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두 번째 트랙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다. 연구실에 자주 접속한 친구들이라면 들뢰즈·가타리 이름은 번쯤 들어봤을터인데... 그의 다른 저작 중에서도 『안티 오이디푸스』를 선택한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지난 트랙 1에서 맑스의 『자본』을 읽고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는데는 뭔가!?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 맑스의 『자본』을 읽고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들뢰즈·가타리를 만나면 조금은 해소가 되지 않을까? 혹은 어떻게 증폭이 될까? 여기저기서 트랙 2 강의에 대한 질문들이 들린다.

 

그동안 좀처럼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학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강의 준비(?)와 집필 활동(?)에 여념이 없었다는 최진석 선생님을 만나 궁금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 이들테면 “왜 하필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입니까? 절판되서 책 찾기도 힘든데용?” 같은 기초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왜 지금 우리는 들뢰즈·가타리의『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어야 할까?

 

 

인터뷰어 / 화 (불온한 인문학 튜터)

인터뷰이 / 최진석 (불온한 인문학 강사)

 

 

 

: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는 선택한 이유는 뭔가? 들뢰즈의 다른 책들도 많은데~ 그 중에서 『안티 오이디푸스』를 고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진석 : 들뢰즈·가타리가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란 제목으로 책을 두 권을 냈다. 첫 번째가 『안티 오이디푸스』 (L'Anti-oedipe : capitalisme et schizophr nie)고 두 번째가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 nie 2)이다. 들뢰즈는 워낙 전방위적인 철학자이기 때문에 책 마다 특별한 제목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분열증이란 시리즈로 나온 것은 사회철학에 해당하는 책이다.

내가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다. 『안티 오이디푸스』가 들뢰즈의 사회철학책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내가 기대하던 사회철학과 이미지가 다르더라.

 

 

화 : 그 때가 대략 몇 년 전?

 

진석 : 90대 중반에 처음 읽으니까... (자세한 건 묻지 말라... ㅠ)

어쨌든 그 당시 사회철학 하면 마르크스나 헤겔을 생각하거나 좀 세련된 사람이라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 들을 이야기 했다. 그런 책들의 특징은 굉장히 논리정연하고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고 피아를 분명히 구분한다. 그런데 『안티 오이디푸스』는 사회철학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상당히 깨더라.

 

 

 <그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오???

 

 

 

: 뭐가 그렇게 깼나...?

  

진석 : 무엇보다도 전혀 이해할 수 없더라. (웃음) 재밌는 것은 『안티 오이디푸스』 첫 문단에서 ' <그것>은 어디서나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멈춤 없이, 때로는 중단되면서. <그것>은 숨쉬고, <그것>은 뜨거워지고, <그것>은 먹는다. <그것>은 똥을 누고 성교를 한다. 그것이라고 불러버린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어디서나 그것들은 기계들인데, 결코 은유적으로가 아니다.' 라고 한다. 여기서 <그것>은 어떤 대명사가 아니라 사실은 이제 사회전체 혹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감싸고 존재하도록 만들면서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힘 즉 생성력에 대한 이야기 이다.

 

 

: 그래도 『안티 오이디푸스』읽으려고 시도 했다가~ 문단 보고 뭔말이야? 하고 덮었단 친구들도 많더라. 도대체 그 <그것>이 뭔지 도통 감이 안온다~

 

진석 : 프로이트로 따지면 리비도(Libido) 같은 것이다. 사실은 그런 힘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힘의 장 힘의 무대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하는 가가 바로 사회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티 오이디푸스』는 사회철학적이고 역사철학적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사실 이런 걸 안 건 굉장히 나중의 일이다^^)

 

 

: 들뢰즈·가타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이 있을 것 같다.  다른 사회철학과는 어떻게 다르던가?

