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강좌(7/6-8/10)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강사 인터뷰!

 

 

 

"상상력 없이 우린 변화할 수 없어요!"  

-홍서연 강사와의 인터뷰-

 

 


 

홍서연 소개 - 수유너머N 연구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인류학을 공부했음.  

 

 

 

질문 : 안녕하세요^^ 저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왜 이 공부에 끌리는지 잘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인류학은 확실히 인문학 독자들에게도 조금 낯설기도 하구요.

인류학에 대한 전반적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왜 인류학을 공부해야하는지도 알려주세요!

 

 

   malinowski_wideweb__430x250.jpg    클라스트르_과야키 인디언.jpg

 

 

 

홍서연 : 확실히 인류학은 우리나라에서 철학이나 다른 분야보다 훨씬 안 읽히죠! 인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레비-스트로스나 모스의 이름이 낯설지 않겠지만 그들의 책을 꼼꼼히 읽어본 독자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고요. 외국 인류학자들이 낸 이론서와 수많은 민족지 작업들은 별로 번역되어 있지 않고, 과거에 번역된 것들도 절판되어 잊힌 상태예요. 국내 인류학자들의 작업은 소수의 전공자들만 읽고요.                        

 

인류학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실증적인 학문이라는 점이에요. 인류학자들은 '현지조사'라는 방법으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기록하고 연구합니다.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사람들의 행위와 말, 의례, 생산기술 또는 생활기술, 문물, 친족관계,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드러나는 한 사회의 지식, 정치, 상징적인 것들, 사회관계와 사회조직, 제도, 그리고 또… 한 사회의 특이성, 사람들이 한 마디로 '문화'라고 지칭하는 것이죠.

다양한 것들의 세세한 면모를 읽는 데서 아무런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겠죠.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건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질문 :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것이 인문학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부족 때문이라...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홍서연 : 스스로 사유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기보다, 보증된 이론 또는 이론가에게 기대기 위해 공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학문은 보증을 해 주는 안전장치가 아니거든요. 특히 인문학은요. 가령 철학은 언제나, 익숙한 방식으로 굳어져버린 믿음들을 전복하여 이미 있었던 개념들을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어요. 우리가 푸코, 들뢰즈, 랑시에르에게 열광한다면 그것 또한 그들에게 안주하기 위해서는 아니거든요. 그들의 권위에 의존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이율배반적이고요.

다시 인류학으로 돌아와서, 인류학은 현장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현실의 무한한 개별성으로부터 시작하는 셈이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언어로써 다루기 힘든 부분, 개념과 언어의 틀 밖으로 세어나가 버리는 부분, 거기 뿌리박고서 하는 작업입니다. 흔히 감각을 통한 사유는 편견에 지배되기가 쉬운데, 인류학의 사유는 오히려 자문화중심주의적인 편견을 깨뜨리는 사유입니다. 거기에 긴장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개별성 속에서 어떻게 편견에 치우치지 않을 것이며, 개념화 작업 속에 어떻게 특수성을 담을 것인가?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과 접촉해서 낯설고 불편한 생활양식 속으로 들어가서, 종종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과 함께 얽히면서 강도 높은 감정적 투입 속에 자기 몸을 던져 넣어야 하지요. 인류학자들의 민족지 작업들은 그걸 견뎌낸 다음에만 탄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은 그 익숙함 때문에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착각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죠. 우리가 경험과 교육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은 현실의 아주 작은 조각들일 뿐이에요. 인류학은 우리가 '모른다'는 걸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알 때에만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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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                           말리노프스키                             클라스트르        

 

질문 : 강좌 제목은 그런 인류학의 성격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왜 "근대의 외부들"이고 왜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인가요?

 

 

 

홍서연 : 필연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물질적 조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면 거기서 필요한 건 상상력이에요. 상상력은 우리가 지각하는 하나의 사물, 하나의 사건, 하나의 현상을 통해 무한한 확장을 이루는 능력이에요. 경계들을 넘어서 체감하는 능력이고, 한계들을 넘어서 인식하는 능력이죠.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변화를 가져옵니다. 다시 말해 상상력 없이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어요. 강좌 기간 동안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얘기를 하고 사유를 할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언가 변화된 상태로 나아갈 거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세계를 발명할 겁니다.

이번에 다룰 여섯 권의 책은 모두 '원시사회'라고 불리는, 근대사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 물론 인류학이 언제나 그런 사회를 연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건 우리에게 가장 이질적인 문화를 통해 우리 자신을 사유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책들에서 우리는 이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몹시 친숙한 것들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근대 이후의 사회는 '근대적인 것'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한 착각인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결국은 나 자신에게서 나의 외부라고 생각했던 것, 다시 말해 타자를 발견할 거예요. 우리 사회 안에서 우리 사회의 바깥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될 거고요. 좀 전에도 '솔직함'을 말했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기만에 맞설 수가 없어요.

 

 

 

질문 : 강의 주제로 되어 있는 책들의 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Leroi-Gourhan.jpg   .레비스트로스.jpg

             르루아-구랑                              레비-스트로스

 

 

 

홍서연 :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Malinowski, 1884-1942)는 영국 사회인류학의 창시자이고 현지조사 방법론을 정립한 사람이에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증여론>의 모스(Marcel Mauss, 1872-1950)는 증여관계뿐만 아니라 주술, 의례, 기술(테크닉)에 대해 중요한 작업들을 남겼죠.

르루아-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은 선사시대 도구와 종교를 연구한 프랑스의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에요. <인간과 물질>, <환경과 기술> 등의 책을 통해서 인지와 생태학에 대한 이후의 사유들에 대해 큰 영향을 끼쳤는데, 국내에는 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아요.

