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원적 축적에 맞서는 코몬즈하기와 봉기하기






가게모토 츠요시 








마누엘 양, <묵시의 에튜드 – 역사적 상상력의 재생을 위하여>, 신평론, 2019, 336쪽, 2800엔+세금 (원서:マニュエル・ヤン, 『黙示のエチュード』, 新評論, 2019 http://www.shinhyoron.co.jp/978-4-7948-1113-4.html)





  이 책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세계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이 때 ‘세계사’란 숭고한 목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류의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온 민중들의 생존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 마뉴엘 양은 브라질 상파우로 출생, 대만출생의 아버지와 일본인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초등학생 때에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제1언어는 영어라고 한다. 그는 『자본론을 정치적으로 읽는다』의 저자 하리 크리버와 『히드라』의 피터 라인보우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311지진을 비롯한 일본에서의 맥락에서 쓰여진 글과 대담을 모은 것이지만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현 단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은 영어권의 민중사가 자유자재로 횡단하면서 일본어/한국어 독자에게는 감각하기 힘든 영역을 열어준다.


“311 지진이 일어난 지 얼마 후, TV에서 어떤 코멘테이터가 ‘부흥’은 수백 년 단위로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런 시간을 소모할 거면 ‘근대혁명’따위 쉽게 일소할 정도의 영구혁명을 담당하는 ‘다두의 히드라’의 양성에 전념하는 게 낳을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여간 새로운 계급투쟁의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들어간 것은 틀림없다.”(59)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한다. 라인보우가 쓰는 ‘Jubilating’이라는 표현은 성문화된 명사가 아니라 주체의 산 방향을 가리키는 동사라고(20쪽). 여기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동사적 살아있는 형태로 주체를 호출한다는 것이다.  



  또한 뉴욕의 월가의 wall란 인클로저의 벽에 기인한다고 하면서 일본근세 도시 에도(지금의 도쿄) 교외에 있던 사형장의 역사를 오버랩한다. 연결이 잘 안될 것 같이 생각되는 이 두 가지 사례는 저자의 주장에서는 일관된다. 즉 아메리카 원주민과 자국의 수인들의 시체를 이용하며 유럽의 근대의학은 발달이 되었는데, 그것은 범죄자가 된 노동자의 시체와 그것을 처리하는 노동을 바탕으로 발전된 일본에서의 의학의 발전과 일관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서의 본원적 축적을 코몬즈(이 말 역시 원래 함께 실천한다는 동사였다, 89쪽)를 파괴해온 역사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 코몬즈의 움직임을 도쿄나 뉴욕의 역사에서 다시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도는 현행적인 지리만으로 저항의 문제를 한정시키는 사고방식을 재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봉기 또한 끊임없는 동사이다. 그것을 항상 상기시키는 것으로서 대중지성이 있다는 것이다(102쪽). 동사로서의 봉기를 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자본축적이 바로 죽음의 축적임을 보게 된다(111쪽). 그러면서 라인보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범죄학 또는 경제학에서도 ‘캐피털capital’이라는 용어정도로까지 강렬한 것은 거의 없다. 전자의 분야에서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며 후자에서는 ‘부’또는 ‘주식’의 생명을 의미한다. 일견 반대의 의미이다. 가령 이 용어에서 연상되는 것이 이만큼 눈에 띄며 이만큼 모순되며 게다가 정확이 본서의 주제를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이 문제를 어원학자들에게 맡겨도 좋았을 것이다. 즉 죽음으로써 처벌되는 범죄자와 이에 선행하는(또한 죽은)노동의 생산물에 기인하는 부의 축적이라는 의미가 왜 ‘캐피털’이라는 말에 겸비되었는가, 라는 물음이다. 본서는 산 노동의 조직화된 죽음(capital punishment:사형)과 죽은 노동(punishment by capital:자본에 의한 벌)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Linebaugh, “The London Hanged”, 2003, xvii: 마누엘 양, 111-2쪽에서 재인용)


  이러한 라인보우의 시각을 이어받아 저자는 방사능 때문에 죽은 자들을 불러낸다. 이 또한 312(311은 지진이고 312는 원전폭발의 날이다) 이후의 일본맥락에서 다시금 요청된 물음이다. 저자는 라듐을 너무 많이 만져 죽은 마리 퀴리를 방사능에 의한 최초의 희생자라고 하는 인식을 부정한다. 그 이전에 방사능 때문에 죽은 우라늄 광산의 광부들이 있었던 것이다. 퀴리가 실험으로 쓰던 라듐은 보헤미아의 여아힘스탈(Joachimsthaler)광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곳에서는 1516년에 은이 발견된 후 400년에 걸쳐 광부들이 사병을 앓으면서 일했다. 거기서 나온 은은 독일의 은화 ‘타렐(thaler)’가 되어 이는 ‘달라’의 어원이 되었다. 그들의 방사능에 노출된 노동이 근대 화폐의 동원이 된 것이다(121). 이는 동시대 일본의 은 광산에서 행하던 본원적 축적과 겹쳐 논의된다. 일본의 이와미(石見)은산은 2007년에 세계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30살이며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으면 바로 목을 짤린 광부들의 모습은 세계유산이 되면서 말소되었다. 본원적 축적을 실행한 사령들이 은산을 세계 유산화 함으로써 자연수탈을 다시금 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살해된 노동자들을 다시 살해한 것이다(126). 노동자의 신체를 여전히 방사능에 노출시킴으로써 부를 산출하는 본원적 축척 또한 현대진행형의 문제이다. 역사를 관통하는 인클로저의 문제가 거듭 논의되는 까닭이다.



  수많은 죽음을 현재에 호출한다고 해서 결코 비관적인 책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 현재를 사는 우리 삶을 위해 그러한 살해된 이들을 상기하는 것이다. 역사를 말소하며 그럴듯하게 말하는 자유주의적 저항으로는 투쟁의 언어가 모자란 것이다. 살해를 거듭하는 것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는 자본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코몬즈하기, 봉기하기의 계보를 찾아내는 역사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2019년의 한국 맥락에 놓여보며 바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징용공’문제일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일본기업이 어떻게, 왜 ‘대기업’이 될 수 있었는지, 그것을 단지 현재진행형의 국가 간의 관계만으로 보지 말고 역사적 맥락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도 이 책의 관점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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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와 용병들

- ‘매수된 룸펜취급을 받던 민족들의 1848 혁명

 

 

라치 치카라 ,  『 저편에서의 세계사 』 ,  치쿠마 쇼보 , 1993( 초판은 미래사 , 1978), 336 쪽 , 1200 엔 + 세금 ( 良知力 ,  『 向 う 岸 からの 世界史 』 ,  筑摩書房 , 1993 

http://www.chikumashobo.co.jp/product/9784480080998/

 

 

 

 

 가게모토 츠요시

 

 

 

 

 

1.저자 라치 치카라에 대해

 

 

라치 치카라는 1930년생이며 85년에 사망했다. 원래 헤겔좌파 연구에서 시작하고 본서와 쌍벽을 이루는 파란 도나우의 난치기(きドナウの乱痴気)(평범사, 1988, 문고판1993)는 여전히 신간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48년 빈 혁명에 대한 책이다. 특히 파란 도나우의 난치기는 암으로 돌아가기 몇 일 전까지 구술로 작업한 책이며 빈 시민과 빈에 유입한 이민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번에 소개하는 저편에서의 세계사는 빈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모은 자료를 통해 쓴 논문들이 수록된 책이다. ‘저편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사에 참여하지 못하다고 간주되던 동유럽의 민중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은 1978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이 간행된지 4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읽힌 이유는 이 책의 문제제기가 매우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드 오리엔탈리즘또한 78년의 책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대위법적 동시대성을 보여준다. ‘저편에서 보면 어떻게 세계는, 역사는 달라질 것인가.

 

라치 치키라는 그 외에도 헤겔좌파와 마르크스 엥겔스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 마르크스와 비판자 군상, 헤겔좌파와 초기 마르크스, 공동 번역으로 헤겔좌파의 논자들의 논문 선집인 헤겔좌파논총, 자료 초기 독일 사회주의등이 있으며 당연히 일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의 번역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 이름을 남기지 않는 민족들의 1948 빈 혁명

 

 

저편에서의 세계사의 첫 문구를 인용해보자.

 

세계사는, 때로 나에게의 세계사일 수 있으나 그에게의 세계사가 아닐 경우도 있다. 이때 세계사는 그에게 허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가 나에게의 세계사일 때, 나는 그 세계사를 담당함으로써, 혹은 담당하겠다고 자각함으로써 스스로의 현재적 존재가 보편적인 것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 때의 나는 이미 나만이 아니라 나의 삶은 공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신은 여러 고통을 겪어 인륜의 여러 규정을 통과하면서 극복하며, 이 현재로까지 도달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사를 담당하겠다는 자각은 자연에 구속당한 협소한 에고이즘이 아니라 자유를 구하는 인류적 의지의 표현이며 인류 그것자체를 담당하는 민족의 영웅주의와 다름 아니다.”(18)

 

 

세계사에 관여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세계사 없는 저편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1848년 혁명의 주체인 이들은 저편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48년 혁명은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으로서의 성격도 가지지만 그 속에서 싸우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48년 혁명의 성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4810월 빈 혁명이 오스트리아군에 포위되어 수 천 명이 희생되면서 패배했을 때 피를 흘린 자들은 비독일인들이었다. 빈 혁명은 의식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혁명’(149)이었다. 바리케이도 공방전에서 피를 흘린 것은 혁명 쪽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이며 반혁명 쪽에서는 크로아티아인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더러운 노동을 강요당한다. 그 중 가장 더러운 일은 빈 혁명 등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반혁명 용병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여러 운동에 대한 탄압에서 더러운 일을 하는 게 하청업자 용역인 것처럼 말이다.

 

혁명 쪽이든 반혁명 쪽이든 그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혁명 쪽의 그들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신문에 남아 있는 사형판결문 속에서이다(272). 슬라브의 민중들, 10월 혁명 탄압의 용병으로 악명 높은 크로아티아의 빨강 망토 병사들은 확실히 반혁명의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매수된 룸펜프롤레타리아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용병이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안정적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없었다는 것이다(91). 이동하면서 도시 하층을 구성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도 용병이 되는 것도 노동력밖에 팔 게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그것이 민족적 문제인 것이다. 민족문제를 배제하고 48년 혁명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 후에 독일 혁명가들이 강하게 가지게 된 사고를 우리도 재생산하고 만다. 즉 슬라브인은 배신한다는 혐오를.

 

역사 없는 민중이 역사 무대에 나타난다. 역사 없는 민중이 바야흐로 역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할지로 모른다. 역사라기보다 역사의 가치가 붕괴한 것이다. 역사를 담당했던 -- 그리고 또한 역사의 가치를 자각적으로 구성한 선택된 민중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과 반동이다. 난세인지 혁명인지, 1848년의 유럽이 그것이다.”(52)

 

 

“48년 혁명에서의 소수민족이나 천민의 입장을 배제하며, 혁명을 부르주아적 요소의 폭발로서밖에 파악하지 않는, 혹은 파악하지 못한 역사가의 감각에 대해 불만스럽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난다.”(276)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혁명가를 겨냥하는 것일까? 모든 독일 혁명가이며 그들 중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포함된다.

 

 

3.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구도의 너머에서

 

48년 혁명 시기 헤겔좌파의 혁명가들의 발상은 실제적이라기보다 이론적이자 세계사적이었기 때문에 뒤떨어진독일을 세계사의 일부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그들은 독일의 저편, 즉 슬라브인들에게는 역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엥겔스는 슬라브의 여러 민족에 대해, 방치해놓으면 토키한테 침략당하며 이슬람이 되어버릴 터이니 그렇게 될 바에야 독일인이나 마자르인(헝거리인)이 흡수 동화해주는 것으로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53). 엥겔스는 48년의 오스트리아를 진보의 담당자(독일인, 폴란드인, 마자르인)와 몰락하는 사명을 가지는 슬라브인(체코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슬로베니아인, 루테니아인Ruthenian, 세르비아인, 왈라키아인Walachian)으로 나눠 논의한 바 있다(62). 엥겔스에게 러시아 증오는 독일인에게 처음으로 부여된 혁명적 정열로 긍정적인 것이었다(67). 왜냐하면 슬라브의 운동은 절대주의 권력과 반혁명적으로 유착할 수 있기 때문에 독일인은 이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해도 된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슬라브의 운동 속에서 유일하게 폴란드 독립투쟁만은 열렬히 지지했다. 그런데 이 또한 그들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자기스스로를 해방하기 때문이었다(88). 그리고 이러한 엥겔스의 발언들이 게재된 신 라인 신문의 편집장은 마르크스였다(마르크스 카테고리 사전, 青木書店, 1998, ‘1848년 혁명항목, 366).

 

마르크스 또한 48년의 빈 혁명의 배신자로 크로아티아인을 지명했다. 크로아티아인=매수된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사고할 줄 아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섰다는 구도이다(61). 그런데 마르크스는 빈의 바리케이드 내부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슬라브민족의 민중을 놓쳤다. 슬라브인은 빈에 흘러온 이주노동자들이었으며, 빈 시민들한테 항상 멸시된 존재였다.

 

빈 혁명은 184810월에 수 천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살해되면서 끝나는데, 그 이전 시기 487-8월경에 마르크스는 빈을 방문했다. 마르크스는 빈 혁명이 단지 시민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마르크스가 일찍 독일적 빈곤이라고 했던 구도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더욱 해당되었다. 산업이 없기 때문에 산업예비군은 영원한 예비군이었다. 혁명 시기, 빈에는 설탕을 향하는 개미처럼 비독일인들이 유입했다. 그들이 빈 혁명의 프롤레타리아들을 구성했다. 베를린의 1848년과 마찬가지로 공공사업이 시작함에 따라 품팔이의 자리를 찾아 이주민들의 유입이 계속 늘어났다. 빈 시민들은 그들을 게으름뱅이취급을 했다. 시민들은 빈 외부에서 유입한 이들을 쫓겨내려고 했으며 유입한 자들은 빈 내부에서 빵집을 습격하는 등 소동을 일으켰다. 혁명 빈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대립은 유혈사태까지 상승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는 살해당하는 쪽이었다. 혁명 빈에서는 노동자에게도 선거권을 준 보통선거를 했음을 선전했지만 프롤레타리아를 분할하며 날품팔이와 공공사업노동자를 배제한 위에서의 선거였다.

 

맑스과 엥겔스의 한계를 지적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그 구도를 모르는 사이에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하면서 마르크스=엥겔스적인 구도에서밖에 1848혁명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사회주의의 토대가 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원래 도시공동체로서의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민사회 외부에서 게다가 시민사회에 사는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그야말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시민사회의 외각에 살기 시작했다. 서구적 시민사회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얼음처럼 차갑게 등에 붙어오는 이 유령에 경악한 게 아니었는가.”(307)

 

“1848년 빈 혁명은 프롤레타리아의 피를 내포한 폭력적 민주주의혁명이다. 슬로건은 부르주아적이다. 그러나 그 글씨는 프롤레타리아의 피로 쓰여졌다. 따라서 빈 혁명의 역사는 하층민의 시체 위에 세워진 기념비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빈 혁명의 슬로건은 독일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독일인에 의한 독일혁명임을 욕구했다. 그러나 하층민은 혈통 같은 것에 인연이 없다. 사실 빈 혁명은 적도 아군도 비독일적인 슬라브의 피에 칠되었던 것이다. ‘서구적독일의 역사가(歷史家)가 보려고 하지 않는 사실에야 말로 우리 관점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148)

 

2019년 현재는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말에 금언처럼 기댈 수 있는 시대가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한때 그들의 민족차별적인 인식까지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수용하면서 그들의 구도에 따라간 역사인식이 있었다. 이 책은 이름 없는 존재들의 흔적을 하나씩 모아 내어 그러한 인식에 대해 내재적으로 시도된 비판이다. 일본의 마르크스학의 여러 성과들을 읽어나가는 의미는 이렇듯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선 작업들에 있을 것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21세기 정치철학 교본

 

박준영(nomadia)/수유너머104 회원

 

 

 

오늘 산책할 논문은 바로 아래  논문입니다. 

