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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문학.예술

문학세미나_가상현실보다 환상적인 포 읽기 가상현실보다 환상적인 포 읽기 -끝까지 가본 인간 정신의 다채로움 이봉순(수유너머 문학세미나 회원)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광기와 우울로 대변되는 그의 명성 때문에 잘 알려져 있는 “아는” 작가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천재적인 문학가로서의 위상과 진면목을 모르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검은 고양이〉와 〈애너벨 리〉로 회자되는 포를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그의 문학세계의 깊이와 다채로움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엿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를 통해 그의 시선집을 비롯하여 단편전집 “우울과 몽상”을 세미나원들과 함께 읽기 전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세미나 반장님이기도 한 송승환 시인이 작년 여름에 “다른 삶은 있는가”라는 이름.. 더보기
기형도 30주기 추모 기획세미나_기형도 시집 새로 읽기 『입속의 검은 잎』 시집 읽기 나무(기형도 기획세미나 회원) 지금까지 우리는 4차례에 걸쳐 기형도의 미발표작 시들과 산문을 읽었다. 어찌보면 유고 시집 을 읽기 위한 준비 단계로 근육을 키워오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세미나에서는 1부의 시들 일부를 읽었다. 3시간 꼬박 열띤 논의를 걸쳐 살펴본 시들은 시집에 나열된 순서대로 보자면 이렇다. , , ,,, ,, ,,. 그러나 우리는 어떤 우발을 기점으로 우리만의 리듬을 이끌어내며 세미나를 진행하기 때문에 실제 논의된 순서는 이와는 다르다. 튜터님이 회원들에게 어떤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었냐는 물음에 한 분이 이 인상적이었는데, 분위기가 독특하다고 운을 띄웠다. 여기에 촉발되어 우리의 논의는 종횡무진 롤러코스트를 타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부터의.. 더보기
[비평집] 더 이상 정상참작 될 수 없는 고백 앞에서― 금은돌,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읽고 ― 더 이상 정상참작 될 수 없는 고백 앞에서 ― 금은돌,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읽고 ― 도경(수유너머104 회원) 한국문학사 수업이 한창인, 대학의 한 강의실이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학생이 김수영을 주제로 리포트를 발표한 뒤의 일이다. 여학생들은 김수영 시의 여성혐오적인 측면에 “분노”했다. 교수는 되도록 중립적인 태도로 김수영 시를 분석하고 그와 그의 시가 놓인 문학사적 위치를 설명했으나 그녀들은 설득되지 않았다. 이 수업 기말 리포트 제목 중 하나는 “찌질이 김수영”이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그보다 ‘먼저 웃는’ 민중의 저력을 노래하고(「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정권의 부정에 더욱 정면으로, 온몸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통렬히 반성한(.. 더보기
[문학세미나]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페르난두 페소아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페르난두 페소아 이재현(수유너머104 세미나 회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라는 제목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 불안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것과 동시에 “OO(여기엔 우울, 행복, 기쁨, 만족, 게으름 등이 해당한다.)/의(적절한 조사 자리)/□□(여기엔 기원, 정복, 여정, 접속, 괜찮아 등이 해당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 치고서 정말 멀쩡한 책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시선을 조금 내려 배수아 작가가 이 책을 번역했고, 이후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도 포함된 것을 확인한 뒤엔 기꺼이 서가에서 뽑아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의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충분히 있는 내 불.. 더보기
문학세미나_동시대의 유동하는 시점과 페르난두 페소아 동시대의 유동하는 시점과 페르난두 페소아 김민경(문학세미나 회원. 설치미술 작가) 감각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다양한 존재 만들어낸다. 가령, 오늘 같이 봄바람이 이마를 스칠 때 단순히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는 게 아니라 리카르두 레이스라면 어떻게 느꼈을까, 꼽추 소녀라면 창가에 앉아 이 바람을 어떻게 감각하고 표현했을까 생각해본다. 감각을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독히 세밀하고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존재를 쪼개고 시점을 대입해 그 순간을 관찰한다. 페소아가 글쓰기이자 예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페소아의 창작물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떤 이명은 위대한 예술가로 칭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녀와 같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창조하는 부분이었다. 꼽추 소녀가 “나는 온통 눈물이에요”라.. 더보기
