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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바깥의 문학]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최진석_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회원 1. 리듬과 감응, 유물론의 시학 유물론적 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i Plekhanov)는 예술의 오래된 기원 중 하나로 리듬에 대한 감각을 꼽은 적이 있다. 그의 예술론을 모아놓은 『주소 없는 편지』(Pis’ma bez adresa, 1899)에 따르면, 원시사회에서 노동이란 파편화된 각자의 힘을 단일한 집합성으로 끌어모으는 과정이고, 그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은 다수의 인간을 하나로 엮어내는 몸의 감각 즉 리듬이라는 것이다. 플레하노프가 유물론적 혁명가이자 정치철학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이 새롭거나 놀라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채롭게 보아야 .. 더보기
다니엘 벤사이드: 현실의 모든 지점에서 정치를 시작하라! ▲다니엘 벤사이드(Daniel Bensaid, 1946-2010) 몇 해 전 모스크바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늦은 밤, 모스크바에서 가장 화려한 대로 중 하나인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수많은 인파(주로 노인들)가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느린 걸음으로 행진하던 그들은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책이나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레닌의 사진도 걸려있었다. 한 피켓에는 “레닌의 당, 인민의 힘”(구 소련 국가의 가사)이란 문구도 적혀 있었다. 러시아 공산당의 기념 행진이었다. 나는 그제야 그 날이 10월 혁명 기념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흥분과 감흥에 사로잡혔던 내게,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던 어느 러시아 젊은이의 한 마디는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때가 어느 땐데 .. 더보기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 미하일 바흐찐의 <예술과 책임>(뿔, 2011) “오빠가 돌아왔다!” 1980년대 한국 비평계와 지성계에 민중 문화 담론을 촉발시키고서 홀연 사라졌던(?!) 바흐찐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러시아어 완역본’이라는 휘장을 감고서. 물론, ‘문화의 시대’를 선언하던 1990년대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군주가 지배하던 2000년대에 그가 온전히 종적을 감췄던 것은 아니다. 그의 최대 주저(主著) 중 하나인 (아카넷, 2001)가 번역되었고, 몇 권의 전문 연구서들이 간간히 번역·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태두’였던 루카치와 나란히 거론되고, 한때 구미권에서 ‘바흐찐 산업’이라는 표현이 떠돌 정도로 명성과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지난 20년간 바흐찐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초라해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그가 ‘돌연’, 혹.. 더보기
미하일 바흐찐, 또는 신화의 귀환 ― 한국어판 선집 간행에 부쳐 한국사회와 바흐찐, 첫 번째 만남 우리나라에 바흐찐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였다. 루카치로 대표되던 맑스주의 문예이론의 엘리트주의를 넘어서는 한편으로, 문학과 예술의 민중적 토대에 대한 모색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바흐찐은 문화를 루카치처럼 ‘해방’과 ‘진보’의 위대한 이념이 전개되는 과정이 아니라, ‘대화’와 ‘웃음’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종합되고 역사 속에 풀려나오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그가 보기에 문화는 평범한 민중들의 삶 자체가 일으키는 사건에 다름 아니었고, 이는 ‘민중문화’를 노래하던 80년대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혁명의 고향인 러시아 출신의 이론가라는 사실은 바흐찐을 ‘신화적’ 위광 속에서 조명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다... 더보기
러시아와 들뢰즈,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사유 * 러시아어판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선배의 블로그를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의 (Tysyacha plato : kapitalizm i shizophreniya)이 작년 말 러시아어로 완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Yakov Svirsky 옮김, U-Faktoriya, 2010). 코뮨에서 생활하며 부딪혔던 사유와 삶이라는 문제 외에도,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는 중요한 인용 전거 중 하나였다. 그때 “혹시나 이제라도 러시아어로 번역된다면 직접 번역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하며 기다렸는데, 늦었지만 반가운 감이 들었다. 이제 이 러시아어로 출판됨으로써, 들뢰즈의 거의 모든 저술들을 러시아 도서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만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들뢰즈와 러시아는 대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