  

진석 : 사회철학이나 역사철학이란 관점에서 이 책을 볼 때 들뢰즈와 가타리가 전제하는 것이 있는데 삶이나 사회의 역사에서는 항상 중심화하는 힘이 있고 그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힘이 같이 있다는 거다. 전자를 구심력 후자를 원심력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 힘의 상호관계가 특정한 사회형태를 결정짓기도 하고 사회가 다른 사회로 변화하게 하는데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확장적인 측면을 가지면서 모든 것을 중심적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이때 이 자본주의를 중심화하는 힘, 사회의 모든 방면으로 확장하는 힘이라는 것이 자본의 힘이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봉건사회다. 봉건사회에서는 신분이라는 규칙이 절대적이었다. 가령 양반과 상민은 결코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분리돼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도 있다. 돈 많은 상민이 양반 신분을 산다. 그리고 그는 양반 행세를 한다고 큰 갓도 써 보고 기와집도 올린다. 그렇게 해 봤는데 양반들이 인정을 안하고... ‘저 놈은 원래 상민 출신이다.’ 결국 별로 재미를 못 봤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신분이라는 규칙(코드)다. 이 신분이라는 규칙(코드)은 봉건사회에선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지 않느냐. 과거로 가면 갈수록 신분을 규정하는 벽이라는 것은 더 두텁고 강했다. 한 사회가 통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와서는 완전히 변한다. 잘 알다시피 ‘돈’이면 안되는 게 없지 않느냐. 내가 물건을 파는데 ‘양반한테만 팔고, 상민한텐 안판다?’ 아니지 않느냐. 돈은 이전의 신분 관계를 해체 시키는 힘이다. 또한 과거에 있었던 유기적인 공동체 역시 다 파괴한다. 씨족 공동체, 지역 공동체가 화폐가 도입되면서 무의미하게 됐다.

 

화폐라는 것이 교환형태가 되면서 돈에 의해 모든 것이 평등하게 환원되어 버리는 이런 상황이 자본주의 체제의 보편성이다. 돈이라는 규칙. 신분이 아니라 돈이라는 규칙이 자본주의 사회를 재패했다. 이것을 들뢰즈·가타리는 초코드화 라고 했다. 자본주의는 굉장히 모순적인 양면성을 갖는다. 자본은 모든 것을 평등하고 공평하게 만들어주지만. 자본이 없다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화폐 없이는 그 무엇도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

 

겉보기에는 자본주의는 평등하고 이상사회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돈이라는 규칙.. 그 누구도 화폐를 통하지 않고선 세상에 나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돈을 벌지 않을 수 없고.. 돈을 벌어야 하는 규칙에 종속되지 않고선 살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화폐에 대한 중심화이다. (이 내용에 대해선 “불온한 인문학” 트랙 1『자본』 강의에서 열심히 배웠지요? ^^)

 

 

 

 

 

목요일엔 『안티 오이디푸스』를 토요일엔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 “불온한 인문학”은 목요일 강의와 함께, 토요일엔 함께 책을 읽는 집중 세미나를 하고 있다.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는 목요일 강의를 통해서 만난다면 토요일 세미나에서는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읽는다. 권의 책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도 궁금하다.

 

진석 : 빌헬름 라이히는 20세기 초에 독특한 정신분석 학자였다. 그는 대단히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당시에 사회 하층부를 형성하고 있었던 노동자 계급이 분명히 계급의 해방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 지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 한국 정치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왜 계급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진석 : 그렇다. 빌헬름 라이히도 아는 것과 실천이 확연히 분리되는 현상 목격한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노동자들도 돈의 규칙을 따르는 한에서 그들이 품고 있었던 계급 해방의 욕망이라는 것은 사실 자본가들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식에 있어서는 자본가들에게 반대했지만 그들의 욕망에 있어서는 자본가들에게 타협하거나 종속돼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라이히가 던진 질문이 “왜 대중은 혁명적이지 않는 가” 다.

 

들뢰즈·가타리는 질문을 이어받아서 이렇게 대답한다. “문제는 대중이 혁명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욕망이 혁명적인가 아닌가” 다. 혁명의 열쇠 혹은 해방에 대한 잠재력은 어느 누구에게 어떤 계급에게 본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법칙이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빠져나가지 않는 힘 종속되지 않겠다는 욕망 자체에 있는 것이다.

