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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웹진강의

[칼 슈미트 입문 강의] 3강 여섯 번째 부분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3강. 『정치신학』 (1) ― 주권자, 법-질서와 예외상태 (다섯 번째 부분에 이어서)



단체론(Genossenchaftstheorie)



중앙집권적 관헌국가에 대해 공통적으로 반대한다는 점에서 크라베는 단체이론에 가깝다. 관헌국가에 대한, 그리고 관헌국가의 법률가에 대한 크라베의 투쟁은 후고 프로이스의 유명한 저술들을 상기시키는 것이 있다. 단체이론의 창시자인 기르케 자신, 자신의 국가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즉, ‘국가의, 혹은 통치자의 의지는, 법의 궁극적 근원이 아니라, 민중생활로부터 생겨난 법의식의 표명을 위해 마련된 민중의 기관인 것이다’(『국법학의 근본개념』, 31페이지)라고 말이다. 통치자의 개인적 의지는 유기적 전체로서의 국가에 편입[기입]된다.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국가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크라베의 학설은 협동체이론에 가깝다. 권위주의 국가이론 및 법률이론에 대한 그의 투쟁은 프로이스의 널리 알려진 논의들을 상기시킨다. 협동체이론의 창시자인 기르케는 스스로의 국가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즉 ‘국가나 여타 통치자의 의지는 법의 궁극적인 원천이 아니라, 인민들의 삶으로부터 생겨난 법의식을 표명하기 위해 마련된 인민들의 기관이다.’ 통치자의 인격적 의지는 유기체적 전체로서의 국가의 한 부분이 된다(39쪽).]



‘단체론’이란 가족, 씨족, 지역공동체, 도시공동체 등 각종 동포적이고 구성원이 유기적으로 결부된 ‘단체 Genossenchaft’마다 발전한 법·권리관계에 주목하고, ‘국가’도 그런 ‘단체’가 확대된 것으로 보는 법이론입니다. 〈Genosse〉란 ‘동포’, ‘동료’, ‘동지’라는 의미입니다. ‘국가’가 ‘단체’라고 한다면, ‘법’은, 그 단체의 ― 안에서만 통용되는, 관습적으로 형성된 ― 규칙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별시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켈젠처럼 추상적인 법규범 체계(=법질서)가 자립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여지는 없는 겁니다. 후고 프로이스(1860-1929)는 국법학자로, 바이마르공화국 초기의 연립여당의 일각을 차지한 독일민주당(DDP)의 공동창설자 중 한 명이며, 바이마르 헌법의 주요 기초자입니다.


오토 폰 기르케(Otto von Gierke, 1841-1921)는 19세기의 법제사 연구자로, ‘단체권 Genossenchaftsrecht’ 연구에 힘을 쏟은 인물입니다. 국가를 민중에 의해 구성되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이며 법은 민중의 생활의식의 표명이라고 봄으로써, 관료에 의한 중앙집권적인 지배에 대항하려 한 것입니다. 기르케에 따르면, 민중의 의지를 전체로서 표명하는 ‘법’과 통치를 위한 조직인 ‘국가’는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 기술되어 있네요. 



기르케에 따르면, 국가에 의한 입법이란 그저, 국가가 법에 대해 날인하는 ‘궁극적 형식적 인장(印章)’에 불과하며, 이 ‘국가에 의한 각인’은 그저 ‘외적 형식적 가치’를 갖는 데 불과하다. 즉, 크라베가 법적 가치의 단순한 확정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기르케에 따르면, 국제법도 국가법은 아니지만 법일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이렇게 단순히 선언하는 것만으로 포고자의 역할을 맡게 될 경우, 국가는 더 이상 주권자일 수 없다. 실제로 프로이스는 단체이론을 논하고, 주권 개념을 관헌국가의 잔재로 부정했던 것이며, 단체로서 아래로부터 설립되는 공동체 속에, 지배자의 독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또한 저권이라는 것 없이도 이뤄지는 조직체를 발견한 것이다. 


