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반값 등록금 시위나 서울대 법인화 저지 점거사태 등을 보면 젊은 사람들의 정치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강좌에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이진경: 통상적으로 정치라고 얘기하면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치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치안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일을 하라고 명령할 뿐이죠. 정해진 코스대로,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쌓아서, 정해진 자리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에게 주어진 일반화된 요구입니다. 그러면서 대학 졸업장은 딱히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꼭 따야 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위해 어이 없이 비싼 등록금을 내야하는 것이죠. .

 

얼마 전에 칼럼에서 ‘비정규 학생’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요즘에는 비정규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을 피해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 학생이 생긴거죠. 그렇게 일함에도 등록금을 제대로 벌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 학생이 하나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졸업장을 따야하는 학생들을 불리한 위치로 몰아세우는 것이 신자유주의와 결합된 한국 학벌중심 사회의 현실입니다.

정치란 그런 자리를 벗어나는 것, 그런 자리를 뒤집어 버리는 것, 이런 것이 정치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경우에도 그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치안에 반하는 정치다’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말은 현재적인 의미가 크다라고 생각합니다.

 

  20110610214053633.jpg

<반값을 넘어 무상교육의 그날까지.... 촛불아 꺼지지 말고 계속 타올라라!>

 

변성찬: 요즘 한국 대학생은 존재 자체가 소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그렇게 지위가 변화하는 것은 위기일텐데 그것을 기회로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정치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었던 대학생들에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그런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대학생들을 나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소수화시켜 준 MB 정부에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하하하!!)

 

 

Q. 바흐친은 요즘 한국의 대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최진석: 아까 얘기했던 웃음과 연결하여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은 일상의 문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바흐친이 전복적인 힘으로 얘기하는 것은 폐부를 찌르는 비웃음과 풍자적인 불온한 웃음이죠. 그런 것들은 최근 박정수씨의 쥐그림 사태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쥐그림이 전혀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검찰은 기소 내용에서 그 그림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고, 미래를 빼앗았다고 강조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습니다. 이런 방식의 웃음이야 바흐친이 말한 웃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서 검찰이 말한 아이들은 말그대로 퇴행한 MB의 아이들인거죠.

 

이렇게 정권이나 권위에 누구라도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태 자체는 자신들의 권위의 벽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협적인 도발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권위의 벽에 가까이 다가가 ‘이거 아무것도 아니네’ 하면서 그 벽을 건드리기도 하고, 그 벽에 오줌을 누기도 하는 방식, 직접적으로 권위를 망치로 부수는 방식이 아니라 권위 자체를 일그러뜨리는 것 냄새나게 만드는 방식이야 말로 권위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과 동시에 그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진경: 요즘엔 웃음에 대해서 좀 더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을 준비하면서 불온한 웃음, 사람 당황하게 만드는 이 웃음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편에 있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MB 정부가 유발하는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웃길 의도가 없지만 우리로 하여금 깔깔거리고 웃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의도 없는 개그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웃음은 왜 유발되는지, 그 의미는 뭔지, 굉장히 다른 종류의 이 웃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요즘 사회에서 웃음은 더 다양해지고 더 중요해진 것 같은데, 바흐친의 사상을 통해 웃음의 정치학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분석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푸하하하....-_-;; 그냥 웃기다.>

 

 최진석: 바흐친은 패러디적 웃음의 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죠. 예를 들어 건설부양에의 의한 정권를 비판하면서 누군가 거대한 삽의 모형을 만들어 던졌는데, 그것은 거대한 이미지를 통해 정권이 하고 있는 일과 유사하지만 들어나서는 안 되는 이미지를 들어내며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패러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죠. 보이지 않았던 본질을 보이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던 권위를 추락시키는 방식들. 그것이 재미를 넘어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웃음은 굉장히 치명적인 웃음이 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MB 정권은 패러디 자체의 위험성의 낌새를 채로, 그 근원을 봉쇄해 버리려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그 안에서 우리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주고 있지요. 강좌에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이런 사람들은 이 강좌를 꼭 들어야한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변성찬: 등록금 투쟁하고 있는 대학생이 들으면 좋지 않을까요? ^^

이진경: 정치를 좀 더 큰 스케일로 그리고 통념을 깨는 방향으로 사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대학생 여러분, 힘내세요^^!!>

사진출처 http://cafe.naver.com/wabore

 

Q. 강의 전에 읽어야 할 책이 있나요?

이진경: 강좌에서 만나게 될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오면 좋겠지만 책을 안 읽는다고 강의를 못듣는 것은 아닙니다.^^

 

 

뜨거운 사유의 열기로 무더운 7월 금요일 밤을 더욱 화끈하게 만들어 줄 이진경, 최진석, 정정훈, 변성찬 강사의 열강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http://nomadist.org/xe/lecture/145640 강좌 안내는 요기 클릭!!!