 

말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을 사회적으로 건전하다든지 바람직하다는 기준과 분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학교 가고 좋은 회사 입사하고 잘 먹고 잘 살라.’ 는 사회의 요구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 죄의식을 갖게 한다든가 혹은 잘못된 삶을 살지 않나. 하는 불안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 욕망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 그 불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욕망이 혁명적일 수 있을까?’ 를 궁금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처럼 사는 걸 욕망하는 게 그렇게 나빠요?’ 하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더라.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욕망을 줄여라. 이런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진석 : 보통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을 보자. 이것들은 사실 대부분이 타자의 욕망이고.. 사회가 나에게 명령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타자의 욕망이 다 나쁘냐’ 그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우리의 활동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어느 누구의 활동도 동일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놓여 있는 맥락 상황은 서로 다르다. 거기에서 욕망의 선이 나에게 주어질 선을 따를 때와 아닐 , 각각의 경우가 다르다. 원칙에 따라 다른 것이다.

 

문제는 동일하게 ‘이것은 좋은 것이다.’ 하고 다른 욕망의 가능성을 꺾어버릴 때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타성적인 존재니까 ‘정말 그래’ 하고 쉽게 길들여지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번 강의를 듣다보면 타성적인 우리의 존재에서 ‘야성“을 끌어 낼 수도 있을까?

 

진석 : 하하~기대하시랏~

 

 

 

: 안티 오이디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혁명, 욕망~ 그리고 야성? 이런 단어가 나오니 흥미가 돋긴하는데~ 문제는 너무 어려워보인다! 『안티 오이디푸스』와 친해질 있는 좋은 방법 없나?

 

진석 : 『안티 오이디푸스』는 읽어 보는 것이 좋은데 쉽지 않다. 현재 나와 있는 판본은 절판인데다가 최선의 번역본도 아닐 뿐 더러 원래 내용 자체도 쉬운 내용이 아니다. 일단 빌헬름 라이히의『파시즘의 대중심리』를 토요일 집중세미나에서 읽으면서 강의 예습을 하시고, 목요일 강의를 듣고,『안티 오이디푸스』를 직접 읽으면서 복습을 하면 어떨까. 중간 중간 읽어야할 프로이트 논문도 몇 편 있다. 그것도 조만간 공지할 예정이다. 이렇게 읽는다면 아마도~! 그 어렵다는 『안티 오이디푸스』의 출구를 찾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 혹시 출구만 있고 나가는 문은 없는 거 아닌가?

 

진석 : 하하^^ 그건 책임 못지겠다~~

 

 

 

10주동안 강의를 맡아줄 최진석 선생님~ 기대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마디로 한다면?

 

진석 :『안티 오이디푸스』는 욕망의 해방에 관한 책이다. 욕망의 해방은 결코 범죄도 아니고 살아있는 존재에겐 필연적인 충동이다. '욕망해도 좋다.' 라는 것이 이 책의 중심테마다.

 

 

 

 

 

빽빽한 메모로 가득한 최진석 선생님의 『안티 오이디푸스』. 그가 풀어낼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5월 21 개강-10주 과정]

Ⅰ 트랙 2 강의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Ⅱ 트랙 2 세미나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대중의 흐름과 욕망의 정치학-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황선길 옮김, 그린비

고병권, 『추방과 탈주』, 그린비

 

트랙 2 강의 안내는 요기!

