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돼지 사체가 퍽 소리와 함께 땅 위로 솟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며칠 전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기사 제목이다. 만약 몇 년 전쯤 이 기사 제목을 봤다면 어땠을까. SF영화나 장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구제역으로 파묻은 돼지 사체가 따뜻한 날씨에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 매몰지에서 솟아올랐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말이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지금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있다. 이 비에 매몰지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들이 쏟아지고 있고 어디선가 침출수로 의심되는 폐수가 쏟아졌다는 소문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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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는 매주 월요일 문학 세미나가 열린다. 이 세미나에서는 주로 ‘문학은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묘사하는가’를 주제로 문학사회학을 공부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누군가는 한물 같다고 말하거나, 그거 예전에 다 읽은 거 아니야? 하고 말하는 책들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에리히 아우얼바하’의 『미메시스』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텍스트는 관점은 조금은 다르지만 문학 혹은 예술이 현실을 어떻게 묘사하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그 형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핀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리얼리즘 문학이 태동하고 부흥하던 19세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세미나 내내 우리의 머릿속에는 ‘리얼리즘’이란 뭘까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왜냐하면 발자크, 스탕달, 플로베르 이들 모두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로 소개되고 있지만 우리가 알기론 너무나 다른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은 그렇다고 치고 우리가 흔히 한국 소설에서 리얼리즘 작가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또 어떤가. 다 같은 리얼리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간극이 크지 않는가. 이런 고민에 딱 맞는 대답이 하나 있긴 하다.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리얼리즘은 확인되고 고정되어 전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는 말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는 곤란함을 표현했다.

 

눈을 뜨면 공통된 한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리얼리즘이 단순한 기록의 과정이며,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을 창조해내며, 이 인간적 창조는 필연적으로 적극적이다. 그러니 수동적인 관찰자의 낡고 정적인 리얼리즘은 이제는 굳어버린 관습에 불과하다.  -레이몬드 윌리엄스, <기나긴 혁명>

 

그렇다. 리얼리즘은 그냥 관찰하고 세상의 표면을 그리는 낡고 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많이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리얼리즘에 대한 오해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누군가는 문학이 현실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신문기사마냥 묘사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리얼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기준 때문에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기존의 통념들에서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는 문학들이 때때로 ‘지금 우리 사는 이야기잖아’라는 말로 ‘리얼한 문학’, ‘좋은 문학’으로 치켜세워지기도 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과거형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말처럼 ‘수동적인 관찰자의 낡고 정적인 리얼리즘’을 뛰어넘어 새로운 리얼리즘을 창조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리얼리즘은 바로 이런 소설이 아닐까. 아직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으나 분명히 있는 것. 잠재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리얼리즘이 아닐까.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개구리들은 대부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스팔트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거나 지나가던 소독차에 깔리기도 했다. 그러면 아스팔트는 붉은 꽃을 피웠다. 어두운 거리에 그들이 흘린 피와 찢어진 살갗이 불빛처럼 빛났다.

-편혜영, <아오이가든>



편혜영의 <아오이가든>의 도입부이다. 나는 요즘의 구제역 사태를 묘사하는 신문 기사를 볼 때마다 편혜영의 소설이 자꾸 떠오른다. 이 단편이 실린 동명의 소설집 <아오이가든>은 2005년 7월에 나왔다. 소설집이 나온 것이 이 때이니 아마 이 단편이 쓰인 지는 그보다 1~2년 앞설 것이다. 사실 편혜영 소설만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재앙을 예고했던 작품이 많다.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거나 이미 지금 이 순간의 일이어도 너무 어리석어 미처 알아채지 못한 현실의 어떤 패턴을 낯선 공간에 옮겨 구체화시킨 것이다.

 

이 단편 소설에 나오는 ‘아오이가든’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희미하다. 주인공은 이름도 없고 나이는 몇 살인지 언제부터 집 밖에 나오지 못하게 됐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아오이가든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에 알 수 없는 역병이 돌면서 사람들은 모두 집 안으로 숨는다. 문을 열면 역병에 걸린 개구리 사체가 우루루 쏟아지고 주인 잃은 개와 고양이는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누군가 아파도 비밀로 해야 한다. 바로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격리 조치를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정체 불명의 역병과 싸울 때 얼마나 나약해지는지, 그것을 봉합하기 위해 얼마나 비열한 수단들을 쓰는지. 그리고 그 괴물 같은 역병은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지. 시체들이 나뒹구는 현실이 서 있는 토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같은 소설집에 있는 <맨홀>이라는 단편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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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장을 뒤지는 동안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 얼어 죽은 아이의 시체를 건드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얼어 죽은 아이들은 소각장에 그냥 버려졌다. 소각장에서는 다른 냄새에 섞여 시취를 맡지 못할 때가 많다. 쓰레기를 뒤적이다가 시커멓게 썩은 몸통과 얼굴을 만날 때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되어 소각장에 던져질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편혜영, <맨홀>


