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세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국가’와 ‘국민’의 창조 


하시가와 씨는 〈Nation〉을 ‘국가’라고 번역합니다만, 현재에는 ‘국민’이라고 번역하거나, ‘네이션’이라고 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국가’는 〈Staat〉의 번역어로 한다는 것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Nation〉은 언어와 종교, 정치적 의식을 핵으로 하는 문화공동체이고, 〈Staat〉는 통치기구로서의 국가를 가리킵니다. 


“국민이라는 형태에 있어서의 새로운 실재의 용인(인식) die Anerkennung der neuen Realität in der Form der Nation”이 뭔 말인지 딱 하고 와 닿지 않을 수 있으나, 여기서 ‘국민’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것임을 상기해 주십시오. 근대 이전에는 ‘국민’이라는 의식은 명확하지 않았으며, 민중에게는 자신들을 지배하는 군주가 누구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국민’이라는 집합체에 속해 있음을 의식하게 돼서야 비로소 외국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을 깨닫게 되는 셈입니다. 유럽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국민’ 의식이 확산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라고 합니다.


보날은 앞서 말한 대응관계론을, 전통적인 왕제주의와 귀족정치를 잘 보여주기 위해 전개하는 것인데요, 거기에다 ‘국민’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민’이라는 실재를 직시해야 한다는 사상을 품었던 것입니다. 자코뱅파는 사회계약에 의해 결합된 ‘민중’을 실체로 간주하고 일ㄹ 신과 비슷한 위치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이런 것에 반대하는 보날도 ‘국민’을 실체로 간주했다는 것입니다. 



드 메스트르의 경우에도 이 실재의 승인은 마찬가지로 명확했다. 버크 및 보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거듭거듭 개개인이 아무것도 창출하지(schaffen) 못하고 단순히 뭔가를 ‘만들’(machen)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법이나 헌법이나 언어는 인간 공동체의 생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국민은 원래부터 신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의 논증을 더 정밀하게 본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요점이다. 블라카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논증의 진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종교 없이 공중도덕과 국민적 성격은 없고, 기독교 없이 유럽적 (!) 종교도 없다. 가톨리시즘 없이 기독교도 없으며, 교황 없이 가톨리시즘도 없다.’ … 기독교는 유럽적 종교로 간주되며 … 교황제는 국민적 성격에 있어서 결여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적법화되며, 가톨릭은 프랑스의 국민적 요소로 여겨지며, 또한 한 국가에 제한된 경우는 종교의 실제적 효과는 경험상 발견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국교로서는 부정된다. 국가(nation)는 가톨리시즘[교황권으로부터의 독립지향]을 방기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국민 자체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 드 메스트르의 경우에도 이런 실재의 승인은 마찬가지로 실정적이다. 버크 및 보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개개인이 아무것도 창출할(schaffen) 수 없고 그저 어떤 것을 ‘제조할’(machen) 수 있을 뿐인 반면, 법, 헌법, 언어는 인간사회의 산물임을 거듭 강조한다. 물론 국민은 신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그의 논점을 좀 더 꼼꼼하게 검토하면, [다음과 같은] 이것이 결정적인 요점이다. 블라카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논점의 진수를 다음과 같은 용어로 요약했다. ‘종교 없이 공중도덕이나 국민적 성격은 없다. 기독교 없이 유럽적 (!) 종교도 없다. 가톨리시즘 없이 기독교도 없다. 교황 없이 가톨리시즘도 없다.’ … 기독교는 유럽적 종교가 된다. 교황제papacy는 국민적 성격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덕분에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가톨리시즘은 프랑스의 국민적 요소이며, 하나의 국가에 제한된다면 종교의 실천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이 보여주기 때문에 국가 종교로서는 부정될 뿐이다. 국민(nation)은 프랑스식 가톨리시즘Gallic Catholicism을 단념해야 하지만, 이는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pp.60-61).]



독일어의 일상적인 용법에서 〈schaffen〉과 〈machen〉은 둘 다 ‘만들다’라는 의미이며, 엄밀하게 구별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schaffen〉에는 ‘창조하다’나 ‘제작하다’ 같은 예술적 의미가 있으며,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라고 할 때 〈schaffen〉을 씁니다. 〈machen〉은 ‘만들다’라는 의미 말고도 영어의 〈do〉에 해당하는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의문문은 〈Was machen Sie?〉입니다. 그리고 인용부의 문장도 프랑스어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블라카 백작(Pierre Louis Jean Casimir de Blacas, 1771-1839)은 반혁명군에서 활동하고, 루이18세(1755-1824)의 왕정복고기에 장관과 외교관을 지낸 귀족입니다. 


