 섹슈얼리티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 _홍서연

말리노프스키는 모권제 사회인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가족관계를 통해 원시사회의 섹슈얼리티를 기술한다. 문제는 성적 억압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모권제는 어떻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열시키는가?

 

 

2. 선물 : 마르셀 모스, <증여론> _오하나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사회이다. 그리고 아직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모스는 합리적 교환 대신 선물을 택한 공동체를 분석한다. 강의를 통해 우리의 삶의 비자본주의적 요소,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3. 신체와 언어 : 앙드레 르루아-구랑, <몸짓과 언어> _홍서연

태초에 몸짓이 있었다! 몸짓은 인류학에서 의례와 테크닉의 기본단위이다. 르루아-구랑의 선사시대 고고학을 통해 기술과 언어, 인지능력과 사회성의 상관적 발달 궤적을 추적해 보자.

 

 

4. 국가 :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_문화

클라스트르는 추장제 사회 속 전사들의 잇단 전쟁과 무모한 행동에 주목한다. 폭력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국가 없는 미개 사회가 떠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전쟁이 중심적인 권력의 출현을 막는 국가 방지 메커니즘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5. 주술 : 마르셀 모스,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 _홍서연

주술(magic) 최초의 사유 형태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인간행위를 사법적 행위, 기술적 행위, 종교적 의례로 나누는 모스에게 주술은 관례 이외의 것을 산출하는 창조적 힘을 지닌 것이었다. 주술사는 어떤 사람인가? 주술은 어떤 조건에서 효력을 갖는가

 

6. 야생성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_정정훈

새로운 사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의 방식과 삶의 방식이란 단지 하나의 삶의 체제에 불과하다. 레비스트로스의 저 유명한 책, <야생의 사고>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삶의 체제를 모색한다.

 

 

 

 

 

03 철학강좌 | 히치하이커의 정치학 - 현대정치철학의 지형과 지표들을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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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8일 (금)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촛불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고취됐다. 하지만 이 관심이 복지국가론으로 축소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국가의 운영방식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법. 이 강좌를 통해 우리는 현대정치철학의 이론적 공간을 탐사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자 한자. 국가권력의 지반을 넘어서는 철학자들의 기발한 해방의 사유에 탑승하기.

 

1. 한나 아렌트 : 오이코스와 폴리스 _이진경

폴리스로부터 오이코스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빈민을 몰아내려는 정치적 사유에 히치하이킹! 오이코스를 통해,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통해 폴리스를 전복하는 정치를 사유한다.

 

 

2. 자크 랑시에르 : 평등의 정치학 _이진경

치안과 정치의 대비 속에서 자격 없는 자의 정치학을 제안하고,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만드는 감성의 정치. 랑시에르의 사유에 히치하이킹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평등성의 정치학까지 밀고 가본다.

 

 

3. 미하일 바흐친 — 유혈 낭자한, 도래할 사건으로서의 혁명 _최진석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 눈에 ‘성숙한 민주주의’는 폭력을 독점 행사하는 자들의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미하일 바흐친을 통해 혁명과 정치, 폭력의 난맥상을 돌파한다. 혁명은 정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4. 자크 데리다 — (불)가능성의 윤리와 정치 _최진석

정치의 윤리, 혹은 윤리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정치의 잠재성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데서 비롯된다. 데리다의 <법의 힘>을 통해 불가능에 도달하는 행위, 그 속에서 실현되는 정치를 발견한다.

 

 

5. 에티엔 발리바르 : 이데올로기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_정정훈

스마트폰과 SNS로 표상되는 첨단의 세계 한 복판에서 오히려 배제된 자들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종, 종교의 이름으로 무의미한 폭력을 휘두르고... 우리는 정치의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의 복원을 고민하는 발리바르의 정치 철학을 따라간다.