처음 이 소설을 읽었던 몇 년 전. 나는 이 소설을 ‘특이한’ 작품 혹은 세상의 끔찍함을 동물의 시체들로 ‘은유’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소설을 완전히 잘못 읽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분명한 현실을 그린 리얼리즘 소설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중요한 리얼리스트는 누구나 다 객관적 현실의 합법칙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리고 깊숙이 감추어진 채 매개되어 있어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사회현실의 제반 연관관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추상기법을 써서까지도 자신의 체험내용을 가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작가가 드러낸 현실이라는 표면구조는 ‘삶의 표면구조를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요인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단순히 보이는 것을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게 리얼리즘이라면 수천만 달러를 들인 헐리우드 영화나 자극적인 영상을 담은 텔레비전 뉴스 보도 화면이 가장 리얼리즘에 가까울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이 현실이란 표면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지 모든 구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표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작업이다. 매 순간 보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많은 순간 왜곡된 것이거나 그저 정말 말 그대로의 ‘표면’일 때가 많다.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리얼한 문학은 필수적이다. 아래에 인용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라. 왠지 낯익은 풍경 아닌가.

 

그녀는 베란다 유리창을 열었다. 거리의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뱃속의 것을 게워냈다. 붉은 내장들이 계속 쏟아졌다. 고양이의 것인지 내 것인지 헛갈릴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꿰맨 자국이 있는 뱃가죽이 튀어나올 때까지 구역질이 멎지 않았다. 그녀는 누이의 뱃속에서 나온 수십 마리의 붉은 개구리들을 바깥에 쏟았다.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개구리들을 따라 발돋움질을 했다. 그것들은 내 누이의 아이들이었다. 베란다를 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가늘고 단단한 다리를 접었다가 훌쩍 튀어 오르니 바깥에 닿았다. 이윽고 거리의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만으로 아오이가든 너머로 나뭇가지처럼 가벼운 다리를 벌린 채 비강을 활짝 열었다. 죽은 새끼들이 썩은 몸을 일으켜 긴 소리로 울며 낙하하는 나를 마중하였다. -편혜영, <아오이가든>


 

 

글/화(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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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다, 7080코드

 

‘세시봉’ 지난 설 연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이다. 이와 함께 지식인에는 ‘세시봉특집 보고 감동 먹은 1인입니다. 세시봉 특집에서 나온 노래 가사 좀 알려주세요~’ 등등 세시봉 관련 질문들이 올라왔다. 가히 전 국민적인 열풍.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1960·70년대 포크 음악 역사를 공부하고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인터넷 포털이 시끄럽다면 전국민의 교육 매체인 방송이 뭔가 한 건 크게 터뜨린 것이다.


 이번 대박 강의는 바로 M사의 놀러와 였다. 세시봉 특집 콘서트를 1, 2부로 나눠서 편성한 것인데 40년 전 불렀던 그 시절 그 노래를 그때 그 친구들과 우정의 하모니로 선보였다. (물론 나는 본방 사수는 안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운로드해서 봤다.) 그 덕분에 진보와 보수,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이들까지 모두 리모콘 싸움 없이 무난하게 시청했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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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률조사기관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세시봉 콘서트' 2탄은 동시간대 방송인 KBS '승승장구' 8.0% 와 SBS '강심장'9.9%를 훨씬 앞서는 16.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최강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

 

 

제작진 역시 기쁠테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시청률까지 잡았다고 하니. 방송국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그 기분 알 것 같다. 사실 그냥 분위기만 좋으면 말짱 꽝이다. 시청률이 좋아야 진짜 좋은 것이지! 여기 저기서 재밌다고 댓글이 달리고 블로그에 캡쳐 화면이 떠도 시청률에 반영이 안되면 아무 소용 없는 게 방송이다. 방송에 있어선 아직도 시청률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현재의 시청률 조사 시스템은 너무나 비합리적이며 알 수 없는 방식이다. 알만한 분은 알겠지만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어쨌든 토끼해 벽두부터 놀러와는 두 마리 아니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다. 재미, 감동, 시청률!