[즉 기르케에 의하면 국가의 법률제정은 그저 ‘궁극의 형식적 인장(印章)’일 뿐이며, 이는 국가가 법에 새기는 ‘국가적 각인’이다. 따라서 이것은 ‘외적인 형식적 가치’를 갖는 데 지나지 않으며, 크라베가 법적 가치의 단순한 확정일 뿐이라고 한 것처럼 결코 법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르케는 국가법일 수 없는 국제법도 법이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가는 단순히 선언하는 포고자의 지위로 전락하여 더 이상 주권자일 수 없게 된다. 프로이스는 이러한 협동체이론을 통해 주권 개념을 권위주의 국가의 유물로 여겨서 배격했고, 협동체적으로 밑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공동체야말로 지배의 독점이 불필요하고 따라서 주권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라고 간주했다(40-41쪽).]



“크라베가 법적 가치의 단순한 확정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이것은 아마 오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을 보면, 〈nur das ist, was Krabbe eine bloße Feststellung des Rechtswertes nenner〉이며, 부정이 아니라, “크라베가 법적 가치의 단순한 확정이라고 부른 것에 불과하다[크라베가 법적 가치의 단순한 확정일 뿐이라고 한 것처럼]”는 것이 옳습니다. 즉, 기르케, 프로이스, 크라베의 단체이론의 계보에서는, 국가는 민중의 생활의식에 뿌리를 둔 단체, 공동체이며, 법이란 사람들의 생활의식이나 이익을, 공적으로 ‘선언 deklarieren’할 뿐이며, 국가의 권력기구=관헌국가에는 무엇이 법인지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권 개념은 필요 없게 되며, 주권적 결정 주체 없이 생성하는 국제법이 법이라는 것에 모순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단체이론은 사람들의 생활과 법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점에서, 켈젠보다는 슈미트에 가깝게 느껴집니다만, 단체 중에서 ‘법’의 내용이 이미 형성되어 있고 그것이 국가의 공식 기관에 의해 확정 혹은 선언할 뿐이라고 생각하므로, ‘주권’의 문제를 통과(through)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관헌국가(Obrigkeits-Staat) ― 〈Obrigkeits〉란 ‘당국’이나 ‘정부’[윗전]이라는 의미입니다 ― 의 잔재로서 배제하는 것입니다. 이쪽이 슈미트에게는 버거운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쿠르트 볼첸도르프(Kurt Wolzendorff, 1882-1921)라는 인물이 나오네요. 그는 조금 젊은 세대, 슈미트에 가까운 년대의 단체이론가입니다. 36頁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 외에도 『국가권력의 위법한 행사에 항거한 인민의 저항권에 있어서의 국가법과 자연법(Staatsrecht Und Naturrecht in Der Lehre Vom Widerstandsrecht Gegen Rechtwidrige Ausuebung Des Staatsgewalt)』(1916)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국가’는 단체들이나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민중의 생활의식을 반영시키는 형태로) ‘법’을 제정하는 것에 자기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 같아요. 



볼첸도르프의 순수국가는 그 질서 기능에만 한정되는 국가이다. 그것에는 법의 형성도 포함된다. 법은 모두, 동시에, 국가적 질서의 존립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법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수호자이지 명령자가 아니다.’ 다만 수호자라고 해도, 그저 ‘맹목적인 하수인’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궁극의 결정권을 지닌 보증자’인 것이다. 노동자병사협의회 사상을, 볼첸도르프는, 국가를 ‘순수하게’ 그것에 귀속시키는 기능에만 한정한다는 국가 자치로의 이런 경향의 표출로 본다. 


[볼첸도르프의 순수 국가란 스스로를 질서 기능으로 한정한 국가에 다름 아니다. 모든 법은 곧바로 국가 질서가 존립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기능에는 법을 만들어 내는 일도 포함된다. 국가는 법을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명령자가 아니라 수호자’인데, 수호자란 ‘맹목적 하수인’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비에트 사상 속에서 협동체적 자치로의 경향, 국가를 스스로의 ‘순수한’ 기능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의 표출을 보고 있는 것이다(41-42쪽).]