문학세미나_나를 발견하는 거울 -페르난두 페소아 *문학 세미나 후기 나를 발견하는 거울-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와 『페소아와 페소아들』 이재현/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 회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라는 제목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 불안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것과 동시에 “OO(여기엔 우울, 행복, 기쁨, 만족, 게으름 등이 해당한다.)/의(적절한 조사 자리)/□□(여기엔 기원, 정복, 여정, 접속, 괜찮아 등이 해당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 치고서 정말 멀쩡한 책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시선을 조금 내려 배수아 작가가 이 책을 번역했고, 이후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도 포함된 것을 확인한 뒤엔 기꺼이 서가에서 뽑아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의 책』을 읽어나가는 것.. 더보기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94) 이혜진 / 수유너머 104 회원 저녁달 김혜순 아직 안 보이는 그가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새가 튀어올랐다 새들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자꾸 찢고 지나갔다 옥양목 찢어지는 소리가 강물 밑까지 울렸다 나는 검은 강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아직 안 오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두 잔째 다 마셨다 귀울음 소리가 커지자 머리통이 점점 부풀어올랐다 머릿속 벌통을 새의 부리가 건드렸나? 머리통 속으로 송사리떼가 드나들었다 그러다 불현듯 모든 것이 멈추었다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지는 해 속에서 그가 너울너울 터져나왔다 내 깊은 강물 속에서 박하 냄새가 환하게 퍼졌다 김혜순의 네 번째 시집, 은 90 년대 를 마주한 우리들의 초상과도 같다. 서구 냉전 시대의.. 더보기
[시읽는 목요일] 김혜순, <우리들의 음화陰畫>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우리들의 음화陰畫』(문학과 지성사, 1990) 이혜진/ 수유너머 104 회원 기념일 김혜순 그는 계단을 올라왔다 급히 자동차를 타고 마악 들국화 뿌리 밑에서 일어나 학교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학생들은 책가방을 풀고 숙제를 꺼냈다 한 학생이 기념일 숙제에 그의 이름을 썼다 선생님은 숙제의 답이 틀렸다고 일일이 지적했다 막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가 계단을 다 올라와 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학생들은 흰 고무지우개로 틀린 답을 지웠다 틀린 답은 쉬 잊혀지게 마련 그의 얼굴이 교실문 뒤에서 지우개 가루처럼 흩어졌다 김혜순의 세 번째 시집, 를 펼치면서 그가 쓴 시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다. 두번째 시집을 내면서 그는 과거는 현재 인생의 전단계가 아닌 떠나면서 다시 돌아와 자신을 감.. 더보기
[바깥의 문학] 재현의 정치성에서 상상의 정치성으로― 김시종과 김혜순의 시 재현의 정치성에서 상상의 정치성으로― 김시종과 김혜순의 시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 없다, 너는 다만 부서진 이미지들 더미만 알기 때문에……이 파편들로 나는 나의 폐허를 지탱해왔다― T.S. 엘리엇, 「황무지」 부분 송승환_시인. 문학평론가 1. 기억하기 위해서는 상상해야 한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1958)는 폴란드 모노비츠 마을에 소재한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한 그의 처참한 체험을 기록한 증언 ‘문학’이다. 이탈리아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1943년 12월 3일 파시스트 민병대에 체포되어 1945년 1월 27일까지 갇혀있던 수용소의 삶을 기록하였는데, 그는 「작가의 말」에서 책을 쓴 의도를 이렇게 밝힌다. 내 책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당혹스러운 주제로 전 세계의 독자들에.. 더보기
[바깥의 문학]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최진석_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회원 1. 리듬과 감응, 유물론의 시학 유물론적 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게오르기 플레하노프(Georgii Plekhanov)는 예술의 오래된 기원 중 하나로 리듬에 대한 감각을 꼽은 적이 있다. 그의 예술론을 모아놓은 『주소 없는 편지』(Pis’ma bez adresa, 1899)에 따르면, 원시사회에서 노동이란 파편화된 각자의 힘을 단일한 집합성으로 끌어모으는 과정이고, 그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은 다수의 인간을 하나로 엮어내는 몸의 감각 즉 리듬이라는 것이다. 플레하노프가 유물론적 혁명가이자 정치철학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이 새롭거나 놀라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채롭게 보아야 .. 