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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3 구원의 노래 | Bob Marley 'Redemption Song' (1)

 



 

 

 

 

 

울음으로 시작된 노래

 

  50대의 영국군 장교와 18세 자메이카 소녀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홀어머니와 함께 자메이카 킹스턴의 빈민가, 트렌치 타운에서 자라났다. 폭력과 살인이 빈번하던 빈민가에서 아이는 살인 사건을 목격하기도, 얼굴에 칼을 맞기도 한다. 학교보다는 축구가, 공부보다는 음악이 좋았던 아이는 결국 열네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용접 공장에 취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용접 공장 앞마당에서 운명처럼 훗날 스승이 될 ‘조 힉스(Joe Higgs)’를 만난다.

 

 ‘조 힉스’는 ‘힉스 앤 윌슨’이라는 듀오의 일원으로, 천편일률적인 사랑 노래가 자메이카 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던 그 시절, 간자(대마초)와 라스타파리즘으로 대표되는 흑인 해방 운동을 통해, 빈민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던 극단적인 소외감을 위로하던 가수다. ‘앨튼 엘리스’나 ‘라셀러스 퍼킨스’ 같은 당시 트렌치 타운 출신의 유명 뮤지션들 역시 종종 이 공장 앞마당에 모습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뮤지션으로 성공했음에도 트렌치타운을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이 동네 출신 ‘영웅’ 대접을 받고자했음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수업료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노래와 목소리를 ‘게토’의 아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공장 앞마당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노래를 배워나갔다. ‘힉스’는 근처에서 열리곤 하던 자신의 공연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키를 잡는 법부터 기타 코드, 반주법, 작곡법등을 차곡차곡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빈민가의 스승 ’힉스’에게서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한 음정과 화음, 나아가 사상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훗날 자메이카, 나아가 전 세계적인 ‘전설’의 뮤지션으로 성장한다. 그렇다. 이 것은 "내 노래는 울음으로 시작되었죠"라 말한 ‘밥 말리’와 ‘웨일러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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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밥 말리와 그의 스승 조 힉스)

(아래 :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레게, 그 울음의 파장

 

 밥 말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레게’다. 레게는 밥 말리의 어린 시절, 자메이카를 휩쓸었던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킹스턴의 뮤지션들에게서 창조된 ‘스카’에서 연유된 장르다. 4박자를 기준으로 첫번째와 세번째 비트에 강세를 찍는 서양의 일반적인 대중음악과는 다르게, 스카나 레게는 두번째와 네번째 비트에 힘을 싣는 홉 댄스를 기반으로 한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레게의 ‘엇박’ 느낌은 이러한 비트에서 파생된 특징이다. 여기에 엉덩이를 들썩이게하는 특유의 셔플 리듬을 유지했는데, 유럽과 미국에 처음 이 장르가 소개되었을 때만해도 ‘도대체 어떻게 춤을 추라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들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이 생소한 장르의 음악과 그 히어로, 밥 말리라는 이름이 서구 음반 시장에 소개된 것은 다름아닌 에릭클랩튼의 <I Shot the Sheriff>때문이다. 미국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의 원작자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밥 말리는, 75년 트렌치 타운을 노래한 <No Woman No Cry>가 영국 차트에 오르면서 국제적인 뮤지션의 반열에 오른다. 당시 밥 말리는 종종 서구세계에서 ‘위험한 아티스트’라 소개되곤 했는데, 그 스스로 ‘나와 내 음악의 존재 자체가 바로 반역적인 성격을 띈다’라며 불온함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는 밥 말리가 그의 스승 ’힉스’처럼, 누구보다도 음악의 ‘운동적 가치’를 확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는 밥 말리가 최후까지 지니고자 했던 그의 확고한 음악관이였다.