‘노동자병사 협의회 Räte’란 제2제정이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정식으로 발족하기 전에 독일 각지에서 생겨난, 평의회조직입니다. 〈Räte〉란 평의회를 의미하는 독일어 〈Rat〉의 복수형으로, 러시아어의 ‘소비에트’의 독일어 번역어입니다. 볼첸도르프는 〈Rat〉를 ‘단체’로서 파악한 다음 각각의 〈Rat〉에 의한 자치를 지키기 위해 ‘법’을 제정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레테’ 사상에서의 ‘국가’라고 간주한 것입니다. 현실의 소련의 역사를 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으나, ‘소련’이란 원래 각 ‘소비에트(평의회)’마다의 자치를 위한 의사결정을 더 큰 단위에서 만들어내고 최종적으로 인민의 의지를 결정하는 구조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최종심급’



볼첸도르프가 ‘궁극적 결정권을 지닌 보증자’라는 표현을 함으로써, 단체적 및 민주적 국가관과는 정반대의 권력적 국가론에, 얼마나 훨씬 가까이 접근했는지 그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크라베 및 단체이론의 앞서 말한 대표자들에 대해, 볼첸도르프의 이 최후의 저술은, 그 때문에 특히 중요한 것이다. 이는 논의를 결정적 개념으로, 즉 실질적 의미에서의 형식의 개념으로 밀고 나간다. 질서의 힘 자체가 매우 높이 평가되고, 보증 기능이 독립된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국가는 이제 법이념의 단순한 확정자 혹은 ‘외적·형식적인’ 변환스위치가 아니게 된다. 


[볼첸도르프는 국가를 ‘최종 결정을 내리는 수호자’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협동체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관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권위주의적 국가이론에 얼마나 접근해 버렸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크라베나 앞서 거명한 협동체이론의 대표자들에 대해 볼첸도르프의 최근작은 이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실체적 의미에서의 형식이라는 결정적 개념을 논의의 장(場)에 제시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질서 자체의 힘을 높게 평가하고, 국가의 보장 기능이란 매우 독자적인 것이어서 국가가 더 이상 법이념의 확정자라거나 ‘외적이고 형식적인’ 전달자가 아님을 밝혔다(42쪽).]



요점은 알겠네요. 슈미트는 볼첸도르프가 ‘궁극적 결정권을 갖는다 letstentscheidend’라는 말을 쓰는 데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현대사상에서 ‘최종심급’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기존의 단체이론에서는 사람들의 유기적 결합에 뿌리를 둔 각각의 단체의 자치를 중시하고, 가장 큰 단체인 국가에 대해서도 전체의 의지를 결정하는 주권이라는 심급이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만, 볼첸도르프는 이런 단체들의 자치의 ‘보증자 Garant’로서의 ‘국가’가 동시에 최종적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런 질서를 보장하는 기능을 가진 ‘국가’가 단체들의 결합체로 삼은 큰 단체가 아니라, 그 역할에만 특화된 독립된 기구로 묘사되고 있어서, ‘최종결정권’을 가진 ‘질서의 보증자’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드러진다. 슈미트가 ‘라이히대통령’에 대해 논한 내용에 가까운 것입니다. 볼첸도르프는 ‘레테=단체’의 민주제를 완전한 것으로 하려는 논의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주권자’에 의한 결정을 중시하는 슈미트의 생각에 접근해 버린 것입니다.


‘결정적 개념’의 원어는 〈der entscheidende Begriff〉로, ‘결정(결단)하다’라는 의미의 〈entscheiden〉을 내포합니다. 여기서는 비유적으로, ‘결정적’이라고 말했을 뿐이지만, 슈미트는 이 말을 선택함으로써 ‘결단’ 개념으로의 이행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질적 의미에서의 형식 Form im substantiellen Sinne’에 관해서는 바로 뒤에 나오는데, 거기서 설명합니다. “‘외적·형식적인’ 변환스위치 der ‘äußerlich formale’ Umschlter”란 이미 각종 단체에서 실질적으로는 정해져 있는 민중의 의지를, ‘법’이라는 형식으로 변환하는 스위치라는 것입니다. 볼첸도르프의 이론에서 ‘국가’는 그런 의미에서의 스위치로부터, 독립적인 최종결정권을 지닌 기관으로 변질하는 것이네요. 