프랑스의 정치인류학자인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1934–1977)는 남아메리카 부족사회들에 대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상당히 이론적인 논의를 전개하는데,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와 <폭력의 고고학> 두 논문집이 번역되어 있어요. (과야키족에 대한 민족지가 번역되지 않은 건 좀 아쉬워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의 책은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강의 주제인 <야생의 사고>는 그 중에서도 가장 구조주의적인 냄새가 옅은 책이지요.

 

 

 

질문 : 강의 프로그램으로 선택한 책들의 선정 이유를 알려주세요^^

 

 

 

홍서연 : 사유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들을 선택했습니다. 첫 강의에서는 말리노프스키와 함께 영국 사회인류학을 소개하면서 인류학이 흘러온 역사를 짚어볼 겁니다. 사회인류학은 인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했거든요.

 

또한 경계를 넘나들기에 좋은 저자들을 선택했습니다. 인류학적 사유 자체가 경계를 넘어 체감하는 사유이지만, 선택한 책들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말리노프스키의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가지고 실험을 합니다. 모스의 <증여론>은 데리다, 부르디외 등에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고요. (길게 말하면 잔소리일 터!) 르루아-구랑의 <몸짓과 언어>는 아마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결점을 보여주기도 하고, 책의 주제 자체가 경계를 넘어 흘러요. 최근에 프랑스에서는 미학에서도 참조되고 있고요.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국가, 권력, 사회에 대한 철학적 문제제기들의 연장선상 안에서 읽힐 수 있죠. 들뢰즈, 가따리의 <천 개의 고원> 12장은 클라스트르의 '전쟁기계'에 대한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모스의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논문인데, 주술(magic)에 대한 민족지 자료들을 가지고 이론적 작업을 합니다.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 The Witches>를 읽어보셨어요? 마녀는 눈동자 색이 수시로 바뀌고, 발가락이 없고, 침이 파란색이고… ^^ 이 논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열거가 등장해요. (어쩜 로알드 달은 이 논문을 읽고 영감을 얻었는지도?) 하지만 로알드 달이 아이들로 하여금 마녀에게 잡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녀의 특징들을 열거한다면(^^), 모스는 인간이 사유하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주술사의 특징들을 정리하죠.

 

마지막으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지식'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유할 때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한 것처럼 역사성을 고려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 시대, 지역, 사회의 특수성과 구체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분야와 관계 없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에요.

 

저자들은 공부한 여정에서도 경계를 넘어 흘러다녔어요. 레비-스트로스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클라스트르도 인류학을 하기 전에 철학을 했죠. 모스는 사회학자이기도 했고, 르루아-구랑은 고고학자였고, 말리노프스키는 인류학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한 다음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어요.

  

 

질문 : 강좌를 듣기 전에 미리 준비할 것이 있나요?

 

 

홍서연 : 책을 읽고 오면 가장 좋겠지요(번역본이 있는 경우). 하지만 시간에 쫓긴다면 꼭 읽고 오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감각에 곧바로 와 닿는 이야기들을 들려드릴 거예요. 그러니 잘 뚫린 귀를 가지고 오세요. 그리고 들은 것들을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결합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주세요. 강좌가 끝날 때쯤엔 더 접속률이 좋아진 뇌신경과 더 좋아진 시력과 더 예민해진 내 몸의 안테나를 확인하는 것이 이 강좌의 목적이에요.

 

 

 

     감사합니다. 7월 6일 첫 강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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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 1 1  여 름 강 좌 안 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은 매 분기별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경험을 쌓아가고자 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그리고 삶으로부터 다시 공부를 길어내는 느리지만 부지런한 여정! 배움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개강일: 2011년 7월 4일 월요일

 

∙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218-23 이스턴빌 2층 수유너머N | 전화 (070)8263-0910 | http://www.nomadist.org

 

∙ 접수계좌: 우리은행 011-9571-1509 (휴대 전화번호와 동일) 예금주 명: 오하나

 

∙ 강좌문의: 오하나(011-9571-1509), 문화(010-6210-3021)

 

∙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위의 접수계좌에 입금하신 후, <강좌 신청 및 확인> 게시판에 강좌명과 입금자명을 남겨주세요. (게시판 바로가기 클릭!)

(수강생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꼭 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세요.)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진행하는 모든 강좌의 수강료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강좌신청> 게시판의 공지를 참조해주세요.

 

 

 

 

 

01 예술 강좌| 20세기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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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4일 (월)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외부’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다시 사유해 보려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꿈과 무의식’을 생각해 보는 것은 ‘깨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20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꿈꾸었던 혁명의 예술, 초현실주의를 만나본다.

 

 

1. 상징주의, 매혹적인 상상과 허구의 세계 _유정아

보이는 현실의 재현에 몰두했던 인상주의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상징주의자들. 그들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사상과 작품세계.

 

 

2. 다다이즘, 째깍거리는 정치적 폭탄 _유정아

무정부주의적이었던 다다이스트들의 등장과 활동, 부르주아 예술을 비판하고, 정치, 철학적 전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의 재기발랄한 반미학!

 

 

3. 초현실주의 선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_유정아

비이성적인 것을 사유할 또 다른 권리, 1924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의 태동과 무의식의 탐구!

 

 

4. 초현실주의 그룹과 “섹스 토킹” _박수진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랑과 섹스, 욕망과 쾌락과 도덕, 무의식과 충동.그 거칠고 흥미진진한 논쟁!

 

 

5. 벤야민과 초현실주의, 대중문화라는 꿈나라 _유정아

발터벤야민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상품물신의 세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매혹과 비판

 

 

6. 아우라의 흔적, 초현실주의 귀환과 현대미술 _박수진

초현실주의 전시를 통해 만나는 타자성과 재현의 문제, 20세기 후반의 전시와 비교하며 새롭게 조명하는 초현실주의의 영향과 흔적.

