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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철학.사회

[책리뷰]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

- 송명관, “재상산의 위기와 성장체제의 전환”, 진보평론 2015년 가을호

 

 



박기형 /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재생산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의 이름, 헬조선

 

 누구나 할 것 없이 헬조선을 외친다. 3포와 5포를 넘어 7포 세대까지 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선 까지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러므로 이외에 더 포기할 것이 남아있지 않는 사람들에겐 이 곳이 지옥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이러한 한국의 현실에 대해, 송명관은 재생산의 위기라고 명명한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가계와 개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력의 재생산뿐만 아니라 자본의 재생산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엄혹한 상황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기존 담론 - 21세기 인구론

 

 재생산의 위기를 설명하는 기존의 담론은 고령화-저성장-재정적자로 대표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사회부양비용이 증가하고, 내수활력이 떨어진다. 이와 더불어 현재 성장 기조가 한계에 부딪힘에 따라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내수를 부양하기 위한 각종 노력들이 요청된다. 결국 이들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성장 동력의 한계가 헬조선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우선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즉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생산 비용을 줄여주고 노동력 공급을 증진하기 위한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성과 이주노동자 등의 낮은 비용의 노동력을 공급하길 원하며, 재생산 비용 자체를 줄이기 위해 교육비와 출산·육아 비용 그리고 주거비용을 경감시켜주고 결혼연령을 낮추기 위한 정책 또한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고령 노동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정년을 연장시키는 것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통해 그들의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를 제시한다. 이는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수출 시장의 개척과 자동차·휴대폰 시장 등 제조업 분야를 넘어선 새로운 산업 영역의 발굴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투자 활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각종 규제 완화와 함께 노동시장개혁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낮추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다시금 성장률이 올라간다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재생산의 위기는 해결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드러난다. 새로운 먹잇감을 구할 때까지는 주어진 몫을 놓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기에, 누군가가 배부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강요해야만 한다. 따라서 한계에 부딪힌 지금의 성장체제 속에서 지금 당장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해야 한다면, 내부의 경제 행위자들로부터 보다 많은 비용과 부담을 짊어지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결과, 가계부채의 증가, 비정규직의 확대, 청년실업의 지속, 고령인구의 빈곤화, ‘하우스푸어자영업푸어의 급증, 대학진학 경쟁의 심화 등이 발생한 것이다.



 

 



기존 담론에 대한 비판 -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의 정당화 작업

 

 송명관은 재생산 위기를 설명하는 기존 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고령화-저성장-재정적자를 강조하는 기존 담론은 시장주의 방식의 신자유주의 구조 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개혁과 규제완화 등 각종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저출산·고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종 복지 정책이 필요하지만, 저성장 국면에서 무리한 재정지출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재생산 비용을 경감시키면서 재정적자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장 중심의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송명관이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결과와 원인을 전도시킨 것에 불과하다. 즉 인구구조의 변화와 성장 동력의 부재는 위기의 결과이지,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먼저, 저성장 기조는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성장 과정에서 언젠가 도달하게 되는 보편적인 문제 상황이다. 다시 말해, 재생산의 위기는 성장 동력의 부재에 따른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수출주도성장 모델의 신화의 부정적 효과로 인해 여전히 성장 동력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 더욱이 이 집착은 기업들의 새로운 이윤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의 공적 성격을 지우고자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리고 기업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것도 각종 규제와 높은 노동 비용 때문이 아니다.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의 증가와 함께 수출경쟁력 악화 및 중국 시장의 변화로 인해 기업들이 수익 창출의 기대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재무제표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내유보금 등 기업저축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상황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로 인해 금융 시장의 수익 창출 구조가 바뀌었다. 은행들의 영업 대상이 기업이 아닌 가계를 향하게 된다. 더구나 국가의 입장에서도 수출 중심의 경제에서 내수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가계의 지출을 늘리기 위한 각종 조치들, 예컨대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인하 및 MBS 시장 활성화 대책 등이 취해졌다. 그리하여 이전과 달리, 가계의 저축이 줄고 부채는 증가하는 반면에, 기업의 투자는 감소하고 저축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금융권의 활성화, 가계대출의 증가, 은행대출에서 주식시장으로의 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의 변화 등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의 여러 특징들을 통해 드러난다.