세시봉 콘서트 이후 기사들을 보면 모두들 ‘40년 전에 활동했던 이들의 노래가 아직도 인기가 있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고, 이렇게 큰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들 한다. 그런데 정말 몰랐을까. 이것은 정말 기이한 현상일까. 아니다. 세시봉 콘서트 대박은 지금 현재 우리 방송가나 대중문화 전반에 있는 복고, 향수, 서정성, 등등 주요 키워드가 집약된 결과다.


이미 이런 현상은 라디오에서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주 청취층이 중년층 이상이고, 또 일대일 교감을 강조하는 매체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루 종일 어제도 들었고 내일도 어딘가에서 들을 것만 같은 그런 무난하면서도 서정적인 7080음악만 고집하는 프로그램이 단연 인기다. 아무리 디제이 목소리가 좋아도 기발한 코너가 있어도 글을 잘 써도 소용없다. 7080의 향수를 자극해야만 한다. 공연이나 영화 시장 역시 그러하다. 과거 인기 있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각색하고 그 당시 하이틴 스타를 등장시키면 웬만한 청춘 영화 보다는 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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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명동엔 세시봉 외에도 다양한 음악다방이 많았다.

명동의 <마이하우스> <쉘부르> <로즈가든>, 소공동의 <라스베가스> 등은 문화의 용광로라 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제법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7080세대가 높아진 경제력으로 문화 소비의 주 대상이 됐기 때문에, 또 워낙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위로 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7080문화가 인기라고들 한다. 이런 전문가들의 분석에는 사실 몇 가지 무리가 있다. 7080이라는 세대론 자체가 원래는 서울에서 이 시대에 대학을 나온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이 보다 더 윗 세대까지 이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세대론이 늘 그렇듯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틀이기 때문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들어진 틀대로 욕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대충 요약하자면 그 시절 고생 고생 하다가 살아남은 전설! 이 레전드는 세시봉 친구들만이 아니다. 그 시절부터 지금 까지 죽거나 망하거나 하지 않고 살아남은 세대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었는가. 70년대는 우리 현대사 중 가장 엄혹했던 시절 중 하나다.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지곡이 양산됐고, 대학생들은 대학생들대로 데모하느라 힘들고, 대학에 진학은 꿈도 못 꿔보고 통기타 문화·히피 문화 뭐 이런 낭만도 모르고 그저 일만했던 우리 부모들까지 각각에겐 그들 나름의 못 이룬 꿈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시절이 하나의 소비재로 잘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7080 문화 앞에서 우리는 같은 추억을 공유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그 시절 서울에 살았건 지방에서 공장에 다녔건 말이다. 도식적인 나눔이긴 하지만 이것은 지금 현재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 지를 판가름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차이인데도 말이다. 차이는 모두 무너졌다. 이 7080문화 앞에서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한 전설의 세대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그래도 지금은 그때 보다 더 낫지 않느냐라는 논리로 나아간다. 아! 누군가가 연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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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모여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화목한 모습. 당신의 가족은 어떤가. 이런 모습이 가능한가.

혹시 이렇게 화목한 모습이 아니라 부끄러운가. 부끄러워 말라. 알고보면 이런 화목한 모습 별로 없다.

그리고 겉보기만 화목할 뿐 각자 방에 가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를일이다.)

 

따뜻한 안방에서 70년대의 낭만을 추억하고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한 가족. 부모세대 혹은 삼촌, 고모들은 ‘역시 노래는 송창식이지. 요즘 애들 노래는 죄다 이상해.. 봐라 니 좋아하는 그 놈들은 라이브도 못하잖냐’ 그리고 아버지는 그 시절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해 자식을 키우느라 못다 이룬 꿈을 이야기 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아버지의 잔소리는 싫지만 환갑 넘은 할아버지들이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게 멋있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어쨌든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고생한 건 사실이니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지. 결심했던 이 가족의 설날 풍경은 따뜻했을 것이다.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세시봉이라는 달콤한 당의정이 입혀진 알약을 삼켰다. 그리고 오늘도 평온했으며 심지어 잘 몰랐던 아버지의 아름다웠던 청춘 시절까지도 나누었다는 착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우리가 이렇게 텔레비전을 통해서 부모세대와 소통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부모 세대 뿐만 아니라 어쩌면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저 멀리에 있는 그들과 함께. 잘 들여다 봐라. 그들과 나는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 자꾸 재미와 감동 앞에 우리는 하나라고 말하는 그들. 시청률까지 잡았으므로 옳은 명제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을 의심해봐라. 지금 이 현실을 견디는데는 추억이나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당의정이 입혀진 알약이든 뭐든 먹어야만 한다고? 그래 정 그렇다면 먹어라. 하지만 깨고 나서의 그 절망은... 나도 모른다.

 

글 / 화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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