 

만만치 않은 난이도를 가진 글입니다. 같이 슬슬 접근해 봅시다.

 

 

지난호에 소개한 논문과 동일한 저널인 [들뢰즈 연구] 2017년 11월에 실린 논문입니다(현재는 [들뢰즈-가타리 연구]로 바뀌었지요). 이 저널은 주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에 대한 연구논문을 싣지요. 에딘버러 대학에 소재한 들뢰즈 연구학회에서 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논문은 텍스트 전체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 논문 제목을 번역해 보면, <강도의 정치: 시몽동과 들뢰즈에게서 '가속'의 몇몇 양상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제목에서 뭔가 감이 오시나요? 전혀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목부터가 이렇게 범상치 않아서 이걸 쓴 사람은 어떻게 생겨 먹었나 싶어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육-후이(Yuk-Hui)

 

그런데 공저자인 루이스 모렐(Louis Morelle)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군요. 다만 파리 1 대학의 대학원생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육-후이에 대해서만 설명해보도록 할게요. 이 분에 대한 오피셜한 정보 원문은 http://www.digitalmilieu.net/yuk/에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이 분 현재 소속은 독일 루네부르그에 소재한 루파나 대학이에요. 여기서 하빌리타치온 과정을 밟은 것으로 나옵니다. 2018년 여름에 과정을 마쳤다는군요. 아, 하빌리타치온 과정이란 우리나라 대학에는 없는 코스인데요, 박사를 졸업하고 '강사'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이 과정을 거쳐야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 대학을 두 번 다녔는데, 한 번은 홍콩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했고, 또 한 번은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어요. 역시 21세기의 철학은 공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분이 주로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기술철학'이라는 파트입니다. 오늘 소개할 논문도 그 방면 이야기가 정치철학과 결합되는 글이고요.

 

책이 한 권 출판되어 있는데 아주 읽어 보고 싶게 만듭니다. 이 사람의 박사논문을 출간한 것이거든요. 게다가 기술철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가 서문을 써 주었네요. 바로 이 책입니다.

 

[디지털 대상들의 실존에 대하여], 육 후이의 책

 

우리가 살펴볼 논문 제목에 두 사람의 철학자가 나옵니다. 시몽동과 들뢰즈. 그러고 보니 제가 시몽동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들뢰즈에 대한 소개는 다음 제 글을 참조하시길.-><낯선 타인과 춤추기>

 

낯선 타인과 춤추기

- 질 들뢰즈와 미셸 투르니에 | 얼마전 제가 투르니에의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대한 글(<스페란차에서의 절대고독>)을 쓰면서 약속했던 대로 들뢰즈의 아주 '아름다운 논문' 하나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들뢰즈란 철학자가 워낙 방대한 체계를 설파하고, 난해한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 이걸 쉽게 설명하기가 녹록치 않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겠습니다. 들뢰즈, 넌 누구냐?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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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 시몽동(1924-1989)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은 물론 철학자입니다. 태어난 곳은 생-에티엔이라는 곳이고요. 이 분은 철학 중에서도 '기술철학' 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기계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요. 기계철학은 들뢰즈 이후 현대철학의 핫테마라고 할 수 있는 분과입니다. 이제 철학을 하려면, 공학과 물리학 정도(덤으로 생물학)는 같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시몽동은 프랑스의 수재들만 간다는 '에꼴 노르말 수프리외', 즉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요. 스승들도 쟁쟁합니다. 조르쥬 캉길렘(이 분은 과학철학자이고 들뢰즈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마르시알 게루(스피노자 철학의 권위자입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유명한 현상학자이지요)가 그들입니다. 1958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소르본과 푸아티에, 파리 4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일반 심리학과 기술공학 실험실>을 설립하여 연구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주요 저서는 박사학위 논문([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인데요 이 논문은 처음엔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출판됩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논문 전체가 온전히 출간된 것은 2005년이고, 밀롱(Millon)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2013년에 개정판이 나왔지요). 그리고 부논문도 아주 중요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대체로 이렇게 주논문과 부논문 2개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씁니다. 부논문은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입니다. 시몽동의 주논문과 부논문 둘 다 한국어 번역판이 있어요(번역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시몽동 철학의 핵심 개념은 '개체화'입니다. 이 개념만을 거의 평생 물고 늘어져서, 과학철학, 기술철학, 기계철학을 일신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존재론을 전개했지요. 이런 시도는 당대의 들뢰즈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후 안토니오 네그리 등의 정치철학, 브라이언 마수미와 베르나르 스티글러와 같은 과학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몽동과의 대담입니다. 영어자막이 있으니 한 번 보시면 좋을 듯해서 올립니다.

 

자, 그럼 시몽동과 들뢰즈에 대해 대강 알아봤으니 논문으로 들어갑시다. 우선 목차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논문제목: 강도의 정치: 시몽동과 들뢰즈에게서 '가속'의 몇몇 양상들
저자: 육 후이(루파나 대학), 루이스 모렐(파리 1 대학)

- 논문 초록
- 키워드: 강도, 가속주의, 개체화, 기술, 시몽동, 들뢰즈

I. 존재론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강도
II. 들뢰즈의 '가속': 강도에서 변조로
III. 또 다른 '가속': 내적 공명으로서의 강도
IV. 변조, 도래할 강도의 정치
V. 결론

 

논문초록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뭐, 이런 도입부는 거의 정형화되어 있어요. 논문의 목적을 밝히는 것이지요.

 

이 논문은 시몽동과 들뢰즈의 사유에서 속도와 강도의 문제를 명료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속 개념들을 살펴보면 아마 철학 전공자들도 다소 낯설 것 같습니다. '속도'와 '강도'라는 개념이 그렇지요. 사실 이 개념은 전통적인 철학 개념이라기보다는 과학 개념에 가깝지요? 전공자들이라 해도 과학철학이나 기술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낯설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말 뒤에 후이는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이는 가속주의(accelerationism)와 그것의 정치학에 대한 논쟁을 조명하기 위해서다.

 

도대체 '가속주의'가 뭘까요?

찾아본 후 꽤 긴 글을 썼는데, 여기서는 다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아 다른 페이지에 써 놓았습니다-><속도를 더 내, 지옥을 건널 때까지!>

 

 

속도를 더 내, 지옥을 건널 때까지!

- '가속주의'와 기술정치철학 | 노마가 최근에 읽은 논문이 있는데요, 바로 <강도의 정치: 시몽동과 들뢰즈에게서 '가속'의 몇몇 양상들>(육-후이, 루이스 모렐)입니다. 이 논문은 매우 흥미로운 최근의 철학 경향과 그것의 정치철학적 응용에 관해 논하고 있지요. 그 경향을 '가속주의'라고 합니다. 저는 결론적으로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가속주의는 현존하는 가장 진보적인 정치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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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있네요. 저기 논문의 목적을 밝혀 놓은 부분에 보이는 '강도'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이 논문 안에 한 장을 할애해서 설명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 이건 찬찬히 따라가면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아무튼 저자들은 목적을 밝힌 후에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을 합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가속주의 정치와 더불어 강도를 사유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속도에 대한 집착 없이 어떻게 강도의 정치학을 사유할 수 있는가?

 

우선 저자들은 시몽동의 이론에서 개체화(individuation)는 강도에 대한 논의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제가 보기에도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시몽동은 이 한 개념을 가지고 평생 철학한 사람이니까요.

 

이 개념은 생성과 존재의 조화를 목표로 합니다. 쉽게 말해서 개체화라는 개념은 여기 내가 '있다'라는 사실과 내가 '움직인다'라는 두 사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몽동은 이 개념에 현대의 기술과 과학적 성과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철학을 구사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개체화를 좀 더 설명해 보지요.  개체화란 처음부터 끝까지 준안정(metastable)적인 상태로 지속되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개체'는 안정된 '결과'라면 개체화는 계속되는 요동과 불일치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이건 사실 우리가 잘 지각하지 못하는 측면을 시몽동이 발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나 여기 있어요~'(존재)라고 말하지 '나 여기 있게 되어요~'(생성)라고 말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보다 근본적인 것은 내가 여기 붙박여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있다는 사실(존재)이 아니라, 늘상, 시시각각 변하면서, 최소한 눈이라도 깜박이면서 뭔가가 '되어 간다'(생성)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만물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정'과 '준안정'은 각각 얌전한 물과 펄펄 끓는 물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다시 말해 개체화는 펄펄 끊은 물과 같은 과정중에 있다는 것이지요.

 

시몽동에게는 '개체화'라는 개념과 더불어 변환(transduction)이라는 개념도 중요합니다. '변환'은 본래 물리적으로는 에너지의 전환을 의미하고 생물학적으로는 유전형질의 변화를 의미하지요. 그런데 시몽동은 이 두 의미를 포괄하면서, '논리적 의미'로도 이 말을 사용합니다. 즉 변환은 연역과 귀납과 구분된다는 것이지요. 저자들의 말을 직접 들어 보시죠.

 

전통적 논리학인 귀납과 연역은 명제들의 추론에 대해 작동하지만, 변환은 질문에 속해 있는 존재의 구조를 변형시키도록 이끈다.

 

다음에 오는 설명을 들으면 이 말에 좀 수긍이 갑니다. 

 

변환이란 긴장들과 불일치들로부터 초래되는 강도에 의해 지배되며 조건 지어진다. 변환은 정보라는 측면에서 형태를 구성하며, 강도라는 측면에서 정보를 구성한다. 또는 이것은 불균등성(disparation)이기도 하다. 불균등성은 개체화의 조건이며, 물리적, 생물학적, 심리적 존재자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변환이라는 것이 '정보'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존재하는 것들의 '과정'이라는 의미로 새기면 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유전자들은 '정보'의 덩어리들이지요. 그 정보들을 교환하는 것이 유전자의 일입니다. 이는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물리적 차원에서는 '결정화' 작용(물이 얼음이 되는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에서 입자들 간에 '형태'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일정한 기하학적 결정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강도'의 작용이 없으면 불가능해집니다.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변환 작용은 그 오가는 작용에 필요한 '힘'을 강도로부터 얻습니다. 정보가 형태를 구성하고, 또 그 정보는 존재하는 것들의 '강도'가 구성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것이 어떤 원리에 따라 구성되느냐고 물을 수 있지요? 그것이 바로 이쪽과 저쪽의 '불균등성'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변환은 일종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흐르려면 양쪽 간에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즉 높낮이, 에너지의 차이 등등이 말이지요.

 

변환은 폭포처럼 전달되는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은 어떤 한 항이 '질문'을 제기할 때 응답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지요.

 

강도는 변환이 수행되는 그 '차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때 한 항에서 다른 항으로 움직이면서 변환되는 과정은 '질문-응답'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래'라는 정보를 '위'에 주면(질문하면), '위'는 '아래'에 응답하면서 강도를 선사하는 것이지요. 생명체들의 변환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체들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유전자라는 미시 수준과 신체라는 거시 수준 모두에서 환경에 질문을 던지고, 환경은 생명체에 '강도'를 선사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불균등성'이 해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의 유지든, 폭포의 흐름이든 '차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흐름이 이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시몽동뿐 아니라 들뢰즈에게서도 개체화는 중요한 개념인데요, 이것은 강도로부터 생산되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들뢰즈를 참조하다 보면, 개체화 과정이 '차이'와 결정적인 관련을 가지고, 또한 이 차이는 '강도'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몽동에게서는 '차이'보다 '불균등성' 개념이 개체화를 설명하는데 관건인데, 들뢰즈에게서는 '차이'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둘 다 비슷해 보이는데, 좀 다른 점은, 시몽동이 불균등성을 통해 강도를 설명한다면, 들뢰즈는 불균등성의 핵심이 차이이고, 이 차이가 곧 강도라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철학사적으로 봤을 때도 이 둘이 겨냥하는 지점은 다른데요, 시몽동은 아주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을 비판하고자 하지만, 들뢰즈의 경우에는 칸트의 감각과 지성 개념을 비판하고자 하지요. 칸트에 반대하면서 들뢰즈는 지각 과정(사물을 감각하고 개념화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은 순수 직관(시공간에 대한 직관)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고, 지성의 범주(양. 질. 관계과 같은 보편적 개념 도구)에 의해서도 지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지각 과정은 감각의 강도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폭포의 물 알갱이 하나하나처럼 지각과 대상이 서로 부딪히면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감각적 강도 이전의 지배 주체가 없습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표상', 범주라는 '표상' 이전의 상황이에요. 표상은 지각 과정, 즉 강도적 감각 과정 이후에 구성되는 것이지 이전에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자주 등장하는 '강도'란 무엇일까요? 논문 저자들도 인용하고 있고, 많은 철학자들이 흔히 예시로 드는 것은 '온도'입니다. '강도'는 온도를 측정하면서 양으로 표시됩니다. 이를테면 31도 C와 같은 것이 있지요. 그런데 이 31도 C는 그 자체로 특이성(단독성, singularity)입니다. 즉 그것이 21+10도 C로 분해될 수 있다거나, 1X31도 C로 결합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31도 C는 그 자체 기온의 '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강도는 해당 존재자의 특이성을 지시하는 것이며, 다수의 단위들로 분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들뢰즈는 어떤 것의 속도와 가속도도 강도라고 봅니다. 즉 속도든 가속도든 단위로 쪼갤 수 없는 특이성의 연속체라고 보는 것이지요. 위 연속촬영의 길게 이어진 불빛처럼 말이지요.

 

들뢰즈에 따르면 이와 같은 강도의 특성이 속도와 가속도에도 적용됩니다. 속도와 가속도는 각각의 시간에 본성적인 변화 없이는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즉 이 두 물리량은 '연속되는 특이성'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칸트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들뢰즈는 이를 원용합니다. 하지만 칸트의 논의를 더 밀어붙이게 되지요. 이렇게 하는 데 있어서 시몽동의 철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강도'를 '양'이라는 칸트적 범주뿐 아니라, '관계'와 '양상'이라는 시몽동의 동력학적 범주에도 연결시키는 것이지요.  

 

따라서 들뢰즈는 강도라는 개념을 칸트적인 초월적 층위에서 내재성의 층위로 되가져 옵니다. 즉 표상의 논리에서 강도의 논리로 말이지요. 표상의 논리를 '초월적'으로 강도의 논리를 '내재적'으로 옮기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이지요? 이것은 좀 전에 예를 든 온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온도는 초월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내재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어요. 초월적으로 표현된 온도는 '31도 C'라는 단순한 숫자를 측정 절댓값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재적으로 표현된 온도는 같은 수치를 절댓값이 아니라 상대값으로 치환하는 것이지요. 31도 C 안에 존재하는 여러 온도의 느낌들, 또는 31도라는 기준값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잔여값들, 30. 9999999... 도 C, 또는 31.00000000001.... 도 C 같은 것들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2장으로 와서 들뢰즈의 '가속' 개념이 '강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논지를 전개합니다. 강도와 가속이 기본적으로는 개체화 안에서 상호 연관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도란 구조적 변환으로 향해가기 때문이다. 여기 비로소 강도와 연관하여 시몽동과 들뢰즈의 기획 사이에 주목할만한 분기점이 형성된다. 시몽동의 경우 강도란 유적 과정(generic process)으로서의 '개체화'와 동일시되는 반면, 들뢰즈의 경우 강도란 '차이로서의 존재'라는 이름을 획득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들은 들뢰즈의 존재론을 정치철학과 접목시키고자 합니다.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행복한 만남이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우선 저자들은 시몽동과 들뢰즈의 차이가 위와 같다는 것을 제시한 다음, 강도 개념이 역사 정치적 맥락에서 변형된다고 봅니다. 그 변형된 개념이 '흐름들'과 '욕망'이라는 것이지요. 이 개념으로의 변형과정은 가타리(Felix Guattari)와의 공저인 [앙띠 오이디푸스]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논문 저자들이 인용하는 [앙띠 오이디푸스]의 해당 부분을 옮겨 볼게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두 사람은 [앙띠 오이디푸스], [천의 고원], [카프카-소수문학을 위하여],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공동 사유를 진행했습니다.