 이에 더하여 고용안정성의 저해 공공복지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은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전에는 가족과 기업 중심의 복지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비정규직의 증가 등 고용 구조의 악화 및 가계부채의 증가로 인해, 가계의 상황은 어려워지고 임금에 기반 한 기업 복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 공백을 메워줄 공공복지의 수준은 여전히 낮다. 이렇듯 성장을 위한 비용은 가계에게 전가시키면서, 가계에 대한 보호 조치와 지원 방안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매우 부족하다. 물론 복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정책이 시행되거나 제정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는 시장주의에 입각한 선별적 복지에 머물러 있어 가계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맞서는 기존 대안에 대한 검토 - 소득주도성장론의 의의와 한계

 

 이런 가운데 한국 복지제도의 문제를 개선하고 성장 체제를 전환화기 위한 대안들이 제기되었다. 그 중에서도 분배를 통한 새로운 성장체제를 요구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이윤주도의 경제체제 또는 자본 중심의 분배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주도의 경제체제와 노동 중심의 분배정책을 통해 국내 총수요를 진작시키고 부채와 수출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화시키면, 금융을 규제하고 임금분배를 통해 구매력 있는 수요를 창출하여 이로부터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송명관은 적절한 분배를 통해 삶의 위기를 해결하고 재생산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큰 명제 하에서는 소득주도성장론이 타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파이를 키워야 나눠줄 수 있다.”는 우파의 논리에 대한 적절한 방어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론적 한계와 함께 실현 과정에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송명관은 소득주도성장론이 전제하고 있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올리기 위한 사회적 합의라는 실천적 과제에 대해 비판한다. “합의 관계가 비대칭적으로 역전되어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지금도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대타협은 연금개악과 노동시장 구조조정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고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한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먼저 소득->소비->투자->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고리가 어떤 이유로 연결될 수 있는지가 불확실하다. 반드시 가계 소득의 증가가 소비로 이어지리라는 법도 없고, 기업이 증가된 이윤을 가지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필연성이 희박하다. 다시 말해, 언제든 다른 요인에 의해 선순환의 고리가 제약당하거나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송명관은 소득분배의 악화가 수요부족을 낳아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기본 논리 자체도 일관된 설명력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소득분배 말고도 다른 요인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인과적 관계가 뚜렷하지 않는다면, 노동소득분배율의 개선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고 되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송명관이 보기에, 소득주도성장론은 부채주도성장과 수출주도성장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자 가계들이 이를 보전하기 위해 빚을 내서 부채주도성장을 이끌었고, 금융탈규제가 이를 도왔다. 따라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위기의 결과였다. 금융에 대한 각종 탈규제는 90년대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도구였고, 이는 레버리지를 통한 자산증식효과를 높여줌으로써 투기성 부채를 자극하였던 것이다. 또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에 따른 국내수요의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2000년대에 들어 수출주도성장을 확대한 것이 아니다. 수출주도성장은 오랜 기간 한국이 추진한 성장 전략이며, 2000년대 이후 그 규모를 확대한 것은 미중 간 이루어진 국제적인 자금순환과정, 즉 중국의 수출주도성장에 기대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촉진된 것이다.


 따라서 송명관은 국내수요를 부흥하여 부채주도성장과 수출주도성장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부채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논의보다는 누가 부채를 떠안고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수요를 창출할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수출 증가를 통한 성장 대신 내수 진작이라는 분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입장보다는 성장체제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 전환시킬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문제 설정이라고 본다.


 

 

성장체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과제 제시

 

 이렇듯 송명관은 노동소득분배의 개선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체제의 전환을 통해 노동소득분배의 개선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가계부채의 증가, 기업 투자의 저하 등은 신자유주의적 성장체제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배 영역에서의 개선은 본질적 대책이 되지 않는다. 이 뿐만 아니라 분배 영역에서의 조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라는 해결 방식은 결국 특정 집단에게 피해와 비용을 전가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송명관은 성장체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과제와 함께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크게 GDP 중심의 성장 개념을 정정할 것, 사회적 효용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사회적 효용을 증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제고할 것이라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원래 GDP 개념은 성장을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GDP 개념은 양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성장 그리고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를 알려주지 못한다. 따라서 질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에 대한 판단 기준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효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찰해봐야 한다. 사회적 효용의 개념이 바뀐다면, 시장 중심의 복지 확대가 과연 사회적 효용을 증진시키는지 되물을 수 있을 것이며, 국가가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한 제고도 함께 가능할 것이다. 특히 송명관이 보기에 국가의 역할은 시장을 관리하는 소극적 주체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를 책임지는 적극적 주체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가 채무를 지더라도 공적 투자를 늘려 재생산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성장체제 전환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 제고라는 과제에 대한 비판