‘법’, ‘국제=헌법 Verfassung’, ‘언어’는 인간 공동체 = ‘국민 Nation’의 산물이지만, 그 ‘국민’은 ‘신’에 의해 ‘창출’됐다는 것이 (슈미트가 기술하는) 드 메스트르의 논의의 요점입니다. 이 경우 “신에 의해 창출”됐다는 것은 신이 전체 인류의 창조주라는 함의뿐 아니라, 교황제를 수반한 교회의 영향·교화 아래서 각각의 ‘국민’의 ‘국민성 caractère national’이나 ‘공공 도덕 morale publique’이 형성된다고 하는 사회이론적인 것도 함의합니다. 드 메스트르 등은 ‘국민’이라는 새롭게 발견된 ‘실재’를 가톨릭적 관점에서 새롭게 의미부여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국민’ 형성에 불가결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내셔널리즘의 시대가 돼서 나온 새로운 주장입니다. 


‘갈리카니슴 gallicanisme’ ― 언어학적으로 세밀하게 말하면, 영어의 〈gallicanism〉은 〈~주의〉와 헷갈릴 수 있지만, 프랑스어의 〈gallicanisme〉은 헷갈리지 않습니다 ― 이란 프랑스 특유의 가톨릭교회 체제를 가리킵니다. 프랑스의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지도 아래에 있는 교회라기보다는 국왕을 섬기는 국가기관의 일부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국교화됐다고 합니다. 루이14세(1638-1715)의 궁정설교사로 ‘왕권신수설’을 설파한 장 보댕(1627-1704)에 의해 이 노선이 명확해졌다고 합니다. 


드 메스트르는 ‘갈리카니슴’이라고 하면, 가톨릭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교황제가 누락되기 때문에, 그래서 ‘프랑스 국민’을 위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갈리카니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한 거예요. 


74쪽에서 초월신을 대신한 (〈Gemeinschaft〉와 나란히) 또 다른 초개인적인 실재, 새로운 조물주(Demiurg)로서 ‘역사 Geschichte’가 상정되기에 이르렀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Demiurg〉란 그리스어의 ‘데미우르고스 demiurgos’의 독일어형으로, 원래는 ‘장인’의 의미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이데아계를 모방해 이 물질세계를 만든 조물주로서 등장합니다. 


‘역사’는 ‘진보’라는 관점에서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일도 있으나, 그 반대로 그때까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오랜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했던 유기적 실체로서의 ‘민족 Volk’의 관점에서 ‘혁명’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일어의 〈Volk〉는 원래 단순히 ‘민중’이라는 의미밖에는 없었습니다만 ― 영어의 〈folk dance〉라든가 〈folklore〉의 〈folk〉와 어원이 같습니다 ― 19세기 이후 한편으로는 정치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민’, 다른 한편으로 역사적인 문화·관습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이라는 양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말입니다. 


〈Volk〉와 〈Nation〉은 의미가 겹치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Nation〉이 라틴어 어원의 말로, 프랑스혁명-나폴레옹전쟁 당시 프랑스어의 〈nation〉이 프랑스인의 정치적 주체성, 자유로운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사용됐던 적도 있고, 민중의 정치적 의식의 존재방식을 강하게 함의하는,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뉘앙스가 강해졌던 반면, (‘민족’이라는 의미에서의) 〈Volk〉는 일반인들의 전통적 생활방식이라든가, 오랜 기간에 걸친 관습에 기반하여 ― 많은 경우 본인들이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자연히 몸에 붙인 ― 공동성이라는 뉘앙스로 사용됐습니다. 맑스주의적인 〈Volk(인민)〉도 어떤 의미에서는 생활의 실감에 기반한 ‘공동체’죠. 


75쪽부터 76쪽에 걸쳐 반혁명=보수진영에 의한 ‘민족=국민’의 의미부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지속을 따르려 하는 것이 그대로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논의이다. 지속적 존립만이 모든 사태에 이유를 부여하고, 장기성longum tempus이 그대로 궁극적 근거이다. 종교의 국가에 있어서의 의미는 귀족의 가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국가에 지속성을, 따라서 또한 처음으로 실재성을 부여한다는 것 속에 존재한다. 

[* 지속에 대한 호소는 수용된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논점이다. 연속적 지속의 조건만이 모든 사태를 정당화한다. 태곳적 시간 자체는 권리의 궁극적 토대이다. 국가의 경우, 종교와 귀족 가문이라는 양자의 중요성은, 이것들이 국가에 지속을 부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국가가 그 실재를 획득하기 때문이다(p.62).] 