 

그럼, 7월 8일 첫강의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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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의 대표 미남 (...........응? ) 강사 이진경, 변성찬, 최진석, 정정훈이 '히치하이커의 정치학-현대정치철학의 지형과 지표를 탐사한다'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강좌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현대 정치철학에 왠 히치하이커?

도대체 이 둘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강좌에서 만나게 될 여섯 명의 철학자들을 어떻게 한 곳에 엮을 수 있을까?

 

호기심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이진경, 변성찬, 최진석  세 강사를 만났다.

 

 

                                                                                                                                  인터뷰 : 강좌 반장 아샤   

 

 

 

Q. 강좌 제목이 특이한데요, 어떻게 ‘히치하이커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진경: 사상가들을 공부할 때 어떤 때는 그들의 사유에 편승을 해서 그것을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것을 뒤집기도 때로는 대결하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종의 히치하이커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적지가 같으면 같이 가지만 목적지가 다르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딴 길로 가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히치하이커 역할을 자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히치하이커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정치학은 어디로 갈 것인지가 문제이기 때문에, 방향을 가지고 운전사·차주와 대결하는

히치하이커라는 컨셉이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강좌에서도 그런 관점을 가지고 정치사상가들과 대면하는 방식을 만들어보고자 하였습니다.

 

사진1.jpg 

 

변성찬: 얘기를 들어보니 히치하이커가 아니라 하이잭킹의 느낌인데요?

(일동 웃음~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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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킹?? 혹은 하이잭킹??>

 

 

Q. 강좌에서 총 여섯 명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만나게 될텐데,

여섯 명을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지 얘기해주세요.

 

최진석: 현대 정치철학 경향이나 철학자들의 사유를 소개·해설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추종하기 쉽지만 우리는 그런 방식을 거부합니다.

예를 들어 첫 강의의 주인공인 아렌트의 경우도 통상적인 방식이 아닌 아렌트의 사상을 전복하는 방식으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진경: 남으로 갈 비행기를 북으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죠.

 

변성찬: 그게 정확히 하이재킹이죠.

 

이진경: 랑시에르의 경우에도 랑시에르의 ‘평등성의 정치학’을 존재론적인 차원에서의 평등성까지 밀고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좌에서도 랑시에르의 얘기에 그대로 주석을 달지는 않을 것입니다.

 

Q. 정치철학 강좌인데 바흐친이 있는 것도 특이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바흐친~ 하면 문학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최진석 : 그렇죠. 바흐친을 정치철학자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흐친이 얘기하는 전복성의 사유가 단순히 예술이나 문학을 논할 때의 전환점,

새로운 미적감각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흐친이 이야기하는 감각성을 현실정치적인 차원에서 도입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강좌를 통해 학문적 담론 안에 곱게 정리된 그의 사유를 끄집어내어 현실 속에 던질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마련해보고 싶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데리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리다를 정치철학적으로 전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포리아 자체로 끝나버리는,

‘불가능하다’와 ‘불가능하지 않다’를 동시에 말해버리는 것으로 데리다의 정치철학을 지표화해버리고 맙니다.

그것보다는 우리의 현실의 언어로서, 언어화되어 있지 않은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그 아포리아로서 데리다의 정치철학적인 가능성을 ‘법의 힘’이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사유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바흐친이 주목했던 유머가 가진 힘과 그 정치적 가능성이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도 얘기해보면 흥미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진경 : 특히 바흐친의 웃음, 유머는 정말 공부해 볼만 하단 생각이~~ 정말 재밌다는..!

나중에 베르그송의 '웃음'이랑 같이 해서.. 더 공부를 해보면 좋을 듯...?

(인터뷰 도중에도 끊이지 않는 기획들....^^)

 

Q. 영화 평론가 변성찬이 보는 들뢰즈의 정치철학도 궁금합니다.

 

변성찬: 현대정치철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메타 정치학을 얘기합니다.