http://nomadist.org/xe/bulin/12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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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말처럼 좋은 철학이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삶이 어려워질수록 삶을 긍정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일 것이다. 삶이 ‘편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편한 삶, 좀 더 잘 벌고 좀 더 잘 쓰는 삶으로 대체되고, 삶이 힘들어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강해지고,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은 절실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좋은 학교, 좋은 집, 많은 돈이 그것을 가려간다. 이제라도 다시 눈을 돌려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황금빛 장막을 걷어치우고, 거기 가려진 삶을, ‘새로운’ 방식의 삶을 찾아야 한다. 철학을, 좋은 철학을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이 ‘큰 배움’의 장이 아니라 직업학교가 되고, 돈의 장막을 몸에 덮어씌우게 된 지금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강의는 ‘큰 배움’을 꿈꾸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되었다. 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근대적 삶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사유할 수 있는 촉발을 제공하고자 한다. 어떤 철학적 사유의 결론을 배우긴 쉽지만, 그런 사유의 방법을 배우는 건, 그리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일련의 연속강의를 통해 함께 사유하는 철학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토요일] 강의: 노마디즘 1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예언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그게 사실일 것임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들뢰즈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잠시 시작되는 듯하다 중단되고 만 것은 무엇보다 그의 책이 갖는 난해함 탓일 겁니다. 사유의 깊이를 잴 수 없게 하는 난해함. 이번 강의는 들뢰즈 사상의 개요에서 시작하여 <노마디즘 1>을 함께 읽으며 그의 가장 중요하고 풍요로운 면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유목민의 전차를 모는 사유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개강: 5월 7일




 

[일요일] 세미나: 인디언의 사상

“유목민은 역사를 쓰지 않는다.”(들뢰즈/가타리) 또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과 사상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화나 제의 등이 그것이었다. 백인들과의 적대적 만남, 혹은 인류학자들과의 우호적 만남을 통해 그것들은 부분적이나마 문자로 기록되었다. 인디언은 이런 유목적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이번 세미나는 인디언 추장의 말이나 인류학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들의 사유와 만나고자 하며, 그것을 통해 근대와 다른 종류의 삶에 접근하고자 한다.


개강: 5월 8일



이 강좌는 크게 2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이진경이 주도하는 강의는 길을 가기위한 지도를 제공합니다. 또 하나는 세미나인데, 이는 스스로 지도를 읽고 찾아가는 훈련의 장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강의와 세미나를 모두 참여하셔야 합니다.  (문의: 유심 ㅇ11-9571-15ㅇ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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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인문학이 선택한 두 권의 뜨거운 책

 

-맑스의 『자본』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

 

예고 해 드린 대로 [불온 통신 1호]

'내 친구, 불온한 인문학 강사팀을 소개합니다.’에 이은

두 번째 인터뷰기사입니다^^

지난 기사는 요기! 클릭! http://nomadist.org/xe/79462

 

 

이번 기사는 불온한 인문학 1기 강의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불온한 인문학 강의는 1트랙은 맑스의 자본,

2트랙은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 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세미나 소개도 조만간 업뎃할 예정입니다.

 

 

이기자 : 20주 동안 진행 되는 커리에 맑스의 『자본』이 있던데. 자본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솔직히 언뜻 생각하기엔 ‘불온함’과 ‘자본’의 만남 이럴 줄 알았단 생각도 드는데?

 

정훈: 그런 반응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이야 말로 자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자본을 그저 좋은 책으로 고전으로 읽는 건 아니다.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 자본을 쉽게 풀어 쓴 책을 읽거나 자본을 그저 고전으로 읽는 움직임들이 느껴져서다. 그런 모습은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런 움직임은 『자본』이 이 사회에 아무런 위해요소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지. 이건 문제다.

 

진석 : 러시아에서는 자본론 번역이 처음 됐을 때 검열자가 읽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냥 허가를 내줬다고 한다. 뭐 설마 이렇게 어려운 걸 얼마나 이해하겠나. 이런 생각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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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떡볶이를 파는 이 시대에 자본을 읽는다는 것.