 

 

6. 질 들뢰즈 : "소수정치, 또는 정치의 소수화" _변성찬

들뢰즈의 ‘소수성’ 개념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정치학’을 재구성해보는 것, 이것이 이번 강의의 목표다. 들뢰즈가 구분한 ‘고전적 정치영화’과 ‘현대적 정치영화’의 차이를 중심으로, 그 함의를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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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2가 출시된 11일, 뉴욕 피프스 애비뉴 애플스토어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두 시간 넘게 줄을 서야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파는 계속 몰려들었다. 애플에 따르면 일부 매장에서는 아이패드2를 사기 위해 늘어선 줄이 지난해 아이패드 출시 때보다 두 배 이상 길었다고 한다. 이날 아이패드2를 가장 먼저 구입한 사람은 러시아에서 온 정보기술(IT) 전문가였는데, 그의 행운이 단지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 사실 그는 전날 낮부터 비를 맞아가며 28시간 동안 줄을 선 결과였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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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을 선두로 하는 디지털 아이템들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고 있다. 그 작고 앙증맞은 기기들은 가볍고 편리한데다가 또 어찌나 섹시한지! 콤팩트한 디자인, 쉽게 흠집이 나지 않는 강철 유리 커버에, 매끄럽고 광택이 흐르는 피부의 감촉은 부드럽게 손안에 감겨오기에 충분하다. 아! 만지고 싶어, 소유하고 싶어! 널 내 품에 넣고야 말겠어! 한 달 치 월급을 쏟아부어 마침내 손에 쥔 그 소중한 것을 지하철 무릎 위에 살포시 올려놓고, 마치 보들레르의 ‘여행으로의 초대’에 응답하듯, 온통 보랏빛과 금빛의 세상, 사치와 고요, 관능뿐인 세계로, 그 환상적인 판타스마고리아로 넋을 잃은 채 빨려들어간다.

 

차가운 금속성이 뿜어내는,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막 건져올린듯한 기계 생산물의 아름다움에 이토록 매혹당한건 우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신즉물주의’라고 불리었던 1920년대 독일의 사진가들은 이 기계의 외관에서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발견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1차 대전이 끝난 1919년부터 히틀러에게 권력을 내주게 된 1933년까지의 시기, 즉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이었다. 독일의 산업화는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나 프랑스와 같은 다른 서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하여 상당히 늦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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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지가 충만했던 온건 좌익의 사회민주당은, 여러 새롭고 긍정적인 정치제도들을 도입해 신생국 독일의 좌표를 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치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시급한 경제문제의 해결이었다. 1,320억 마르크의 천문학적인 배상금은 패전국 독일이 아니라 승전국이었어도 갚지 못할 금액이다. 공화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찍어’ 해결하는 최악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에 따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인플레에의 늪에서 허덕이는 공화국을 건져주었던 구세주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독일에게 돈을 빌려줌으로써 경제가 살아나도록 도와주면, 독일은 그 돈으로 공장을 돌리고 산업을 일으켜서 영국과 프랑스에 배상금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미국은 유럽 경제를 살려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했고, 유럽 경제가 살려면 독일이 살아나야 했으니, 모두들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1923년 미국의 경제적 원조로 독일은 ‘통화 안정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동시에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강한 입김이 독일에 영향을 주었다. 이런 경향은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 낙관주의(Technikoptimisumus)’로 발전했다.

 

특히 미국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의 자서전을 통해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열광적 반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전쟁을 겪은 독일인들은 처음에는 기술, 과학, 산업 등에 적개심을 지니고 있었으나, 포드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과학낙관주의’로 지난날 지녔던 과학부정론이 눈 녹듯 사라졌을 뿐 아니라, 본격적인 과학숭배로 발전했다. 사진기는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환상 속에서 도시주의와 기술적 유토피아니즘’을 탄생시키는 주요 매체였다. 이 사진들에는 그 때까지 기술을 대하는 적대적인 태도, 공포의 그림자가 이젠 거의 행복감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즉물주의를 대표하는 사진가 랭거 파치(Albert Renger-Patzsch, 1897-1966)는 이 작품들을 담은 사진집 『세상은 아름다워 (Die Welt ist schön)』(1928)를 출간했다. 그의 사진들은 기술적 풍경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일부분을 극단적으로 자르거나, 날카로운 초점으로 형태를 묘사하고, 혹은 다양한 부감법을 사용하거나, 명암을 극대화시킨 드라마틱한 구성 등을 지닌 독특한 기법을 통해 산업화되어가는 근대 세계를 ‘객관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치는 각 소재의 독창적 형태에 관심을 쏟으면서, 자연은 물론 산업에서도 그런 미학을 추구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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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기계의 낭만적 풍경화’라고 불린 이 사진들은, 공장과 나란히 배치되어 자연스러운 풍경화처럼 생명성을 부여받았다. 공장에서 생산된 기계의 외관이 또 하나의 자연처럼 아름다움을 발산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 매끄러운 감촉에 이끌렸다.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인 산업 발전과 테크놀로지는 이 사진들에서 다시 재현되면서 아름다운 테크놀로지의 풍경화로 자리매김 되었다.