들뢰즈는 ‘정치란 이런 것이다’라고 사유를 한 사람이 아닌 만큼 더더욱 그럴 것 같은데요,

‘천의 고원’, 그리고 아무래도 제가 영화평론을 하는 사람인만큼 ‘씨네마’에서

들뢰즈가 지나가듯 얘기하는 현대적 정치영화와 고전적 정치영화의 차이라는 부분을 참고로 하여

들뢰즈가 얘기하는 ‘소수성의 정치’라는 개념이 갖는 함의를 좀 더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들어내 보고자 합니다.

 

 

 

 1.jpg

 

< 이번 강좌를 통해 우리가 조우하게 될 철학자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나 아렌트, 자크 랑시에르,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미하일 바흐친, 에티엔 발리바르>

 

 

인터뷰 Part 2에서는 더욱 흥미진진한 얘기들이 펼쳐집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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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 1 1  여 름 강 좌 안 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은 매 분기별로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여러 강좌를 통해 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경험을 쌓아가고자 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그리고 삶으로부터 다시 공부를 길어내는 느리지만 부지런한 여정! 배움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가꾸려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개강일: 2011년 7월 4일 월요일

 

∙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218-23 이스턴빌 2층 수유너머N | 전화 (070)8263-0910 | http://www.nomadist.org

 

∙ 접수계좌: 우리은행 011-9571-1509 (휴대 전화번호와 동일) 예금주 명: 오하나

 

∙ 강좌문의: 오하나(011-9571-1509), 문화(010-6210-3021)

 

∙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위의 접수계좌에 입금하신 후, <강좌 신청 및 확인> 게시판에 강좌명과 입금자명을 남겨주세요. (게시판 바로가기 클릭!)

(수강생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꼭 게시판을 통해 알려주세요.)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진행하는 모든 강좌의 수강료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강좌신청> 게시판의 공지를 참조해주세요.

 

 

 

 

 

01 예술 강좌| 20세기 아방가르드 미학과 초현실주의 운동 - 꿈꾸고, 사랑하고, 혁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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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4일 (월)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외부’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다시 사유해 보려는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꿈과 무의식’을 생각해 보는 것은 ‘깨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20세기의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꿈꾸었던 혁명의 예술, 초현실주의를 만나본다.

 

 

1. 상징주의, 매혹적인 상상과 허구의 세계 _유정아

보이는 현실의 재현에 몰두했던 인상주의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상징주의자들. 그들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사상과 작품세계.

 

 

2. 다다이즘, 째깍거리는 정치적 폭탄 _유정아

무정부주의적이었던 다다이스트들의 등장과 활동, 부르주아 예술을 비판하고, 정치, 철학적 전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이들의 재기발랄한 반미학!

 

 

3. 초현실주의 선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_유정아

비이성적인 것을 사유할 또 다른 권리, 1924년 ‘인간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의 태동과 무의식의 탐구!

 

 

4. 초현실주의 그룹과 “섹스 토킹” _박수진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사랑과 섹스, 욕망과 쾌락과 도덕, 무의식과 충동.그 거칠고 흥미진진한 논쟁!

 

 

5. 벤야민과 초현실주의, 대중문화라는 꿈나라 _유정아

발터벤야민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상품물신의 세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열정적인 매혹과 비판

 

 

6. 아우라의 흔적, 초현실주의 귀환과 현대미술 _박수진

초현실주의 전시를 통해 만나는 타자성과 재현의 문제, 20세기 후반의 전시와 비교하며 새롭게 조명하는 초현실주의의 영향과 흔적.

 


 

 

02 인류학 강좌| 근대의 외부들 - 다른 세계를 발명하는 인류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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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일 : 07월 06일 (수)

 

강좌회비 : 10만원 (6강)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학적 상상력이다. 자연과 문화, 환경과 인간,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이라는 이분항의 긴장을 가로지르자.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탐색하자! 우리는 인류학의 여섯 가지 모멘트를 통과하며 교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공리주의, 그 실용주의의 철벽을 내파할 것이다. 우리 안의 낯선 외부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1. 섹슈얼리티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원시사회의 성과 억압> _홍서연

말리노프스키는 모권제 사회인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가족관계를 통해 원시사회의 섹슈얼리티를 기술한다. 문제는 성적 억압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자, 그렇다면 모권제는 어떻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분열시키는가?