 

정훈 : 어렵지만 유명하니까 읽고 그게 꼭 나쁘진 않지만 역으로 드는 생각이 자본주의가 계속 지속되고 있는데 요즘은 대기업이 떡볶이 까지 판다는데 이런 시대에 자본을 읽는 것이 하나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간혹 지금 권력이 작동되는 방식과 동떨어져서 ‘헤겔, 리카르도 등등을 나는 다 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정도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전문가주의적으로 읽는 경우. 혹은 말랑말랑하게 소화가 다 된 상태로 강사가 알려주는 데로 받아들이는 것.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문제다. 이게 다 맑스의 『자본』을 무기력한 낡은 유산으로 읽어서다. 내가 보기엔 그럼 맑스도 싫어할 것 같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전화로 해고를 통지하고, 청소 노동자에게 식비 300원을 주는 이런 세상에서 자본을 읽는 행위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해피 : 맑스의 자본은 누구랑 어떤 입장에서 읽는 것도 매우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지난 가을 연구실에서 맑스 콜레기움하면서 느꼈다. 맑스의 자본을 정치·철학과 같이 읽으니까 자본이라는 책이 주는 폭발력이 더 강렬했다.

 

(*콜레기움 : 정정훈 선생과 함께 ‘맑스와 정치, 혹은 혁명과 코뮨의 정치철학에 관하여’ 라는 주제로 2010년 10월 부터 12주 동안 맑스의 저작을 함께 읽었던 프로그램이다. http://nomadist.org/xe/collegium/28937)

 

이기자 : 이번 불온한 인문학 강의에서 읽는 자본 역시 각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읽는다면 더 재밌어 질 것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좌중 동의^^) 그런데 설마 자본 5권을 다 읽어야 하나?

 

정훈 : 모든 사람들이 자본을 안 읽어도 된다. 오히려 자본을 읽기 위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강의를 충분히 듣고 스스로 읽을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자본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듣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본을 읽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좋겠지. 필요하면 별도의 세미나를 꾸려서 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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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 두 번째 트랙은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다. 어떤 책인가.

 

진석 : 『안티 오이디푸스』는 현대의 고전이다. 그런데도 자본이랑 비슷한 운명을 밟는 것이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자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수학 나올까 걱정 돼서 못 읽고. 안티 오이디푸스는 읽어 보려고 해도 아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도 있더라.

 

원제목은 ‘안티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L'Anti-oedipe :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이다. 이때 스키조프레니(schizophrénie) 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정신 분열증이 아니다. 이건 분열증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보통 사람들은 아 자본주의 때문에 정신 분열증 생긴 갑다.. 이렇게 이해도 하더라. 그런데 아니다. 자본주의와 분열증은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때 지나가던 한 세미나 회원 ‘아~ 나도 자본주의 때문에 정신분열증 생긴단 소린 줄 알았어~헤헤’ (웃을 때가 아니지요. 공부하세요^^)

 

진석 : 스키조프레니(schizophrénie) 는 임상적인 의미의 정신 분열증이 아니라 분열증, 분열자가 되자는 말이다. 들뢰즈의 개념어에 익숙한 사람은 알겠지만 다양체를 지향한다든가 다양체를 만드는 것, 특수한 회로를 벗어나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관과 태도 지배적인 시선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분열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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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맞선다는 것? 분열증자가 되자.

 

진석 : 흔히 정신병이 있으면 이야기하기 힘들다 생각 하는데, 논리가 서로 대립되고, 합쳐 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이해하는 포인트라 생각한다. 내 의식 감정에서는 불편하지만 일상생활은 자본주의가 지시하는 그대로 따라 산다. 그래서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주의에 맞선다는 것. 가장 강력한 힘은 아예 다른 언어 논리로 맞장을 뜨는 것이다.

사실 실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양상은 달라지겠지만. 믿고 따르고 의식하던 일상의 규율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논리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상이한 논리 언어가 스쳐 갈 때 지속적으로 잡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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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자본과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 두 권 모두 만만치 않은 책이다.

꼭 한 번 독파해야겠다는 의무감에 사놓고 길을 잃었던 이라면 이번 기회에 '불온한 인문학'을 접속해보면 어떨까.

 

다행히 이번 '불온한 인문학' 강의에서는 이 두 권의 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강사와 튜터가 도와준다고 한다.

 

설령 이 두 권의 책 모두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문제적인 두 권의 책을 좋은 친구들과 함께 첫 만남을 하는 것도 큰 행운 아닐까.

