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정상참작 될 수 없는 고백 앞에서

금은돌,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읽고

 

 

 

 

 

 

도경(수유너머104 회원)

 

 

 

 

한국문학사 수업이 한창인, 대학의 한 강의실이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학생이 김수영을 주제로 리포트를 발표한 뒤의 일이다. 여학생들은 김수영 시의 여성혐오적인 측면에 분노했다. 교수는 되도록 중립적인 태도로 김수영 시를 분석하고 그와 그의 시가 놓인 문학사적 위치를 설명했으나 그녀들은 설득되지 않았다. 이 수업 기말 리포트 제목 중 하나는 찌질이 김수영이었다.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그보다 먼저 웃는민중의 저력을 노래하고()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정권의 부정에 더욱 정면으로, 온몸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통렬히 반성한(어느날 고궁을 나서면서) 참여시인 김수영은 어쩌다 찌질이가 되었는가.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김수영,「구름의 파수병」에서

 

 

  

 

사실 김수영은 끊임없이 고백했다. 나는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고. 나는 찌질하다고. 시와, 문학과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의 생활, 그 반역이란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이었다. 가정과 돈, 안일한 일상과 천박한 자본주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그는 조용히 미쳐갔다. 김수영의 그 고절과 비애(생활)의 핵심에는 어김없이 여편네가 있었다. ‘단돈 10원에 벌벌 떠는 여편네(이 거룩한 속물들). ‘여편네의 계산’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만용에게) 봉건의 노예이던 여자는 지금 금전으로 그 상전이 탈을 바꾸어 있을 뿐(내실에 감금된 애욕의 탄식)이지만 그런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여편네의 방에 와서 신귀거래1-). 이 무력한 남성 시인은 비속한 여편네여성을 혐오한다. 그리고 그 혐오를 경유해 자기를 비하한다. 찌질이 김수영, 맞다. 여학생들의 분노에 공감한다.

 

 

김수영은 고백했다. ‘시에서 욕을 하는 것이 정말 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문학의 악의 언턱거리로 여편네를 이용한다는 것은 좀 졸렬한 것 같은 감이 없지 않다(시작 노트 4). 김수영의 여러 시가 여성을 혐오와 폭력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혐오의 비윤리성을 스스로 고발하고 윤리적 문제에 자기를 투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김수영은 문학과 생활을 구분하지 않았다. ()은 시의 재료였고 그래서 너무 솔직해서, 문제가 되었다. 김수영 연구자, 이영준 교수의 말대로 김수영의 시가 갖고 있는 문제적인 측면은 그 시대가 그랬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낸 것으로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용서,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 40명가량의 취객들이 /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 아까운 것이 /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김수영,「죄와 벌

 

 

그러나 용서는 불가하다.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힌 죄와, 죄를 꺼리지 않은 시대와, 그 시대에 대한 자백 역시 더 이상 정상참작 될 수 없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타자 혐오를 예민하게 기소하는 시대. 우리는 문학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을 읽고 써야 한다. 꾸짖고, 벌하고 드러내야 한다. ‘밤새 고인 가슴의 가래마음껏 뱉어()낼 때다. 나를 부수는 장소에서, 철저하게 실패를 공부하는 일. 그 장소가 문학이기 때문에. 김수영은 스스로 탑을 쌓지 않았으며 자기 신화화를 반대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 아침에 서약한 게 있다니까 / 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 / 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거미잡이) 이것은 시인 김수영이 서약한 기꺼운 벌일 것이다.

 

 

   

김수영은 “여편네”를 이용하면서, 얼마나 폭력적인 남성인지, 얼마나 여성을 무시해왔는지, 폭로해 왔다. 심지어 황홀과 연민의 순간에도 자기 분석을 놓지 않았다. 시인 자신은 철저한 텍스트였다. ― 금은돌,「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68)

 

 

금은돌 작가는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에서 문학적 프로파일링을 시도한다. 라는 부사로 여편네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삽으로 파내려 한다. 접사 카메라가 되어 밀착하여 바라보는 일. 다시 멀어지는 일” “부사 의 작동방식에 따라서. 작가는 김수영의 출신에 밀착해본다. 연극배우였던 김수영의 시가 드라마적 감정구조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토대로 시를 분석한다.죄와 벌화자(배우)의 자기 인식(폭력을 휘둘렀지만 위대한 인물은 아닌)과 성격(반성하는 기미 없이 투덜) 그리고 가치관(타인의 고통보다 남자의 체면이 중요)을 간파하고 화자의 방백에서 철저하게 아웃포커스대사는커냥, 눈빛 한 번조차 나타내지 않(56)는 여성의 희생을 읽어낸다.

