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 마군



공산주의의 부정성존재론과 정치 (2)





번역박하연 이종현 전미라






"우리는 소련방의 새로운 헌법을 적극 지지합니다!"




첫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 첫 번째 부분 보기



2. 과거의 공산주의와 미래의 공산주의

 

  앞서 언급한 철학적 논쟁은 우리를 곧장 중앙/동유럽 공산주의라는 보다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으로 이끈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듯)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적 판타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였다고 한다면 러시아 자유주의자들이 즐겨 말하듯 분명 불쾌한 구닥다리 사회-정치 체제이자 집단성을 지나치게 밀어붙인, 그래서 인간 본성에 반하게 된가난하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들의 공산주의]였다. 후자의 의견이 더 널리 퍼져있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산주의가 이미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면서 현대 동유럽, 중유럽 사회들을 포스트-공산주의국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나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거주하는 당사자들에게 공산주의는 언제나 유토피아나 미래에 실현될 프로젝트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기이하게도 공산주의는, 적어도 소련에서는 처음에는 미래에, 나중에는 과거에 존재했을 뿐 절대 현재에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다.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농담조로 공산주의를 기정사실(fait accompli)로 만드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목표였다고 말하기까지 했다.(Groys, 2010))


  그러므로 두 가지 상식적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공산주의가 절대 성취될 수 없는 비현실적 유토피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의 유일하게 가능한 실현태는 소비에트적 사회주의, 전체주의였다는 것이다그러나 최근에 공산주의에 대해 흥미로운 저작을 내놓은 몇몇 저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세 번째 관점도 존재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실제로 존재했으나(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소비에트적 국가 사회주의와 동일한 것은 전혀 아니다. 앞서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으나 자본주의 자체의 논리에 의해 억눌려있는 공산주의를 강조한 파울로 비르노의 주장을 언급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를 분석한 몇몇 사람들은, 공식 이데올로기나 용인되는 소유방식과 일치하지는 않는 방식이긴 하지만 이 체제 아래 공산주의가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 반체제 철학자이자 망명자인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Alexandr Zinoviev)가 이미 이런 관점을 표명했는데, 그는 맑스의 변증법에 대한 중요한 논문을 집필하고 그 이후 형식 논리학으로 전향했으며, 같은 시기에 반쯤 허구적인 풍자적 에세이를 통해 소비에트 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지노비예프는 에세이 현실로서의 공산주의(Communism as a Reality)에서 공산주의가 소련에서 실제로 존재했으며 또한 그것이 자본주의의 대안인 정치경제적 체제가 아니라 자신이 공동체성(communality)”라고 부르는(그는 이것이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문명화에 의해 축소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극도로 집단적인 삶, 보다 심오한 사회적 체제였다고 진술한다(Zinoviev, 1981: 56-59). 그 나머지 부분은 르 봉(G. Le Bon), 타르드(G. Tarde), 맥두걸(W. MacDougall)등 "대중"에 대한 서구의 보수적 이론을 선명하게 상기시키는, ‘공산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납득할만한 귀결이지만 지노비예프는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긍정적으로 변형시키는 관점들에 회의적이었고, 아마도 이 때문에 1990년대 들어 그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자유민주주의적인 개혁들을 비판하는 반동적이고 쇼비니즘적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을 지지하며 극적인 이데올로기적 유턴을 했었을 것이다. 그는 소비에트 사회가 인민의 역사적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들었음, 그리고 그 안에서 시민들은 직업, 무료 의약품, 안정적인 은퇴생활과 다른 사회적 재화들을 보장받았고”, 뿐만 아니라 강력한 경찰력과 군사력이 국가를 외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줬다고 강조하며 공산당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때 지노비예프는 주저하며 러시아 체제를 공산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불렀다(Zinoviev, 1992).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1922-2006)와 그의 저서 <현실로서의 공산주의(Kommunizm kak real'nost')>




  청년 시절 지노비예프는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고양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론을 발전시켰다(Zinoviev, 1981: 56-59; 2002). 맑스의 자본론에 대한 독해를 바탕으로, 그의 인식론은 애초의 이상화(idealization)에서 복잡하고, 다각적이며, 차별화되어있고, 역동적인대상의 새로운 관계들을 향해 이동한다. 여기서 애초의 이상화는 구체적인 특정 환경 속에서 왜곡될지언정 그 때문에 반박되지는 않는다. 이후에 그가 정치에 관해 쓴 글에 따르면,


구체적 판단은 추상적 판단과 모순될 수 있으나, 거기에 변증법적 모순은 없다. 사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한 쌍의 판단을 갖는다. 1) 특정한 요소들을 추상화하면, 대상은 'A'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2) 이 요소들을 숙고하면, 대상은 ‘Y'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 변증법적 사유 방법은 특정한 시점에 이와 비슷한 논리적 테크닉의 집합으로 나타나지, 존재의 일반법칙의 독트린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런 독트린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Zinoviev, 1981: 60)

 