 

 

글/이기자

 

 

 

 

 

<안내>

* 불온한 인문학 1기 주요 프로그램

 

I. 맑스의『자본』 입문 ― 다시, 반(反) 자본주의의 깃발을 들자!

II.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o 강 사 : 정정훈 · 최진석

o 세미나 튜터 : 정행복 · 문화

 

1. “불온한 인문학”은 2011.3.3.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욕망 이론과 대중 정치를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1.20.목요일 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우리은행 1002-043-230955 (예금주 : 문화)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 http://nomadist.org/xe/bulin )에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정행복 010-9404-8403, 문화 010-62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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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디스트

* 노마디스트 수유 너머 N ‘불온’을 고민하다.

 

 

2011년 새해가 밝은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당신의 2011년 새해 계획은 무엇인가. 매일 쳇바퀴 돌듯 지나가는 일상을 탈피하고자 뭔가 새롭고 신나는 일을 계획하진 않았는지. ‘올 해 만은 살을 빼겠다. 영어를 정복하겠다.’ 등등. 1월만 되면 돌아오는 뻔한 결심을 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헬스클럽, 영어학원은 일 년 중 일월이 가장 성수기라고 한다. 하지만 번번이 시간이 지날수록 결심은 희미해지고 계속 다닌다 해도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은 계속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당신의 활동 영역을 살짝 바꿔보면 어떨지. 여기 ‘노마디스트 수유 너머 N’이 야심차게 준비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있다. ‘불온한 인문학’ 1기! 기존의 인문학 강좌와는 어떻게 다르며 그리고 ‘불온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 저것 궁금한 것이 많다. 이번 인터뷰는 ‘노마디스트 수유 너머 N’ 연희동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불온한 인문학 1기를 준비하는 주요 멤버는 정정훈, 최진석, 정행복, 문화 이다.

이날 인터뷰는 몇 가지 질문에 네 사람이 난상 토론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하 정훈, 진석, 해피, 화)

 

이기자 : 불온한 인문학이라고? 왜 불온한 인문학인가. 딱 봤을 때 ‘불온한’이라는 단어에 먼저 방점이 찍힌다.

 

진석 : 연구실이 확장 되면서 대외적인 강좌를 많이 나가게 됐다. 그런데 외부 강좌를 나가면서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맞 부딛힌 일들이 많았고 불온성의 사유를 촉발했다. 한 번은 도서관 강좌를 기획했는데 강좌 중 하나가 ‘종교와 파시즘’ 이었다. 그런데 사전 강의 계획서를 보고 강의를 청탁한 기관이 정정 요청을 했다. 이유는 현 국가 시책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대학 교양강좌를 나가서다. 거기서는 ‘가족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가족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가 통합적인 부르주아 지배 체제가 성립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가부장주의가 성립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매춘이나 동성애에 대해 언급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대학생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매춘이나 동성애가 대학생들하고는 무관한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듯이 말이다.

 

이기자 : 많이 당황했겠다. 그런데 외부 나가서 강의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정말 많을 것 같다.

 

진석 : 그렇다. 하지만 연구실 바깥에서 일반 대중과 소통한다는 건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대중과 소통하고 알고 있는 앎과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명분으로 모든 것을 희석화 평준화 타협하면 안되겠다고 느꼈다. 사실 이런 경험들은 당시엔 황당한 사건이었지만 많은 반성이 됐다. 우리 역시 잘 조리되고 소화하기 좋게 다져진 그런 인문학을 제공하는 문화센터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 다른 인문학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이기자 : 외부의 자극이 ‘불온’을 촉발 시켰군요. 그런데 수용자 입장에서는 왜 ‘불온’해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화 : 사실 지금 말하는 인문학 열풍에 나 역시 끼어 있다. 처음 연구실을 알게 된 것도 직장 생활 하면서 뭔가 부족하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시작한 공부였다. 그런데 ‘그냥 무작정 인문학이 좋은 것이니까 해야 한다’ 는 말로는 부족하더라. 단순히 위로 받고 다음 날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것 보다는 지금 내 일상의 괴로움이 어떻게 어디서 온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또 남들에게 설명하고 싶다. 이건 나 뿐만이 아니다. 직장 동료, 친구들 역시 일상에 지쳐서 뭔가 다른 일을 해보려고 인문학 강좌를 시도하더라. 물론 개인 사정도 있겠지만 인문학 강좌가 그들의 고민을 뚫어주질 못하더라. 그래서 일까. 실망하고 그만 두는 경우 많더라.