 

 

만용에게식모분석에서도 드라마 흐름과 주도권을 쥔 남성은 혼자서 모든 상황을 종료(58)하는 현장을 짚어낸다. 여편네,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라는 직접화법으로 아내의 간접화법을 덮어그녀의 목소리를 은폐시키는 형식을 치밀하게 밝혀낸다. 화자는 타자(아내)에 대한 책임보다 의 자유를 중요(59)하게 여기고 있다고 판단, 그런 배역을 지시한 시인(연출가)남성적 지배 욕망을 실연(acting-out)하는 이데올로기 공연(57)을 비판한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낮춘 것은 포즈에 불과하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전략이자 뒤집기 수법(61)이 아닌지 의심한다. 자유와 정의와 양심과 사랑의 표어를 내걸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폭력(63)이라고.

 

 

접사 카메라의 수사 다음 “‘가 놓여야 할 위치는 “over view”였다. 작가는 거리를 두고 사건들을 살핀다. 화자가 흠칫, 놀라(이혼 취소(離婚 取消))거나 섬찍함을 느끼는(()에서) 지점에 주목한다. 아내의 눈동자에서 그대가 흘리는 피를 본 순간. 화자는 놀람을 느끼며 내면에 스며든 눈동자 타자를 직감하는 기호(65)로 받아들인다. 아내는 화해 가능한 마주봄을 압도하기도 했다. 아내와의 성관계 중 화자는 아내에게 적나라하게 개관당하는 지점에 이른다. 느닷없이 거울로 비춰진 섬찍한 낯섦을 느낀 그는 아내의 응시에 더 이상 내가 나를 속일 수 없는 지점(67)에 이른다. 시선이 역전당하면서 자리바꿈이 이루어(68)진다. 여성-타자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시인은 저만치 아래로 미끄러지는(46) 남성-주체가 무력화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속물근성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위로받으려고 했던 포즈들. 여성을 비하하며 요설조로 몰아붙이고, 폭력성을 드러냈던 장면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남성이었는지 보여주었던 자학적인 면모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사랑의 온전함이 아니었다. 우산대로 여편네를 내리치는 폭력성까지 고백하면서 증명하고 싶어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결핍이었다. (70)

 

 

몇 년전, 한국문학사 수업이 한창인 대학의 한 강의실에 금은돌 작가가 있었다. 여학생들은 김수영 시의 여성혐오에 분노했다. 찌질이 김수영. 작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김수영은 찌질했는가?” “김수영은 왜 자신의 찌질함을 기록했는가?”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김수영은 남편과 아내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문학으로 끌어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순과 폭력성을 까발리려했다. 사랑의 결핍을 역설하고 진정한 사랑의 이행을 실현”(70)하기 위해서. 찌질한 자신을 폭로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분석하면서. 그러나 김수영의 (자유와 정의와 양심과) 사랑론이 여성-타자 혐오를 경유했음에도 위대함으로 승인되어 온 것은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 김수영 신화를 만들어 나간 것(71)이며 이 신화는 유죄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작가는 결론 내린다.

 

 

그리고 금은돌 작가에게 이것은 단지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관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를 왜 쓰는가?” 질문의 미궁 속으로 던져진 채, 작가는 오랫동안, 방황했다고 한다.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쓴 이후 그녀는 아리아드네의 실마리를 잡았을까. 미궁에서 빠져나왔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문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라는 부사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이기 때문에, 금은돌 작가는 “‘문학하다는 문장에 끌려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상참작될 수 없는 또 다른 사건에 부사 를 꼽을 것이고 새로운 질문의 미궁들 속으로 괴롭게 그러나 기꺼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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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이 돌아온다-우리 친구들에게』 서평

 

 

 

 

 

 

 

김기영(수유너머104 회원)

 

 

 

 

『코뮨이 돌아온다-우리 친구들에게』는 ‘평화’, ‘민주주의’,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허위임을 단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존재하는가? 애초에 평화도 민주주의도 사회도 없었던 이곳에 존재해 온 것, 우리를 연결해온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대답은 분명하고 어긋남이 없다. 그리고 강력하다.

 

저자 ‘보이지 않는 위원회’는 프랑스에 근거한, 코뮨의 세계적 연대를 촉구하는 강도 높은 지식인 집단이다. 이들은 많은 것들을 주장하고 선언한다. 모두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 들이다.

 

이들은 평화가 허위라고 주장한다. 별일 없이 지나가는 듯 보이는 하루지만 어디선가는 테러로 수백 명이 희생당한다. 헤아려지지 않을 뿐 우리는 파국을 향해 전속력으로 추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우리에게 평화는 없었고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면역계가 신체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적들을 무찌르듯.