슈미트는 켈젠을 비판할 때처럼, 처음부터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품에 파고들어 그 논리를 자기의 설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고 있지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텍스트 해석에서 자주 있듯이, 텍스트 속에 생기는 간극, 차이에 주목하고 그것을 훨씬 넓혀가는 논의 전개방식도 슈미트는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법과 형식 



모든 확정 및 결정 안에, 어느 정도까지 법논리적 필연성을 가지고 구성적 요소가, 곧 형식이 가진 고유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볼첸도르프가 논하는 형식은 ‘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서의 것, 즉 역사적-정치적 생활에서 작용하는 요소로서의 것이며, 그 의미는 이 요소가 서로 작용하는 정치적 힘들에 대해, 국가체제의 사상 구조를, 구조적 예측의 고정적인 요소로서 파악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 있다(공법논집 34권, 477페이지). 즉, 국가는 생활형식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형식이 된다. 예측 가능의 기능성이라는 목적에 봉사하는 형성과, 다른 한편 예컨대 헤르만 헤펠레가 이용하는 듯한 미학적 의미에서의 형식을 볼첸도르프는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여기서 법논리적 필연성에 비춰 봐서 모든 확정과 결정에 어느 정도까지 구성적 요소가 포함되느냐, 즉 형식의 고유가치가 인정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볼첸도르프는 형식이란 ‘사회-심리적 현상’이며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을 움직이는 요소라고 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동기를 갖는 세력들이 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 요소를 헌법의 사고구조 속에서 파악 가능하게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여 국가는 삶의 형식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형식이 된다. 예측 가능성을 위한 하나의 형태와 헤펠레가 사용한 것과 같은 미학적 의미에서의 형식을 볼첸도르프는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42-43쪽).]



여기에서는 ‘형식 Form’의 의미가 문제가 됩니다. ‘형식’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표면적이고 실체를 수반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있지만, 슈미트는 ‘형식’이 어떤 실체적인 작용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혹은 그런 의미에서 ‘형식’이란 말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적인 ‘확정 Feststellung’ 혹은 ‘결정’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음으로써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경우의 ‘형식’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를 슈미트는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서의 ‘형식’이 ‘역사적-정치적 생활에서 작용한다’는 것은 조금 알기 어렵습니다만, 그 뒤에 이어진 “국가 체제의 사상구조를, 구조적 예측의 고정적 요소로서 파악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는 안정적 요소를 헌법의 사고구조 속에서 파악 가능하게 한다]”라든가, ‘생활형식[삶의 형식]’이라는 설명에 주목하면, 조금 알기 쉬워지네요. ― ‘생활형식’의 원어는 〈Lebensgestaltung〉로, 정확하게는 ‘생활의 형태화’라고 번역해야 하죠. 조금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가 어떤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움직이는가에 관한 유형화된 시각, 보기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의 일반적 사고방식, 가치판단의 기본적 패턴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로 묶어 가시화함으로써 어떻게 행동하면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예측하기 쉬어진다는 것이죠. 


헤르만 헤펠레(Hermann Hefele, 1885-1936)는 독일의 라틴문학·문학사·역사 연구자로, 페트라르카(1304-75)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마키아벨리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막스 베버(1864-1920)의 법사회학에서의 ‘형식’의 세 개념에 대해 기술되어 있습니다. 첫째, 법적 내용의 개념적 확정(die begriffliche Präzisierung des rechtlichen Inhaltes)=규범적 규제(die normative Regelung). 이것은 분명하네요. 둘째로, 대상영역의 분화(Differenzierung der Sachgebiete)와 관련된 경우로서, “합리화되고 있고 전문화된 훈련을 거쳤으며, 예측 가능해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형식적 formal’이라는 말이 사용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형식화’는 오늘날의 사회학, 특히 시스템론 계통의 논의에서도 자주 듣습니다. ‘사회적 분화’에 관해서는 사회진화론으로 알려진 허버트 스펜서(1820-1903)나 짐멜, 뒤르케임(1858-1917) 등에 의해 이론적으로 세련되어졌습니다. 이 두 번째 의미와 첫 번째 의미, 그리고 세 번째 의미, ‘합리주의적 rationalistische’이라는 의미에서의 ‘형식’의 연결을 슈미트는 중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자의 연결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대목을 봅시다. 