  우리가 대립이 아니라 모순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 그리고 그럼으로써 지노비예프가 변증법에서 대립을 제거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그 결과 특정한 역사적 리얼리티를 영원히 고착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얻게 될 텐데, 이 과정에서 그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적 구조,  모순되기 때문에 역사적 극복의 대상이 되는 그 구조는 인식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본질화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맑스의 자본론』이 저지르는 이런 를 지노비예프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현실로 이동시킨다. 흥미롭게도 변증법에서 부정성을 비판하는 이 방식은 지노비예프의 사회학적이고 문학적인 작업에서 그것이 소비에트 공산주의이건 소비에트 인텔리겐치아의 공산주의 비판이건, 아니면 서구의 자본주의적 사회가 되었건 현존하는 현실 모두를 조소하고 혹평한다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부정주의적인현실의 상으로 귀결된다. 부정성은 유일하고 초월적인 주체(아름다운 영혼?) 속으로 피신하는데, 이로써 하나를 거부하는 데에서 다른 것을 거부하는 데에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지노비예프가 현실 분석의 도구로서의 부정성과 대립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과 그의 유기적(organic)’ 사고는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분야의 전통 전체에 있어 특징적이다. 그의 사상은 서구에서 보면 들뢰즈[각주:1]나 그 동료들의 관점과 놀라우리만큼 유사하다. , 지노비예프의 주장은 러시아에서 현대 러시아를 전체주의적혹은 공산주의적용어 이외의 것으로 분석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변화(정치경제적 체제의 변화를 포함하여!)를 상부구조적인 것으로 인식했던 여러 사상가들(레바다(Levada), 굿코프(Gudkov), 릐클린(Ryklin) 등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소비에트 반체제 철학자이자 망명자인 보리스 그로이스도 초기 지노비예프와 부분적으로 유사한 관점을 표명하였다. 소비에트 시기 그의 연구물에서부터 최근의 코뮤니스트 포스트스크립트(Communist Postscript)[각주:2]에 이르기까지, 그로이스는 사회주의 그 자체와는 일치하지 않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교조주의적이고 신화시학적인 힘을 특징으로 하면서 바로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현실적인 유물론적 서구 사회들과 다른, 소비에트 체제의 매우 기이한 특징을 강조한다. 그로이스에게 공산주의 체제는 변증법적인데, 이 개념을 그는 모든 현실을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세계관 속으로 포섭하는 능력으로, 그것도 원칙이 전혀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키에르케고르를 세심하게 읽은 흔적이 드러나는 변증법에 대한 이런 희화화는 초기 지노비예프의 변증법과 명백한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공동체성'과 동일시하는 지노비예프의 산문적인 이해와 대칭을 이루는 반대편에 서서, 그로이스는 소비에트 체제의 사회주의적 열망을 일축하고 대신 아방가르드 미학주의를 강조한다. 스탈린의 종합예술(Gesamtkunstwerk Stalin)에서 이미 개진된 이러한 그의 접근 방식은 포스트공산주의 연구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일한 주장을 발전시킨 것 중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예브게니 도브렌코(Evgeny Dobrenko)의 연구인데, 그는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스탈린 시기의 소련에 적용하면서 그것이 물질적 리얼리티를 전적으로 대체한 가상적인 것을 생산했다고 주장한다(Dobrenko, 2007). 




    

보리스 그로이스(1947~)와 올렉 아론손(1964~)




  이런 주장과 동일한 선상에서 올렉 아론손(Oleg Aronson)의 보다 최근 연구를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노비예프와 그로이스의 주장을 낭시의 철학적 공산주의 및 후기 벤야민의 대중문화에 대한 변론과 결합시킨다. 박식한 영화 전문가인 아론손은 소비에트 영화(그리고 서구 대중 영화)가 물질적 사물들이 아니라 이미지로 공통의 것을 만드는 일종의 감각할 수 있는(sensible)’ 공산주의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아론손은 클리셰’(대중문화의 특징인)의 시학이 역설적으로 여러 예술영화들의 작가적 기법보다 더 공산주의적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영화의 지각은 그것이 말도, 침묵도 아닌 소통(에고의 불충분함으로부터 발생한 타자를 대하는 관계)일 때 공동체성의 유형에 편재하는 것이 되었다”(Aronson, 1993: 86-87).[각주:3]