 

어떤 혁명적 길이 있을까? 하나라도 있을까? 사미르 아민이 제3 세계 나라들에 충고하듯, 세계시장에서 파시스트적 <경제해법>이라는 기묘한 갱신 속으로 퇴행하는 것? 아니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말하자면 시장의 운동, 탈코드화와 탈영토화 운동 속에서 더욱더 멀리 가는 것? 왜냐하면 아마도 고도로 분열적인 흐름들의 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보면, 흐름들은 아직 충분히 탈영토화 되지도, 탈코드화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퇴행하지 않고, 더 멀리 가야 한다. 니체가 말했듯, <과정을 가속하라.> 사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p. 406).
# # 페이지수는 김재인 2014 번역판입니다. 번역은 일부 수정했어요).

 

이 구절은 '가속 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특히 '과정을 가속하라'라는 말은 이들의 슬로건이기도 하지요. 들뢰즈와 가타리, 혹은 니체의 이 슬로건을 위에 언급한 단어들과 더불어 다르게 해석하면, '흐름'과 '욕망'을 가속하라, 또는 '기존의 흐름과 욕망을 탈영토화 하라'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가속주의자들과 저자들은 이 부분에서 존재론이 정치철학으로 변형되는 어떤 '문턱'을 보는 것이지요.

 

저자들에 따르면, 바로 [앙띠 오이디푸스]야말로 '존재론의 정치철학'이라는 가장 첨예한 철학의 분과를 드러내는 중요한 저작이 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자본주의란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두 가지 항목에 따라 형성됩니다. 하나는 바로 '욕망'이지요. 이것은 '정치화된 강도'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근원적인 불안정성'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요? 쉽게 말해 자본주의 체계라는 것은 끊임없는 불안정성 하에 진행, 발전, 퇴행되는데(공황이나, 노사갈등, 전쟁 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욕망'을 촉진시키거나 저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또 이 욕망의 흐름에 촉발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불안정성과 욕망의 피드백이 자본주의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소비심리를 구성하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고등학교 경제나 사회문화 시간에 배우는'이스털린 역설'이나 '트레드밀 효과'를 예로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노마가 가지고 있는 [앙띠 오이디푸스] 두 개의 판본입니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욕망의 흐름과 불안정성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라는 것이 저자들과 들뢰즈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계는 곧장 사건을 향해 가는데요, 이것은 아마도 '혁명적 사건'일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들뢰즈의 개념은 [천의 고원]이라는 저작에 와서는 '배치'(assemblage)라는 것으로 바뀌는데요, 사실은 그 이전에 <통제사회에 관한 후기>라는 짧은 논문에서 이에 관한 논의가 이미 진행되었다고 봅니다. 이 짧은 논문은 들뢰즈가 푸코의 '규율사회'(또는 '훈육사회')에서 '주권사회'로의 이행이라는 테제를 이어받아 '통제사회'라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기술합니다. 이에 따르면 통제사회의 특성은 '돌연변이 변형'(mutation)입니다.

 

질 들뢰즈, <통제사회에 관한 후기>, 영역문은 아래에 걸어놓았어요.

 

들뢰즈의 통제사회는 푸코의 통치체제가 돌연변이 변형을 거쳐 전 사회적 기제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권력은 더 이상 폐쇄된 공간(푸코의 경우 학교, 감옥, 병원, 공장)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또한 개인에 대해 외적으로 부과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열린 공간에서 개인들 각각의 내재성의 장 안으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들뢰즈는 이를 '변조'(modulation)라고 합니다. 이 개념은 바로 '강도' 개념과 연관이 깊습니다. 즉 통제사회에서 내재적인 권력화 과정은 강도를 통해 변조된다는 것이지요. 이때 규율은 개인들 각각의 자율적 과정 안에서 내면화됩니다. 이때 강도는 욕망이기도 하고, 심리적인 권력이기도 하며, 사회적 관계며, 심지어 사랑이기도 합니다. 이것들 모두가 규율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규율'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규율입니다. 즉 통제사회에서의 개체화는 바로 규율의 내면화며 강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와 시몽동이 정치철학에서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러한 통제사회를 하나의 기계(machine)로 묘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시몽동의 개체화에 관한 저작들에서 가져온 이 '기계' 개념은 후기 들뢰즈 철학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이는 또한 가타리의 독립적인 저작들에서도 아주 중요한 개념이지요. 이것은 단순히 공학적인 기계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추상적인 의미로 쓰이지요. 그것을 정의 내리면 이질적인 요소들의 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들뢰즈의 개념인 '아상블라쥬'(배치)는 본래 예술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위) 아상블라쥬 아트의 예시,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어떤 형상을 표현합니다.

 

여기서 '요소들'이란 성적인 것이기도 하고, 사회적이기도 하며, 경제적이기도 한 요소들입니다. 논문 저자들은 여기서부터는 다시 들뢰즈와 시몽동이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몽동에게 개체화는 다만 발생론적으로 중립화되어 있지만, 들뢰즈에게서 개체화는 그것 자체가 '문제'며, 사회 정치적 평면에서 펼쳐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제사회에 관한 후기>라는 이 짧은 논문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지요. 이 논문에서는 들뢰즈의 존재론과 정치철학, 그리고 기술철학의 구분이 불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실제로 기계에 관한 이러한 개념 규정이 유의미한 것은 현대사회, 특히  포스트-포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기술적 과정이 인간의 욕망, 그리고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돌아갑니다. 예를 들면, AI에 관한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거기 연결되는 인간의 지식에 대한 욕망, 직업에 관한 욕망이 변조되고, 정치적으로 그 기술을 통제하고자 하는 각축이 일어나며, 그에 관한 윤리학이 발전하게 되는 식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매우 빠르게 발생합니다.

 

시몽동은 이 변조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그는 '공명'(resonance) 또는 개체화와 관련하여 '내적 공명'(internal resonance)라고 칭합니다. 이 내적 공명을 개체화와 연관해서 보면, 어떠한 준안정상태(matastable)로 진입하기 전의 개체화 과정, 변형과정에서 강도를 특징짓는 용어가 됩니다. 그런데 시몽동에 따르면 인간은 산업화 시기에 '기술적 개체'로서의 그 중심적 지위를 잃어버리고 소외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시몽동은 어떤 인간론적인 기술 윤리로 퇴행하지 않고, 논의를 더 진행시킵니다. 그는 산업화가 더 진행되면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노예대 노예의 관계로 들어설 것이라고 예견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어떠한 혁명적 정치학의 사유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들은 주장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고, 그것을 가속시키는 것이 바로 이 상황을 돌파하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들은 또 다른 이론가인 토스카노(Alberto Toscano)를 인용합니다. 토스카노의 테제는 '혁명적 가능성으로서의 불균등성의 변조'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스카노는 시몽동의 그룹(group) 개념을 정치철학적으로 전용하여, 혁명적 잠재성으로서의 그룹의 구성에 대해 논합니다. 다시 말해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혁신하게 될 가능성은 잠재적 힘들을 변조해냄으로써 증폭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혁명의 개체화'라는 토스카노의 또 다른 테제는 바로 이러한 변조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개체화'라는 것이 '개별화'와는 아주 다르다는 점입니다. 개별화는 원자화와 같이 따로따로 떨어진 추상적 실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재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에 불과하지요. 개체화는 사람과 사람, 동물과 동물, 또는 사람과 동물, 그리고 사람과 기계 간의 집합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개인에게 있어서는 세포와 세포들의 집합화이지요. 이를 토스카노는 '그룹'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스티글러에게 비개체화란 개체화를 달성하기 힘들게 하는, 다른 말로 해서 '다른 변조'를 생산하기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장애물은 누군가가 스스로를 개체화하기 위한 강도를 상실할 때 더 두드러집니다. 이는 통제불능 상태로 이끌고 끝내는 '죽음을 향한 가속'이 되고 말지요. 예를 들면 이런저런 유형의 기술 중독들(게임중독,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들)이 이러한 것에 해당된다고 보입니다.

 

저자들은 논문의 말미에 들뢰즈와 시몽동을 포함하여 언급된 네 명의 철학자들(토스카노와 스티글러 까지)은 기술이 그 목적이 확정될 수 없는 방향으로 강도들을 이끌고 증폭하는 기능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고 논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기술발전이 지속적으로 가속된다면, 그것은 기계들과 서로를 횡단하는 개체들 사이에 어떤 내적 공명을 찾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이를 토스카노의 용어를 빌려 '발명의 정치'라고 규정합니다. 

 

'발명의 정치'란 어떤 특이점을 향해 가는 기술의 가속에 찬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혁명적 기회를 위해 그러한 기술을 이용하는 것만도 아니지요. 발명의 정치란 그룹들의 잠재력을 공명 시키고 증폭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들을 발명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적 대상들이 그 자체로 개체 '횡단 개체적 관계', 즉 개체를 횡단하여 관계 맺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저항방식(이를테면 오픈소스 운동이나, 탈중심화 운동 등등)은 기술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여전히 구닥다리 질료-형상론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운동들은 기존의 전형들을 반복하기만 할 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저항'의 가능성을 재구성하기를 원한다면, '혁신의 정치'(politics of innovation), 즉 시장과 통제 정치에 의해 광범위하게 조정되는 그러한 정치가 아니라 발명의 정치를 구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토스카노의 개념을 새로운 정치의 슬로건으로 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발명의 정치는 아마도 기존의 저항방식을 탈피하되, 자족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에 잘 적응하고, 그것을 매개로 삼아 전략과 전술을 발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러한 저항의 예로 '스노든'과 '어노니머스'가 떠올랐습니다. 앞사람은 자신의 기술자산을 활용하여 기존 권력의 정보를 누설함으로써 체제를 뒤흔들었고, 후자는 시시때때로 출몰하면서 해킹을 활용하여 같은 효과를 달성하는 집합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이러한 예는 다소 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1. 들뢰즈의 '강도'와 시몽동의 '개체화' 개념은 가속주의 정치철학을 설명할 길을 열어준다.

2. 들뢰즈의 경우 '강도'는 '욕망의 흐름' 그리고 '배치' 그리고 '통제사회'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철학과 만난다.

3. 시몽동의 경우 '강도'는 '개체화', '변조'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철학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4. 이 둘을 보다 구체화하는 철학자는 스티글러와 토스카노로서, 이들은 각각 '비개체화', '발명의 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들뢰즈와 시몽동을 더욱 발전시킨다.

5. 이들을 하나로 엮는 정치철학의 테제는 '가속'과 '가속주의'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생활사(史)와 역사의 균열




가게모토 츠요시






니시카와 유코 <고도의 점령 – 생활사에서 보는 교토 1945-1952> 평범사, 2017, 516쪽, 3800엔 + 세금.(원서 정보:西川祐子, 『古都の占領 生活史からみる京都 1945-1952』, 平凡社2017, http://www.heibonsha.co.jp/book/b298039.html)




1. 생활사 - 지도에 점을 찍고 선을 부각시키기


  2차 대전 패전 후 1945년-52년에 걸쳐 일본은 연합국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책은 교토라는 일 지방 도시를 대상으로 이 시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500쪽을 넘는 두께를 가지지만 읽어보면 매우 얇다고 느낄 정도의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압축한 산물이다. 책을 열면 몇 장의 지도 자료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교토에서 점령군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지역과 점령군이 압수한 주택을 점을 찍어서 점령군의 이동경로를 밝힌 것이다. 그것은 교토 남부에 있던 군사적 거점(일본군 16사단 터, 우지(宇治)의 비행장)에 연결되는 길이기도 했다. 신문기사나 행정자료를 확인할 때마나 지도상에 점을 찍어 그것이 모였을 때 지도는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 지도의 점들은 노상에서 몸을 파는 여성들의 주소와 그 여성들이 잡힌 장소와도 일치한다(255쪽). 


“자료 하나하나는 단순한 물건은 아니라 결국 사람인 것이다. 모여져서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앞에 모은 재료를 때마다 즉흥적으로, 그러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생각하면서 짜내고 작자도 실은 몰랐던 구도를 차차 부각시키는 수법을 크레이지 파치워크(crazy patchwork)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이미 크레이지한 실들의 얽힌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 되지 않는 극한에 있는, 공백이자 거꾸로 말하면 역사의 균열이 되는 블랙홀의 윤각을 어떻게든 해서 확인하고 싶다.”(219-20쪽) 


이러한 말이 책의 곳곳에 삽입된다. 그리고 점령군의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점령군의 교통사고에서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도 배상을 청구할 근거가 없었다. 따라서 피해자는 일본정부에 신청을 하고 일본정부가 ‘위로금’을 내었다(68쪽). 당연히 이는 점령군에 의한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242쪽). 이러한 교통사고나 성범죄를 비롯한 점령군의 범죄들은 검열 때문에 신문에서는 보도되지 못했다. 저자는 행정문서에서 피해의 그림을 그려낸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작업, 즉 ‘생활사’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기억이냐 문헌이냐, 어느 한쪽이 선택문제가 아닐 것이다. 각각의 기억에서는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문헌기록의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미세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되어 세부가 소거되어 큰 이야기, 즉 역사가 만들어 진다”(14)


고 지적한다. 우리는 현대사를 ‘큰 이야기’로서는 ‘일정 정도’알고 있는데 그 곳을 산 개인들이 살아남아온 이야기를 개개인의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작업에서는 신문이나 행정문서 등 일차 자료의 검토와 함께 인터뷰 조사나 당대 소설, 그리고 일본 패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자 자신의 경험도 호출된다.  




