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ping Children Who Think They Are Worthless'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3.31 고통에 깊이 연결되게 했던 문장 (2)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문장들.. 이 문장은 오래도록 내 마음과 머리에 남아 계속 생각나게 만들고 겹겹히 둘러쌓인 미로 속의 내 기억들을 들추게 만들었다.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는 장면들..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들.. 그 표정들... 존재감도 없이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일찍이 두각을 나타내 보지 못한 사람들, 머리도 좋지 않고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고, 인정도 결코 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의 관심주제이다. 어떻게 그들은 특별하고 독특할 수 있었던 능력을 모두 상실한 채 가족 안에서는 군식구처럼, 밖에서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까? 그들은 얼굴에서나 몸 전체에서 흐르는 불행을 걸친 채 눈을 들어 세상을, 상대방을 보지도 않은 채 시간에 떠밀려서 그 시간을 겨우 겨우 채워 나간다. 보통 심리상담에서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범주화되는 사람들이다. 낮은 자존감은 우울감, 무력감의 친한 친구이다. 그들은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느끼면서 무례함, 불친절함, 잔인함 등을 기꺼이 견뎌낸다. 상대방의 모욕적인 언사, 자신의 자아 경계를 마구 침범하는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의 포만감을 불러일으키는 먹잇감이 기꺼이 되고자 하고 그에 반응하듯 비굴한 웃음을 흘려 그들의 공격성을 더 자극하며 한껏 모욕을 당하는 구조를 만들어 버린다. 한번 만들어진 구조는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기꺼이 공격적인 사람들의 공격성향을 강화하게 역할을 주어 버리고 자신은 비참함을 느끼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일상사가 되고 삶은 가치없게 채색되어 나간다. 이런 역할에 고착이 되어 다른 역할은 해보지도 못한 채 무가치한 자신을 다시 확인한다. 벌어진 현실을 확인하고 미래에의 가능성도 속박해버린 채 무기력은 신체에 기록된다. 신경과 근육은 협조하여 마치 가면을 쓰듯 나의 얼굴에 인상을 만들고 자동적인 반사작용의 기계화가 진행되어 구속의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제 지루함과 누추함은 피부처럼 하나가 되어 자신의 가치가 무엇이였는지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되고 해리를 반복하며 하루 하루, 겨우 겨우 살아간다.




자존감이 낮은 아동들은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희생자를 찾고 있던 아동이나 성인들은 절망감, 수동성, 무가치감을 쉽게 감지한다. 그런 아동들이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쓰레기야, 그러니까 날 그렇게 대해 줘’ 라고 소리없이 말한다. 때로 이것은 사람들에게 물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된다(Sunderland, 2007).


내 마음에 선명히 남아서 긴장이 흐르게 했던 문장이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가치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상화하는 아동이란 소제목의 글이다.


무가치함을 느끼는 아동들은 대개 다른 아동들의 영리함, 인기, 수려한 외모 등을 예민하고 고통스럽게 인식한다. 이러한 자질들은 종종 이상화되고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아동들은 심하게 분열된 세계로 옮겨간다. 이들은 좋은 점들은 모두 다른 사람 안에 있고, 나쁘거나 부적절한 것들은 모두 자신 안에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믿는 아동은 영리하고 인기있고, 빛나고 수려한 사람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박해적으로 받아들이고 몹시 고틍을 겪는다. 코스텔로(1994, 개인적인 대화)가 말했듯이, ‘이상화가 있는 곳에 항상 모욕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되겠다고 일찌기 결심한 아동이란 소제목의 글이다.


자존감이 낮은 아동들은 에릭 번이 말한 ‘진부한 삶의 각본’을 짜나갈 것이다(1964). 이것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평범하게 살겠다는, 머리를 숙이고 특출나거나 공연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초기 결정(의식하지 못한)의 산물이다. 그들에게 ‘공연한 짓’이란 수치, 실패, 노출, 굴욕을 겪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동은 과거에 자신에게 진실이었던 것을 미래에 투사한다. 이들이 쓴 ‘진부한 각본’은 비극이다. 심리상담가인 얄롬(Yalom, 1980)이 설득력있게 주장했듯이, 이것은 ‘자신의 될 수 있는 것(있었던 것)에 대한 거절’이다(Sunderland, 2007).


‘이상화가 있는 곳에 항상 모욕이 있다.’ 이 문장에 대한 흡인력은 나에게 강력하다. 그곳에 눈부신 사람들이 있어도 주눅이 드는 마당에 대화의 주제가 비교를 통한 어떤 사람에 대한 휼륭함, 선명한 대비를 이루어 열등감을 더 강조하는 대화들, 얼마나 멋지냐. 외모가 얼마나 예쁜지, 그 현명한 행동이란, 적절한 언어구사란,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등등의 찬사는 때로는 함께 있었을지도 모르는 낮은 자존감을 비밀스레 가지고 있던 이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모욕을 주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거절’ 이 문장은 나의 뒷통수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어떤 아동들은 꼭 필요한 어른들의 말을 거절하느라 애쓴다. 그들은 진정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그들의 귀는 막혀 있어서 어른들에게 반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들은 어쩌면 그들이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모두 차단한다. 부모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자신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모두 감춘 채 반항으로 무장한다.

이 두개의 문장은 아동의 정신 역동, 성인과 아동의 상호작용, 어떤 상호작용이 어떻게 인간에게 특이성을 부여하는가? 에 대한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해주었고, 자존감이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 경험이 무엇인지 또한 그런 내담 아동이 겪어 왔을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약한 존재들에 대한 예의, 그들이 겪어 왔던 고통, 어쩌면 잊고 싶었던 나의 고통이 어떤 것이였는지, 그 고통에 깊이 연결되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참고도서: Margot Sunderland(2007). Helping children who think they are worthless.

놀이(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원, 연극치료사, 심리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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