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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철학.사회

[이슈] '제국주의적' 퀴어 정치?

‘제국주의적’ 퀴어 정치?

한주희, 「퀴어 정치와 퀴어 지정학」(문화과학 83호)





노 의 현 / 수유너머N 회원

 



 

2015년의 지난 봄과 여름, 그리 멀지 않은 두 공간에서 너무나 다른 모습의 경찰과 마주했다. 한쪽의 경찰은 나를 향해 무자비하게 최루액을 쏴댔다. 다른 한쪽의 경찰은 펜스까지 꽁꽁 둘러쳐가며 우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4월 16일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한동안 이어졌던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에서와는 달리, 6월 28일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 시청광장의 경찰들은 너무나도 안전했다.





세월호 집회에서의 경찰과 2015 퀴어 퍼레이드에서의 경찰



『문화과학』 2015 가을호에 실린 한주희의 글, 「퀴어 정치와 퀴어 지정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통해 오늘날 한국에서의 퀴어 운동의 위치와 그를 통한 퀴어 정치를 사유하고있다. “지금의 퀴어 정치에는 무엇이 정치적인가? 또는, 퀴어 정치에는 무엇이 퀴어한가? 한국의 MC-SKY(밀양, 청도, 쌍용, 강정, 용산의 장기투쟁)에도 퀴어 정치의 자리가 있을까?”



초국가적 호모포비아


글쓴이는 퀴어 운동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하나의 특징적인 안티-퀴어 운동을 분석한다. 여기서 사례로 등장하는 것은 CDSRA(California Defense of Sexual Responsibility Act)라는,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반퀴어 서명운동이다. 이 운동의 주축이 된 것은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인 이민자 교회 지도층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격한 호모포비아를 내세웠기에 캘리포니아 지역 보수 개신교 네트워크, 혹은 공화당 지부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고, 결국 한인 이민자 커뮤니티만의 열렬한 운동이 되고만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CDSRA 대책 위원회 측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반퀴어 운동을 통해 미 주류사회와 결합했다는 ‘상상’을 내세우며 이것이 미국 내에서의 한인 이민자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데에 이른다.


특히나 이 운동은 1994년 서류미비 이민자들에게 교육, 복지, 의료 혜택을 금하는 법률 개정과 1999년 LA폭동, 또는 4.29로 불리우는 사건(‘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아래 백인 우월주의, 경찰폭력의 만연성, 빈곤 문제를 제기하며 발생한 사건) 이후 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두 사건은 이민자 정치적 세력화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한인 2세 이민자에게 인종적 부정의와 계급 불평등을 지각하게 함으로써 중요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 시기에  CDSRA가 발발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글쓴이는 이 안티-퀴어 운동 또한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떼어놓고 사유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한 미국 한인 사회 내의 안티-퀴어 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즉 CDSRA란 미국 내에서 정치적 세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한인 이민자 커뮤니티의 움직임 중 일부가 보수 개신교 세력과 만나 안티-퀴어 운동의 형태로 드러난 것으로, “소수자 민족 그룹의 종교 지도층이 어떻게 여론을 조성하고 지역사회 정치에 도전하였는지”를 잘 보여주었던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실제로 이 운동은 1만 5천여명이 넘는 한인들을 투표인으로 등록시켰고, 이는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글쓴이는 이 안티-퀴어 운동이 한국과 미국, 초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다수와 소수 중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양가성을 지녔다고 이야기한다. “초국가적 호모포비아”.