2. 생활 속의 군사기지


  잘 알려진 것처럼 교토는 사철 등 오래된 목조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즉 미군의 폭격을 본격적으로 받지 않았다고 논의되어온 경향이 있는데, 교토는 군사적인 거점이기도 했기 때문에 군사시설은 폭격을 받았다(103쪽). “어떤 군대의 기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군대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103쪽) 그 중 저자가 부각시키는 곳은 2014년에 사드 레이더 기지가 만들어진 교토 북부 지방에 있는 교가미사키(経ヶ岬)의 우카와(宇川) 마을이다. 이곳은 원래 일본군 감시소 기지였으며, 1948년에는 미군 레이더 기지가 된다. 58년에 자위대로 이관되어 그것이 2014년에 다시 미군에게 ‘제공’되었다. 이는 한국에서의 사드 문제와 연결되어 사드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동아시아 지도에서 ‘교토의 레이더 시설’이라고 소개되어온 장소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재 진행형의 군사기지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점령군 때문에 받은 피해에 대해 보상을 신청하는 문서인 「진주군사고 위로금 지출 부담 행위서(進駐軍事故見舞金支出負担行為書)」에 우카와 마을이 나오는 것이다(122쪽). 우카와에서는 점령군에 의한 화재, 아이가 중상을 입었던 교통사고, 한국전쟁 당시 점령군이 바다를 출입금지로 했기 때문에 어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점령군이 마을의 농업용수를 써버렸다는 것이 기록되고 있다. 바로 이것은 군사 기지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죽은 전쟁이 아니지만 생활의 재생산을 무시해서라도 어떤 하나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군대의 논리가 계속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민을 대표하는 촌장은 점령군의 명백한 부당행위에 대해서도 점령기에는 ‘항의문’이 아니라 ‘탄원서’를 써야 했다.”(127쪽) 탄원서를 받은 일본 관청에서는 특히 ‘간접적 피해’에 대한 신청이 가능해진 53-4년에는 중앙과 지방 사이에서 신청을 채용할 여부를 둘러싼 많은 교섭이 있었다(128쪽). 탄원서로 남겨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있다는 것은 문서화되지 않았던 ‘작은 피해’들은 수면하에 더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저자가 그 당시 교토 시내를 산 사람들에게 한 인터뷰에 의하면 점령군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전기 공급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87쪽) 또한 교토 중심부의 기온(祇園) 지구에서는 점령군이 음주운전을 하면서 지프차로 돌계단을 올라갔다는 소문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았다(93쪽). 이러한 소문은 확실한 사실인지를 묻기 전에 그러한 소문이 개연성 있게 전파될 만큼 군사적인 것들이 생활 세계에 개입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오감이 달라진 생활


  ‘생활사’연구의 시선은 가계부로 향한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의 가격 차이가 두 배나 되는 세상에서 가계부를 쓰고 월말에 지출 결산을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암거래를 기록하면 잡힐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당시 가계부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188쪽). 그 조사 중 어떤 서민의 일기를 통해 경제상황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 일기는 헌책방에서 나온 것인데 농업경제학자가 발견해 책으로 간행했기 때문에 세상에 남았다(189쪽). 저자 니시카와는 그 일기에 나오는 물건이나 음식물의 당대적 의미를 파고 들어가면서 일기를 재해석한다. 다른 회상기와 일치된 부분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채용해 간다. 시골에서 암거래를 하다가 기차로 교토로 들어올 때 교토역 직전에서 짐을 창문에서 버리고 검속을 피한다거나(198쪽), 훔쳐온 경찰의 제복을 입고 암거래 단속이라고 해서 쌀을 다시 훔치는 사람(199-200쪽), 도로가 지금에 비해 훨씬 나빴기 때문에 암시장에서는 신발이 잘 팔렸다(213-4쪽) 등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려준다. “점령기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당시의 옷보다 신발에 화제를 돌리면 이야기가 풍성해졌다”(214쪽)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 월급으로 구두를 샀다거나 한국 전쟁 반대의 삐라를 뿌리고 잡힌 사람이 신발이 좀 좋았으면 잘 도망갔을 텐데, 라고 아쉬워했다는 것이다(215쪽). 그리고 암시장은 한국음식이나 중국음식 등 일식보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영양실조 상태의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었고, 미군 물자(치즈가 비누인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은 한 두 명은 아니었다) 등 ‘새로운 음식문화의 입구’였다고 지적한다(216쪽). 정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오감이 달라지면서 계속 재생산되는 생활을 모색하는 모습들이 부각된다. 




4. 한국전쟁과 교토


  점령기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것은 1950년부터의 한국전쟁이겠다. 미 육군병원이 되던 교토의 제일일본적십자병원만으로는 수용하지 못해 교토시립미술관이 임시적으로 육군병원이 되었다(278쪽). 두 시설 다 지금도 존재한다. 50년에 들어 교토는 더욱 군사적인 도시로 재편성되었다. 한국전쟁 반대의 삐리를 뿌리고 체포된 한 학생의 일기가 분석대상이 된다. 군사재판을 거쳐 형무소에서 노동을 하는 학생은 형무소에서 만든 물자가 미군물자인 것을 알자 혼자 파업을 선언한다(311쪽). 그 이전까지의 그는 스스로가 만든 제품을 입는 소비자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담아 재봉틀을 밟았었다. 그의 파업은 성공했으며 군사물자의 작업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311쪽). 학생은 52년 일본의 ‘독립’을 계기로 석방되는데, 그는 석방은 평화 운동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패배의 결과였다고 받아들인다. 형무소에서 수많은 ‘범죄자’와 만난 학생은 그들이 범죄에 이르는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원인을 알게 되었으며 “그 최종적 해방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313쪽)고 일기를 마무리했다. 다른 체포자의 경우, 일본의 경찰관이 영문의 체포연장을 가지고 와서 ‘너는 읽을 수 있지’라고 체포하러 온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다(317-8쪽).


  그리고 점령기 교토를 묘사한 소설로 분석되는 것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이다. 금각사는 교토시 서북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분석 대상이 되어온 교토시 동남지역과는 정반대에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대적첩보부)가 있었으며 저자는 “공백이 많다고 보이는 지역은 점령 관련의 시설이 적고 사건도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접속이 있었다는 것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진 지역일 수도 있다”(326쪽)라고 지적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불타기 전의 금각사보다 새로 세워진 빤작이는 금각사를 좋다고 한다. 소설 중에서 오래된 금각사와 임신한 상태에서 폭력당한 여성을 통해 패배한 일본이 ‘싱징’되었다고 논의한다(362-363쪽). 이러한 논의는 금각사와 점령군 시설의 위치관계 등 지리적인 근거에서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미시마 유키오가 “이 소설에 한정하면 작중 인물에게 교토에서 생활시키고 거리를 걷게 하기 위해 야외조사를”(353쪽)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러한 교토에서의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이별을 한 한국에서의 한국전쟁보다 미약한 것이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전쟁의 폭력 속에서 생활이 있었던 것처럼 병참기지였던 교토에서도 군인들과 주민들의 교섭은 한국과는 또 다른 형식으로 존재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우토로 마을 또한 교토남부의 일본군 비행장 공사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집주하게 된 지역이다. 점령군이 교토시내에서 이 비행장으로 가는 길이 사고다발구간이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또한 이 책과 관련시켜서 보다 넓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차자료의 바다로 내려가 다시 시공간의 선을 짜내는 작업의 성과로 제출된 이 책은 역사의 공백의 윤각을 드러내, 그것을 반전시켜 역사의 균열을 발견하며, 그 균열에서부터 다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323쪽). 그것은 공백을 만들어 내어 기존의 이해구도에서의 가치를 일단 일반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활이라는 재생산의 과정은 귀천을 떠나 모든 것을 삼키면서 진행되는 일이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반려종 위치부여 

Donna Haraway & Carry Wolf, Companions in Conversation」, Minnesota University Press(2016)


번역: 최유미(수유너머104)

 




CW: 이야기를 바꿔서 반려종 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합시다. 나중에 다시 두 선언으로 돌아와서 둘을 같이 놓고, 어떻게 그것들이 관련되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지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것 , 생정치적 사유 으로 발전되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걸 하기 전에, “반려종 선언과 관련해서, 그것의 구성의 정황들, 그 뒤에 있었던 동기들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것에 관해서 분명하게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일부는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시, 그것의 수용의 정황에 관한 질문도 하고 싶은데요. 왜냐하면, 페미니즘과 더 넓게는 학계, 문화 연구 분야, 등등에서 매우 다른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문화 동물 연구혹은 인간 동물 연구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DH: 혹은, “복수종 연구들.”

 

CW: 혹은 복수종 연구들, 잘 만들어지고 수선되고 있었지만, 그러나. .

 

DH: . . 아직 완전히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CW: , 분명히 그렇지요

 

DH: 그러데, 사이보그 메니페스토처럼, 반려종 선언은 매우 개인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개인적인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역사적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재세계화(reworlding)의 일부입니다. SF 용어는 나에게 매우 중요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그것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간주되는 것이 무엇이나 그것을 넘어서, 일상적인 생각을 하는 데 필요한 말입니다, 이 재세계화(reworlding)들이라는 것이요. 그래서 반려종 선언우리는 여기서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이지만은 않은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이 역사적 위기에 반려종이라함은 무엇이고,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누가 살고 누가 죽고, 어떻게,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여기, 이 위기의 순간에?”라고 묻지 않고는 더 이상 쓰거나 생각할 수 없는 순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반려종이란, 비록 반려 동물들이 그 속에 들어가지만, 결코 반려 동물만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름은 적어도, 사이보그처럼, 확대될 수 있고, 짜여질 수 있습니다. 거미의 뱃속에서 나오는 실크, 다양하고 강한 비단실들처럼 밀이지요.

우리는 반려들입니다. 함께 음식을 놓고 식사 중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위험이 되고, 서로의 살이고, 먹고 먹히고, 그리고 소화불량에 걸리고, Lynn Margulis의 의미로는, 지구 상에서 살고 죽는 공생발생적 국면에 있는 자들입니다. “사이보그 선언속에서처럼, 우리는 시스템들의 세계에 있지만, 심포이에틱(sympoietic )시스템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건 조화 속에서 만들고, 함께 만들고, 결코 하나가 아니고, 언제나 다른 세계들과 함께 루핑을 하는 것이지, 자기를 만들기가 아니고 오토포이에틱이 아니에요.

 

그리고 종, 가차없이 모순어법적인 성질의 단어는 이상적 타입이고, 코인이고, 정금(正金)이고, 돈이고, 생물학적인 실체이고, 사이언스 픽션의 종이고 뭔가 다른 것의 한 종인 세부이죠. 종은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복잡한 말이예요; 도무지 조화되지 않는 다양한 의미들로 그냥 폭발해버리죠.

 

CW: 우리가 여기서 노만 오 브라운(Norman O. Brown) 연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웃음..).

 


DH: , 그런데, 내 말은..., 어떤 복수종 러브즈 바디(Love’s Body), 아이고 하늘이여 우릴 도우소서!(둘 다 웃음)

그래서, 종은 놀고 있는 나의 개와 나를 훨씬 넘는 것이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나의 개와 놀고 있는 나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상태로 되돌려지고 그리고 다시 되고 있는 나입니다. 나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재능 있는 이 다른 의 젊은이와 함께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그리고 그 외에 매주 몇 시간씩의 훈련을 해요.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닌, NASCAR(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 미국 개조 자동차 경기 연맹) 경주와 기차길 트랙이 있는 행사장, 성인식 축제(quinceañera estas) 15세 된 라틴계 여성을 위한 파티들 와 그 행사장에서 말이죠. 이 젊은이는 캘리포니아의 운동 경기장을 격렬하게 누비는데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서 캘리포니아의 사회, 농업, 산업의 역사 속에 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미 합중국의 확장의 역사의 한가운데서, 정복당한 영토를 가로질러 행진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행사장보다 서로에게 위험이 되는 데 더 강력한 장소가 있으면 찾아보세요(웃음).

 

CW: 어떤 점으로 보아도 그렇군요. 하하 (둘 다 웃음)

 

DH: .정말요! 우리가 게임을 하면서, 나와 나의 개, 그리고 친구들과 그들의 개, 그리고 우리가 서로 함께 되는 이 우리는 누구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면서요. 정말, 우리는 누구지요? 그리고 동시에, 많은 에코페미니스트들과 진심 어린 생태 환경 관련자들 그리고 동물 권리 관련자들이 우리에 관해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또한, “우리를 만드는 것도요. 그들은 정말 중요한 질문을 만들거나,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함께 있는 것인가 아닌가? 내 말은, “여기는 무엇이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크리터들은 우리에게 문제이고 서로에게 문제인가? 라는 거지요. 그리고 그들은 동물산업복합체 속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것은 사이보그 선언이 만들어질 무렵인, 1980년대 초부터의 Barbara Noske의 용어였습니다. 당신은 그걸 알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얽힘 속에서의 인간과 비인간의 번영에 관한 물음들의 이 교차점, 혹은 내파(內破)의 시점에 아무튼, 적절한 비유가 뭘까요? 당신은 이미 연구를 하고 있었고, 몇 년간 해 왔기 때문에 당신은 그걸 알지요.

 

CW: , 그리고 그 시기에는, 적어도 제가 시작했을 때는, 그것은 대체로 중대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DH: 그랬지요. 어쨌든 대학가에서는 아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2002년경 우리 대학내의 한 문화 연구 퀄로퀴움에서 반려종 선언의 초고를 강연으로 발표했습니다. 한 친구 이 친구는 계속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 관계로 있는데요 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그 강연 정말 좋았어요, 멋졌지만, “사이보그와는 달리, 이것은 뜨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둘 다 웃음), 결과적으로 그 말이 매우 예언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여전히 웃으면서.) 이 시대, 이 세계화(worlding), 혹은 우리가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 것이든 동물 연구”, “복수종 연구,” “반려종 연구에서, 하나의 용어로서 반려종이라는 용어만큼은 그 자체로 뜨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 속에서의 인간/비인간 분리 그런데, 그것들이 단일한 분리들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리들 에 관한 질문, 생명력과 죽을 운명을 공유하는 자들의, 죽을 운명의 창조물들인 우리들의 합치기와 분리에 관한 질문: 이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떴습니다.

 

CW: , 그리고 그것은 사이보그 선언과는 다르게 반려종 선언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유한성의 의미, 필멸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이보그 선언속에 있는 것과는 다른 기록부에 있는 삶과 죽음의 현존에 대한 뚜렷한 의미.

 

DH: 그것은 다른 register에 있죠. 글쓴이의 기조는 훨씬 더 개인적이고 취약합니다, “반려종 선언속의 이야기 목소리, 그 작업 속의 ”. . .

 

CW: , 많은 사람들이 사이보그 선언을 너무나 퍼포먼스 모드로 읽었고, 그것은 나중에 당신이 받은 의견과는 다릅니다.

 

DH: 그것은 다른 목소리이지요. “왜 당신은 당신의 페미니스트, 반인종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비판을 반려종 선언에 떨어뜨렸느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그건 떨어뜨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적어도 그만큼이나 절실하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매우 다르게 생산됩니다. 거기 어떤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에서ㅍ『반려종 선언은 사랑의 행동으로부터 자란 부분이 많고, 사이보그 선언은 분노의 행동으로부터 자란 편이 큽니다.

 



CW: 저는 조금도 당신이 비판을 떨어뜨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리고 우리가 조금 있다가 이것에 관해 이야기 하겠지만 제 생각에, 실제로는, 당신의 친구가 사회주의자, 반인종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헌신들이라고 부른 것들은 유지가 되지만, 그것들은, 제가 더 철두철미하게 생정치적이라고 부르려고 하는 어떤 정황속에서, 개정됩니다.

 

DH: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CW: 그리고 그것은 명령-통제-소통-정보와 군산 복합체, 그리고 당신이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타내고 있는 노트들과는 매우 다른 맥락입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예요. 분명히. 하지만 . . .

 

DH:: . . . 그것들은 다르게 형성됩니다.

 

CW: 아마도 그것들은 다르게 분기하겠지요. 당신이 반려종 선언에서 그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것들은 다르게 육체로서 나타납니다. 하나의 접점은  그리고 이것은 두 선언들 사이의 깊은 지하의 연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과 카이엔(Cayenne) 사이의 혀로 하는 진한 키스로부터 이 선언이 시작되는지를, 주목하고, 축하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DH: 그 가벼운 포르노의 순간. (둘 다 웃음)

 

CW: 유명이든 악명이든 당신 뜻대로 부르세요.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 그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내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무리들이지요(웃음 계속). . . . 그러나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놓치는 중요한 것 그것은, 그런 순간의 한가운데서는, 말하자면, 놓치기 쉽습니다 은 이 메니페스토 역시 바로 면역 시스템으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DH: , 그렇습니다.

 

CW: 그리고 그것은 인종에 관한 물음으로 사작합니다.