 

 

2. 선물 : 마르셀 모스, <증여론> _오하나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사회이다. 그리고 아직 모두가 그러한 종류의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모스는 합리적 교환 대신 선물을 택한 공동체를 분석한다. 강의를 통해 우리의 삶의 비자본주의적 요소, 인간과 사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다.

 

 

3. 신체와 언어 : 앙드레 르루아-구랑, <몸짓과 언어> _홍서연

태초에 몸짓이 있었다! 몸짓은 인류학에서 의례와 테크닉의 기본단위이다. 르루아-구랑의 선사시대 고고학을 통해 기술과 언어, 인지능력과 사회성의 상관적 발달 궤적을 추적해 보자.

 

 

4. 국가 :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_문화

클라스트르는 추장제 사회 속 전사들의 잇단 전쟁과 무모한 행동에 주목한다. 폭력적인 이들의 모습에서 국가 없는 미개 사회가 떠오를 법도 하다. 하지만 전쟁이 중심적인 권력의 출현을 막는 국가 방지 메커니즘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5. 주술 : 마르셀 모스, "주술의 일반적 이론에 대한 초고" _홍서연

주술(magic) 최초의 사유 형태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인간행위를 사법적 행위, 기술적 행위, 종교적 의례로 나누는 모스에게 주술은 관례 이외의 것을 산출하는 창조적 힘을 지닌 것이었다. 주술사는 어떤 사람인가? 주술은 어떤 조건에서 효력을 갖는가

 

6. 야생성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_정정훈

새로운 사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유의 방식과 삶의 방식이란 단지 하나의 삶의 체제에 불과하다. 레비스트로스의 저 유명한 책, <야생의 사고>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삶의 체제를 모색한다.

 

 

 

 

 

03 철학강좌 | 히치하이커의 정치학 - 현대정치철학의 지형과 지표들을 탐사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개강일 : 07월 08일 (금)

 

강좌회비 : 10만원 (6강)

 

 

 

촛불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고취됐다. 하지만 이 관심이 복지국가론으로 축소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국가의 운영방식으로 환원될 수는 없는 법. 이 강좌를 통해 우리는 현대정치철학의 이론적 공간을 탐사하는 히치하이커가 되고자 한자. 국가권력의 지반을 넘어서는 철학자들의 기발한 해방의 사유에 탑승하기.

 

1. 한나 아렌트 : 오이코스와 폴리스 _이진경

폴리스로부터 오이코스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빈민을 몰아내려는 정치적 사유에 히치하이킹! 오이코스를 통해,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통해 폴리스를 전복하는 정치를 사유한다.

 

 

2. 자크 랑시에르 : 평등의 정치학 _이진경

치안과 정치의 대비 속에서 자격 없는 자의 정치학을 제안하고,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이게 만드는 감성의 정치. 랑시에르의 사유에 히치하이킹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평등성의 정치학까지 밀고 가본다.

 

 

3. 미하일 바흐친 — 유혈 낭자한, 도래할 사건으로서의 혁명 _최진석

용산참사를 겪은 우리 눈에 ‘성숙한 민주주의’는 폭력을 독점 행사하는 자들의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미하일 바흐친을 통해 혁명과 정치, 폭력의 난맥상을 돌파한다. 혁명은 정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4. 자크 데리다 — (불)가능성의 윤리와 정치 _최진석

정치의 윤리, 혹은 윤리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정치의 잠재성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데서 비롯된다. 데리다의 <법의 힘>을 통해 불가능에 도달하는 행위, 그 속에서 실현되는 정치를 발견한다.

 

 

5. 에티엔 발리바르 : 이데올로기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_정정훈

스마트폰과 SNS로 표상되는 첨단의 세계 한 복판에서 오히려 배제된 자들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종, 종교의 이름으로 무의미한 폭력을 휘두르고... 우리는 정치의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의 복원을 고민하는 발리바르의 정치 철학을 따라간다.