형식적으로 발달한 법은 자각된 결정 준칙의 복합체이며, 사회학적으로는 훈련된 법률 전문가, 법의 행사자인 공무원 등의 협력이 그것에 필요하다. 전문적 훈련, 즉(!) 합리적 훈련은 협상의 필요가 증대하는 것과 더불어 불가결해지며, 이로부터 법의 뛰어난 법률학적인 것으로의 근대적 합리화와, 그리고 ‘형식적 성질’의 형식번이 나온다는 것이다(법사회학 II, 1장). 그러므로 형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첫째는 법률학적 인식의 선험적 조건이며, 둘째는 연습의 반복과 전문적 연구에서 결과로서 생기는 한결같은 규칙성인데, 이는 그 한결 같음과 예측 가능성 때문에, 세 번째의 ‘합리주의적’ 형식으로, 즉 협상의 불가피성과 법률적 교양을 가진 관료의 이해 등에서 오는 예측 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기술적 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며, 이는 원활한 기능발휘라는 이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형식적으로 발달한 법이란 자각적인 판결 원칙을 지닌 복합체이며, 사회학적으로 보면 훈련된 법률전문가와 사법관료 등을 그 구성요소로 삼는다. 교섭의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전문적 훈련, 즉(!) 합리적 훈련이 불가결한 것이 되었고, 이렇게 됨으로써 법은 특수 법학적인 것으로 근대화되고 합리화되어 ‘형식적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형식은 우선 법학적 인식의 초월론적 ‘조건’을, 그 다음으로는 훈련의 반복과 전문적 연구의 결과에서 비롯된 합법칙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합법칙성과 예측 가능성으로부터 세 번째 ‘합리주의적’ 형식으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이는 필연적으로 증대하는 사회적 교류 및 법률적 소양을 갖춘 관료의 이해관심으로부터 비롯된, 예측 가능성에 목적을 두는 기술적 완성으로의 이행을 뜻하며, 이때 이러한 기술적 완성은 원활한 기능 발휘라는 이상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43-44쪽).]



여기에서는 아까의 첫 번째 의미가 〈die transzendentale ‘Bedingung’ der juristischen Erkenntnis (법률학적 인식의 초월론적 ‘조건=제약’)〉이라고 바꿔 말해지고 있습니다. 〈transzendental〉은 선험적=아프리오리와 의미적으로 가깝습니다만, 엄밀하게는 인식을 성립시키는 기본적 틀과 관련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역시 ‘초월론적’이라고 번역해 둬야겠죠. 법철학에서는 주로 이런 의미에서의 ‘형식’을 문제 삼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알기 쉽네요. 직업적으로 익숙해져서 매사를 ‘형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사프로그램의 단골메뉴인데, 관료나 법률가, 대기업의 간부, 교사 등의 《형식주의》가 비판받을 때, 염두에 두어진 것은 주로 이런 의미에서의 형식이죠. 두 번째 의미에서의 ‘형식’은 개인 수준(base)의 것으로, 비판을 초래하기 쉽습니다만, 사회 전체에 일정한 ‘형식’화된 패턴, 포맷이 공유된다면, 사물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좋은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건을 매매하거나 계약서를 쓸 때의 형식화된 패턴이 사회 전체에 공유된다면, 합리적이죠. ― ‘소외다!’라고 말하고,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근대 ‘법’은 그런 합리=형식화를 촉진하는 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첫 번째 의미에서의 ‘형식’이 발달하는 가운데 세 번째 의미에서의 더 보편적인 ‘형식’이 형성되고, 그것들에 기반을 두고 첫 번째의 ‘형식’이 이념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론사회학이나 법사회학의 기초이론 부분에서는 이 세 가지 ‘형식’의 관계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형식’이라는 말은 보통으로 생각하면, 법실증주의, 특히 법규범을 순수하게 ― 앞서 분류한 첫 번째 의미에서 ― ‘형식’적으로 다루는, 켈젠의 ‘순수법학’과 친화적인 느낌이 듭니다. ‘결정’이나 ‘권위’를 중시하는 슈미트의 법이론은, ‘형식’과는 궁합이 나쁜 것 같지만, [볼첸도르프 → 베버]의 ‘형식’ 개념을 깊이 파고들어가면서, ‘법’의 ‘형식’의 질서유지작용이나 생활의 합리형태화를 지적하고, ‘형식’을 자신의 논의에 편리한 개념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의 의미 내용을 일정한 문헌적 근거를 수반하면서, 약간 바꿔가는 방식도 포스트모던 계열의 비평의 선구자 같은 느낌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40頁을 보시죠. 