더보기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85) 이혜진/수유너머 104 회원 敵 2 김혜순 깊은 밤 우리는 서로 없애주기로 언약했었다그리고 엎드렸었다.타앙, 네가 한 방 먼저 먹였다.나는 갈가리그러나 순간적으로 찢어졌다.타앙 탕, 이번엔 찢어진 내가사력을 다해 두 방 먹였다.너도 나처럼 너덜거렸다.순간적으로 너덜거렸다. 깊은 밤, 우리는 서로 없애주기로 언약했었다.그리고 엎드렸었다.그 다음 무서웠다.우리들 사이에 침묵이 서 있었다.침묵의 더러운 이마침묵의 거대한 아가리침묵의 가랑이그 가랑이 아래로 소리없는 별들이우 수 수.침묵은 우리의 심장을 꺼내갔다.허파도 하나쯤 가져갔다.깊은 밤 우리는 서로없애주기로 언약했었다.그런데 이 한밤우린 침묵에게 당했다. 빈 들판에허수. 아비. 김혜순의 두 번째 시집,.. 더보기
[바깥의 문학]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2010년대 한국시의 경향과 특이점: 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돌들은 땅 위에 깔려 있다,물 한 방울 짜낼 수 없는 돌들,목덜미를 연상시키는 보통 돌들,보통 돌들, ―비문 없는 돌들.―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송승환_시인. 문학평론가 1. 새로운 언어 없이 새로운 세계는 없다 지난 2016년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2017년 3월 11일 20차 촛불집회까지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서 열렸다. 헌법에 기초하지 않은 소수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촉발된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평화적이며 지속적인 참여로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였다. 특히, 19차 촛불집회까지 세대와 성별을 가르지 않고 참여한 시민들의 최종 누적 연인원은 1,500여만 .. 더보기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또 다른 별에서>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81) 이혜진/수유너머 104 회원 말 3. 字 처음 피어나는 소리 김혜순 우리 물 속에서라도 말을 해 봐. 초록색 뱀장어 한 마리 물 뱉는 소리 들리지? 우리 뱀장어처럼 속삭여 봐. 죽은 사람들의 대답을 듣고 싶어. 죽은 사람들의 말이 불을 켜고 떠나며 우리들을 간질러, 물 먹은 그 말들이 세모만 만들며 뛰어다니면 파도가 높아. 진초록 세모벽은 갯벌에 부서지고, 부서지는데 우리들의 목울대는 터지지 않아. 초록색 뱀 한 마리 물 속에 우두커니, 우리를 봐. 우리, 불을 켜고 돛단배라도 띄울까? 어서 입을 벌려 봐. 파도 소리, 돛단배 떠나는 소리. 초록, 초록 물 한 방울, 말 한마디. 초, 록, 뱀, 한 마리. 세모꼴 부서지는 소리. 입이라도 벌려 봐. 시..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잘 모르는 사이에(서) - 박성준 『잘 모르는 사이』(문학과지성사, 2016) 잘 모르는 사이에(서)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이 시집은 박성준의 두 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첫 시집의 제목은 『몰아 쓴 일기』라고 한다. 그 시집에는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 시집에서 누이가 무당이 될 운명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의 이름도 들어봤고, 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던 것도 들어봤고, 그래서 그 시집을 사다 둔 적도 있고, 그가 어떤 외모라는 것도 들어봤지만 그와 나는 여전히 잘 모르는 사이다. 아예 그의 이름도 모르고 시도 안 읽어봤다면 그냥 모르는 사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주워들은 정보가 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모르는 사이다. (물론 그에게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겠지만) 그래서 다음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잘 모르는 그를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본다. 자.. 더보기
[풍문으로 들은 시] 인양에서 은유로, 은유에서 인양으로 -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2015, 창비) 인양에서 은유로, 은유에서 인양으로 -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2015, 창비) -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백무산의 시집은 처음 읽어보았다. 왠지 제목부터 세월호를 연상시켜 읽고 싶지 않았다. 사회문제를 노골적으로 시어로 삼고 있는 시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 세월호 추모제에서 송경동 시인의 시 낭송을 듣고부터는 세월호에 관한 시들을 피하게 되었다. 쏟아지는 비 아래서 들었던 시인의 절규는 공포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월호'라는 시어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세월호 침몰'이라는 사건은 경악할만한 것이었지만 '진상규명'과 '인양'이라는 말은 기꺼이 끌어 안아야 할,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가벼운 공기가 아니라 빗물이라는 다소 무거운 매질을 타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