 

 

6. 질 들뢰즈 : "소수정치, 또는 정치의 소수화" _변성찬

들뢰즈의 ‘소수성’ 개념을 중심으로 ‘들뢰즈의 정치학’을 재구성해보는 것, 이것이 이번 강의의 목표다. 들뢰즈가 구분한 ‘고전적 정치영화’과 ‘현대적 정치영화’의 차이를 중심으로, 그 함의를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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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명성을 새삼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그 유명세는 이 책을 청소년 권장도서이자 논술의 소재로, CEO를 대상으로 한 강연의 재료로, 현실정치를 꼬집는 권위적 근거로 ‘소비’되게 해왔으며, 그 내용은 ‘강력한 리더십’ 내지 ‘철저한 현실주의’ 같은 매끈한 문구로 압축되어 말하기 쉽고 듣기 편하게 유통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마키아벨리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 왔다. 사전에도 등재된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라는 단어가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라는 뜻뿐 아니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세간의 유서 깊은(!) 통념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일 것이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러한 단면적 이해에 문제를 제기했고, 국내에도 이미 많은 연구서들이 출간되어 있다(지난겨울만 해도 퀜틴 스키너의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 존 포칵의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등 저명한 학자들의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러한 책들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탁월하게 ‘해설’하고 또 ‘변호’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과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는 데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에 관한 많은 말들은 ‘오해’와 ‘이해’라는 스펙트럼을 벗어나지 못해 온 것이다.





‘지금-여기에서 다시 쓴 고전’이라는 모토로 동서양 고전을 재조명해 온 그린비 리라이팅 클래식의 열두번째 권(시리즈 번호로는 14권)으로 출간된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은 이러한 수직선 위에서 이탈하고자 한다. 그람시, 네그리, 알튀세르 등의 마키아벨리 논의를 빌려오는 한편, 들뢰즈와 스피노자를 통해 마키아벨리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근대 정치철학의 선구자’라는 측면에서만 평가되어 왔던 마키아벨리의 혁명성을 현대적 의미에서 되살리고자 한다. 즉, 이 책은 단순히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는 책이 아니라, 마키아벨리 그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혁명의 미래적 에너지를 발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 과연 군주정의 이데올로그인가?

마키아벨리가 군주정이 아닌 ‘공화정’을 최고의 정부 형태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군주 권력의 기반을 인민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식의 언술이 『군주론』의 곳곳에서도 드러나긴 하지만, 어쩐지 기만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인민에 의한 정부가 군주에 의한 정부보다 낫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의 요소가 혼합된 고대 로마야말로 가장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정체의 표본임을 설파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군주’에 관한 불후의 고전을 남겼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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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그린 로렌초 데 메디치 _ 마키아벨리는 "그는 운명으로부터, 그리고 신으로부터 최대한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마키아벨리에게 정치체제란 순환하는 것이었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각각 부패하면 그다음 체제로 대체되며 순환한다는 것이다(152~153쪽). 그런 그가 『군주론』에서 강력한 군주의 출현을 고대했던 것은 군주의 존재를 옹호하고 그것을 신성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정부상태라는 당대의 타락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프랑스나 독일 같은 이웃나라들이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해 가고 있던 시기, 좀처럼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갈가리 찢겨 반목만을 거듭하던 이탈리아 반도에 ‘인민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의 구축을 꿈꾸었던 것이다. 즉, 군주를 ‘시초적 계기’로 삼아 종국에는 고대 로마식의 혼합적 공화정을 세우는 것이 그의 진정한 목표였다.

결국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강력한 군주란 ‘비상사태’에 특별히 요청되는 존재였을 뿐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군주의 권력이란 군주 개인의 역량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수의 무리들로서 인민의 공동 역량이 군주의 권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 인민은 군주의 정치적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의 원천적 힘”인 것이다(230쪽).

이렇게 우리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인민과 군주의 대립이 아닌, 양자의 결합을 읽어 낼 수 있다.