법의 형식을 지배하는 것은 법이념이며, 또 법사상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는 필연성,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의 실현이다. 법이념 자체는 스스로 실현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성으로 전화하려면 모두 특수한 형태화 및 형식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실체적 법률의 형태에서의 일반적인 법사상의 형식화의 경우에도, 또한 사법 내지 행정이라는 형태에서의 실정적인 일반적 법규범 적용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법의 형식의 특성을 논하려면 이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법형식을 지배하는 것은 법이념이고 법적 사고를 구체적 사례에 적용해야만 하는 필연성,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실현이다. 법이념은 스스로를 실현시킬 수 없기에 이를 위해서는 특별히 구체적 모습으로 형식화되어야 한다. 이는 일반적 법이념이 실정법으로 형식화되는 데에도, 일반적 법규범이 사법적이거나 행정적으로 적용되는 데에도 타당한 일이다. 법형식의 독자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만 한다(44-45쪽).]



여기서 슈미트 자신의 논의가 전면에 나옵니다. ‘법의 이념 Rechsidee’이 구체적 사례에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현실화 verwirklichen’되려면, 특수한 ‘형태화 Gestaltung’ 및 ‘형식화 Formung’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즉, ‘형식’은 단순히 ‘이념’을 표현한 것일 뿐이고, 그 어떤 실체도 없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개별 사례에 있어서 현실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형태화된, 매개항이라는 거군요. 일본어로 ‘형식화’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되는 이미지입니다만, 독일어로 〈Formung〉이라고 하면, 조형이랄까 형태화랄까, 더 구체적으로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분명히 구체적 형태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Gestaltung〉과 나란히 함으로써, 그 뉘앙스가 강해집니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슈미트는 그런 말의 이미지를 조종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질의응답 


Q : 「2판 서문」에 관해서인데요, 〈Bewegung〉의 이미지를 잘 모르겠네요. 


A : 추상적으로 ‘운동’으로서 파악하려 들면 잘 모르게 됩니다만, 나치와 같은 구체적인 ‘운동체’, 혹은 그 배경에 있는, 질서를 (재)창조하려 하는, ‘구성적 권력’으로서의 민족 전체의 운동과 같은 것을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 민족의 운동을 대표하여, 주권자가 ‘정상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이번 회에 말씀드린 것처럼, 슈미트가 법실증주의로 대표되는 규범주의에 논쟁을 제기한 것은 맞는 확실하지만, 자기 자신은 무엇을 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가라는 곳에서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결단주의에 철저할지,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체적 질서를 근거로 삼을 것인지, 거기에 나치의 대두라는 정치적 사정과 더불어, 슈미트가 자신의 주장을 재해석(arrange)하고 있기에, 그의 진짜 생각을 알기 어려워지는 기미가 있습니다. 나치 자체에도 민족 질서 재생이라는 요소와 지도자=총통에 의한 주체적 결단이라는 요소를 둘 다 갖고 있기에, 더 까다롭습니다. 



Q : 즉물적인 질문입니다만, 예외상황의 발생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예외상황’이 없으면 주권을 중심으로 한 법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는 슈미트의 논의의 취지는 알겠지만, 어떤 식으로, 어떤 형태로 ‘예외상황’이 생기는 것인지, 확실하게 해 둘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A : 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예외상황’이라는 가정이 있기에, 직접적으로 ‘예외상황’의 요건을 열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바이마르 공화제 자체가 점차 ‘예외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암묵적인 전제가 됐던 게 아닐까요?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정권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던 것이니까요. 국제법 관계의 작업에서는, 베르사유체제나 미국의 일극지배를 비판하고 있기에, 세계대전과 같은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이 ‘예외상황’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Q : 아까의 ‘형식화’ 말씀을 듣고, 슈미트는 엄밀하게 정의하는 곳과, 개념을 애매하게 써서 자신에게 때마침 유용하게 하는 곳이 있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법학과 사회학도 경계가 뚜렷하기도 하고 뚜렷하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사회과학에 그다지 밝지 않아서, 기본적인 것을 여쭙고 싶습니다만, 사회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인 반면, 법학은 규범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이해해도 좋을까요?