 


 

 

02 인류학 강좌|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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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6일 (수)

 

강좌회비 : 10만원 (6강)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학적 상상력이다. 자연과 문화, 환경과 인간,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이라는 이분항의 긴장을 가로지르자.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탐색하자! 우리는 인류학의 여섯 가지 모멘트를 통과하며 교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공리주의, 그 실용주의의 철벽을 내파할 것이다. 우리 안의 낯선 외부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1. 섹슈얼리티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 _홍서연

말리노프스키는 모권제 사회인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가족관계를 통해 원시사회의 섹슈얼리티를 기술한다. 문제는 성적 억압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모권제는 어떻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열시키는가?

 

 

2. 선물 : 마르셀 모스, <증여론> _오하나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사회이다. 그리고 아직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모스는 합리적 교환 대신 선물을 택한 공동체를 분석한다. 강의를 통해 우리의 삶의 비자본주의적 요소,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3. 신체와 언어 : 앙드레 르루아-구랑, <몸짓과 언어> _홍서연

태초에 몸짓이 있었다! 몸짓은 인류학에서 의례와 테크닉의 기본단위이다. 르루아-구랑의 선사시대 고고학을 통해 기술과 언어, 인지능력과 사회성의 상관적 발달 궤적을 추적해 보자.

 

 

4. 국가 :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_문화

클라스트르는 추장제 사회 속 전사들의 잇단 전쟁과 무모한 행동에 주목한다. 폭력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국가 없는 미개 사회가 떠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전쟁이 중심적인 권력의 출현을 막는 국가 방지 메커니즘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5. 주술 : 마르셀 모스,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 _홍서연

주술(magic) 최초의 사유 형태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인간행위를 사법적 행위, 기술적 행위, 종교적 의례로 나누는 모스에게 주술은 관례 이외의 것을 산출하는 창조적 힘을 지닌 것이었다. 주술사는 어떤 사람인가? 주술은 어떤 조건에서 효력을 갖는가

 

6. 야생성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_정정훈

새로운 사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의 방식과 삶의 방식이란 단지 하나의 삶의 체제에 불과하다. 레비스트로스의 저 유명한 책, <야생의 사고>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삶의 체제를 모색한다.

 

 

 

 

 

03 철학강좌 | 히치하이커의 정치학 - 현대정치철학의 지형과 지표들을 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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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8일 (금)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촛불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고취됐다. 하지만 이 관심이 복지국가론으로 축소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국가의 운영방식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법. 이 강좌를 통해 우리는 현대정치철학의 이론적 공간을 탐사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자 한자. 국가권력의 지반을 넘어서는 철학자들의 기발한 해방의 사유에 탑승하기.

 

1. 한나 아렌트 : 오이코스와 폴리스 _이진경

폴리스로부터 오이코스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빈민을 몰아내려는 정치적 사유에 히치하이킹! 오이코스를 통해,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통해 폴리스를 전복하는 정치를 사유한다.

 

 

2. 자크 랑시에르 : 평등의 정치학 _이진경

치안과 정치의 대비 속에서 자격 없는 자의 정치학을 제안하고,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만드는 감성의 정치. 랑시에르의 사유에 히치하이킹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평등성의 정치학까지 밀고 가본다.

 

 

3. 미하일 바흐친 — 유혈 낭자한, 도래할 사건으로서의 혁명 _최진석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 눈에 ‘성숙한 민주주의’는 폭력을 독점 행사하는 자들의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미하일 바흐친을 통해 혁명과 정치, 폭력의 난맥상을 돌파한다. 혁명은 정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4. 자크 데리다 — (불)가능성의 윤리와 정치 _최진석

정치의 윤리, 혹은 윤리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정치의 잠재성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데서 비롯된다. 데리다의 <법의 힘>을 통해 불가능에 도달하는 행위, 그 속에서 실현되는 정치를 발견한다.

 

 

5. 에티엔 발리바르 : 이데올로기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_정정훈

스마트폰과 SNS로 표상되는 첨단의 세계 한 복판에서 오히려 배제된 자들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종, 종교의 이름으로 무의미한 폭력을 휘두르고... 우리는 정치의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의 복원을 고민하는 발리바르의 정치 철학을 따라간다.

 

 

6. 질 들뢰즈 : "소수정치, 또는 정치의 소수화" _변성찬

들뢰즈의 ‘소수성’ 개념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정치학’을 재구성해보는 것, 이것이 이번 강의의 목표다. 들뢰즈가 구분한 ‘고전적 정치영화’과 ‘현대적 정치영화’의 차이를 중심으로, 그 함의를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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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처럼 좋은 철학이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삶을 긍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일 것이다. 삶이 ‘편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편한 삶, 좀 더 잘 벌고 좀 더 잘 쓰는 삶으로 대체되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강해지고,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은 절실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집, 많은 돈이 그것을 가려간다. 이제라도 다시 눈을 돌려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황금빛 장막을 걷어치우고, 거기 가려진 삶을,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야 한다. 철학을, 좋은 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이 ‘큰 배움’의 장이 아니라 직업학교가 되고, 돈의 장막을 몸에 덮어씌우게 된 지금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강의는 ‘큰 배움’을 꿈꾸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되었다. 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근대적 삶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사유할 수 있는 촉발을 제공하고자 한다. 어떤 철학적 사유의 결론을 배우긴 쉽지만, 그런 사유의 방법을 배우는 건,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연속강의를 통해 함께 사유하는 철학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토요일] 강의: 노마디즘 1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예언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그게 사실일 것임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들뢰즈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잠시 시작되는 듯하다 중단되고 만 것은 무엇보다 그의 책이 갖는 난해함 탓일 겁니다. 사유의 깊이를 잴 수 없게 하는 난해함. 이번 강의는 들뢰즈 사상의 개요에서 시작하여 <노마디즘 1>을 함께 읽으며 그의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면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유목민의 전차를 모는 사유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개강: 5월 7일