신이 부리는 운명의 파도, 그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역량

마키아벨리의 혁명성은 무엇보다도 정치를 ‘인간’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신의 의지’를 지상에 구현한다는 중세의 도덕적 정치 관념에서 벗어나 그것을 ‘인간의 주체적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인물로서의 마키아벨리는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주어지는 질서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것들의 부딪침이 만들어 내는 동학이었다. 이는 곧 마키아벨리의 사유가 “초월주의적 정치철학의 지배에 대한 내재주의 정치철학의 반란이라는 맥락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58쪽).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표상하는 ‘비르투’(virtù)야말로 마키아벨리의 핵심 키워드가 된다. 흔히 ‘역량’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운에 일방적으로 좌우되지 않고 그것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이루어 내는 힘”을 의미한다(114쪽).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높이 평가했던 체사레 보르자마저 쓰러뜨린 병마, 인간의 무력함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감하게 되는 자연재해, 자신의 능력이 아닌 남들의 호의에 의해 주어졌기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권력과 부와 명예…….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인간사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 ‘운’의 영역이라면, 그 외부적 불확실성에 스스로를 맡겨 두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직하는 것이 곧 ‘역량’의 영역이다. 인간의 역량은 곧 운명의 파도를 타고 넘는 기예(tech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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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한 삽화 _ 운명의 여신이 돌리는 수레바퀴 안의 한 남자의 상태는 머무르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마키아벨리는 주체 외부의 우연적인 힘을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외부의 조건 속에서 역량을 통한 인간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이자 그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여기에서 마키아벨리와 후대의 혁명적 사상가들과의 친연성을 본다. 세계의 우발성과 내재성을 강조하고 그 안에서 어떤 존재(군주)의 계기적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알튀세르의 ‘우발성의 유물론’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고(177~191쪽), 외부와의 마주침에 대한 능동적 통제를 강조하면서 “도덕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의 윤리를 사고”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과 공명한다(195~202쪽). 마키아벨리는 어쩌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가 아니라 그 목적을 둘러싼 조건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수단을 가장 면밀하게 탐구한 사상가가 아닐까.

역량 있는 공동체, 그리고 해방의 정치학

이 책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이 주목하는 것은,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군주의 역할을 맡을 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자본의 전 지구적 횡포 속에서 여전히 “예속되어 있고, 억압받고 있으며, 지리멸렬해 있는 데다가,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기갈기 찢기고, 유린당하여, 한마디로 황폐한” 삶을 영위하는 수많은 인민들은 어떻게 자유와 평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계기가 되어 줄, 마키아벨리의 군주 역을 대체할 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주체를 호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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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_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역량을 국가가 지속될 수 있는 원인으로 보았다. 인민의 역량은 그들이 자유롭고, 평등이 보장되는 제도 속에서 가장 잘 발휘된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예를 그람시에게서 찾을 수 있다. 분열된 이탈리아를 봉합하여 새로운 정체를 만들어 낼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정확히 마키아벨리의 그것과 일치한다. 그는 『옥중수고』에서 인민의 요구를 실현할 집단의지로서의 혁명정당을 강조한다. “맑스주의 정치정당이라는 현대의 군주가 이탈리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분산된 개인들을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응고하도록 하는 촉매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8쪽)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의 군주’라는 표현은 명백히 마키아벨리적 의미의 ‘군주’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저자는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마키아벨리적 군주를 읽는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계기로서의 존재이자 스스로 그 자체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이다.

“억압 없는 사회, 수탈 없는 사회로서 코뮤니즘 사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요청되는 억압자들에 대한 억압, 수탈자들에 대한 수탈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결국 자신의 지배를 통해 지배 자체를, 자신들이 지배계급이 되는 것을 통해서 계급 자체를 폐지하는 데까지 나갈 것이다”(238쪽).

마키아벨리의 사상 속에 내재된 비정함을 애써 모른 척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가능성에 눈감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학과의 강의실에만, 논술 시장의 상품으로서만, 수탈자들의 언어 속에서만 살아 숨 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은 인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신뢰와 주체적 역량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강조를 복기하고 그것을 현대의 맥락에서 부활시키려는 시도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단순히 ‘냉혹한 군주론자’, ‘폭력의 찬양자’가 아닌 ‘해방의 기획자’로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집단의지(역량)를 통해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고 자유로운 정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 당위와 가능성을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린비 블로그 : 이 글 원문으로 바로가기
그린비 책소개 :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
그린비 블로그 : '마키아벨리'라는 스캔들 - 새로운 『군주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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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처럼 좋은 철학이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삶을 긍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일 것이다. 삶이 ‘편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편한 삶, 좀 더 잘 벌고 좀 더 잘 쓰는 삶으로 대체되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강해지고,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은 절실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집, 많은 돈이 그것을 가려간다. 이제라도 다시 눈을 돌려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황금빛 장막을 걷어치우고, 거기 가려진 삶을,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야 한다. 철학을, 좋은 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이 ‘큰 배움’의 장이 아니라 직업학교가 되고, 돈의 장막을 몸에 덮어씌우게 된 지금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강의는 ‘큰 배움’을 꿈꾸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되었다. 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근대적 삶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사유할 수 있는 촉발을 제공하고자 한다. 어떤 철학적 사유의 결론을 배우긴 쉽지만, 그런 사유의 방법을 배우는 건,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연속강의를 통해 함께 사유하는 철학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강좌는 크게 2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이진경이 주도하는 강의는 길을 가기위한 지도를 제공합니다. 또 하나는 세미나인데, 이는 스스로 지도를 읽고 찾아가는 훈련의 장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강의와 세미나를 모두 참여하셔야 합니다.
(문의: 유심 ㅇ11-9571-15ㅇ9)