보날은 ‘실재는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한다. 버크도 세대를 넘어서 지속하는 영속적 공동체로서의 국가의 성격을 재삼재사 논급하고, 분할세습 농지의 정당화의 근거를 그것이 국가 존속의 기초라는 것 속에서 발견하고, 수도원의 토지소유의 그것을 장기간의 전망을 요구하는 원대한 계획을 가능케 하는 것 속에서 본다. 

[* 그리고 보날은 실재가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한다. 버크도 세대를 넘어 확장되는 지속적인 공동체로서의 국민의 성격에 관해 거듭 암시했다. 버크는 국가의 지속이 세습entailments에 의존한다는 사실에서 세습의 정당화를 찾아낸다. 또 교회의 재산소유가 오랫동안 설명해야만 했던 선견지명이 있는 계획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에서 교회의 재산소유의 정당화를 찾아낸다(p.63).]



약간 헷갈립니다만, 처음의 ‘국가’는 〈Staat〉이고, 나중에 나오는 ‘국가’는 〈Nation〉입니다.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영속적 공동체”로서의 ‘국민=민족’이 정치에 지속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종교’가 뒷받침한다는 구도죠. 버크, 보날, 드 메스트르 같은 보수주의 진영의 논객들은 몇 세대에 걸쳐 지속된 공동체인 ‘국민=민족’이 그 지속성과 질서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종교’와의 결탁 덕분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와 전통을 파괴하는 ‘아나키’한 혁명세력에 이론적으로 대항하려 했던 셈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모든 사태에 이유를 부여하고”에서 “이유부여”의 원어는 영어의 〈justify〉에 해당하는 〈rechtfertigen〉이라는 동사로, 정확하게는 ‘정당화’라고 번역돼야 해요. 그 뒤의 ‘궁극의 근거’라는 대목은 〈der letzte Grund〉이며, ‘법’ 또는 ‘옳음’을 의미하는 〈Recht〉이 들어 있기에 ‘정당성의 궁극적 근거’ 혹은 ‘궁극적인 법적 근거’라고 번역하는 편이 좋습니다. 



슈미트의 낭만주의관 54


이렇게 해서 ‘공동체’와 ‘역사’가 보수주의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한 뒤, 이것들을 낭만주의자가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차이를 강조하는 형태로, 슈미트 식의 낭만주의관을 전개합니다. 80쪽을 보십시오. 



18세기 말, 이 낭만주의적 세대는 특히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들 앞에는 고전적인 업적을 이룩했던 한 세대가 있었는데, 그 대표자인 괴테에 대해 그들은 흥분한 경이의 열광을 바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창조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의 업적은 비평과 성격묘사(하라크테리스티크*)였다. 그것 이상의 것을 원한다고 했을 경우, 그것은 모두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돌한 계획과 대담한 예고를 행하고, 암시를 하거나 기대하게 하거나, 그 약속의 실현을 기대하면 다시 새로운 예고에 의해 응하고, 예술에서 철학으로, 역사로, 정치학으로, 신학으로 후퇴했으나, 그러나 그들이 현실에 대해 설정한 엄청난 가능성은 결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이런 곤란을 낭만주의적으로 해결하려면 가능성을 더 높은 범주로 설정하면 된다. 세계를 창조하는 자아의 역할을 일상의 현실 속에서 수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원의 생성과 결코 완결하지 않은 가능성을, 그들은 구체적 현실의 제약성보다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현되는 것은 분명히 단순히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이며, 실현의 순간에 그 밖의 모든 무한한 가능성은 차단[除権]präkludieen되고, 하나의 세계가 편협한 현실 때문에 망가지며, ‘관념[이념]의 충만함’이 비참한 결정성의 희생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모든 말해진 말은 이 때문에 이미 진실이 아니며, 한계 없는 사상을 한계짓는 것이다. 모든 정의는 죽임의 기계론적인 것이며, 그것은 무한한 생명을 한정한다. 모든 논증은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유라는 것도 또한 한계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 18세기 말, 낭만주의적 세대는 특히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들은 고전적인 업적을 이룩한 한 세대와 대면했다. 이 세대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인 괴테에 대한 반응으로, 그들이 보여줬던 유일한 생산성이란 존경과 강렬한 열광뿐이었다. 이들의 산출물은 비평과 성격 묘사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이것 너머에 있다고 하는 이들의 모든 허세는 그저 가능성일 뿐이었다. 이들은 당돌한 계획과 대담한 약속을 했다. 넌지시 시사했고 전도유망하다고 했다. 이들이 한 약속이 실현되기를 한껏 기대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약속으로 응답했다. 이들은 예술에서 철학, 역사, 정치, 신학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들이 실재[현실]에 대립시켰던 엄청난 가능성들은 결코 실재[현실]가 되지 못했다. 이런 난점에 대한 낭만적 해법은 가능성을 더 높은 범주로 재현/표상하는 데 있다. 평범한 실재[현실]에서는,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창조하는 자아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들은 구체적 실재[현실]의 제약성으로 결코 소모되지 않는 영원한 생성과 가능성들의 상태를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무수한 가능성들 중 하나만이 실현될 뿐이기 때문이다. 실현의 순간에는, 다른 모든 무한한 가능성들이 미리 차단된다. 하나의 세계는 편협한 실재[현실] 때문에 파괴된다. ‘관념의 충만함’은 비참한 특정성[구체성]에 희생된다. 결국 모든 말해진 말은 이미 허위이다. 이는 무제약적 사유를 제한한다. 모든 정의는 생명이 없는, 기계적인 것이다. 이것은 무한정한 생명을 한정한다(define). 모든 정초는 거짓이다. 왜냐하면 정초와 더불어, 한계 또한 항상 주어지기 때문이다(p.66).]