 

진석 : 벌써 인문학 강좌에도 일정한 회로가 만들어 진 것이다. 스펙을 만들어야 하니까. ‘~가 대세’ 니까.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작동한다. 중국어가 대세니까, 글쓰기 기술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니까. 이런 식이다. 물론 필요할 땐 배워야 한다. 하지만 스펙을 위한 스펙이 될 때 특정한 차원의 앎에 국한되기가 쉽다. 
 

정훈 : 인문학 열풍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 굉장히 종교적이라는 거다. 나도 굉장히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기도 한데 그래서 잘 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면 각박한 세상에 살다가 좋은 얘기도 듣고 위안 받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돈을 더 많이 벌고 잘 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것 처럼 인문학 강좌라는 것도 고전을 읽으면서도 심지어 맑스를 읽으면서도 그냥 읽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걸 보고 혹시 ‘신(神) 대신 인문학을 찾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여러 곳에서 많이 공부한다는 건 좋다. 읽으면 좋겠지. 그런데 근본적으로 사회 속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나. 지금 당장 홍대 노동자들 해고 되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이 도피처가 돼서는 안된다.

 

이기자 : 모두들 ‘인문학이 도피처가 되선 안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다.

 

해피 : 맞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우리도 고민이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연구실 오는 분들 중에도.. 여기서 하는 공부가 몸담고 있는 종교 단체와 비슷하다... 별로 불온하지 않고... 판단을 못하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진석 : 한편으론 이해는 된다. 가령 뭐 연구실에 대해서 ‘종교 단체 아니냐..’ 는 말도 들었다.

 

화 : 우리 식구들도 그래요.. (좌중 웃음)

 

진석 : 우리가 알고 있는 앎의 특정 회로가 있잖아. 시집가고 장가가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을 봤을 때 비정상적으로 보는 건 당연해.  

 

이기자 : 이제 막 해피쌤이 지적한 것 같은데 너무 온건하다는 질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진석 : 나 역시 책만 읽으면 나중엔 뭐할래? 이런 질문을 많이 들었다.

때때로 박차고 (거리로)나가자. 이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 공부와 거리... 이분법적으로 사고할 일이 아니다.

 

이기자 : 일상생활과 이 불온함의 만남, 어떻게 수위 조절을 해야 할까. 사람에 따라선 이 ‘불온한’이란 수식어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훈: 일상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역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중요한 건 거리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우스개도 있다. 우리는 혁명이 일어나도 밖에 못 나간다는 말이... 세미나도 해야 되고 밥 시간엔 밥도 해야 하니까.

 

정훈: 또 텍스트 해석 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현장에서 질문을 가지고 부딪히고 충돌해야지. 정확하게 ‘이런 말씀.. 따라 합시다.’ 하고 읽는다면 교회에서 성경 읽는 거랑 같다.

 

진석 :나도 모르게 순응하고 있는 동의하고 있는 사회적인 국가적인 기치에서 되물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대학 들어가고 시집 장가가고 이런 것들에 대해 ‘꼭 그렇게 살아야 돼?’ 그런 작다면 작고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 질문이나 문제의식이 출발점이 될지 않을까. 짱돌을 드는 게 아니라. 사실 이런 거 당장은 어렵잖아. 