A : 대충 말하면, 그렇습니다. 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사회학도 순수 이론 부문에서는, 규범의 생성이나 규범에 기초한 사회 설계를 연구하는 것도 있으며, 법학에서도, 법사회학에서는 법의 현실적인 작용을 연구합니다. 하지만 법학의 핵심은 실정법학으로, 실정법학에서는 조문과 판례에 적힌 법규범의 해석이 주요한 일이니까요, 큰 틀에서는, 규범과학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누는 것이 보통입니다. 켈젠 등은 이렇게 나눈다는 관습을 좇아 국가의 실력행사적인 측면을 분리하려 한 것이지만, 슈미트는, ‘예외상황’을 분석하려 하는 한, ‘사실’과 ‘규범’을 나눌 수 없다고 지적하고, 그것을 ‘형식’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Q : ‘법실증주의’의 ‘실증’이라는 걸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증적 과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연과학, 물리학 등에서는 이론을 세운 뒤에서 실험하고 ‘실증’하잖아요. 법학에서는 어떻게 《실증》합니까?


A : 그것은 말의 문제로, 법학에서는 조문이나 판례나, 혹은 판결문에서 인용되는 도덕규범이나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것을 〈positiv〉라고 규정합니다. 투박하게 말하면, 법률가·법학자의 세계 안에서만, 아니, 그 세계를 철학적으로 재구성하려 드는 일부 학자의 머릿속에서만의 《실증성》입니다. 슈미트는 그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규범과 규범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법은 ‘현실’화되지 않는다. 

     그럼 슈미트에게 ‘법’의 실증성의 기반은 어디 있는가? ‘결정’이 기반이 될 것 같지만, 그럼 무엇에 기초하여 ‘결정’하는가? 그 문제를 생각하면,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정치신학’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Q : 존 케이지(1912-92)는 우연성, 불확실성을 낳는 ‘형식’을 탐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식’으로 틀을 규정함으로써 그 틀 안으로 우연성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음악뿐 아니라 조형예술에도 그런 발상이 있네요. 케이지는 미국 출신이지만, 아마도 독일 음악, 특히 독일의 낭만파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도르노(1903-69)나 독일 낭만파에 관한 선생님의 책에서도, ‘형식’ 안에서부터 불확정성이 생긴다고 하는 논의를 소개하신 것 같습니다만, 그런 예술에서의 ‘형식’의 창조성의 이야기와, 슈미트가 말하는 ‘형식화’는 관계가 있나요?


A :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지만, ‘형식화’를 ‘형태화’라는 창조적인 측면에서 재파악한다는 논법은, 어떤 의미에서 독일 관념론, 독일 낭만파 이후, 독일 사상의 장기 중 하나입니다. 이상, 이념이나 소망, 현실을 연결하는 역할을 ‘형식 Form’에 기대하는 것입니다. 신칸트학파의 카시러(1874-1945)는 유명한 『상징형식의 철학』(1923-29)에서 상징적인 ‘형식’들의 창조성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말씀하신 것처럼 발터 벤야민과 아도르노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형식’에 의해 무엇이 산출되는가라고 볼 것인지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말입니다. 슈미트도 칸트 이후 독일 사상사에 뿌리박고 있는, 미학적인 ‘형식’론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Q : 예외상황을 질서가 있는 어떤 상황으로 하기 위해, 주권자가 결단한다는 것입니다만, 절대적인 진리나 신이 그 결단의 근거가 되나요?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교회의 교리와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민족이나 종교를 지닌 사람은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A : 지난번의 낭만주의 비판의 맥락에서도 나왔습니다만, 슈미트가 질서의 근저에, 신학적 구조가 있다고 보는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단, 이는 실재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많이 겹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모와 성인의 위상이나, 교황의 완전성이나, 그런 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슈미트의 질서론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중세의 정통적인 신학의 논의를 참조하는 것도 아닙니다. 드 메스르트나 보날은 결코 정통 가톨릭 신학자는 아닙니다. 

    원래 독일의 가톨릭 인구는 삼분의 일 정도여서, 독일이라는 국가에서 가톨릭신학에 기반하여 질서를 《제건》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 삼분의 일마저도, 프랑스혁명 이전처럼 강한 결속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현실을 슈미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길러진 ‘질서’관을 모델로 해서, 독일, 심지어 유럽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구체적 질서에 대해 생각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다음번 이후, 그 이미지가 점차 밝혀지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