 

DH: 그리고 정복. 그것은 물론 토착성과 인종의 역사들을 이어받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part 2]


대지의 우화들뢰즈와 해러웨이


박준영(nomadia)/수유너머104 회원


앞선 권호에서 설명을 덜한 부분부터 시작해 보지요. ‘사변적 우화라는 말뜻이 그것입니다이 말이 본래는 ‘공상과학 소설’(SF: Science Fiction)이란 말의 패러디라는 것은 단번에 아실 것 같습니다의미는 좀 다릅니다이에 대한 위암의 아주 짧은 글이 있는데제가 번역했으니 링크를 걸어 놓겠습니다.(알린 위암사변적 우화망자를 돌보는 중간자의 목소리)

 

'사변적 우화'?


Endosymbiosis: Homage to Lynn Margulis, 4 x 6 ft, Shoshanah Dubiner, 2012
'사변적 우화'가 대체 뭐람?


그런데 해러웨이의 영화(<도나 해러웨이지구 생존 가이드>(Donna Haraway: Story Telling for Earthly Survival)를 찍은 영화감독 페브리지오 테라노바(Fabrizio Terranova)가 이 개념에 대한 보다 단순한 정의를 내린 적이 있네요그걸 한 번 들어 보도록 합시다.


사변적 우화란 우리가 가능한 것(가능할 수 있었고그랬을 수도 있는)에 대한 욕구를 촉발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들을 개봉할 수 있게 하는 서사의 한 종류이다이것은 어떤 완전히 새로운 창조를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다이것의 눈에 띄는 차이는 이미 상황 안에 존재하는 오늘날의 가능성들을 전진시키는 민감하고 매혹적인 것들을 정립한다는 점이다스팩트럼을 넓혀 보면사변적 우화는 역사이야기재작동시키기 위해 재개봉하는 감각적인 방식을 발명하기와의 관계들이며또한 우리가 열외시켰던 것사태를 변형하기 위해 오늘날 여전히 작동하는 가능성의 계열들을 보기 위한 것들이다또 확장시키면사변적 우화에는 공상과학 소설 (...) 연구의 다양한 유형들과 가능한 서사 양식도 포함된다또한 인물신화를 창조하는 것이 세계를 증강시키기 위해 새로운 상황들을 발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출처https://fabbula.com/speculative-fabulation-word/)


만약 해러웨이가 그토록 막대한 중요성을 사변적 우화에 부여하였다면그 우화가 이미 세계의 본질적인 일부이기 때문이지요불편함과 함께 머물기에서 해러웨이가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스토링(storying: 있음직한 이야기)을 동시에 제안하는 것은그것들이 살아 있는 존재들의 진행성(ongoingness)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이기 때문입니다이를테면 살고 죽는 것이 일인 반려종(companioin species)은 스토링다시말해 세계()화를 끝내지 않을 것이다.”(앞의 책, 40)라고 해러웨이는 말합니다. 여기서 스토링과 세계()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다시 말해 스토링은 불안정한 세상이 존속하도록 한다는 것이지요[533].


들뢰즈가 이미 말했답니다.


위암은 사변적 우화와 연관된 해러웨이의 언급들이 직접적으로 들뢰즈를 포함하지는 않지만매우 강력한 유사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이를테면 생존의 충동(urge for survival), 삶의 억압에 대한 저항그리고 하나의 우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간적이지만은 않은 다른 존재자들과 연결될 필요성 등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지요나아가 우화란 사변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해러웨이는 숨겨지거나 무시된 잠재적인 것들을 강조하기도 합니다이는 들뢰즈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발명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과 연관되지요물론 들뢰즈는 우리 시대의 드러난 삶의 조건도 불안정하기는 한가지며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주장합니다.[Ibid.]


Cynthia Camlin _ Divided Earth, 7
인류세를 살아가는 민중들


하지만 인류세에 대한 해러웨이의 관심은 사변적 우화에 연루된 민중들에 대한 묘사에 더 집중합니다그녀의 접근이 다종적인 접근이며인간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지요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민중들’(peoples)이라고 말할 때그 민중은 문자그대로 대지적으로라는 의미를 지닙니다다시 말해 해러웨이의 민중은 대지-민중’(earth-people)인 것입니다해러웨이는 어떻게 하면 우화가 호모사피엔스의 신화를 전복하면서 역사를 새롭게 생산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테라폴리스’ 이야기가 대표적인 우화가 되겠지요위암은 이러한 해러웨이의 주장이 우화에 대한 급진적인 주장에 이른다고 봅니다즉 우화는 어떤 민중 그리고 대지를 위한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라그러한 대지-민중들이 포함된 우화가 대지적인 것 자체라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우화가 가지는 진리효과 또는 그것의 실천적 함축을 급진적으로 밀어부친 언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인간적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그 조건 안에 우화가 포함되고, 또한 조건 자체를 창출하고 기술하는 지사학(地史學, geohistory)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Ibid.]


이 논문의 3장은 지리철학과 현재의 저항입니다우선 위암은 해러웨이가 말하는 우화에 대한 접근다시 말해 우화가 도래할 민중(the peoples-to-come)과 대지 간의 강한 유대를 요구한다는 주장이 이미 들뢰즈-가타리의 저작에 등장한다는 점을 발견합니다천의 고원에는 잃어버린 민중(missing people)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 장이 있는데, 그 장에서 들뢰즈-가타리는 대지와 영토에 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여기서 대지와 영토는 민중과 상호직조(interweaving)됩니다이러한 상호직조라는 과정은 또한 철학예술과 관련되지요(1987: 342-7/422-8). 이것은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도 재언급됩니다여기서 철학과 예술은 대지와 민중의 발명을 위한 창발적 투쟁이라는 공통된 임무를 수행한다고 논해지지요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534]


우리는 창의성이 부족하다우리는 현재에 대한 저항도 부족하다개념의 발명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미래 형식즉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대지와 민중을 요청한다. ... 예술과 철학은 이 지점으로 수렴한다이 지점은 창조력의 엮임을 통해 부재하는 대지와 민중을 구축하는 장소이다(Deleuze and Guattari 1994: 108/104).


이 인용문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사항이 있습니다첫째로 철학과 예술이 모두 창조적이면서 저항적인 활동으로 정의된다는 점입니다이 활동은 우리가 알려지지 않은 것의 발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두 번째로 부재하는 민중과 대지의 엮음이 그러한 발명의 기반이라는 것이지요들뢰즈-가타리는 이러한 창조적저항적 활동의 과정에 암묵적으로 우화를 가져다 놓습니다즉 우화는 그러한 발명의 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이때 우화와 동연적인 것이 바로 지리철학이 됩니다지리철학은 우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주체가 아니라 대지에 대해 사유하기 때문입니다들뢰즈-가타리의 말을 빌리자면 사유는 더 이상 주체와 객체 사이에 난 선을 따라가지 않으며, 이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돌아가는 과정도 설정하지 않으며그보다 지층과 대지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Deleuze and Guattari 1994: 85/82) [534-535]. 다시 말해 '주체'가 아니라 '대지-민중'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지리철학, 대지를 창발하라!


지리철학은 비인간인 가이아(gaia)의 권역에서 '잃어버린 민중과 대지'라는 문제의식과 씨름합니다우화도 인간 간의 억압 뿐 아니라 비인간과 그 힘에 대한 억압을 이야기합니다철학이란 무엇인가?의 지각촉발(정동, Affect) 그리고 개념’ 장에서우화는 예술적 활동으로 취급되는데여기서 예술적 활동이란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인간적인 심리기제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그 자체로 존립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됩니다따라서 지각과 촉발의 덩어리가 바로 예술작품인데, 그것은 비인간적인 것에 의해 정의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촉발이란 들뢰즈-가타리의 논의를 따르자면, ‘인간의 비인간 되기’(nonhuman becomings of human)이기 때문이지요.(Deleuze and Guattari 1994: 169/160). 다시 말해 우화하기(fabulating)을 포함하여 예술활동은 이러한 비인간-되기, 또는 대지와 소수자-민중 되기를 통해 예술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535]  


다른 한편 예술이 어떤 기념비라면그것은 공통기억’(commemorative)이라는 의미가 될텐데들뢰즈-가타리는 예술이 기억이나 과거와 연관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지요예술은 이렇게 공통기억으로서이 기념비가 아니라 바로 우화입니다(앞의 책, 168/157). 사실상 창의적인 우화는 기억과는 연관이 없고환영(fantasy)과 연관되지요우화를 만드는 예술가들은 언제나 삶 너머삶 보다 더 큰 어떤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해 우화는 비인간 되기를 통해 그러한 것을 실행합니다[535-36]. 지각과 촉발은 인간성과 자연과 관련해 비인간되기를 실행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우화를 창조해 냅니다한 손에는 어떤 민중다른 손에는 대지를 쥐고 말이지요. 그것은 한 덩어리의 '환영'이지만 의미를 축조하고, 현실을 바꾸어나갑니다.


Ben Will, Masses
대지와 민중의 창발-우화하기


이런 측면에서 우화는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포획될 수 없는 생명의 역능 위에서 유지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우화에 관한 단락들이 지리철학에 관한 장과 공명합니다예컨대 국가에 관한 오늘날의 철학의 재영토화에 대한 들뢰즈-가타리의 언급이 바로 그러하지요즉 철학은 국가 위에서 재영토화될 필요성즉 새로운 대지를 창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이는 자(Nature)으로의 그것의 소속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가 정복한 그 자연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그 자연’ 즉 대지는 예술과 우화의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그리고 그것은 지리철학의 분야이기도 합니다지리철학은 비인간적인(nonhuman) 자연의 전망으로서의 지각을 전개하고촉발을 이끌어냄으로써 비인간 되기가 이루어지게 합니다. 비인간적(inhuman)인 가이아의 양태로 사유하기 위해 새로운 대지를 설립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이와 같은 사유의 양태는 바로 삶(생명)의 역능을 해방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들뢰즈-가타리의 말을 따르면 철학책과 예술작품이란 공통적으로 저항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들은 죽음에 저항하고예속에 저항하며참기 힘든 것에 저항하고수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이 모두는 바로 참기 힘든 현재에 저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Deleuze and Guattari 1994: 110/105) [536]


위암은 이 논문의 결론(‘살기 위한 비-순수와 잘 죽기’)에서 우화란 어떤 문학 비평의 분석용어가 아니라 예술 자체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왜냐하면 우화는 어떤 경로알려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계속되는 발명이기 때문이지요또한 우화는 정치적 과정이기도 합니다우화는 그 주체를 하나의 정체성 안에 가두기를 거부함으로써굳어지고 공허하고 응결된 정치적, 국가적 신화에 저항하기 때문이지요그러나 우화의 정치적 특성은 그것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해러웨이가 스토링과 세계()화 하기라는 개념이 같은 것이라고 재우쳐 말할 때마다우리는 우화가 세계가 그러한 바그것의 일부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것들의 예술적 발명은 산 존재자들의 존속을 요청하면서해방된 비인간적 지각들과 정동들(촉발들)과의 연결을 강조하는 것입니다[536-537]


위암 자신은 최근의 우화에 대한 철학의 관심이 단지 우연이 아니며 이제 철학은 대지 위에 구축된 인간적 권역으로부터 사유를 탈영토화하는 지리철학을 요청한다고 주장합니다다시 말해 해러웨이의 우화하기는 들뢰즈-가타리의 지리철학과 상호직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가이아를 제거함으로써 사유를 억압하는 이러한 체제에 대한 급진적 변화에 대해 알지 않고서는 다종적 민중과 그 잃어버린 대지를 우화하는(fabulating) 그런 이중적 되기과정을 거머쥘 수 없습니다바로 이런 탈영토화하는 새로운 지구(geo) 체제는 사유하기에서 뿐 아니라정동(촉발)과 지각우화라는 낯선 인식론적 위상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이것은 어떤 순수한 허구나 실증적인 진리도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그리고 우화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분야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훌륭한 자산이 되어야 하지요전통적인 사유 범주들이를테면 참 또는 거짓인간 또는 비인간추상 또는 정서성과 같은 범주들은 우화에 해당되지 않습니다이러한 전통적인 범주에 의한 규정불가능성은 살육자 이야기에 저항하고 다종적인 불안정성과 상호의존성으로 규정되는 존재자들에 대한 보행식’ 접근의 여지를 만드는 삶의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한다고 위암을 생각합니다.[537]


들뢰즈와 가타리 잊지 말기.


질 들뢰즈(좌)와 펠릭스 가타리(우) 캐리커처
'우화하기'에 있어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헌


다시 들뢰즈 가타리로 돌아와 봅시다. 들뢰즈-가타리에게서 우화는 철학적 지위를 획득한도 이미 말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철학과 예술은 우화에 지렛대를 제공하지요그리고 대지와 민중들 간의 개념적 협력을 추동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들뢰즈-가타리에게 대지는 무엇보다 철학적인 개념입니다. 즉 우화되어야 할 새로운 대지는 사유의사유를 위한 하나의 대지인 것이지요위암은 들뢰즈-가타리의 우화 개념이 가진 효과가 해러웨이의 보다 유물론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접근에 의해 보존될 뿐 아니라 변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 해러웨이의 적극적 개입이 요청됩니다. 해러웨이는 대지를 어떤 천상의 실체(ethereal entity, 추상적 존재)처럼 생각하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방해하면서그것을 부식토나 ’ 또는 땅 밑에 사는 그늘 생물(shady creature)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들뢰즈-가타리도 해러웨이가 사용하는 'earth'라는 단어를 프랑스어(terre)로 사용하면서 그것을 지구대지(the Earth), 당신이 손에 쥘 수 있는 재료덩어리로 지칭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둘의 친연성은 매우 신기하기조차 합니다.[537]


죄없는 실천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비순수성'입니다. 대지를 다룰 때 누군가의 손이 더러워 진다는 것은우화가 어떤 순진한 실천(innocent practice, 죄없는 실천)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 지식과 실천의 비-순수성(non-innocence, 죄있음오염)은 해러웨이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컨대 그녀의 책 제목 불편함과 함께 머물기는 우리가 만나는 다른 인간들과 비인간들 간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껄끄러움을 우리 자신이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지요해러웨이가 쓴 우화인 카밀 이야기퇴비더미의 아이들은 그와 같은 불편하고오염된(non-innocent) 선택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와같은 세상에 순수한 것은 어디에도 없지요. 그러나 이것은 절망할 요소는 아닙니다. 다만 수용하고 거기서 어떤 꽃과 같은 것을 피워야 겠지요.[537-538]


이와 관련해서 위암은 학술회의에서 경험한 바를 논문의 말미에 밝혀 놓았습니다(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이 앞서 제가 번역한 사변적 우화망자를 돌보는 중간자의 목소리입니다.). 그것은 2017년 3월 브뤼셀 이야기입니다해러웨이는 카밀 이야기퇴비더미의 아이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자신은 분명 낙태합법화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왜냐하면 그녀는 안전하고 여유있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권리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하지만 낙태합법화와 관련해서 그녀의 문제의식은 그러한 이슈를 넘어서 진행됩니다해러웨이는 생명을 존엄성이나 순수성과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말합니다그러한 입장은 생명과 삶이 가지는 엄연한 사실들즉 잔혹성포식자와 희생양질병과 죽음과 같은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순수한’(pure) 삶 또는 생명의 이야기들은 기원 신화가 퍼트리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결론들을 은폐하기도 합니다.[538] 그래서 낙태합법화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이러한 순수성에 대한 기원신화를 건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들뢰즈-가타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지식과 실천의 비순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삶에서 유전되는 어두운 측면들도 잘 깨닫고 있었지요하지만 몇몇 그들의 표현들은 부주의한 독자들이 삶의 역능이 대지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초월적인(ethereal)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끌어 갑니다해러웨이의 유물론적이며페미니즘적인 접근은 이런 경솔한 독해를 보완하며삶의 비순수성에 대한 그들의 구절들을 재음미할 수 있도록 합니다.[Ibid.] 