 

[일요일] 세미나: 인디언의 사상

“유목민은 역사를 쓰지 않는다.”(들뢰즈/가타리) 또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과 사상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화나 제의 등이 그것이었다. 백인들과의 적대적 만남, 혹은 인류학자들과의 우호적 만남을 통해 그것들은 부분적이나마 문자로 기록되었다. 인디언은 이런 유목적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이번 세미나는 인디언 추장의 말이나 인류학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사유와 만나고자 하며, 그것을 통해 근대와 다른 종류의 삶에 접근하고자 한다.


개강: 5월 8일



이 강좌는 크게 2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이진경이 주도하는 강의는 길을 가기위한 지도를 제공합니다. 또 하나는 세미나인데, 이는 스스로 지도를 읽고 찾아가는 훈련의 장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강의와 세미나를 모두 참여하셔야 합니다.  (문의: 유심 ㅇ11-9571-15ㅇ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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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4-25. 수유너머N 국제워크샵 <대중의 주체화와 문화정치학>은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과 사카이 다케시 선생님을 비롯해서 오사카 대학에서 공부하는 분들과 함께 한 자리였습니다. 특히 25일의 프로그램에서는 수유너머N과 오사카 분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활동을 벌이면서 같은 것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흘려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말들이어서, 그날의 토론을 매우 거칠게나마 옮겨봅니다. 오후와 저녁 내내 통역을 담당한 하지메상과 오하나양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 중 제 기록에서 틀린 부분과 빠진 부분들에 대해 더 정확하고 자세한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 분의 보충을 기다립니다.

기록 / 홍서연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 indooa at gmail.com / twitter@seedv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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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의 저서 <전장의 기억>과 <폭력의 예감>에 대한 논평에 앞서

 

도미야마 : 올바르지 못한 설명을 하는 사람들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회의하면서 올바름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다. '올바른 설명'이 오키나와에 계속 따라붙었다. 오키나와를 말할 때 올바르게 논의하는 것과는 다른 대상 접근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휘말려들일 수 있는 힘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올바른 설명이 올바른 연대로 이어진다는 말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 말은 내게, '나는 그런 연대에 휘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말처럼 보였다. 연대, 지원을 말하면서 휘말려들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서, 감히 휘말려들 수 있게 하는 말이 있는 곳에 운동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특히 폭력에 대한 분석에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신체성의 증거들이 있다. 나는 휘말림을 축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러한 휘말림을 확보하고 싶다. 휘말리지 않았으나 꼭 휘말릴 것 같은 사유들이 있다. 이러한 사유는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사유다. 이것이 바로 "예감"이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남의 일이 아닌 것에 대한 것이다.

타자와 내가 포개지는 신체감각으로서의 예감을 사유하고 싶었다.

휘말려들인다는 것은 곁에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 혼재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정치가 있다.

이러한 신체성 속에 가능성이 숨겨져 있고, 현행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초점과 확장주의(expansionism)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대상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을 휘말려들게 하는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 정치는 혹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다초점 확장주의'는 독일에서 있었던 사회주의 환자 동맹[사회주의독일학생동맹(SDS)의 ‘하이델베르크 환자 공동체’(SPK). 68이후 나타난 소수자 운동을 말씀하시는 듯]이 가지고 있었던 입장이다. 확장주의란 연구에서 복수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올바름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상황적이고 복수적인 복수성으로 향한다. '분야'와 관계해서 복수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서 단서를 확보하는 행위 속에서 나오는 복수성을 말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연구를 생각하고 싶다.

그런 행위의 방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과연 강령 같은 것과 무관하게 그러한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속에 오키나와를 위치짓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재구성하려고 생각 중이다. 그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정행복, 최진석의 토론문을 읽은 후 도미야마 선생님의 토론

 

도미야마 : … "전장의 기억은 정치다!"라고 표현한 정행복의 말은 매우 적절하다.

… 방어태세를 설명하는 것과 연관된다.

폭력의 예감. 무장해제를 안정화시키는 얘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행복의 요청(일상을 지배하는 무신경한 내셔널리즘에 전율을 일으키는 '발견되어야 할 폭력의 예감'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이야기를 들려달라는)에 대해 응답하겠다. 오키나와에서의 정신의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기존의 논의들과는 다른 논의를 원했다. 전쟁을 둘러싼 트라우마들을, 질병의 이름(병명)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행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가능성들을 찾는 것, 이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69-70년대에 오키나와에서 활동했던 집단들을 볼 때, 70년대에 오면서 정신의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왔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 병, 거기에 있는 권력을 어떻게 비판하는가가 그 집단들의 문제의식이었다. …

오키나와의 경제는 식민지 경제 속에서가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 속에서 붕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standing policy, 개발, 부흥 등이 오키나와에서는 20년대부터 있었는데, 그러면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유랑하게 되었다.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방식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떤 점으로 오키나와를 연관시켜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큰 문제이다. 외부로 나간 사람들을 포함시켜 생각하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 제도,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진석이 논평의 말미에서 말한 것처럼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으로 가면 안 되지 않을까? 그것을 비판하고 싶다. 주디스 버틀러의 멜랑콜리를 둘러싼 논의가 있다. [Judith Butler, The Psychic Life of Power: Theories of Subjection. University Press of Stanford, 1997.] 상처를 계속 끌어안고 가는 것, 그 지점에 멜랑콜리가 있다. 정신분석이 갖는 한계가 거기에 있다. 개인이 설정되어 있고, 개인과 개인이 맺어져 연대가 된다고 전제되어 있다. 여기서 다시, 오키나와의 정신의료가 문제된다. 펠릭스 가타리가 제기한, 언표행위의 집단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객석 질문과 토론

 

유선 : 올바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올바르지 못한 것을 물리치고 자신의 올바르지 못한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적어 놓지 않은 탓에 기억에 의존하여 매우 거칠게 재구성했다. 죄송 ;ㅁ;]

 

도미야마 : 내가 말한 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바른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휘말려들어가는 것이 문제된다.