[토요일] 강의: 노마디즘 1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예언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그게 사실일 것임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들뢰즈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잠시 시작되는 듯하다 중단되고 만 것은 무엇보다 그의 책이 갖는 난해함 탓일 겁니다. 사유의 깊이를 잴 수 없게 하는 난해함. 이번 강의는 들뢰즈 사상의 개요에서 시작하여 <노마디즘 1>을 함께 읽으며 그의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면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유목민의 전차를 모는 사유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개강: 5월 7일


[일요일] 세미나: 인디언의 사상

“유목민은 역사를 쓰지 않는다.”(들뢰즈/가타리) 또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과 사상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화나 제의 등이 그것이었다. 백인들과의 적대적 만남, 혹은 인류학자들과의 우호적 만남을 통해 그것들은 부분적이나마 문자로 기록되었다. 인디언은 이런 유목적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이번 세미나는 인디언 추장의 말이나 인류학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사유와 만나고자 하며, 그것을 통해 근대와 다른 종류의 삶에 접근하고자 한다.

개강: 5월 8일


[등록 방법] 

1. 강좌신청 게시판에 신청글을 남깁니다.    (http://nomadist.org/xe/apply)

2.  길잡이에게 확인 문자를 한 통 보냅니다. (ㅇ11-9571-15ㅇ9)

3. 송금을 합니다. (우리은행    588-000927- 02-101,  예금주 명: 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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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계보

 

우리에게 주권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는 사상가로 알려진 아감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매우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주목해야할 이름은 발터 벤야민일 것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아감벤의 사유는 슈미트의 주권론과 대결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 대결의 과정에서 벤야민은 아감벤에게 끊임없이 사유의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정치에 대한 사유에서 벤야민의 계보에 서있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번테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진정한 예외상태’라는 문구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는 벤야민의 구절은 사실상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슈미트의 테제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어디에서도 그 ‘진정한 예외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세하게 기술한 바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다. 바로 이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과정사에서 아감벤은 사도 바울에 주목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야 말로 최초의 ‘진정한 예외상태’의 이론가인 것이다. 그래서 주권과 법에 대항하는 독특한 정치적 사유의 계보가, 그러나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주목한 바 없는 은밀한 계보가 성립하게 된다. 바울-벤야민-아감벤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말이다.

 

 