 

 길지 않은 생 동안, 권력의 위선과 거짓, 오만함을 비판하는 투사적인 면때문에 밥 말리는 여러차례 총격을 당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두려워하기는 커녕, 영향력있는 뮤지션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자신의 고향인 자메이카 그리고 트렌치타운으로 돌아와 음악, 나아가 운동과 실천에 몸 담고자 했다. 록이 저항의 의미를 서서히 잃어가던 1970년대,  레게가 새로운 대안의 음악으로 떠오른 이유는 그의 이러한 면모때문이다. 존 레논, 레드제플린, 클래쉬같은 당시 쟁쟁했던 서구의 록 밴드들이 너도나도 레게에서 적지 않은 영감을 받았던 까닭 역시 다름아닌 밥 말리의 ’울음으로 시작된 노래’가 보여준 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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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노래 

 

 빈민가, 그 설움 속에서 탄생한 음악은 비단 밥 말리만의 것이 아니다. 1975년, 들리는 소리라고는 총소리뿐이던 카라카스에서 역시, 전과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칼 대신 악기를 손에 든 채로, 어느 빈민가 허름한 차고에 모여들었다.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엘 시스테마’의 탄생이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도 마약과 싸움질, 폭력과 살인 말고 다른 ‘아름다움’을 볼 권리가 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이제는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퍼져나가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유명한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30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엘 시스테마’의 혜택을 받았고, 현재도 25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음악을 배우는 중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차세대 최고의 지휘자로 지목하여 화제가 된 바 있는 81년생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17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 된 '에딕슨 루이즈' 등 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음악가들이 ‘엘 시스테마’를 통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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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말리나 엘 시스테마의 사례처럼, 음악은 때로 이러한 ’구원’의 힘을 보여줄 때가 있다. 여기에서 ‘구원’의 의미는 단순히 음악을 배워 직업을 얻고, 돈을 많이 버는 유명인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빈민가의 아이들에게는 가난과 폭력에 시달려야만 하는 현실이 기다릴지라도, 적어도 그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데, 그 ’구원’의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배운 음악을 주변의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의 삶까지 바꾸고 있다는데서 음악이 선사하는 ‘운동’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울음’으로 시작된 노래가 하나 둘 모여 ‘웃음’의 변주를 이끌어낼 때, 우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구원의 노래를 듣게 된다. 고통을 잊게 하고 위로하는 걸 넘어, 숨어있는 진실을 암시하고 그와 관련된 요구를 행동과 운동으로 이끌어내고 있기에 이들의 음악은 그 존재 만으로도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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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 조차 사치인 나라에서..

 

 밥 말리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30년째 되는 2011년, 종로 한복판에는 재밌게도 ’카라카스 유쓰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이들의 노래들이 선사하는 ‘구원’의 힘을 상상하며 거리를 걷다가, 야속하게도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고 있는 한 무리를 마주쳤다. 여당 차기 대권주자로의 야욕을 위해, 생산과 성장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무상급식, 무상복지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서울시장에게, 이들의 노래는 과연 어떠한 의미로 들릴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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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비록 킹스턴의 트렌치타운이나 카라카스의 빈민가보다 더 ‘풍족’하게 살고있는 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풍요’롭지는 못함이 분명하다. 영어 공부가 마음 편히 밥 한끼 나누는 일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 빈민층을 위한 예술 교육이나 공연이 대기업이나 국가의 ‘시혜’로만 베풀어지는 곳, 예술가가 되기 위한 전문 교육을 받으려면 ’재능’보다 ‘돈’이 먼저 필요한 곳. 이 곳에서 역시 ’울음’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웃음’으로 끝날 구원의 노래는 너무나도 요원해보인다.

 

 누군가는 밥 말리나 엘시스테마의 이야기에서 그저 ‘꿈높현시(꿈은 높고 현실은 시궁창)’만을 절감할 지 모르겠다. 혹은 이런 것들이  '우린 불쌍한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쏟고 있어요'라고 하는 체제 유지용 광고판에 불과하다며 쓴 웃음만 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고있는 무리들 뒷 켠에서 꾸역꾸역 ‘구원’의 노래를 되읊어야 하지 않을까? 머나먼 이야기들이 '기적'이 아닌, '있을 수 있는 일'이 될 그날을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 구원의 노래가 구원을 거부하는 다섯살 훈이 마저 구원할 수 있도록 목청 높여 노래해야하지 않을까?

 

 

글/ 김은영(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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