최진석이 말한 영속성에 대한 것과 연결된다. 집단과 집단 간의 싸움을 빼놓고 네트워크 간의 것으로만 얘기하면 얘기가 아주 부족하다.

 

서연 : 선생님께서는 <폭력의 예감>에서, 관찰대상뿐만 아니라 연구자(관찰자) 또한 브리콜뢰르, 공작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연구자도 관찰자와 마찬가지로, 이미 세워진 목적 하에서의 전체적인 조망을 가질 수 없고 언제나 만들고 있는 와중에 있다. 이런 과정 중에 있는 연구자가 관찰대상이 되는 현지인의 언어를 접할 때, 그들의 고유어, 예를 들어 '마나'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레비스트로스가 했듯이 '제로치'와 같은 말로 번역하거나 '무의식'으로 환언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단지 관찰자에게 외국어인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해결책은 아닐 텐데, 어떻게 새로운 말을 창조할 수 있는가?

 

도미야마 : 새로운 이야기는 번역이 정확하게 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마나는 달아나고픔, 두려운 감정과 같은 신체감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내 안에 생겨나는 감각들에서부터 말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사회성, 사회적 프로세스가 나오는 것이다.

기술되지 못한 것, 잘 모른 채로 만든 것. … 실제대로 기록하는 것, 여기에서 시작된다. 마나와 말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점을 볼 수 있다.

 

사카이 : 마나는 상품, 상품어(상품에 결부된 말들)이기도 하다. 상품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것. 마나는 어디에나 있다.

 

 



 

타카하시 아츠토시의 발표 <수유너머에게: 카페 커먼즈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에 대한 토론

 

[앞부분을 듣지 못했음]

 

타카하시 : (히키코모리에 대해). 부끄러움이라는 신체감각이 있는데, 히키코모리들은 부끄러움이라는 신체감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집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접촉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끄럽다는, 이러한 신체감각 말이다.

 

꾸냥 : 히키코모리와 오타쿠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타카하시 : 히키코모리에게 오타쿠는 멋진 존재다. 자기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는 이인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키코모리는 혼자다.

(야오이 연구를 하고 있는 아지마상에게 요청).

 

아지마 : 오타쿠는 동료가 있고 사교적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원하는 것을 사고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사카이 다케시 선생님의 발표문 <지금 여기로부터의 사회개혁론>에 관련된 토론

 

[앞부분을 적지 못했음].

 

사카이 : 도미야마 선생님이 올바름으로써 운동을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은 마이너리티의 입장에 있는 말이다. 마이너리티가 마이너리티인 것은 자기책임을 지겠다는 데에 있다.

공산주의 이념은 상품의 폐지, 화폐의 폐지를 말한다. 상품, 화폐가 무의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권력이나 법으로 금지해 봤자이다. … 그러므로 본능적 공동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써 우회하자는 것이다.

 

이진경 : 선생님은 대화관계, 대면관계에서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설명하셨다. 그것들은 2자관계인데, 3인칭이 되면, 즉 3인 이상의 여럿이 모여 사람 수가 많아지면 2자관계는 무효화되는 것은 아닌가? 집단성은 (2자관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집단성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사카이 : 그것은 내가 생협운동의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조합원은 듣는 입장을 취하고, 상대편은 말하게 만든다. 나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발표에서, 여기에는 국가론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본론>의 아날로지를 빌리자면, 간단한(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전체적(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 화폐형태가 있다. 처음부터 권력이 거기 개입하고 있다. … 

공동성이란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이것은 보여지는 쪽, 수동적인 입장에 있는 쪽이 어떤 식의 이니시어티브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수동적인 입장은 소수자이고, 그들은 다수자의 … (?)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도미야마 선생의 연구에서도, 오키나와 사람들의 복잡한 구조에 대해 말했다. 수동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 앞에서 그들이 이니시어티브를 갖게끔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도미야마 : 상품을 팔게 하는 동력이 무의식이라 하셨고 그것을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신 데에 동의한다. … 그런데 그걸 그대로 남겨 두면 그것은 국가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다. … 무의식을 그대로 남겨 두면 국가를 만들어 버릴 수 있는데, 그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제도라 할 수 있다. … 우리가 무의식적 흐름에서 벗어나고 바꾸려 할 때 우리가 똑같은 것-국가-이 되어 버리지 않으려 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가치형태론에서 … 될 수 있다고 하지만… )

 

사카이 : 도미야마 선생이 말한, '강령을 만들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공통적인 토대를 만드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 결국, 우회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관점이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폐기시키는가. 말로는 쉽다. 그러나… 고용되어 노동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1997년 쯤에 지역통화제의 예. … 이것은 시장을 대체하는 강제라 생각한다. 시장에서는 지불하고 결재하는 기능을 은행이 한다. 지역통화는 각각의 회원이 계좌를 만들어, 마이너스가 되어도 괜찮다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플러스가 되어도 이자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 은행에서 이자가 생기는 형태는 장사를 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이것 없이 장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1997년 단계에서는 사회혁명을 위해서는 한 장의 그림을 들고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들을 그걸 보고 '안되겠지?'라고 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림을 보다가 어쩌다가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애국투쟁, 엘리트가 되어 (사람들을) 지도하면 엎어진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그대로 되지 않았다. 소련체제 하에서 관료제가… 아랍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의 권력이 무너져도 다른 권력이 장애물로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고정된다.