인류세의 시대에 우화는 정치적인 비순수성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것은 대지 위에서 '살고 잘 죽기' 위해서 불안정하고 불결하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삶의 이야기를 지속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의미입니다.[Ibid.]


<도나 해러웨이: 지구 생존 가이드> 포스터
비순수성으로 살기, 그리고 잘 죽기


 

<>

*논문 참고도서 약호사항

Bergson, Henri (1935)The Two Sources of Morality and Religion, trans. R. Ashley Audra and Cloudesley Brereton assisted by W. Horsfall Carter, London: Macmillan, 1935[Bergson, Henri (1932)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Deleuze, Gilles (1989) Cinema 2: The Time-Image, trans. Hugh Tomlinson and Robert Galeta, London: Continuum [Deleuze, Gilles (1985) Cinéma 2: L’Imagetemps,

Paris: Minuit].

Deleuze, Gilles (1985) ‘Pensée et cinéma – cours du 05/02/1985 – 3’, La Voix de Gilles Deleuze en ligne, uploaded by University Paris 8, available at <http://www2.univ-paris8.fr/deleuze/article.php3?id_article=304>(accessed 31 July 2018).

Haraway, Donna (2004) The Haraway Reader, New York: Routledge.

Haraway, Donna (2011) SF: Speculative Fabulation and String Figures, Kassel: Hatje Cantz Verlag.

Posted by 수유너머104

해러웨이와 울프와의 대담 -사이보그의 시작(2)

                                      (Manifestly Haraway, The University of Minnesota, 2016)

번역: 최유미





CW: 선언에 관해 제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학문인생에서, 사이보그선언보다, 더 상이한 목적으로, 더 상이한 독자들(단지 학계 내부만 말해서도)에 의해, 더 다양하게, 그렇다고만 해 둡시다 (웃음), 받아들여진 문서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그건 많은 점에서 반려종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과는 다른 종류의 생명을 가진 문서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그 작품이 출간되고 잘 알려진 대로 당신이 확인한 그 경계 파괴들을 추적하던 맞아요. 그 때 그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DH: . . . .그리고 (그 시대의 )재구성들.

 

CW: 그리고 재구성들 입니다. 하지만 또한 나는 그것이, 당신이 이 모든 것을 그 당시 과학들 속의 놀라운 변형들 (당신이 말씀한 것처럼, 지금 선택적이 아닌것으로서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실체들을 이해하기) 속에 박아 넣기 위해 어떻게 끊임없이 작품 속에서 되돌아가는지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당신이 아마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는데..., 선언의 더 미래적인 전용의 일부로부터 떨어져 나옵니다.)

 

DH: 맞습니다.

  

 

CW: 그러나 당신은 또한, 이러한 판구조의 이동들을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신의 트릭(the God-trick)”과 같은 훨씬 더 긴 이야기들 속에서의 그 교과들과 문화연구와 페미니즘 속에도 또한 박아 넣었습니다.

 

DH: 그리고 많은 점에서, 사이보그 선언의 자매지는 상황에 놓인 지식들(Situated Knowledges)입니다.

 

CW: 그렇군요.



                                       <치카나 페미니스트 첼라 샌도벌>

                                       


DH: 그러나 사이보그 선언과 함께 하면서, 나는 그때 이걸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언어를 갖지는 못했지만, 비판은 결코 충분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분노는 지금 그것을, 이 두꺼운 섬유질의 지금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이 시간/공간의 왜곡 속에서 이 세계 속의 존재에 대한, 감응(affect)들이고, 나의 감응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 시대를 진정으로 사랑할 것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여기서 어떻게든 서로 잘 살고 죽을 것인가? 또한 그 선언은 유색 여성 페미니즘의 특정한 순간과, 그 시기의, “우리의많은 비전과 이해들에 관한 많은 진형들의 과도한 백인 페미니즘에 대해서 첼라 샌도벌(Chela Sandoval)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설명을 요구했고 그것을 통한 계속적인 루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이보그 선언은 페미니즘 안팎의 인종주의자 진형(formation)들과 함께 살고 (설명의)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정식 마르크스주의자 분석 안팎에 있는 사회주의 깊은 트러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요... 나는 어떤 정치 속의 존재 그리고 다른 것들이 아닌 어떤 세계만을 위한 존재)라는 단순치 않고 언제나 곤란한 느낌과 어떻게든 함께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CW: , 그리고 제 생각에, 그렇게 많은 상이한 독자들에게 사이보그 선언이 열어 논 것은 정말, 대단히 중요한 용어인 아이러니(irony)라는 말입니다.

 

DH: .

 

CW: 그리고 그건 또 1980년대 아주 초기 였죠.

 

DH: , 그리고 비자기동일성(non-self-identity). . .

 

CW: 그렇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시기의 문학 비평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하게 위치 지어진 용어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이 모든 것들 사이, 다시 말해 당신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진심에서 우러나고 깊고 감동적인 헌신들과 사이보그의 모습에 관한 이런 종류의 아이러니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 사이의 작품 속에서의 균형... .

 

DH: . .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CW: 그렇군요, 제 생각에, 그것이 한 일은, 페미니즘이나 마르크스주의, 생물학과는 실제로 별 관계가 없이 다른 종류의 전용을 하는 훨씬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이보그선언를 열어 준 것입니다.

 

DH: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실천 공동체들에게도 오픈 해주게 되었고, 그래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과 기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 말은, 제가, 분명히 말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공동체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독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그들과 함께 글을 씁니다. 아마도 오늘 나는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을 아이러니라고 부르지 못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이런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이 그 부분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또한 구문론의 모든 행위는, 명백히 하고, 통제하고, 알고, 확인하려는 우리의 욕망에 대한 사나운 농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문장의 끝에 도달할 때쯤에는, 우리는 진실이 아니어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적어도 여섯 개를 말했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 문장의 끝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의미하고자 하는 것을 단순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CW: , 그리고 아이러니는, 반려종 선언에서 당신이 사용하는 많은 모습들을 포함한 훨씬 더 철저한 어휘로서 당신이 개발할 것의 약칭이었습니다.

 

DH: , 물론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사이보그 선언을 쓸 때, 산타 크루즈에 있는 켈리포니아 대학 의식사 프로그램의 신참 교직원이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진형이지요. 나는 거의 저에게는 새로운, 인문 과학(human science) 분야의 많은 현대 이론을 배우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문장 속에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마치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말이죠. . .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이보그 선언은 그 프로그램의 내 동료와 대학원생들로부터 얻은 지식들, 이전에는 내것이 아니었던 것들이죠.. 그 일부를 시험해 본 것이고, 그 지식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후기구조주의와 탈구축의 일부를 이루게 됩니다 야콥 폰 우엑스퀼과 롤랑 바르트 등의 몇몇 이론들. 그 논문은 나의 새로운 활동 무대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기 위한 나의 접근법이기도 했습니다.

 

CW: . 일련의 새로운 담론들 속에서. . .

 

DH: 그리고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가끔씩은 행복한 실수가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일부러 저지른 실수였고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것들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내가 진짜로 이해를 못해서 한 실수였는데, 결국은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CW: 모든 사람이, 물론 특히 당신 경력의 역사를 감안하면 모든 사람이 사이보그 선언을 페미니스트 사상의 전체 역사에서 하나의 핵심적인 문서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 사상에서는 덜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당신이 쓰신 것과 관련되어 있기 보다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여전히 매우, 매우 강건한 전통이었던 아카데미 속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의 운명들을 실제로 바꾼 아카데미 안팎의 그 모든 과잉결정적인 수용력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에(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프레드릭 제임슨(Fred Jameson)은 저의 논문의 첫 번째 독자였고, 되돌아 보면 이제 제가 보기에 그리고 저는 이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지막 유럽 지성인인 것 같습니다.

 

DH: 아이러니하죠.

 

CW: 어떤 특정한 전통의 지성인

 

DH: 그런데, 나는 선언을 쓸 즈음에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도 읽었습니다. 푸코는 그 당시 오래된 친구였지만, 제임슨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CW: , 그래서, 우리가 쓰는 이런 것들의 운명이, 어떻게 지성인의 진형들 만이 아니라, 이러한 훨씬 크고 상당히 제도적인 힘들에 달려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

 

DH: 그러니까, 그게요, 동부 Socialist Review 집단은 사이보그 선언를 싫어했고, 버클리에 위치한 연안지역 Socialist Review[SR] 집단은 그것을 수용했는데, 주된 이유는 제프 에스코피어(Jeff Escoffier)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매우 정치적이었고 훌륭한 편집자였습니다. 선언은 SR에서 즉각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종류의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즉각적인 논쟁을 야기했는데, 주된 이유는 그것이 반-과학과 반기술(anti-science-and technology)의 입장과 어휘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이보그는 그런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또한 기술에 취한 기술신봉자이기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진지한 비판이 필요했던(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방대한 것들에 대한 단순한 비판적 접근을 거부했습니다. 단순한 비판적 접근은 페미니즘과 신좌파 사회주의의 일부 핵심적인 영역에서 하나의 유혹이었죠. 사이보그 선언,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그 관계에 면전에 대놓고 의도적으로 하는 NO였고, 그것은 처음부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CW: ,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작품 속에 있는 아이러니의 형상으로 되돌아가게 하지만, 그것이 또한 그것이 가진 관련성이란 관점에서 사이보그 선언의 극도로 긴 생명을 설명합니다. 당신이 뒤흔들어 놓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이라도 따른 적이 있습니까, 사이보그 선언...,

 

DH: 그런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안 그런 쪽이 많다는 의미임)

 

CW: 바로 말씀대로입니다. 괜찮은 에세이 같은 것이 있었을 테지요.

 

DH: 그렇지만 계속 혼란스럽습니다. 나에게는 계속 혼란으로 있어요.

 

CW:

 

 

Posted by 수유너머104

안녕하세요. 박준영(nomadia)입니다. 웹진의 이 꼭지에서는 최최근의 논문들이나 연구성과에 대한 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분야는 주로 철학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문헌 전체를 번역하는 지나친 성실함을 발휘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필자나 독자 모두 피곤한 일이니까요. 도파민이 바닥난 우울한 두뇌에서 상쾌한 글이 나올리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되도록 해당 문헌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쉽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철학이 연구자라는 신성한 집단의 오컬트한 암호 신세에서 벗어나 대지 위에서 환한 햇살을 듬뿍 빨아들이기를.


문헌들의 주요 출처들은 다음과 같은 해외 저널들입니다.(물론 필요하다면 다른 문헌들도 이용합니다.)


*Deleuze and Guattari Studies (Edinburgh University Press)

*Radical Philosophy

*The Review of metaphysics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Esprit

*Philosophie (Minuit)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PUF)

 


해당문헌의 페이지수는 ‘[ ]’ 안에, 다른 문헌들의 서지사항과 페이지수는 ‘( )’에 표기합니다. 그리고 하이퍼링크를 걸때에는 위 저널제목과 같이해당 단어나 구절을 볼드체-밑줄처리합니다. 그리고 각주는 불가피할 경우에만 사용하고자 합니다.



[part 1]

대지의 우화, 들뢰즈와 해러웨이


박준영(nomadia)/수유너머104 회원



첫 번째로 살펴 볼 문헌은 질 들뢰즈와 도나 해러웨이-대지를 우화하기(‘Gilles Deleuze and Donna Haraway on Fabulating the Earth’)라는 논문입니다. 에딘버러 대학 출판부에서 나오는 들뢰즈-가타리 연구(Deleuze and Guattari Studies)라는 계간지 2018년 가을호(11월 출간), pp. 425-40에 실린 글이지요. 가을호는 들뢰즈와 페미니즘 특집이네요. 겨울호는 2월에 나옵니다(이 글을 업로드 하는 지금 출간되었어요. 꽤 좋은 논문이 보이네요. 특히 'Deleuze's Theory of Dialectical Ideas: The Influence of Lautman and Heidegger ()'다음 소개 논문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제가 쓸 글이 좀 긴데요, 그래서 두 번으로 나눠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논문을 선택한 이유는 복잡하지 않아요. 핫한, 아니 아직도(?) 핫한 들뢰즈와 이제 핫해진 해러웨이를 엮은 제목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상한 단어, ‘Fabulating’도 호기심을 돋우었지요. 이 제목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저자는 누구?

저자는 알린 위암(Aline Wiame) 이고 툴루즈-장 조레스 대학소속으로 논문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위암은 신진 철학자에요. 아직 유명한 분은 아닙니다. , 들뢰즈나 해러웨이라고 처음부터 유명하진 않았으니 선입견을 가지지 맙시다. 철학자답게 bilingual입니다. 책은 불어로, 논문은 불어와 영어로 쓰고 있네요. ‘Academia.edu’ 사이트에 보면 이 분이 쓴 책과 글들 나옵니다. 단독 저서는 아직 없습니다. 책 속에 있는 이 분의 글 제목들을 대충 볼까요?


*Aline Wiame & Augustin Dumont, 철학에서 이미지와 우회(De l’image à la philosophie et retour), 이미지와 철학-이미지의 개념적 사용(Image et Philosophie-Les usages conceptuels de l’image)(P.I.E, 2014)

: 이 글은 위암과 아우구스틴 뒤몽의 공동 저술이네요. 이 책 전체의 서론이에요. 참고로 이 저작의 총편집을 위암이 맡았습니다.

*Aline Wiame, 들뢰즈에 있어서 사유가능한 것과 시각적인 것. 순수 이미지의 직조에서 사유이미지 비판에 관하여(‘Le pensable et le visuel selon Deleuze. De la critique de l’image de la pensée à la fabrication de l’image pure’), 이미지와 철학-이미지의 개념적 사용(Image et Philosophie-Les usages conceptuels de l’image)(P.I.E, 2014)

: 같은 책의 마지막 글입니다. 서론과 마지막 글을 위암이 썼으니, 이 학술그룹에서 위암이 지도적인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이 들뢰즈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외의 다른 논문들을 보면 페미니즘적 성향도 엿보이구요. 들뢰즈와 해러웨이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괜한 것은 아니지요.

 

제목이 이해가 안 가네


논문의 제목을 보면 좀 전에 이야기했듯이 신기한 단어가 보입니다. ‘fabulating’이라는 단어지요. 사전에는 ‘fabula’(Lat. 우화)가 있고, 영어로는 ‘fabulate’, ‘fabular’ 등이 있어요. 이 단어를 저렇게 동명사나 분사처럼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철학자들이 워낙 개념들을 창안해내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일이다보니 저런 단어라 할지라도 놀랍지는 않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번역어를 정했습니다. ‘우화하기라고 말이지요. ‘우화 만들기가 어법에 맞지만, 해러웨이의 의미에서 ‘fabulating’은 세계를 일신하는 실천적 의미가 있고, 단지 이야기를 만든다는 문학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 저렇게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의 있으셔도 괜찮습니다. 뭐 다르게 쓴다고 제가 화가 날 정도로 편협하지는 않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대지를 우화하기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마 이 말뜻은 논문을 보고 나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기다려 보시죠.


(좌)오시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출현한 Donna Haraway(1944- ), 

(우)Gilles Deleuze(1925-1995)



다음으로 혹시 들뢰즈와 해러웨이를 잘 모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제가 링크를 걸어 놓겠습니다. 하나는 제가 쓴 글이고 또 하나는 페미위키에서 해러웨이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도나 해러웨이]: 페미위키

*[낯선 타인과 춤추기]: 들뢰즈 소개글 포함




자 그럼 논문 안으로 가 봅시다

 

우선 이 논문의 목차를 보고 초록을 살펴 보도록 합시다.