 


 

이 때 지나가는 한 영화사 세미나 회원은 “밥 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하고 인사를 했다. 이 날 정정훈 회원은 저녁 당번이었다. 노마디스트 수유 너머 N은 직접 밥을 해 먹는다.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면서 밥을 한다. 저녁 5시 30분부터 6시 30분 까지가 저녁 식사 시간이다. 한 끼 식사는 2천원. 이 날 메뉴는 계란찜, 감자 튀김, 콩나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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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 우리도 안 그러는 데 뭘.

 

화 : 그리고 이 ‘불온함’을 아주 길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뭘 가져다 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 사실 매일 공부가 업이 아닌 사람들은 시작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결단이다. 원래 하던 일과 병행하려면 바빠지고 또 가족이나 친구들이 너 변했다고 힐난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걸 안고 함께 하다 보면 이 불온함이라는 게 나에게 또 다른 길을 열 수 있는 어떤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계속)

 

 * 이날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진행됐습니다. 모두들 불온한 인문학에 대한 고민이 많은터라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읽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인터뷰 내용을 중간에 끊어서 올립니다. 다음번에는 불온한 인문학의 구체적인 진행 방식 커리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커밍 쑨!!!

 

 

 

(글/이기자, 사진/김기자)

 

<강사 소개- 왼쪽 위 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

 

최진석 : 전공은 러시아 문학과 문화로 이번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 평론가 바흐친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요즘은 프로이트의 저작을 읽으며 정신분석을 횡단하는 작업에 매진 중이다.

문화정치학의 영토들』(공저), 『코뮨주의 선언』(공저), 『레닌과 미래의 혁명』(공역) 『해체와 파괴』등을 쓰고 옮겼다.

 

정행복 : 맑스와 푸코를 공부하고 있다. 현장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수요일에는 노들 야학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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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 이주노동자의 정치적 주체성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던 시절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접속한 이후 이곳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주된 관심사는 코뮨주의 정치철학과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이론적 해석이다.

현재 후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에서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다.

『부커진 R』(공저),『문화정치학의 영토들』(공저), 『코뮨주의 선언』(공저) 등을 썼다.

 

문화 : 문학 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맑스와 함께 소설을’ 이란 책을 쓰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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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 불온한 인문학 1기 주요 프로그램

I. 맑스의『자본』 입문 ― 다시, 반(反) 자본주의의 깃발을 들자!

II.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

III. ‘불온한 인문학’ 집중 세미나

o 강 사 : 정정훈 · 최진석

o 세미나 튜터 : 정행복 · 문화

 

1. “불온한 인문학”은 2011.3.3.목 개강, 총 20주 40여 회(매주 강의1회 세미나 1회, 총5개월)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2. 매주 목요일 오후 7시~10시에는 강의가, 토요일 오후 2시~5시에는 집중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 두과정은 꼭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부분 수강 불가)

 

3. “불온한 인문학”은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됩니다. 10주 간 진행되는 트랙01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다음 10주간의 트랙02에는 욕망 이론과 대중 정치를 다루는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4. “불온한 인문학”은 단지 강사의 강의만을 수동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불온한 인문학”에 참여하는 이들은 스스로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성 지식의 ‘온순한’ 소비자로부터 동료들과의 소통 속에서 자기 사유의 힘을 벼려가는 ‘불온한’ 생산자가 되길 바랍니다.

 

5. 이를 위해서 “불온한 인문학” 참여자는 강의를 들은 후 2회 이상 강의 후기를 제출해야 하며, 강의와 관련된 텍스트를 읽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세미나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세미나 진행에는 2회 이상의 텍스트 발제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공부한 과정을 총괄하는 글쓰기 과제(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6. 수강신청

정원 : 선착순 25명

신청기간 : 2011.1.20.목요일부터

수강료 : 60만원, 입금 우리은행 1002-043-230955 (예금주 : 문화)

(*분납, 환불 불가합니다.)

*수강신청은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불온한 인문학' 게시판(http://nomadist.org/xe/bulin)

신청글과 함께 연락처를 함께 남겨주세요.

 

7. 문의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http://www.nomadist.org)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실 대표 번호 (070)8263-0910

정행복 010-9404-8403, 문화 010-62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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