핑크워싱(pinkwashing)


안티-퀴어 운동의 사정이 이렇다면, 그에 저항하는 퀴어 운동 역시도 복잡한 맥락 속에 얽혀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993년 재정된 ‘DADT’는 ‘묻지도 답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의 줄임말인 미군 동성애자 군복무 규정이다. 군 내에서 타인의 성적 취향을 묻거나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밝히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미군 장교인 다니엘 최 중위는 DADT 폐지를 요구하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고, 이 사건을 통해 전역을 통보받았다. 미군 정책의 변화로 복귀된 이후에도 그는 동성애자 장병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시위를 지속해오고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군복무의 권리 또는 미군 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포함이 퀴어 정치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미국 트랜스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딘 스페이드(Dean Spade)와 크레그 윌스(Craig Willse)의 말을 빌리자면, “다니엘 최같이 ‘평등’을 주장하는 퀴어 운동은 오히려 제국적 전쟁과 ‘게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 ... 미국의 군사제국주의에 반대하기 위하여는 우선 이러한 제국주의적 기관들을 다문화적이고 진보적인 공간으로 포장하려는 작업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비판이 놓여있는 맥락에는 다니엘 최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즉 그의 성장 배경에는 한미 군사 동맹과 관련된 근현대 한국사가 놓여있고, 미국 시민권을 조건으로 내건 미군 모병 프로그램 시행 초기에 합격자의 절반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글쓴이는 이러한 퀴어 운동이 지닌 정치성을 ‘포함과 융합의 정치학’이라 부르며, ‘폭력과 불평등의 체제에 포함되기 위한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퀴어 운동은 앞서 본 안티-퀴어 운동과 만난다.




DADT 규정이 적힌 테이프를 입에서 떼어내고 있는 미군 장교 다니엘 최의 모습



그렇다면 오늘날 퀴어 운동이 지닌 정치성이란 제국주의적 운동에 정당화를 부여하는 기제로, 이른바 ‘핑크워싱’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더이상 ‘퀴어’하다는 것 만으로는 그것의 정치성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퀴어 운동은 이러한 위험성을 견지하며 다시금 정치성을 획득해나가야할 것이다. “군대를 보다 도덕적이고 정당한 기관으로 만들려면 단순히 포함의 범위를 넓히고 제한을 풀기보다는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처럼 군사주의 제도 그 자체를 거부하는 정치 공간도 같이 확장되어야 한다. 평등과 인권으로 재현되는 포함과 융합의 정치학에서 더 나아가 거부의 정치학을 강조한다면 퀴어 정치의 지형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퀴어 운동이 반제국주의와 만나기위해서 풀어야할 과제이자,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2015 퀴어 퍼레이드를 통해 ‘퀴어정치’를 사유하기


반동성애 정서를 이제 “미국 우파 개신교가 순진한 이민 사회, 유색인종, 빈곤층 또는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퍼뜨리는 의제”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 선봉에는 ‘동성애 특권’으로 망가진 ‘은인의 나라’ 미국을 살리고 온 세계를 구원하리라 굳게 믿는 도덕적인 이민자 한인교회가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기 위해서는 한미 관계를 그저 지배적이고 일반적인 ‘종속’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예상 밖의 상호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공간으로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이는 보다 가깝고 친밀한 곳에서 생산되는 안티-퀴어 정치의 뿌리도 단순히 모방이나 이식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지형을 간과한 채, 2015 퀴어 퍼레이드에서 열렬한 안티-퀴어 운동을 벌였던 이들을 그저 ‘개독’으로 치부하는 것만으로는 놓치는게 너무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펜스를 두고 갈려있는 안티-퀴어 세력과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



퀴어 운동 또한 단지 안티-퀴어 운동과의 대립관계 속에서만 사유된다면, 이 운동이 가진 힘과 가능성은 매우 소극적으로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모두가 느끼고 있듯 더 중요하고 거센 싸움은 안티-퀴어 세력과 마주친 서울 광장에서가 아니다” 라는 글쓴이의 말처럼, 2015 퀴어 퍼레이드에서 경찰이 세워놓은 펜스로 너무나 명시적으로 드러난 이 전선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듯하다. 퀴어 운동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그로 인해 계속해서 새로운 움직임들을 만들어지는 이상 그 위치와 전선이 변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퀴어 운동을 ‘정치적’이게 만드는 것, 그리고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다른 운동들 사이에서 그 위치를 찾는 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선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 될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