 

이들은 말한다. 평화의 가면을 벗기고 유혈사태를 중단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들의 “전쟁”은 폭력과 살상이 아니다. 전쟁은 벗어나야 하는 것들과의 전면적인, 진심 어린 대결이자 “이질적인 역량들의 접촉을 주재하는 논리”이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허상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소수의 독재자들에게 조정당하고 지배되었다고. “자신을 주인으로 알지만 사실은 노예인 대중은 노예인 척 하지만 사실은 주인인 소수자들에 의해 통치당하고 있다.”(64) 인간이 통치당해야 할 만큼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면 통치는 부당하고 불필요한 압제임이 분명하다.

 

만일 이들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허상이라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수많은 “민주화운동”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1968년 프라하의 봄과 1980년 서울의 봄, 2011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을 기억해보자. 부패와 독재에 저항하던 이 싸움들은 모두 전쟁이나 외세의 개입, 또 다른 독재로 이어졌다. 혁명이 진압되자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몰려들었다.

 

 

모든 것은 반복될 뿐이었다. 분노는 희망으로 바뀌었다가 절망으로 변하고, 부조리는 계속되었다. 썩은 권력이 무너진 빈자리에는 무능한 정권, 꼭두각시 권력, 새로운 독재가 들어선다. 그래서 이들은 전면전을 주장한다. 거리에서 승리하는 것, 권력을 부수는 것만으로는 권력을 해체할 수 없다. “반드시 권력의 근거를 박탈해야”(72)한다.

 

이들은 사회가 없다고 말한다. 대신 여러 세계가, 우리가 경험하는 일련의 유대, 우정, 반감, 실질적인 멀고 가까움이 있을 뿐이다.(170) 사회는 역대 통치방식들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를 지칭할 뿐 아니라 언제나 통치에 봉사해 왔다(153),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들은 ‘코뮨’이라고 답한다.

 

코뮨은 언제나 존재했던 맹세, 약속이었다. 코뮨이 추구해온 것은 조직이나 기관 같은 실체가 아니라 유대의 질과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코뮨을 선언하는 것은 매번 역사적 시간을 경첩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고, 코뮨을 선언하는 것은 서로 유대관계를 맺는데 동의하는 것이다(176). 이들은 코뮨의 ‘다시 돌아옴’을 선언한다.

 

이들은 주장한다. 우리가 사회에 포위되어 민주주의라는 허상을 좇으며 독재자들에게 부당하게 통치당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필요한 것은 바로 “봉기”와 “전쟁”이라고. 그리고 통치를 해체하고자 한다면, 봉기를 준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그렇다. 전면전을 위해 우리는 상황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이해 공유를 위한 텍스트, 자료”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혁명과 유사한 혁명의 반복,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도처에 감추어져 있는,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 짐작하기 어려운 혁명의 잠재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말대로 유대와 약속의 역량을 가진 존재라면 시대를 탈구시키며 도처에서 고개를 내미는 코뮨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서평




송재림(수유너머104 회원)





 

모건 스캇 펙(1936~2005)은 정신과 의사이자 영적 안내자이다. 그는 하버드대학과 베이스 웨스턴 리저브를 졸업한 후 육군 군의관으로 보낸 10여년의 경험을 토대로 개인과 조식에서의 인간 행동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심리학과 영성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책이라는 평을 듣는 아직도 가야 할 길시리즈를 비롯하여 평화 만들기, 거짓의 사람들등을 저술했다.



거짓의 사람들을 치료 가능한 하나의 정신적 질병으로 보고 악 일반에 대해 과학적 지식 체계를 구성하고자 시도한 실험이다. 스캇 펙은 정신과 의사로서 접한 다양한 환자 사례들에서 악의 일반적 요소를 찾고, 악의 실체를 정신의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개인적인 사례를 다루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집단적인 사례를 통해 집단 악의 과정 및 예방법을 제시하였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당혹스럽다. “정신과 의사가 악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이건 너무 종교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판단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적 차원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의 심리학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악에 대해 먼저 짚어보자. 스캇 펙이 만난 다양한 환자 중 그가 악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의가 반듯한 사람이며 타인에 대한 매너가 몸에 밴 완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도덕적이고자 하지 않으며 가식과 위선의 수준에서만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의식하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투사함으로써 죄책감을 거부한다. 이들의 나르시시즘은 자기 욕망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한다. 이 과정에서 악한 사람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은 늘 희생양이 된다.