  지노비예프와 그로이스의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세계관과는 대조적으로, 아론손은 자신의 사회미학적 철학을 포퓰리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의도했다. 대중문화에, 그리고 대중의 삶 속에는 심오한 공산주의가 있는데, 이것은 그 어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보다도, 그 어떤 정치 제도나 사회 제도보다도 우월하며,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삶의 정상성(normality)을 반영한다. 사실 대중문화에 대한 이런 변론은 벤야민이 대중문화 속에서 간파한 충격이 그 충격을 사소하게 만드는 관습 속에서도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할리우드 이미지는 감각의 순수성을 도덕적으로 의도된 조각상 같은 인물들로 찍어낼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폭력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반 의지라든지 현실을 변형키거나 심지어는 의문시할 필요성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억압하는 폭력 또한 계속해서 재생산한다. 예술의 감각적 경험을 다른 영역들의 실용적 경험들과 이상적으로 동일시하는 이론들은 예술이 사회적 관행의 저항적 리얼리티를 찍어내는 데 동원하는 폭력을 무시한다. 벤야민, 그러니까 아론손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바로 그 벤야민은 행동하기보다는 표현하기를 원하는 인류가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스펙터클인 전쟁이라는 대규모 파괴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예술의 대량 복제에 대한 에세이를 맺고 있다(Benjamin, 2006). 반대로, 베르토프의 작품 같은 영화들의 공산주의의 에너지는 클리셰의 힘으로부터의 해방을 특징으로 한다. 사실주의 회화처럼 이 영화들은 볼 수 없고 보여진 적이 없는 무언가를 보여주며, 때문에 그들의 힘은 감각의 교육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 힘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역시 공산주의를 기술하기 위해  베르토프의 영화(와 이론)을 끌어들이는 지젝은 아론손이 놓친 것을 지적한다(Žižek, 2010). 그것은 바로 베르토프의 '키노아이(cinema eye)'(카메라를 든 사나이(Cameraman))가 우리에게 카메라맨 자신을 보여준다는 사실(비록 이 특정한 이미지가 뚜렷하거나 강조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주체가 사물의 흐름 속에 하나의 요소로 남아있으며, 시각의 주체이자 객체라는 사실이다. 지젝은 이 디테일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 논쟁에서 아주 중요하다. 카메라맨의 이미지는 성찰과 주체성을 포함하면서 부정적인/부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시각장을 초월적인 주체로부터 적극적으로 해방시키는(liberate) 방식이지, 그것을 긍정하는(affirm)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를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예술로서 작용시키는 방식, 다시 말해 대중문화가 작용하지도, 작용할 수도 없는 방식, 따라서 정당하게 공산주의적이라고 간주해야 할 방식이다






카메라-눈(kino-glaza)




  앞서 묘사한 공산주의에 관한 이론들 모두가 확실히 흥미롭긴 하지만(적어도 소비에트 공식 철학이나 서구의 전체주의이론보다는 확실히 더 흥미롭다) 좌파로부터 비판받을 여지가 없지 않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 모든 이론들대중들의 아주 오래된 혼란한 에너지를 풀어줌으로써가 아니라 사유 재산 제도를 광범위하게 파괴하고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사회를 혁명적으로 동원함으로써 공산주의 체제가 실제로 성취한 해방적인, 사회정치적 성질을 간과한다. ‘실제 공산주의전통에서 공산주의적이라고 여겨질 앞서 언급한 여러 현상들이 실제로는 사회적 연결망이 대규모로 파괴됨으로써 전통적 형식들을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의문시할 수 있게 된 결과였음은 자명하다. 다른 한편 그것은 탈관된(dethroned)(그러나 지속되는) 과거와 열린(그러나 상상되고 재현되는) 미래의 부정성으로, 그것은 아론손 풍의 '대중화된' 이미지에 대한 에포케(판단정지)를 가능하게 하고, 그로이스나 도브렌코 식의 사회적 상상력이 때때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미지에 대한 물신숭배에 빠지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따라서 정치적으로 적극적인(active) 공산주의의 바이러스인 이 부정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관건이다




Aronson O. (1993) Metakino [Metacinema], Moscow: Ad Marginem.

Dobrenko E. (2007) Political Economy of Socialist Realism,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Groys B. (2010) The Communist Postscript, London: Verso.

Zinoviev A. (1981) Communisme comme réalité, Paris: Juillard, Age d’Homme.

Zinoviev A. (1992) Perestroika in Partygrad, New York: Peter Owen.

Zinoviev A. (2002) Voskhozhdenie ot abstraktnogo k konkretnogo [Elevation from the Abstract to the Concrete],   Moscow: Institute of Philosophy

Žižek S. (2010) Remarques pour une définition de la culture communiste. L’idée du communisme (eds. A. Badiou,   S. Žižek), Paris: Lignes, pp. 316–347.






  1. 우리가 『안티 오이디푸스』를,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표현된 아이디어들을 고려하면 특히 그렇다. 후자는 폭정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 자체의 요소 하나로 수용했다. [본문으로]
  2. 참고문헌을 보라. [본문으로]
  3. 아론손이 참조하고 있는 것은 지가 베르토프로(Dziga Vertov) 베르토프의 작업과 현대(Modern) 대중문화의 연속성을 보고 있다. 흥미롭게도 슬라보예 지젝이 최근에 베르토프의 영화예술적 ‘공산주의’의 예를 환기시키고 있지만, 그는 현대 대중문화를 재평가하려는 아론손의 의지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 논문에서 지젝이 참조하고 있는 것은 고급 문화에 한정되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그는 일반적으로 대중 영화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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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커피한잔 2016.06.08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 하이 2016.06.08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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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이 2016.06.11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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