 

와타나베 : 도미야마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하겠다. 사카이 선생님과 도미야마 선생님 사이에서도 당파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지역통화 등에 대해서도 둘의 말하기 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데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이다.

 

타카하시 : (그분들이 당파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럼 나는 정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다르겠다. 구체적, 추상적으로… 지역의 차이, … 등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친구'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었다. 친구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관계다. 차이를 언제나 전제하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사카이 : 옛날의 나 같았으면 정치적 의사통일을 주장하며 싸웠을 지도 모른다. 유일성과 공통성을 어떻게 함께 (기능하게) 할 수 있나 생각하고 있다. 유일성을 갖고 있는 개개인이 공동관계를 만든다. 이런 것을 조합운동에서 볼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사업을 운영한다고 할 때 개개인이 뭘 생각하는가는 한계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나의 입장은, 사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에 있는 입장이다. 그것은 코뮨 같은 공동체에서, 외부의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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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Mauss, « Essai sur le don. Forme et raison de l'échange dans les sociétés archaïques », in L'Année sociologique, 1923-1924 (repris in M. Mauss, 1950, Sociologie et anthropologie, Paris, P.U.F.)

마르셀 모스, 2002, <증여론>, 이상률 , 한길사.

마르셀 모스, 2008, <증여론>, 류정아 , 지만지고전천줄.




 

"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조상님들(그분들은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여러분은 그분들의 화신입니다) 축복은 정령들의 축복과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축제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의 생명은 약하기 때문에 너는 용감한 사람들의 충고에 의해서만 튼튼해질 있다.' 여러분은 저에게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생명이 것입니다." (어느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접대 인사말. <증여론>, 한길사판(이하 동일) 260.)

 

마르셀 모스가 "인류진화의 과정 내내 변하지 않는다" 말한 "이처럼 훌륭한 지혜" 나는 친구 덕에 알았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나를 찾아온 시인 친구의 소원을 풀기 위해 보들레르를 "보러" 몽파르나스 묘지에 갔던 . 여행자를 동반한 평범한 묘지 방문이 갑자기 묘지 주인들과의 만남이라는 생생한 색채를 띠며 환해진 . 보들레르, 이옥, 세르주 갱스부르…… 그러니까, 친구를 모방하여 보들레르에게 '한글로' 편지를 묘석에 놓자마자, 그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일이 그들의 시를 읽고 그들이 일에 대해 듣고 그들의 노래를 음미하는 일과 똑같이 생각되어버린 . 그들의 묘를 방문하는 일이 그들을 만나는 일이라면 내게 책을 읽는 것은 또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텍스트를 읽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묻힌 땅을 방문하는 것이 그러하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구나 그가 내가 음식을 먹고 내게 충고를 주기 위해 초대에 응해준 사람이라면!

 

함께 있음으로 사람들이 내게 주는 , 선물, 음식, 접대, , , 노래로, 그들의 일부는 나에게 와서 생명이 된다. 인디언 추장이 인용한 조상의 말처럼 나의 생명은 약해서, 용감한 사람들의 생명을 받지 않으면 나는 결코 용기있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의무적으로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틀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같은 ).

 

<증여론>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사회학적으로 혹은 정치경제학적으로, 아니면 모두 다로 읽을 있겠지만, 모든 종류의 독해방식들의 세분된 이름 아래 말하기 전에, 나는 <증여론> 대한 나의 독해를 비분절적으로, 비개념적으로, ,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

 

"누구나 친구에 대해서는

친구로 있지 않으면 되며,

선물에 대해서는

선물로 답례하지 않으면 된다.

웃음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답하고,

거짓말에 대해서는

속임수로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북유럽 고대시 에다 가운데 하나인 하바말 42. 45)

 

준다는 것에는 긴장이 있다.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주는 이의 일부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이질적인 것이 나의 일부분이 되는 일에는 언제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는 일과 받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물건을 받음으로써 나는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자의 수중에 들어간다. 다시 말해 그의 영향 속에 놓이게 된다. 나에게 타인의 이질적인 부분을 소화하지 못할 그것은 나에게 독이 된다. 어떤 것은 다만 나의 깜냥이 못미쳐 소화할 없는 것이지만, 어떤 것은 애초부터 나와 맞지 않는 , 소화해서는 되는 것일 있고, 어떤 것은 너무 많이 쌓였을 때에만 독이 된다. 그러므로 나에게 해가 모르는 것들을 관계 속에서 흐르게 하지 않고 쌓아두기만을 원하는 자는 자신이 특별해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라고 상상하는 오만한 자이거나 순진한 ,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알지 못한 좋은 것만을 한없이 축적하기를 원하는 착각에 빠진 , 탐욕스러운 자이다. 받기만을 원하는 ,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으려는 자는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의심스러운 , 속이려 하는 , 쩨쩨한 자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쩨쩨한 자들이여, 갖은 애를 쓰는 쩨쩨한 자들이여, ……패배한 쩨쩨한 자들이여, ……카누를 주겠다고 약속한 쩨쩨한 자들이여, ……주어진 재물을 받는 쩨쩨한 자들이여, ……재물을 구하는 쩨쩨한 자들이여, ……재물을 위해서만 일하는 쩨쩨한 자들이여, 배반자들이여" (쩨쩨한 추장들에 대한 콰키우틀족의 점잖은 저주. 144)