처음에 자세하게 말해두면, ‘성격 묘사 Charakteristik’에 ‘하라크테리스티크’라고 적혀 있지만, 이것은 아마 실수일 것이며, ‘카라크테리스티크’라고 해야 할 곳입니다. 독일어에서는 〈-ch〉라는 철자는 기본적으로 ‘하’ 혹은 ‘히’로 들리는 마찰음으로 발음하지만, 독일어에서 〈Charakteristik〉는 프랑스를 경유해 들어온 외국어이기에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k〉음이 됩니다. 


독일문학·사상사를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요점은 괴테 등의 직전 세대, 고전주의의 세대가 독일문학의 기본적 스타일을 확립하고 대단한 작품을 많은 산출했으며, [낭만주의자들은*]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을 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피히테의 지식학을 넘어서는 것을 내놓기가 어려웠던 셈입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처럼 괴테의 작품에 ‘비평’을 가하고 ‘비평’을 독립된 장르로 삼고자 한 사람도 있었는데요, 짓궂은 시각에서 보면, ‘비평’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역시 ‘작품’ 본체에 기생하는 것이며, ‘위대한 작품’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격묘사’란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비평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도 그 등장인물을 재현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위대한 작품이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해도, 좀체 떠오르지 않기에, 일단은 “이런 대단한 일을 하겠어!”라는 선언을 내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전망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막연한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처음에는 기대를 모을지도 모르지만, 곧바로 “그건 어떻게 됐어?”라고 질문을 받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면, 공중을 실망시키고, 관심을 끌지 못하므로, “아니, 당신들이 기대하는 상식적인 방식으로 현실화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우리의 인식 방법을 근본부터 변혁하는 방식으로 …”라는 식으로, 더 새롭게 호언장담하는 선언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비평’의 대상영역도, “예술에서 철학으로, 역사로, 정치학으로, 신학으로”라는 식으로 바뀝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네요(웃음). 그보다는 논단의 세계에서 자주 듣는 얘기네요. 