유기적 자연의 옛 정물화, 풍경화의 자리에 이제 테크놀로지에 의해 매일 얼굴을 바꾸는 두 번째 자연, 새로운 자연의 풍경화와 정물화가 자리잡았다. 산업과 테크놀로지가 이루는 새로운 자연 풍경이 생산수단의 차원에서 실제적인 진보를 보여주며 위용을 자랑하고, 대중들은 여기에 도취되고 매혹당했다. ‘진보’라는 믿음이 대중들 사이에 확산되는 현상이 이 신즉물주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날개를 타고 파급되었던 것도 충분히 상상할만하다.

 

그러나 역사가 전진할 때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산업의 진보가 출발점으로 간주된다면 자연에서의 발전을 역사의 발전으로 오해하는 신화적 오류가 발생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이 허구적 진보 개념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어떤 노동자의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기술이 일구어낸 낭만적인 도시풍경의 등장! 벤야민이 랭거 파치의 사진들을 분석하면서 ‘비참한 상태를 소비의 대상으로 만드는 유행적 사진술의 방법’에 관한 지적은 잘 알려져 있다. 신즉물주의에 담겨있던 정치적 의미는 많은 경우 혁명적 반영들을 전환시킴으로써, 소비수단으로 전락되었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산업과 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풍경은 생산수단의 차원에서 실제적인 진보를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과 역사의 혼동은 오류를 낳는다. 산업의 진보가 출발점으로 간주된다면 자연에서의 발전을 역사의 발전으로 오해하는 신화적 오류가 발생한다. 생시몽주의자들이 ‘진보가 가까운 미래의 전망이라는 동화 속에서 모든 사회적 대립이 사라진다’라고 외쳐도 생산관계의 차원에서 계급착취는 변하지 않는다.


벤야민의 후기 논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주장에 따르면, 독일 노동계급은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역사의 진보를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잘못된 정치적 목표를 설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이 기술적 유토피아 속에서 모두가 행복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인류의 행복한 지상낙원이 실현될 수 있을까? 독일 노동계급의 오류는 여기에 있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방향과 자기 계급이 움직이는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던 오류와 착각!

 

이런 생각은 공장노동 자체가 정치적 성과라는 환상으로 이어졌다. 공장 노동은 기술적 진보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노동자의 것이 아닌 (공장의) 생산물이 노동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간과되었다. 이들은 자연에 대한 통제력이 진보했음을 인정할 뿐 사회가 퇴행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사회적 퇴행이 2011년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또한 마치 기술의 발전이, 우리 자신의 계급이 움직이는 방향과 일치한다는 과대망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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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blog.naver.com/prologue님의 블로그 ‘강남역’ 모습

 

 

‘대도시가 발하는 근대성의 광채가 진보의 물질적 증거를 눈앞에 들이대고 있었는데, 이런 환등상의 정체를 어떻게 간파할 수 있었을까? 공적 담론에 침투한 진보의 신화적 비유가 대중의식의 신비화임을 어떻게 폭로할 수 있었을까? 반증을 기록한 사료를 뒤지면서 벤야민은 모든 학문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보의 의미론을 거스르는 저항 이미지(counter-image)를 발견하려 했다.’ (수잔벅모스, <아케이드 프로젝트>) 불행히도 나는 아직 저항 이미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판타스마고리아에 도취되어 달콤하고 매혹적인 꿈의 세계를 허우적 댈 뿐, 아직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일까?



글 / 유정아(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이 글은 웹진 <Weekly 수유너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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