주권자와 메시아 : 예외상태를 둘러싼 거인들의 전투

아감벤의 정치적 사유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개념은 무엇보다도 예외상태일 것이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호모사케르』는 주권에 의해 권리를 박탈당한 채 단지 생물학적 생명의 지대로 던져진 존재들, 즉 벌거벗은 삶의 비극에 주목하는 책이 아니라 이러한 벌거벗은 삶을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주권의 작동방식에 대한 책이며, 그러한 주권의 근본구조가 바로 예외상태임을 밝히는 책이다. 그리고 ‘호모사케르’ 연작의 두 번째 책인 『예외상태』는 예외상태의 구조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아감벤이 그토록 주목하는 예외상태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예외상태란 일상적인 주권적 질서 혹은 법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법질서를 중지하고 그 사태를 종식시킬 때까지 기존의 법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특수한 권력이 활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사태를 지칭하기 위해 ‘예외’라는 말을 쓰는 데서 알 수 있듯, 이는 일반적으로 정상을 벗어난 사태이자 매우 특수하고 특별한 사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아감벤은 그것이 정상으로부터 벗어난 특별한 사례라거나 비정상적 이탈이 아니라 사실상 정상적인 법질서를 떠받치는 은폐된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아감벤에게 예외상태란 오히려 일상의 법질서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힘이다. 이렇게 은폐된 예외상태가 전면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은 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질서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을 때이다. 그리고 이때 입법기관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으로 이양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예외상태는 전쟁이나 내전 등과 같은 비상사태의 발발로 인해 정상적인 법질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였을 때 선포된다. 물론 표면적으로 예외상태는 그러한 위기 상황을 다루기 위해 통치 권력이 취하는 형태이다. 하지만 아감벤에 의하면 예외상태가 다루는 보다 심층적인 대상은 전쟁이나 내전과 같은 소요사태가 아니라 그 소요사태가 불러일으키는 공포이다. 그렇다면 그 공포의 성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통치 권력이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는 무질서에 대한 공포이다. 다시 말해 법이 통제할 수 없는 혼돈, 즉 아노미아(anomia)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예외상태란 근본적으로 이러한 아노미아를 법의 형식, 혹은 주권적 질서의 외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과 질서 안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권력이 작동하는 형태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국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를 통해서 “예외 상태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 중의 하나 -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의 구분을 일시적으로 폐기하는 일-가 통치의 영속적인 실천으로 전환되는 경향”(『예외상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치 이후 ‘항구적인 비상 상태의 자발적 창출이 현대 국가의 본질적 실천이 되었다’고 아감벤은 말한다. ‘물론 소위 민주주의 국가까지도 포함해서’ 그렇다. 예외상태란 통치질서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벤야민이 말하는 ‘진정한 예외상태’란 바로 주권자가 창출하는 예외상태에 맞서기 위해서 제시된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예외상태는 메시아와 더불어 도래한다. 메시아 역시 현실적인(actual) 법을 중지시키는 자이다. 흥미롭게도 아감벤은 메시아가 도래시키는 ‘진정한 예외상태’ 역시 주권자의 예외상태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남겨진 시간』에서 아감벤은 예외상태의 일반적 특징을 ‘1)법률의 외부와 내부의 식별불가능성 2)법률의 이행불가능성 3)법률의 정식화불가능성’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특징은 주권적 예외상태나 메시아적 예외상태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양자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의 사유가 중요해진다. 바울에게 메시아의 도래는 언제나 율법(법,nomos)의 중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의 중지가 곧 율법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메시아는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한다. 중지가 의미하는 것이 폐지가 아니라 완성이란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감벤은 바울이 중지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한 고대 헬라스어 동사 ‘카타르게인’(katargein)의 의미에 주목한다. 아감벤에 의하면 이 동사의 의미는 ‘작동하지 못하게 하다, 비활성화 시키다, 효력을 멈추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감벤은 ‘카타르게인’이 바울이 자신의 사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전문용어임을 환기시켜 이 용어가 ‘작동/행위/현실태’의 뜻을 담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의 대착점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네르게이아가 현실태를 의미하는 헬라스 철학의 용어이기도 하다는 것이며, 이 용어는 가능태를 의미하는 ‘듀나미스’(dynamis)와 관련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어분석을 통해 아감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메시아의 도래를 통한 법의 중지(카타르게인)란 현실태(에네르게이아)로 작동하는 법을 다시 그 가능태(듀나미스)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메시아적인 것이란 율법의 파괴가 아니라 비활성화이며 수행불가능성이다.”(『남겨진 시간』) 법을 비활성화하고 수행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실태의 법을 가능태의 법으로 변용하는 것이며 이 변용이 바로 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슈미트의 주권이론, 즉 주권자가 창출하는 예외상태론은 메시아가 도래시킨 법의 중지에 맞서 여전히 법을 현실에서 작동시키기 위한 주권권력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메시아의 도래는 주권권력에게는 법이 위기에 처하는 아노미아를 의미하며 주권권력이 창출하는 예외상태는 바로 이 아노미아를 여전히 법의 형식 속에 붙잡아두기 위한 역설적인 법의 대응-법질서의 중지를 통한 법질서의 유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과 삶, 그리고 정치

아감벤의 다른 글들이 그렇듯이 『남겨진 시간』역시 그에게 던져지는 최종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법의 중지, 법을 비활성화하고 수행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의 가능태화란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전히 모호하다. 다만 주권이라는 괴물에 의해 조건지워진 오늘날 우리의 정치적 삶이 처한 근본적 한계를 아감벤의 논의는 다시금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더 좋은 법을 만들고, 그러한 법을 만들 수 있는 더 좋은 주권자를 선출하는 것에 온통 정치적 관심이 쏠려있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아감벤은 주권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언제든지 주권적 예외상태에 내던져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권자가 창출한 예외상태를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주권자의 법을 넘어 법을 삶의 구성을 위한 가능성들의 조합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감벤의 메시아적 정치학은 우리에게 이 문제를 사유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하고 있다.




글 / 정정훈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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