 

*목차

I. 서문: 살육자 이야기에 대항하는 페미니스트 스토리텔링

II. 베르그송, 들뢰즈, 해러웨이: 알려지지 않은 것의 발명으로서의 우화

III. 지리철학과 현재에 대한 저항

IV. 결론: 살고 잘 죽기 위한 비-순수


*초록

어슐러 르귄(Ursula LeGuin)'운반가방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에 영감을 받아, 사회과학과 인문학 분야에서 글을 쓰는 최근의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이들은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강력하게 갱신해 왔다. 이런 작업들은 안나 칭(Anna Tsing)과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저작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어째서 이야기하기가 그것의 문학적 기원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어떤 정치학이자 치유의 도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하기 위해 들뢰즈와 해러웨이는 '우화(fabulation)'를 다루면서 세 가지 선을 따라 상호교섭한다. 즉 대지의 지식(earthly knowledge)을 구축하는 스토리텔링에 의해, 사변과 정치의 겹침에 의해, 또한 인간중심주의적 접근으로 인해 억압된 삶의 힘을 해방하는 우화의 비인간적(nonhuman) 차원을 통해 그렇게 한다.”



우화를 말하는 것, 대지의 지식을 구축하는 것., Jacob Lawrence, The Photographer


목차와 초록만 봐서는 이 논문이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불분명하지만, 뭔가 섬세하고 반짝이는 현대사상의 아이디어를 다루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군요. 다루는 두 철학자가 바로 그러한 사상의 아이디어뱅크이며, 여기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개념인 '우화', '대지의 지식', '비인간'이 바로 그러하지요.

 

논문의 1장은 '서론: 살육자 이야기에 대항하는 페미니스트 스토리텔링'입니다. 내용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첫 문장부터 요상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Anthropocene'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 단어는 보통 '인류세'라고 번역됩니다. 인류에 의해 환경오염과 생태계 교란이 시작되는 지질학적 시간대를 이렇게 부릅니다. 일종의 학술적 신조어인 셈이지요. 어쨌든 첫 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세와 그 이론적 변화들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영역에 중대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단지 개념 사용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문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 새로운 지질학적 세기는 전반적으로 사고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425].


뒤따르는 문맥에서 저자는 이러한 전반적인 사고의 전환은 도나 해러웨이와 같은 일급의 페미니스트들이 구사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해러웨이 외에도 이사벨 스텐저즈(Isabelle Stengers)나 안나 칭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들이 가장 심대하게 영향을 받은 텍스트가 바로 어슐러 르 귄의 "운반바구니론"입니다. 여기서 르 귄은 '인류의 발생'에 대한 통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기존의 이야기들이 최초의 인류가 수렵채집인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들에서는 우리의 인류 '영웅'(Hero)이 싸우고, 죽이고, 승리와 비극을 겪지요. 하지만 르 귄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살육자 이야기'(killer story)라고 하며, 이와는 다른 이야기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삶의 이야기'(life story)라고 하지요.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일단 뭔가 반짝거리는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한데, 굉장이 낯섭니다. 여기 등장하는 어슐러 르귄의 소설은 아주 짧습니다. 제가 번역해 놓았으니 참고 하시길.(어슐러 K. 르귄, 허구-운반가방론번역)


살육자 이야기? 삶의 이야기!, Jean-Michel BASQUIAT, Overrun(1985),part


스토리텔링으로서의 페미니즘 글쓰기-우화하기(Fabulating)

 

논문의 취지를 좀더 따라가 보도록 합시다. 르귄의 글을 인용하면서 위암은 이 이야기가 살육 이야기에 반하는 삶의 이야기이며,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운반자(carrier) 이야기라고 봅니다. 여기서 운반자란 기존에 회자되어 온 인류의 시초에 대한 픽션들이 유포시킨 죽이고, 강간하고, 정복하는 인간이라는 지배적 이미지로 인해 은폐된 수렵채집인이라 것이지요. 르귄이 '운반가방론'이라고 명명한 이런 방식의 스토리텔링은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허구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어떤 시기, 예컨대 원시시기에 적용될 때 그것의 진리값은 중립적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위암은 “'이야기'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은 이야기들이 허구일수도 아닐수도 있다는 점이다라고 합니다[526 참조].


 

위암은 칭의 책, <세상 끝에 있는 버섯>(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이 책도 위암의 입장에서는 르 귄의 글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집니다. 삶의 이야기로서 이러한 허구적(또는 진실된) 스토리텔링들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약동하는 접근(saltatory approach)’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이야기 자체의 진리성은 늘 불안정 상태에 놓이지만 그만큼 더 어떤 가능성들, 특유성들을 전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삶의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은 무엇을 겨냥하는 것일까요?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것은 보행식’(ambulatory)이라고 불렀던 방식을 겨냥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개념과 개념 사이를 비약하면서, 하나의 완결된 이론들 사이를 건너 다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삶의 순간들을 걸어가듯이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비약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수렵채집자처럼 한 걸음 한 걸음씩 섭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운반가방을 든 수렵채집자처럼 스토리텔러의 보행식 경험은 사람들의 삶의 불안정성 안에서 그것을 떠받치고 감싸는 모든 가능성, 모든 특유성(singularity)을 탐험하고자하는 것이지요[527]. 위암은 이러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우화화기’(fabulating)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이 베르그송과 들뢰즈, 해러웨이에게서 나타나며, 이는 곧 인류세의 맥락에서 지리철학의 재정립과 연관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르그송도 우화를 말했지

 

우선 베르그송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우화 기능’(fabulation function)에 대해 말합니다. 그가 논하는 이 말은 직접적으로 들뢰즈의 용법과 이어집니다. 즉 우화란 생존을 목표로 하는 본능적이며(instinctive), 상상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르그송이 우화를 정의하면서 목표로 삼은 바는 단지 최초의 인간 사회에서 도덕과 종교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었지요. 베르그송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들에게는 지성보다 본능이 앞서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환영을 만들어내는 지각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란 지성의 [환영에 대한] 해소능력에 반하는 자연적 본성의 방어적인 반응이 됩니다(Bergson 1935: 138-9/172-3 참조)

 

, 그럼 들뢰즈로 가 봅시다.

 

들뢰즈가 1980년대 이래로 우화 개념을 재발견할 때 이러한 베르그송적인 특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대신에 들뢰즈는 우화를 정치적으로 접근하게 되는데요, 거기에는 어떤 예술적 함축도 함께 가져가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영화에 대한 관심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우화는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서 어떤 비인격적인(impersonal) 또는 비인칭적인 담화행위(speech-act)가 되지요. 하지만 도처에서 사람들은 이 우화적인 담화행위를 망실하게 됩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는 국가 안에서 사람들이 자본주의화를 통해 개체화를 멈추었기 때문이고, 식민지화된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들의 신화(myth)를 또한 망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국면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아무리 은폐되고 왜곡된다 하더라도 우화는 자본주의화되고 식민화된 세계 곳곳에서 그러한 시도들을 방해하고, 자신의 스토리텔링들을 생존시키게 되지요[529-30 참조].

 

그러나 들뢰즈에게 이러한 우화는 우리가 흔히 성급하게 오해하는 것처럼 어떤 정신분석적인 것도 아니고, 독특한 작가의 목소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중간적인 목소리’(median voice)라고 위암은 말합니다[530 참조]. 위암이 인용한 들뢰즈의 언급을 살펴 보도록 하지요.

 

우화는 비인격적인[비인칭적인] 신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인격적인[인칭적인] 소설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로부터 사적인 일을 분리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가로지르는 특성을 유지하는 행위 중인 말, 담화-행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로 집합적 언표행위(collective enunciation)이다(Deleuze, 1989: 222/289). 



세상의 다른 종말은 가능하다,” 그리고?,

우화는 다른 세상의 도래하는 민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지점에서 작가는 정말 스스로를 우화 만드는 자로 규정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화를 지어낸다는 것이 특정한 그 민중’(the people)을 발견하거나, 위치지우는 어떤 공식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소수자(minor)와 다중(multiple)인 그러한 민중만을 다룬다는 것이지요.

 

우화하기-민중의 작동


이제 우화는 베르그송에 있어서처럼 종교적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에서 어떤 특정한 전진의 순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베르그송에서처럼] 기억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도래하는 것들로 정향되는 것이지요.[531]. 들뢰즈는 이에 대해 벵센 대학 강의에서 우화 만들기란 거짓부렁이 아니라, 어떤 전설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기서 우화는 그 자신의 진리를 생산하는 것인데, 그것이 우화 자신의 과정이고 이야기를 형성하는 경로가 됩니다. 이때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의 민중들에 대한 특성과 연관됩니다. 이것을 들뢰즈는 우화적 기억’(fabulous memory)이라고 부릅니다. 이 기억은 민중을 결집시키는 기능을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진실이 아니라, 허구화되고 우화로 된 기억입니다. 위암이 인용한 들뢰즈의 다음 언급을 보시지요.

 

이 민중은 실존한다. 하지만 역사 바깥에, 삶의 체험 바깥에 존재한다. 이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그것이 발명되는 한에서 존재한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어떻게 발명되는가? 우화적 기억으로. ... 거기에는 어떤 예비적인 이야기도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그럴듯한 방법으로, 우리는 매일매일 억압 당하는 인물로부터 우화의 기능으로 나아가야 한다. ... 이렇게 해서 민중이 작동한다(Deleuze 1985).


이 기억은 역사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랭보가 사용했던 용어로 표현하자면, ‘숨겨진 것의 발명’(invention d’inconnu) 같은 것이지요. 즉 알려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우화의 방식으로 어떤 것을 발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의 기원을 발견한다는 의미와도 같지 않아요. 또한 운명론이나 현실도피의 망상도 아닙니다. 우화는 그것이 다루는 현실에 부가되는 것이면서, 잠재적인 것들을 나타나게 만들고 그것들이 발전해 나가도록 힘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때 이 우화가 진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지요. 다만 그것이 진리효과(true effects)를 생산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와 해러웨이 사이에 이론적인 교전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해러웨이의 세계()화와 사변적 우화


위암은 이러한 교전이 처음부터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해러웨이가 자신의 사변적 우화’(speculative fabulation)를 언급할 때 들뢰즈를 참조하진 않기 때문이지요. 일단 해러웨이의 사변적 우화개념에 접근하기 전에 그녀가 사이보그 선언’(A Manifesto for Cyborg)에서 스토리텔링이 강력한 정치적인 페미니즘의 도구가 된다는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사이보그 글쓰기는 생존을 위한 힘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원초적인 순수성의 기반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타자로 표시하는 세계를 제어하기 위한 도구를 확보하기 위한 기반이다. 그러한 도구는 종종 이야기, 되풀이되어 이야기되는, 자연화된 정체성의 위계적 이분법을 탈구하고 역전시키는 그런 판본의 이야기이다. 원래 이야기들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사이보그 저자는 서구문화의 중심적인 기원 신화를 전복한다. 우리는 모두 묵시록적인 전망이 충족되기를 바라면서, 그러한 기원 신화들에 의해 식민화되어 버렸다. ... 페미니스트 사이보그 이야기는 명령과 통제를 전복하기 위해 소통과 지능을 재코드화할 임무를 지닌다(Haraway 2004: 33).


해러웨이사이보그 선언표지


여기서는 아마도 스토리텔링, 이른바 사이보그 스토리텔링이 전복이 도구로 묘사되는군요. 하지만 아직 사변적 우화개념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해러웨이의 후기 저작에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그녀의 소책자인 SF: 사변적 우화와 실뜨기의 제목부터 그러합니다. 여기서 우화는 소위 테라폴리스’(Terrapolis)라 불리는 세계의 사변적 민중(speculative people)을 향해 세계()(worlding)하는 새로운 방법을 형태짓는 것을 목표로 어떤 사변적인 장치로서 도입되는 것이지요. 사변적 우화란 그래서 인류세에 의해 부과된 급진적인 이행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worlding), 우리가 대지에 관해, 그리고 대지와 더불어 무엇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사변적 우화, 다시 말해 다종적 스토리텔링’(multispecies storytelling), ‘다종적 세계()’(multispecies worlding)가 있어야 합니다(532; Haraway 2011: 5).

 

(, worlding세계()라고 한 것은 제 번역어입니다. 왜 그랬어? 라고 물으면 대답이 복잡해지므로 일단 여기서는 보류하겠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worlding이 해러웨이의 문맥에서 보면 세계화인데, 이 말이 정치경제학적인 부르주아 세계화와 구분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해러웨이의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어떤 현실적 효과 문제도 담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세계화을 괄호 안에 넣은 겁니다. 괄호 없이 세계상화라고 하면 하이데거의 세계상과 또 헛갈립니다. ...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해러웨이에게 사변적 우화는 인류세에 직면하여 스토리텔링을 갱신하기 위한 개념적 장치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녀의 최근 책인 불편함과 함께 머물기(Staying with the Trouble)는 분명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해러웨이는 한 장 전체를 어슐러 르귄과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에게 할애합니다. 그리고 해러웨이 자신이 쓴 단편 소설, 카밀 이야기: 퇴비더미의 아이들로 책을 마무리하지요(Haraway 2016: 134-68). 그러나 사변적 우화는 단지 세계와 거기 속한 존재자들에 대해이야기하는 이론적 도구인 것만은 아닙니다[532 참조].




일단 이번에는 여기까지 설명드리려고 합니다오늘 읽으신 글의 마지막 몇 단락은 꽤나 요상한 개념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 개념들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궁금하시면 다음 웹진 권호에 실릴 제 글을 또 봐 주시길.

[다음 호에 계속] 



*논문 참고도서 약호사항

Bergson, Henri (1935): The Two Sources of Morality and Religion, trans. R. Ashley Audra and Cloudesley Brereton assisted by W. Horsfall Carter, London: Macmillan, 1935[Bergson, Henri (1932)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Deleuze, Gilles (1989) Cinema 2: The Time-Image, trans. Hugh Tomlinson and Robert Galeta, London: Continuum [Deleuze, Gilles (1985) Cinéma 2: L’Imagetemps,

Paris: Minuit].

Deleuze, Gilles (1985) ‘Pensée et cinéma cours du 05/02/1985 3’, La Voix de Gilles Deleuze en ligne, uploaded by University Paris 8, available at <http://www2.univ-paris8.fr/deleuze/article.php3?id_article=304>(accessed 31 July 2018).

Haraway, Donna (2004) The Haraway Reader, New York: Routledge.

Haraway, Donna (2011) SF: Speculative Fabulation and String Figures, Kassel: Hatje Cantz Verlag. 

Posted by 수유너머104

독일혁명의 패배의 깊이로

이케다 히로시, <독일 혁명 – 제국의 붕괴에서 히틀러의 등장까지>, 현대서관, 2018, 384쪽, 3000엔+세금.

원서정보: 池田浩士, 『ドイツ革命―帝国の崩壊からヒトラーの登場まで』, 現代書館, 2018

http://www.gendaishokan.co.jp/goods/ISBN978-4-7684-5846-4.htm




가게모토 츠요시






1. 2018년에 출판된 <독일혁명>


  올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의 여러 기획들이 있을 것이라 쉽게 예상된다. 그리고 재작년인 20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행사가 여러 곳에서 개최되었다. 그것들은 사후적으로 성공한 혁명이자 민중운동으로 재평가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면 작년 2018년에 100주년을 맞은 독일혁명은 어떠했는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왜일까? 실패한 혁명이었기 때문인가?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어떠한 것을 우리 삶의 양식으로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한 혁명에서가 아닐까? 2018년에 출판된 이 책은 입문서로 읽을 수 있게 역사적 기본 사실을 보여주는 서술형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어떠한 패배였는지를 세세히 알려준다. 그 현장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며 나중에 도래한 자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것은 역사를 알고 나서 과거의 잘못을 지탄하는 식의 관점이 아니라 어떻게 현재 실천 속에서 그 패배를 배울 수 있는가 하는 관점이다. 굳이 역사서술을 다시 꼼꼼하게 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에 이 책이 특히 밀고나가는 부분(패배과정에서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것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보겠다.