 

 송명관의 논의는 재생산의 위기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신자유주의적 담론과 소득주도성장론 양자를 비판하고 새로운 해결방안을 검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에서 말하는 시장 중심의 복지 정책을 지양하고 가계에 재생산 위기의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게 만드는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론이 주장하는 분배의 개선이 재생산 위기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우파적 버전의 소득주도성장론의 문제점, 즉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하에 특정 집단에게 피해가 가중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송명관은 분배영역에서는 시장이 아닌 사회 또는 국가 중심의 복지를, 생산영역에서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 달리 말해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성장을 지향해야 할 목표로 제시한다.

 

 그러나 송명관이 말하는 성장체제 전환의 개념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기존 논의와 어떤 차이점을 갖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분배를 고려한 성장이라는 것인지, 성장 자체가 곧 분배라는 말인지 제대로 규정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GDP가 아닌 행복지수 등 삶의 질을 반영하는 성장 지표를 통해 성장을 측정하는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그것이 분배 개선을 통한 복지 사회의 구현이라는 주장에서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여기서 성장체제의 전환이라는 개념은 생산과 재생산의 사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사회적 효용이라는 공익적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 역할의 제고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장화가 아닌 사회화. 즉 복지의 공적 공급 체계의 구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 게다. 이는 분명 신자유주의적 담론에서 말하는 노동시장개혁이나 선별적 복지와 다르고, 소득주도성장론과 같이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복지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권리로 인정하고, 국가가 복지권을 보장 및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두 담론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송명관의 논의는 복지국가, 보편적 복지라는 기존 틀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존의 복지국가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복지 정책을 시행했으며, 그 결과 자본의 축적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분배를 조정하고 성장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가 공적 공급 체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자본의 이윤 축적이 아닌 공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만약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펼치고자 했다면, 국가를 통한 재생산의 사회화를 보편적 복지 담론과 차별화 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예컨대, 복지영역뿐만 아니라 생산관계 자체의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보다 강조했다면, 어떠했을까? 국가책임공급과 국가의 재정부담 원칙을 위해서는 기업 이윤의 사회화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이는 결국 사적 소유에 대한, 재산권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동반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취했거나,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그가 비판하고자 했던 사회적 케인즈주의 전후 황금시대의 입장과 자신의 논의를 차별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제고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가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도 기존의 복지국가, 보편적 복지 담론과의 차별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생산의 사회화라는 것이 계급관계에 따른 갈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체의 발굴과 결집이라는 노동자역량의 제고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재생산의 사회화를 재산권의 문제와 함께 제기하면서, 국가를 중심의 행위자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들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은 전혀 없는가? 아니면 복지의 공적 공급체계 확립이 정당화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지배집단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위험을 배제할 수 있는가? 국가 제도 자체가 자본주의 이윤 축적의 바탕 위에 성립되어 있다면, 그 이윤 축적을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려 할까? 기존의 국가주도성장모델 하에서 관료집단이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그들이 맺고 있는 계급관계의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등등.

 

 나아가 무엇보다 국가가 중심 행위자로 나서기 위해서는 공공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공적 자금을 부담하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 시장 또는 해외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만약 국내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국가의 부담이 적을 것이지만, 그 필요 금액에 미달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국내 경제 주체들의 비용으로 되돌아올 위험이 있다. 다른 한편, 해외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경우에는 국가의 정책이 채권자들의 요구에 의해 종속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일본이 국내 금융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고는 하나, 일본의 경제 기반과 금융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한국과 동등한 위치로 설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도외시 한 채 국가가 공적 영역의 책임자로 나서야 하며, 국가 부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도덕적인 구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