 

재물만을 구하는 자는 사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사물은 결코 인간과 동떨어진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물들은 인간에게 속함으로써, 주고 받는 대상이 됨으로써 인간들 간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오며, 그것을 소유한, 그것을 구하고 선택한, 그것을 생산한 사람의 일부분이 된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그것을 경제관계와 법적 관계만으로 설명할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지칭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증여론> 등장하는 수많은 원시부족들의 말들과 고대 텍스트의 인용문들은 바로 , 근대인이 지칭할 말을 갖지 못해 잊어버리고 , 사물에 들어 있는 사람의 일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근대 경제학이 하듯이 교환관계와 소유권만으로 설명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관계들에는 사람의 속에서 발현되는 모든 활동들, 정서적인 투여, 창조성, 경험에 체화된 지식, 미적 감수성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인간관계에만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확장이며, 사람의 일부분을 이루는 사물들 속에도 들어 있다. 근대인들이 지칭할 말을 갖지 못한 그것을 마오리족은 물건의 (), '하우' 부른다.

 

" '하우' 부는 바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 그가 나에게 주는 '타옹가' 내가 당신한테서 받았으며 내가 그에게 넘겨준 '타옹가' (하우)입니다. 나는 (당신한테서 ) '타옹가' 때문에 내가 받은 '타옹가' 당신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됩니다. 나로서는  '타옹가' '탐나는 '(rawe)이든 '불쾌한 '(kino)이든 간에 그것을 간직하는 것은 '옳지'(tika)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타옹가의 '하우'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두번째의 '타옹가' 갖는다면, 나는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는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이 '하우', '개인 소유물의 '하우', 타옹가의 '하우', 숲의 '하우'입니다." (마오리족 정보제공자 타마티 라나이피리의 말. 66-67)

 

물건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법적 관계는 영들 사이의 유대관계다. 마르셀 모스는 책에서 이러한 사회관계를 '전체적인 급부체계'(système de prestation totale) 부른다. 전체적인 급부체계는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는 그의 본성 실체의 일부인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 체계이다.(71)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물건을 간직하는 것은 위험하며 죽음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의미로나 육체적, 정신적인 의미로나 사람에게서 나온 , 영적 실체, 음식물, 동산이나 부동산의 재산, 여자 또는 자손, 의식 또는 성찬식 등이 수증자에게 주술적, 종교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한다."(같은 ) 이러한 체계를 이루는 계약의 계기들은 재화와 , 동산과 부동산과 같이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뿐 아니라 예의, 향연, 의식, 군사적 봉사, 여자, 어린이, , 축제, 시장 등이며, 모스는 이러한 계기들을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북서부 아메리카, 그리고 주요한 고대 법전들을 통해 연구한다.

 

전체적인 급부의 전형적인 형태를 모스는 미국 북서부 컬럼비아 유역의 아메리카 인디언인 치누크족의 명칭을 이용해 '포틀라치'(potlach) 부른다. 포틀라치는 원래 '식사를 제공하다' 또는 '소비하다' 뜻하는 치누크어로,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의 부유한 부족들은 겨울마다 끊임없는 축제 속에서 투기적으로 다투듯이 재화를 낭비한다. 이들은 "협력자인 동시에 경쟁자인 추장을 압도하기 위해 축적된 부를 전혀 아낌없이 파괴해버리는 일조차 불사한다."(56) 폴리네시아의 사모아 섬에서는 결혼, 출생, 할례, 질병, 소녀의 성년식, 장례식, 상거래 등에 뒤따르는 계약상의 증여체계가 널리 퍼져 있다. 여기서 포틀라치의 가지 요소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부가 주는 명예, 위세, 마나(mana, 비인격적인 초자연력) 요소와, 답례하지 않으면 이러한 마나, 권위, 불가사의한 , 부의 원천 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답례를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의무의 요소"이다.(61)

 

한편 모스는 멜라네시아 부족간 부족 교역체계인 쿨라(kula) 일종의 거대한 포틀라치의 예로 제시한다. ''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쿨라는 바다원정, 귀중품, 일용품, 음식물, 축제, 의식적 성적인 봉사, 남녀 모두가 하나의 원의 주변을 따라 시간적, 공간적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교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쿨라 교역의 주역인 추장들은 외견상으로는 전혀 사심 없이 겸손하게 귀족적인 태도로, 집요한 흥정이 행해지는 상품의 단순한 교역인 김왈리(gimwali)에서와는 달리 아량을 가지고 교역을 한다.

 

교환-증여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일종의 화폐라 있는 바이구아(vaygu'a), 세공된 조개껍질 팔찌인 음왈리(mwali) 자개에 가공한 목걸이인 술라바(soulava) 가지다. 음왈리의 교역은 언제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술라바의 교역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정한 방향을 따라 행해진다. 부의 상징물인 팔찌와 목걸이의 순환에는 가지 규칙이 있다. 그것들을 너무 오랫동안  간직해서는 안되며, 넘겨 주는 느리고 인색해서도 안된다. 정해진 방향의 특정한 상대방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도 안된다. 이러한 소유권은 특수한 성질을 것으로, 바이구아는 점유물, 담보물, 차용물이면서 위탁된 물건이다. 그것들은 다음 쿨라를 통해 '멀리 떨어진 상대방'(murimuri)에게 양도한다는 조건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신화적, 종교적, 주술적이기도 한데, 그것은 바이구아를 소유할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가 생기며, 마음이 가라앉" 때문이다.(106쪽) 바이구아뿐 아니라 모든 재화들은 감정으로 충만되어 있으며, 물건들 자신도 계약에 참가한다고 여겨진다. 계약 자체가 물건들의 성질의 영향을 받는다. 다음과 같은 주문은 바로 물건들의 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쿨라(교역) 것이다. 나는 나의 쿨라(상대방) 녹일 것이다. 나는 나의 쿨라를 훔칠 것이다. 나는 나의 쿨라를 약탈할 것이다. 나는 나의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쿨라를 것이다 …… 나의 명성은 천둥과도 같고 나의 발걸음은 지진과도 같다." (키리위나 지방의 주문. 109)

 

교역되고 매매되고 교환되는 사물들에는 언제나 정서적인 투여가 녹아들어 있다.