이러한 은 나르시시즘적 성격 장애의 한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악의 원인은 무엇일까? 유전적인 기질, 부모의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하겠지만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한 악의 기원인 개인이 한 일련의 선택의 집합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양심에 따라 어려운 길을 선택하느냐 자기 욕망에 따른 쉬운 길을 선택하느냐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일련의 오랜, 반복되는 선택들이 악하게 발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악이라는 질병이 개인의 선택에 기인하기에 예방과 치료법 또한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방향이 된다.



악은 개인의 수준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집단 악에 대한 설명이다.



집단 내 개인들의 역할이 전문화될수록 개인이 도덕적 책임을 집단의 다른 부분에 전가시키는 일은 가능해지며 쉬워진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버리는 것은 물론 집단 전체의 양심도 너무 분해되고 희석되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될 수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즉 모든 개개인이 자신을 자기가 속한 집단의 행동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로 인식할 때까지는 어떤 집단이라도 불가피하게 잠재적인 무양심과 악의 상태에 빠져 있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p.294”



악의 집단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집단이 다시 개인이 되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에 책임지는 부지런한 개인이 되는 것이 악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경험한 거짓의 사람들몇이 떠올랐다. 내게 그들은 앞으로의 행동이 예측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 늘 궁금했던, 그래서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그들의 삶의 기준이 온전히 그 자신만을 위한 욕망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후련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갈등의 상황에서 너무나도 쉽게 방어 기제를 이용하여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나의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살아가며 만나는 선택의 순간에서 편한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인문학 리뷰 






송재림(수유너머104 회원)




1.김승섭,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김승섭은 의사이자 사회역학자이다. 천안교도소의 공중보건의 생활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하였다. 저술한 책으로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 있다.



이 책은 개별적인 신체에 발생하는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인 요인에서 찾는 사회역학을 다룬다. 하버드대학교 낸시 크리거 교수는 1994년 출판한 논문(역학과 원인의 그물망: 거미를 본 사람이 있는가?)을 통해 개인이 살고 있는 공동체는 질병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묻는다.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금연율의 관계, 공공의료보험과 AIDS의 관계, IMF와 결핵사망률의 관계를 통해 저자는 질병의 원인으로서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원인이 공동체에 있다는 것은 처방과 예방 또한 공동체의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 공동체는 개인의 건강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가? 그 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p.72”



사회역학은 정책 결정에서 어떤 방법을 통해 영향을 미칠까? 정책과정은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이슈가 되면 정책 아젠더를 형성하고 이에 맞는 정책 대안들 중에서 특정한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집행 및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적 상황은 맥락적이기에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유의미한 자료를 수집할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과거의 데이터에만 의지한 정책은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저자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때 이익을 얻는 기업이나 집단의 사전적 증명을 요구하는 사전주의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을 나누고자, 스스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2. 아론 벡,우리는 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론 벡은 1921년에 태어나 현존하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에서 벗어나 인지치료라는 새로운 치료법을 창시하였다. 인지치료는 내담자가 가진 행동 문제와 관련된 역기능적 사고를 찾아 이를 수정하여 행동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법이다.



우리는 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는 아론 벡이 인지치료를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가능하다는 착안에서 서술한 책이다. 그는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사고현상인 왜곡된 인지부정적 신념으로 인한 심리적인 문제를 명료화하여 개인 및 집단,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설명하고 인지적 요소를 활용하여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책의 제목인 우리는 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저자는 원초적 사고때문이라고 한다. 원초적 사고란 원시시대에는 도움이 되었던 자기 중심적인 사고이다. 원초적 사고는 상대방의 의도를 왜곡하여 공격적인 행동을 통해 파국을 초래하는 이분법적이며 편집적인 사고이다. 인간이 취약한 부분에서 위협을 받을 때 원초적 사고가 활성화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취약성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공격자에게로 초점이 전환되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왜곡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인지적 왜곡은 이후 공격자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로 진화되면서 공격자에 대한 분노를 정당화시킨다.



아론 벡은 이를 집단의 차원에도 적용시킨다. 사람들은 쉬운 결정을 하기 위해 그리고 배척당하기 싫어서 집단의 의견을 따른다. 집단적 사고는 한 집단의 개인이 우리라는 범주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사고를 단순화(이분법적 사고)하여 인지적 왜곡을 일으키는 과정을 통해 활성화된다. 예를 들어, 나치는 게르만 민족이 우성학적으로 우수하다고 주장함으로써 게르만 민족과 그 외의 민족으로 범주를 설정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게르만인은 게르만 민족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으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게르만 민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대인들과 다른 인종을 인간 이하로 왜곡하여 인지하였다.