  필자 이케다 히로시는 루카치 연구에서 시작해 나치스 문화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해왔다. 또한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서도 문화적 측면에서 논의를 해왔으며 단지 학술적인 장에 머물지 않고 천황제나 하층노동자 문제, 정치와 예술의 관계 등에 대해 수많은 책을 썼다. 그런데 이외로 한국어 번역이 없다. (그런데 참고로 말하면 그의 <저항자들 – 반나치스운동의 기록>이라는 책이 <불멸의 저항자>(명지출판사, 1990)라는 제목으로 서석연이라는 사람의 저서로서(번역서가 아니라!) 출판된 바 있다. 이케다 히로시의 후기까지 마치 서석연이 쓴 것처럼 꾸민 근년에 와서는 보기 드문 100% 해적판인데,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이 계시면 읽어보세요. 아래 사진 참조)



서석연의 ‘저서’ <불명의 저항자>의 표지와 판권장. 



중요한 책으로는 <루카치와 이 시대>, <어둠의 문화사 – 몽타주 1920년대>, <사형의 쇼와사>, <문화의 얼굴을 한 천황제>, <해외‘진출’문학론>, <히노 아시헤이론>, <석탄의 문학사> 등이 다수 있다. 임펙트 출판회에서 <이케다 히로시 콜렉션>이 간행중이며 루카치, 에른스트 블로흐의 일본어 번역자이기도 하다. 




2. 어떤 문화적 저항

 

  1919년 5월2일, 바이에른 공화국이 타도되어 독일사회민주당(SPD)정권이 복귀하자 레트 마르트(Ret Marut)라는 작가가 ‘반역죄의 수모’라는 혐의로 수배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석재판에서 사형이 선거되었다. 그는 <벽돌을 굽는 사람>(Der Ziegelbrenner)이라는 잡지를 간행했었다. 그의 주장은 공산당과는 달리 철저하게 개인주의에 입각하려는 것이었다. 어떠한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인간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이 되지 않겠다는 사상이다. 그는 그것을 근거로 한 저항자였다. 사형선고 후 어디선가 <벽돌을 굽는 사람>이 예약구독자에게 배송되었다. 거기에는 살해당한 랑다우어(Gustav Landauer)에 대한 추모, 그리고 다시 간행을 계속하겠다는 선언과 “국가, 정부, 나, 이 3 자 중에서 내가 가장 강하다. 너희들, 이를 잘 기억해둬라!”(237)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 1926년, SPD의 기관지에 멕시코에 사는 토라벤(Traven)이라는 사람의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마르트의 새로운 소설로 추정되는 <사자(死者)들의 배>(Das Totenschiff)였다. 나중에 나치스는 바이마르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토라벤의 저작을 분서했으며, 발매금지시켰다. 그의 소설 중에는 <백장미>(Der weiße Rose)가 있었다. 나중에 나치스에 대한 저항 때문에 사형당한 숄(Scholl) 형제는 그 이름을 스스로의 이름으로 따왔다. 토라벤의 소설들은 1971년이 돼서야 동독일의 연구자 렉나겔(Rolf Recknagel)에 의해 마르트의 작품이라 실증되었다.  




3. 봉기의 탄압과 군사력 속에서의 바이마르 헌법


  SPD는 1918년 1월에는 ‘의용군’ 부대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베를린에 체류하던 1차 대전의 군인들이 참여했다. 실업상태였던 직업군인은 실업자가 되지 않았다. 그 때는 아직 베를린에서 공산당을 탄압하는 시가전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공산당의 이들에게는 “혁명을 전멸하기 위해 자신 앞에 서 있는 자들이 구제국의 군대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혁명군 병사를 지원했던 의용병이라는 용병이었음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180-1쪽) 그리고 의용병들의 활동장소는 단지 독일 국내에 머물지 않아 러시아혁명 간섭전쟁에 참여하기도 한 것이다(282). 의용병들은 만연하던 실업 상황 속에서 지원을 했다. 러시아의 지주들은 독일 지원병들을 환영했다. 지주들은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한 새벽에는 토지를 무료로 제공할 테니 여기에 입식해서 농업경영으로 생활하라고 약속하는 이도 있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독일 본토의 의용병들에게 전달되었다”(284). “이제야 전쟁의 폭력에서 해방될 터인 젊은이들을, 게다가 자유의지의 이름 아래에 자발적으로 그러한 폭력장치의 말단으로 이용한 정치인들 – 즉 베른슈타인에게 예찬된 ‘사회민주당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 - 의 정략은 독일혁명의 모든 시기를 통해 가장 부끄러워야 할 사건 중의 하나”(286)이다. 의용군들 중에는 나중에 육군 및 해군에 들어간 이도 있었지만 많은 대원들은 무장집단에 적을 옮겼다. 그 중 최대의 것은 국민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의 군사 조직 ‘돌격대(Sturmabteilung=SA)’였다.


  1차 대전 중 여성들은 사회진출을 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복원한 남성들을 원래 직장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많은 여성이 대량으로 해고되었다. 여성노동자의 수도 전전 수준에 회귀한 것이다. 또한 레테(평의회)의 대의원이 된 여성이 매우 적었다.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은 여성의 레테참여를 주장했지만 그것이 깊이 검토될 일은 없었다(336). 

  SPD는 마지막 레테(평의회)공화국인 바이에른을 군사력으로 분쇄한 후, 그러한 탄압을 통해 “독일 역사상 가장 민주주의적이라 불리는 헌법을 가지는”(198) 바이마르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바이마르 헌법은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적 인권, 그리고 국가에 의한 인간의 등급 매기기인 훈장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들 인권개념들은 바이마르 헌법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그 70년 전의 혁명에서 이미 소리를 지르던 것이었다. 1918년11월에 시작한 독일혁명은 드디어 현실적으로 군주제를 타파함으로 이 소리에 육체를 준 것이다.”(207) 그것은 1848년의 3월 혁명의 주체들이 군주제를 불가침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실현되지 않았던 헌법안의 1/3을 기본적 인권에 할애했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208-9). 그런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의심할 나위 없이 ‘11월 혁명’의 성과인 바이마르 헌법이 명문화한 민주주의적인 자유와 인권은 70년 전의 시민(부르주아)혁명의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212)는 것이다. “이들 두 헌법에는 그것을 탄생시킨 두 혁명이 깊이 새겨져 있다. 이 각인은 눈부신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혁명의 좌절이나 불철저함, 혹은 비참함까지도 거기에는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212)


  SPD의 일부를 포함해 바이마르 헌법의 제정자들은, 바이에른 공화국을 탄압하기 위해 쓰던 사형을 ‘범죄억지력’으로 폐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1919년 8월14일에 공포 및 시행된 바이마르 헌법이 사형폐지를 실현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나중에 히틀러가 이 헌법에서 최대의 예외적 조항인 ‘대통령 긴급명령’을 사용할 때 사형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도 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사형폐지는 3월 혁명의 헌법안에도 명기된 일이었는데 바이마르 헌법은 거기부터도 후퇴한 것이다(217).

  



4. 그 후 – 나치스까지


  독일패전 후 독일의 천문학적 배상을 명기한 베르사유 조약(1919년 6월)에 대한 반발이 혁명 이후 계속 이어졌다. 배상금은 국가예산 51배가 되는 거액이었다. 게다가 이를 42년 내로 지불해야 했었다. 힌덴부르크 장군은 독일은 뒤에서 빨갱이인 유태인들이 배신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1918년의 11월의 배신자들로 지목한 자들은 사회주의공화국이나 레테공화국을 지향한 스파르타크스단을 비롯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멸시킨 SPD의 간부나 활동가까지도 포함시켰다. 의용병들은 프랑스가 루르(Ruhr)지역을 점령하자 그것을 계기로 다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바이마르체제를 타도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316) 


  한편 코민테른의 ‘일국일지부’ 원칙으로 인해 새롭게 생긴 통일독일공산당은 독일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좌파인 독일독립사회민주당이 합당해서 1920년 12월에 결성되었다. 1921년 2월, 독일 중부에서 일어난 파업은 이에 대한 치안당국의 탄압에 의해 패배했다. 이에 대해 통일독일공산당은 공산당의 지도를 받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지적했다. 여기에는 레테(평의회) 시절에는 존재하던 아래로부터의 참여하는 관점은 없었다. “독일혁명은 근현대의 여러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정당이 민중에 의한 혁명에 적대하는 존재임을 실증했다.”(302) 혁명의 종연 이후,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모색한 이들이 만든 것이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사회연구소였다.


  이 책 마지막의 글은 다음과 같다. “독일혁명 중에서 자유와 자치와 공생의 꿈을 현실로 할 기회를 잃고, 생각과 의지와 행동을 함께 모색하며 실천하는 장을 잃어버린 주권자는, 선거권을 행사한다는 의회민주주의의 주권만을 얻었다. 일상의 현실이 절망적인 것이 되면 될수록 결단력과 실행력을 보란 듯 보여주거나 그것으로 인기를 얻으려 하는 강한 정치인에 모든 것을 맡기며, 함께 생각하고 의지하며 행동한다는 것에서 자기 스스로 더욱더 멀어진 것이다.”(341)  


  혁명의 힘을 고정화하려는 ‘당’이라는 문제, 그리고 사후적으로 얻게 된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바라볼 때 어떻게 그 내실이 달라진 것인지, 여러 의미를 묻게 하는 책이다. 당연히 한국사에서의 비슷한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도는 여전히 군주제를 지키고 있으며 여전히 재생산하고 있는 일본에서 발행된 이 책에서 어떠한 아이디아를 줄 것이다. 


 

Posted by 수유너머104

[코너소개] 이글은 2016년에 출판된Manifestly Haraway에 실린 것으로 캐리 울프(Cary Wolf)가 다나해러웨이를 인터뷰한 것이다캐리 울프는 미네소타 출판의 포스트휴머니티(Posthumanities) 시리즈의 편집자이고, 최근에는 동물연구, 생명윤리, 그리고 포스트휴머니티의 입장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나 해러웨이는 이 시리즈물에서 『When Species Meet』을 썼다. 이 인터뷰는 2014년 5월 11~13사흘간 다나 해러웨이와 그의 파트너 러스틴 호그니스의 산타크루즈의 집에서 이루어졌다이 인터뷰에는 다나 해러웨이의 중요한 선언들인 사이보그 선언과 반려종 선언을 둘러싼 이야기들과 뒤에 2016년에 발표된 “Staying with the trouble”에 실린 몇 편의 선언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해러웨이 문제의식전반을 알 수 있는 인터뷰다.


대화의 반려들

Donna Haraway, 『Manifestly Haraway』, Minesota University Press (2016)




번역: 최유미/수유너머104



<Manifestly Haraway>





1. 사이보그의 시작

 

Cary Wolfe: 

두 가지 선언의 최초의 정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시고 싶은 어떤 방식으로든 말입니다. (지식적인 면, 제도적인 면, 정치적인 면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그 작품들 뒤에서 구성과 동기부여만이 아니라 그것들(두 선언들)의 수용까지도 형성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1983(사이보그선언이 발표된 해) 이후 많은 것이 변했지만, “반려종선언(Companion Species Manifesto)” 이후에도 역시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이 두 가지 작품의 미래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작품들이 사람들이 지금하고 있는 일에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 거기서 시작해 보시죠.


                         <사이보그선언 -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주의-페미니즘>


Donna Haraway:

 “사이보그선언(Cyborg Manifesto)”으로 시작합시다. (당시는 1980년대 초기였는데) 레이건 대통령 초기에 사회주의자-페미니스트, 맑시스트-페미니스트로서 그런 진형(陣形)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관한 이해는 상당히 폭넓은데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견해를 같이 했던 몇몇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Socialist Review West Coast Collective로부터 요청을 받았습니다. 레이건-대처 시대로서 우리가 이후에 보게 되는 이 국면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어디로 움직이는지,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생각하는 글을 몇 페이지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1960년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것이고, 우리의 정치와 상상에 관한 커다란 희망은 심각한 트러블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운동 안에서, , 그리고 우리의 더 큰 역사적 순간 안에서 말이지요. 그것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Cyborg Manifesto”는 부분적으로는 그 초대에서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Socialist Review를 대표해서, 신좌파(new left)와 동유럽과 유로, 그리고 아메리카당의 포스트 신좌파들의 유고슬라비아 회의에 발표할 논문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회의에서 나는, 회의에서 참석하고 일하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매우 흥미로운 다른 맑시스트-페미니스트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누가 복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발언을 하는지에 관한 이슈들 결코 사라지지 않는 구식의 페미니스트 이슈들 같은 그런 종류의 것들 - 에 관해 즉각적인 유대관계를 경험했습니다.

 

이 선언은 이런 다양하고 직접적인 정황으로부터 나왔지만, 더 나아가서는, 스푸트니크(Sputnik; 1957년에 처음으로 발사한 소련의 인공 위성)에 의해 교육받은 머리로 성장하게 된 2차 대전의 어린이라는 점으로부터 나온 바가 매우 큽니다 - 다시 말해서, 미국이 소련과 우주 경쟁을 했던 사실, 그것이 낳은 결과로는 국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과 과학교과서의 개정, 생물과학전반과 심지어 사회과학분야까지 교과서 개정들이 있었습니다.(내 친구 Susan Harding은 같은 사회적 국면으로부터 나왔던 중등학교 교과과정 개편, , MACOS(Man a Course of Study)에 관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나는 산타 크루즈(Santa Cruz)로 옮겼는데, 그전에는 존스홉킨스(Johns Hopkins)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는 하와이대학(University of Hawaii)에서 가르쳤습니다. 홉킨스의 응용물리학실험실과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전략 사령부 덕분에 나는 엘리트 연구 기구 속에 그리고 실제 공간들 속에 구현되고 내장되어 있는 그대로 군사 산업 복합체들을 보았습니다. (Johns Hopkins에서 가르친 일이 나를 어떻게 형성시켰는지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예를 들면, 위생학교실과 공중보건의 역사에 관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들 복잡한 자본주의, 군사주의, 제국주의 기타 등등의 진형들의 내장되어 있는 제도화한 그리고 정치적인 기구들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볼티모어(Baltimore)는 또한, 낸시 핫속(Nancy Hartsock)과 더불어 볼티모어 실험고등학교(Baltimore Experimental High School) 뿐만 아니라 활동적인 맑시스트-페미니스트 집단을 경험한 곳이고, 내가 사랑하고 후에 남편이 된 러스틴 호그니스(Rusten Hogness)가 가르쳤던 곳이고, 마지 피어시(Marge Piercy)의 아나키스트-페미니즘을 읽고 받아들이게 된 곳입니다.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나는 과학의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하와이지요. 예일 대학의 생물학 대학원생으로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당시에 나는 생물학이 문화와 실천이고, 문화와 정치이고, 물질적 자연문화(material natureculture) 라는 점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물질적 자연문화는, 그러니까, 이건 내가 나중에 만든 말들이지만 이미 깊이 연관된 접근방식들이었죠. 그리고 그때, 게이 남자 제이 밀러(Jaye Miller)와 결혼 했는데, 그의 전 생애 동안 그는 내 마음의 친구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결혼은 나쁜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뭘 했겠습니까? 나는 우리가 정말 순진한 형태의 근친상간에 종사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나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웃음). 우리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일에서 와서, 그러니까,