 

"너는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너는 사랑의 선물은 주지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지도 않았다.

만일 내가 좀더 빨리 위험을 알았더라면,

너는 이미 목숨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에다에 나오는 영웅 흐라이드마르가 로키의 저주에 반응한 구절. 245)

 

이렇게 선물의 증여와 수증에는 선물을 주는 감정이 문제되며증여되는 사물(여기서는 토지) 증여-수증 관계 속에서 말을 한다.

 

"(수증자에게) 나를 받으세요

(증여자에게) 나를 주세요

나를 주면 당신은 나를 다시 얻게 것입니다" (<마하바라타>에서 카샤파 왕에게 주어진 라마의 토지가 하는 말. 225)

 

사물들은 시장가치뿐만 아니라 감정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은 서로 어울려 놀며, 놀고 있다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로 와서 만난다.

 

"개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논다. 네가 개라는 말을 언급하면,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는 바와 같이 귀중품들도 놀러 온다. 우리가 팔찌를 주면 목걸이가 오며, 그리고 그것들은 (킁킁거리며 냄새맡으면서 오는 개들처럼) 서로 만난다." (트로브리안드-멜라네시아 지역. 111)

 

물건들이 감정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증여관계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또한 자신들이 하나의 장소이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떠다닌다' 여겨지고, 그들의 카누는 '바다에 떠돌며', 그들이 가지고 오는 토템 기둥은 표류하고 있다. 그것들을 멈추게 하는 것이 포틀라치와 초대이다. [……] 콰키우틀족 추장의 매우 통속적인 칭호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 '사람들이 오는 장소'이다." (틀링깃족. 156)

 

이러한 체계에서는 물건과 사람이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특성을 지닌 존재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물건은 사람의 일부이자 사람의 감정이 투여된 ,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장소이며, 사람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물건과 사람들이 표류를 멈추고 노저어 모이는 장소이다. 사물은 인격과 효험을 가지며, 또한 인격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씨족의 영속적인 물건이다. 따라서 물건과 가치, 계약, 사람은 혼합된 것이고, 여기에서 나와 타자는 완전히 구분되는 존재로 표상되지 않는다.

 

"당신을 자인 나는 나를 주는 자이다." (= "당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나이다. 이제 나는 당신의 본질이 되며, 당신을 주면, 나는 자신을 준다." (<마하바라타>에서. 231)

 

<증여론>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중첩되어 있다. 수많은 각주가 달려 있으며 어떤 각주는 페이지에 걸친다. 깔끔한 체계를 선호하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이러한 체제는 때때로 짜증나지 않는가? 나는 <증여론> 독자들이 각주들을 어떻게 읽는지, 대충 건너뛰는지 아닌지, 각주가 나올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지는 않는지 궁금하다. 완전히 구체적인 것들, 물질적인 것들을 기록하고 사유하는 것이 민족지학이다. 데이터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레비스트로스는 <신화학> 4부작 통해 수많은 신화들을 가장 작은 단위인 신화소들로 쪼개고 모조리 기호화한 다음 이들의 구조를 비교함으로써 구체적인 사례들 속에서 드러나는 구조를 읽으려고 했다. <증여론> 많은 독자들이 분명 지리멸렬하게 느낄 수많은 곁사례들을 각주 속에 집어 넣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각주들을 열광적으로 탐독했다. 그리고 미분절적인 글에서 고의로 앞과 뒤를, 각주와 본문을 뒤섞었으나, 단지 울림이 있는 인용문들만을 뽑으려고 했다.

 

민족지학의 사후작업으로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 이론화는 언제나 가능할 것이지만, 민족지학 텍스트 자체가 갖는 가치는 바로 날것의 목소리들 속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선물의 순환을 설명하기 위해 '선물의 '이라는 신비한 개념에 의지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보았듯이 모스의 실패인가. 살린즈의 해석처럼 하우는 가치재에서 나오는 이윤일 뿐인가. 부르디외가 보았듯이 증여는 선물교환의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속이는 개인적, 집단적 자기기만 사이에서 유희하는가. 데리다가 보았듯이 선물은 선물이 되기를 그칠 때에야 비로소 선물로 인정받는다는 이율배반을 전제하는가. 여기에 또한, 상상적인 것으로서의 신성한 사물이 제도와 상징으로 물질화된다고 고들리에의 입장을 덧붙일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들을 던지기 이전에, 나는 위바네고 부족 씨족의 추장들이 다른 씨족의 추장들에게 하는 인사말을 모방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사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어찌 달리 말할 있겠습니까? 저는 가치 없는 천한 사람인데도 여러분께서 저를 기억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은 정령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오시다가, 저와 함께 자리하러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접시는 가득 것입니다. 정령들을 대신해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260) 이것은 의례의 말이지만 나는 비서구인들이 진정을 다해 의례를 행하듯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근대인에게는 의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말을 할 것이다. 개념들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시달리고 있는 내겐, 단지 우리가 습관과 편견을 뒤집지 않기 때문에만 우리에게 공명하지 않는 언어들이, 아직까지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빈곤한 언어가 지금 오래된 말하기 방식을 모방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글/ 홍서연(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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