그렇다면 원초적 사고로 인한 갈등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지치료는 내담자의 상처받은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원인을 객관화하면 인지적 왜곡을 예방하고자 한다. 이를 적용하면, 자기중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으로 상황은 인식하는 것이 갈등해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이타주의적 사고 훈련을 통해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공감력이 높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원초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취약성을 공격받지 않는다는 느낌 즉, ‘돌봄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편견과 선입견, 이분법적 사고에 도전하고 대항하는 사회적인 장치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분노와 혐오가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 스스로의 분노를 되돌아 보고자 하는 이, 타인의 분노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3.제임스 길리건, 위험한 정치인



 

제임스 길리건은 미국 정신의학자이자 작가이다하버드대 법정신의학연구소 책임자로서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메사추세츠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폭력 예방을 위한 사회심리학적 프로젝트를 실시해 교도소 안의 살인율과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었다이를 바탕으로 폭력적 행동의 원인과 동기에 대해 연구한 폭력』 시리즈를 저술했다.



위험한 정치인은 제임스 길리건이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 통계를 분석한 책이다자살과 살인은 개인적인 원인으로 일어난다는 통상적인 생각과 달리 근 100년 간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은 동시에 솟구쳤다가 동시에 급락하였다흥미로운 것은 자살률과 살인율의 변화 주기가 대통령의 권력 교체와 맞물렸다는 점이며더욱 흥미로운 점은 폭력 치사(자살과 살인발생률이 오직 공화당 정부 때만 전염병 수준으로 올라가고 오직 민주당 정 부 때만 전염병 수준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이 통계는 어떻게 해석이 가능할까?



저자는 우선 자살과 살인의 원인을 살펴본다저자는 폴 홀링거의 연구를 인용하여 자살률과 살인율은 상호 연관성이 있으며 실업률과도 상호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한다그는 칭치 시에와 베러디스 푸의 연구를 인용하여 소득 불평등과 폭력 범죄 또한 긴밀한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한다그렇다면 실업과 불평등은 대통령의 정당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공화당 정부에서 민주당 정부 때보다 실업률이 증가하고불평등이 심화되는 원인은 두 정당의 정책 차이에 있다공화당은 부유층의 소득 증가율을 높이는 정책을 추구하는 반면 민주당은 실업을 줄이고 성장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의 정책을 추구한다이에 따라 공화당 정부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치사 범죄율이 상승하는 것이다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 차이는 수치심의 윤리와 죄의식의 윤리로도 설명가능하다수치심의 윤리는 불명예와 치욕이 가장 큰 악덕이고 수치의 반대곧 자부심과 명예가 가장 큰 미덕으로 통하는 도덕 체계이다죄의식의 윤리는 죄가 가장 큰 악덕이고 죄의 반대곧 순결이 가장 큰 미덕으로 통하는 도덕 체계다수치심의 윤리는 우월과 열등의 서열화를 옹호하며 위계화된 사회 체제를 미화한다죄의식의 윤리는 교만을 죄로 규정하여 누구도 우월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평등주의를 옹호한다이에 따라 수치심의 윤리에서는 자부심을 높이고 열등감을 낮추기 위해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하고죄의식의 윤리에서는 자부심을 낮추고 겸손하기 위해 사회·경제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이것은 가난한 사람이 왜 공화당을 지지하는지도 설명해준다.) 수치의 윤리를 정당의 핵심 정서로 삼는 공화당은 사회를 위계적으로 불평등한 수치 문화로 만들어 가며죄의식의 윤리를 정당의 핵심 정서로 삼는 민주당은 지위의 차이를 줄여 수치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평등주의적 사회를 만들어 간다.



이 책을 폭력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이에게 추천한다저자가 마지막으로 인용한 피르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의학의 진보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겠지만 사회적 여건의 개선은 이러한 결과를 더 신속하게 더 성공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의사는 본디 가난한 사람의 변호인이고 사회 문제는 넓게 보면 의사의 영역에 들어간다인간을 다루는 과학으로서 의학은 사회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의학통계학은 우리의 측정 기준이 될 것이다우리는 생명의 무게를 생명으로 달고 어디에 시신이 더 두텁게 쌓였는지를 볼 것이다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는 규모를 키운 의학일 뿐이다.”



이에 대한 답을 조효제 교수가 쓴 추천사에서 찾을 수 있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정책은 사람들을 강력한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키기 쉬운 정책이다열패감과 열등감을 조장하며 타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도록 부추기고 불평등을 찬미하는 문화를 숭상한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실했을 때특히 해고를 당했을 때극도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경험한다이런 식으로 수치심과 모욕감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는 폭력 치사(타살자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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