물론 확신이 없는 데도 호언장담이나 일삼고, 나중에 얘기의 초점을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 하고, 논점이 흔들리는 놈이라고 낙인 찍혀 버리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논단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 냅니다. ‘가능성’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로 현실화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넘어선 메타 수준에서 나타난다. 즉, 개별 구체적인 것만을 보고 있는 한, ≪현실을 초월한 것=무한한 것≫(=가능성)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사물 사이의 시간적 생성변화나 사물들 사이의 직접·간접의 무한한 다양한 수준의 연결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세계를 포괄하는 ≪커다란 연관≫이 보이게 된다. 그 연관 속에 ≪무한한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출현 방식은 무한하게 다양합니다.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항상 보이는, 그런 ≪커다란 연관≫의 일단을, 상상력을 구사해 파악하는 것을, 낭만주의적인 예술의 목표라고 설정하는 셈입니다. 각자의 자아는 그런 ≪커다란 연관≫을 쫓아다니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표상’하는 것을 통해, 세계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초기 낭만파 자신의 용어로는 ‘발전적 보편성 포에지 eine progressive Universalpoesie’라든가 ‘초월론적 포에지 Transzendentalpoesie’라고 말합니다. 이 경우의 〈Poesie〉는 보통의 의미에서의 ‘문학’, ‘시작(詩作)’뿐 아니라 포이에시스(창작 또는 산출) 작용 일반을 의미합니다. 그리스어의 〈poiesis〉의 원뜻은 ‘만들기’네요. 뭔가 초월론적인 이념을 중심으로 세계 전체를 휘감아 넣는 오토포이에시스(자기산출운동)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런 식으로 메타이론적인 설정을 해두면, “이것이야말로 이상이 현실화된 형태다!”라고 말하며,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어집니다. 오히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대상에 집착하고,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정하면, 무한한 것의 생성운동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 unzählige Möglichkeiten” 안의 하나만을 ‘실현 realisieren’한다면, 그 ‘실현의 순간 im Augenblick der Realisierung’, 그 밖의 다른 모든 가능성은 ‘차단[除権]=배제 präkludieren’되는 셈입니다. 달리 말하면, 말로 사물을 ‘정의 definieren’하려 들면, ‘한계 없는 사상’이 ‘한계지어’지며, 죽어버리게 됩니다. 〈definieren〉이라는 동사의 〈-fini-〉라는 부분은 프랑스어로 ‘유한한’이나 ‘끝나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바탕에 있는 명사 〈fin〉은 ‘끝’ 또는 ‘목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의하다’라는 것은 마침표를 찍어 ‘끝을 내다’, ‘한계짓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슐레겔이나 노발리스는 사물을 한정=유한화하여 인식하는 게 아니라, 무한하게 생성하는 커다란 연관을 메타 수준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합니다. 무한한 것을 시야에 넣기 때문에,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이 슐레겔의 ‘아이러니’입니다. ‘아이러니’에 있어서는 주체와 객체 둘 다가 계속 변용하며, 어딘가에서 고정화되지 않습니다. 슐레겔의 [아이러니 → 무한한 생성]론은, 동시대인인 헤겔(1770-1831)의 변증법과 대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처음의 막연했던 무규정적인 것이 이성에 의한 규정=부정을 겪고, ‘현존재[定在] Dasein’가 되는 것, ‘정신’이 현실화해가는 것을 긍정적으로positive 평가하는 것인데, 슐레겔의 아이러니는 사물을 규정하고 왜소화시켜 버리는 이성의 작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무한정한 채로 계속 생성하는 오토포이에시스에 눈을 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의 고정화를 거부하고, 무한한 생성에 눈을 돌리는 초기 낭만파의 예술론은, 포스트모던계의 예술론, 특히 동일성으로 회수되지 않은 ‘차이 différence’의 운동을 축으로 전개하는 데리다와 들뢰즈(1925-95)의 그것과 통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데리다는 이런 관점에서 초기 낭만파를 평가했습니다. 이런 것은 『근대의 갈등(モデルネの葛藤)』에서 꽤 자세하게 논했습니다. 그런 포스트모던과의 친연성이 발견됐기에, 1980년대부터 독일 낭만파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된 것입니다. 다만,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포스트모던 사상이 겪고 있는 비판을 낭만파도 받기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낭만파의 운동이 시작된 이래, 동일한 비판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반복되고 있는 비판을 요약한다면, “당신은 무한의 생성이라든가 중지상태 등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런 비평을 하고 있는 당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딘가 특정한 지점에 서 있지 않으면, 원래 아무런 인식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건데? 당신 자신이 사물을 한정하고, 이성적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한다면, 당신이 말하는 것, 쓰는 것에는 아무런 정당화의 근거도 없지 않은가? 당신은 자기 자신의 담론,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되겠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얘기네요. 좀 더 투박하게 요약하면,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슐레겔 등과 동시대에, 이런 수법을 사용해 비판을 전개한 선봉장이 헤겔입니다. 『정신현상학』(1807)에는 분명히 슐레겔이나 노발리스를 염두에 두고, 낭만파의 정신의 불안정성을 야유하는 대목이 있으며, 슈미트의 동시대인인 맑스주의 미학자 루카치(1885-1971)도 낭만파의 현실 이탈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슈미트도 헤겔=맑스적인 낭만주의 비판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그는 초기 낭만파의 예술론의 발상법을 적확하게 이해한 뒤에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지 못한 채로 현실 이탈이라는 딱지를 붙였던 것은 아닙니다. 


우연이지만, 포스트모던 계열의 초기 낭만파 재평가의 실마리가 된 벤야민의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비평의 개념』도 1919년에, 그의 박사논문으로 집필됐습니다. 책으로 간행된 것은 이듬해인 20년입니다. 벤야민은 초기 낭만파의 무한한 생성론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것을, 슈미트는 낭만파의 이론적 얄팍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180도 반대로 평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도 벤야민이 슈미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지닌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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